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문서: 대한민국의 보수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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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계 정당 |
보수정당 (초기, 군정기, 민자당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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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민자당계 정당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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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자유당 1990 ~ 1995 |
신한국당 1995 ~ 1997 |
한나라당 1997 ~ 2012 |
새누리당 2012 ~ 20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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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2017 ~ 2020 |
미래통합당 2020 |
국민의힘 2020 ~ 현재 |
1. 개요
1990년 2월 9일 민주자유당 창당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시기이다. 이 시기에 민주당계 정당과 대립해온 주류 정당은 민자당계 정당, 혹은 한나라당계 정당으로 불리는 정당들이다. 민주자유당에서 내려오는 제6공화국 주류 보수 정당의 계보는 민주자유당-(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국민의힘)으로 이어졌다. 참고로 국민의힘의 홈페이지에는 한나라당을 당의 공식적인 기원으로 서술하고, 민주자유당과 신한국당에 대해서는 특별한 설명을 하지 않고 있다.민주자유당 법인은 1990년 1월 22일 3당 합당으로 창당되었으며, 1996년 2월 6일 신한국당으로 한 번 당명을 변경하였다. 1997년 11월 21일까지 7년간 존속했다. 이 신한국당과 민주당이 합당하면서 1997년 11월 21일 한나라당이 창당되었으며, 한나라당은 2012년 새누리당으로, 2017년 자유한국당으로 두 번 당명을 변경한 끝에 2020년 2월 17일까지 대한민국 정당으로서는 가장 긴 22년간 존속했다. 이후 2020년 자유한국당, 새로운보수당, 전진당이 합당하여 미래통합당이 창당되었으며 같은해 국민의힘으로 당명을 변경하였다.
다만 주류 보수 세력이 계속해서 단일 정당으로 유지된 것은 아니며, 세 번의 유의미한 분열이 있었다. 그러나 세 번의 분열 모두 몇 년 후 재통합으로 이어졌다. 우선 1995년 초 민주자유당 내 공화계 및 일부 민정계가 집단 탈당하여 그해 3월 30일 자유민주연합을 창당했었다. 자민련은 2006년 3월 10일 자진 해산하고 사실상 한나라당에 흡수 통합되었다. 두번째로는 2007년 말 한나라당을 탈당한 이회창을 중심으로 2008년 창당된 자유선진당이 있다. 자유선진당은 자민련 출신 인사들 중 한나라당에 합류하지 않은 인사들로 이루어져 있던 국민중심당과 통합하고 충청권 지역 정당으로 활동했으나, 전국적으로는 자민련만큼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다가 2012년 새누리당에 흡수되었다. 마지막으로 2016년 말 새누리당을 집단 탈당한 비박계 인사들이 2017년 초 창당한 바른정당이 있다. 이는 각각 김종필, 이회창이라는 강력한 정치적 보스이자 특정 지역의 맹주인 인물을 중심으로 하여 전국적인 선거를 앞두고 이뤄졌던 앞에 두 분당과 달리 보스 정치나 지역주의에 기반하지 않았고 전국적인 선거도 앞두지 않은 상태에서 이뤄진 분당이었다. 그러나 바른정당은 보수의 주류 자리를 두고 자유한국당과의 경쟁에서 패배하였으며, 지지율 부진과 소속 의원들의 집단 탈당으로 어려움을 겪다가 2018년 국민의당(2016년)과 합당하여 바른미래당 창당에 참여하였다. 그러나 바른정당 출신 인사들은 2020년 초 바른미래당을 집단 탈당하고[1] 사실상 바른정당을 재건한 새로운보수당을 창당하였으며, 새로운보수당은 자유한국당과 합당하여 2020년 2월 17일 미래통합당을 창당하였다.
2. 당색
민자당계 정당을 상징하는 색은 계속 바뀌었는데, 1990년 민주자유당 이후 2012년 새누리당에서 빨간색으로 바꿀 때까지 22년 동안 파란색과 하늘색을 주로 썼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새누리당으로 당명을 바꾸면서 당색 역시 빨간색으로 바뀌었고, 자유한국당에서도 빨간색을 썼다. 한편 바른정당과 새로운보수당에서는 한나라당까지의 파란색을 계승해서 하늘색을 썼다. 이후 미래통합당은 빨간색을 순화시킨 분홍색을 사용했으나 단명했다. 그 후신인 국민의힘에서는 빨간색 파란색하얀색
을 혼용해서 쓰기로 결정했다.
국민의힘 ‘빨·파·흰’ 확정[2]3. 역사
3.1. 1990년 ~ 1997년
제6공화국이 출범하고 노태우 정권 시절 3당 합당으로 민주자유당이 창당되고 신한국당으로 당명을 바꿨던 시기이다. 노태우 정권 중후반부에서 문민정부 시기까지가 포함된다.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자유당은 과반 의석 150석에도 미달하는 149석을 얻는데 그치며 의석수가 대폭 줄었으나, 여전히 1당을 유지하였다. 이후 무소속 및 다른 당 의원들을 영입하여 인위적 과반을 달성하긴 했다. 같은 해 제14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민주자유당의 김영삼 후보가 당선되면서 민주자유당은 또다시 여당을 맡게 되었다. 김영삼 정부는 초기에는 높은 지지율로 잠시 전성기를 누리지만, 성수대교 붕괴 사고와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등 대형 사건들이 연달아 터지자 휘청거렸으며,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도 패배하였다. 이에 김영삼 정부는 전두환과 노태우를 구속하고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정계를 공천 탈락시키는 쇄신 공천을 단행하며 반전을 꾀했다.[3]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15대 총선에서 민주자유당에서 당명을 바꾼 신한국당은 원내 제1당은 유지했으나 과반 의석 확보에는 또 실패하였다. 물론 이번에도 무소속 및 다른 당 의원들을 영입하여 인위적 과반은 달성하였다.
3.2. 1997년 ~ 2020년
한나라당이 창당되고 새누리당과 자유한국당으로 당명을 바꿨던 시기다. 국민의 정부 ~ 참여정부 사이의 기간은 보수정당이 처음으로 야당을 했던 시기이다. 이후 2007년에 정권교체해서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시절 여당이 되었다. 그러나 2017년 5월에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다시 주류 보수정당이 9년 5개월만에 야당이 되었다.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 1달 전에 1997년 외환 위기가 발생하면서 여당인 신한국당의 지지가 폭락했으며, 같은 해 신한국당이 통합민주당과 신설합당하면서 창당된 한나라당의 이회창 후보가 민주당계 정당인 새정치국민회의의 김대중 후보에게 패배하였다. 다만 한때 여론조사에서 3위로 나오기까지 했던 이회창 후보는 대선 막바지에 지지층을 재결집하는데 성공했고, 결국 김대중 후보와 이회창 후보의 득표 차는 1.6%p 밖에 되지 않았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은 새정치국민회의에서 외부세력을 수혈받아 새로이 창당한 새천년민주당을 꺾고 원내 제1당 자리를 수성하였고, 2002년에 열린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와 2002년 재보궐선거에서 연속으로 승리하면서 다시 전성기를 맞는 듯 했다. 그러나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후보에게 석패하였다. 이후 노무현 정부가 1년차 임기인 2003년부터 지지율이 흔들린 틈을 타서 한나라당은 재보궐선거에서 승리했고, 노무현 정부의 정책에 제동을 걸었으며, 2004년에 새천년민주당을 탈당하고 열린우리당을 세우며 지지를 호소한 노무현 대통령을 탄핵시키기 위해 새천년민주당과 같이 노무현 대통령 탄핵을 실시하였다. 하지만 국민의 지지를 얻지 못한 탄핵소추 1달 뒤 열린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열린우리당에게 152석을 내주었고, 한나라당은 121석에 그치며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이전까지 민주화 이후 보수정당 역사상 가장 적은 수의 대한민국 국회의원이 당선되는 결과를 내었다.
열린우리당은 17대 총선에서 승리를 거두었지만 노무현 정부 말기에 들어 지지가 폭락했다. 그 반대 급부로 당시 제1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의 지지는 반등하였다. 2007년 한나라당의 제17대 대통령 선거 후보 경선에는 이명박 전 서울특별시장[4]과 박근혜 의원[5]이 출마했는데, 한나라당의 압도적인 지지율 덕에 이 경선에서 한나라당의 후보가 되는 사람은 무조건 대통령이 될 거라는 의미로 경선이 곧 본선이라고 평가 받기도 하였다. 치열했던 경선 결과 한나라당 후보는 이명박으로 결정되었고, 이명박 후보는 열린우리당이 분열과 재통합을 거쳐 창당된 대통합민주신당의 정동영 후보를 48.7% VS 26.1%라는 압도적인 격차로 이기며 당선되었다. 한나라당은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과반 의석 150석을 넘는 153석을 획득하였는데, 이는 당시 대통합민주신당 등 민주당계 정당들이 통합해 창당된 통합민주당이 얻은 81석의 2배에 가까운 의석수였다. 특히 한나라당의 공천에서 탈락해 무소속으로 출마하거나 친박연대 후보로 출마해 당선된 의원들이 복당하자 한나라당의 의석수는 180석에 육박하였다.
그러나 2009년, 노무현 前 대한민국 대통령의 뇌물수수 의혹과 관련한 검찰 수사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한 노 前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이에 대한 범국민적인 추모 여론이 일어나 통합민주당에서 이름을 바꾼 민주당의 지지 상승과 한나라당의 지지 급락으로 이어졌다. 그 해 후반에는 쇄신용 개각 단행, 서울 지하철 9호선 개통, 아랍에미리트 원전 유치 성공으로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의 지지율이 회복되는 듯 했으나, 노무현 대통령 서거 1주기와 겹친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민주당에게 광역단체장 6:7, 경상남도지사 친노계 무소속 승이라는 충격적 패배를 당했다. 하지만 2010년 재보궐선거에서 승리로 한나라당의 지지율이 회복세를 보였고, 이후에 G20 정상회담 유치, 아덴만 여명 작전 등의 국제적 호재들도 많이 이어지면서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부는 40%대의 콘크리트 지지율을 유지했다. 2011년 재보궐선거에서는 한나라당이 패배했지만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한미 FTA 타결, 신분당선 개통 등의 영향으로 한나라당이 지지율 1위를 지켜내었다. 하지만 그 해 가을에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 대참패와 같은 해 연말에 터진 선관위 디도스 사건 등의 위기 이후 이명박 정부의 레임덕으로 친이의 몰락과 함께 박근혜에게 당권을 넘겨주게 된다.
박근혜가 이끌던 한나라당은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변경, 상징색도 파랑색에서 빨강색으로 바꾸는 혁신을 단행하였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는 민주당에서 이름을 바꾼 민주통합당에게 패배할 것이란 관측이 있었으나, 2012 서울 핵안보정상회의의 성공적인 개최와 새누리당의 혁신 성공으로 인해서 과반 의석 151석을 넘는 152석을 얻고, 127석에 그친 민주통합당을 꺾었다. 8개월 뒤 실시된 18대 대선에도 박근혜 51.6% Vs 문재인 48.0%으로 보수 우위 국면이 지속되었다. 2013년에는 인사파동, 김학의 법무부 차관의 별장 성접대 사건,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의혹, 국가정보원·국방부 여론조작 사건 등의 수많은 악재들에도 5~60%대의 지지율을 유지했으며, 연말에 철도 파업으로 인해서 하락했었지만 2014년 초에 다시 5~60%대의 지지율을 회복했다. 2014년의 여러 선거에서도 당시의 대형 참사들과 세월호 참사라는 초유의 사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선 광역자치단체장 8:9로 치열한 접전을 펼쳤고, 7월 30일에 실시된 2014년 재보궐선거에서도 11:4라는 압승을 거두었으며, 정부의 지지도는 4~50%대에 육박했다.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SRT 수서발 고속철도 추진, 통합진보당 해산 등의 여러 호재들과 연말에 터진 정윤회 스캔들, 2015년 초의 연금파동 등의 악재들에도 여전히 여당인 새누리당은 지지율 1위, 정부는 3~40%대의 지지율을 유지했다. 2015년 중반에 터진 성완종 자살 사건과 2015년 대한민국 메르스 유행 등의 악재에도 2015년 재보궐선거에 새누리당이 압승을 거두었으며 8.25 남북군사합의,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전승절 참석 등의 영향으로 박근혜 정부의 지지율이 골든크로스에 성공했으며, 이후 이를 바탕으로 노동개혁, 4대 개혁 입법 추진, 서비스기본법, 원샷법, 제주해군기지 완공, 장기결석 전수조사 등의 정책을 계속 추진했고, 20대 총선이 실시되는 2016년 1~2월까지는 압도적인 힘을 누렸다.
그러나 2016년 4월,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이후 정치 지형이 크게 변하였다. 이 선거 이후 2020년까지 4년간 보수정당은 암흑기를 맞이했다. 보수정당의 암흑기는 2021년 재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이 승리하면서부터 종식되었다. 당초 선거 이전부터 2016년 2~3월 새누리당 공천파문이 현실화될때까지는 집권 4년차를 맞은 박근혜 정부 및 새누리당의 나름대로 건재한 30%대 중후반 ~ 40%대 초반의 지지율과 새정치민주연합의 비문계 의원의 집단 탈당으로 이루어진 민주당계 정당의 분열로 새누리당이 20대 총선에서 국회선진화법상 여야쟁점법안의 단독처리가능의석인 180석 이상의 의석을 차지하는 완승을 거둘 것이라 예상하는 이가 대다수였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의 국정교과서 추진 시도와 2016년 초 테러방지법의 필리버스터 사태가 연쇄다발적으로 맞물리고 이어지는 일명 옥새들고 나르샤 파문으로 비춰지는 여당의 공천을 둘러싼 분열은 결국 제1당 혹은 180 ~ 200석을 차지해 장기집권의 기반을 다지겠다던[6] 새누리당은 오히려 역으로 더불어민주당 및 국민의당 등 야당/무소속에 전체 300석 중 60%에 가까운 170석 이상 내주며 최종 결과 122석의 제2당이라는 17대 총선 다음으로 나쁜 결과를 얻어 당시 보수 진영은 완패하고 말았다.[7]
총선 이후 새누리당과 박근혜 정부는 당초의 포스트 박근혜, 정권 재창출을 목표로 하는 포부에서 현직 대통령의 예정된 임기가 2년 가까이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야(野) 우위의 미래를 기약하기 어려운 위태위태한 조기 레임덕 사태에 빠지긴 했어도 지지율이 여전히 30%대를 유지하는 등 여전히 콘크리트 지지율을 유지하기는 했으나, 2016년 9월 이후로 당시 농림축산식품부장관의 해임 건의안이 국회에서 가결되는 등 권력누수현상이 가속화되는 지경에 이르다가...
2016년 10월 24일, 박근혜 대통령이 비(非)공무원 신분인 최순실에게 국가주요기밀인 대통령연설문을 누출했다는 의혹이 JTBC에 의해 공개된 데 이어, 연달아 11월 이후로 미르재단·K스포츠재단의 설립과정에서 최순실이 박근혜 대통령과 연결되어 대기업 회장들에게 각출받은 자금이 최순실의 사익을 밀접히 추구하는 목적으로 결국 대통령직(職)이 일종의 도구로 사용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의혹 및 정유라 마필 뇌물 의혹 등까지 포괄하여 터지면서 사상 유례없는 비선실세에 의한 국정농단 사태로 인한 국민들의 분노로 새누리당 및 범보수정당의 지지는 폭락하게 되었다.
이에 2016년 12월 9일, 국민들의 분노에 떠밀린 국회는 234표의 찬성으로 대통령(박근혜) 탄핵소추안을 의결함으로서 헌법재판소로 대통령(박근혜)의 최종 거취에 대한 결정권을 넘겼다. 그 여파로 보수계 유일 정당이던 새누리당의 분당으로 이어져 자유한국당, 바른정당, 늘푸른한국당, 친박 新새누리당으로 쪼개졌고, 이어지는 탄핵 선고에서 8:0 만장일치 파면 인용을 결정하면서 조기 대선이 실시되었고, 결국 더불어민주당의 문재인이 자유한국당의 홍준표 후보를 역대 최대 표차[8]로 꺾고 당선되었다. 그리고 탄핵 과정에서 탈당한 비박계의 '개혁보수'를 내걸며 만든 바른정당은 창당 1년여만인 2018년 2월, 국민의당과 신설 합당, 바른미래당을 창당했고, 늘푸른한국당은 자유한국당과 합당했다. 그래도 나름대로 20%대의 콘크리트 득표율을 유지했고 홍준표 대표 체제가 출범하면서 한국당은 지지율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지지율에 변동이 없이 여전히 10~20% 이내의 낮은 지지율에 머물렀다. 2018년 이후로는 더 큰 위기에 빠지는데 남북 단일팀 논란, 드루킹 여론조작 사건 등을 비롯한 문재인 정부의 각종 악재들에도 여전히 이슈 선점에 실패를 거듭했다. 이후 당내 계파 갈등까지 벌어져 지지층 결집은 계속 이뤄지지 않고, 문재인 정부와 여당의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등 평화 분위기 조성에 따른 압도적 지지율로 인해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광역자치단체장 3[9]:14라는 역대급 참패를 당하며 조직력마저도 무너지면서 보수계의 세는 점점 쪼그라들고 있었다.
7회 지방선거 이후 경제 문제 등의 부각으로 자유한국당이 반사이익을 보는 듯 했으나, 보수정당이 분열된 상태로는 21대 총선에서 승리하기 힘들다는 판단 하에 보수정당 통합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선거법상의 비례대표를 얻기 위한 움직임 아래 자유한국당 아래 위성 정당으로서 미래한국당을 창당시켰고, 지속적으로 물밑에서 이뤄진 통합의 움직임의 결실로 박근혜 탄핵 이후 쪼개졌던 보수정당이 4년만에 자유한국당, 새로운보수당, 전진당의 원내 보수정당과 원외 보수정당 2당과 신설 합당의 형식으로 미래통합당으로 재통합하게 되었다. 그 이후 문재인 정부의 조국 사태, 코로나 19 등의 악재등을 이용해 기회가 온 미래통합당은 21대 총선에서의 많은 의석의 차지를 노렸으나, 보수 계열 내의 내분, 여론의 정리가 이뤄지지 않고 여전히 계속된 통합당의 공천 잡음, 소속 의원들의 막말 등의 혼란을 거듭하며 결국 21대 총선에서도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더불어시민당의 연합에 야당인 미래통합당, 미래한국당의 연합이 180석을 여당에 내주며 완패하였다. 이로써 20대 총선을 시발점으로 해서 선거 4연패. 보수정당은 비록 다시 유일한 보수정당인 미래통합당으로 합쳐졌으나, 민자당계 보수정당 역사상 최악이었던 17대 총선의 121석을 갱신해버렸고, 이로 인해서 전 정부 탄핵의 후유증만 지속되었다. 그리고 미래통합당은 21대 국회 개원 이후 국민의당과 원내 보수야당으로서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3.3. 2020년 ~ 현재
문재인 정부로 정권교체가 되고 2018년 지선까지 패배하자 위기의식을 느낀 보수 세력이 다시 뭉쳐서 신설합당의 형식으로 미래통합당이 새로 창당되면서 한나라당 법인은 역사 속으로 소멸되었다. 그러나 자유한국당이 새로운보수당과 전진당 등과 합당해서 창당된 미래통합당은 한나라당에 대한 계승 의식을 가지고 있으며 이것은 미래통합당이 당명을 교체한 국민의힘까지 이어지고 있다. 문재인 정권 중후반과 윤석열 정부가 포함된다.2020년 9월 2일, 미래통합당은 당명을 국민의힘으로 교체하였다. 이후 국민의힘은 정강정책을 바꾸는 등 쇄신을 통해서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노력했고, 2021년 재보궐선거에서 승리하면서 2016년 20대 총선부터 2020년 21대 총선까지 4년간 이어진 보수정당의 암흑기를 끝냈다. 이후 비노·비문 계열 민주당계 정치인의 영입도 주저하지 않으며 대선까지 국민의당과 전략적으로 제휴하기까지 하며 제6공화국 역사상 처음으로 5년 만에 정권교체에 성공해 윤석열 정부의 여당이 되었다. 2022년 5월에는 국민의당과 합당하였고 6월에는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4회 지선 이후 16년만에 가장 크게 승리하였다.
그러나 이렇게 탄생한 윤석열 정부는 임기 극초반부터 취임덕이라는 조롱섞인 신조어까지 만들어질 정도의 심각한 지지율 저하에 시달렸다. 단지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8회 지선이 대통령 취임 1개월도 되지 않아 치러진 극단적인 허니문 선거였던 것이 행운이었을 뿐, 통상적인 허니문 기간인 대통령 취임 후 수 개월조차 버티지 못하고 심각한 지지율 상실에 직면하게 된 것. 이는 안 그래도 압도적 여소야대 국면인 21대 국회와 동거하며 대통령의 거부권에 의존하여 정국을 운영하고 있는 윤석열 정부 및 국민의당 정권에 심각한 부담이자 위험요소로 작용하게 되었다.
이처럼 불안한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의 유일한 돌파구로 점처지던 것은 바로 22대 총선이었다. 22대 국회에서 여당이 입법부의 주도권을 얻거나, 최소한 제1야당이 사실상 입법권력을 장악한 상황이라도 타개한다면 윤석열 정부 후반기에는 상대적으로 수월한 국정 운영이 가능하리라 기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에 대한 가장 핵심적인 중간평가의 역할까지 겸한 2024년 4월 10일의 22대 총선에서 국민의힘은 양적으로는 21대 총선에 맞먹고, 질적으로는 오히려 그보다 더 심각한 처참한 패배[10]를 당하고 말았다. 이로 인해 윤석열 정부는 임기 전체를 여소야대, 그것도 패스트트랙 발동이 가능한 180석 이상이라는 압도적인 우세를 야당에 내 준 상태로 지내야 한다는 초유의 위기상황에 봉착하게 된 것이다. 민자당계 정당의 역사적 궤적 전체로 보자면 '21년~22년을 기점으로 보수정당의 암흑기가 끝났다'는 평가가 과연 적절한 것이었는지, 단지 일시적인 반등에 불과했던 것을 보고 오판한 것이 아닌지 검토해 볼 필요성이 제기되었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결국 2024년 12월 3일, 대통령 윤석열은 이런 위기상황을 위헌적 요소가 강한 비상계엄령, 즉 사실상의 친위 쿠데타로 돌파하겠다는 잘못된 선택을 하고 말았다. 물론 이러한 군사반란 시도는 고작 6시간만에 시민들의 저항 및 국회의원들에 의한 합법적 절차를 통해 진압되었고, 이로 인해 민자당계 보수정당은 단순한 장기 암흑기를 넘어 그 존폐 자체가 위협의 기로에 내몰리고 만 것이다. 소속 대통령이 (대통령이라 해도 면책되지 않는) 내란죄로 형사처벌을 받게 되거나 소속 국회의원중 일부가 쿠데타에 동조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정당해산심판을 통한 해산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고, 이 정도의 치명적인 상황은 피할 수 있다 하더라도 출신 대통령이 2회 연속으로 임기를 모두 마치지 못하고 탄핵에 의해 불명예스럽게 퇴진하는 상황을 맞게 될 가능성은 아주 높게 점쳐지고 있는 것. 이로 인해 국민의 신뢰를 완전히 상실하여 정당의 존재가치 자체를 상실하는 상황을 피하기는 지극히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4. 정당 목록
4.1. 민주자유당
민주정의당,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이 보수대연합을 하면서 3당 합당으로 만들어진 정당이다. 서로 이질적인 성향의 정파와 계파가 연합해서 만들어진 정당이라는 점에서 최초의 우파 빅텐트 정당으로 본다. 한나라당계 정당의 뿌리이자 민자당계 정당의 시초다. 노태우 정부와 김영삼 정부의 여당이었다. 해당 항목 참조.
4.2. 신한국당
김영삼과 상도동계가 민자당을 장악한 이후 민주자유당에서 당명을 개정한 중도보수 성향의 정당. 해당 항목 참조.
4.3. 한나라당
1997년 신한국당이 민주당과 합당하여서 창당된 정당. 1998년부터 2007년까지 야당이었다. 해당 항목 참조.
4.4. 새누리당
19대 총선 직전 한나라당이 새누리당으로 당명을 바꿨다. 이후 18대 대선 직전 선진통일당을 흡수합당하였다. 해당 항목 참조.
* 대표:
*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 2011년 12월 19일 ~ 2012년 5월 15일)
* 황우여 (대표최고위원, 2012년 5월 15일 ~ 2014년 5월 14일)
* 이완구 (비상대책위원장, 2014년 5월 15일 ~ 2014년 7월 13일)
* 김무성 (대표최고위원, 2014년 7월 14일 ~ 2016년 4월 14일)
* 원유철 (대표최고위원 권한대행, 2016년 4월 14일 ~ 2016년 5월 10일)
* 정진석 (대표최고위원 권한대행, 2016년 5월 11일 ~ 2016년 6월 1일)
* 김희옥 (혁신비상대책위원장, 2016년 6월 2일 ~ 2016년 8월 9일)
* 이정현 (대표, 2016년 8월 9일 ~ 2016년 12월 16일)
* 정우택 (대표 권한대행, 2016년 12월 16일 ~ 2016년 12월 28일)
* 인명진 (비상대책위원장, 2016년 12월 29일 ~ 2017년 2월 13일)
* 황우여 (대표최고위원, 2012년 5월 15일 ~ 2014년 5월 14일)
* 이완구 (비상대책위원장, 2014년 5월 15일 ~ 2014년 7월 13일)
* 김무성 (대표최고위원, 2014년 7월 14일 ~ 2016년 4월 14일)
* 원유철 (대표최고위원 권한대행, 2016년 4월 14일 ~ 2016년 5월 10일)
* 정진석 (대표최고위원 권한대행, 2016년 5월 11일 ~ 2016년 6월 1일)
* 김희옥 (혁신비상대책위원장, 2016년 6월 2일 ~ 2016년 8월 9일)
* 이정현 (대표, 2016년 8월 9일 ~ 2016년 12월 16일)
* 정우택 (대표 권한대행, 2016년 12월 16일 ~ 2016년 12월 28일)
* 인명진 (비상대책위원장, 2016년 12월 29일 ~ 2017년 2월 13일)
4.5. 자유한국당
2016년 새누리당이 20대 총선에서 참패한 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충격으로 분당 사태가 일어났고, 2017년 자유한국당으로 당명을 바꿨다. 2020년 중도·보수 대통합론에 따라서 바른정당의 후신인 새로운보수당과 전진당 그리고 2개 창준위 등 개별합류한 정치인들과 함께 미래통합당으로 신설합당하였다. 해당 항목 참조.
- 대표:
4.6. 미래통합당
2020년 2월 17일 지난 분당 사태 이후 분열되었던 보수정당들이 다시금 중도·보수 통합의 기치를 내걸고 통합을 추진함에 따라 자유한국당, 새로운보수당, 전진당의 원내 보수정당과 2개 창준위 등을 끌여들여 신설합당의 형식으로 창당한 보수정당이다. 2020년 9월 2일 국민의힘으로 당명을 교체했다. 해당 항목 참조.
- 대표:
4.7. 국민의힘
대한민국의 현 집권 여당이다. 주류 보수정당인 민주자유당-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의 계보를 계승했다.
- 대표:
-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 2020년 9월 2일 ~ 2021년 4월 8일)
- 주호영 (권한대행, 2021년 4월 8일 ~ 2021년 4월 30일)
- 김기현 (권한대행, 2021년 4월 30일 ~ 2021년 6월 11일)
- 이준석 (대표, 2021년 6월 11일 ~ 2022년 8월 9일)[11]
- 권성동 (직무대행, 2022년 7월 8일 ~ 2022년 8월 9일)
- 주호영 (비상대책위원장, 2022년 8월 9일 ~ 2022년 8월 26일)[직무정지]
- 권성동 (직무대행/권한대행, 2022년 8월 26일 ~ 2022년 9월 8일)
-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 2022년 9월 8일 ~ 2023년 3월 8일)
- 김기현 (대표, 2023년 3월 8일 ~ 2023년 12월 13일)
- 윤재옥 (직무대행/권한대행, 2023년 12월 13일 ~ 2023년 12월 26일)
-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 2023년 12월 26일 ~ 2024년 4월 11일)
- 윤재옥 (직무대행/권한대행, 2023년 4월 11일 ~ 2024년 5월 2일)
- 황우여 (비상대책위원장, 2024년 5월 2일 ~ 2024년 7월23일)
- 한동훈 (대표, 2024년 7월 23일 ~ 현재)
5. 역대 당대표
총재 및 대표 | ||||
{{{#!wiki style="margin: -0px -10px -5px; min-height: 26px;" {{{#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373A3C,#DDD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총재 | |||
<rowcolor=#003990,#0070bb> 제1·2대 노태우 |
제3·4대 김영삼 |
|||
대표최고위원 및 대표위원 | ||||
<rowcolor=#003990,#0070bb> 초대 김영삼 |
제2대 김종필 |
제3대 이춘구 |
제4대 김윤환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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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재 | |||||
<rowcolor=#003990> 초대 김영삼 |
제2대 이회창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대표위원 | |||
<rowcolor=#003990> 초대 김윤환 |
제2대 이홍구 |
제3대 이회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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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003990> 권한대행 이만섭 |
제4대 이회창 |
제5대 이한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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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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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재와 대표위원 병행 | |||||||||
초대 총재 조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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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대표위원 이한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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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재 | ||||||||||
권한대행 이기택 |
2대 이회창 |
권한대행 강창성 |
3대 이회창 |
권한대행 박관용 |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대표최고위원 | |||||||||
2대 서청원 |
권한대행 박희태 |
3대 최병렬 |
4대 박근혜 |
|||||||
권한대행 김덕룡 |
5대 박근혜 |
권한대행 김영선 |
6대 강재섭 |
|||||||
7대 박희태 |
8대 정몽준 |
9대 안상수 |
비대위 정의화 |
|||||||
10대 홍준표 |
권한대행 나경원 |
권한대행 황우여 |
비대위 박근혜 |
|||||||
{{{#!wiki style="display: inline-table; width: 10%; text-align: left" |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rowcolor=#C9252B> 비대위 박근혜 |
초대 황우여 |
비대위 이완구 |
제2대 김무성 권한대행 원유철 → 정진석 |
|
<rowcolor=#C9252B> 비대위 김희옥 |
제3대 이정현 권한대행 정우택 |
비대위 인명진 |
|||
}}}}}}}}}}}}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ed6d00 0%, #FF0000 30%, #c8171e 50%)"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rowcolor=#c8171e> 비대위 인명진 권한대행 정우택 |
초대 홍준표 권한대행 김성태 |
비대위 김병준 |
제2대 황교안 |
}}}}}}}}}}}}}}}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left, #EF426F, #EF426F);"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초대 황교안 권한대행 심재철 → 주호영 |
비대위 김종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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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대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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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225deg, #00b5e2 21.8px, transparent 21.8px), linear-gradient(315deg, #ffffff 50.5px, transparent 50.5px)"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word-break: keep-all"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비대위 정진석 |
||||
비대위 황우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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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래통합당 대표 ◀ 국민의당 대표 ◀ 시대전환 대표 ◀ 국민의미래 대표 |
}}}}}}}}}}}} |
[1]
이때 바른미래당에 잔류하고 민생당에 남은 바른정당계 인사들도 있다. 이들도 현재는 대부분 국민의힘에 합류한 상태다.
[2]
참고로 군주정과 교회 그리고 미국 공화당의 상징색은 빨간색이고 흰색과 파란색은
보수주의의 상징색이다. 흰색은 근대 이전 보수주의를 상징하던 색이었고 파란색은 근대 이후부터 보수주의를 상징한 색이었다.
[3]
물론 신한국당에 남은 민정계 인사들도 많다.
[4]
청계천 복원, 교통체계 개편 등의 서울시장 당시 남겼던 업적과 당시 경제 위기로
현대그룹 CEO 이력이 있었던 이명박은 경제 부흥을 열망하던 중도보수/중도층의 성원을 얻었다.
[5]
박정희 前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는 17대 총선 당시 한나라당 대표를 지내며 천막당사 등의 전략을 써서 총선에서의 선전을 이끌어냈고,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및
2006년 재보궐선거의 연전연승를 이끈 주역으로 평가받아 영남권 보수층 및 '박사모'로 일컫는 극렬지지자의 열렬한 성원을 받았다.
[6]
2016년 1~2월까지도 진보성향인
한겨레 등의 언론 보도를 보면 새누리당이 180석 이상 차지해
일본의 자민당처럼 1.5당 체제가 도래하는 것이 아니냐면서 불길해하던 기사가 다수 나오고는 했다.
[7]
2015년 말까지 새정치민주연합의 내분과 그에 대한 대중들의 외면 양상, 그 이후 새정치민주연합의 분열로 민주당계가 다수가 되리라는 입장은 아무도 없었으나, 더불어민주당의 문재인 당시 대표의 인재 영입과 이후 김종인 비대위 체제 출범, 그리고 국민의당의 안철수발 제3정당에 대한 기대감과
안철수에 대한 새로움이 여권인 새누리당 공천 파동과 극명히 대조되었고, 선거 결과가 나오고 범야권에 재도약의 기회를 대중에게 얻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8]
표차는 역대 최다이기는 하지만, 야권 후보의 분열로 득표율만 봤을때는 41%로 김영삼 - 김대중 前 대통령과 비슷한 수준이다.
[9]
보수 계열 무소속 당선자 포함 시.
[10]
단순히 여당:범 야당의 의석수를 숫적으로 비교하면 <여당 103석:야당 합계 189석>이던 21대 총선에 비해 <여당 108석:야당 합계 192석>인 22대 총선 사이에 별 차이가 없어보인다. 그러나 21대 국회에서는 친 보수정당 성향이 강한 제3지대 정당인
국민의당이 그나마 3석을 차지했고, 대체로 친 민주당 성향을 드러낼때가 많았지만 종종 민주당과도 대립각을 세우던 진보정당인
정의당 역시 6석을 가지고 있었으며, 무소속 당선자 5명 중 4명은 보수계 후보이기까지 했다. 즉 진영 단위로 보면 범보수 진영의 의석은 103+3+4=110석이었고 반대로 범진보 진영의 의석은 일단 180+3+1석에 반드시 민주당 편을 들 것이라는 보장은 없는(민주당의 입장에서 협력을 받아내기 위해서는 뭔가 다른 조건을 보상으로 제시해야 할 때가 많은) 정의당 6석이 있었던 것. 반면 22대 국회에서는 진보정당(정의당)보다 친 민주당 성향이 더 강하고, 반 윤석열 성향은 훨씬 강경한
조국혁신당이 원내 3당의 지위를 차지했고, 그나마 범 보수계 정당인 개혁신당조차도 반 윤석열 정권 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즉 야당 의석 192석 전부가 사실상 반 윤석열 정부/반 국민의힘 연합을 구축하기 쉬운 상황이 조성되었다는 점에서 질적으로는 21대 총선보다 훨씬 심각한 패배라 할 수 있다.
[11]
2022년 7월 8일
당원권 정지 6개월 징계 처분에 따른 직무정지, 2022년 8월 9일 비상대책위원회 수립에 따른 자동 해임
[직무정지]
2022년 8월 26일 이준석 전 대표가 국민의힘과 주호영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낸 비상대책위원회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이 일부 인용함에 따라 본안 판결 확정시까지 직무정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