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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ntes 낭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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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옹 | 페이드라루아르 | |
데파르트망 | 루아르아틀랑티크 | |
아롱디스망 | 낭트 | |
행정단위 | 코뮌 | |
INSEE 코드 | 44109 | |
인문지리 | ||
시장 |
조안나 롤랑(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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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적 | 65.19㎢ | |
인구 | 323,204명(2021년) | |
인구밀도 | 4,900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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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랑스 서부 연안에 위치한 도시. 페이드라루아르(Pays de la Loire) 레지옹의 루아르아틀랑티크(Loire-Atlantique) 데파르트망의 주도이며 11개 칸톤의 중심지이다. 면적은 65.19km2이다. 시 자체의 인구는 2021년 기준 323,204명으로 프랑스 제6의 도시이다. 대도시권을 모두 포함하면 약 80~90만명의 큰 도시이다.[1] 역사적으로는 낭트 칙령으로 유명하다.루아르강 하류에 위치하여 생나제르와 함께 프랑스 북서부의 주요 항구도시 중 하나이다. 오래된 부두와 강 수로가 많아 서부의 베니스(la Venise de l'Ouest)라는 별명이 있다.
2. 역사
낭트라는 지명의 유래는 골족이 건설한 도시 낭네트(Namnètes)에서 유래하였으며 낭네트의 낭(nant)은 고대 갈리아어로 강, 개울이라는 뜻이다. 로마 시대에는 상업 거점으로 발전하였으며 이때는 남네테스의 도시라는 뜻의 포르투스 남네툼(Portus Namnetum)이라 불렸다. 하지만 3세기의 위기 때 낭트도 게르만족의 침략을 받았으며, 상인들이 바다보다 내륙 도로를 선호해서 점차 낭트는 쇠퇴해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낭트 시민들은 성벽을 세워 게르만족의 침입에 대비하였으며 이 시기 낭트에 기독교가 전파되기 시작하였다. 8세기 카롤루스 대제시기에는 낭트는 브르타뉴 공국의 침입으로 부터 프랑크 왕국을 보호하는 브레튼 마치의 수도로 선정되었다.그 이후 내분과 바이킹이 침입해 대주교를 죽이는 등 혼란의 시기를 겪었으나 프랑스가 본격적으로 외국과 무역을 하기 시작하자 낭트는 무역도시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낭트는 영국과 주로 무역하였으며, 소금, 와인, 직물, 대마를 수출하였다. 백년 전쟁이 끝나고 브르타뉴 공국은 프랑스의 땅이 되었다. 렌이 정치적 중심지로 낭트는 경제적 중심지로 발전하였다. 한편 프랑스에 종교 개혁의 물결이 몰려와 가톨릭과 신교도 사이의 갈등이 심해졌다. 그 내분이 전쟁으로 이어지고 프랑스 전국토가 황폐화 되자 프랑스의 국왕 앙리 4세는 개신교의 종교적 자유를 인정하는 낭트 칙령을 반포했다. 대항해시대가 시작되고 대서양 무역의 가치가 높아지자, 낭트는 프랑스령 서인도제도에서 설탕, 럼, 담배, 염료, 커피, 코코아를 수입하는 항구로 번영하게 되었다. 신대륙과의 무역으로 돈을 쌓은 부르주아들은 낭트에 신고전주의 스타일의 광장과 공공 건물을 지어 낭트는 더욱더 번영하였다.
1789년 바스티유 감옥 습격사건이 일어나자 부르주아와 상인이 중심이었던 낭트는 브르타뉴 공작의 성을 정복하는 등 혁명에 매우 우호적이었다. 하지만 혁명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프랑스 서부 농민들에게 일어났다. 이들은 징집령에 반대해 반란을 일으켰고 공화파 시민들을 무자비하게 죽였다. 그러자 농민들과 왕당파를 피해 공화파 시민들이 낭트에 모였다. 낭트에 모인 공화파 시민들은 왕당파에 결사적으로 저항하였고, 결국 낭트를 함락시키는 데 실패하였다. 이 시기 노예 무역이 철폐되고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아이티가 독립하자 대서양 무역이 중심이던 낭트는 점차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채소를 재배하고 물고기를 잡아 통조림을 만들어 지역 경제를 부흥시키려고 하였지만, 이전의 번영을 회복하지 못하였다.
산업 혁명의 바람이 낭트에도 불어오고 파리의 투자자들과 합세하여 파리-투르-생나제르 철도를 건설하고 운하를 건설하고 항구를 확장하기 위해 토지 매립을 하는 등 대항해시대의 번영을 가져오기 위해 별의별 짓을 다했지만 이전의 번영은 오지 않았다. 2차 대전시기 낭트는 독일에 점령되었다. 1941년 독일군 대령 카를 호츠가 프랑스 레지스탕스에게 암살당하자 나치 독일은 보복으로 프랑스 시민 48명을 죽였고 영국군은 낭트의 산업 시설을 공습해 1,732명이 사망하고 2,000여개의 건물이 파괴되기도 하였다. 1944년 미군이 별다른 전투없이 낭트를 탈환하였다.
전후 낭트 경제는 점차 쇠퇴되어 1987년 조선소 폐쇄로 정점에 다다랐으나, 비즈니스 지구 개발로 점차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낭트는 매년 550억 유로의 가치를 창출하며 프랑스의 IT기업 캡제미니, 프랑스 국유 철도(SNCF), 프랑스의 통신 회사 부이그 텔레콤을 비롯한 유수의 대기업들이 낭트에 사무실을 열었다. 현재 낭트에는 422개의 회사와 71개의 연구 및 고등 교육 시설을 보유하고 있으며 바이오 의약품, 정보 기술, 재생 에너지, 역학, 식품 생산 및 해군 공학을 전문으로 하고 있다.
3. 로고
로고 지침
웹 색상 | |||
청색 | 검정 | 하양 | |
#FFCC00 | #000000 | #FF0000 | |
CMYK | |||
청색 | 검정 | 하양 | |
C: 75% M: 0% Y: 0% K: 0% |
C: 0% M: 0% Y: 0% K: 100% |
C: 0% M: 0% Y: 0% K: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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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MS | |||
청색 | 검정 | 하양 | |
299C 혹은 2985U | Pantone Process Black C 혹은 U | - | |
RGB | |||
청색 | 검정 | 하양 | |
R: 0 G: 182 B: 237 |
R: 0 G: 0 B: 0 |
R: 255 G: 255 B: 255 |
4. 교통
프랑스에서 9위급의 규모를 가진 낭트 아틀랑티크 국제공항이 있다. 프랑스 파리에서 TGV를 타면 2시간 22분 걸린다.5. 랜드마크
- 낭트 미술관 (Musée d'Arts de Nantes) : 낭트에서 가장 큰 미술관으로 1900년에 개관하였다.
- 도브레 미술관 (Musée Dobrée) : 낭트에 있는 고고학 박물관. 낭트의 사업가 토마 도브레의 수집품이 전시되어 있다.
- 낭트 자연사 박물관 (Muséum d'histoire naturelle de Nantes) : 160만개 컬렉션이 전시된 프랑스 최대 자연사 박물관
- 쥘 베른 박물관 (Jules Verne Museum) : 낭트 출신 소설가 쥘 베른탄생 150주년을 기념해서 만든 박물관
- 브르타뉴 공작의 성 (Château des ducs de Bretagne) : 13세기에서 16세기 사이 브르타뉴 공작이 머문 성. 오늘날 낭트 역사 박물관이 들어섰다.
- 파사주 폼프레 (Passage Pommeraye) : 낭트 중심부에 있는 작은 쇼핑 아케이드.
- 낭트 대성당 (Cathédrale Saint-Pierre-et-Saint-Paul) : 1434년에 시작돼서 1891년 완공된 로마네스크 양식의 대성당.
- 구축함 마이예 브레제 (Maillé-Brézé) : 쉬르쿠프급 구축함중 유일하게 남은 구축함이며, 프랑스 유일의 군함 박물관함 이다.
6. 출신인물
- 피에르 2세 드 브르타뉴 : 브르타뉴 공국의 공작
- 안 드 브르타뉴 : 프랑스 국왕 샤를 8세와 루이 12세의 왕비
- 피에르 캉브론 : 프랑스군 장교. 워털루 전투에서 활약하였다.
- 조제프 푸셰 : 프랑스 대혁명과 나폴레옹 시대 시기 정치인으로 현대 공안 통치를 적립했다고 평가받는 인물이다.
- 피에르 발데크루소 : 29대 프랑스 총리
- 제임스 티소 : 프랑스의 화가
- 쥘 베른 : 19세기 SF 모험소설의 거장이자 스팀펑크의 개척자로 평가받는 소설가. 낭트에는 그를 기리는 박물관과 테마파크 ' 레 마쉰 드 릴(Les Machines de l'île)'이 있다.
- 조르주 클레망소 : 프랑스의 총리이자 언론인
- 아리스티드 브리앙 : 프랑스의 총리이자 1926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
- 올리비에 메시앙 : 프랑스의 작곡가이자 오르가니스트
- 자크 데미 : 20세기 프랑스 누벨바그 영화를 대표하는 영화감독. 그는 자전적인 영화 '낭트의 자코'의 배경으로 낭트를 삼기도 했다. 때문에 낭트시에서는 데미에 대해서 각별히 예우하고 있다.
- 펠릭스 클레르 리델 주교 : 천주교 서울대교구 제6대 교구장.
- 마데온 : DJ
7. 우호도시
8. 그 외
- 대항해시대 시리즈의 포도주 산지로 유명하다. 이 시리즈의 초기작 일부는 다른 도시는 구현되지 않고 낭트만 구현되어 있는데, 초반에 간혹 움직이기 벅찬 프랑스 서쪽 해안선을 탐험할 때마다 유용한 항구로 나온다.
- 대항해시대 온라인에서도 프랑스의 영지로 나온다. 식료품을 많이 팔며 라일락과 후르츠 브랜디라는 명산품이 나온다. 12만 두캇을 투자하면 휀넬이라는 향신료가 나와서 향신료 내성항이다.
- 프랑스 최대의 제과회사 브랜드인 LU(Lefèvre-Utile)[2]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 프랑스의 축구팀인 FC 낭트가 이곳을 연고로한다.
- 육반구의 중심이다.[4]
[1]
파리,
마르세유,
리옹,
툴루즈,
니스의 뒤를 잇는다. 그 뒤에는
스트라스부르와
릴이 있다.
[2]
지금은
몬델레즈 인터네셔널의 자회사중 하나로 흡수되었다. 대표 제품으로 초코샌드 과자인 프린스가 있으며
포키(유럽에서는 Mikado로 판매되고 있다)의 프랑스내 유통을 담당하는것으로도 보인다.
[3]
현재는 낭트가 32만 초반, 순천이 27만 후반대로 5만 정도 차이가 난다.
[4]
육반구란, 지구상의 반구 중에 육지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이다. 육반구에는 지구육지의 약 85%가 몰려있다. 지점은 약 북위 47도, 서경 1도. 대척점은 수반구의 중심이며, 뉴질랜드 근해에 있다. 지구상의 육지가 가장 밀접한 반구임에도 불구하고 육지 바다 비율은 49대 51로 바다가 근소하게 더 넓다. 반면 수반구의 경우 육지 대 바다의 비율은 11대 89로 바다가 압도적으로 넓고 그 육지조차 절반이상이
얼음으로 덮여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