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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3 23:22:53

김진우(1983)/선수 경력

파일:상위 문서 아이콘.svg   상위 문서: 김진우(1983)

1. 아마추어 시절2. 프로 시절
2.1. 2002~2007 시즌2.2. 3년간의 방황, 그리고 재기
2.2.1. 방황의 원인
2.3. 2011 시즌
2.3.1. 포스트시즌
2.4. 2012 시즌
2.4.1. 시즌 전2.4.2. 시즌
2.5. 2013 시즌2.6. 2014 시즌2.7. 2015 시즌2.8. 2016 시즌2.9. 2017 시즌2.10. 2018 시즌 - 방출
3. 질롱 코리아 시절
3.1. 2018-19시즌
4. 멕시칸 리그(LMB) 시절

1. 아마추어 시절

파일:진흥고 김진우.jpg
2001년(고3)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당시의 모습이다. 이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파일:해태 김진우.jpg
해태 타이거즈의 지명을 받은 직후. 유일하게 해태 유니폼을 입고 찍은 사진이다.

광주진흥고 재학 당시부터 굉장한 유망주였다.

2000년 고2때 봉황대기에서 순천효천고에게 결승전 승리를 거두며 우승을 차지했고, 졸업반인 2001년 대통령배에서도 성남서고등학교[1]를 꺾고 우승하는 데에 일조했다. 그러나 바로 다음 대회인 청룡기에서 동갑내기 류제국, 신입생 이용규 최진행이 포진한 덕수정보고에게 패하며 2관왕 달성은 실패했다.[2] 같은 해 전국체전에서는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3]

김진우의 진흥고 에이스 시절 하이라이트

서울 덕수정보고 류제국과 더불어 당시 초고교급 투수 쌍두마차로 메이저리그에서도 스카우트 제의[4]가 들어왔을 정도지만 아래에 서술한 이유 때문에 KIA와 계약하게 된다. 당시로써는 고졸 신인 최고 계약금이었던 7억원을 받았다.[5] 이는 한기주의 10억 계약 다음으로 많은 액수의 계약이며, 단순 금액으로만 봤을 때는 임선동, 유창식과 동급이다.[6] 류제국과 더불어서 선동열과 최동원 시대가 돌아오는게 아니냐는 설레발스런 평가를 받을 정도였다.

2. 프로 시절

2.1. 2002~2007 시즌

파일:20020528224626238.jpg

지명은 KIA의 전신인 해태 타이거즈의 지명을 받았으나, 그해 8월부로 KIA 타이거즈로 구단명이 바뀌며 7억이라는 거액의 계약금을 받고 입단, 입단 당시부터 제 2의 선동열이 나타났다는 큰 기대를 받게 된다. 여담으로 이 시절 타이거즈 구단이 2001년 여름 현대자동차그룹에 인수되어 KIA 타이거즈로 구단명이 바뀐 초창기였는데, 당시 KIA 프런트에서는 해태 잔재 지우기의 일환으로 제 2의 선동열로 불렸던 신인 김진우에게 이미 해태 시절부터 영구결번이 되어 있던 선동열의 등번호 18번을 결번 해지시키고 김진우에게 주려고 했다.[7] 이에 팬들의 반발로 선동열의 18번은 KIA에서도 영구결번으로 남게 되었으며[8] 결국 2002년 시즌 직전 등번호 파동 끝에 김진우는 등번호 41번을 받게 된다.

루키 시즌부터 선발진에 들며 평균자책점은 높은 편이었으나[9]데뷔전에서 프로 1년차 신인이 6이닝 7피안타 10탈삼진 2실점의 뛰어난 피칭으로 당시 역대 최초로 데뷔전 무사사구 선발승을 거두는 기록도 세우면서 화려하게 데뷔전을 장식했고, 12승과 탈삼진 타이틀을 따내는 등 돈값을 톡톡히 하는 모습을 보였다. 당연히 그해 가을 열린 부산 아시안게임 대표팀 엔트리에 포함되었으며, 금메달을 따내며 병역 특례 또한 받았다. 고졸 신인으로써 충분히 신인왕을 노릴 만한 성적이었지만, 그해 LG 트윈스와의 플레이오프에서의 부진과 이 해에 대졸 신인이었던 현대의 조용준이 구원쪽에서 활약이 엄청났기 때문에 신인왕은 아쉽게 놓쳤다. 2003년에도 11승을 기록하며 계약금만큼은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활약을 했다. 2003년 시즌 초 광주 시내의 한 술집에서의 전남대생들과 폭력사태에 연루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처벌 차원에서 2군에서 1달간 머물러야 했음에도 11승과 탈삼진 146개로 전체 2위 완봉승 2번으로 전체 1위를 차지했다. 게다가 160여이닝을 소화하면서 당시 KIA의 철벽 선발의 에이스로 군림했다. 시즌 전체를 뛰어도 10승과 100탈삼진을 거두지 못하는 선발투수들이 많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이는 엄청난 활약이다. 여담으로 8월 8일 두산과의 경기에서 11이닝 150구를 기록했지만 노디시전이 됐다.

그런데 2004년 김성한 전 감독의 프로젝트였던 국토대장정 비스무리한 훈련을 하며[10] 무릎이 아작나 전반기에 뛰지 못하게 되었고, 주로 불펜으로 뛰며 7승에 그치게 된다.

2005년도에는 6승 10패 평균자책점 3.91을 기록. 언뜻 보면 별로인 성적 같지만, 저 승도 대부분이 완투(완봉 1승 포함)였다. 물론 완투패도 있었고 2005시즌 기아 불펜진은 이강철 조규제의 노쇠화로 인한 성적하락[11], 유동훈의 병역비리 연루로 인한 전력이탈, 신용운의 부상과 부진으로 화염방사진이 따로 없었다. 게다가 김기아 타선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한때도 이 때였다.

2006년에는 어깨 부상을 안고서도 3년만에 10승을 거두며 팀의 4강행을 이끌었지만, 2007년에 갑작스럽게 제구가 잡히지 못하면서 스티브 블래스 증후군을 의심받기도 했다. 사실 어깨부상이 있었음에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혹사당한 게 결국 큰 불상사를 초래했다.

2.2. 3년간의 방황, 그리고 재기

2007년, 부진에 난조를 계속 보이던 김진우는 시즌이 한창이던 7월 중 2군으로 내려갔고, 얼마 안 되어 2군 훈련에 불참한 것을 시작으로 연락이 두절되는 등 소속팀을 무단이탈했다. 결국 2007년 8월 1일 소속팀 KIA 타이거즈로부터 임의탈퇴로 공시되고 만다.

임의탈퇴 이후에도 방황은 이어졌는데, 심지어는 예비군 훈련 안 갔다고 지명수배령까지 내려졌다.[12] 2009년 초 유승안 감독의 주선으로 경찰청 야구단 훈련에 합류해 몸을 만들기도 했다. 비슷한 시기 임의탈퇴 해제 후 복귀시킨다는 이야기가 나왔으나 김진우 쪽에서 KIA 구단 관계자와 만나자는 약속을 일방적으로 어겼고 연락을 끊는 바람에 또 물거품이 되었다.

오랜 방황을 거친 끝에 2009년 말, KIA 의 우승을 보고 다시금 야구에 대한 열정이 되살아났는지, KIA 구단에 다시 한 번 복귀하겠다는 의사를 보였다. 하지만 무단이탈한 전력이 있는데다가 전에도 복귀 의사를 드러내놓고 약속을 파토낸 적이 있어서인지 당장 임의탈퇴 해제는 되지 않았고, 대신 구단의 주선으로 2010년 일본 독립리그 야구단인 코리아 해치 야구단에 입단했다. 전 KIA 코치였던 박철우 감독이 있는 이 곳에서 다시 기본을 닦아 프로에 입단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던 듯하다. 그러나 이 팀이 몹시 심각한 재정난을 겪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13] 2010년 6월 코리아 해치 야구단을 나와 한국으로 귀국, KIA 구단의 배려로 동강대에서 훈련을 수행했다.

본인은 줄곧 KIA 복귀를 강력히 희망했다고 한다. 몰래 야구장에 와서 2회부터 8회까지 KIA 경기를 보고 나갔다고. 2011년 정도면 2군에서 뛸 만큼의 수준은 될 것 같다고 했으며, 일단 이전과는 달리 착실하게 훈련을 하는 모습을 보였다.

2010년 8월 29일 드디어 팀 훈련에 합류했다! 조범현 감독과의 면담을 거쳐 자체적으로 만든 3군에 일단 합류하기로 한 것. 8월 30일에는 무등구장을 찾아 선수단에게 그간의 행동에 용서를 구했다. 다만 아직은 임의탈퇴 신분이기 때문에 선수단은 일단 두고 보겠다면서 김진우를 받아주기로 한 듯. 집도 경기장 근처로 옮겼다. 구단에서는 훈련에 대한 열의와 사생활까지 두루 보고 2011년 시즌 전에 임의탈퇴를 풀지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일본의 독립리그에서 뛰었을 때 2천엔에 1시간 동안 무제한으로 먹을 수 있는 회전 초밥집에 가서 130접시나 먹었다고 한다.[14][15]

몸 상태는 완벽한 상태에서 한 80% 수준이라고 하는데... 근력이나 기타 신체능력이 완벽한 상태의 다른 선수들보다 더 좋다고 한다. 아무리 좋은 선수라도 3년 가까이 실전은커녕 체계적인 훈련도 하지 않던 사람의 몸상태가 이렇다는 건 그야말로 축복받은 몸이라는 이야기.

2.2.1. 방황의 원인

원래 김진우는 고등학교 졸업 후 메이저리그 진출을 고려했다. 박명환야구TV에 출연해 이 부분에 대한 썰을 풀었는데 보스턴 레드삭스, 시애틀 매리너스, LA 다저스 등 4곳 정도의 MLB팀에서 오퍼가 왔고 가장 큰 금액을 제시한[16] 시애틀이 마음에 들어 아버지와 논의를 해서 거의 계약성사 직전까지 갔었다. 그러나 외국에 외아들을 혼자 보내서 고생시키는 걸 원치 않아서 펑펑 우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곤 고민 끝에 정중히 거절하고 한국에 남았다. 야구인으로서 아주 큰 기회나 마찬가지인데 이걸 거절할 정도로 어머니와 김진우간의 관계가 깊었다는 증거다.

이후 고향팀인 해태 타이거즈의 1차 지명을 받고 계약을 한 뒤, 받은 계약금으로 부모를 편하게 모시고 싶어 집을 새로 짓게 되었는데 공사현장에서 어머니가 추락사하는 비극을 겪게 된다. 이로 인해 야구에 대한 동기부여를 잃고 멘탈에 문제가 생기게 되면서 여러 번 탈선을 하게 되었고, 그 결과 팬들에게 엄청나게 욕을 얻어먹었다. 오죽했으면 당시 희대의 풍운아였던 노장진과 어울려다닌다고 제2의 노장진이라는 소리까지 들었다.[17]

이대호, 최준석 등 집안 사정이 좋지 못해도 묵묵히 야구 열심히 하는 선수들도 없는 건 아니기 때문에 팬들은 이제 좀 정신 차리고 야구에만 전념하라고 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단순히 그렇게만 말하기에는 확실히 심한 충격이었던 건 부정하기 힘들다. 어떤 이에게는 남들도 겪는 고통이라고 단순히 말하기엔 너무 무거운 고통일 수도 있으며, 특히 그의 섬세하고 예민한 성격에 더 큰 영향을 줬을 수도 있다[18]. 거기다 남들도 겪는 고통이라고는 하나, 갓 스무살이 된 나이에 어머니가 병도 아닌 갑작스러운 사고로 사망했다는 점에서 김진우가 겪은 고통이 남들도 다 겪는 고통보다 훨씬 혹독한 고통인 건 사실이다. 또한 팀의 사정이 녹록지 않았던 부분도 감안해 줄 필요는 있을 것 같다. 사실 은퇴하고 잠적했어도 무리가 없는 충격으로 감안해 줄 필요도 있다고 보기도 한다.

2.3. 2011 시즌

선수평가에 신중하다는 평인 조범현 감독이 2011년이 기대된다라고 평가했을 정도면, 상당히 열심히 훈련을 했고 몸 상태나 구위도 꽤 끌어올린 것으로 예상된다. 당연히 예전처럼 사고도 안 쳤다. 김진우 본인의 인터뷰에 의하면 패스트볼 구속은 정확히 측정해보지는 않았지만 김진우의 공을 받아본 포수의 말로는 140대 중반은 될 것 같다고. 또한 예전의 결정구였던 커브가 상당히 예리했다고 한다. 부상없이 스프링캠프를 마친다면 선발 한 자리를 낙점받는건 어렵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본인은 불펜에서라도 뛰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20홀드를 목표로 세웠다.

하지만 무릎 통증문제로 결국 재활군으로 내려가 귀국했다. 딱히 큰 문제가 있다기 보다는 3년 동안 훈련을 하지 않다가 갑자기 열심히 하다보니 몸에 과부하가 걸렸다. 일단 조범현 감독은 시즌 구상에서 김진우와 한기주는 제외해놓고 마운드를 꾸렸지만, 승부가 치열해질 것으로 보이는 여름시즌까지 재활을 마치고 지원군으로 가세시킨다는 시나리오도 준비했다.

4월 19일 무등 야구장에서 모교인 진흥고를 상대로 3군 연습경기에 등판했다. 고딩에게 홈런을 맞는 굴욕을 맛보긴 했지만 5이닝 3피안타 1실점했고 최고구속은 145km까지 나왔다고 한다. 던지는 것은 문제가 없지만 무릎 통증 때문에 러닝을 못해서 스태미너가 딸린다고 밝혔다.

4월 28일 동강대를 상대로 3군 연습경기에 등판했다. 5이닝 1피안타 1볼넷 7탈삼진 무실점으로 호투했고 직구 구속은 146km까지 나왔다고 한다. 이날 경기를 직접 지켜본 조범현 감독은 일단 몸상태를 지켜보고 복귀해도 될것 같으면 구단에 임의탈퇴 해제를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2군에서 프로선수들과 실전을 치르면서 실전감각을 회복시키게 하려는 수순이다.

4월 30일 임의탈퇴가 해제되어 2군에 합류하였다.

5월 3일 퓨처스 리그에서 임의탈퇴 해제 이후 첫 실전피칭을 하였다. LG 2군을 상대로 선발출전하여 2와 1/3이닝, 총 투구수 50개, 4피안타, 3볼넷, 2탈삼진, 3실점의 다소 아쉬운 성적을 보였지만, 첫 실전피칭이었고 직구 최고구속이 146km로 준수한 수준이었다. 여기서 그의 당시 피칭 일부를 볼 수 있다. 동영상과 사진

6월 15일 넥센과의 2군 경기에서 3이닝 3실점으로 패전투수가 되었다.

6월 17일 드디어 1군 엔트리에 합류, 대삼성전 17-1로 크게 이기는 상황에서 8회 등판하여 1이닝동안 첫타자 이영욱을 삼진으로 잡아냈다. 결정구는 주무기인 커브. 다음 타자를 내야땅볼로 잡아내고 김상수에게 내야안타를 맞았으나 강명구를 삼진으로 잡아내며 이닝 종료. 덕아웃에 들어올때 서재응이 가장 먼저 뛰어나와 포옹을 해줬다. 최고구속은 150km였다

그리고 경기가 끝난후 관중석의 팬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복귀인사를 했으며 여자친구와 같이 눈물을 흘리는 장면도 포착됐다. 참고로 김진우는 사실 2004년 어린 나이에 결혼했다가 자신의 방황 때문에 이혼했으며, 전 부인과의 사이에 아들이 있다.[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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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과 2013년 12월 8일에 결혼 예정이라고 한다. 앞서 서술한 그 여자친구가 이 인물과 동일인물이다.

7월 6일 넥센전에서 유선정을 삼진으로 잡고 세이브를 기록한다.

2군에 내려가서도 아무 소식이 없더니, 발바닥이 찢어지는 부상을 당했단다. 팬들은 또 다시 사건에 연루된 줄 알고 걱정했으나, 그냥 휴식 중 다친 듯하다.

9월 14일날 2군경기에 출장해서 2.1이닝 1피안타 무실점을 기록하였다.

9월 29일 두산전에 등판해서 4타자를 상대로 무실점 3k를 기록하였다. 커브는 아직 건재한것으로 보이며 직구 구위회복만 된다면 더 좋은 활약을 할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2.3.1. 포스트시즌

시리즈 전적 1승 1패인 2011년 10월 11일 광주 무등 야구장에서 열린 SK 와이번스와의 준플레이오프 3차전, 팀이 스코어 2:0으로 지고 있던 6회초 2사 만루 상황에서 4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3⅓이닝 투구수 37개 1피안타 무사사구 3탈삼진 무실점으로 호투했으나 팀이 2:0으로 패하고 말았다.

김진우는 2011년 준플레이오프에서 2경기 4⅓이닝 2피안타 1볼넷 1사구(死球) 5탈삼진 2실점 2자책점 평균자책점 4.15를 기록하였고, 팀은 시리즈 전적 1승 뒤 3연패로 탈락했다.

2.4. 2012 시즌

2.4.1. 시즌 전

새로 부임한 선동열 감독이 김진우를 개조하겠다고 직접 나섰다. 미야자키에서 투구 3000개를 목표로 한다고 한다. 아직까지 이렇다할 기사가 안 나오는 거 봐서는 묵묵히 훈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들리는 소식에 의하면 이번 스프링캠프는 5년만에 완주하겠다고 작정한 상황. 기사 선감독이 제대로 개조만 해준다면 2012 시즌은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만, 어깨 부상으로 인하여 출전이 늦어지게 되었다.

2.4.2. 시즌

4월 15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LG 트윈스의 경기에서 선발로 등판하여 5이닝 84투구수 5피안타 2볼넷 3탈삼진 2실점 2자책점을 기록했다. 스코어 2:2 상황에서 내려왔기 때문에 승패는 기록되지 않았고 팀은 이날 3:5로 패했다.

5월 3일, SK 와이번스와 연장전까지 간 상황에서 끝내기 세리머니를 위해 페트병 두 개를 들고 대기했으나 경기는 무승부로 끝났다. 5월 4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도 같은 상황이 연출되었다. 결국 5월 5일 연장 10회말 1사 만루 상황에서 송산의 타구를 처리하던 2루수 서건창의 송구 미스로 끝내기 타점이 나오면서 임무를 완수했다.

5월 9일 한밭 야구장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전에 선발로 등판하여 프로 9년 후배인 유창식과 대결, 6⅓이닝 112투구수 5피안타 1피홈런 3볼넷 2사구 7탈삼진 1실점 1자책점을 기록했고 팀이 8:1로 승리하여 1,791일만에 승리를 거두었다. 승리 인터뷰에 따르면 상대 타자들이 커브를 노릴 것 같아 패스트볼과 싱커를 즐겨 쓴 것이 주효했다.

7월 4일 팔꿈치 통증으로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되었다. 큰 부상은 아니고 피로 누적으로 염증이 생긴 것으로 보이며, 올스타전이 끝나고 난 시점에서 복귀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가 빠지면서 선발투수 엔트리에 공백이 생겼으나, 때마침 장마 기간 동안 선수단 휴식기가 생기면서 오히려 선발이었던 앤서니 르루가 불펜 알바를 했을 정도였다.

7월 26일 다시 1군에 등록되었다.

7월 27일 무등 야구장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전에서 선발 등판. 6⅓이닝 21타자 86투구수 18타수 5피안타 1볼넷 5탈삼진 1실점 1자책점으로 호투하였으나 불펜이 불을 지르며 팀은 4:1로 패배하였다.

8월 2일 사직 야구장 롯데 자이언츠전에서도 6⅔이닝 27타자 120투구수 24타수 5피안타 3사사구 6탈삼진 1실점 1자책점으로 호투, 이번에는 4:3으로 팀이 승리하며 시즌 5승을 챙겼다.

8월 8일 무등 야구장 넥센 히어로즈전에서는 8이닝 119투구수 1피안타 1사사구 7탈삼진 무실점 무자책점을 기록. 그동안 연마해 왔던 싱킹 패스트볼이 제대로 빛을 발하는 모습을 보였다. 완봉승을 노릴 법도 했지만, 9회 마운드는 최향남이 올라와서 깔끔하게 마무리. 팀은 박기남의 2타점 2루타에 힘입어 0:2로 승리했다.

8월 19일 SK 와이번스전에서 3⅔이닝 무피안타 3볼넷 1사구 5탈삼진 무실점 무자책점으로 호투했으나 도중에 엄지손가락에 물집이 잡혀 교체되고 말았다. 이후 교체된 손영민이 2실점, 진해수가 1실점을 하고 팀 타선은 좀처럼 터지지 않으며 0:3으로 패배.

8월 26일 한밭 야구장 한화 이글스전에서 중계투수로 등판. 2이닝 1피안타 무사사구 무탈삼진 무실점 무자책점으로 호투하였다. 팀은 6:0으로 승리.

9월 2일 한밭 야구장 한화 이글스전에서 선발로 등판. 경기 초반에 몸쪽 제구가 잡히지 않으며 2회말 2연속 몸에 맞는 공을 허용하기도 했으나, 특유의 뛰어난 구위와 갑자기 미친 타선에 힘입어 6이닝 23타자 89투구수 19타수 2피안타 3사사구 7탈삼진 1실점 1자책점으로 호투. 팀은 13:2로 승리했다.

9월 8일 LG 트윈스전에서 선발로 등판. 6.2이닝 101투구수 10피안타 1사사구 3탈삼진 4실점 3자책점으로 QS는 찍었지만 세부지표에선 부진한 모습을 보였으며, 팀은 연장 끝에 4:5로 패배.

9월 14일 광주 무등 야구장에서 롯데 자이언츠와의 더블헤더 1차전에서 선발로 등판. 역시 웬일로 미친 타선에 힘입어 6이닝 106투구수 4피안타 5사사구 3탈삼진 1실점 1자책점으로 호투하였으며, 팀도 10:1로 승리하여 시즌 8승째를 따냈다.

9월 25일 삼성 라이온즈전에서 선발로 등판. 9이닝 130투구수 6피안타 2사사구 6탈삼진 1실점 1자책점을 기록하고, 타선에서는 미치 탈보트를 상대로 5점을 뽑아주며 5:1로 완투승을 거뒀다. 원래 8회말까지 던지고 내려와야 했지만 본인이 완투를 하겠다고 해서 기어코 완투승을 거두었다. 아쉽게도 9회말 박한이의 희생플라이에 한 점을 내주면서, 완봉승은 달성하지 못했다. 하지만 인터뷰에서 "오히려 오늘 완봉을 하지 못했기에 다음 경기에서 더 집중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는 발언을 하며 멘탈 측면에서 더 성숙한 모습을 보였다.

후반기에 들어서면서 성적도 좋아지고[20] 우려하던 멘탈도 성숙한 모습을 보이면서 4강권에서 멀어진 KIA의 희망 중 하나로 떠올랐다. KIA팬들은 이미 김진우를 돌아온 에이스로 인정하고 있다. 이후 윤석민도 9월 23일 서재응의 완봉승과 9월 25일 김진우의 완투승에 자극을 받았는지 9월 26일 8이닝 노히트 노런을 포함한 완봉승을 따냈다.

10월 1일 군산 롯데전에서 다시 9이닝 5피안타 7탈삼진 무사사구 무실점으로 6년만에 10승을 달성했다! 2경기 연속 완투승에 완봉승은 덤. 경기 후 인터뷰에서는 무사사구로 경기를 끝내는 것에 신경을 썼다는 말을 하기도. 이 경기까지 132.2이닝으로 규정이닝에 아웃카운트 딱 하나가 모자랐으나, 10월 6일 광주 삼성전에서 9회에 구원등판해 1이닝을 처리하며 규정이닝을 채웠다.

카스포인트 모멘트에도 선정되는 등 예전의 에이스 기대주만큼의 활약을 보여준 김진우는 2012년 시즌 후 연봉협상에서 1억 1천에 재계약, 다시 억대 연봉 선수로 진입하였다.

2012년 시즌에서의 좋은 활약으로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엔트리에도 들었지만, 12월경 팔꿈치에서 부상이 발견되면서 출전이 불투명해졌다. 대체선수가 시급합니다

2.5. 2013 시즌

팔꿈치 부상으로 WBC 엔트리에서 일찌감치 제외되었고, 팀내에서 계속 훈련에만 매진했다. 팀 사정상 마무리 투수로 돌려지는 게 아니냐는 예상도 나왔지만, 선동열 감독은 앤서니 르루를 일단 마무리로 확정지으면서 2013년에도 역시 선발로 뛰게 되었다. 불펜 투수로 쓰기에는 특유의 이닝이팅 능력이 아깝고, 윤석민이 해외로 진출한다면 실질적인 KIA의 에이스를 맡아야 할 상황이라 그런 결정이 나온 것으로 보인다.

부상으로 인해 2군에서 몇 경기 등판 후 4월 4일에야 1군 엔트리에 들었다. 다음날인 4월 5일 6이닝 2실점(1자책)으로 시즌 첫 승을 따냈다.

4월 19일 SK 와이번스와의 경기에 선발 등판, 6이닝 무실점의 투구를 보여주다가 7회들어 3실점 하며 1점차로 쫓기는 위기가 있었지만 불펜진들이 잘 막아내며 팀은 4대3으로 승리, 시즌 2승을 달성하였다.

4월 26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 선발 등판, 7이닝 1실점으로 호투했으나 타선이 꽁꽁 묶인 데다 구원진의 대난조로 팀은 6대0으로 패배, 김진우 본인도 시즌 첫 패를 당했다.

5월 2일 잠실 야구장 두산 베어스전에 선발 등판했으나 제구 난조로 5⅓이닝 4피안타 5사사구 2탈삼진 3실점[21] 3자책점으로 부진했다. 6회초에 팀이 4:2로 역전하며 패는 면했지만 이어서 올라온 박지훈 유동훈, 진해수의 불질로 팀은 4:6로 패배.

5월 19일 잠실 야구장 LG 트윈스전에 선발 등판, 경기 전부터 고교시절 라이벌 류제국 과의 경기로 많은 관심을 끌었으나, 4.2이닝동안 9피안타 4탈삼진 7실점 3자책점[22]으로 아쉬운 모습을 보였다. 팀은 결국 4:7로 패배하였고, 패전투수가 되었다. 그리고 6일 뒤인 5월 25일 NC 다이노스 전애서도 3이닝동안 7피안타 3탈삼진 1사사구 6실점 5자책점으로 털리며 패전투수가 되며 2연속으로 5이닝도 소화하지 못하고 강판당했다.

그러나 6월 4일 무등 야구장 롯데 자이언츠전에 선발 등판하여 6이닝 동안 9피안타 1홈런을 맞았으나 2실점만을 허용하였으며 팀도 7:2로 승리하면서 승리투수가 되었다.

6월 9일 넥센 히어로즈전에 선발 등판, 7.1이닝 동안 7피안타 7탈삼진 3사사구 2실점[23] 2자책점으로 좋은 활약을 하였으며 팀도 6:4로 승리를 거두면서 시즌 5승째를 따냈다.

6월 16일 무등 야구장 SK 와이번스전에 선발 등판, 6이닝 동안 7피안타 1피홈런[24] 8탈삼진 3실점 3자책점의 경기를 하였으며, 팀도 9:7로 승리를 하며 시즌 6승째를 달성하였다. 3경기 연속으로 퀄리티 스타트를 달성하며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6월 26일 두산 베어스전에 선발 등판, 7이닝 동안 6피안타 1피홈런 7탈삼진 2사사구 3실점 3자책점으로 퀼리티 스타트를 달성하였으나, 팀이 비기고 있는 상황이라 승리는 기록하지 못했다.

7월 2일 문학 야구장에서 열린 SK 와이번스 전에 선발 등판하여 8회 보크로 인해 실점을 허용하기도 했으나 7.1이닝 6피안타 3탈삼진 2사사구 2실점 2자책점으로 호투하며 5경기 연속 퀼리티 스타트를 달성했으며, 팀도 8:2로 오랜만에 연패를 끊는 대승을 거두며 시즌 7승째를 따냈다. 여담으로 올 시즌 7월 2일까지 달성한 7승 중 4승을 SK전에서 따내며 그야말로 SK 킬러다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7월 24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LG 트윈스전에 선발 등판하여 6.1이닝 동안 8피안타 6탈삼진 2사사구 4실점 4자책점으로 다소 부진한 모습을 보였으나, 기아 타자들이 4개의 도루를 성공시키는 발야구 덕에 7:4로 승리를 거두면서 시즌 8승째를 따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7월 30일 무등 야구장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전에서는 3.2이닝만에 9피안타 1피홈런 7실점 7자책점으로 강판당했으며, 팀도 5:8로 패하면서 패전 투수가 되었다.

8월 4일 넥센 히어로즈전에 선발 등판하여 8이닝 동안 2피안타만을 허용하며 9탈삼진 1사사구 무실점으로 올 시즌 들어 최고 활약을 보였으며, 팀도 6:0으로 승리하면서 시즌 9승째를 따내며 2년 연속 두자릿 수 승수에 1승만을 남겨두었다.

그러나 이후 4경기에서의 선발 등판에서는 17.2이닝 동안 4피홈런 34피안타 24실점 23자책점이라는 처참한 성적으로 4경기 모두 패전하였으며, 9월 16일 팀이 한화 이글스에게 패하면서 4강 진출에 2년 연속으로 실패하자 9월 17일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되었다. 기사에 따르면 다시 1군에 올라오지 않고 시즌을 마감할 것으로 보였다. 관련기사

그러나 9월 27일 SK 와이번스와의 경기를 앞두고 다시 1군으로 콜업되었으며, 9회말 무사 1,2루 상황에서 구원 등판하여 3이닝 동안 1피안타 1폭투를 하였으나, 1탈삼진 무실점으로 SK타선을 잘 틀어막는 데 성공하였다.

9월 30일 NC 다이노스와의 경기에서 1:0으로 앞선 6회 2사 상황에서 선발 투수 박경태의 뒤를 이어 구원 등판하여 3.1이닝 동안 피안타 1개와 볼넷 1개를 허용하였으나 무려 7개의 탈삼진을 잡고 무실점으로 잘 틀어막아 2년만에 다시 세이브를 따내며 박경태의 데뷔 첫 선발승과 팀의 승리를 지켜내는 활약을 보였으며, 팀은 1:0으로 앞선 8회 이종환의 싹슬이 쐐기타에 힘입어 3:0으로 승리하였다. 특히 오늘 승리로 팀이 7위 NC를 밀어내고 다시 타어팔에서 벗어나게 된 것이 더더욱 뜻깊었다.

하지만 10월 3일 두산전에서 9회 마무리로 등판해서 3실점하며 1회 3실점 후 강판된 송은범을 이어 구원등판한 헨리 소사와 윤석민의 7이닝 1실점 활약이 무색하게 블론세이브를 기록하여 패전투수가 되고 기아를 다시 타어8로 만들었다.

사실 시즌 막바지에 김진우가 마무리 등판을 자청했다고 한다. 2014 시즌부터는 선동열 감독도 은근히 김진우가 마무리를 해주길 바라고 있다. 하지만 팬들은 10승 이상이 가능한 이닝이터이자, 약간의 제구불안이 있는 투수를 마무리로 돌리는 것은 반대하고 있다. 일단 선동열 감독은 김진우 마무리는 없을 것이고, 마무리 투수는 외인으로 구할 것이라고 했다.[25]

시즌이 끝난 12월 8일 상기에 눈물 흘리던 그 여자친구와 결혼했다.

2.6. 2014 시즌

마무리 외인 하이로 어센시오를 구해오며 김진우가 마무리로 갈 일은 없을 듯 하고, 선발의 한 축을 맡을 걸로 예상된다. 3월 8일 삼성과의 시범경기에서 선발로 출장하여 4회까지 무실점으로 막아내며 호투하던 중 채태인의 타구를 무릎에 맞고 쓰러지며 박경태와 교체되었다. 이 부상 여파로 4월 한 달간은 결장이 불가피해졌다.

5월부터 2군 경기에서 출장하다가 8일 2군 경기에서 급소에 타구를 맞았다고 한다. 일단 검진 결과 아무 이상 없다고 한다.

마침내 5월 14일 마산 NC 다이노스 전에서 1군에 복귀, 선발진에 들어가며 2014 시즌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복귀 이후 김진우의 성적은 좋지 못했고 5월 25일 울산 롯데 자이언츠 전에서 선발승을 거뒀을 뿐, 실질적으로 선발로써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불펜의 과부하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가장 극대화된 경기가 6월 24일 광주 SK 와이번스 전에서 2이닝만에 강판되어 내려간 것. 결국 선동열 감독은 김진우를 불펜으로 보내고 새로운 선발로 박준표를 내세우게 되었다.

그러다 7월 12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4:4 동점 상황에서 연장전 10회부터 구원 등판하여 3이닝 동안 무려 68투구수에 사사구도 4개나 내주는 안좋은 투구를 보였으나, 어떻게 꾸역꾸역 12회까지 무실점으로 막았으며, 팀도 12회 말 박준태의 끝내기 안타로 5:4로 승리를 하게 되어 오랜만에 시즌 3승째를 따냈다.

7월 23일 광주 LG 트윈스 전에서 극악의 제구를 보여주며 0.2이닝 4피안타 2피홈런 1볼넷 5자책 5실점으로 팀 패배에 크게 견인했다.

8월 9일 광주 롯데 자이언츠 전에서 매 이닝 볼넷으로 출루를 허용했으나 실점 위기에서는 매번 탈삼진을 뽑아내는 피칭으로 꾸역꾸역 5이닝 동안 무실점으로 마운드를 지켰다. 이 날 기록은 5이닝 5볼넷 7탈삼진 무실점. 이 날 같이 호흡을 맞춘 이성우의 리드에 맞춰 빠른 속구에 헛스윙을 유도하는 체인지업과 낙차 큰 커브를 섞어던지며 타자들을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팀은 5회초 최근 5경기 타율 .071에 머무는 이범호의 투런으로 승리를 챙기는 듯했으나 서재응 심동섭의 퐈이야로 승리를 날렸고, 3:2로 뒤진 상황에서 8회초 신종길의 1타점 적시타와 안치홍의 데뷔 첫 그랜드슬램으로 경기를 뒤집어 팀이 승리하기는 했다. 다만 승리투수는 송은범.

시즌 최종 성적은 28경기 90.2이닝 3승 4패 1세이브 1홀드 85탈삼진 평균자책점 5.96으로 처참한 성적으로 마감하였다.

2.7. 2015 시즌

절치부심의 마음으로 등번호를 49번에서 앞뒤로 숫자만 바꾼 94번으로 등번호를 변경했다. [26]

시즌전 대만 캠프를 소화하던 중 종아리 근육통이 발생, 재활군으로 내려갔다. 김진우는 3군, 2군 경기를 치러내고 6월 6일 1군으로 등록되었다.

6월 13일 삼성 상대로 6이닝 6피안타 1피홈런 1사사구 8탈삼진 1실점으로 오랜만의 퀄리티스타트를 달성하며 시즌 1승째를 올렸다. 그러나 6일 뒤인 6월 19일 kt 전에서는 3 1/3이닝 75구 3실점으로 매우 부진했다. 1~2회까지는 무사히 넘기다가 3회 들어서 갑작스런 제구력 난조로 피안타가 많아진 것. 결국 김기태 감독은 조기 강판이라는 카드를 꺼내들었고, 이 경기 후 김진우가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되고 말았다. 아직 좀 더 다듬어야 한다는 판단에서인듯 하다.

이후 2군에서 조율하던 도중, 부인의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수술 소식이 알려지게 되었다. 이로써 시즌 아웃.

2.8. 2016 시즌

수술 후 재활에 힘쓰다가 6월 21일 퓨처스리그 한화 이글스 전을 통해 첫 실전 등판을 했다. 25구를 던졌으며 2이닝 3피안타 1실점 2삼진을 기록.

6월 29일 광주 홈경기에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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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우와 주니어 그리고 베이비 시터 김기태 감독, 지나가는 민훈기 해설.

그런데 6월 30일 김진우의 복귀 무산 소식이 떴는데, 집에서 넘어지는 아이를 받으려다 왼발이 침대 모서리에 찧으면서 엄지발가락 골절상을 입었다고 한다. 이후 반 깁스로 4주를 보낸 뒤 다시 4주의 재활기간을 거치고 실전감각을 되찾으려면 10주 이상이 걸린다고 한다. KIA 돌발악재, 김진우 엄지발가락 골절상 '복귀 무산'

확장 엔트리가 적용된 9월 1일에 삼성전에서 복귀해 2이닝 1실점을 기록했고, 4일 롯데전에서 2이닝을 퍼펙트로 막고 승리투수가 되었다.

9월 9일 NC전에서 홍건희의 뒤를 이어 등판했으나 공이 계속 높이 가면서 김성욱에게 3구 2루타를 주고 테임즈에게 2구만에 시즌 40호 홈런을 내주며 2점을 잃었다.

10월 3일 kt전 박경수의 타석에서 양현종의 뒤를 이어 등판했는데 박경수가 친 공이 오른쪽 가슴에 맞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충격이 상당했는지 김진우는 고통스러워하면서 자세가 무너졌으나 넘어지면서도 1루로 공을 던졌고 필이 겨우 잡아내면서 아웃 카운트를 잡아냈다. 그리고 다음 이닝엔 윤석민이 올라왔다. 자칫하면 8월 3일 정재훈처럼 시즌이 끝나는 것 아니냔 우려가 있었으나 다행스럽게도 타박상이란 소견이 나왔다.

시즌을 마치고 등번호를 기존 94번에서 진흥고 시절 달던 11번으로 바꾸었다.[27]

2.9. 2017 시즌

2017 시즌 전, 2월 16일 오키나와에서 치러진 니혼햄 파이터스와의 연습경기에서 선발로 나와 시속 150km의 공을 뿌렸으나 강습타구를 무릎에 맞아 내려갔다. 다행히 그렇게 큰 부상은 아닌 듯 하다.

하지만 시범경기 때 마운드에 등판하기 전 몸을 풀고 있을 때 몸에 이상을 느껴 경기에 출장하지 못했는데 검진결과 오른쪽 늑골 염좌 진단을 받아 재활을 하게 됐다. 이에 김기태 감독이 김진우의 갑작스러운 부상을 보고 "이게 다 준비 부족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일각에서는 이런 김진우를 보고 김기태 감독에게 찍히지 않았나라는 의견도 많았고, 실제로 이러한 기사가 나오며 김기태 감독에게 '부주의'한 선수로 낙인이 찍혔다. 김기태 감독 성격상 이런 식의 기사로 팀 선수를 비난하는 경우는 이례적이기 때문에 "김진우의 몸관리가 얼마나 엉망이면 저렇게까지 경고를 하느냐"는 말까지 나왔다.
김기태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동행'으로 불리는 믿음의 야구의 대표 주자일 정도로 선수에 대한 질책은 거의 하지 않는 감독이다.

결국 4월 25일 1군에 콜업했다. 이 과정에서 이대진투수코치와 트레이닝 코치가 김진우의 대해 보증을 섰고 김기태 감독에게 팀에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가지면서 의식구조를 바꿔야 하고 안 바꾼다면 기회가 많지 않을 것이라는 경고와 지켜보겠다는 말을 들었다.

4월 29일 1회 제구가 잘 되지 않으면서 나성범의 적시타로 1실점했고, 무사 만루까지 몰렸으나 권희동, 박석민을 각각 2루 플라이, 투수 병살로 잡아내며 위기를 잘 넘기고 호투했으나, 5회초 본인의 책임이 있는 위기 상황을 견뎌내지 못하고 강판되었다. 팀은 연장 12회까지 가는 접전 끝에 패배했다. 덤으로 이 날 엉덩이에 타구를 맞았는데 더그 아웃을 향해 연신 괜찮다고 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5월 4일 넥센전 역시 사구 3개가 나오고 무사 만루가 2번이나 나오는 등 제구가 엉망진창인데다 평범한 1루 땅볼이 나왔을 때 1루수 김주찬에게 공을 맡겼으면 홈으로 들어오는 주자를 잡아볼만 한 상황에서 뒤도 안 보고 자기가 잡아서 1루로 던지려고 하다 김주찬과 부딪히고 점수를 주는 기가 막힌 수비를 보여주고 조기강판 당했다. 덕아웃에서 지켜보던 김기태 감독의 빡친 표정은 덤. 이 날은 해설도 중계 내내 왜 야수를 믿지 못하고 자기 혼자서 다 하려드냐고 세게 질책했다.

5월 10일 kt전에서 기회를 한 번 더 받고 등판했다. 상대는 시즌 정상급 선발인 피어밴드. 오정복에 머리로 향하는 공을 던지는 등 불안한 투구를 이어갔으나 꾸역꾸역 6이닝 2실점으로 QS를 달성했다. 다만 타선이 피어밴드를 전혀 공략하지 못하고 아예 점수를 내지 못해 팀이 영봉패를 당하며 패전을 기록했다.

5월 16일 광주 LG전에서 6이닝 2실점 5탈삼진으로 호투했다. 이전까지 남발했던 볼넷을 한 개 밖에 내주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전보다 확실히 안정된 모습을 보였다고 할 수 있다. 동점에서 내려와 승리 투수가 되진 못했지만 팀은 11회 말 이범호의 끝내기 안타로 승리했다.

그러나 5월 21일 다시 5이닝을 못 채우고 열세에서 내려갔고 팀은 두산에게서 4개의 병살을 유도하고도 기어이 패하여 패전 투수가 되었다.

5월 27일 롯데전 5이닝 4실점으로 부진하였으나 타선의 대폭발로 드디어 시즌 첫 선발승을 가져갔다.

6월 2일 삼성전에서도 기대를 없애는 투구로 자멸했다.

결국 이렇게 시원치않은 모습을 보이던 끝에 6월 7일부로 5선발직을 박탈당하고 불펜으로 보직 변경이 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불펜으로 보직 전환된 후 6월 9일 넥센전에서 7회 등판해 2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다. 선발 양현종도 좋지 못했고, 김진우 뒤에 등판한 투수들인 임창용 심동섭, 김윤동도 역시나 좋지 못한 내용을 보인 가운데 그나마 좋은 투구를 한 투수가 되었다.

6월 14일 허벅지 통증으로 1군에서 말소되고 손영민이 대신 올라왔다. 몸관리에 관해 김기태 감독이 엄포를 놓은 접이 있는데다 공이 좋은 것도 아니었기에 당분간 올라오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구속과 구위는 괜찮지만 너무 제구가 불안하며 볼질끝에 자멸하는 모습이 자주 나온다. 1군에 올라오더라도 폼을 끌어올리기 전까지는 추격조로 활용할 듯하다.

7월 21일 롯데전 번즈에게 역전홈런을 맞으며 역시나 부도수표다운 모습을 보였다.

7월 25일 SK전 2할 5푼도 못치는 로맥에게 역전 쓰리런을 맞으며 기아 팬들의 쌍욕을 먹었으나, 김선빈이 9회말 박희수를 상대로 동점 투런을 때려주어 패전은 가까스로 면했다.

7월 26일, 올라온지 5일만에 1군 말소됐다.

9월 1일, 1군에 올라왔다.

9월 2일 고척 넥센전에서 불펜투수로 출장해서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줬고, 팀이 역전승을 거두며 승리투수가 됐다.

9월 3일 장영석에게 2타점 끝내기 안타를 맞으며 팀에게 도움은 안되도 민폐는 되지 않게 하겠다는 말을 하루만에 번복하고 말았다. 이 역전패로 KBO 리그 역대 9회 최다점수 역전패 기록이 종전 5점차에서 6점차로 경신되었고 고척 대참사의 원인제공이 되었다.

그런데 9월 7일 한화전 선발투수로 내정되었다. 1.5군급 타선이라 어느 정도 호투를 예상했지만 실상은 0.1이닝 3자책으로 배힘찬의 재래. 초반부터 얻어맞으며 붕괴되었고 팀은 21피안타를 내주며 대패. 아무리 하드웨어가 좋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불안해서는 1군에 자리 잡기 어려울 것이다.

2017시즌에도 1군과 2군을 들락날락하면서 FA 자격 요건을 또 채우지 못했다.

2.10. 2018 시즌 - 방출

한 시즌만 채우면 첫 FA자격을 얻을 수 있었지만 또 실패. 스스로 구단에게 방출을 요구했다.

이번에는 부활한 체력 테스트에서 사전 통과했다고 한다. 그러나 윤석민도 합류한 전지훈련 명단에서는 탈락.

FA 요건을 취득하지 못한 채 직전 연봉의 절반인 6천만원에 도장을 찍었다.

아마 이번 시즌 후 FA가 유력한 상황이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 출전을 한다는 가정하에 이야기이고, 나온다 한들 지금 FA시장 상황이나 실력+나이+내구성 어느 면에서 보아도 KIA와 재계약이 아니면 김진우를 원하는 팀은 전혀 없어 보인다.

작년 부터 보인 여러 정황 증거 상 김기태 감독에게 정말 아주 제대로 찍혔다는 추측이 우세하다. 평소 김기태 감독의 특징은 선수들에게 친근하고 편하게 다가가며 특히 나이든 선수들에게 대우가 확실한 감독이나 주어진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본인 눈 밖에 난 선수에게는 굉장히 매정한 편인데, 김진우에게 보이는 행동은 과거 이대형이나 오준혁 등에게 대했던 태도와 비슷하게 냉정하고 차갑다.

실제로 많은 기회를 주었으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 눈밖에 나고 기아에 부임하자마자 kt wiz로 보내버린 이대형 등과 비슷하게 된 상황. 17년 당시 김기태 감독은 김진우에게 4선발 롤을 기대하고 있었다고 언론에 공표할 정도로 기대가 컸는데, 시범경기에서부터 부상으로 인하여 시즌 시작도 전에 구상은 꼬여버렸고 그나마 다시 돌아와서도 부진한 모습만 보여주었기 때문에 꽤 실망이 컸던 듯하다.

김기태 감독이 재계약하고 거기다 군에서 다시 돌아온 유망주 투수들도 많아진 편이라 김진우의 입지는 작년보다 휠씬 줄어들었다. 올해 제대로 활약하지 못한다면 FA신청은 물론 선수생활조차 위험한 상황이다.

결국 이러한 활약 덕에 육성선수로 전환되었다. 이에 따라 등번호도 022번으로 바뀌었다. 중간에 다시 무릎부상을 당하면서 5월까지는 정식선수로 활동하기 힘들다고 판단한 듯 하다.

6월 4일 첫 2군으로 올라왔다.

6월 7일 퓨처스리그에서 상무전에서 5이닝 평균자책점 5.40 삼진2개 3실점 볼넷3개 6피안타를 기록했다. 제구가 되지 않은 모양이다.

6월 8일 2군 말소로 3군으로 가게 되었다.

6월 13일 2군에서 선발로 나서 2이닝 동안 7피안타 5사사구 8실점 투구수 62개를 기록했다고 한다.

2018년 10월 19일 곽정철 김종훈 이윤학 정윤환 윤희영 박희주 등 투수 7명, 권유식, 박효일 오상엽 김성민, 이영욱 이호신 김다원 등과 함께 방출되었다. 방출 후 심경글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엠스플 뉴스에 따르면 전반기가 끝날 때쯤부터 구단에게 방출을 요청했다고 한다. 어느 팀에서든 공을 더 던지고 싶다는 의지를 보였다.

방출 이후 곧바로 질롱 코리아에 연락했고, 서로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며 호주 리그에서 뛰는 것이 확정됐다.

3. 질롱 코리아 시절

3.1. 2018-19시즌

당초 3선발을 맡을 예정이었으나 몸이 만들어지지 않아 당분간 등판은 기약이 없게 됐다. 부상설도 나오는 중. 일단 2018년 11월 22일 열리는 퍼스 히트와의 홈 개막전 선발로 나올 것이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2018년 11월 22일 퍼스 히트와의 홈 개막전은 장진용이 선발 등판 하였고 승리투수가 되었다. 언제 등판 할지 기약이 없는 상태이다. 경기력 문제도 문제지만 시즌 초 어깨 부상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2018년 11월 24일 퍼스 히트와의 3차전에 선발등판했지만 1.2이닝 6실점으로 무너지며 시즌 첫패를 기록했다. 부진한 피칭도 피칭이지만 강판 과정도 아쉬웠는데, 2회초 퍼스의 크리스 베츠가 안타를 치고 2루로 내달리다 유격수 박휘연에게 거친 태클을 하자 이에 대해 항의하다가 구대성 감독과 함께 퇴장당하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관중석을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올린 장면이 잡혔다.

다만 가운데 F 즉 법규라고 한건 퍼스 히트팀 선수들이 계속 자극을 하였다고 한다. 그게 계속 귀에서 들리니 신경도 쓰이고 순간 욱하다보니 그렇게 보였다.[28]

2018년 11월 30일 멜버른 에이시스와의 3라운드 2차전 경기에 선발등판하였고 6이닝 4실점, 시즌 두번째 패전을 기록했다. 삼진을 9개나 잡아내면서 구위가 살아나고 있음을 입증했다.

12월 8일 애들레이드 바이트와의 4라운드 3차전에 선발 등판해 이번에도 6이닝 4실점을 기록. 또 다시 패전투수행. 3개의 볼넷이 아쉬웠으나 두 경기 연속 9개의 탈삼진을 잡아내며 빼어난 구위를 보여줬다. 평균자책점도 10.57에서 8.56까지 끌어내렸다.

12월 15일 오클랜드 투아타라와의 5라운드 2차전이자 더블헤더 1차전에 선발 등판해 6이닝 3실점 6탈삼진으로 퀄리티 스타트를 기록하며 호투하였고, 타선도 5점이나 지원해주며 승리투수가 되었다. 시즌 첫 승과 더불어 7점대 평균자책점에 진입하는 데 성공했다.

12월 22일 캔버라 캐벌리와의 6라운드 4차전에 선발등판해 5.2이닝 3실점으로 아쉽게 QS를 놓쳤고, 팀은 1안타 빈공에 시달리며 시즌 4패 (1승)째를 거뒀다. 평균자책점은 7.32에서 6.75로 떨어뜨렸다.

12월 29일 멜버른 에이시스 상대 7라운드 3차전에 올시즌 두번째로 선발 등판했으나 6.1이닝 9피안타 7실점 5자책으로 다소 부진하며 5패 (1승)째를 거뒀다. 다만 팀의 얇은 투수진 사정을 봤을 때 많은 이닝을 소화한 것은 고무적. 평균자책점은 소폭 상승해 6.82를 마크 중이다.

구대성 감독이 8라운드부터는 선발 경험이 없는 선수들에게 선발 기회를 주기로 하면서 불펜 등판 가능성이 점쳐졌고, 예상대로 2019년 1월 3일 애들레이드 바이트 상대 원정 1차전 1:1로 팽팽히 맞선 7회말에 QS를 기록하며 호투한 선발 김병근을 이어 구원 등판했으나 7회에만 4실점을 하며 무너졌고, 8회말에도 이어서 등판했으나 완전히 붕괴하며 길나온에게 마운드를 넘긴 채 강판되었다. 길나온마저도 위기를 막지 못하고 김진우의 승계주자를 모두 불러들이고 추가 3실점하며 결국 1.1이닝 9피안타 9실점으로 완전히 난타당했다. 시즌 6패 적립은 물론 평균자책점도 9.00까지 치솟았다. 1월 6일 애들레이드 바이트와의 9라운드 마지막 경기, 12-0으로 패색이 짙은 5회말에 불펜 등판해 2이닝 3피안타 1실점 5탈삼진으로 나쁘지 않은 피칭을 보여줬다. 참고로 이날 질롱은 21실점하며 참패했는데, 등판한 모든 투수가 실점하며 말 그대로 탈탈 털렸지만 김진우가 그 중에서는 제일 잘 던졌다. 이날 등판으로 평균자책점은 8.74로 내려갔다.

8라운드 두 번의 불펜 등판 이후 9라운드 부로 다시 선발로 복귀했고, 1월 12일 퍼스 히트와의 원정 3차전에 선발 등판했는데 1.1이닝 5실점 4자책 3볼넷 2탈삼진으로 부진하며 시즌 7패를 기록했다. 스트라이크 25개, 볼 22개를 던지며 제구에 어려움을 겪었다. 9라운드 종료 시점 36.1이닝동안 44개의 탈삼진을 기록하며 나름대로 뛰어난 구위를 입증하고 있으나 그만큼 실투가 많아 피안타율은 .337, WHIP는 1.98에 이르고 있다. 평균자책점은 9.41로 규정이닝을 채운 투수 가운데 뒤에서 두번째[29]로 굴욕을 당하는 중. 다만 질롱의 막장 수비력을 감안할 필요도 있다.

1월 19일 10라운드 3차전 브리즈번 밴디츠와의 홈경기에 선발 등판해 5이닝 4피안타 1피홈런 5볼넷 7탈삼진 6실점 5자책을 기록했다. 이지 플라이를 중견수 노학준이 놓치고[30] 좌익수 이용욱이 실책을 범하는 등 수비의 도움을 전반적으로 받지 못했지만, 김진우 본인도 송구 에러를 범하고 볼넷도 다섯개나 내주는 등 좋지 못했다. 시즌 8패째. 이 등판이 시즌 마지막 등판이 되면서 그대로 시즌을 마감했다.

18/19시즌 총평을 하자면 평균자책점은 9.36으로 규정이닝을 채운 28명의 투수 중 27위로 나빴지만 이닝당 1.25개의 삼진을 잡아낸 점은 고무적이라고 볼 수 있을듯하다. K/9으로 환산하면 무려 11.1로 비록 호주리그지만 류현진 뺨치는 기록이다. 사실 평균자책점은 수비의 도움을 거의 전혀 받지 못해 올라간 느낌도 있는데, 실제로 김진우의 GO/AO는 2.84로 땅볼유도비율이 57.4% [31]에 이르렀고, 상술했듯 탈삼진 비율이 엄청났음에도 평균자책점이 9점대에 이르렀다는 것은 분명 김진우의 투구 외에 비정상적인 변수가 작용했다는 것을 뜻한다. [32] 본인도 몸상태는 한국에 있었을 때보다 더 좋아졌다고 하며, 실제로 구속도 최고 153km/h까지 찍히는 등 희망적인 부분도 발견할 수 있는 시즌이었다. 만약 질롱이 아닌 호주 타팀에서 뛰었더라면 아무리 나빠도 4-5점대 평균자책점을 찍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본인의 염원인 KBO 복귀에는 부족한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결국 2월 들어 멕시칸리그 진출을 타진 중이라는 소식이 알려졌다. 과거 실패한 외국인선수 조쉬 로위가 멕시칸리그에서는 커쇼급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독립리그에 가지 않는다면 현실적으로 정규시즌에 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가능한 선택으로 보인다.[33]

4. 멕시칸 리그(LMB) 시절

2019년 2월 25일 멕시칸 리그의 술탄네스 데 몬테레이(Sultanes de Monterrey)에 입단하는 데 합의하면서 팀에 합류하게 되었다. 술타네스 쪽에서는 몬테레이 기아자동차 멕시코 공장이 있는데다[34] 7천여명의 한국 교민들의 단합을 기대하고 있고 팀의 선발투수 로테이션에 포함하는 것을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35]

월봉 1만 6천 달러라고 한다. 연봉은 풀 시즌을 뛴다면 10만 달러에서 15만 달러 사이로 보인다.[36][37]

4월 7일 레오네스 데 유카탄과의 경기에 선발 출장하며 리그 데뷔전을 가졌다. 하지만 4.2이닝동안 3안타 5볼넷 내주며 3실점하고 5회를 채우지 못한채 마운드를 내려갔다. 팀이 7회 대거 5점을 뽑아내며 역전승을 거둬 패전투수가 되는 일은 면했다.

리엘레로스 데 아과스칼리엔테스를 상대로 한 시즌 두 번째 등판에서도 4.2이닝만을 투구하며 7안타 5볼넷 5실점으로 부진한 피칭을 했다. 이 날도 팀이 난타전 끝에 승리를 거두며 패전투수가 되지는 않았다.

4월 19일 티그레스 데 킨타나 로오와의 경기에서도 5.1이닝동안 무려 10안타 3볼넷을 허용, 5실점을 내줬고 팀이 3-5로 패하며 시즌 첫 패배를 당했다.

4월 25일 알고도네로스 데 우니온 라구나와의 경기에서 7이닝 1실점으로 호투했다. 타선도 야마이코 나바로[38]가 멀티 홈런을 때려내는 등 10점을 지원해줬고, 멕시코 리그 첫 승리를 거두었다.

5월 1일 라구나와의 리턴 매치에서는 1.2이닝동안 안타 없이 볼넷만 5개를 허용하며 1실점하고 마운드를 내려갔다.

5월 8일 피라타스 데 캄페체와의 경기에서는 팀이 14-1로 크게 앞선 7회 1사에 구원등판했다. 첫 타자를 볼넷으로 내준 후 두 타자를 내리 뜬공으로 처리하며 7회를 무실점으로 막았지만 8회에는 선두타자에게 2루타를 맞은 뒤 바로 홈런을 허용하며 2실점했다. 이 날 1.2이닝 2피안타 1볼넷 2실점을 기록했고 평균자책점은 6.12로 올랐다.

5월 12일 리저브 명단에 올랐다.

결국 5월 중 다시 방출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김진우의 인터뷰에 따르면 술탄네스 구단이 기아자동차와 스폰서십을 맺으면서 한국인 선수 1명을 의무적으로 발탁하는 조건으로 멕시코로 넘어왔던 것이었는데, 스폰서십이 끊긴 뒤로 더이상 몸값이 비싼 한국인 선수를 데리고 있을 필요가 없어지면서 쿠바인 선수[39]를 데려오면서 방출되었다고 한다.[40]

6월 9일 한국에 돌아와 동강대학교에서 훈련하고 헬스장에서 헬스를 하는 사진이 올라왔다. 아직 공식 방출된 상태는 아니고 리저브 명단에 그대로 있지만 사실상 멕시칸 리그와의 인연은 끝난 듯.

6월 13일 롯데 상동구장에서 입단 테스트를 본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에이전트가 롯데에 요청하고, 롯데가 흔쾌히 허락해줬다. 12일 상동에서 훈련을 마친 상태라고. 링크 하지만 기량이 많이 떨어지고 나이도 있는 상태라 공식 영입을 할 가능성은 다소 낮아보인다. 야구 인생 라스트 찬스일 듯.

6월 24일 롯데측에서 입단테스트 불합격 통보를 하였다.

2019년 6월 27일 은퇴 소식을 알렸다.


[1] 2016년에 해체됐고 성남시에는 현재 야탑고만 남아있다. [2] 준결승전인 성남고에서 187개의 공을 던져 결승전에는 선발 등판하지 못했고 6―8로 뒤진 8회에 등판해 1이닝 동안 3피안타 5실점하고 마운드를 내려왔다. 류제국은 대회에서 4승을 거두며 최우수선수상·우수투수상·수훈상을 독차지했다. [3] 당시 진흥고 야구부의 주장은 손주인이었다. [4] 박명환야구TV에서 본인이 이때 상황을 말했는데, 당시 4개팀 중 시애틀, LA, 보스턴이 관심을 보였고, 그중 시애틀 아시아 스카우트 팀장이 광주까지 찾아와 부모님하고 이야기를 하고 한국 돈 36억 가량의 금액 이야기가 오고갔다고 확실히 밝혔다. 여담이지만 당시 시애틀은 일본프로야구에서 활약하던 33세의 사사키 카즈히로한테 3년 12m+@옵션을 제의할 정도의 큰손이었고, 이후 대인배 빌 버베이시단장이 선수연봉과 계약금을 마구 퍼줄 때였다. [5] 당시 지명했던 해태에서는 돈이 없어 할부로 주는 것도 버거웠지만, 그 해 8월 KIA가 인수하면서 7억을 일시불로 건네줬다고. [6] 다만 물가를 감안하면 임선동>김진우>유창식 순으로 계약금의 가치가 갈리긴 하지만 어쨌든 거금은 거금이다. [7] 실제로 2002년 초까지는 18번이 달린 유니폼을 입고 연습경기를 뛰기도 했다. 사진1, 사진2 [8] 이 당시 영구결번의 주인이던 선동열 본인은 영구결번에 큰 미련을 두지 않고 김진우가 자신을 잇는 타이거즈의 에이스로 성장해 주길 바랐다고 한다. [9] 물론 2002년 시즌 역시 타고투저인 것도 감안해야 한다. [10] 2003년 플레이오프에서 SK에 패하며 두 시즌 연속으로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하자, 정신무장을 빙자한 훈련이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그냥 무작정 짐 들고 걷기만 했던 삽질이라고 봐도 무방한 일이었다. 더욱이 김진우는 2003시즌 종료 후에 아테네 올림픽 지역예선 국가대표 기초군사훈련 일정을 소화하느라 연말까지 제대로 쉰 날이 거의 없었다. [11] 2005시즌 이후 이강철 조규제는 은퇴하게 된다. [12] '부산 아시안 게임 금메달로 군 면제가 된 선수가 왜 예비군 훈련 불참으로 지명 수배냐'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올림픽 메달과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받는 것은 면제가 아니라 병역특례다. 2년 10개월 동안( 2017년 기준) 해당 종목에 종사하는 것으로 병역을 대신하며 기초군사훈련과 예비군훈련도 모두 이행해야 한다. [13] 결국 2011년 시즌 이후 간사이 독립 리그에서 탈퇴했으며 해당 리그도 2013년을 끝으로 와해되었다. [14] 본인은 박명환야구TV에 출연하여 147접시라고 정정을 요청하였다. [15] 2016년 9월 19일 롯데 VS 넥센 사직 경기에서 이순철 해설위원이 158접시라고 했다. 이벤트 타임이어서 모든 초밥이 한 접시에 두 점씩 놓여져 있는 상황이었다. [16] 당시 한화로 36~37억의 거금을 준다는 제의가 있었다고 한다. 아마 계약금 300만 불인듯 한데 이 정도면 시대를 고려하지 않아도 드래프트 최상위 픽들이나 받는 수준의 금액이다. [17] 장문석 선수의 소개로 노장진과 어울렸다는 루머가 돌았으나 실제로는 두 번 정도 대면한 게 전부라고 한다. [18] 이때문에 일각에선 만약 김진우가 이런 문제 없이 정신적으로 기댈 존재가 있었다면 훨신 좋은 성적으로 롱런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19] 전처 사이에서 난 아들은 훗날 2025 KBO 신인 드래프트에서 KIA 타이거즈의 11라운드 지명을 받았다. [20] 9월 25일 경기 후를 기준으로 후반기 방어율이 1.46으로 전체 1위다. 2위 노경은 1.78. [21] 1점은 유동훈 분식회계. [22] 홍재호의 실책 하나와 실책성 플레이 두개로 무실점으로 끝날 이닝이 5실점이 되었다! [23] 2점 모두 분식회계. [24] 박정권의 투런 홈런 [25] 14 시즌부터는 용병이 3명 보유 2명 출전인데, 외인 선발이 나오고 용병 타자가 경기에 나오면 마무리 외인은 나올 수가 없게 된다! [26] 넥센 히어로즈 시절과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활동 당시 김병현이 49번을 달았는데, KIA에 와서 김진우가 이미 번호를 선점하고 있어서 45번을 썼다. 그런데 49번을 김진우가 반납한 뒤에도 김병현은 45번을 계속 달았고, 비게 된 49번 자리는 김진우 이전의 등번호 주인인 박성호가 달게 되었다. [27] 기존 11번은 레전드 김성한 이후 진흥고 선배였던 김상진의 등번호였다가 어느 주작범이 달던 번호였다. [28] 허구연 위원이 호주 현지에서 질롱 코리아팀을 격려차 방문했는데 이후 귀국하여 2018년 11월 29일 멜버른 에이시스전에서 해설을 하는 도중에 이 이야기를 언급하였다. [29] 참고로 뒤에서 첫번째는 이재곤(…). [30] 실책으로는 기록되지 않았다. [31] 이는 전성기 대비 구위 하락으로 KBO 최고의 그라운드볼러로 변신한 류제국의 GB%와 비슷한 수치다. [32] 세이버메트릭스를 비롯한 호주프로야구의 세부기록이 미비해 BABIP이나 FIP와 같은 기록은 열람하기 어렵지만, 한화 시절 비운의 투수 카페얀과 김진우의 상황이 비슷했다고 보면 된다. [33] 멕시칸리그의 수준은 한국과 대만 사이로 평가받는다. 월급은 대만보다는 적지만 그래도 프로라고 할 수 있는 수준의 월급은 나온다. 최저연봉도 트리플A보다 많다. [34] 그래서 술타네스의 메인 스폰서이기도 하다. [35] 사족으로 이 시즌 술타네스에서는 일본인 외인 선수도 영입했었다. 아라나미 쇼라는 똑딱이 외야수로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 출신이었다. 이 선수는 2011-2012년 2년 연속 골든글러브도 차지했지만 장타력도 없는 선수가 타율도 높지 않아서 저 2년을 제외하면 외야 백업 위주로 뛰어오다 방출을 당해 멕시코로 넘어왔었다. 다만 메인 스폰서 덕에 개막 로스터 진입이 보장됐고 연봉도 꽤 고액이던 김진우와 다르게 아라나미는 스프링캠프에서 입단 테스트를 치러 스프링캠프 중인 3월 19일에 정식계약을 맺었다. 아라나미는 타율 2할 9푼대를 기록하며 그럭저럭 성적을 냈지만 김진우가 퇴출되고 한달 반 후인 6월 말에 결국 퇴출당했다. 타율은 준수했지만 홈런이 0개라서 OPS가 낮았다. 이후 아라나미는 그대로 은퇴하고 현재는 독립리그 팀의 코치를 맡는다. [36] 일반적으로 멕시칸리그의 용병 선수들은 1년에 저렴하게는 5~15만, 비싸게는 15~25만 달러 정도 받는다. 고액용병까진 아니지만 메이저리그 경력이 없는 선수에게는 연 10만 달러만 줘도 최고 대우라고 하니 김진우는 KBO에서의 실적을 인정받은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경필과의 인터뷰에 의하면 팀내 연봉 랭킹 3위였다고 한다. [37] 실질적으로는 세 달 정도 있었기에 5만 달러 정도를 받았을 것이다. [38] 삼성에서 뛴 그 나바로 맞다. [39]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마이너리그에서 뛰고 있다가 몬테레이 술탄스로 임대를 온 엘리안 레이바로 추측된다. 엘리안 레이바는 끝내 메이저리그를 밟지 못하고 멕시칸리그에서 주로 뛰다 2023년에는 대만프로야구로 갔다. 그러나 8월 하순 퇴출되면서 다시 멕시코로 돌아갔다. [40] 이경필과의 인터뷰에 의하면 처음에는 방출 통보 대신에 새로 입단한 선수를 선발진에 합류시킬 계획이라면서(본인의 인터뷰에 의하면 예전에 몬테레이에서 뛴 선수라는데, 엘리안 레이바는 당시 몬테레이 신입단이었다. 김진우 본인이 헷갈렸거나 엘리안 레이바가 아닌 다른 선수 얘기인 듯) 중간계투로 전환해달라는 권유를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김진우가 중간계투 전환을 거절하자 그렇다면 자유계약 공시를 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인터뷰에서 김진우 본인은 처음부터 방출할 생각으로 이런 권유를 했다고 추측했다. 사실 팀내 연봉 3위면 사실상 1선발급 기대를 하고 데려온 용병이라는 건데 선발로 ERA 6점대를 찍고 있으니 데리고 있는 자체가 손해이긴 하다. 거기다가 2019년의 멕시칸리그는 2020년대보다는 그래도 덜 타고여서 리그 전체 ERA가 4점대는 됐다.(2022년에는 리그 전체 ERA가 6점대를 찍으며 ERA 4점대만 찍어도 1선발, 5점대만 찍어도 2선발급이었는데, 그 정도는 아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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