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르타뉴 공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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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FFFF><colcolor=#000000> 브르타뉴 공작 호엘 1세 Hoël 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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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호엘 1세(Hoël I) | |
출생 | 930년 | |
잉글랜드 왕국 | ||
사망 | 981년 (향년 50~51세) | |
브르타뉴 공국 낭트 | ||
재위 | 브르타뉴 공국의 공작 | |
960년 ~ 981년 | ||
아버지 | 알란 2세 | |
어머니 | 유디트 | |
형제 | 게레흐 | |
자녀 | 주디카엘, 호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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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브르타뉴 공국의 공작.2. 행적
930년경 잉글랜드 왕국에서 망명 생활하던 알란 2세가 유디트라는 이름의 정부와의 사이에서 낳은 사생아다. 친형제로 게레흐가 있었다. 952년 브르타뉴 공작 알란 2세가 사망한 뒤, 이복 형제인 드로곤이 2살의 나이로 공작에 선임되었고, 외할아버지인 블루아 백작 티보 1세가 후견인을 맡고 의붓아버지인 앙주 백작 풀크 2세가 낭트 백국과 어린 공작의 관리권을 맡았다.958년, 드로곤은 앙주 백국의 수도 앙제에서 8살의 나이로 요절했다. 낭트 연대기는 그가 욕조에서 사망했으며, 일부 사람들은 풀크 2세가 그를 죽였다고 주장했다고 기술했지만 진위는 불분명하다. 그 후 풀크 2세가 낭트 백작에 올랐지만 2년 만인 960년에 죽었고, 알란 2세의 사생아인 호엘 1세가 낭트에서 브르타뉴 공작으로 취임했다. 965년에서 972년 사이, 교황 요한 13세는 브르타뉴의 유력 인사들, 즉 "반 백작 주헬 베랭거, 주헬의 아들 코난, 호엘과 그의 형제 게레흐"에게 서신을 보내 투르 대주교에게 복종하라고 권고했다.
호엘 1세는 975년부터 브르타뉴 북부를 지배하고 자기를 봉신으로 간주한 블루아 백작 티보 1세의 가신으로서 렌 백작을 맡은 코난 1세와 충돌했다. 981년, 앙주 백작 조프루아 1세의 지원을 받은 호엘 1세의 낭트군과 블루아 가문의 지원을 받은 코난 1세의 렌 군대가 콩케뢰유에서 맞붙었다. 전투 결과는 불분명하다, 다만 이후에도 전쟁이 쭉 이어진 걸로 볼 때, 어느 쪽도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지 못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981년 낭트 주교 고티에 1세가 사망하자, 호엘 1세는 생브누아쉬르루아르에서 성직 훈련을 받은 형제 게레흐를 낭트 주교로 선출하고, 투르로 가서 대주교로부터 성직을 받도록 했다. 그러나 게레흐가 투르를 향해 여행을 떠난 동안, 갈루론(Galuron)이라는 인물이 코난 1세의 지시에 따라 호엘 1세를 암살했다. 게레흐는 이 소식을 접하자 곧바로 낭트 주교직을 포기하고 낭트로 귀환한 뒤 브르타뉴 공작에 선임되었다.
호엘 1세는 생전에 성명 미상의 아내로부터 두 자녀를 낳았다. 장남 주디카엘(979 ~ 1004)는 낭트 백작을 역임했다. 그는 1004년부터 1038년까지 낭트 백작을 역임한 부디크와 1051년부터 1063년까지 낭트 여백작을 역임한 유디트의 아버지였다. 둘째 아들 호엘은 이름만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