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좌팔달(江左八達) | |||||||
사곤 | 필탁 | 광일 | 완방 | 양만 | 환이 | 완부 | 호무보지 |
<colbgcolor=#800080><colcolor=#ece5b6> 동진의 만녕간남
桓彝 | 환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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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호 | 만녕간남(萬寧簡男) |
성 | 환(桓) |
이름 | 이(彝) |
자 | 무륜(茂倫) |
부친 | 환호(桓顥) |
생몰 | 276년 ~ 328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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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동진의 인물.자는 무륜(茂倫)이었으며 환영(桓榮)의 9세손이자,환호(桓顥)의 아들이었으며, 초국 용항[1]사람이었다. 중국의 사학자 톈위칭(田余庆)은 환범(桓範)의 증손자 또는 증손자뻘 일가 후손으로 추측했다.
2. 생애
어려서 아버지 환호를 여의는 바람에 집안이 찢어지게 가난했지만 매사에 긍정적이고 쾌활한 성격을 가지고 있어 이를 불평하지 않았다. 이런 모범적인 성격 덕분인지 젊은 시절에 높은 명성을 얻어 유량(庾亮), 주의 등과 깊이 사귀었다. 서진 제2대 혜제 시절 배기도위(拜騎都尉)로 임명되어 관직 생활을 시작했고, 중종 원제 사마예가 팔왕의 난을 피해 도망쳐왔을 때는 준주(逡遒)의 현령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현령직에 있으면서도 명사인 사곤 등과 친해 업무를 마치고 나면 그들이 여는 술자리에 항상 손님으로 초대되어 신나게 술을 마시며 떠들고 놀았다. 덕분에 명사들과 함께 묶여 강좌팔달로 불렸다. 얼마 안가 승상부 소속 관리로 중앙에 진출했으며 이후 중서랑(中書郞), 상서이부랑(尙書吏部郞)을 지냈다.왕돈이 반란을 일으켜 조정을 장악하자 병을 핑계로 사직했다. 그리고 제2대 숙조 명제 사마소의 명령을 받아 여러 신하들과 비밀리에 왕돈 제거를 모의했는데 이때 산기상시(散騎常侍)에 임명되었다. 왕돈의 난이 진압되자 그 공로로 만녕남(萬寧男)에 봉해졌고 선성(宣城)에 부임했다. 환이는 덕으로 지방을 다스렸고 백성들이 모두 그를 사랑했다.
제3대 현종 성황제 사마연의 치세때 소준(蘇俊)이 반란을 일으키자 환이는 조정을 도와 반란을 막기 위해 병사를 징집했다. 그러나 우호(蕪湖)에서 소준의 장수 한황(韓晃)에게 패배해 선성을 버리고 광덕(廣德)으로 물러났다. 328년, 소준이 수도 건강을 함락하고 국정을 장악했다. 이 소식을 들은 환이는 나라를 걱정하며 눈물을 쏟은 뒤 경현(涇縣)으로 주둔지를 옮겼다. 한황은 진격하여 경현을 포위한 뒤 항복을 권했지만 환이는 이러한 제안을 모조리 거절하고 끝까지 한황에게 맞서 싸우다가 사로잡혀 죽으니 그의 나이 53세때였다. 성이 함락되기 전 환이의 아들들이 모두 탈출했기에 전사한 환이의 장례를 치를 사람이 없자 평범한 선성 백성인 기세화(紀世和)가 그의 시체를 수습하고 장례를 지내주었다.
이듬해(329) 소준의 난이 진압된 이후 정위(廷尉)로 추증되었고, 시호는 간(簡)으로 정해졌다. 이후 제8대 태종 간문제 사마욱이 태상(太常)으로 재추증했다.
환이의 아들 환온은 간문제 시기 권신이 되었고, 환온이 죽자 환온의 아들 환현이 안제에게서 선양을 받아 환초를 건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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