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현 관련 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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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현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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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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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 | 1987 |
{{{#fff [[해태 타이거즈|해태 타이거즈]] 등번호 28번}}} | ||||
김윤환 (19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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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현 (1986~19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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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철 (1993~19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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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현 金大鉉 | Kim Dae Hye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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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62년 6월 16일 |
전라북도 전주시 | |
사망 | 1988년 8월 27일 (향년 26세)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전주고 - 원광대[1] |
포지션 | 투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 입단 | 1986년 1차 지명 ( 해태) |
소속팀 | 해태 타이거즈 (1986~19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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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전직 한국프로야구 선수. 젊은 나이에 교통사고로 갑자기 세상을 떠난 비운의 인물로, 본인이 의도한건 아니지만 후술되어있듯 오늘날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가 만들어지는 모태를 제공한 선수이기도 하다.2. 행적
전주고 - 원광대 농학과를 거쳐 1986년 해태 타이거즈의 1차 지명으로 입단한다. 첫 해는 쟁쟁한 입단 동기들에게 밀려[2] 1승도 거두지 못한 채 해태 2군에 짱박혀 있었지만, 두 번째 해인 1987년 9승 5패 3세이브, 평균자책점 2.78의 좋은 성적을 기록했고, OB와의 KBO 플레이오프에서는 해태 킬러로 유명한 OB 에이스 최일언과 두 차례 선발 대결을 펼쳐 모두 선발승을 따내며 해태의 KBO 한국시리즈 우승 디딤돌이 된다.그리고 이듬해는 후기리그 2/3을 소화한 시점(8월 27일)까지 7승 6패 3세이브를 기록하면서 생애 첫 10승의 꿈에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1988년 8월 27일 다음 경기 출전을 위해 자신의 차량으로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이동 도중 천안삼거리휴게소에 진입하려다 앞에 있던 트럭과 충돌하여 현장에서 즉사하고 말았다. 향년 27세. 당시 팀의 선배였던 이순철도 조수석에 동승하고 있었지만 그는 의자를 뒤로 젖히고 안전벨트를 맨 상태에서 토막 잠을 자고 있어서 화를 면했다고 한다.
문제는 구단 측이 소속 선수가 불의의 사고로 사망했음에도 유가족에게 아무런 지원을 하지 않고 사실상 토사구팽을 해버린 것. 이에 당시 프로야구계를 대표하던 스타였던 최동원은 김대현같은 비극이 있지 않게 하기 위해 선수회(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결성을 주도하게 되었다고 한다.[3] 함께 운동한 선수가 세상을 떠났지만 합법적으로 도울 방법도 없었고, 자신같은 스타야 걱정 없지만 2군 등 상당수 선수들은 생계 걱정을 해야 되는 처지를 보며 예전부터 야구선수의 최저연봉 하한선 제도, 연금제도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색깔론보다 동정론이 우세했던 당시를 기회로 생각했다고.
3. 여담
- 최동원과 선동열의 4번째 맞대결 때 해태 선발 투수가 바로 이 선수였다. 자세한 내용은 선동열 vs 최동원 문서 참조. 경기 당일 어깨 컨디션이 너무 안좋던 김대현이 1회 1타자만 잡고 선동열에게 넘겨준 것.
- 전설의 타이거즈에서 송유석이 술회하길, 본인은 온갖 잡일을 다하고 타자들에게는 하루종일 배팅볼만 던지던 배팅볼 투수로 일하다가 패전처리 투수부터 등판 기회가 주어졌는데, 김대현의 사망으로 투수가 부족해지자 더욱 중용됐다고 한다.
4. 관련 문서
[1]
농학과 82학번.
[2]
김정수, 차동철, 신동수.
[3]
다만 이때 선수회 결성은 구단의 방해로 결국 단기간만 유지하다 실패하고, 제대로 된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는 2000년에 결성된다.
[4]
훗날 김대현의 팀 후배가 되는
이강철이
이승엽에게 통산 1호 홈런을 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