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상진 관련 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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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진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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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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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 | 1987 |
{{{#fff [[해태 타이거즈|해태 타이거즈]] 등번호 49번}}} | ||||
결번 | → |
강상진 (1986~1988) |
→ |
김재덕 (1991~1998) |
{{{#000000 [[쌍방울 레이더스|쌍방울 레이더스]] 등번호 12번}}} | ||||
팀 창단 | → |
강상진 (1990~1991) |
→ |
이현택 (19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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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진 姜相眞 | Kang Sang-J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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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셍 | 1962년 4월 17일 ([age(1962-04-17)]세) |
전라북도 전주시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휘문중 - 전주고 - 고려대 |
포지션 | 투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 입단 | 1986년 1차 지명 ( 해태) |
소속팀 |
해태 타이거즈 (1986~1988) 쌍방울 레이더스 (1990~1991) |
가족 | 강윤호[1] |
[Clearfix]
1. 개요
前) KBO 리그 해태 타이거즈, 쌍방울 레이더스의 투수이다.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1978년 전주고가 재창단과 더불어 전국에서 중학교 유망주를 스카우트할 때 휘문중을 졸업하고 전주로 왔다.전주고등학교 재학 시절 송영복[2]과 배터리를 짰고 전국체전 우승을 이끌며 주목을 받았다. 당시 잡지기사
1979년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경북고와의 연장 10회말 2사 만루에서 김성래를 상대로 던진 5구가 그대로 만루홈런으로 연결되며 패했다.
1980년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전주고의 파란에 일조하며 팀을 8강에 진출시켰으나 김태업의 광주상고에 0-7로 패했다.[3][4]
1981년 고려대에 입학하여 야구부원으로 활동했다. 선동열과 동기생이었다.
1982년 제4회 부산시장기쟁탈 전국대학야구대회 결승전에서 인하대에게 8-3으로 승리하며 우승했고 우수투수상을 수상하였다. 강상진은 선발로 등판하여 7회까지 던졌고 양상문이 이어받아 경기를 마무리했다. 맹장 최남수 감독이 이끌던 고려대는 같은해 대통령기 전국대학야구대회(vs 동국대) 우승에 이어 시즌 2관왕이었다.[5]
2.2. 프로야구
1986년 해태 타이거즈 입단해, 한국프로야구 생활을 시작했으며, 쌍방울 레이더스를 거쳐, 1991년에 은퇴하였다.고등학교 1년 후배인 김대현과 해태 유니폼을 입었으나 김대현은 교통사고로 요절했다.
3.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기록 |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이닝 | 승 | 패 | 세 | 홀 | 승률 | ERA | 피안타 | 피홈런 | 4사구 | 탈삼진 | 실점 | 자책점 | WHIP |
1986 | 해태 | 10 | 22.2 | 1 | 0 | 0 | 0 | 1.000 | 5.16 | 24 | 2 | 13 | 9 | 15 | 13 | 1.54 |
1987 | 13 | 45 | 0 | 4 | 0 | 0 | 0.000 | 6.40 | 49 | 2 | 36 | 13 | 34 | 32 | 1.80 | |
1988 | 1 | 1 | 0 | 0 | 0 | 0 | - | 27.00 | 2 | 0 | 0 | 0 | 4 | 3 | 7.00 |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이닝 | 승 | 패 | 세 | 홀 | 승률 | ERA | 피안타 | 피홈런 | 4사구 | 탈삼진 | 실점 | 자책점 | WHIP |
1991 | 쌍방울 | 3 | 3.1 | 0 | 1 | 0 | 0 | 0.000 | 16.20 | 6 | 1 | 0 | 1 | 4 | 6 | 2.40 |
KBO 통산 (4시즌) |
27 | 72 | 1 | 5 | 0 | 0 | 0.167 | 6.75 | 81 | 5 | 56 | 23 | 59 | 54 | 1.82 |
4. 은퇴 이후
-
은퇴 이후, 모델 활동을 했다. 한 달에 CF를 15개나 찍었을 정도로 바빴으며 패션 모델로 패션쇼 런웨이에 선 적도 있었다. 모델계에 진출한 계기는 아는 형들이 연기자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강상진을 보고 '사진 한번 찍어봐라'라고 얘기한 것이었다. 사진을 찍었는데 잘생긴 외모 덕분에 전화가 쇄도하여 광고 제의를 많이 받았으며, 나이를 줄이고 탤런트 오디션에 응시했으나 강상진을 알아본 드라마 관계자로 인해 실패했고, 처음엔 이런 쪽에 문외한이라 대형 광고도 놓쳤다고
전설의 타이거즈에서 밝혔다.
- 이스타항공에 대외협력상무로 근무했으며, 이스타항공그룹 직장인 야구단 '이스타젯' 에서 총감독을 맡았었다. 구단주가 前 국회의원이던 이상직 회장이며 이상직과 강상진 그리고 이성윤 前 서울중앙지검장은 전주고등학교 58회 동기생이다. 전주고등학교 58회는 고등학교 평준화 정책이 전주시에서 시행되기 전 마지막으로 입학한(1978년) 기수다.
5. 여담
- 이장호의 외인구단에서 해태 팀 투수 대역을 맡았으며 송유석과 함께 촬영보조 활동도 했다. 영화에 출연한 배우 조상구와 지금도 교류한다고 언급했으며 마동석과도 형-동생 하는 사이다.
6. 관련 문서
[1]
2016년 부터 중산동 보안관으로 활동하고 있다.
[2]
포수이며 전주고-원광대-상업은행-상무를 거쳤다. 해태의 지명을 받았지만 입단하지 않았으며 전주고 감독으로 부임해 신용운과 최형우를 지도하였다.
[3]
결승전에서
천안북일고와 광주상고가 대결했으며 북일고가 승리했다.
전설의 타이거즈에서
장채근이
이상군과 함께 출연해 술회했던 게임이 바로 이 게임으로 2학년 포수였던 장채근이 볼을 더듬으며 주자들의 진루를 허용했고 후속 점수로 이어져 패했다.
[4]
봉황대기 1회전에서
선동렬은
경기고를 상대로
노히트 노런을 기록했다.
[5]
고려대 야구부는 국가대표급 멤버들이 득실했다. 김근석, 김정수, 김호근, 양상문, 최홍석(이상 79학번), 김광림, 진동한(이상 80학번), 강상진, 선동열, 정삼흠, 유지홍, 한영준(이상 81학번), 민경삼, 박노준, 서효인, 이효봉(이상 82학번), 노찬엽(83학번), 김응국, 조양근, 길홍규(이상 84학번), 이명수, 진정필, 황대연, 허정욱(이상 85학번) 등 훗날 프로야구 및 아마야구에서 활약하던 사람들이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