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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1-12-28 00:50:50

훤달


후삼국 고려 호족과 군벌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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萱達
생몰년도 미상
1. 개요2. 생애

1. 개요

후삼국시대의 인물. 오늘날의 포항시 흥해 지역인 미질부의 호족이었다.

정확히는 북미질부성주(北彌秩夫城主)였으며, 남미질부성주(南彌秩夫城主)도 따로 있었는데 기록에 이름이 전하지 않는다. 그 역시 훤달을 따라서 고려에 항복했다.

2. 생애

고려사에서 그의 기록이 나오는데, 신라의 수도 서라벌에서 가까운 포항 흥해 지방의 호족이었다. 경주에 인접한 지역이었고 신라 초기 북쪽에서 내려오는 이민족들의 침입을 막는 전초 기지로 건설된 성이 미질부성이었다. 중요한 지역인데 따로 경주를 위협했다는 기록이나 흔적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후삼국시대 내내 대체로 신라 조정에 협조적이었던 호족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927년 견훤의 서라벌 침공으로 신라 중앙정부의 위신이 땅에 떨어졌고, 930년 고창 전투에서 고려가 대승을 거두자 경상도 지역의 여러 호족이 고려에 투항한다. 게다가 930년 왕건은 직접 포항에 군대를 이끌고 행차해 성을 쌓기에 이른다. 이는 경주의 경순왕에게 무력시위를 한 것으로 해석된다.

비록 오랫동안 포항을 지켜왔으나 이 정도로 대세가 넘어간 상황에서 일개 고을의 호족인 그가 고를 수 있는 선택은 고려에 항복하는 것밖에 없었고, 인접한 남미질부의 성주와 함께 항복한다. 왕건은 남북 미질부를 합쳐 흥해군으로 고쳤다.

930년에 그와 흥례부( 울산광역시)의 호족 박윤웅이 고려에 투항하면서 경주시의 신라 조정은 멸망 직전의 동로마 제국이나 무굴 제국처럼 수도 인근밖에 지배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고 결국 5년 후 경순왕이 고려에 투항하면서 신라는 천 년에 근접한 역사를 마무리짓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