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캐로스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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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신인왕 | ||||
제프 배그웰 ( 휴스턴 애스트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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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캐로스 (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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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피아자 (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
1995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1루수 부문 실버 슬러거 | ||||
제프 배그웰 ( 휴스턴 애스트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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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캐로스 (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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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스 갈라라가 ( 콜로라도 로키스) |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등번호 23번 | ||||
커크 깁슨 (1988~19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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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캐로스 (1991~20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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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빈 벤추라 (2003~2004) |
시카고 컵스 등번호 32번 | ||||
존 리버 (1999~20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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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캐로스 (20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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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트로이 호킨스 (2004~2005) |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등번호 32번 | ||||
채드 하빌 (20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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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캐로스 (20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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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카세이 (20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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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피터 캐로스 Eric Peter Karro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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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67년 11월 4일 ([age(1967-11-04)]세) |
뉴저지 주 해컨색 [1]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패트릭 헨리 고등학교[2] - UCLA |
신체 | 193cm, 92kg |
포지션 | 1루수 |
프로입단 | 1988년 드래프트 6라운드 (전체 140번, LAD) |
소속팀 |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1991~2002) 시카고 컵스 (2003) 오클랜드 어슬레틱스 (2004) |
직업 | 해설가 |
해설 위원 |
FOX Sports (2005~) Spectrum SportsNet LA (20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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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 활약했던 전 야구 선수. 현재는 야구 해설가로 활동 중이다. 한 때 박찬호의 팀 동료로 우리나라에 제법 잘 알려진 선수이기도 하다.통산 14시즌 1,755경기 7,100타석/6,441타수 1,724안타 324이루타 284홈런 797득점 1,027타점 552BB/1,167K .268/.315/.454 .779OPS/107OPS+ 10.4bWAR.
2. 선수 시절
1988년 신인드래프트에서 LA 다저스에 6라운드에 지명받아 프로야구선수 생활을 시작한다. 1991년 메이저리그에 데뷔 14타수 1안타를 치며 메이저의 높은 벽을 실감했으나, 이듬해인 1992년에 타율 .257에 20홈런 88타점을 기록하며 내셔널리그 신인왕에 등극한다. 그리고 캐로스를 시작으로 이후 LA 다저스는 마이크 피아자, 라울 몬데시, 노모 히데오, 토드 홀랜스워스 등 5년 연속 내셔널리그 신인왕을 배출한다.이후 캐로스는 1995년 32홈런 105타점으로 내셔널리그 1루수 실버슬러거상을 수상하는 등 다저스의 주축 타자로 자리매김한다. 하지만 통산타율 .268이 말해주듯 정확도가 떨어지는 타자였고, 타석에서의 집중력도 부족해 결정적인 한 방을 쳐주는 선수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선구안이 좋느냐면 그게 아니라서 통산 출루율도 .325에 불과했다. 즉 홈런과 타점 수에 비하면 절대 믿을 수 있는 중심 타자가 아니었다. 경기 내적으로도 박찬호의 선발 등판 경기 때마다 득점권에서 범타라든지 평범한 1루 팝업을 놓친다던지 같은 삽질을 많이 해서 한국 팬들을 가슴치게 만들었다. 이 때 붙은 별명이 개로스(…).[3]
그리고, 잠시나마 98, 99 시즌에 타율을 끌어올려서 성적이 나오자 캐로스에게 덜컥 장기계약을 맺는 바람에 LA 다저스는 당시 토드 워렐 이후 마무리 부재로 신시내티 레즈에서 제프 쇼를 얻기 위해 특급 우타 거포 1루수 유망주를 트레이드 카드로 써버렸는데, 그 유망주는 다름아닌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영구결번 폴 코너코.[4]
2003년 정든 LA 다저스를 떠나 시카고 컵스로 이적, 12홈런 40타점을 기록하며 베테랑으로써 자기 몫을 해 준다. 다만 당시 컵스의 최고 유망주였던 최희섭이 캐로스 때문에 출장기회를 제대로 부여받지 못했기에, 여전히 한국 팬들에게는 눈엣가시였다.
2004년에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로 이적했으나, 0.194라는 최악의 타율을 기록. 결국 그 해를 마지막으로 은퇴했다.
3. 총평
국내팬들에게는 그리 대단한 선수로는 기억되지 않는 모양이고, 실제로도 어느 정도 그랬다. 당시 투수친화구장의 대명사였던 다저 스타디움을 홈으로 쓰면서 30홈런을 여러 번 친 것은 인정해줄 만하다. 하지만 전형적인 공갈포에 생산성이 부족했던 캐로스는 마이크 피아자와 게리 셰필드등 특급 타자들의 뒤에서 타점을 주워먹던 중간급 타자에 불과했다. 다섯 차례의 30홈런과 통산 284개의 홈런, 신인상과 실버 슬러거 1회 수상 등 겉보기에는 어느 정도 달성한 건 있지만 세부 스탯은 1루수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많이 아쉬운 수준이고, 결과적으로 큰 임팩트를 주지 못했던 선수였다.다만 6라운드라는 그다지 높지 않은 지명순위를 극복하고 15년 가까이 빅리거로 활약했다는 점, 그리고 각 포지션당 한 명씩만 받을 수 있기에 어지간한 스타 선수들도 후보감에 오르기가 쉽지 않은 실버슬러거와 1년에 그 많은 새내기 메이저리거들 중 한 명만이 받을 수 있는 신인왕이라는 귀중한 상을 수상해봤다는 점에서 어쨌든 캐로스 개인 입장에서는 충분히 성공적인 선수생활을 보낸 셈이다.[5]
본의 아니게 한국선수들에게 피해(?)를 많이 줘서 한국에선 백만 안티를 가진 적도 있다. 찬스에 약한건 사실인 듯. 그렇다 해도 박찬호 등판때 유난히 평소보다 삽을 더 많이 펐긴 하다. 찬스때마다 삼진 아니면 병살로 찬물을 끼얹었으니...
선수시절에는 크게 임팩트를 주지 못했지만, 은퇴 후 해설가로서의 평가는 상당히 좋은 편이다. 다만 치열한 상황일 때 본능적으로 오바를 할때도 있다. 2006년에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한국팀 경기를 해설하러 오면서 박찬호와 반가운 재회를 하기도 했다.
한국프로야구에 외국인 선수 제도가 생긴 초창기 시절 박찬호 팬들에겐 욕먹어도 캐로스가 한국프로야구에 진출하면 괴물 성적을 낼거라는 떡밥에 많이 오르내렸다. 이 당시에는 메이저 주전이면 그쪽에서 성적이 별로여도 한국에서는 다 괴물급으로 할거라는 의견이 많았다. 알렉스 코라 같이 수비 원툴에 특징 없는 선수도 한국에 오면 알렉스 로드리게스가 될거라는 평이 있을 정도였으니... 다만 예나 지금이나 메이저리그에서 실패한 AAA 거포들이 한국야구에서 특급 성적을 기록하는 케이스는 흔하고, 더구나 지금보다도 격차가 컸던 90년대 후반 한국에서는 정확성이 다소 떨어진다 해도 메이저 30홈런 타자인 캐로스가 왔을경우 바로 1인자가 되었을거라는건 사실 의심하기 어려운게 사실이다. 캐로스가 무슨 크리스 카터 처럼 막장 정확성을 가진 타자도 아니고 어차피 정확성이라는것도 어느정도는 리그수준에 따라 상대적일 따름이다. 일례로 한국야구를 역대급으로 평정했던 에릭 테임즈가 메이저리그에서 보여주고 있는 정확성은 90년대 캐로스보다도 떨어진다.. 참고로 에릭 캐로스는 23세에 AAA에서 .316 .391 .551을 기록했고, AA에선 아예 3할 5푼의 고타율을 기록한 바 있다. MLB와의 격차가 너무나도 자명하다는 것을 여러 표본을 통해 알고 있는 오늘날 KBO 팬들 사이에서는 이러한 비교는 사실 떡밥거리도 안 된다. 오히려 앞서 가볍게 언급한 알렉스 코라가 A로드가 될 거라고 한 부분이 당시 리그 수준을 감안하면 정확한 말이다. 코라가 수비 원툴이었던 건 메이저 기준이고, KBO는 많이 수준이 올라온 2010년대 중후반에도 메이저 기준으로 수직 무브먼트 하나를 빼면 다 평균에서 평균 이하라는 평가를 받은 에스밀 로저스가 모든 면에서 특급인 압도적인 에이스로 군림했던 리그다. 90년대 후반 기준으론 메이저에서 한 자리를 먹고 있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KBO에서는 넘사벽의 특급 성적을 기록했을 거라고 유추하는 게 합리적.
4. 은퇴 이후
2004년 은퇴 이후, 이듬해부터 해설자로 제2의 인생을 살게 된다. 그렇게 20년을 FOX Sports에 몸 담고 있는 중인데, 2022년 3월에 다저스 지역 방송인 Sportsnet LA와 계약하며 19년 만에 LA 다저스로 돌아오게 되었다. [6][7]5. 여담
- UCLA의 경제과 학위를 가진 인텔리이기도 하다.
- 2010년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후보 중 한 명으로 선정되었으나 0.4%의 득표율로 광탈했다. 다만, 뉴저지 주 출신 야구선수들 사이에서는 레전드로 남아 있는데, 개인 통산 284홈런은 뉴저지 출신 메이저리거 중 최다기록이었다.[8] LA에서 기록한 270홈런은 팀 프랜차이즈 3위의 기록이다.[9]
- 프로 초창기때 선수들을 대상으로 시력 테스트에서 첫손에 꼽힐 정도로 시력이 좋았다고 한다. 그래서 스카우팅 리포트때도 초특급 타자 유망주로 분류된바 있다. 물론 시력이 좋은것과 선구안이 좋은건 별개라는 반면교사도 남겼다.
- 2000년생 아들 재러드 캐로스도 야구선수로 뛰고 있는데, 아들은 아버지와는 달리 투수의 길을 걸었고 재능이 특출나지는 않았던지 2022년 드래프트 16라운드까지 가서야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의 지명을 받았다.
6. 관련 문서
[1]
6살 때
샌디에이고로 이사해서 그 곳에서 자랐다.
[2]
샌디에이고에 위치해 있다.
[3]
특히 LA 다저스에서 입지가 갈수록 좁아졌던 2000년대 초반에는 박찬호가 등판할 때나 1루수로 나왔고 보통은
폴 로두카가 1루를 보는 일이 허다했다. 이후 엎친데 덮친격으로
숀 그린이 1루수로 가끔 나오면서 1루수로서의 효용성이 급격하게 떨어졌다.
[4]
다만 코너코의 경우 원래 포수였다가 3루수와 1루수를 겸업하는 형태로 커리어를 시작했는데, 이 당시 3루에도
아드리안 벨트레가 등장하는 바람에 붕 떠버린 상황이었다.
[5]
사실 통산 100개의 홈런도 넘기지 못하거나 한 시즌에 30홈런을 쳐보지도 못하고 은퇴하는 메이저리거들이 대부분이다. 참고로 KBO 리그에 스카우트 되는 메이저리그 출신 타자 용병들의 경우, 대다수가 통산 100홈런을 달성하지 못했고 한 시즌 30홈런을 쳐본 선수는 2017년 현재까지도 없다. 30홈런에 가장 근접했던 선수가 타자친화적인 구장 중 가장 악명높은
쿠어스필드에서 0.270, 28홈런을 기록한
윌린 로사리오와 볼티모어 시절 0.284, 27홈런을 기록한
KBO 한정 인간말종. 또한 캐로스가 투수친화적 구장인 다저스를 홈구장으로 쓰지 않고 중립적인 구장에서 뛰었다면 300홈런은 가볍게 달성했을 것이다. 또한 캐로스가 다저스에서 쳐낸 홈런 270개는 이 부문 3위다. 캐로스보다 다저스 유니폼을 입고 더 많은 홈런을 쳐낸 타자는 다저스 영구결번이자 명전에 헌액된
듀크 스나이더와
길 호지스 뿐이다!
[6]
조 데이비스가 그렇게 반겼다는 후문이 있다. 2014년부터 FOX Sports에서 호흡을 맞췄으니..
[7]
이 와는 별개로 Sportsnet LA는 캐로스 외에도
애드리안 곤잘레스,
돈트렐 윌리스,
제시카 멘도사, 호세 모타(前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중계진 사이드 리포터 및 전력 분석가)를 영입했는데, 평가는 좋지 않은 편이다.
[8]
현재 같은 뉴저지 출신 지명자인
마이크 트라웃이 이 기록을 깼다.
[9]
1위와
2위가 브루클린 다저스 시절의 선수들이란 걸 고려하면, 순수하게 LA 다저스 시절만으로 계산했을 때 LA 프랜차이즈 홈런 1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