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둔산 관련 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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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충청남도의
도립공원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 align=center><table width=320><table bordercolor=#ffffff> 대둔산 大芚山 Daedunsan |
}}} | |||
위치 |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충청남도 논산시, 금산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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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 878 m (마천대) | ||||
산맥 | 노령산맥 금남정맥 | ||||
좌표 |
북위 36° 07′ 12″ 동경 127° 19′ 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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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적 |
72.64㎢ (전북: 38.1㎢ 충남: 24.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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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성사진 | |||||
대둔산 도립공원 | |||||
지정일 |
전북: 1977년 3월 충남: 1980년 5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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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주체 | 전북특별자치도, 충청남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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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과 충청남도 논산시, 금산군에 걸쳐 있는 산. 높이는 878m.
2. 상세
전북특별자치도와 충청남도에 걸쳐 있다보니 산은 하나인데 전북과 충남 모두 각자의 도립공원으로 지정해 버렸다.[1] 비슷하게 두 지역에 걸쳐있는 팔공산국립공원은 하나로 통합되어 있어서 비교가 된다.산세가 비교적 큰 편이며, 기암괴석과 계곡과 폭포가 있고 사찰 등의 볼거리 또한 있다. 정상인 마천대를 비롯하여 사방으로 뻗은 바위능선들이 있는데, 거기에 수목이 어우러져 경관이 뛰어나다. 최고봉인 마천대(摩天臺)는 문지를 마(摩), 하늘 천(天)을 써서 "하늘에 닿는다"는 뜻으로 원효대사가 붙인 이름이라 한다. 날씨가 좋으면 마천대에서 먼 북쪽으로는 계룡산과 대전 시가지가, 먼 남동쪽으로 진안군 마이산이, 먼 서쪽으로 부안군 변산이 보인다.
낙조대(落照臺)에 오르면 멋진 일출과 일몰을 볼 수 있다. 남쪽으로는 대둔산 정상인 마천대가 보인다. 이곳에서 비박도 많이들 하는 듯 하다.
케이블카가 있다. 정상까지 가는 건 아니고 구름다리 있는데까지 간다. 정상에 가려면 케이블카를 내려서도 한 700m 거리는 걸어야 한다. 케이블카 내리는 곳에 전망대가 있어 구경하기 좋다. 단풍철 등 성수기 주말에는 2시간 정도 기다려야 하기도 한다. 전북과 충남에 걸친 산이지만 케이블카가 있는 곳은 전북 완주군 쪽이다. 길이 927 m, 소요시간은 편도 약 6분. 2024년 1월 기준으로 성인 왕복 15,000원, 편도 12,000원.
이 산에서 유명한 것이 금강구름다리인데 이는 임금바위와 입석대 사이를 가로질러 놓은 다리다.[2] 높이 81m, 길이 50m. 이 다리를 지나서 정상으로 가다 보면 가파른 계단이 나온다. 삼선계단이라 하는 유명한 계단. 경사가 51도라 한다. 다리나 계단을 작게 만들어서 모두 일방통행으로 운용되어 하산 시에는 쓸 수 없다.
주요 사찰로는 태고사(太古寺)가 있고, 안심사(安心寺), 약사(藥寺) 등도 있다. 대둔산에 있는 건 아니지만 가까운 곳에 화암사(花巖寺)가 있다. 화암사에는 보물 제662호인 우화루(雨花樓)가 있고, 보물 제663호였다가 국보 제316호로 업그레이드(!)된 극락전이 있다. 그 밖에 명부전·대불각 등이 있다.
3. 대둔산 전투
우금치 전투가 그렇게 막을 내리고 나서 전봉준, 김개남이 체포된 후 더 이상 기반을 잃은 동학 농민군의 잔당은 동학의 접주급 이상 지도자 25명이 마지막 항쟁을 결의하고 대둔산으로 피신하여 산세가 험난한 정상부에 요새를 설치한다. 1894년 12월 중순부터 약 석 달여간 관군 및 일본군과 치열한 항전을 벌이다가 1895년 2월 18일 포로로 붙잡힌 어린 소년 1명을 제외하고 전원이 장렬히 전사한 대둔산 전투가 있었다.
1894년 12월 경, 이곳에 함께 들어간 동학 농민군 지도부는 최학연(崔鶴淵)과 최공우(崔公雨), 김재순(金在醇), 김석순(金石醇), 진수환(陳秀煥), 강태종(姜泰鍾), 김치삼(金致三), 장문화(張文化), 김태경(金台景), 정옥남(鄭玉男), 고판광(高判光), 송인업(宋仁業) 등의 간부급 지도자와 가족들을 포함해서 30여 명이 되어 험난한 대둔산에 조그마한 진지를 짓고 끝까지 최후의 농성을 벌이게 된다. 마침내 1895년 1월 9일(양력 2월 3일)에 충청도 감영은 대둔산에 입산한 동학 농민군을 토벌하기 위하여 관군을 출동시켰다. 지휘관인 양호소모사 문석봉(文錫鳳)은 양총(洋銃)[3]으로 무장한 40여 명의 영군을 이끌고 10일에 터골(基洞)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험준한 바위 봉우리로 이루어 진 대둔산 산세를 보고 접근하여 공격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조방장(助防將) 김학립(金鶴立)으로 하여금 미륵 바위 서남쪽 100m 떨어진 계곡 너머 능선에서 몇 차례 사격하는 것을 끝으로 진산으로 철수하고 말았다. 그 당시 주한 일본 공사관 기록에는 "터골(基洞)에 이르자 전주에서 파견된 한병(韓兵)(사관 1명, 병졸 30명)이 대포를 산 위로 끌어올려 적의 소굴을 향해 줄곧 포격하고 있었다. 대포가 1,500m나 떨어져 있는 데다 200~300m 아래쪽에서 포격하니 포탄은 적의 소굴 훨씬 전방에 떨어져 한 발도 명중하지 않았다." 라고 기록되어 있어서, 험준한 지형으로 인해서 쉽사리 동학 농민군 공략이 여의치 않았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1월 23일(양력 2월 17일)에 신식 무기로 무장한 강화 심영병(沁營兵)과 일본군 3개 분대[4]가 터골에 도착하여 1895년 1월 24일(양력 2월 18일) 아침 공격을 개시하니 상황은 급박해졌다. 이 전투의 기록을 담은 대둔산 부근 전투 상보에 의하면 동학 농민군은 후방에서 기습한 관군과 일본군을 막지 못해 처참한 최후를 맞았다고 전해진다. 그 당시 이들을 이끌던 동학의 접주인 김석순은 일본군의 포로가 되는것을 완강히 거부하고 1세 ~ 2세가 된 그의 갓난아기를 안고 투신하여 자결을 하였고, 험난한 산중의 뒤에서 기습을 할 줄 모르고 앞을 중심으로 방어하던 농민군들도 우왕좌왕하다가 결국 전원이 전사하고 말았다.
2019년에 방송된 녹두꽃 46회에서 아주 간략하게 언급되는데, 극 초반부에 버들이(노행하 분)의 입으로 지금 살아남은 자들이 대둔산에 집결하여 모여있다고 언급했다. 중반부에는 백이현( 윤시윤 분)과 송자인( 한예리 분)의 대화로 인해서 대둔산 싸움 당시에 아이 한 명만 남기고 다 죽었으며, 백이현이 대둔산에서 가져온 동학군의 유품을 송자인에게 건네주며 "전사한 자들의 시체는 지금쯤이면 아마 모두 태워져 있겠다"는 상태로 상황을 설명하는 것으로 끝난다.
4. 여담
- 일반 등산객들은 10월, 11월에 단풍 구경하러 가장 많이 찾는다. 꽃피는 봄이나 눈내리는 겨울에도 경치가 좋아서, 사진작가들이 자주 찾는 곳이기도 하다. 다만 여름이 되면, 녹색의 나무로 울창한 한국의 많은 산들과 비슷해져서, 지역 등산객을 제외하고는 외부 관광 등반객들이 드문편.
- 케이블 카를 타면 정상 근처까지 1시간 정도면 오를 수 있다.
- 수도권에서 대둔산 정문까지 대중교통편은 기차를 타고 대전역이나 서대전역에서 내린 후 201번, 202번, 급행1번, 2002번 등등의 버스를 이용하여[5] '버드내아파트' 정류장까지 간 다음[6], 육교를 건너(또는 서남부터미널까지 도보 후) 34번 버스를 타고 종점인 대둔산휴게소[7]에서 내리는 것이 가장 편한 루트이다. 단, 배차간격이 45분 정도로 광역시 버스치고는 길기 때문에[8] 시간표를 숙지하는 것이 좋고, 버스가 대둔산 정문에서 1.6km 가량 떨어진 대둔산휴게소까지만 들어가기 때문에 내려서 정문까지 20분가량 걸어가야 한다.[9][10][11]
- 만약 대둔산 인근 지역에서 숙박을 원할 경우 대둔산 인근에 대둔산호텔이라는 시설이 있다. 대둔산 주변에 거의 유일하게 존재하다시피하는 3성급 호텔인데 내부시설이 깔끔하고 스파와 식당이 구비되어있다. 그리고 높은 시설 퀄리티에 비해 가격도 주변 펜션같은 숙박시설보다 저렴한 편이다. 또한 숙박시 대둔산 케이블카를 할인된 가격에 탈 수 있다. 하지만 사이비종교인 JMS의 자본과 깊이 연관이 되어있는데 실제로 근무하는 사람들 중에 JMS 신도가 존재 한다고 알려져 있다.( 현대종교 기사) 호텔 내외부에서는 딱히 종교적인 색채는 없으며 포교같은 종교활동도 없기 때문에 큰 문제없이 투숙할수 있다. 그럼에도 대둔산호텔 외에 다른 숙박시설을 알아보고자 한다면 대둔산 아래 계곡쪽에 있는 펜션들이나 불편하더라도 대전광역시나 전주시로 이동해서 다른 곳을 이용하자.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대전 버스 34 등의 시간표를 숙지하여 이동 계획을 짜는 것이 좋다.
[1]
전라북도는
1977년,
충청남도는
1980년에 지정.
[2]
1977년 최초 건설되었고,
1985년,
2021년 두차례 다시 건설되었다.
[3]
서양에서 들어온 총기를 이르는 말인데, 그 당시 사용한 총기는 일본군에게 지급받은 신무기인 영국제 후장식
스나이더 소총으로 무장하였다.
[4]
양측 합쳐서 50여 명. 이들은 새벽부터 등산용 사다리와 밧줄 등을 이용하여 험난한 산길을 줄에 의지하여 무려 4시간 반 동안 등반하였다고 한다. 그 결과 방어가 허술한 뒤쪽 평지에 도착하여 기습에 성공하였다. 당시 일본군 3개 분대는 본국에서 자체 제작한
무라타 소총을 사용하고, 심영병들은 1차 공격시 사용한 스나이더를 사용하였다.
[5]
버스정류장을 잘 찾아야 하는데,
대전역의 경우 정류장이 많으니 주의해야 하고,
서대전역의 경우 역광장에서 5분정도 걸어나와 큰길로 가서 '서대전역네거리' 정류장에서 타야한다.
[6]
세종시에서 B1 버스를 타고 간다면, 한밭자이아파트 정류장에서 314번을 타고 산성동에서 하차하면 그자리에서 34번을 탈 수가 있다.
[7]
이 휴게소 앞에 있는 아치가
충청남도
금산군과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의 경계이다. 대전 34번 버스는
금산군 대둔산휴게소가 종점이지만, 완주 300번 버스는
완주군 대둔산휴게소가 회차지점이다.
[8]
그래도 대전 외곽버스 치고는 자주다니는 편이다. 보통 1시간 간격이며 1일 5~6회 수준의 배차로 다니는 경우도 있다.
[9]
걸어가지 않으려면, 대둔산휴게소에서 고산-대둔산 간 버스로 갈아 타야 하는데 코로나19로 인한 감차 전에도 얼마 없었지만
2021년 기준 코로나19 감차 이후 하루 7회에 불과하다!
전주 등
호남권 방향에서 오는 경우
전주역 - 고산터미널(
완주군 고산면) - 대둔산휴게소 루트를 따라야 하는데, 전주 - 고산 간 버스는 배차간격이 30분으로 양호한 535번을 타고 가면 되나, 고산 - 대둔산 간 버스는 상술한 대로 대전 버스 34번보다 훨씬 적기 때문에(1일 8회 뿐이며 과거에는 승객이 적을경우 임의결행이나 단축을 하기도 하는등 파행운행도 심각하였다.),
수도권에서는 전주 루트를 이용하기가 쉽지 않다.
[10]
과거엔 서대전터미널에서 대둔산 정문에 있는 터미널까지 금남고속 시외버스가 다니기도 하였다. 지금은 폐선
[11]
최후로 남아있는
안전여객의 군산 - 금산간 완행시외버스는
2018년 7월 1일 부로 폐지되었다. 군산에서 금산방면 막차의 경우 등산객이 일부 타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