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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텔레콤 T1/스타크래프트/2008년 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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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텔레콤 T1/스타크래프트
2008년 이전 · 08-09 · 09-10 · 10-11 · 프로리그 시즌 1 · 프로리그 시즌 2 · 12-13 · 2014 · 2015 · 2016


1. 창단2. 최고의 리즈 시절이었던 2004년 ~ 2006년 상반기3. 암흑기의 시작이었던 2006년 하반기4. 더 부진해진 2007년5. 마침내 암흑기에서 빠져나온 2008년 상반기

1. 창단

일단 팀의 역사를 거스르면 2002년 말 아이디얼 스페이스에서 나온 감독 겸 매니저인 주훈과 선수 임요환 등이 주축이 되어 이윤열 홍진호 및 여타 선수들을 엄청나게 갉아먹고 있던 송호창의 아래에서 나와 동양 오리온[1]을 창단한 것이 그 시초이다.[2]

그 후 2003년 가을, 동양제과[3]와 스폰서 계약이 끝나면서 4U(4Union)라는 비스폰서 팀으로 활동하다가 2004년 4월에 SK텔레콤이 인수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4][5]

2. 최고의 리즈 시절이었던 2004년 ~ 2006년 상반기

사실 프로리그 초기이자 전성기였던 2004년에는 온게임넷 프로리그에서 의외로 아쉬운 성적을 냈다. SKT 창단 이후 처음으로 참가한 팀 단위 리그인 SKY 프로리그 2004 1Round는 11개팀 3전 2선승제 풀리그로 1, 2위가 결승전에 진출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는데, 1승 3패 -4라는 부진한 성적으로 시작하며 결승 진출권에서 많이 멀어졌었다. 그런데 이후 6연속 2:0 승리라는 믿을 수 없는 질주로 기적같이 2위에 등극하며 결승전에 진출했고[6] 1년전 KTF EVER Cup 온게임넷 프로리그 결승전 상대인 한빛 스타즈와 맞서게 되었다. 부산 광안리해수욕장에서 벌어진 역사적인 7전 4선승제 결승전에서 3승 1패로 우위를 점하며 1년전처럼 4:1 압승을 거두는듯 했지만, 거짓말같이 5~7세트를 전부 패배하여 준우승을 기록하며 한빛이 연출한 드라마의 조연이 되고 말았다. 이후 SKY 프로리그 2004 2Round SKY 프로리그 2004 3Round는 각 리그당 5개팀씩, 총 10개팀이 참가하는 양대 리그 체제로 진행되었는데, 새턴리그에 속한 2라운드에서는 2승 6패 최하위를 기록하며 머큐리리그 최하위인 헥사트론 드림팀과 3라운드 잔류 결정전을 펼쳤고 3:2 신승을 거두며 어렵게 3라운드에 잔류했다.[7] 그러나 머큐리리그에 속한 3라운드에서도 3승 5패 4위라는 부진한 성적을 기록하며 포스트시즌에 진출에 실패했고 결국 2,3라운드의 저조한 성적이 발목을 잡아 SKY 프로리그 2004 그랜드 파이널 진출에 실패했다.

2004년 온게임넷 프로리그 성적은 아쉬웠지만 MBC GAME 팀리그에서 이를 어느정도 만회했는데, Tucson MBC GAME 팀리그에서 한빛 스타즈를 4:3, SouL을 4:0으로 꺾고 승자조 결승에 진출했지만 슈마 GO에게 3:4로 패배하며 패자조 결승에 내려갔다. 그러나 KTF 매직엔스를 패자조 결승에서 4:1로 꺾고 최종 결승에서 다시 슈마 GO를 만나게 되어 당시 팀리그 2회 우승과 1회 우승을 기록한 팀들간의 그야말로 정상결전이 성사되었다. 그리고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팀리그 사상 최고의 명승부로 꼽히는 혈전이 벌어졌고, 슈마 GO의 승자조 어드밴티지로 인해 선봉으로 지명된 에이스 최연성 전상욱에게 1세트에서 스나이핑 당하며 물러난 불리한 상황을 김성제, 임요환, 박용욱의 활약으로 이겨내고 극적인 4:3 승리를 거두며 4U 시절에 해냈던 LG IBM MBC GAME 팀리그 우승에 더해 팀리그 2연속 우승에 성공했다. 아쉽게도 다음 시즌 8개팀 풀리그 방식으로 진행된 MBC Movies MBC GAME 팀리그에서는 정규시즌 6위로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며[8] SKY 프로리그 2, 3라운드의 부진한 성적과 함께 우울하게 2004 시즌을 마무리했다.

그렇게 2004년을 부진한 성적으로 마치자 2005년 스토브리그에 대형 영입을 감행했다. 당신은 골프왕 MSL에서 우승과 IOPS 스타리그 04~05 3위를 차지하며 게이머 생활의 최전성기를 보내고 있던 저그 박태민과, 프로리그에서 준수한 성적을 냈고 IOPS 스타리그 04~05에서 8강과 당신은 골프왕 MSL 패자 8강 2차에 진출하며 두각을 나타내던 유망한 테란 전상욱 GO 팀에서 영입한 것. 그리고 전설적인 한 해가 시작되었다. 역대 최초 온게임넷 MBC GAME의 통합 프로리그이자 에이스 최연성이 이중 계약 사건으로 인해 참가하지 못했던 SKY 프로리그 2005 전기리그에서는 10전 전승으로 1위에 등극한 라이벌 KTF 매직엔스에게 밀렸지만 8승 2패 2위라는 좋은 성적으로 정규시즌을 마쳤고, 플레이오프에서 GO에게 4:1로 압승을 거둔 뒤 부산 광안리해수욕장에서 펼쳐진 결승전에서 KTF 매직엔스에게 완벽한 저격 엔트리와 전략으로 역시 4:1 압승을 거두고 창단 첫 프로리그 우승에 성공했다. 최연성의 징계가 풀린 SKY 프로리그 2005 후기리그에서는 초반까지만 해도 1승 4패로 좋지 않은 출발을 했지만, 이후 13승 1패라는 무시무시한 성적을 거두며 정규시즌 1위로 결승전에 직행했고, 3위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해 GO와 KTF를 꺾는 돌풍을 일으키며 결승에 올라온 삼성전자 칸에게 0:2로 밀리며 시작했지만 침착하게 4:3 역전승에 성공하며 후기리그마저 챔피언을 먹었다. 전/후기리그 우승이라는 압도적인 성적을 바탕으로 직행한 SKY 프로리그 2005 그랜드 파이널 결승전의 상대는 라이벌 KTF 매직엔스였고, 4:2 승리로 또다시 우승하여 2005 시즌 프로리그를 독식하면서 2005년을 완벽한 본인들의 해로 만들었다.

다음 시즌인 SKY 프로리그 2006 전기리그에서는 11개팀 모두가 스폰서를 획득하며 다른 10개팀들의 더욱 더 거센 도전을 받게 되었고, 마지막까지 상위권에서 치열한 각축전을 벌인 끝에 결국 정규시즌 최종전에서 팬택 EX에게 3:0 승리를 거두고 7승 3패 1위로 2연속 정규리그 챔피언을 먹고 곧장 결승에 직행했다. 결승 상대는 4위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해 KTF와 CJ를 꺾으며 거침없이 진격하던 영건 군단 MBC GAME HERO였고, 1세트에서 주장 임요환이 당한 패배를 딛고 내리 4연승을 거두어 또다시 우승, 오버 트리플 크라운이라는 엄청난 업적을 완성했다.

이때의 SKT는 2005년부터 2006년까지 그야말로 리그의 제왕으로 군림하던 팀으로, 당시 오버 트리플 크라운[9]의 영광은 현재까지도 많은 팬들의 뇌리 속에 박혀 있다. 많은 이들이 e스포츠 팀 단위 대회 역사상 가장 압도적인 포스를 보여준 팀으로 이 시기의 SKT를 꼽는다. 당시 주제 무리뉴 감독의 부임 이후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정ㅋ벅ㅋ했던 첼시 FC와 비교되어 e스포츠계의 첼시로 불리기도 했다.[10]

그 당시에는 비단 프로리그 뿐만 아니라 선수들의 개인리그 성적도 아주 좋았다. 또한 단일 개인리그 시즌에 가장 많은 선수를 출전시킨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11] 이 시기 SK의 2006년 신년 시무식에서 이사회와 임직원들에게 SK그룹 내 최고의 성공 사례이자 모범 사례로 소개될 정도였다. 같은 스포츠 모기업 야구단 SK 와이번스도 분위기는 좋았는데, 기분 좋게 최종전까지 2위를 찍었으나, 어떤 로또의 삽질로 3위로 떨어져 오히려 욕 바가지로 먹은 건 안 자랑.

당시 팀컬러는 임요환 - 최연성 본좌 라인과 많은 중견 테란을 가진 테란 제국 또는 T1테란. 그래서 '테란 1시'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12] 참고로 이런 테란라인은 이후로도 드래프트 세대에서 잠시 주춤했다가 다시 정명훈, 최호선 등으로 테란라인이 이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진정한 후계자는 이영호다.[13]

임요환 - 최연성 - 전상욱 - 고인규라는 테란라인 완성은 오버 트리플 크라운이라는 기록을 만들었다. 상대적으로 약했던 저그 프로토스도 저그 쪽은 박태민, 성학승, 프로토스 쪽은 박용욱, 김성제 등 강한 카드 하나둘 이상씩은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3. 암흑기의 시작이었던 2006년 하반기

이렇게 2006년 여름에 오버 트리플 크라운이라는 대업을 달성하며 영원할 것만 같았던 SKT의 시대는 임요환 공군에 입대해서 잠시 팀을 떠난 2006년 하반기에 끝난다.[14]

임요환의 공백도 문제였지만, 최강 최연성의 부진[15]이 겹친데다[16] 임요환을 잇는 팀 내 기둥이 되어야 할 주장들인 박용욱과 최연성[17]은 불화설까지 뇌피셜이 나왔다. 게다가 같은 시기에 펼쳐진 곰TV MSL 시즌1/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3 기간에는 개인리그 선택과 집중이라는 괴악한 방침을 들고 나왔지만[18], 정작 예선에 출전한 선수 7명 중 1명 빼고 다 탈락했다. 온게임넷 쪽은 아예 전멸.[19] 이후 팬들은 이 사건을 두고 선택과 떡실신이라며 비꼬기도 한다. 관련 짤방 by 노동 8호. 게다가 애당초 목적이었던 SKY 프로리그 2006 후기리그에서는 7위로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SKY 프로리그 2006 통합 챔피언전에서도 MBC GAME HERO에게 3:4 패배, 2회 케스파컵에선 16강 광탈하는 등 팀단위 대회 성적도 패망하면서 먹튀원이라는 별명을 얻는다. 게다가 이 무렵에는 대부분이 개인리그에서도 제대로 활약들을 못했고, 이는 2007년까지 이어진다.

기뉴다 스진남에 출연한 박재혁의 증언에 따르면 2006년에서 2007년이 최적화 게임의 시대로 갑자기 바뀌었기 때문에 일어난 결과라고 한다. 기존 주전 멤버들이 본진 플레이와 소규모 컨트롤에만 익숙하고 최적화 개념을 못받아들여 트렌드를 못 쫓아갔다고... 도재욱은 당시를 회상하며 당시 주전 토스가 앞마당의 캐논 12개를 박았는데 프로브는 7마리가 채취하는 걸 보고 속으로 '어떻게 이기려고 저러는거지?'라며 의아해할 정도였다고 한다. 당시 선배들이 일꾼 찍는 개념이 너무 안 좋았다고... 거기다 오버 트리플로 인한 나태함, 대회 직전에만 연습을 하고 평소 기량은 등한시하는 것까지 겹쳐 드래프트 세대가 자리잡기까지 암흑의 세월을 보내게 된다.

4. 더 부진해진 2007년

이후 2007년 내내 개인리그와 프로리그에서 하나같이 저조한 성적들을 찍다가[20][21][22] 끝내 주훈 감독과 코칭 스태프가 전원 해임되는 사태까지 맞게 된다.[23][24][25][26]

2020년 3월, 김성제 스타로드에 출연해 코칭스태프 전원 경질 직전의 사정을 보다 상세히 밝혔다. 당시 SKT의 코치진은 선수들에게 개인리그보다 프로리그를 강요했고, 김성제 본인은 개인리그에 진출했음에도 불구하고 연습 시간이 적어 맵 숙지도 안 된 상태에서 경기에 나선 적도 있었고, 또한 선수 출전 방식도 오락가락이었다고... 이에 대해 선수들이 주훈 감독에게 불만을 호소해도 주훈에게 실권[27]이 없었는지 바뀌는 것은 전혀 없었고 보다 못한 익명의 한 선수가 SKT 단장에게 내부고발을 해서 코칭스태프 및 프런트 전원 물갈이가 이뤄진 것이라고... 이렇게 따지면 원흉은 감독이 아닌 당시 SKT 수석 코치 or 구단 수뇌부라는 게 정설.[28]

이런 와중이던 2007년 상반기, 웨이버 공시 사건으로 위기를 맞은 투신 박성준을 영입[29]하기도 했는데, 생각보다 활약이 저조했다. 참고로 이때 최연성+박성준 팀플레이가 나온 적도 있다. 물론 경기는 승. 결국 여러 문제들이 겹쳐 1년 만에 박성준은 STX SouL로 다시 이적했다. 근데 박성준은 이적 후 참여한 첫 온게임넷 스타리그 EVER 스타리그 2008에서 우승하며 골든 마우스를 차지했다. 그것도 친정팀 SKT의 후배 도재욱[30]을 3:0으로 꺾고 말이다.

당시 박성준은 하락세가 심하여서 많은 부진을 겪고 있었고, 그를 SKT에 영입하자고 제안한 서형석 코치가 성적 부진으로 팀에서 경질되면서 박성준 자신의 입지가 크게 좁아졌다고 언급하였다. 전팀이였던 MBC GAME은 박성준이 고참 역을 했지만 SKT는 박성준보다 고참들도 많았고, 팀 분위기가 박성준과도 어울리지 않았던 게 가장 큰 이유였다고 한다.[31]

5. 마침내 암흑기에서 빠져나온 2008년 상반기

이후 MBC GAME HERO의 에이스 선수 김택용을 영입[32], 곧이어 역시 엠겜 소속이던 박용운 코치 감독 대행으로 영입, 더불어서 정규시즌 에이스로 부상한 도재욱의 성장과 전상욱의 부활, 정명훈이라는 대형 신인 발굴 등에 힘입어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8에서 SKY 프로리그 2006 전기리그 이후 4시즌만에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그러나 날카로운 막판 상승세를 보이던 온게임넷 스파키즈(後 하이트 스파키즈)에게 플레이오프에서 에이스 결정전 혈전 끝에 김택용이 이승훈 박찬수를 상대로 하루 2패를 당하면서 결승 진출에는 실패하였다.

한편 2006년 가을, 팀의 기둥이자 주장이었던 임요환이 군 복무를 위해 공군 ACE에 입대하고 최연성, 전상욱, 고인규 등 주전 테란들이 모두 부진에 빠지자, 테란 명가라는 호칭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나마 2008년 정명훈을 발굴해 낸 것이 위안이었으나, 정명훈 이후에는 스타크래프트 2 전환 후 영입된 이신형, 조중혁 이전까지 딱히 주목할 만한 테란 플레이어가 안 나왔다. 반면 2008년 MBC GAME HERO에서 김택용을 영입하고, 팀 내에서 도재욱을 육성하고, 박용욱이 프로토스 코치로 활약하자 2008년 이후로는 오히려 SKT는 테란이 아닌 토스 명가로 거듭났다. 김택용, 도재욱이 은퇴한 스타크래프트 2 이후에도 정윤종[33], 원이삭, 김도우[34] 등 수준급 토스들을 여럿 보유했다.

이 팀의 주요 전력을 형성했던 도재욱 - 김택용 - 정명훈은 줄여서 도택명으로 자주 불렸으며, 'T1 저그' 탈출기를 찍은 박재혁이 살아나면서 한때 도택혁명이라는 그럴싸한 칭호도 생겼지만, 박재혁은 금세 그냥저냥한 실력을 보여주면서 예전으로 회귀했다.


[1] 검색을 해도 리다이렉트가 된다. [2] 당시 아이디얼 스페이스의 감독은 선수 개인 매니저 같은 느낌의 아류로 남아있었다. 아니, 최초로 시도를 했다고 보면 된다. [3] 임요환을 개인 연봉 1억원으로 후원했는데, 이것은 e스포츠 사상 첫 억대 연봉 선수로 발돋음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 전에는 봉준구를 개인 스폰서로 한 적이 있었다. [4] 과거 4U 시절엔 유니폼이 단 세 벌이었는데, 종류는 장신자들이 입는 큰 사이즈와 단신자들이 입는 작은 사이즈 두 종류뿐이었다고 한다. 이 때 한 벌에 50만원 정도 하는 유니폼을 팀원 모두에게 해줄 수가 없어서 이창훈, 최연성용으로 한 벌, 임요환, 김현진용으로 한 벌, 김성제, 박용욱용으로 한 벌 이렇게 세 벌만 만든 덕분에 팀리그 때 출전 선수 한 명만 유니폼을 입고, 나머지는 모두 사복이었던 것을 볼 수 있다. 박용욱은 이 유니폼이 나오기 전에 아무 문양도 없는 우주복이라 불렸던 은색 유니폼을 입고 나온 적도 있었을 정도. 사실 이 시기는 주훈, 임요환의 개인 사비와 각 대회 상금들을 각출해서 운영비로 썼던 시기여서 정말 듣다 보면 눈물 나던 시기이다. 팀 스폰의 지원이 없다 보니 먹을 게 없어서 당대의 팬들이 팬 카페에서 반찬을 보내주기도 했고, 고장났는데 돈이 없어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경기장까지 간 적도 있다. [5] 그리고 이 시기, 임요환에게 억대 연봉을 주겠다며 스카웃 제의를 한 여러 기업 구단도 있었다. 그 중 임요환의 평생 라이벌인 홍진호가 속한 라이벌 팀인 KTF 매직엔스(後 kt 롤스터)도... 하지만 임요환은 "기업 팀이 늘어야 e스포츠판이 커진다."며 거절했고, 결국 SK텔레콤이라는 기업이 e스포츠 팀을 창단하는 계기가 되었다. SKT의 창단 이후 기업들의 연속적인 e스포츠 구단 창단 러시를 생각해보면, 임요환이 한국의 e스포츠를 만들었다는 말이 결코 과언이 아니다. 못 믿겠으면 여타 유튜브로 검색을 해 보시라. 거기서 이미 임요환이 있어서 스타크래프트 스타리그/프로리그가 생겼다는 말도 뻥은 아니라는 게 팩트로 증명된 사실이다. [6] 이후 프로리그에서도 시즌 초반에 삐그덕거리다 중후반에 스퍼트를 내어 정상급 성적을 내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었다. 이른바 슬로우 스타터 T1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시즌. [7] 잔류결정전에서 패배한 헥사트론은 1라운드 최하위를 기록해 2라운드에 참가하지 못한 Plus와 3라운드 최종 잔류결정전을 벌였고, 결국 3:2 신승으로 살아남았다. [8] 정규시즌 최종전에서 GO와 대결하게 되었는데, GO에게 승리를 거둔다면 정규시즌 1위로 결승전에 직행하지만 패배한다면 포스트시즌도 진출하지 못하고 탈락하는 극단적인 상황이었다. 그리고 1세트에서 선봉 임요환 이재훈에게 승리를 거두어 좋게 시작했지만, 중견으로 나온 서지훈 임요환, 박용욱, 최연성을 전부 잡아내어 올킬을 기록하며 지난시즌 결승전의 복수를 당하고 탈락했다. [9] SKY 프로리그 2005 전기리그/후기리그, 그랜드 파이널, 2006 전기리그 우승을 이르는 말. [10] 아울러서 개인리그도 이 오버 트리플 크라운 시기와 겹친 시기에는 굉장히 준수했다. 본선에 진출한 선수들도 가장 많았고, 팀킬도 전성기 시절의 한빛 스타즈 못지 않게 초기에 매우 많았다. EVER 스타리그 2005 박태민[35] 4위, 우주닷컴 MSL 최연성 4위, So1 스타리그 2005 임요환 준우승, 최연성 3위, CYON MSL 최연성 3위, 성학승 4위,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5 최연성 우승, 프링글스 MSL 시즌1 전상욱[36] 3위, 박용욱 4위. EVER 스타리그 2005부터 프링글스 MSL 시즌1까지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1을 제외하면 T1 소속 선수가 최소 1명 이상은 4위 이내에 입상하였다. 그리고 웬만한 오버 트리플 크라운의 주역 선수들 대부분이 최소 1번 이상 개인리그 4강에 진출한 것도 굉장히 고무적인 성과다. [11] 프링글스 MSL 시즌1. 16명의 참가자 중 딱 절반인 8명이 SKT 소속이었다. 그러나 정작 팀킬로 하위 라운드에서 무더기로 탈락했고, 4강에서는 두 선수가 각각 마재윤 강민에게 패하면서 결승에는 한 명도 올라가지 못했다. [12] 팀리그 시절 소울전에서 임요환이 1시 방향에 몰래 멀티를 했는데 캐스터가 "1시에 몰래 멀티 아직 못 봤나요! 테란 1시!"라고 말한 것에서 유래. 임요환이 이기기는 했지만 사실 경기 내용과는 별 상관없고 그냥 의미를 알 수 없는 팀명보다 입에 잘 붙어서 쓰이게 되었다. 실제 테란 제국이기도 했고... [13] 실제로 이영호 자신이 최연성의 빌드로 꿀빨았다고 할 정도로 최연성을 벤치마킹을 많이 했다고 한다. 최연성도 본인이 빌드 짜서 선수들에게 알려주는데도 자기네 선수들은 실제 경기 때 버벅거리는데 이영호가 그 빌드 보고 본인네 선수들을 이겨버려서 속이 많이 탔다고 이야기하기도 하며, 그러면서도 본인의 진정한 후계자가 이영호라고 말할 정도로 이영호를 칭찬도 많이 하고 팀 교육 때 의식도 많이 하기도 했다. [14] 공군 ACE의 탄생은 그야말로 임요환이 입대하면 이후의 후배들을 병역과 현역 연장의 길을 만들어 주는 길이였다. 그야말로 스타판 노블레스 오블리주. [15] 오피셜로는 샤워를 하다가 부상을 당했다는데, 이때부터가 원인이였다는 썰이 있다. 그런데 최연성이 이런 사고를 당한 때는 2007년 12월이었다. 이후 최연성은 이런 것도 마다한 채 이 무렵의 유일한 개인리그였던 곰TV MSL 시즌4에 출전했는데, 권수현을 이기면서 출발은 좋았으나, 승자전에서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 같은 A조였던 신예 이영호한테 패하고 최종전에서 다시 만난 권수현한테 복수를 당하며 16강 진출에 아쉽게 실패했고, 얼마 안 가 최연성은 은퇴를 선언하였다. 아무튼 최연성은 이미 2007년부터 슬럼프에 빠진 상태였고, 또한 최연성이 저렇게 다친 시기를 고려해 보면 저 말은 왠지 설득력이 떨어진다. [16] 따져 보면 비단 최연성 뿐 아니라 박용욱, 박태민, 김성제 등 오버 트리플 크라운을 이끌었던 주역들이 모두 2006년 이후로 모조리 기량이 하락세를 보였다. 그나마 기량을 유지했던 선수들은 테란 유저들 중 막내라인인 전상욱, 고인규 정도였다. 그런데 이 두 사람마저 2007년을 넘어서며 하락세를 맞이했다. 뭐 물론 이후에 다시 한 번 재기를 했지만... [17] 왜 주장이 둘이냐면, SKT는 SKY 프로리그 2005 전기리그부터 '종족별 주장제'라는 제도를 시행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과 더불어서 팀원 전체를 아우르는 총주장까지 있었다. 이 제도는 주훈을 포함한 코칭 스태프 전원이 해임되고 박용운이 새로이 부임하면서 없어졌다. [18] 양대 개인리그인 MSL 온게임넷 스타리그 중 하나만을 선택해 참가하고, 나머지는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에 집중하겠다는 전략. 프로리그보다 개인리그를 더 선호하고 더 높게 쳐 주는 대다수 e스포츠 팬들 입장에선 정말 이뭐병스러운 방침이었다. [19] Daum 스타리그 2007에서는 최연성만 진출하고 나머지 멤버들은 듀얼 토너먼트에서 광탈했다. 그런 최연성도 이 대회가 마지막 스타리그였던 것이 함정. EVER 스타리그 2007에서는 단 2명밖에 배출하지 못했다. 투신 박성준이 이적해 왔고, 그나마 신예 오충훈이 있었으나, 둘 다 얼마 안 가 방출되었다. 두 선수 모두 A조와 B조로 배정을 받았으나, 1승 2패로 나란히 광탈하는 면모를 보였다. 그나마 반대 방송국의 MSL은 적어도 매년 1~3명은 꾸준히 출전했었다. 이조차도 곰TV MSL 시즌2부터는 본선 진출 선수가 기존의 16명에서 32명으로 배로 늘어난 덕에 조금이나마 행운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이었다. [20] 2007년 개인리그에서 4강 이상에 올라간 선수가 박태민 한명 뿐이었으며,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는 4강은커녕 본선에 한명도 못올라갈 걱정을 해야 할 정도였다. 다행히 최연성과 오충훈이 이런 대참사를 막기는 했으나 둘 다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광탈했다. 이러다 보니 아예 경기를 안 보는 팬들이 속출하는 등 팬덤 이반도 심각한 수준이었다. [21]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 후기리그에서는 시즌 중반의 5연패 이후에 코칭스탭이고 선수들이고 팀원 전원이 삭발을 하기까지 했다. 이 와중에 전상욱만은 유일하게 안 했는데, 전상욱은 이 무렵에 부친상을 당해서였다. 본인도 머리를 깎고 싶었지만 감독이 안 해도 된다고 했고, 또한 실제로 상중에는 머리, 손톱, 발톱 다 깎는 것이 아니기에... 이후 2연승을 하며 분위기가 상승하나 싶더니만 다시 5연패를 기록하는 등 안 좋은 모습들만 계속해서 보였고, 결국 SKT의 시즌 최종 성적은 10위. 만년 약체 eSTRO와 군인팀 공군 ACE가 각각 11위와 12위를 찍어줬기에 망정이지, 저 두 팀들의 원래 꼴들을 보면 SKT가 사실상 이 시즌 꼴찌나 마찬가지였다. 참고로 바로 위는 라이벌 KTF. [22] KT도 이영호가 신인 시절일 때만 하위권으로 쳐져 있었고, 데뷔 2년차에서부터 본격적으로 팀과 개인리그 성적이 다시 좋아지기 시작했다. 2006년 전기리그부터 성적이 좀씩 나빠지기 시작하더니 2007년에는 아예 전/후기 다 성적이 굉장히 나빴고, 그나마 개인리그에 출전하는 선수들만 개인 성적이 좋았다. [23] 서형석 전 코치는 KeSPA 쪽으로 갔고, 이효민 코치는 위메이드 폭스로 갔다. 주훈 감독은 직후 온게임넷 해설로 이직했으나 평이 나빠서 금세 내려왔고, 나중에 제8게임단 감독으로 복귀한다. [24] 그러나 이 시기에 신예들이었던 도재욱, 정명훈 등이 프로리그 개인전에 간간히 출전해서 나름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함과 동시에 조금씩 성장해 가기 시작하면서 세대교체를 하기 시작한다. [25] 은퇴한 선수들이 개인 방송에서 푼 썰에 따르면 당시 팀 분위기가 오버 트리플 크라운으로 절정의 성적을 찍어서 선수들과 코칭 스태프들 또한 자만에 빠져 연습과 할 일들을 게을리 했다고 말하였고, 팀의 맏형이자 구심점이었던 임요환의 입대로 인한 리더의 부재는 생각보다 어마어마하고 크게 작용했다고. 임요환이 없으니 83 동갑내기들인 최연성과 박용욱 등 고참 선수들의 기싸움 등 선수들간의 파벌 다툼이 생겼고, 주훈 감독과 서형석 코치 또한 업무가 소홀해졌다고 한다. 팀의 구성원들 기강이 점차 당나라 군대가 된 판국에 이를 바로잡아 줄 구심점마저 자리를 비우니 팀이 급락할 수밖에 없던 것. 게다가 이 시기는 SKT의 주축을 이루던 올드 게이머들이 곰TV 세대, 즉 드래프트 세대로 불리는 신인들에게 슬슬 자리를 내주던 시점이니 내우외환. 실상 그야말로 스타판 2016~2020년 현 삼성 라이온즈 및 2009~2020년 한화 이글스 자체였다고 할 수 있다. 결국 SK 프런트는 주훈 초대 감독과 서형석 코치를 경질하는 최고의 초강수를 뒀다고 한다. 이에 선수들 또한 큰 충격을 받고 본인들의 연습에 매진하게 된다. 그 결과 도택명의 성장, 임요환의 군입대 후 합류, MBC GAME HERO에서 코치를 하던 박용운 감독의 리더십 등 다시 SKT는 제2의 전성기를 맞게 된다. 박용운 감독은 초기에는 팬들의 신망을 얻지 못하다가 새로운 선수 발굴 및 개인리그 우승과 준우승, 팀리그 우승 및 준우승을 쌓아 올리면서 본격적으로 신임을 얻었다. [26] 사실 SKT의 암흑기는 그 전에도 있었는데, 그 시기가 SKY 프로리그 2004 1Round 준우승과 현대자동차 투싼 팀리그 우승 이후 SKY 프로리그 2005 전기리그 직전까지의 시기이다. 이 시기에 열린 팀 단위 리그는 SKY 프로리그 2004 2Round, 3Round, MBC MOVIES 팀리그인데 SKT는 이 세 대회에서 모두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SKY 프로리그 2004 2Round에서는 새턴리그에 참가한 5팀들 가운데 5위를 기록해 머큐리리그 5위 팀인 헥사트론 드림팀과 3라운드 잔류 결정전을 치렀고, SKY 프로리그 2004 3Round에서는 머큐리리그에 참가한 5팀들 가운데서 4위를 기록해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다. 덤으로 SKY 프로리그 2004 그랜드 파이널 진출도 실패한다. MBC MOVIES 팀리그에서도 8강 풀리그 총 성적이 4승 3패로 2위 팬택앤큐리텔 큐리어스, 3위 KTF 매직엔스, 4위 SouL, 5위 KOR과 같았지만 다른 네 팀이 세트승이 세트패보다 많은 것과 비교해 보았을 때 SKT는 세트패 17개에 비해 세트승은 고작 14승 밖에 되지 않아 6위를 기록하고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다. 이와 동시기에 있었던 개인리그 성적도 EVER 스타리그 2004에서 최연성의 우승과 임요환의 준우승을 제외하면 당신은 골프왕 MSL IOPS 스타리그 04~05, KT-KTF 프리미어 리그 2004에서 SKT 소속 선수는 단 한 명도 4위 이내에 입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오히려 이 때의 팀 단위 리그와 개인리그에서의 소속 선수들의 부진이 있었기 때문에 체제 및 시스템을 고치고 이후 2005년 프로리그에서는 오버 트리플 크라운 대기록, 개인리그에서는 최소 1명 이상 4강 진출이라는 고무적인 성과를 기록하게 된다. 막말로 초창기 SKT의 암흑기가 빨리 온 게 오히려 다행일지도? [27] 이것도 알고 보니 주훈은 엔트리에 대해 관여를 하지 않고 오히려 컨디션만 보고 선수를 기용하였다는 것이 밝혀졌다. 결론적으로 실권은 단장이 아닌 여타 프런트들이 가지고 쇼를 한 것. [28] 그래봤자 수석 코치인 서형석이 뭘 하겠느냐겠지만은... 결과적으로 프런트들이 문제. [29] 웨이버 공시 이전의 MBC GAME HERO의 창단 멤버이기도 하니 팀의 레전드이자 프랜차이즈로 칭송받을 것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었다. 근데 소속팀이 연봉 책정을 이상하게 하여 박성준의 불만을 들어주지 않아 이런 사건이 발생한 것. [30] 반대로 박성준은 골든 마우스를 획득했고, 오랜만에 스타리그로의 화려한 복귀 후 마지막 우승이라는 점이라 어찌 보면 서로 안타깝다고 볼 수 없다. [31] 박성준보다 연상이던 선수들만 해도 최연성, 박용욱, 박태민, 김성제, 성학승 등 꽤나 수가 많았으며, 그나마 같은 나이의 선수로는 윤종민이 있었지만, 이쪽은 빠른 년생이라는 것이 함정이다. 진짜 동갑내기 선수는 박대경. (다만 박대경도 드래프트 세대 선수이다.) 그나마 어린 선수는 드래프트 세대 선수들인 박재혁, 도재욱, 정명훈, 오충훈 같은 신예들이였다. [32] 위의 박성준과 마찬가지로 MBC GAME HERO의 자금난으로 현금 트레이드로 이적하였다. 더불어서 김택용은 영입 당시에는 프로리그에서 지지부진하였다. [33] 물론 정윤종은 이미 스1 시절에도 뛰어난 선수였다. [34] 단, 자유의 날개까지는 테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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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박태민은 본래 슈마 GO 선수였다. 동료 전상욱과 함께 1억원의 현금 트레이드로 2005년에 넘어왔다. [36] 전상욱도 본래는 슈마 GO 선수였다. 역시 2005년에 동료 박태민과 함께 넘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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