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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4 14:09:13

피터 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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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780556><colcolor=#fff> 페이팔 공동창업자
팔란티어 테크놀로지스 창업회장
피터 안드레아스 틸

Peter Andreas Thiel
파일:l9GgEjL.jpg
출생 1967년 10월 11일 ([age(1967-10-11)]세)
서독 헤센 프랑크푸르트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1] |
[[뉴질랜드|]][[틀:국기|]][[틀:국기|]][2]
직업 기업인, 투자자, 작가
현직 팔란티어 테크놀로지스 (의장 / 2003년~ )
파운더스 펀드 (파트너 / 2005년~ )
발라 벤처 (파트너 / 2010년~ )
미스릴 캐피탈 (파트너 / 2012년~ )
주요 경력 페이팔 (창업자 / 1998~2002년)
클라리엄 캐피탈 (창업자 / 2002~2013년)
페이스북 (이사 / 2004~2022년)
Y Combinator (파트타임 파트너 / 2015~2017년)
학력 스탠퍼드 대학교 (철학 / 학사)
스탠퍼드 대학교 (법학 / J.D.)
종교 기독교( 개신교)[3]
소속 정당

재산 97억 달러 (2024년 / 포브스)
저서 다양성이라는 미신 (1995년)
제로 투 원 (2014년)
배우자 맷 댄자이즌[4] (2017년~ )
자녀 2명
거주지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
SNS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1. 개요2. 생애3. 성향
3.1. 경제3.2. 사회문화3.3. 도널드 트럼프 관련
4. 여담5. 어록

[clearfix]

1. 개요

미국 뉴질랜드 국적의 기업인이자 벤처투자자.

2. 생애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났으며, 부친은 화학공학자였다. 출생 직후 미국 클리블랜드로 건너갔으며, 부친를 따라서 나미비아에서 유년기을 보낸 뒤 10대가 되면서 가정이 캘리포니아로 터를 잡았다. 실리콘밸리 한복판인 포스터 시티에서 10대를 보낸 탓에, 학교에서는 항상 치열한 경쟁의 연속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탓에 당시에 자유를 갈망하며, 자유주의와 반공주의 사상에 빠진 것과 더불어 반지의 제왕을 비롯한 판타지 및 공상과학 소설로 고단했던 나날을 견뎠다고 한다.

1989년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철학 학위를 수여받은 뒤, 1992년에 로스쿨을 졸업했다. 르네 지라르 레오 스트라우스 등의 지식인을 공부했다고 한다.

졸업 후에는 남부로 건너가 연방항소법원에서 커리어를 시작했다. 이후 뉴욕에서 설리번&크롬웰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던 중, 정확히 입사 후 7개월 하고도 3일이 지난 시점에서 퇴사했다. 이후 크레디트스위스에서 파생상품 트레이더라는 새로운 직업에 도전하면서, 미국 교육부 비서실의 대변인으로도 활동했으나, 만족하지 못하고 1996년에 서부로 다시 돌아왔다.

서부에 돌아온 뒤로는 인터넷 PC의 가능성을 보고, 본인의 이름을 딴 틸 캐피탈 매니지먼트를 설립한 이후 루크 노섹의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비록 노섹의 사업은 실패했으나, 그의 친구였던 맥스 레브친을 만나게 된 이후 삼인방은 필드링크라는 스타트업을 설립한다. 피봇 과정을 거치며 아이디어는 온라인 결제로 구체화되었고, 1998년 사명을 컨피니티로 바꾼 뒤 1999년에 출시한 서비스가 바로 페이팔이다. 미국 달러를 대체할 인터넷 화폐를 만드려는 목표를 세운 뒤 처음 선보인 제품은 PDA 결제 서비스였다. 하지만 PDA의 낮은 인지도로 인해 이메일 기반 에스크로 서비스로 피봇했다.

2000년 3월에는 겨우 네 블록 떨어진 거리의 사무실에서 비슷한 제품으로 출혈 경쟁 중이던 일론 머스크의 X.com과 전략적인 합병을 하여, 사명을 페이팔로 변경했다.[5] 대신 경영권은 머스크가 가져갔다. 하지만 합병 이후에도 개발 방식, 보안, 결제 수수료 등의 문제로 인해 내부는 와해되었고, 팀원들의 전폭적인 신임을 얻은 틸은 2대 CEO로 임명되었다. 2대 CEO로서 2002년에 페이팔을 나스닥에 상장시킨 데 이어, 이베이에 기업을 15억 달러라는 거금으로 매각하는 데 성공했다. 지분 3.7%를 쥐고 있던 틸도 5,500만 달러를 확보하며 백만장자가 되었다. 이러한 배경으로 인해, 틸은 실리콘밸리 연쇄 거물 창업 집단인 페이팔 마피아의 대부로 거듭나며 2000년대 업계를 주도하게 된다.

백만장자가 된 틸은 2002년, 샌프란시스코에서 클라리엄 캐피탈이라는 헤지펀드를 창업하면서, 투자자로 전업에 나섰다.[6] 주로 파생상품에 투자하는 글로벌 매크로 전략을 사용했다.

9.11 테러로 인하여 안보 위기를 느낀 뒤, 사업의 기회를 포착한 틸은 2003년 5월, 팔란티어 테크놀로지스라는 빅 데이터 프로세싱 업체를 창업했다. 창업 직후부터 CIA의 수주 및 투자를 유치했으며, 주로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의 기관들을 대상으로 데이터 플랫폼 구축을 도와주는 업체다. 거시적인 창업 구상[7]은 틸이 진행했으나, 알렉스 카프와 스티븐 코헨이라는 적임자를 찾은 뒤에는 의장 역할에만 집중하고 있다.[8]

2004년 6월에는 페이팔 시절 동료였던 리드 호프먼의 소개[9]로 시드 라운드에서 페이스북의 지분 7%[10]를 50만 달러에 확보하며, 페이스북의 첫 번째 외부 투자자로 참여했다.[11][12]

2005년 페이팔 공동창업자 루크 노섹, 켄 하우리 등과 함께 파운더스 펀드라는 벤처 캐피털을 설립했다. 선언문을 통해 "우리는 하늘을 나는 자동차를 원했으나, 대신 140자짜리 SNS를 얻었다."며 파운더스 펀드를 통해 세계를 바꿀만한 잠재력을 가진 기업에 선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주로 초기 단계 라운드에서 투자를 진행한다.[13]

2008년에는 클라이엄의 본사를 뉴욕으로 옮겼으며, 80억 달러의 자산을 운용하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하지만 대침체 당시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막대한 손실을 보아 2011년 운용자산이 4억달러 이하로 쪼그라들고 2013년 펀드를 청산시켰다.

2011년 5월, '틸 장학금'이라는 프로그램을 개설했다. 해당 프로그램에 선발된 22세 이하의 학생은 2년간 대학을 떠난 뒤, 상금 10만 달러로 창업에 매진해야되는 조건이 붙는다. 장학금 뿐만 아니라 Y Combinator처럼 컨설팅과 인맥 소개도 지원해준다고 한다. 틸은 대학의 교육이 날이 갈수록 쓸모 없어진다고 생각하며, 학업으로 인해 불어나는 학자금 대출의 폐해를 부정적으로 여긴다.[14]

2012년 발라 벤처를 창업했다. 파운더스 펀드와는 다르게 미국 바깥에 있는 벤처 기업들에 투자한다.

2012년 6월, 미스릴 캐피탈을 창업했다. 규모가 성숙해진 스타트업 전문으로 후기 펀딩에 참여한다.

2015년, 샘 올트먼과의 인연을 계기로 2017년까지 Y Combinator의 파트타임 파트너로 일했다.

2021년 5월, 암호화폐 거래소인 Bullish Global에 투자함을 밝혔다. # 그의 저서 제로 투 원에서 페이팔을 창업했을 때 목표가 달러 등 정부의 지배를 받는 법정 화폐를 대체할 인터넷 화폐를 만들고자 하였다고 하는데 이를 본격적으로 실현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특히 Bullish Global 은 블록체인 개발사인 Block.one에서 개발하는 거래소로서 EOSIO를 이용한 private blockchain에 올라가 구동되면서 거래의 주요 회계사항은 public blockchain인 EOS mainnet 에 기록함으로서 회계투명성과 성능 모두를 잡겠다는 구도이다. 이때 EOS mainnet 위에 페그된 비트코인과 USD로 거래가 이루어진다. 때문에 비트코인의 최대 단점인 전송 속도를 0.5초로 단축시키고 전송 수수료를 거의 무료 수준으로 다운 시킬 수 있다. 이는 페이팔 창업시 피터틸의 꿈이었던 탈중앙화된 화폐로 비트코인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실현시키는 것이다.

2022년 2월, 메타의 연례 주주총회를 앞두고 이사 연임을 포기하겠다고 밝혔다. 2022년 미국 중간선거를 앞두고, 메타 이사회와 정치적인 면에서 충돌이 있었음을 시사했다.

3. 성향

공화당 지지자이며 자유주의 보수주의 성향을 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드 호프먼, 샘 올트먼[15] 등의 진보 성향이 두드러지는 인물과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16]

한편 민주주의에 다소 회의적인 입장이기도 하다. 모든 형태의 정치로부터 탈출하여 개인의 자유적 공간을 창출할 방법을 찾고자 2009년 비영리단체인 시스테딩 인스티튜트[17]를 창립하여 아인 랜드의 소설 움츠린 아틀라스에나 나올법한 어떤 정치권력의 힘도 닿지 않는 물 위에 떠다니는 수상도시를 진지하게 구상한 적도 있으며, 민주주의는 실패했고 강력한 지도자가 미국을 왕국으로 다스리며 중세 유럽식의 사회구조로 돌아가야 한다는 극단적인 주장을 하고 있는 인물인 신반동주의의 창시자 커티스 야빈의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기도 한 것으로 보아 아나키즘적인 측면도 있다.[18]

2009년 자유지상주의자의 교육이라는 선언문을 작성하며 선거 민주주의는 사회변화의 방편으로 적합치 않다는 주장을 피력했다. 자유와 민주주의가 양립 가능하다는 생각을 더는 믿지 않으며, 자유지상주의자의 주된 반대 유권자층인 저소득층과 여성을 대상으로 복지 혜택이 늘어나고 투표권이 주어지며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라는 개념은 이율배반이 되고 말았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뿐만 아니라 대중은 중요한 사안의 결정에 있어서 신뢰할만한 존재가 못 된다며 지식인의 중요성을 역설했다.[19]

2014년 저서 제로 투 원에서 "처음이란 아주 특이한 것이다. 모든 것의 처음은 그 이후에 벌어질 일들과는 질적으로 다르다."며 제헌의회에서 이미 가장 중요하게 다뤄져야 하는 사안들을 처리했기 때문에, 현재 시점에서는 사소한 문제들만 가지고 갑론을박해야되는 상황이라고 언급했는데, 2020년대에 들어서 도널드 트럼프를 비롯하여 본인이 지지하는 공화당이 이러한 굵직한 사안에 관심을 갖기보단 낙태와 정치적 올바름 등의 사고한 사안에 매몰되었다는 이유로 정치에 대한 회의감이 든 것으로 보인다.

3.1. 경제

자유무역에 기반한 비교우위가 창출하는 상업 그 자체의 생산력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이다. 폴 크루그먼과 비슷한 입장을 취한다. 한편 기술의 힘을 상당히 중요시 하는 편인데, 복잡한 결정에 강한 인간과 달리 인공지능은 처리에 강하여 서로 상호보완 관계에 있기 때문에 오히려 노동공급 측면에서는 자유무역보다 컴퓨터와의 상호작용으로 인간이 얻을 게 더 많다고 주장한다.[20] 다만 아직까지 생산성 측면에서 정보기술은 인류에 제대로 된 기여를 하지 못하고 있다고 본다. 세계경제포럼에서 당시 구글 CEO였던 에릭 슈밋의 '컴퓨터 낙관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한 바 있다.[A][22]

관료제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인물이며 정부의 불필요한 규제 폐기를 통해 위대한 사람들이 자유롭게 자신들의 뜻을 펼 수 있는 사회를 갈망한다고 한다.[23]

3.2. 사회문화

유년 시절 독일의 식민지였던 남서아프리카 위임통치령(現 나미비아)에 거주하면서 교복을 입고 체벌을 하는 학교를 다녔으며, 10대가 되어서는 경쟁이 매우 치열한 실리콘밸리 한복판에서 자란 탓에 어린 시절부터 자유주의적 갈망이 상당했다고 한다.

위치적 특성으로 인해 진보주의 성향이 지배적인 스탠퍼드 대학교의 질서에 대항하여 1987년 재학 당시 자유주의 및 보수주의 대학 신문인 <스탠퍼드 리뷰>를 창간했다. 데이비드 삭스 키스 라보이스 등 당시 틸과 뜻을 함께 한 창간 멤버들은 끈끈한 연을 이어가며 훗날 페이팔 마피아의 주축이 되기도 하였다. 특히 데이비드 삭스는 틸에 이은 2대 편집장이 되었으며, 그와 함께 <다양성이라는 미신(The Diversity Myth)>[24]이라는 책을 공동 출간하여 학계가 정치적 올바름 다문화주의 등에 매몰되어 있다고 주장하며 신랄한 비판을 가했다.[25]

3.3. 도널드 트럼프 관련

헐크 호건이 본인의 섹스 테이프를 유출한 고커 미디어와의 소송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거물 변호사를 붙여주며 소송전에 막대한 금액을 쏟은 바 있다. 그 결과 1억 1,500만 달러라는 이례적인 규모의 손해배상을 받아내며 고커 미디어를 폐업처리를 야기했다.[26] 호건은 도널드 트럼프의 공개 지지자였고 고커는 트럼프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배심원들이 호건의 손을 들어줬다는 점에서 틸은 트럼프가 정말로 선거에서 승리할 가능성도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호건의 소송전은 틸에게 촉매제로 작용하였고, 대의원 명단에 이름을 올린 게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에게 발견[27]된 것을 연으로 2016년 미국 공화당 전당대회 기조 연설에서 도널드 트럼프 지지를 공개적으로 표명했다.[28] 전당대회 기조 연설에서는 미국이 쓸데없이 중동을 침략해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다고 비판하며[29] 미군 철수를 외치는 트럼프가 옳다고 하였다. 틸은 기술 신봉자이기도 하여 항상 과학기술을 강조하였고 과학기술이 아닌 전쟁에 돈을 쓰는 것에 대해 여러차례 노골적 비판을 한 인물이다. 또한 평소에도 왜 국민 세금으로 금융업계에 돈을 쏟아 그들을 구제해줘야 하는지 의문이라고도 하였다. 이를 보면 전통적인 공화당 지지자가 아니라 트럼프라는 새로운 인물, 새로운 체제를 원해서 지지했다고 봐야한다. 어렸을 적 틸은 "Make America Great Again" 구호를 외치며 오일쇼크 이후 힘든 시기 등장한 로널드 레이건의 신문 기사를 모두 스크랩 할 정도의 광팬이긴 했다. 하지만 그 이후 그는 정치적 무신론자와 같은 포지션으로 딱히 정치에는 개입하지 않았으나 아마 트럼프에서 레이건의 모습을 봤으며 그가 실패한 구체제의 개혁을 위한 적합한 인물이라고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2020년 미국 대선에는 트럼프의 당선 가능성이 낮다는 이유로 지지연설이나 후원을 하지 않았다. #

2022년 미국 상원의원 선거 과정에서 J. D. 밴스 블레이크 마스터스에 1,000만 달러 수퍼팩 지원사격은 물론 밴스와 함께 트럼프를 직접 찾아가며 그가 오하이오에서 당선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결국 밴스가 2024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의 러닝메이트로 지명되긴 했으나, 트럼프를 뽑겠다고 말은 해놓고 후원금은 고사하고 막상 대선 기간 내내 침묵으로 일관했다. 인터뷰에 따르면 정치인들과의 관계을 끊고 싶어하는 것으로 보이며 더 나아가 민주주의의 한계성에 회의감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30] 이에 답답한 밴스가 그에게 자금 후원을 촉구하기도 했다. #

4. 여담

5. 어록

시간이 흐른다고 미래가 되지는 않는다.
경쟁은 패자들이나 하는 것이다.
경쟁이 아닌 독점을 하라.
성공한 기업들은 다들 서로 다르다. 각자의 독특한 문제를 해결하여 독점을 구축한 것이다. 반면에 실패한 기업들은 늘 한결같다. 똑같은 경쟁을 벗어나지 못 한 것이다.
비즈니스 세계에서 모든 순간은 단 한번밖에 일어나지 않는다. 앞으로 그 누구도 컴퓨터 OS를 만들어서 제2의 빌 게이츠가 될 수는 없다. 검색 엔진을 만들어서 제2의 래리 페이지 세르게이 브린이 될 수도 없으며, 소셜 네트워크를 만들어 제2의 마크 저커버그가 될 수도 없다.

(중략)


기존의 모형을 모방하는 것은 쉽지만 그래봐야 세상은 1에서 n이 될 뿐이다. 그러나 뭔가 새로운 것을 창조하면 세상은 0에서 1이 된다.[32]
창조라는 행위는 단 한 번뿐이며, 창조의 순간도 단 한 번뿐이다. 그 한 번의 창조를 통해 세상에는 낯설고 신선한 무언가가 처음으로 생겨난다.
당신에겐 정말 중요한 진실인데, 남들이 동의해주지 않는 것은 무엇입니까? [33]
양복을 입고 다니는 기술 기업 CEO에게는 투자하지 않는다.[34]
우린 하늘을 나는 자동차를 원했지만 결국 얻은 것은 140자 뿐이었다.[35]
저는 게이라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저는 공화당원이라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저는 미국인이라는 것이 가장 자랑스럽습니다.[36] #
- 2016년 공화당 전당대회 기조연설 중
제가 어렸을 때 가장 중요한 논쟁거리는 ' 어떻게 하면 소련을 이길 수 있을까'였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승리했죠. 그런데 지금 우리는 ' 누가 어떤 화장실을 써야 하는가'를 두고 필사적인 논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게 그렇게 중대한 문제인가요?
이 떠들썩한 선거철이 지나고 언젠가 우리 시대의 역사가 기록되는 시기가 찾아왔을 때 중요해질 논점은 단 하나, 새로운 정치가 너무 늦게 시작되었던 것은 아닐까의 여부일 것입니다.
-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 직후 연설에서


[1] 1978~ [2] 2011~ [3] # # [4] Matt Danzeisen. 틸 캐피털에서 펀드매니저로 근무한 바 있는 금융인이다. 둘은 2017년 10월 오스트리아 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5] X.com은 인터넷 은행으로 시작해서 컨피니티와 마찬가지로 이메일 에스크로 서비스로 피봇한 상황이었다. 두 기업 모두 신규 가입자에게 10달러를 지급하고, 친구 초대 시 10달러를 추가로 지급하는 다단계 방식으로 유저 수를 수십만명까지 끌어올렸으나, 닷컴버블이 꺼지면서 자금력의 한계로 인해 출혈경쟁 지속이 불가한 상태였다. [6] 운용 수수료 2%와 초과수익 수수료 20%를 가져가는 일반 헤지펀드와 다르게, 운용 수수료를 안 받는 대신 초과수익 수수료를 25% 가져가는 방식으로 펀드를 구성했다. [7] 페이팔을 경영할 당시 잦은 신용카드 사기로 인해 큰 손실을 입자, 맥스 레브친 주도의 팀이 실시간 가짜 거래 취소 프로그램을 구축한 적이 있다. 이고르라는 이름의 해당 프로그램은 성공적으로 작동하며 FBI의 사용 허가 요청까지 받기까지 했는데, 덕분에 팔란티어를 창업하기 전부터 FBI 등의 정부관련기관들이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8] 클라리엄 캐피탈에서의 펀드매니저 역할이 주업에 가까웠다. [9] 호프먼은 페이스북에 큰 관심을 보였으마, 당시 소셜 네트워크에 엄청난 관심을 보이며 페이스북의 경쟁사인 프렌드스터에 투자하고 개인적으로 LinkedIn 운영을 하느라 투자하기엔 역부족인 상황이었다고 한다. [10] 스티븐 레비가 장기간에 걸쳐 페이스북 관련 인물들을 취재한 것을 기반으로 출간된 <메타 페이스북>에서는 지분 7%로 기재되어있으나, 여러 언론에서는 최초 지분이 10.2%였다고 보도했다. [11] 2012년과 2016년, 2017년에 도합 11억 달러가 넘는 금액에 매각하여 2,000배가 넘는 수익률을 거뒀다. 페이스북의 창업을 다룬 데이비드 핀처의 영화 소셜 네트워크에서도 이 내용이 드러나 있다. [12] 여담으로 해당 투자금은 페이스북이 6개월 내로 150만 유저를 모으는 것을 조건으로 걸었던 전환사채였다고 한다. 근소한 차이로 목표 달성에 실패했으나, 틸은 전환사채를 주식으로 전환시켰다. [13] 페이팔 마피아 동료들이 설립한 스페이스X, 뉴럴링크, 링크드인, 옐프, 야머 등을 비롯하여 에어비앤비, 스트라이프, 리프트, 딥마인드, 스포티파이, 안두릴 인더스트리즈, 누뱅크, 아사나, 쿼라 등에 성공적으로 투자하며 2023년 기준 120억 달러 이상의 보유 자금을 운용하고 있다. [14] 2017년까지 100명 이상의 장학생을 뽑았고, 이들이 창업한 회사의 기업 가치는 10억 달러를 상회한다고 한다. 가장 유명한 사례로 루미나 테크놀로지의 창업자이자 포브스의 최대주주인 오스틴 러셀, 피그마를 창업한 딜런 필드 등이 있다. 2024년 기준으로 피그마 하나만 하더라도 기업가치가 100억 달러에 달한다. [15] 그 덕분에 샘 올트먼 사장 재임 당시 와이콤비네이터는 다른 투자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을 파트너로 두지 않지만 유일하게 피터 틸을 예외로 두어 비상근 파트너로 합류시켰다. [16] 진보 계열이라 보긴 힘들지만 중도파인 마크 저커버그도 틸의 트럼프 지지 이후 페이스북에서 틸을 해임하라는 실리콘밸리의 많은 구성원들의 주장을 '특정 정치가를 지지한다는 이유만으로 절반에 가까운 사람을 배척한다면 다양성을 논할 수 없다'라며 일단락시켰다. [17] 진전을 보이지 않자, 2015년 시스테딩에 대한 지원을 철회했다. [18] 그렇다고 야빈의 사상에 동조하는 것은 아니다. 야빈의 독재 회귀 주장에 대해 가능성이 낮으며, 그 독재자는 시진핑이나 블라디미르 푸틴처럼 악랄한 이미지로 과학이나 기술은 물론 개인의 권리나 시민적 자유 같은 것에도 긍정적인 가속을 붙여주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언급했다. 단순히 그를 재미있도 역량있는 역사가이자 친구 정도로 취급하는 것으로 보인다. [19]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와 어느 정도 연계되는 사고관을 지닌 것으로 보인다. [20] 심지어 죽음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믿지 않으며 영생을 진지하게 다룬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자란 유아기 시절에 그의 아버지가 호랑이 가죽을 보며 '우리 모두는 죽어'라고 암울하게 말한 것을 그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생물학적 죽음을 기술로서 극복할 수 있는지 여부는 아직도 그의 중요 화두이며, 알코어 생명연장재단에 가입하고 노년학자인 오브리 드 그레이의 재단에 기부하는 등 관련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트레이너는 물론 근육량을 늘리고자 성장호르몬 알약을 사용하고 비만치료제인 마운자로와 오젬픽, 메타포르민 등을 사용한다고 한다. [A] 조지 패커, <The Unwinding> [22] 파운더스 펀드를 출범한 이유도 문명의 근간을 바꿔줄 만한 기업들을 지원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하지만 펀드 출범 이후에도 날아다니는 자동차와 바다에 위치한 도시, 달 식민지 등을 언급하며 문명을 다음 단계로 올려줄 회사들에 관여하기는 커녕 이런 기업들을 접해보기도 힘들어 현재 최첨단 기술들이 고작 140자짜리 SNS에 쓰이고 있는 현실에 대해 비토했다. [23] 일단 본인부터가 미국 달러에 대응하여 탈중앙화된 디지털 화폐라는 원대한 목표를 꿈꾸며 페이팔을 창업한 것부터 시작하여 후술될 헐크 호건의 소송전을 도우며 최고의 자선 활동이었다고 자평하고, 일론 머스크 스페이스X가 파산에 가까웠을 당시 자금 일부를 지원해주며 세속의 정치에서 벗어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홍보하기 위해서였다고 언급하는 등의 행보를 통해 이러한 그의 성향을 옅볼 수 있다. [24] 국내 미출간 [25] 다만 이후 피터 틸은 신문의 성과가 만족스럽진 않았다고 회고한다. 당시 논쟁이 치열했으나 양쪽 모두에 별 소득은 없었던 참호전과 같은 양상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26] 고커가 피터 틸을 공개적으로 아우팅한 적이 있기 때문에 이 일로 틸이 앙심을 품고 있던 게 아니냐는 의혹이 존재한다. 고커가 미국의 대표적인 인터넷 찌라시였기 때문에 후련하다는 반응이 많은 한편으로 논란이 되기도 했는데 자산가가 마음만 먹으면 맘에 안 드는 미디어를 파산시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이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인 <침묵을 거래하는 손>에서 극명하게 나타나고있다. 물론 반박도 있는데, 역으로 말하면 피터 틸 정도의 자산가가 아니면, 미들 미디어가 악의적으로 한 사람을 박살내려고 찌라시 보도를 해도 일반인들은 도저히 대응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 찌라시 미디어의 횡포 문제도 있다. [27] 본래 트럼프가 아닌 칼리 피오리나를 지지했다. [28] 틸은 동성애자지만, 의외로 트럼프 본인을 비롯한 많은 보수적 정치인들이 LGBT 운동을 지지하는 발언을 했다. 특히 트렌스젠더를 제외한 LGB를 지지하는 보수 계열 인사들은 상당한 편이다. 사실 국민의 인권이야 좌우를 떠나서 보장해야 할 당위가 있는 것이기도 하고, 철저하게 학문적으로만 따져볼 때 보수라고 한다면 자유주의자, 특히 자유지상주의일수록 개인의 삶에 대한 개입(타인에 의한 것이든 정부에 의한 것이든)을 혐오하기 때문에 성소수자 인권을 탄압해야 할 이유가 없으며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을 억압하기 때문에 호모포비아에 반대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이들은 대신 성소수자 인권 보장을 위한 운동 역시 반대하겠지만.) [29] 물론 이는 힐러리 저격이기도 하다. 힐러리는 리비아 침공에 앞장섰으나 지금 리비아는 IS의 훈련기지가 되었다고 언급하였다. 그 전에 침공을 시작했던 부시 또한 비판한 적이 있다. [30] 2023년 인터뷰에 의하면 트럼프는 지난 상원의원 선거에서 틸의 측근인 매스터와 밴스를 지지해준 대가로 본인에게도 거액의 후원금을 챙겨줄 것을 내심 기대했으나, 틸이 전화를 통해 거절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이후 트럼프가 본인의 뒷담을 깐다는 소식을 들으며 둘의 사이는 완전히 틀어진 것으로 보인다. 사실 틸은 트럼프가 2016년 선거에서 승리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부터 그의 정부가 가장 기본적인 영역에서조차 엉망이라는 것을 깨달으며 그를 지지한 게 잘못된 선택이었다는 것을 인지했다고 한다. 트럼프에게 기대한 일종의 환상이 깨진 것 같다고 언급했다. [31] 팔란티르 - 천리안 - 빅 데이터 프로세싱, 발라 - 창조 - 벤처 캐피털, 미스릴 - 단단함 - 자산운용. [32] 그의 대표적 저서 제목이 <Zero to One>인 이유 [33] 그가 신입사원 채용 면접 때 하던 질문이다. [34] 늘 후줄근한 후드티만 입고 다니는 것으로 유명했던 마크 저커버그에게 그가 기꺼이 투자했던 사실을 연상시키는 발언이다. [35] 트위터를 의미하는 것이지만 트위터를 비판하는 의미는 아니다. 그보다는 과학기술이 과거에 비해 정체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의 친구 일론 머스크도 비슷한 생각으로 기업을 창업하였다. [36] 이 말 직후 참석한 수많은 공화당원들이 "USA! USA!"를 외치며 기립박수가 쏟아졌다. 다만 떨떠름한 표정으로 박수를 약하게 치거나 팔짱만 끼는 사람들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