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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역대 대학수학능력시험
1996 수능 1997 수능
(1996.11.13.)
1998 수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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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시험의 상세3. 난이도4. 둘러보기 틀



1. 개요


1996년 11월 13일 수요일에 실시되었다. 본고사가 폐지되고[1] 최초로 400점 만점으로 총점이 바뀐 첫 수능이다.[2] 또한 과목별 문항 수와 시간도 바뀌었다. 1996학년도 당시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1978년 3월생~1979년 2월생이 응시했다.

전국 수석은 총점 373.3점을 획득한[3] 제주도 제주시 대기고등학교의 서준호(당시 17세)군[4] 전국 여자수석은 총점 368.7점을 획득한 윤지완(당시 19세)양[5] 당시 신문기사.

전국 수석의 총점이 373.3으로, 역사상 최악의 불수능으로 평가받는다. 전 과목 만점자가 없는 것은 물론이고, 언어영역 만점자가 없었으므로 언수외 만점자 또한 없었다. 역대급 불수능으로 불렸던 200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201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도 전 과목 만점자가 안 나오긴 했다. 그렇지만 각각 전국 수석이 390점대 490점대는 넘겼고, 역시 불수능으로 불렸던 200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는 아예 만점자가 나와버렸다는 것에서 차원이 다르다.

특히나 이 시험의 언어 영역 시험지는 201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등과 함께 역대 평가원이 출제한 최고난도 국어(언어)영역 시험지로 평가받는다. 상술한 세 번의 수능과 비교했을 때 '절대적인 난이도 자체'는 지금보다 훨씬 예전이었던 만큼 상당히 낮을지언정 체감 난이도는 1997년의 위엄에는 도달하지 못한다는 것이 중론. 이 시험이 얼마나 지옥같은 난이도 였는지는 97학번들만 안다는 풍문이다.

사실 이는 어쩔 수 없던 것이, 지금처럼 메가스터디, 대성마이맥, 시대인재같은 사교육 업체들이 수능을 미친 듯이 분석하면서 시중에 문제를 뿌려대는 시대도 아니었을뿐더러 인강이라는 개념 자체가 아예 존재하지 않던 시대였다.[6] 더군다나 6/9월 모의평가, 하다못해 교육청 모의평가 시험지조차 존재하지 않았던 초창기 수능 특성상 기출문제 역시 절대적 총량이 충분치 않았으며, 수리 탐구 영역[7]은 현재와는 달리 출제 방침에서 교육과정 준수 규정이 상당히 느슨했고[8] 과목별 문항 출제의 노하우 등이 부족했기에 논리적 엄밀성이나 완성도가 모자랐던 시대였다. 즉 이 시기의 수능이 역대급 불수능 소리를 듣는 것은 현재 기준의 난이도와는 별개로 컨텐츠 자체가 모자라던 시대적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 인강과 출판업계는 물론 사설문제 출제팀까지도 가세하여 컨텐츠가 홍수를 이루는 2020년대의 수능 입시와는 달리, 이 세대의 수험생에게 주어진 교재라고는 기껏해야 수학의 정석, 성문종합영어에 지나지 않았고 나머지는 싹 다 외국교재였다. 이 시기 수능이 사실상 아이큐 테스트 취급을 받았던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이러한 이유에 더해 지금으로서는 거의 30년 가까이 지난 옛날 수능이다 보니 역대 불수능 관련 언급이 나올 때 커뮤니티에서는 이상하리만큼 잘 언급되지 않는 편이다.

그 당시에는 별 특이사항이 아니었지만, [9] 현재의 관점에서는 전국 수석이 의대 진학을 하지않고 물리학과로 진학했다는 것에서 상당히 특이했고 소소하게 뉴스에서 다뤄지며 이공계의 희망찬 미래라는 말까지 돌았다는 후문이 있다.

2. 시험의 상세

교시 영역 계열 구분 문항 배점 시간(분)
1 언어 영역 공통 65 120 100
2 수리 · 탐구 영역(Ⅰ) 인문·예체능, 자연 30 80 100
3 수리 · 탐구 영역(Ⅱ) 사회탐구 영역 인문, 예체능 48 72 120
자연 32 48
과학탐구 영역 인문, 예체능 32 48
자연 48 72
4 외국어 영역 공통 55 80 80
합계 230 400 400
[10]
1996학년도 수능의 포맷에서 문제가 언어 5문제, 외국어 5문제씩, 수리탐구Ⅱ는 20문제나 늘어났다. 시간은 언어, 수리탐구Ⅰ, 수리탐구Ⅱ가 각각 10분씩 늘어났고 외국어는 그대로였다. 또 언어의 경우에는 시간을 예년보다 더 준 대신 지문의 길이를 늘렸다. 수리탐구Ⅱ는 10분 늘렸으나 20문제나 늘어나 문항당 문제풀이 시간이 1.7분에서 1.4분으로 급감하는 바람에[11] 수험생들이 시간 부족을 느끼게 되었다. 대신 문제가 평균적으로 짧아진 편.
계열 출제범위 (모두 필수[12])
인문계 국어, 영어, 수학[13], 과학Ⅰ上[14], 과학Ⅰ下[15], 과학Ⅱ上[16], 과학Ⅱ下[17],
정치경제, 사회문화, 국사, 세계사, 한국지리, 세계지리, 국민윤리
자연계 국어, 영어, 수학[18], 과학Ⅰ上, 과학Ⅰ下, 과학Ⅱ上, 과학Ⅱ下[19],
물리, 화학[20], 정치경제, 국사, 세계사, 한국지리, 국민윤리
예체능 국어, 영어, 수학[21], 과학Ⅰ上, 과학Ⅰ下, 과학Ⅱ上, 과학Ⅱ下,
정치경제, 국사, 세계사, 한국지리, 국민윤리

단지 문제 수준만 높았던 것이 아니다. 95 ~ 98학년도 수능은 역대 수능 사상 시험범위가 가장 넓은 수능이었다. 즉 수험생이 공부해야 하는 과목 숫자가 자그마치 12~14과목으로 가장 많았던 수능이었다. 게다가 모두 필수과목이었다. 지금 시점에서는 중국 가오카오가 이런 방식을 채택하고 있어 특정 과목 쏠림 지수가 0이다. 참고로 99학년도 수능부터 선택 과목 제도가 도입되면서 과목의 숫자가 점차 줄어들게 된다.

96학년도 수능에서부터 등장한 탐구영역에서의 과목간 통합형 문제가 97학년도 수능에서 본격화 되었다. 그리하여 예컨대 <물리와 생물이 결합된 문제>, <물리, 화학, 지구과학이 결합된 문제>, <국사, 세계사, 세계지리가 결합된 문제> 등이 마구마구 출제되었다. 요즘처럼 자신이 선택한 과목만 치르는 시스템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22]게다가 언어영역에서는 대중문화와 사회의 문제점을 결합시킨 문제들이 본격적으로 나오고[23], 외국어 영역 듣기평가가 17문제로 늘어났다.[24]

3. 난이도

처음부터 대놓고 어렵게 내겠다고 선언했던 만큼 엄청난 고난도로 나왔으며, 이후의 불수능으로 평가받는 200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201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보다도 월등히 어렵다는 평가를 받는다.[25]

전국 수석은 앞의 문단에서 나왔듯 자연계 학생인 서준호 군으로 총 점수는 400점 만점에 373.3점이었다. 전국 수석의 과목별 점수는 언어 108.8점[26], 수리탐구(Ⅰ) 76.0점[27], 수리탐구(Ⅱ) 110.0점[28], 외국어 78.5점[29]이었다.[30]

인문계 수석은 경남 창원중앙고 정용식 군[31]으로 370.2점, 예체능계 수석은 서울 대원여고 박은경 양으로 334.3점을 득점했다.

원점수 370점 이상이 인문계 1명(0.0002%), 자연계 3명(0.0008%), 360점 이상이 인문계 14명(0.004%), 자연계 32명(0.009%)이었다. 350점 이상 인문계 73명(0.019%)이고 자연계 128명(0.037%), 340점 이상 인문계 270명(0.071%)이고 자연계 345명(0.100%), 330점 이상 인문계 697명(0.184%), 자연계 903명(0.261%), 320점 이상 인문계 1660명(0.439%), 자연계 2092명(0.607%)이었다. 인문계는 308점까지 상위 1% 이내였고 자연계는 313점까지 상위 1% 이내였다. 97수능의 점수 분포는 상위권 점수차가 크고 하위권 점수차가 좁은 꽃병형으로 하위권으로 점수가 쏠리는 현상이 일어났는데 이는 최상위권, 상위권의 변별력 확보가 잘 되었지만 중위권, 하위권의 변별이 안되었을 정도로 중위권의 점수 붕괴가 일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목별로 보면 언어영역[32]의 경우에는 계열 통합(예체능까지 포함) 평균 점수가 120점 만점에 64.72점(만점의 53.93%)으로 작년보다 약간 높은 수준이었다. 만점자나 1문제 틀린 수험생은 존재하지 않았고[33]148명, 2020학년도 6월 모평의 국어 영역 만점자는 65명이었다. 다만 1997 수능 당시에는 기출문제가 거의 없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직접적인 비교를 대놓고 하기는 어렵다.] 116~118점(2문제 틀림)인 수험생이 인문계 7명, 자연계 3명이었다.

{{{#red,#ff0000 1등급컷 원점수가 120점 만점에 97점(100점 만점으로 환산시 약 81점)}}}이었으며[34](당시에는 등급의 개념이 없었다) 106점 이상 인원이 인문계 1337명(0.353%), 자연계 1161명(0.336%)이었다. 7차 교육과정 이후의 방식으로 표준점수를 계산하면 표준점수 최고점이 158점으로 산출된다.만약 현재식으로 백분위를 매겼으면 100점 만점에 약 88점(당시 문제당 기본 배점이 1.8점이므로 실제 시험에서 7~8개 틀린 수준)도 백분위 100(상위 0.5%)을 무난하게 받을 수 있을 정도의 수준. 원점수 110점 이상(만점의 91.67%)이 전국에 487명(전 수험생의 0.06%, 자연계 217명, 인문계 269명, 예체능계 1명)밖에 없을 정도로 매우 어려웠다 역대 2위 언어영역 수준이었지만... 96 수능 언어영역이 조금 더 어려웠기 때문에 수험생들의 체감 수준은 생각보다 크지 않은 편이었다.[35]

문제는 수리 · 탐구영역(Ⅰ)[36]인데, 이 97 수리는 역대 최악의 수능 영역으로 평가받는다. 이 당시 계열 통합으로 수준이 엄청나게 올라갔으며 평균 점수가 80점 만점에 22.92점(만점의 28.65%)이라는 극악의 수준을 자랑했다.

원점수 60점(만점의 75%)이면 인문계는 1855명(0.490%)으로 0.5%이내, 자연계는 3376명(0.979%)으로 1%이내였다. 72점 이상(만점의 90% 이상)은 자연계에서 205명(0.06%), 인문계에서 66명(0.02%)이었으며 예체능계에서 1명(0.001%)이었다.

78점 이상이 자연계 10명(0.003%), 인문계 1명(0.0002%)이었으며 만약 80점 만점을 받았을 경우 현재의 표준점수식으로 계산하면 자연계 187점, 인문계 205점으로 나온다. 또 현재처럼 등급컷을 매길 경우 총점 100점에 문항당 2.5점, 3.75점, 5점으로 계산시 인문계는 100점 만점에 58.75점, 자연계는 100점 만점에 63.75점이 1등급컷이 나올 것이다.

특히 문이과 공통 29번 집합(!) 문제는 말 그대로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이었는데, 공식 정답률 인문계 1.25%, 자연계 1.09%로 문이과 모두 역대 최저 정답률이었으며 이 타이틀은 20년이 넘게 지난 현재까지도 여전히 깨지지 않고 있다.[37][38][39] 참고로 비공식 정답률은 0.08%였다고 한다. 덕분에 97학년도 수능의 수준에 초점을 맞춘 98수능 대비 모의고사 수리영역 문제들은 괴이한 발상을 요구하는 데다가 지저분하기까지 해서 아직도 수리영역의 레전드로 남아 있다. 또한 이 수능부터 수리 탐구 영역(I)에서 주관식 단답형 문제가 최초로 출제되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40]

수리 · 탐구영역(Ⅱ)[41]도 매우 심각하여 120점 만점에 100점 이상(1/6을 틀린 경우)을 받은 수험생이 인문계 294명(0.07%), 자연계 468명(0.13%)이며 110점 이상(1/12을 틀린 경우)은 인문계 5명, 자연계 13명밖에 없다. 인문계는 80점(1/3을 틀린 경우)을 받아도 상위 3.7%정도였고 자연계도 82점에 3.7%정도였다. 여기에서도 만점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계열 통합으로 평균점수는 120점 만점에 48.03점(만점의 40.03%).

외국어영역[42]도 어려웠는데 원점수 80점 만점에 68점 이상이 인문계 14714명(3.89%), 자연계 14397명(4.18%)으로 100점 만점에 85점이 1등급컷이 되었다. 78점 이상의 경우 인문계 676명(0.179%), 자연계 472명(0.137%)정도밖에 없었다. 표준점수를 계산시 표준점수 최고점이 155점으로 산출된다. 평균점수는 80점 만점에 35.06점. 덤으로 외국어 듣기평가가 17문제로 늘어나기까지 했다.

이렇게 1997 수능이 유별나게 어려웠던 것은 논술을 제외한 대학별 본고사가 완전히 폐지된 후의 첫 수능이었기 때문에 수능이 본고사를 대체할 성격을 띠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공부를 아무리 하더라도 수능은 풀 수 없다"'며 공부를 포기하는 학생들이 늘어났다. 그 때문인지 98학년도 수능은 97학년도 수능에 비해 매우 쉽게 출제되었다(...) 97학년도 수능이 너무 어려웠다는 반성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300점만 맞으면 서울대 간다고 해서 소나타 승용차의 S와 Ⅲ를 다 떼 훔쳐가는 풍조가 유행할 정도였고. 실제 경험자에 따르면 96년도 시험을 치르고 이해 재수 도전, 매겨보니 전체 문제의 반밖에 못 맞힌 거 같아서 '전문대나 가야겠다 이러고 무슨 대학을 가' 생각했는데 준수한 4년제 사범대학에 진학하고도 남을 석차가 떴다고 한다. 아무리 수능이 어려워진다 해도 레전드로 남을 만한 한 획을 그은 시험이라 하겠다. 원점수 기준 300점이면 연고대, 270점 정도면 성균관대, 250점이면 흔히 말하는 건국대, 동국대, 홍익대 정도, 250점 맞고 중앙대 경영학과(...)에 합격 가능했다는 얘기가 있고. 인문계열 기준 200점이었는데 상위 15퍼센트(3등급) 선이었다고 한다 흠좀무. 증언 실제 배치표에 따르면 요즘 수능이면 4등급 5등급 뜰 정답 숫자만 맞혀도 수준급 대학에 갔다는... 뜻이다.[43]
이게 얼마나 무시무시하냐면...당시 대학전형의 특차 지원은 전국상위 백분률 30~35% 까지 지원할 수 있었는데...이 점수대가 반타작인 200점도 아닌 190~180 점대에 형성되었다...10명중 상위 7명이 반타작도 못했다는 뜻...

여담으로 이 해에 수능을 쳤던 사람이 전현무, 유튜버 슈카, 치과의사 매직박, 오인용 멤버들[44]이 있다. 전현무는 명덕외고 영어과 시절 재수해서 연세대 영문과를 갔고[45] 슈카는 한 번에 서울대 경제학과를 갔다. 남궁민도 이 해에 수능을 쳐서 중앙대 기계공학과에 진학했다. 야구 선수 중에서 신명철은 마산고 재학시절 연세대 체육교육학과(97학번)에 진학했다. 매직박은 이 해에 323점을 받고 서울대를 갈 수 있는 성적임에도 불구하고 하향 지원을 해서 경희대 치대에 진학했다.
1997학년도 수능의 영역별 1등급 커트라인은 다음과 같다.
언어 97/120(80.83) (만점자 0명)
수리 인문 47/80(58.75) (만점자 1명 이하)
수리 자연 51/80(63.75) (만점자 10명 이하)
탐구 인문 80/120(66.67) (만점자 0명)
탐구 자연 82/120(68.33) (만점자 0명)
외국어 68/80(85) (만점자 1148명 이하)

4. 둘러보기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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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입 이전 1994 1995 1996
▣ 1차 실험평가(1990년)
▣ 2, 3, 4차 실험평가(1991년)
▣ 5, 6, 7차 실험평가(1992년)
▣ 2회 시행
8. 20.(금), 11. 16.(화)
▣ 첫 수요일 수능
▣ 인문·자연·예체능 구분 도입
▣ 본고사 시행 마지막 해
1997 1998 1999 2000
▣ 수리 영역 주관식 도입
▣ 수능 만점 200점→400점
오나타 사건
▣ ( 수시 모집 첫 시행) ▣ 선택과목·표준점수 도입
▣ 첫 수능 만점자 배출
▣ 응시 인원 최다
2001 2002 2003 2004
▣ 제2외국어 영역 신설
▣ 전 과목 만점자 수 최다(66명)
▣ 듣기 방송 미디어 포맷이 EBS FM에서 카세트 테이프로 변경
▣ 성적표 등급 표기 첫 시행
▣ ‘수리 · 탐구 영역 ( I )’은 ‘수리 영역’으로 명칭 변경, ‘수리 · 탐구 영역 (II)’는 ‘사회탐구 영역’과 ‘과학탐구 영역’으로 분리
▣ (정시 라군 폐지)
▣ (특차 전형 폐지)
▣ ( 수시 제도 30% 확대)
▣ 9월 모의평가 도입( 2002년 9월 3일)
▣ 소수점 배점 반올림 성적표 지급 소송 사태 발생
▣ 6월 모의평가 도입( 2003년 6월 11일)
▣ 소수점 배점 전면 폐지, 정수 배점 전환
첫 복수 정답 인정
2005 2006 2007 2008
▣ 첫 예비평가 실시( 2003년 12월 4일)
▣ 수리 가형 선택 과목 도입
▣ 탐구 선택 과목 도입
▣ 직업 탐구 도입
▣ 제2외국어/한문 영역 명칭 변경
▣ 스페인어Ⅰ 명칭 변경
▣ 아랍어Ⅰ · 한문 도입
▣ 인문 · 자연 · 예체능 구분 폐지
대규모 휴대전화 부정행위 사건 발생
▣ 부산 APEC 정상회의로 인한 수능 1주일 연기
▣ 시험 시 전자기기 압수 의무화, 수능 샤프 일괄 제공, 필적확인란 문구 도입
▣ 시험일 수요일 → 목요일 변경 '수능 등급제' 시행 및 논란
2008학년도 수능 물리Ⅱ 복수정답 사태 논란
▣ ( 내신등급제 도입)
2009 2010 2011 2012
▣ 수능 등급제 폐지
▣ 표준점수 • 백분위 제도 환원
▣ 눈으로 미리 푸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문제지에 겉표지 도입
▣ 수능 연기 ( 신종플루)(정상 시행)
▣ (수시 1학기 모집 폐지)
▣ G20 정상회담으로 인해 수능 1주일 연기
▣ EBS 70% 연계 시행 (~2021)
▣ 듣기 방송 미디어 포맷이 카세트테이프에서 CD로 변경
▣ 필적확인란 문구 사전 유출 사고
▣ 중국산 수능 샤프 입찰 비리 논란
▣ (수시 공통 지원서 도입)
▣ '만점자 1%' 조정 정책 공표
▣ 채점 시 이미지 스캐너 도입
▣ 수리 영역 문제지 8면에서 12면으로 변경
▣ 탐구 선택과목 수 4 → 3과목으로 축소, 과학탐구Ⅱ 과목에 대한 최대 선택 수 제한 폐지
2013 2014 2015 2016
▣ '만점자 1%' 조정 정책 2년 실시 후 폐지
▣ (수시 모집 지원 6회 제한)
▣ 두 번째 예비평가 실시
언수외 국수영 명칭 변경
▣ 국어 · 수학 · 영어 A / B 형 체제 도입 및 언어 듣기 폐지
▣ 탐구 선택과목 수 3 → 2과목으로 축소
▣ 기초 베트남어 도입
▣ 한문 [math(\rightarrow)] 한문 I 으로 명칭 변경
수능 출제오류 관련 소송전 최초 발생
▣ 영어 A / B 형 체제 1년 실시 후 폐지
2017 2018 2019 2020
▣ 시험일 11월 셋째 주 목요일로 변경
▣ 스마트 워치 등 전자 시계 착용 금지
▣ 수능 모의평가 실물 정답지 미배부
▣ 국어 A / B형 체제 폐지
▣ 수학 A / B형 체제 폐지 및 가 · 나형 체제 환원
▣ 수학 영역 세트 문항 폐지
▣ 한국사 절대평가 전환 및 필수 영역화
▣ 기초 베트남어 [math(\rightarrow)] 베트남어Ⅰ으로 명칭 변경
수능 연기(지진)
▣ 영어 절대평가 전환
▣ 국어 영역 정오표 지급
▣ 국어 영역 난이도 조절 실패 사과
▣ 재수생 수능 성적표 사전 유출 파동
2021 2022 2023 2024
▣ 수능 연기 및 첫 12월 시행( 코로나19)
▣ 자연계 기하·벡터 제외
▣ 수능 개편 1년 유예
한국사 영역 2009개정교육과정 유지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한국사 영역 2015 개정 교육과정 적용 윤석열 정부 수능 출제 방침 지시 관련 파문
2025 2026 2027 2028
(시행 미정) 2028 대학입시제도 개편
▣ 국어•수학•탐구 영역 선택과목 폐지
▣ 탐구 영역 통합사회, 통합과학 공통 응시 체제로 전환
▣ 심화수학[미적분2(미적분), 기하] 수능 출제 배제
▣제2외국어/한문 영역을 제외한 모든 영역은 단일 시험지로 모든 수험생들이 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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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논술시험으로 대체. [2] 94년 1차부터 96학년도까지는 200점 만점. [3] 500점 만점으로 환산하면 466.625점, 200점 만점이면 186.65점. [4] 아마 빠른 생일이거나 생일이 지나지 않은 듯 하다. 이후 서울대학교 물리학과에 진학한 뒤 현재는 포스텍에서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5] 1977년생으로 재수생이다. 서울대학교 의학과에 진학하여 학사·석사·박사 과정을 차례로 밟았다. 현재는 서울대학교 내분비내과 교수로 재직 중. [6] 인강이라는 것이 도입된 해는 하필 바로 다음해인 1997년이었으며, 대표적인 인강 업체인 메가스터디의 창립은 4년 뒤인 2000년에 이루어졌다. [7] 현재의 수학, 사회/과학탐구 영역 [8] 이러한 규정은 7차 교육과정이 적용되기 시작한 200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부터 본격적으로 명시되어 평가원 또한 이 기준을 최대한 지켜가며 출제를 하게 된다. 즉 이 시점 이전까지의 수능 기출문제는 정형화된 패턴이라던지 소위 '평가원스럽다' 고 하는 문항의 논리적 완결성이나 완성도가 상당히 부족했기에 기출 분석을 해도 현재에 비해 얻어갈 수 있는 것이 현저히 적었던 시절이었다. [9] 서울대 물리학과, 서울대 수리과학부가 서울대 의대보다 몇 급간은 더 높던 시절이었다. 또한 당시 수석인 서준호 씨가 현재 재직하고 있는 포스텍 물리학과에는 수능 전국 수석 출신이 두 명 더 있다. 즉 당시의 관점으로는 오히려 당연한 일이었다는 것. [10] 199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부터 수리.탐구 II가 10분 증가, 언어영역이 10분 감소한 후 200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까지 이 포맷으로 유지되었다. [11] 현재 탐구영역의 문항당 문제풀이 시간은 1.5분 [12] 당시 수능엔 선택과목 제도가 없었다. [13] 일반수학 + 수학Ⅰ [14] 오늘날의 생명과학I보다는 수준 높고, 생명과학II보다는 수준 낮음 [15] 오늘날의 지구과학I보다는 수준 높고, 지구과학II보다는 수준 낮음 [16] 오늘날의 물리I보다는 수준이 높고, 물리II보다는 수준 낮음 [17] 오늘날의 화학I보다는 수준이 높고, 화학II보다는 수준 낮음 [18] 일반수학 + 수학Ⅱ [19] 계열별 문제(자연계 전용)의 경우 과학Ⅱ는 물리, 화학과 겹치는 부분에서 출제되었다. [20] 각각 오늘날의 물리II, 화학II와 비슷한 수준이며, 생물과 지구과학은 실시되지 않았다. [21] 일반수학 + 수학Ⅰ [22] 이러한 탐구영역의 통합형 출제는 전면 선택체제로 전환된 7차 교육과정 하의 수능에서부터 사라지게 되었다. [23] 언어 듣기 평가에서 정지용의 시 향수(시) 리메이크한 가요를 출제했다. [24] 95학년도 수능까지는 외국어 듣기문제가 8문제였고, 96학년도에서 10문제였다가 97학년도 수능부터 13학년도 수능까지는 17문제였으나, 14학년도에는 22문항으로 늘고 15학년도부터는 다시 17문제로 환원되었다. [25] 참고로 2011, 2009시험은 수리 난이도가 굉장히 어려웠으며 2022 시험은 아예 전과목의 난도가 기존의 수능 대비 한 단계 높았다. 보통 1996/97년도 수능 다음가는 불수능으로 불리는 2011년 수능과도 엄청난 차이를 보이며, 심지어 역대 최악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2022년 수능보다도 훨씬 어려우니 말이 필요없는 수준. 지금의 1등급컷에 해당하는 4%컷이 50~60점대에 나왔었다. 물론 90년대 수능은 점수를 따기 힘들던 시절이니 감안해야 하지만 그래도 엄청난 것. [26] 배점상 6문제 틀렸으며 백분위 99.90 [27] 4점 1문제 혹은 2점 2문제 틀림, 백분위 99.98 [28] 5~7문제 틀림, 백분위 100.00 [29] 1문제 틀림, 백분위 99.87 [30] 물론 370점 정도면 다른 세대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전체적으로 쉬웠던 2009 개정 교육과정 세대의 수능에서조차 충분히 최상위 레벨에 준하는 점수이다. 문제는 전국 수석이 이랬다는 거다. 요즘 같으면 같이 수능을 치는 친구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현직 교사나 인강 1타 강사 레벨조차 실전 한정으로 뛰어넘을지도 모르는 인간이 못 푸는 문제가, 그것도 한두 개도 아니고 한 시험에서 10개가 넘을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간단하게 치부할 수도 있는 문제지만, 그 악랄했던 200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도 만점자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인지하자. [31] 서울대 법대 진학 [32] 지금의 국어영역 [33] 참고로 그 어렵다는 2019학년도 수능의 국어 영역 만점자는 [34] 7차 교육과정 이후에 이 정도의 1컷이 나온 국어시험은 201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정도이지만 6차 교육과정 이전에는 이런 결과가 대세였던 시절이었다. 즉 실제 체감 국어 난도는 앞의 두개가 더 높다.물론 97 수리가 워낙 지옥이어서 별 의미는 없다 [35] 96학년도 언어영역은 60점 만점에 46점,즉 100점 만점으로 환산시 약 77점 정도만 받아도 대략 4% 안에 들 수 있었다.당시 표준점수 최고점은 무려 163점이었다. [36] 지금의 수학영역 [37] 조건을 통해 P(x)와 Q(x)가 적어도 하나의 공통근을 가진다는 것을 추리해야 했는데 듣도보도 못한 신유형이었던 탓에 거의 모든 수험생들이 문제를 풀지 못했다. [38] 참고로 해당 문제와 풀이방식이 상당히 유사한(정확히 말하면 그 이후 약간의 경우의 수 계산을 추가로 요구한) 문제가 2009년 한국수학올림피아드 고등부 1차 문제로 나왔다. 그것도 6점(!)으로. [39] 사실 더 악날한 고난도 문제는 인문계 문제인 오페라하우스 문제였는데 이건 객관식인데다 a형의 정답이 1번이라 그나마 어느정도 정답률이 나왔을 뿐이다. 집합문제가 문제 해석이 된다면 바로 답이 나올 문제라면 저건 그냥 노가다의 결정체... 이 문제는 현재 수학 I 수학의 정석 기본편의 기본 문제에 수록(...)되어 있다. [40] 음수 부호 (Θ)와 30번 문제 한정 소숫점까지 마킹해야 했으나, 실수를 하는 학생이 많아 200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부터 최대 세 자릿수 자연수만으로 한정되었다. [41] 지금의 사회/과학탐구 [42] 지금의 영어영역 [43] 극단적인 사례로 평소에 모의평가 240점 근방으로 뜨던 사람이 수능 시험날 찍신이 강림하여 전국 석차 4%까지 찍었던 사람이 존재한다!! [44] 데빌 장석조, 혁군 정지혁, 씩맨 민상식, 씨드락 장동혁, 기몽 김홍석. 그리고 정식 멤버는 아니지만 객원 멤버인 김창후도 있다. [45] 전현무가 나혼자산다에서 수능점수를 물어보자, 370점? 이렇게 얘기한 적 있었는데, 당연히 거짓말이다. 97수능에 370이면 문과 전국 수석이다. 전현무가 재수를 했으니 혹시 96수능때 그 점수를 맞았었나고 생각할수 있지만 96수능은 200점만점이라 애초 불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