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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b82647><colcolor=#ece5b6> 금 제2대 황제
태종 | 太宗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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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075년 11월 25일 | ||
여진
회령부
회령현 완안부 (現 헤이룽장성 하얼빈시 아청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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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135년 2월 9일 (향년 59세) | ||
금
상경 회령부 황궁 명덕궁 (現 헤이룽장성 하얼빈시 아청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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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묘 | 화릉(和陵) → 공릉(恭陵) | ||
재위기간 | 암반발극렬[1] | ||
1115년 7월 23일 ~ 1123년 9월 27일 | |||
제2대 황제 | |||
1123년 9월 27일 ~ 1135년 2월 9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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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b82647><colcolor=#ece5b6> 성씨 | 완안(完顔) | |
휘 |
중국식 : 성(晟) 여진식 : 오걸매(吳乞買) |
||
부모 |
부황
세조 모후 익간황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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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자매 | 11남 중 4남 | ||
배우자 | 흠인황후 | ||
자녀 | 14남 | ||
묘호 | 태종(太宗) | ||
시호 |
체원응운세덕소공철혜인성문열황제 (體元應運世德昭功哲惠仁聖文烈皇帝) |
||
연호 | 천회(天會, 1123년 ~ 1135년) | ||
절일 | 천청절(天淸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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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금나라의 제2대 황제. 본명은 여진식으로는 완안오걸매(完顏吳乞買), 중국식으로는 완안성(完顏晟).2. 생애
형인 금태조 완안아골타의 뒤를 이어 즉위하였다.1123년 11월 북요를 침공해 무너뜨렸으며 북송과 동맹을 맺고 협공을 통해 1125년 거란의 마지막 황제인 천조제를 사로잡고 끝내 요나라를 멸망시켰다. 이후 송나라가 금에 약속한 세폐를 제공하지 않고 남경에서 일하던 거란족 관리를 재등용하는 등 금나라와의 제반 약속을 이행하지 않자 결국 송나라를 공격했다. 금나라의 군대가 수도 카이펑까지 육박하자 송나라는 금 5백만 냥과 은 5천만 냥, 우마 1만 필 등을 제공하고, 하북과 태원의 요충지 3진 33주 할양, 송나라 황제는 금나라 황제를 숙부라고 부른다는 굴욕적인 조건을 제시해 일단 화해했다. 송나라는 이 굴욕적인 관계와 감당할 수 없는 세폐 제공을 반전시키기 위해 다시 금나라 치하에 있는 거란족 장수들을 부추기는 한편 고려에도 사신을 보내 협공을 제의했다. 하지만 고려는 송의 요청을 거부했다.
한편 금 태종은 송나라가 약속 이행을 늦추고, 반격을 개시하려는 것을 알고 다시 군사를 일으켜 역으로 카이펑을 함락시켰다. 송나라는 황하 이북을 할양하는 조건으로 금나라에 화의를 청했으나 이번에는 금나라가 듣지 않았다. 금나라는 1127년 재물을 모두 약탈하고 제위를 양위한 휘종과 이어 즉위한 흠종을 비롯한 조씨 황족들과 진회 등을 포로로 끌고 가버렸다( 정강의 변). 이로써 북송은 9대 168년 만에 멸망하는 비운을 맞았다.
1127년 2월 금 태종은 휘종과 흠종의 제위를 폐지한다는 칙서를 내리고 그들을 평민으로 강등시켰다. 그리고 두 북송 황제와 황후들에게 용포를 벗고 백성의 옷을 입으라는 칙령을 내렸다. 휘종과 흠종은 평민 백성의 소복을 입고 금 태조의 묘 앞에 꿇어 앉아 견양례(牽羊禮)를 올린 후에 금 태종을 알현하였다. 금 태종은 휘종에게는 혼덕공(昏德公, 덕을 망친 자)이란 칭호를 내렸고, 흠종에게는 중혼후(重昏侯, 덕을 거듭 망쳤다)라는 칭호를 내리며 그들을 조소하였다. 공과 후는 작위로 보자면 왕보다도 아래이니, 제왕의 지위도 부정하는 것과 동시에 강등해버린 것이다.
이후 금나라 군대는 장강까지 진격하지만 더 이상 남진하지 못했다. 그 남쪽에는 송나라 황족 중에서 유일하게 금나라에 잡혀가지 않은 송 휘종의 아들 강왕( 송고종)이 남경 응천부에서 황제로 즉위해 남송으로 명맥이 이어진다.
금 태종은 점령지에 초나라라는 괴뢰국을 세우려고 했지만 진회와의 협상으로 중단한다. 한편 진회는 약속대로 내려가 악비 등의 주전론자를 죽이는 등의 공포정치를 실시했다. 이로써 진회는 후일 민족 반역자( 한간)로 죽어라 욕을 먹게 된다.
한편 금 태종은 고려 인종에게 사신을 보내 "거란의 천조제가 서하로 도주한 사실을 알리려고 사신을 보냈는데 국경에서 접대를 불손히 해 고려에 이르지 못했다. 고려가 거란을 섬기는 예로써 앞으로 금나라를 섬겨야 할 것이다. 태조의 서거로 거란 천조를 잡지 못했다."고 하였다. 요나라 황제도 도주했으니 이제는 고려가 금나라에 사대하라는 것과 자신의 황제 등극을 통보하는 내용이었다. 과연 금 태종은 1125년 무주에서 요나라 황제를 사로잡으니 요나라는 야율아보기의 건국 후 9대 219년 만에 멸망하고 말았다.
1125년 5월 금 태종은 고려에서 온 국서를 접수하기를 거부했는데, 그 이유는 국서의 서식이 표(表)가 아니고 또 고려 왕이 신(臣)을 칭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금나라는 고려에 대해 요나라를 섬겼던 것처럼 금나라를 섬기라고 해 칭신사대(稱臣事大)의 관계를 요구했는데, 이것을 기정사실화하려는 것이었다. 고려는 이에 대해 한동안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있다가 이듬해 1126년 조정 회의에서 금나라와의 관계 설정 문제를 협의했다. 대다수는 여진족이 오랑캐이므로 상대할 수 없다고 했으나 이자겸과 척준경 등이 "금나라가 예전에는 작은 나라로서 고려와 요나라를 섬겼으나 지금은 강대해져 요나라와 북송을 멸망시켜 정치적, 군사적 강국이 되었고, 우리와 접경해 제반 정세가 사대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또한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섬기는 것은 선왕의 법도이니 마땅히 먼저 사신을 보내 예를 지키는 것이 좋다"고 했고 인종은 이 주장을 채택했다. 이어 4월 인종은 정응문 등을 금나라에 보내 자신을 신(臣)이라 해 사대의 예로 국교를 맺게 되었다.[2]
술 마시고 싶어서 국고 썼다가 신하들에게 곤장 맞은 일화도 있다. 초기의 금나라는 송과의 접전으로 인해 국고가 한푼이라도 아까운 형편이었기 때문에 금 태조가 사사로운 일에 국고를 쓰는 걸 금지하고 검소하게 사는 것을 선포했지만, 동생인 금 태종 때 송나라를 밀어내고 긴장이 풀렸는지 몰래 술 마시는 데 국고를 썼다가 이를 들켜서 신하들에게 곤장을 20대 얻어맞았다. 아직 중앙집권이 이뤄지지 않아 부족 국가와 같은 면이 남아있던 초창기 금나라의 특징을 대변해주는 일화이기도 하다.
자신의 장남에게 제위를 물려주려고 했으나 실패하였다. 왜냐하면 태종의 권력 기반은 아직 완전하지 못한 상태였고 부자 세습은 여진족 장로들에게 맹렬한 반대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결국 그는 형의 적손인 금희종에게 양위한다.[3][4]
1135년 정월 금 태종은 병으로 명덕궁(明德宮)에서 사망하니 그의 나이 61살이었다. 시신은 화릉(和陵)에 매장했으나 해릉양왕에 의해 무덤이 대방산(大房山)으로 옮겨졌다. 이를 차릉(茶陵)이라 한다.
금 태종의 자손은 매우 많았으나, 해릉양왕이 1150년 모두 몰살시킨 탓에 후계가 끊기고 말았다. 요나라와 북송의 입장에서는 침략자의 업보로 느껴질 수도 있는 일이다.
3. 여담
명군이지만 이런 금 태종을 애먹게 한 존재도 있었다. 당시 금나라 북쪽에는 카불 칸에 의해 카마그 몽골이 일어난 상태였는데 하필 금나라와 송나라가 싸우고 있던 때라 몽골이 어부지리로 금나라를 털었다. 그래도 일단 이때는 카불 칸도 금 태종이 귀환하자 금나라의 종주권을 인정해줘서 좋게좋게 끝났다. 그러나 금 태종 이후 금 희종때 금나라는 몽골 초원 내의 내분을 이용해 몽골의 기세를 꺾는데 성공한다.4. 기타 창작물
코에이의 수호전을 소재로 한 게임인 < 수호전 천명의 맹세>와 < 수호전 천도 108성>에서도 등장한다. 천명의 맹세에서는 1125년 1월, 1126년 1월에 얼굴을 비추면서 송나라에 대한 얘기를 하다가 금나라 대군을 이끌고 그대로 송나라를 멸망시킨다.또한 천도 108성에서 게임을 하다 보면 가끔 '정체 불명의 이민족'이란 이름의 전쟁 관련 도움말 캐릭터로 나타나는데 이 사람이 바로 금나라 태종이다. 정체 불명의 이민족 가이던스 마지막에 밑줄 쳐진 문장이 있는데, 여기에 마우스 포인터를 갖다 대면, "우리 금나라가 힘을 기를 때까지 말이지"라고 써 있는 풍선 도움말이 뜨는 것으로 그의 정체를 알 수 있다. 게임을 오래 끌면 한번 나타나서 "송나라의 부는 정말 화려하군"하며 송나라 영토에 욕심을 내는데, 일정 기간이 지나면 금나라 대군을 이끌고 남하, 송나라를 공격한다. 이 이벤트가 나오면 '금국 침입'이라는 동영상이 나오고 배드 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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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음 재위 계승 내정자라는 뜻의 여진어로 한자어
황사(皇嗣)라는 뜻이다.
[2]
완안아골타와 그의 형인 오아속이 바로 고려와 동북 9성을 두고 치열하게 전투를 벌였던 당시의 완안부 수장이었다. 이 때 나이를 생각한다면 오걸매 역시 고려와 맞서 싸웠을 수도 있다. 그렇게 고려에게 고전하던 형세를 반 세기도 지나지 않아 사대관계를 맺으며 역전시킨 것.
[3]
여담이지만
여진족의 후손인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는 처음부터
부
자 세습에 성공했다. 그에 힘입어
강희제 때는 장자 세습의 원칙까지 도입하려 했으나 이내 무산되었다.
[4]
사실 부자세습이 온전하게 된 것도 아니었는데 원래 누르하치 이후 적자인 도르곤이 물려받아야 했으나 서자인 홍타이지(숭덕제)가 힘으로 빼앗았고 푸린(순치제)도 사실 홍타이지가 물려준 것이 아니라 홍타이지 급사 후 혼란을 틈타 어부지리로 자리에 오른 것이다. 제대로 부자세습이 된 것은 현엽(강희제)부터인데 이도 순탄하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