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랠프 박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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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dddddd,#000><colcolor=#000000,#dddddd> 랠프 박시
Ralph Bakshi
파일:RalphBakshiJan09.jpg
출생 1938년 10월 29일 ([age(1938-10-29)]세)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령 하이파
국적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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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틀: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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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틀: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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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령
]]
직업 애니메이션 감독, 애니메이션 프로듀서, 성우, 아티스트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1. 개요2. 활동3. 여담4. 작품 목록
4.1. 영화4.2. TV 애니메이션
5. 관련 인물6.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미국의 애니메이션 감독.

2. 활동

미국인 애니메이터로서는 드물게도 성인 애니메이션을 주로 연출 & 제작한 감독. 유대계 미국인으로, 영국령 팔레스타인에서 태어난 하이파 출신이다.[1] 태어난 이듬해(1939년)에 온 일가가 미국 뉴욕 브루클린으로 이주했다. 빈민가에서 흑인들과 함께 자랐으며 이런 경험이 작품에도 깊이 배어 있다.[2]

어렸을 때부터 코믹을 좋아해서 코믹북(만화책)을 찾으러 종종 쓰레기통을 뒤진 일도 있었고, 15살 때 공공 도서관에서 진 번즈(Gene Byrnes)가 저술한 Complete Guide to Cartooning이란 책을 읽은 이후 본인의 경험을 기록할 겸 판타지에서 영향받은 예술을 창작하기 위해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박시는 토머스 제퍼슨 고등학교를 다녔을 때에 학업엔 흥미를 가지지 못하고 대부분을 본인의 취미 활동에 임했으며, 푸드 파이트에 참여하다 흡연한 모습이 적발되어 교장실로 불려간 일이 있었다. 그와 대화하던 교장은 이 학교에선 성공할 수 없을 거라고 보아 박시를 맨해튼의 산업 미술학교로 전학시켰으며, 그 곳에서 미국 흑인 만화가 찰스 앨런한테 가르침을 받았다. 1956년, 교내 만화 부문에서 시상받으며 졸업한 뒤엔 애니메이션 제작사 테리툰즈(Terry Toons)에 입사했던 친구가 프로덕션 매니저 프랭크 셔드에게 본인을 추천해 준 것을 계기로 스튜디오에 입사하였고, 처음엔 셀 필름의 먼지를 제거하는 업무를 맡았는데 셔드는 박시가 몇달이 지나도 일을 지속하는 것에 놀라워하며 그를 셀 페인터로 승진시켰다. 이 때 한 아티스트의 작업 더미에 본인의 여유를 얻으려 10개의 셀을 밀어넣는 의도된 일탈을 저질렀고, 이틀 뒤 셔드의 사무실에 호출되기 전까지 들키지 않았다고 한다. 사무실에 같이 불려간 둘은 이내 셔드와 치열한 말다툼을 벌였고, 셔드가 박시를 편들어주는 것으로 사태는 해결되었다. 이 무렵 애니메이터가 되길 희망한 박시의 생각을 알게 된 테리 툰즈의 저명한 직원들(코니 라진스키, 매니 데이비스, 짐 타이어, 래리 실버맨, 조니 젠티레라 등)한테 도움과 조언을 받기 시작했다.

애니메이터 활동을 시작한 뒤 처음엔 진 데이치 휘하에서 일했으나, 1959년부턴 내외적인 이유로 애니메이션에 대한 욕구가 더욱 커지면서 같은 해에 방영 중이던 테리 툰즈 캐릭터 deputy dawg TVA의 제작 현장에서 레이아웃으로 활동하면서 라진스키의 휘하에서 일했으며, 1963년 연출가로 승진한 박시는 sad cat, james hound, mighty heroes TVA의 창작자로 일한 이후 테리 툰즈를 떠나서, 크란츠 필름을 운영하는 제작자 스티브 크란츠를 만나 그와 처음으로 협력한 작품 로켓 로빈 후드 TVA 시즌2, 시즌3의 제작에 참여했다.[3] 이듬해(1968년)부터 스파이더맨 TV판 시즌2 제작에 참여하던 중에 박시 프로덕션을 설립하여 스튜디오에 의뢰를 받는 작품이 아닌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기 위한 실질적인 기반을 만들었고, 박시는 스튜디오 내부 직원들에게 타 회사보다 높은 급여를 지급해줬고, 여성 애니메이터와 소수 인종 애니메이터한테도 많은 기회를 부여해 줬었다고 한다. 2년여의 제작 기간이 걸린 끝에 1972년, 로버트 크럼의 성인만화를 원작으로 하여 박시 본인의 첫 장편 작품이자 미국 애니메이션 영화 역사상 최초의 X등급을 받은 애니메이션 《고양이 프리츠》(Fritz the Cat)를 제작하여 업계 내외에 자신의 인지도를 알리기 시작했다.

이후로도 똑같은 X등급이 찍혀버린 애니메이션 영화 《헤비 트래픽》(Heavy Traffic),[4] 빈민가에서 갱단으로 커 가는 흑인들을 그려낸 익스플로이테이션 필름 《쿤스킨》(Coonskin,1975)[5] 등을 제작했는데,[6] 개봉된 영화를 두고 흥행과 논쟁 속에서 원래 파라마운트 픽처스가 맡을 예정이던 배급을 취소하였고, 원래 1976년 개봉 예정이던 헤이! 굿 룩킨!의 개봉이 몇 년간 연기되는 사태가 빚어지기도 했다.

1976년부터 2년간 판타지 영화인 《마법사》(Wizards), 《불과 얼음》(Fire and Ice)(놀랍게도 이 애니도 한국에서 비디오로 나왔다... 물론 삭제질), 톨킨 원작의 《 반지의 제왕》 애니메이션[7]으로 티브이 애니로 만들어진다.] 영화를 제작 & 감독했고, 미국의 음악사를 그려낸 《아메리칸 팝》(American Pop)을 만들었다. 그러나 작품들이 흥행에서 재미를 못 본데다 어른의 사정까지 겹치면서 1983년부터 일시적으로 몇년간 은퇴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1987년부터 TV 애니메이션 쪽(한국에서도 방영된 《 마이티 마우스》같은 애니에도 참여했었다.)을 통해 어느 정도 재기에 성공[8]하여, 다시 극장용 애니메이션으로 돌아가 킴 베이싱어 브래드 피트 주연으로 삼아 실사와 로토스코핑으로 만든 애니메이션을 섞은 《 쿨 월드》(1992)를 제작하나, 이 작품도 흥행에선 실패하고 만다. 이미 비슷한 기법으로 대성공을 거둔 《 누가 로져 래빗을 모함했나》가 나온 지 4년후에 나온 작품인데다, 내용 자체도 지루하기 짝이 없어서 흥행이나 평으로나 흑역사가 돼버린 영화.

그래도 TV용 애니메이션으론 1990년대 후기까지도 현역으로 작업했으며 미국 내에선 디즈니와 실사 영화 사이를 이은 인물이란 식으로 평가하는 사람도 있는 듯. 2015년엔 오랜 침묵을 깨고 단편 'last days of coney island'를 만들었으며, 2016년 본인의 유튜브 계정에 업로드하였다. 이후 애니메이션 감독의 활동에선 은퇴했지만, 아티스트로썬 지속적으로 활동 중이며 랠프 본인이 운영하는 웹사이트와 이베이 등지에서 아트 시리즈 작품들을 판매하고 있다.

3. 여담

4. 작품 목록

4.1. 영화

4.2. TV 애니메이션

5. 관련 인물

6. 관련 문서



[1] 참고로 박시 가문은 크림 반도 지역을 중심으로 튀르크어를 사용하던 크름차크라는 독특한 유대인 종교 공동체 출신이다. 문제는 이 공동체가 안그래도 적백내전 홀로도모르로 고통받는 판이었는데, 결정적으로 제2차 세계 대전 나치 독일 홀로코스트로 구성원 75%가 몰살당해 사라진 것. 그의 반골 기질은 태어날 때부터 뼛속 깊이 새겨진 셈이다. 크름차크 유대인에 대한 정보는 카라임 유대인이나 테오도로 공국 문서 참조 바람. [2] 이민을 하고 몇년이 지난 1947년, 워싱턴 DC로 전 가족이 이사했는데, 워싱턴에서 처음 살게 된 포기 버텀(Foggy Bottom) 내에 있던 흑인 학교에서 다닐 수 있도록 모친한테 허락받았고 흑인 친구들도 박시를 문제삼지 않으며 잘 어울렸지만 시기상 드물던 모습에 당황한 교사 교장한테 조언을 구했고 교장은 경찰들을 호출했다. 출동한 경찰관들은 백인 학생이 흑인 학교에 다니는 것을 백인들이 알게 되면 인종 폭동을 일으킬 것을 우려해 박시를 교실에서 쫓아내었으며, 몇달 뒤에 일가족은 브라운스빌로 다시 이사를 갔다고 한다. [3] 제작 과정에서 빚어졌던, 박시가 떠올리길 꺼린 한 가지 비화가 있다. 박시는 몰랐지만 스티브 크란츠와 로켓 로빈 후드의 캐나다인 프로듀서 알 거스트는 서로 소송전을 할 만큼 사이가 나빠져서 합의에 실패했고, 이에 크란츠가 박시한테 프로그램의 모델 시트를 챙겨 미국으로 돌아가라고 적극적으로 권유했다. 얼마 뒤 알 거스트는 이 일을 눈치채어 절도 혐의로 캐나다 경찰에 박시를 신고했고, 토론토 경찰청에서 박시에 대한 체포 영장을 발부하였다. 주말마다 평소 공항으로 출퇴근을 했던 박시는 공항에서 경찰들이 자신을 기다린단 것을 깨달았고, 배경 아티스트 자니 비타에게 본인이 캐나다-미국 국경까지 차를 모는 동안 경찰을 분산시키기 위해 공항에 가줄 것을 부탁했다. 이에 공항에 도착한 비타는 경찰한테 체포됐지만 그에 대한 체포 영장이 없었기 때문에 이틀 뒤에 비타를 풀어줬고, 박시는 다른 미국인 아티스트들과 같이 국경으로 이동하다 미국 국경 수비대에 의해 제지당했다. 이 때 대원들이 그한테 뭘 하고 있냐고 질문했는데, 박시는 '이 모든 사람들은 징병을 피하려 캐나다로 향하는 중이고 난 미국으로 돌아갈 건데, 그게 뭐가 엿같은 잘못이라도 했수?'로 농담섞인 답변을 했고 이를 들은 대원들은 웃어대면서 박시를 미국 국내로 검문을 통과시켜 줬다고 훗날 언급했다. [4] 1990년대 후반에 한국에서도 비디오로 나왔는데 표지가 무슨 일본 야애니처럼 엉터리 다른 일본 애니 장면으로 도배하여 나왔다! [5] 애니와 실사를 합성해 만들었는데 1989년 한국에서 비디오가 나왔으나 ( 삼부비디오) 애니 상에서 바지 벗고 남자 고추가 드러나는 장면 등의 여러 장면들을 삭제한 것과 더불어 비속어들은 모조리 걸러냈다. 삼부비디오판 가진 루리웹 유저가 올린 비디오 장면. [6] 파일:external/www.etobang.com/acc93a7a630f390e6671dc12f430be24_IpwbZo5rRq8TizZysNRC6E4p.jpg 쿤스킨을 처음 보면 루니 툰에 대한 자잘한 풍자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장면도 있다. 캐릭터( 벅스 버니를 흑인으로 만든 검은 토끼 래빗 브라더도 그렇지만 저 배경을 보시라. 눈에 익숙하다면....) 파일:external/www.etobang.com/acc93a7a630f390e6671dc12f430be24_EqCMxTpbu.png 루니 툰 배경화면을 그대로 썼다고 할 정도로 같다. 하지만 쿤스킨의 기반이 된 작품은 조엘 챈들러 헤리스의 문학 '엉클 리머스'였으며, 주인공 캐릭터들도 이 소설에서 나온 세 주역 동물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7] 박시 자신은 반지의 제왕 전체를 애니메이션화하려는 욕심을 가지고 있었으나, 두 개의 탑까지의 내용을 담은 극장판 애니메이션이 흥행 실패하면서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한국에서도 극장 개봉과 비디오로 나왔으나 그다지 성공하지 못했고 워너 브라더스 코리아에서 DVD로 냈으나 역시 소리소문없이 사라졌다... 나중에 왕의 귀환은 1980년 줄스 바스와 아서 랜킨 주니어 공동 감독( 공룡아 불을 뿜어라 무적의 실버호크, 무적의 왕자 라이온 감독으로 유명했다. [8] 마이티 마우스 TVA는 훗날 제작에 참여한 업계인들이 유명한 애니메이션 작품들에 참여했을 만큼 그들이 메이저로 될 기반을 만든 작품이 되었지만 방영 도중에 'The littlest Tramp' 편의 한 장면을 두고 개신교 우파 성향 종교인 도날드 와일드먼(Donald Wildman)이 프로그램에서 만화 캐릭터가 코카인을 흡입하는 묘사를 했다고 주장하며 파동이 일었는데, 이에 박시 본인은 '도날드 당신은 레이디와 트램프의 한 스틸컷을 골라도 같은 인상을 느낄 겁니까, 고양이 프리츠는 포르노가 아니었고 그것은 사회적인 논평이었죠. 이 모든 것은 제3제국에서 책을 불태우는 냄새가 나요! 매카시즘의 냄새가 나요! 누가 어떤 냄새를 맡는지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겠지만, 이것은 미쳤어요!'라고 반박했다. 당시 비난의 여파로 인해 CBS는 해당 장면을 편집하도록 명령했고 마이티 마우스 TVA는 시즌이 연장되지 못했으며, 박시가 니켈로디언에 방영을 기획했던 정크타운 TVA 제작도 무산당하게 된다.(제작 완료된 에피소드는 테터타운의 크리스마스란 이름으로 니켈로디언에서 크리스마스 스페셜로 방영되었다.) [9] 이런 연출이 많이 묘사되어 있는 작품으론 쿤스킨을 꼽을 수 있다. 작중에선 래빗 일행과 후반부에 많은 접점을 맺는 마피아 일당의 위선적이고 잔혹한 내면이 여과없이 드러나오며, 구세주인 척 행세를 하며 흑인들을 유혹하는 한편 백인들을 말살하려는 흑인우월주의 조직의 보스와 간부들, 경찰관이자 마피아와 협력 관계에 있던 인종주의자 백인의 묘사도 악랄한 행태를 별다른 미화 없이 그려내고 있다. [10] 해당 작품들은 기존 메이저 영화사들이 배급하지 않았으며, 이후 작품들의 판권을 인수한 MGM(고양이 프리츠, 헤비 트래픽)과 제논 엔터테인먼트(쿤스킨)에서 DVD를 발매하였으며, 2023년 현재는 아마존 산하 OTT 서비스인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에서 스트리밍으로 시청 가능하다. [11] 비록 소수자들의 시선에 동감한다 해도 관점에 따라서 작품에서 소소한 농담거리로 다루는 연출가들도 종종 있기 때문에, (그들에 대해) 미디어 매체에서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면 중 하나만 다루어 묘사하지 않으면 (작품을 연출한) 크리에이터를 일관적으로 차별/옹호로 판단하는 견해 자체가 흑백논리적인 관점이기도 하다. 그리고 박시가 연출&제작한 작품들의 캐릭터는 성적 지향이나 이념, 인종이나 종교인에 관계없이 큰 잘못을 저질렀거나 정당한 이유 없이 (말투나 몸짓 등으로) 남들을 하대하는 장면이 나오면 얼마 못 가 그에 응당한 대가를 치르거나 적어도 상대방한테 조롱섞인 야유나 시선을 받게 되는 장면들이 나온다. [12] 실제로 최근 인공지능 그림등이 유행하면서 관련 업계 사람들을 조롱하고 모욕하는 사이버 불링들이 굉장히 많아졌다. [13] 랄프 박시의 이름을 미국 국내외로 알린 첫 번째 히트작이며, 미국에서 첫 번째로 주목받은 성인 애니메이션 영화이자 독립 애니메이션 영화이기도 했다. 영화에서 나오는 캐릭터들의 대화는 정석적인 대본이 아니라 즉흥적으로 이루어졌으며 개봉 년도의 미국 내 박스오피스 상위 10위 이내의 흥행 성적을 기록했다. 제작 과정에서 워너 브라더스가 제작 자금을 제공했지만 본인들의 제안을 제작진이 거부하자 영화의 배급에서 철수했으며, 참여한 애니메이터 중 일부가 영화의 내용이 정치적이거나 저속하단 이유로 중간에 그만두거나 해고된 일도 있었다. 베테랑 애니메이터 테드 보닉센은 제작 도중에 앓던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으며, 박시가 스튜디오를 LA로 이전했을 때 이들 애니메이터한테 찬사와 증오가 뒤섞인 반응을 얻기도 했다. [14] 작품의 주요 캐릭터 3인방은 남부의 노래의 원작을 서술한 조엘 챈들러 해리스가 저술한 '엉클 리머스의 야화'에 나오는 브래어 베어, 브래어 폭스, 브래어 래빗을 바탕으로 디자인했으며, 원래 제목은 할렘 나이츠(Harlem Nights)였다. 작품에 참여한 스탭 중엔 흑인 애니메이터들이 상당수 참여했었으며, 원래는 파라마운트 픽처스가 배급할 예정이었는데 개봉 당시의 캐릭터 디자인, 스토리텔링 등에 대해 영화를 시청하지 않은 알 샤프턴이 비난을 했으며 외적인 요소에만 중점을 두고 영화를 비난한 민권 단체 인종 평등 회의(CORE)가 작품이 상영 중인 영화관을 방문해 점거하는 등의 보이콧을 감행해, 마이너 배급사 브라이언스톤이 배급해야 했고 브라이언스톤도 상영 2주 뒤에 파산하기에 이른다. [15] 그러나 상영 초기에도 로저 이버트, 레너드 말틴을 포함한 몇몇 평론가들이 영화의 작품성에 대해 깊게 고찰한 평론을 기고한 일이 있었고, NAACP 또한 어려운 풍자로 해석한다는 입장이 담긴 편지를 작성하며 쿤스킨을 옹호해줬다. 언론 & 잡지 매체의 평론 리뷰에서도 호불호가 크게 엇갈리는 등 미국 흑인 커뮤니티에서도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상당수 있었다. 제목을 바꾸어 VHS로 영화가 발매된 1980년대 이후 박시가 영화에 고정관념적인 묘사를 숨기지 않고 표현함으로써 할리우드의 인종차별적인 태세를 풍자하려 했던 메시지와 작품성이 차츰 재평가를 받으면서 2003년 3월 온라인 영화 비평가 협회는 쿤스킨을 고양이 프리츠, 반지의 제왕, 불과 얼음이랑 Top 100 Animated Features of All Time 리스트에 수록하였고, 이듬해 채널 4가 실시한 The 100 Greatest Cartoons의 여론조사에서 56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쿠엔틴 타란티노, 스파이크 리가 쿤스킨을 고평가하며 좋아하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16] 2023년에 한 이탈리아인 유튜버가 잃어버린 이탈리아어 더빙 영화를 발견하기 위해 한 수집가한테 연락해 구매한 VHS 비디오테이프에서 미공개 상태였던 쿤스킨의 파라마운트 컷(이탈리아어 더빙판)을 발견하였으며, 인터넷 아카이브와 유튜브에서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17] 본래 1975년에 작품이 완성되었고 이듬해(1976년)에 개봉될 예정이었지만, 이 무렵 개봉한 박시의 작품 쿤스킨에 대한 논란의 여파로 몇년 간 개봉이 연기되었다고 한다. 이후 박시 본인의 언급에 의하면 워너 브라더스에서 영화에 삽입했었던 실사 시퀀스를 상당수 편집해서 상영시켰기 때문에 이 작품(1982년 상영판)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18] 박시 본인이 가장 싫어하는 작품으로 언급한 작품으로, 박시가 제작한 애니메이션 영화 중에서도 유일하게 흥행에 실패한 작품이다. 문서 참조. [19] 박시가 연출한 영화들 중에서 유일한 실사 영화 장르의 작품이다. [20] 페이머스 스튜디오와 테리 툰즈에서 근무한 애니메이터, 짐의 역동적인 캐릭터의 동화 스타일은 랄프의 작품들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21] 박시의 언급에 의하면, 생전에 자녀가 없었던 라진스키는 애니메이션 노조의 반발로 박시 본인이 제작 현장에서 좌천될 뻔한 것을 막아주는 등 그의 멘토를 한 것에 대해 무척 기뻐했었다고 하며, 박시도 그한테 훌륭한 아버지다운 인상을 느꼈었다고 회고했다. [22] 박시의 고양이 프리츠와 후속작(단, 이 작품은 박시가 관여하지 않았다)이 칸 영화제에 초청받을 정도로 화제를 불러일으켰지만, 이 애니를 무척 싫어했다. 얼마나 싫어했냐면 크레딧에서 자신의 이름을 빼라고 소송을 건 데다 고양이 프리츠 완결을 영화화로 거만해진 프리츠가 나대다가 여친에게 살해당하는 걸로 끝내버렸다. 이후 박시랑 작업한 애니메이터에게 노골적으로 불이익을 주려고 협박했을 정도. 박시도 대놓고 '잘 만들었는데 왜 존경해주지 않는 거냐'며 '크럼은 좋은 작가지만, 존경할 가치도 없는 포주'라 디스하는 등 지금도 둘 사이는 험악하다. [23] 로켓 로빈 후드 TVA 제작에서 처음 인연을 쌓고 고양이 프리츠와 헤비 트레픽의 프로듀서로도 활동했지만, 고양이 프리츠와 헤비 트레픽의 제작 도중에 박시한테 여러 지시를 강요하거나 고양이 프리츠에 대해 불공정한 수익 배분을 이행했고, 점점 박시를 집착적으로 하대하는 성향을 드러내어 헤비 트레픽의 제작이 끝난 이후 박시는 그와의 관계를 단절했다. 이런 만행을 혐오한 박시가 자신의 차기작 할렘 나이츠(쿤스킨)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길 거부하자, 박시를 해고시켜 다른 연출가한테 영화의 감독직을 제안했으며 이들 중엔 척 존스도 있었다. 이에 공동 프로듀서 사무엘 Z. 아코프는 소식을 듣고 크란츠를 만나 (박시를 해고하면) 헤비 트레픽의 제작 자금을 빼낼 것이라고 그를 위협했으며 박시는 다시 감독으로 고용될 수 있었다. [24] 유튜브의 Don Bluth vs Ralph Bakshi 키워드 검색 영상 참조. 생전의 월트 디즈니와 플라이셔 형제처럼 대놓고 경쟁을 벌인 적은 없었고 서로 간에 빚어진 마찰 없이 현재도 사이가 원만하지만, 미국 애니메이션이 현대기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제작자로써는 수년 동안 애니메이션 팬덤에서 라이벌로 거론되기도 했다. [25] 과거 1980년대 중후반엔 애니메이션 제작 현장에서 서로 교류하던 직장동료였으나, 2020년대 현재는 박시가 SNS에서 그와 관련된 내용을 언급하지 않는 것으로 볼 때 여전히 동료 관계인지는 불분명하다. [26] 뉴 리퍼블릭에서 쿤스킨에 대한 평론을 기고했을 때 쿤스킨에 대해 작은 결점이 있지만 치열한 예술 작품으로, 높은 수준의 상상력을 기반한 에너지와 약간의 광채가 가미되어 있다고 쓰면서 호평하였다. [27] 박시가 연출한 헤비 트래픽을 마틴 스코세이지 비열한 거리보다 더 재밌다고 인터뷰에서 언급한 적이 있다. [28] 반지의 제왕 실사영화 시리즈를 만드는 과정에서 박시가 제작한 반지의 제왕 애니메이션 영화의 영향을 받았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29] 2021년 개봉한 본인의 콘서트 영화에서 삽입될 애니메이션에 대한 아이디어에 대해 패트릭 오스본한테 캐릭터가 1980년대의 모습과 로토스코핑 같은 애니메이션을 가져야 한다고 제안했으며 그 과정에서 랄프 박시와 리처드 윌리엄스의 작품을 언급한 바 있다. [30] 할리우드 리포터와의 한 인터뷰에서 본인의 첫 애니메이션 영화 랑고에 대한 질문에 답변할 때 랄프 박시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