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화려한 경력에 비해, 인터뷰 때 발언이나 이런저런 일화들을 살펴보면 굉장히 솔직하고 소탈한 성격이다. 다만, 일반적인 한국인들에 비해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짙고, 다소 4차원적인 성격에다가 그다지 대인친화적이지 못한 탓에 언론 매체들의 먹잇감이 되어 고생을 많이 했다. 데뷔 초기에 첫 세이브 후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내일 한국신문에 이거 대문짝만하게 나오나요?' 발언 등으로 PC통신 유저들 사이에서는 끼가 많고 재미있는 청년이라는 의견이 주를 이뤘고, 언론도 그에 대해 공격성 기사를 쓰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시즌이 끝난 뒤 내한 후에는 언론 노출을 극도로 꺼려 그 때부터 언론과의 사이가 틀어졌다. 당시 PC통신에 김병현의 후배 고등학생의 글에 따르면 김병현이 내한 후에 일정을 기자들에게 공개하지 않아서 고등학교에 기자들이 미리 와서 진을 치고 있었다고 하는데 기자들 사이에서 김병현에 대한 쌍욕이 난무 했었다고 한다. 이는 홈런을 친 뒤 모자를 벗어 답례를 하자 기자들이 이를 곡해하여 거만하게 굴었다는 식으로 비난성 기사를 게재한 이후 현역 시절 동안 결코 답례로 모자를 벗지 않았던 테드 윌리엄스와도 비슷한 케이스다.
이렇고 저런 이야기들이 많은데 2000년대 후반 들어서 주목받는 것은 특유의 정신세계로 인한 기행을 들 수 있겠다. 불암콩콩코믹스에서도 그라운드의 악동들 편에서 소개를 했는데, 악동이라기보단 기인인듯 이라는 평을 남겼다. 이 덕분에 전성기 때나 막장이 된 10년도 후반이나 야갤에서 매우 좋아한다. 거의 김성근이나 이준 급으로 소스를 끊임없이 공급해주기 때문에...
다만 한국도 좀 정서나 문화가 20년 동안 많이 바뀌기도 했고 김병현 본인도 나이를 먹으면서 성격이 유해지고 방송에도 자주 출연하면서 옛날의 이미지가 많이 희석되었다. 이에 김병현 본인은 "과거와 다르게 지금은 처자식이 생기면서 언행이 과거보다 부드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라고 스스로 밝혔다.
김병현의 현역 시절이었던 90~00년대와는 달리 지금은 솔직하고 개성있는 사람들을 좋아하다보니 지금은 숨김없이 직설적인 언행을 선보이는 김병현이 매력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 오히려 옛날의 압도적인 실력이 주목을 받고 과거의 여러가지 기행과 전설로 내려오는 여러가지 썰들이 맞물려서 다시 인기를 얻기도 했다.
그래서, " 야구는 관심 없어도 김병현의 기행은 잘 알고 있다." 같은 말이 괜히 나온게 아닌데, 김병현이 무례한 기레기들에게는 나쁘게 대하더라도 야구 팬들에게는 팬 서비스를 매우 잘 해줘서 미담도 많은데다 딱히 나쁜 범죄를 저지르는 사고를 치지도 않고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발언도 한게 없는 등, 사생활도 매우 깨끗한 사람이라 악평을 받을 일이 별로 없기 때문에 그런 것도 있다.
특유의 기행들이나 전설적인 썰들 관련해서는 이분과 투톱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2021년 기아에 그와 비슷한 인물이 나와 주목 받고 있다.
2. 실제 모습
개인주의적인 성격에, 지나치게 솔직한 성격이다 보니 경기 외적인 구설수나 논란에 휘말릴 때가 있어, 악동이나 트러블 메이커 이미지로 왜곡된 편이다.이렇게 독특한 성격을 가진 김병현이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사회적인 일탈 행위나 작은 경범죄같은 이력도 전혀 없어서 사생활도 깨끗한 편이다. 굿데이 기자와 마찰 사건 때문에 사생활에도 문제가 많을 듯한 이미지인데도 눈에 보이는 편견과는 다르게 범죄에 연루되는 일도 전혀 없이 조용하다.
체육계에서 후배들이 선배들을 셔틀하는 고질적인 똥군기가 너무 당연했었던 90~00년대의 대학생 시절에 후배들이 자신의 빨래를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야, 이 자식아. 내 빨래를 왜 니가 하냐?"라면서 하지 말라고 말을 하면서 직접 빨래를 뺏었다고 한다. 이에 후배들이 놀라서 그냥 자신들이 빨래를 하겠다고 하자 거부했다는 이야기도 있다고 한다.
이러한 미담이 있어서 그런지 김병현은 기레기와의 폭행 사건이나 공항 법규 사건 등 온갖 기행으로 유명했어도 선후배 선수들과는 전혀 마찰이 없었다. 아마도 남들에게 빚을 지고 사역행위를 요구하는 것을 싫어하거나 부당한 행태를 참지 않는 듯 하다. 심지어 운동선수들의 학폭 미투 사건이 유행했을 때도 김병현은 후배들에게 똥군기를 가했다거나 부당하게 후배들을 폭행했다는 이야기가 전혀 나오지도 않았다. 실제로 후배들한테도 인망이 넓은 편인지, 악담을 하는 사람도 별로 없고 관중들에게 팬 서비스가 나쁘다는 말도 전혀 나오지 않고 미담도 많은 편이다.
게다가 일본 라쿠텐으로 이적했을 때나 넥센으로 이적했을 때도 후배들과 주전경쟁에 한창 민감하던 시절에도 "제가 감독이면 저를 안 써요." 같은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서슴없이 할 정도로 선후배 관계에서도 굉장히 열린 사고를 갖고 있는 사람이다.[1] 이런 성격이니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도 많았던 모양이다.
방송에서 푸는 에피소드를 보면, 다른 전직 야구선수 방송인들에 비해[2] 훨씬 소탈한 에피소드를 풀어주는 편이다. 소탈하고 무덤덤하게 풀기는 하지만 워낙 자신의 선수 시절 기행이 어마어마해서 범상치않은 일화를 소탈하게 푸는 데서 오는 괴리감이 유머 포인트이기도 하다. 당장 에피소드의 주인공으로 나오는 사람이 그 유명한 랜디 존슨이니 말 다했다. 전혀 소탈하지 않은 레전드다.
3. 별명
그의 별명들 중에서 인터넷 상에서 가장 유명한 별명은 바로 핵잠수함과 김좆키. 자세한 건 김좆키 문서 참고. 또한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 쎄우는 욕의 단어를 순화시켜 표현한 '김중지' 혹은 '김법규' 등이 있다. 김좆키보다는 덜하지만 간혹 쓰이는 표현. 2000년대 말까지는 좆키 합성짤과 함께 김좆키로 불렸지만 2010년대 이후 한국 복귀 후부터는 법규, 법규형님, 법규성님 등으로 불리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성균관대학교 법학과 출신이라는 것에 착안해 법대 나온 법규형님이라는 별명도 있다. 예능과 해설 등으로 활동하면서부터는 방송국에서 주로 법규라는 표현을 즐겨 쓰는데, 별명의 어원과 가장 비슷(?)하면서도 방송심의 상 충분히 우회 가능한 표현이라 법규를 애용하는 것으로 보인다.원래는 부정적인 의미가 강했지만 점차 부정적인 의미는 퇴색되고 사실상 애칭으로 고정되었다는 면에서는 라뱅의 이병규, 빵형/빵회장의 박재홍과 비슷하다.
김병현이 사업을 위해 회사를 설립하였는데 법인명이 무려 주식회사 법규이다.(...) 조롱하기 위해 붙인 별명이 당당히 법인명으로 승화되었다.
멘탈왕 김병현에 대한 메이저리거들의 증언.
이런 특이한 면모는 어디 안가는지 뭉쳐야 찬다에서는 '유니크 킴'으로 불렸으며 후속작인 뭉쳐야 쏜다에서도 계속 불리는 중이다.[3]
4. 굿데이 스포츠신문 사건
여러 어록이나 일화 중에서도 김병현 폭행 논란이라 불리는 굿데이 스포츠와의 트러블[4]은 매우 유명하다.당시 김병현은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하고 있었는데 김병현이 모 헬스클럽을 자주 찾는다는 정보를 입수한 스포츠 신문, 굿데이의 한 기자는 해당 헬스클럽에 계속 잠복해 있다가 김병현을 나타나자마자 허가도 받지 않고 사진을 찍어대며 매우 고압적인 태도로 인터뷰를 강제로 진행[5]하려고 했다. 이에 김병현은 촬영과 인터뷰를 거부했고, 결국 강제로 인터뷰를 하려는 기자와 이를 거부하려는 김병현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져 기자의 카메라가 손상되는 일이 벌어졌다.
이 일에 앙심을 품은 해당 기자가 다른 스포츠 신문사 기자들과 결탁하여 이 기회에 이전부터 취재에 매우 비협조적이었던 김병현을 모함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헬스클럽에서 만난 김병현에게 정중히 취재를 요청했으나, 김병현이 이를 무시하고 안하무인 격으로 거만하게 굴더니 급기야 기자에 폭행까지 가해 카메라를 부수고, 해당 기자는 병원에 입원했다는 내용의 기사를 내보냈다. 또한, 이후 결탁한 다른 스포츠 신문사 기자들 역시 해당 특종이 터지기가 무섭게 앞다투어 이 신문 기사를 인용하여 폭행 사건을 대서특필, 김병현을 쓰레기로 몰아붙였다. 이날 목격자도 폭행을 한 것으로 당시 보도되어 사태는 점차 악화 되었다.
물론 김병현 측도 이에 대한 해명을 나서긴 했으나, 기존부터 언론을 통해 줄곧 안 좋은 모습으로 묘사됐던 김병현이었던 터라 이 해명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드물었다. 결국 이 사건으로 인해 김병현은 억울하게도 휴식 기간 동안 내내 언론의 집중 포화를 맞아야 했으며, 제대로 쉬지 못한 탓에 컨디션까지 엉망이 되어 시즌 자체를 전부 망치고 말았다.
하지만 이후 기자회견 자리에서 해당 기자가 "그 XX, 거들먹 거리긴."이라고 말한 동영상이 퍼지고, 당시 사건의 정확한 내막과 전후 사정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분위기는 급반전. 반대로 무고한 김병현을 음해한 기레기들 쪽을 비난하는 여론이 들끓었다.
이 와중에 김병현을 옹호하던 차두리의 싸이월드에 욕설이 섞인 악플을 단 이가 있었는데, 이 IP를 추적한 결과, 악플을 단 게 다름 아닌 굿데이 측이었다는 사실이 오마이뉴스를 통해 보도 되었고, 결과적으로 기자들을 향한 비난 수위는 더욱더 높아졌다. 사실 이러한 기사가 데스크에서 통과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굿데이 측의 계속된 경영부진이 있었는데, 이 사건으로 인해 엄청난 사회적 역풍을 맞으면서 판매 부수가 급감하고, 광고까지 상당수 떨어져 나갔고, 결국 굿데이는 6개월 뒤 폐간되고 말았다.
위에서 설명했던 굿데이 기자와의 논란 때문인지, 디씨에 김병현기자폭행논란 갤러리가 개설되기도 했지만 현재는 접속 불가능하다. 사실 공항에서 법규 날린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5. 경기장과 훈련 과정에서
- 야구 관련으로 가장 유명한 것은 역시 2001년 월드 시리즈 중의 두 경기 연속 끝내기 홈런.[6] 이 홈런으로 인해 김병현의 소속팀 애리조나는 쉽게 가져갈 수 있었던 경기를 놓치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시리즈는 일대 혼전에 빠졌다. 더욱이 당시 김병현이 시즌 중 언터처블이라 할 만한 대단한 활약을 펼쳤던 터라 이 일은 더욱 드라마틱하게 다가왔다. 덕분에 이 장면은 미국 메이저리그의 역대 명장면 중 하나로 꼽혀, 전미에 수도 없이 방송됐다. 아무래도 본인으로서는 조금 민망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라 하겠다. 하지만 각자 당대 최고 수준의 마무리였던 김병현과 마리아노 리베라의 블론이 아니었다면 21세기 최고의 월드시리즈로 선정될 일도 없었을 것이고 덜 회자가 되었을 것이다. 실제로 월드시리즈 우승 이후에도 랜디 존슨등 팀 선배들은 BK가 없었으면 월드시리즈까지 오지도 못했다며 오히려 김병현에게 공을 돌렸다. 팀의 사기와 립서비스도 있긴 하지만, 이도 김병현의 공헌도가 높아서 나온 말이기도 하다. 김병현의 입장에서는 미국에 자신의 이름을 확실히 각인시켰고 지금도 좋은 투수로 기억되고 있기 때문에 나쁜 결과는 결코 아니다.
- 콜로라도 시절 선발승을 따내고 Xports와 화상 인터뷰하던 중 이미 인터뷰가 끝난 걸로 착각하고 헤드셋을 벗더니 그대로 사라진 일도 꽤 유명하다. 당황하는 중계진과 카메라가 떠나는 그의 뒷모습을 쓸쓸히 찍는 장면을 보고 있으면 그야말로 미묘한 쓴웃음이 절로 나온다.
- 복귀를 위해 훈련하던 중에는 자택에서 훈련장까지 직접 자동차를 운전해서 간 적이 있다고 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특별할 건 없는 평범한 이야기 같지만, 미국은 광활한 영토를 자랑한다. 자택은 미국 로스앤젤레스, 훈련장은 저 멀리 플로리다의 마이애미에 있었다는 것이다. LA에서 마이애미는 비행기로도 5시간이 걸리는 거리다. 도중에 주차장에서 3시간 잔 게 전부인데도 자그만치 60시간이나 걸렸다고 한다. 그런데 막상 도착한 이후엔 훈련을 시작한지 3일만에 부상 징후가 나타나서 결국 자동차 두고 곧장 비행기로 귀가해야 했다.
- 애리조나에서 데뷔했고 성적도 애리조나 시절이 가장 좋았지만, 애리조나를 떠나는 과정이 썩 매끄럽지 못했던 탓에 애리조나 팬들은 그를 무척 싫어했다. 이 때문에 플로리다에서 뛰다가 잠시 애리조나로 트레이드 돼서 첫 등판을 했을 당시에는 홈 관중들에게 야유 세례를 받기도. 물론 지금은 시간이 시간인지라 그를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사람도 많고 역대 팀 올스타에 마무리투수로 뽑히기까지 하는 것을 봤을 때 이미지가 좋아졌다. 게다가 2018년 4월 3일에는 시구까지 했다.[7]
6. 여담
- 고등학교 2학년 때이던 1995년, 당시 OB 베어스 수비코치였던 김광수가 광주일고 3학년 투수의 피칭을 보면서 감탄을 하고 있었는데, 이에 광주일고 감독이 “우리 팀 에이스는 2학년(김병현)”이라고 말했다. 이후 김병현의 피칭을 본 김광수는 기절할 뻔 했다고. 근데 김광수 코치가 감탄한 3학년 투수가 다른 선수도 아닌 서재응이었다.[8]
- 2006년 1회 WBC 때 정대현은 같은 언더핸드인 김병현보다 나은 점이 뭐냐는 질문을 듣고 굉장히 화가 났다고 한다. 비교를 당해서 기분이 나쁜 것이 아니라, 곰곰이 생각해보니 볼스피드, 구위, 경기 운영, 마인드, 정신력 등 자신이 나은 게 하나도 없어 그게 너무 기분이 나빴다는 것. 김병현을 처음 본 게 고등학교 2학년 때였는데[9] 그 후로 '10년 이상 야구를 해오면서 내가 뭘 했지?' 하는 생각들이 들었다면서, 그보다 나은 것은 더 낮게 던지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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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일화가 무척 많은데, 마무리 시절엔 경기가 한참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도 라커룸에 누워 낮잠을 자질 않나[11], 구단에서 준 집을 원룸으로 개조하는가 하면, 선발 전환 이후에는 출전 당일에도 컨디션 조절을 하기는커녕 비디오게임기로 야구 게임을 즐기기도 하고, 차에 내비게이션이 달려 있는데도 그게 뭔지 몰라서 한 번도 사용을 안 하질 않나, 사인해달라는 팬들의 요청에 경보로 도망가다 잡히니 그제서야 사인한다든가, 갑자기 관중에게 중지를 세우거나 했다.
- 스즈키 이치로가 1회 WBC를 앞두고 한국을 이길 수 있다면서 이른바 30년 발언을 하자, 어이없어하면서 시큰둥한 반응으로 "그냥 만화를 많이 봐서 그런 말을 하는거 같은데…" 라는 발언을 한 적도 있다. 그리고, "나도 일본 만화 좋아한다" 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덤이었다. # 다만, 30년간 일본을 이기지 못하게 해주겠다는 발언은 과장되고 부풀려진 것이다. 본래 의미는 상대가 '앞으로 30년간 일본 야구 대표팀을 못 이길 것 같다' 는 생각이 들게 만들 정도로 압도적으로 이기고 싶다는 뜻이었다. 사실, 저 발언은 딱히 한국을 대놓고 비하한 것은 아니고 "우리 일본은 이렇게 강하다." 정도로 가벼운 도발성 멘트를 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로 일본인들은 상대방이 실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내릴 때, "너희들이 우리에게 도전하려면 몇 년은 이르다." 같은 표현을 일종의 관용어처럼 사용한다. 한국에서 비슷한 표현 중에 "너 같은건 한 손가락만 쓰고도 이긴다, 발로 해도 이긴다." 같은 표현이 진짜로 손가락이나 발만 써서 상대하겠다는 뜻이 아닌데다 "아이고, 죽겠다" 처럼 힘들다는 표현이 진짜로 죽는다는 뜻이 아닌 것과 비슷하다.
- 1999년 시즌 종료 후 귀국했을 때 휴대전화 번호가 노출된 적이 있다. 진짜 김병현 선수인지 궁금해서 장난삼아 전화를 걸어본 성균관대생과 30분과 통화를 했다고 한다. 이런 적이 한두번이 아니라 모르는 사람이 전화를 걸어도 친절히 받아주었다고 한다.
* 넥센 시절 파울볼이 덕아웃으로 튀었을 때의 짤방 때문에 주목을 받은 적이 있다.
출처
- 벤틀리의 AWD 세단인 플라잉 스퍼의 오너이기도 한데, 2007년 콜로라도 로키스에서 클린트 허들 당시 콜로라도 감독과 투수코치와의 불화로 인해 "화가 난 김에 나도 이런 차를 타고 다닌다고 과시하려고 해서 플라잉 스퍼를 구입하게 됐다" 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이 차는 그가 넥센 히어로즈에 입단한 후 한국으로 갖고 왔다. 그러나, 문제는 플라잉 스퍼의 앞 범퍼에 번호판이 없었다는 것. 미국의 애리조나, 조지아, 캔자스같은 일부 주에서는 앞면에 번호판을 안 달아도 되지만, 한국에서는 무조건 전면에 번호판을 달아야 한다. 안 그러면 과태료가 부과된다. 덤으로 이 벤틀리를 부담없이 편안하게 운전하는 듯한 모습도 보이는데 범퍼 아래쪽에 긁힌 자국부터 먼지까지 쌓여있는데 이를 본 프로야구의 한 관계자가 차 자체도 보기 드물지만 이렇게 관리가 안 된 벤틀리는 단 한 대밖에 없을 거라고 얘기를 했다. 얼마나 관리를 안하는지 2012년 6월 20일 프로야구 롯데전에서 첫번째로 승리한 기념으로 오랜만에 세차를 했다. #
*
대한민국으로 돌아온 이후에도 이런 면모는 여전히 변함없었다. 2001년 월드시리즈 우승 후 한국 팬들을 위해 월드 시리즈 반지[12]의 국내 기증 의사를 밝혔는데, 당분간 이 반지를 끼지 않고 집에 보관한 뒤 귀국 후
한국야구위원회나 제주도의 야구박물관에 기증할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한국에서 기증할 시설이 마련되지 않아 국내은행에 보관을 하였다.
대한민국에 복귀하고 얼마 후,
KBO 측에선
메이저리그 우승 반지를 KBO 박물관에 기증하지 않겠냐는 과거의 이야기를 꺼냈고, 김병현 역시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런데 문제는 김병현이 언젠가 은행에서 찾아왔는데 정작 이 우승 반지를 어디에 둔지 몰라서 기증을 당장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김병현 특유의 성격을 짐작케 하는 일화라 할 수 있겠다. 물론 상술한 사건들이 있는 터라 마냥 좋은 추억만 담긴 물건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사실 그 반지 하나 얻어 보고자
온갖 비난과 푸대접을 감수하고 팀을 옮기는 선수도 굉장히 많다.
* 시간이 흘러 그냥 분실로 끝나나 싶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2016년에 차 트렁크 청소하다가 찾았다고 먼저 알려왔다. 일련된 과정을 보면 이해가 가는데, 전혀 모르는 사람들은 KBO가 명분 없이 우승반지를 얻어내려고 한다고 욕을 하였고, 김병현은 주기 싫어서 잃어버린 척 하는 게 아닌가 의심을 하였다. 정말 주기 싫었으면 처음부터 기증 이야기도 안했고, 분실한 반지를 찾고도 못 찾은 척 입 다물 수 있었는데 먼저 나선 것을 보면 그런 것은 전혀 아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가 다시 언급될 때 뭐 잃어버릴 수도 있지란 반응을 보인 듯. 그런데 2019년 라디오스타에서 밝히길 이사를 하면서 또 반지를 잃어버렸다고 한다. 5분 12초부터 그런데 2020년 2월 29일에 방영된 아는 형님에 출연해서 반지 두 개를 실물로 보여주는 모습이 나왔다. 어찌저찌 찾은 듯. 그래서 기증은?... 시간이 많이 흘렀으니 마음이 바뀌었을 수도 있다. 기증하겠다고 계약을 한 것도 아니니 기증자의 의사가 바뀔 수도 있는 것이다. 다만, 김병현의 성격이라면 말 했을 확률이 높으니 그냥 깜빡했을 듯 하다. 어차피 KBO의 입장에서도 강제로 협박하면서 우승반지를 뜯어낼 수는 없는 일이다. 어쩌면 한국 야구 명예의 전당 준공을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고.
* 시간이 흘러 그냥 분실로 끝나나 싶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2016년에 차 트렁크 청소하다가 찾았다고 먼저 알려왔다. 일련된 과정을 보면 이해가 가는데, 전혀 모르는 사람들은 KBO가 명분 없이 우승반지를 얻어내려고 한다고 욕을 하였고, 김병현은 주기 싫어서 잃어버린 척 하는 게 아닌가 의심을 하였다. 정말 주기 싫었으면 처음부터 기증 이야기도 안했고, 분실한 반지를 찾고도 못 찾은 척 입 다물 수 있었는데 먼저 나선 것을 보면 그런 것은 전혀 아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가 다시 언급될 때 뭐 잃어버릴 수도 있지란 반응을 보인 듯. 그런데 2019년 라디오스타에서 밝히길 이사를 하면서 또 반지를 잃어버렸다고 한다. 5분 12초부터 그런데 2020년 2월 29일에 방영된 아는 형님에 출연해서 반지 두 개를 실물로 보여주는 모습이 나왔다. 어찌저찌 찾은 듯. 그래서 기증은?... 시간이 많이 흘렀으니 마음이 바뀌었을 수도 있다. 기증하겠다고 계약을 한 것도 아니니 기증자의 의사가 바뀔 수도 있는 것이다. 다만, 김병현의 성격이라면 말 했을 확률이 높으니 그냥 깜빡했을 듯 하다. 어차피 KBO의 입장에서도 강제로 협박하면서 우승반지를 뜯어낼 수는 없는 일이다. 어쩌면 한국 야구 명예의 전당 준공을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고.
- 2015년 5월 17일 KIA 타이거즈 1군으로 복귀한 김병현에게 광주일고 3인방( 서재응, 최희섭)이 모이니 어떠냐?[13]라는 질문을 하니 광주일고요? (라커룸)안에 광주일고 애들 많은데. 아 빅리거. 에이 별 의미 없어요. 라면서 시크한 반응을 보여주었다.
- 2015년 6월 2일 두산 베어스전에 7이닝 1실점으로 호투하고 있던 서재응에게 "다른 투수들도 투구감각 땜에 던져야 하니까 이만 그만 던져라"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이날 경기에 호투하던 서재응은 그 말을 따랐다고 한다. 역시 광주일고 1년 선배인 서재응에게 팀 내에서 이렇게 직설적으로 말을 할 수 있는 선수는 김병현을 포함해도 별로 없을 것이다.
- 2015년 6월 10일 KIA 타이거즈 김기태 감독이 경기 후 야간특타 훈련 도중 김병현과 대화를 나누며 "매 경기가 기도하는 심정이다"라고 했더니, 김병현은 이에 두 손을 공손히 모으며 "오늘은 기도가 부족하셨나 봅니다." 라고 농담을 하였다. 참고로 이날 경기는 3-4 역전패로 끝난 이후였다.
- 2015 시즌 후 전남대학교 부근에 라멘 가게를 열었는데[14], 팬이 위치를 묻자 '라면은 집에서 끓여먹는 것' 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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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도 거론된 것처럼 미국에서 일식당을 운영하고 있지만, 김병현 본인이 직접 경영하는 게 아니라 전문 경영인에게 위탁해서 운영하고 있다.
김병현은 현명한 방법을 택한 것인데, 대부분 운동선수들이 고액 연봉만 믿고 무턱대고 직접 사업에 나서다가 실패한 숱한 사례[15]에 비하면 전적으로 전문 경영인에게 위임하여 꾸준히 수익을 내는 김병현의 판단이 옳았다. 해방촌에서도 '팟카파우'라는 태국 음식점도 운영하는 중이며, 광주광역시 동구 대인동 예술의 거리, 금남로4가역과 KT 광주지사 사이에 ' 광주제일햄버고'라는 수제 햄버거집을 오픈했다.
광주가 한식은 맛있는데, 다른 장르의 음식에서 멋스러운 집은 많지만 맛있는 집이 별로 없어서 열었다고 한다. 오픈하자마자 폭발적인 인기를 자랑하여, 2019년 6월 8일에는 재료소진으로 조기종료되었다.
직접 가 본 사람들에 의하면 주문, 설거지 및 청소를 돕고 있었다고 하며, 2021년 현재는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점에서 직접 패티를 굽고 배달까지 나서기도 한다고 한다. 고기 산적 맛이 나는 패티를 넣은 독특한 햄버거와 김병현 본인이 하와이에서 눈여겨봐둔 조합의 햄버거가 가게의 간판 메뉴.[16]
- 배리 본즈에게 베이브 루스의 기록을 넘는 715호 홈런을 허용하고 동판으로 영구적으로 남았다. 의외지만 김병현은 본즈 상대로 11타수 2안타(1홈런), 타/출/장 182/471/455로 기록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본즈의 유일한 홈런이 저 홈런이다.
- 2016년 1월 화성 히어로즈의 감독격인 필드 코디네이터로 대한민국에 온 쉐인 스펜서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김병현이 아직도 뛰나?"란 질문을 던져 화제를 모았다. 전술한 대로 쉐인 스펜서가 현역 시절 김병현에게 깨진 전력이 있었기 때문. 쉐인 스펜서의 김병현 상대 전적은 5타수 무안타 3삼진이다.
- 한창 잘 나가던 2002년에는 자신의 팔에 대한 10억원짜리 보험에 가입한 적이 있었다.
- 대한야구협회와의 사전 동의 없이 미국으로 진출한 것 때문에, 1999년에는 고교 후배인 최희섭과 함께 대한야구협회로부터 자격정지 처분을 받은 적이 있다. 이로 인해 해태가 갖고 있었던 그의 지명권이 날아갔다.
- DUGOUT와의 인터뷰를 보면 그가 가진 야구관이 잘 드러내 있다. 그리고 엠빅뉴스와의 인터뷰에서는 "약 먹어도 못 하는 사람은 못 한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 정영진 최욱의 매불쇼에 연상은 아나운서와 함께 출연해서 좋은 케미를 보여주고 그야말로 온갖 썰을 풀었다. 월드시리즈에서 홈런 맞은 얘기도 했다. 한번, 두번까지는 별 데미지가 없다가 세번째 피홈런엔 주저앉게 됐는데 낙심해서가 아닌 팀 고참이면서 자신과 친한 마이크 모건[20]이 생각나서 주저앉았다고 한다. 또한 김선우와 전화연결 시간을 가졌는데 김선우 본인이 김병현에게 야구를 많이 배웠다고 한다.
* 2019년 4월 24일
트위치를 통해 진행된
SBS 모바일 24의 '배거슨 라이브'에 출연하여[21] 야구 관련 에피소드, 명대사 해명의 시간과 근황을 풀고 갔는데,
배성재 아나운서의
타노스 건틀렛으로
짤방을 남기고 갔다. 여기서 해방촌에 지분투자 형태로 태국 음식점도 열었다고 언급했다.
- 인스타도 하는데, 인스타를 보면 가족을 많이 사랑하는 모습이 보인다. 배우자 한경민 씨는 뮤지컬 배우 출신이고, 두 명의 아들과 한 명의 딸이 있다.
- 제9대 KIA 타이거즈 감독으로 부임한 맷 윌리엄스와는 2001년 월드 시리즈 우승 주역으로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에 같이 있었던 팀 동료 지간이다. 김병현은 윌리엄스 감독을 멋진 사나이, 끊고 맺음이 확실한 사람으로, 윌리엄스 감독은 김병현을 지저분한 공을 가진 좋은 투수로 기억하고 있다고 한다. 아쉽게도 김병현이 사업을 하느라 2020 시즌은 함께 하지 못한다고. 대신 2020 시즌 스프링캠프 때 인스트럭터로 합류하려 했으나 불발되었다. 뭉쳐야 찬다, 편애중계와 같은 방송 스케줄로 시간을 길게 내기 힘들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 병역특례 혜택을 받은 후에도 꾸준히 국가대표에 선발되어 뛰어왔다. 사실 축구와 달리 야구는 국가대표의 메리트가 명예나 병역특례 말고는 없다시피 한데, 꽤 이례적 케이스라고도 할 수 있다.
- 야구선수 중에서는 흔하지 않은 비흡연자다.
- FA 선언을 단 한번도 하지 못했다. 짧고 화려했던 애리조나 시절의 전성기를 끝으로 구단들의 이해타산에 따라 트레이드 매물로 팔리는 선수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구단들이 강요했던 잦은 트레이드로 의도치 않게 여러 팀을 전전했던 탓인지 본인 스스도로 자신을 저니맨이라고 여기고 있다. 사실상 선수 생활 말년이었던 KBO 리그에서도 트레이드를 겪었다.[22]
- 사업을 위해 회사를 세웠는데 주식회사 법규 로 회사이름이 범상치가 않다.
-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124차 경연에 그대여~ 그대여~ 그대여~ 눌러주세요~ 벚꽃엔딩 이라는 가명으로 출연했다. 의외로 음색이 좋은데, 현대적인 스타일이 아닌 80, 90년대 스타일의 투박하고도 감성적인 창법을 구사한다. 아는 형님, 라디오 스타 등의 여러 예능 프로그램들에서도 가창력을 뽐냈다.
- 애리조나 시절 김병현은 팀 막내라 팀 멤버들이 그를 많이 좋아했다고 한다. 그 중 랜디 존슨은 원래 다른 사람들한테 잘 웃지 않는데 김병현을 보면 씩 웃어줬다고 한다. 재미있는 일화 가운데 하나로 존슨이 자신의 차 9대 중 1대를 김병현에게 팔려고 했는데, 김병현이 차에 앉아보니 발이 페달에 닿지 않아서 존슨이 엄청나게 웃었다고 한다.[23] 그 외에도 랜디 존슨은 월드 시리즈 인터뷰에서 승리의 공을 김병현에게 돌리곤 했다. #
- 아버지가 태권도 관장님이라고 하며 본인도 태권도를 배웠고, 슬하 세 자녀들도 태권도를 배운다.
-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 156회 중 민주화 운동 당시 시위대가 돌을 너무 못 던지는 것을 보고 돌 던지는데 합세했더니 시위대의 칭찬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본인 말로는 이 경험이 언더스로로 던지게 된 계기라고 하는데 조금 더 자세한 이야기가 나올지는 불명.
- 김병현이 2023년 다저 스타디움을 방문하여 오랜만에 에릭 캐로스를 다시 만났고, 훈훈하게 인사를 주고받기도 했다. # 처음엔 누군지 알아보지 못했지만 디백스에서 뛰었던 투수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특유의 언더핸드 스로 자세를 취하면서 "아! 이 자세를 취했어야지! BK! 이 양반 던지기만 하면 삼진이야!" 하며 웃어보였다. 그리고 데이브 로버츠 감독도 김병현을 기억하고 있었고 장난스레 "1이닝만 뛰어주라." 하면서 친분을 보였다.
- 일본 브랜드 하버색의 팬이다. 후쿠오카 하버색 사장님에 의하면 매년 찾아올 정도로 친분이 깊다고(...)
[1]
물론 라쿠텐에 입단하던 시기의 김병현은 현역에서 은퇴가 가까워진 시기라서 이미 돈도 많이 벌어왔던데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으로부터 45세가 된 이후 매달 2억 4천만원씩 연금을 받을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 그래서 라쿠텐이나 넥센에서 활약하던 때는 거의 반쯤 취미 생활로 야구하던 시기나 다름없었고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던 시절만큼 주전경쟁이 그렇게까지 절박하지는 않았던 때라 "제가 감독이면 저를 안 쓴다." 라고 쉽게 말을 할 수 있었던 점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김병현 본인의 성격상 프로 선수로서 주전경쟁이 밀리는 것은 분명히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 맞는데도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선수들과 주전경쟁을 별로 신경쓰지 않고 가볍게 생각했던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2]
정수근,
박명환의 경우
아프리카TV에서 토크의 수위가 19금을 넘을 때가 많아서 편집자가 애를 먹고 있다.
[3]
그 기행으로 말할 것 같으면 뭉찬에서는 사이드라인으로 공이 나갈 거라 생각해서 아직 나가지 않은 공을 집어서 스로인을 하려 한 바람에 핸드볼(핸들링의 올바른 표현) 파울을 받기도 했고, 뭉쏜에서는 자유투를 2개 쏘는 상황에서 한 개째를 던졌을 때 혼자 리바운드를 잡으러 골밑으로 달려나온 모습을 2번씩이나 선보였다. 전자는 웃음거리로 전락하고 끝나겠지만, 후자는 프로경기였다면 방해공작으로 오해하여 자유투를 던진 선수와 시비붙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
[4]
굿데이 스포츠의 대주주가
경향신문이어서 이 논란은 경향신문과 엮이기도 했으며, 당시 경향신문 차세현 기자가 현물투자 지분관계만 있다고 언급하며 편집권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해명하기도 했다. 경향신문의 이미지에도 치명타를 입힌 사건.
[5]
"너 취재 방해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라고 반말까지 하고 계속 김병현이 뚜껑 열릴 때까지 무시했다고 한다.
[6]
이 중 양키스 레전드
데릭 지터의 미스터 노벰버라는 별명을 붙여준 11회 끝내기 홈런의 허용투수도 김병현이었다.
[7]
이 경기는 체이스필드에서 치러진 다저스와 애리조나의 경기였는데 마침 다저스 선발투수가 류현진이었다.
[8]
서재응 문서에도 나와있지만 부상전엔 김병현만한 구속에 제구까지 잡힌 완성형에 가까운 투수였고, 짧지만 메이저리그에서도 괜찮은 성적을 거둔 선수다.
[9]
참고로 정대현은 1978년생, 김병현은 1979년 2월생으로 같은 학년이다.
[10]
물론 프로로서 말은 이렇게 했지만 사실 정대현도 메이저리그에서도 마무리로서 성공한 김병현 급이 아니라 그렇지, 한국 야구 역사에 남은 위대한 투수 중 하나다. 국가대표로서는 정대현이 김병현보다도 더 좋은 평가를 받기도 한다.
궁내 체고의 싱카볼투수라는 별명이 괜히 있는게 아니다
[11]
원래 마무리투수는 경기와 상관없이 5회까지 개인적으로 휴식을 취하긴 하는데, 자면 몸이 굳기 때문에 잠은 금기다. 오히려 몸이 굳지 않도록 따뜻한 물로 목욕이나 마사지를 하는 선수도 있을 정도. 보통은 등판일엔 가벼운 스트레칭을 많이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경기가 진행되는 락커룸은 시끄러워서 도저히 잠을 잘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 거기서 잠을 잘 수 있는 사람은 락 콘서트장에서도 잠을 잘 수 있을 것이다. 애초에 스트레스와 부담감이 엄청난 직책이기에 저렇게 편안히 잠을 자기도 쉽지 않다.
[12]
A는 애리조나 시절, B는 보스턴 시절.
[13]
기아 출신은 아니지만 강정호까지 합하면 광주일고는 무려 매이저리거만 4명 배출한 고등학교다...
[14]
식당위치는 전남대학교 후문 부근 산쪼메라는 식당이다.
[15]
가장 안 좋은 사례가 광주일고 선배였던
이호성이었다. 무리한 사업 확장과 과욕으로 나름 잘나가던 예식장 사업을 말아먹고 큰 빚을 지고 몰락해버렸고 결국 살인까지 저질렀다. 또한 같은 팀 동료였던
커트 실링 역시 게임 사업을 하다가 파산선고를 당했다. 반대로 가장 성공한 사례는 광주 내 중화요리점 체인의 대표로 자리잡은 해태 포수
최해식과
푸르밀 CEO까지 오른 실업 롯데 투수
남우식이다.
[16]
첫 단체주문 손님은
손혁 코치가 80개를 주문한
SK 와이번스. 특히
광주제일햄버고는
쯔양 등이 방문하기도 했고 진월동에 2호점을 열었으며,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에도 입점했다.
[17]
415명 중 308표
[18]
최종순위는 50명 중 12위, 11위가
맷 윌리엄스
KIA 타이거즈 감독이다.
[19]
랜디 존슨과
폴 골드슈미트가 1-2위에 올랐고, 비운의 투수
브랜든 웹과 우승멤버
루이스 곤잘레스와
커트 실링이 Top 5에 자리했다. 이후 스티브 핀리-저스틴 업튼-A.J. 폴락-댄 해런-잭 그레인키 순. 그 다음이 윌리엄스와 김병현이었다.
[20]
1959년생으로 1978년 프로에 데뷔해 디-백스가 마지막 팀이던 저니맨 투수인데, 이전 팀에서 획득한 우승반지가 없었다고 한다.
[21]
이 앞에
이승우,
구자철 인터뷰가 있었다.
[22]
고향팀인
KIA 타이거즈로 트레이드된거라서 불만은 전혀 없었다고 한다.
[23]
김병현의 키는 프로필 키 178cm인데, 보통 운동선수들 신장은 스파이크를 신고 재며 또 언더사이즈 선수들은 조금씩 뻥튀기가 일상이라 실제 맨발신장은 174~5정도다. 한국남성 평균인 173~174와 거의 차이가 없으며 야구선수로서는 상당한 언더사이즈다. 그런데 랜디 존슨은 키가 210cm인 초장신이라, 둘의 키는 35cm가까이 차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