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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6 23:46:09

프로불편러

불편충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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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1][2][3]
파일:DAo570dad058718f.jpg
뭘 해도 욕먹는 세상[4]

1. 개요2. 유래3. 원인4. 용어의 오남용5. 구별
5.1. 정상적인 비판자와의 비교
5.1.1. 말장난, 사소한 것 물어뜯기
5.2. SJW와 비교
6. 특징
6.1. 매우 낮은 자존감6.2. 혐오 확산 목적6.3. 정당화6.4. 책임 회피의 용이함6.5. 잘못된 악의적 추측6.6. 결론의 왜곡6.7. 이중잣대6.8. '팔려가는 당나귀'6.9. 극단적인 자기중심적 사고6.10. 무책임함
7. 창작물에 미치는 해악
7.1. 자질구레한 해석7.2. 표현의 자유 억압7.3. 연좌제7.4. 엉터리 고증 강요7.5. 결과물의 완성도 및 판매량 저하
8. 인터넷에서
8.1. 용어의 확산
8.1.1. 어원8.1.2. 뻔뻔함의 독려
8.2. '논란'의 범람8.3. 나무위키에서의 프로불편러
9. 대한민국 외 국가의 프로불편러10. 사례
10.1. 성별 문제10.2. 만화 문제10.3. 게임 문제10.4. 군인 문제10.5. 문화적 문제10.6. 민족주의 문제10.7. 생활 속 문제10.8. 님비현상
11. 대처법12.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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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毋借公論以快私情 (무차공론이쾌사정)
공론을 빌려 개인적 감정을 만족시키지 말지니라.[5]
채근담 중
식견은 짧고, 신념은 갈팡질팡하면서, 뭔가 사건만 터졌다 하면 이것저것 쓸데없는 트집 잡기에만 혈안이 된 사람들을 비꼬는 신조어. 일반적인 사회통념상 전혀 문제될 것이 없고 아무 의미 없는 단순 표현이나 현상을 쓸데없이 과대해석 하거나 악의적으로 왜곡할 목적을 가지고 “이거 나만 불편한 거야?”라는 식의 문구로 소모적인 논쟁을 부추기는 투덜이, 불평분자들을 한데 지칭하는 단어다.

2. 유래

본래는 인터넷 커뮤니티 등지에서 유머성 게시글에서 과도한 지적을 하는 이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이것이 확대되어 지극히 개인적인 기준으로 사회 전반에 걸쳐 과하게 예민하게 반응하고 별것도 아닌 것을 커뮤니티에 올려 조리돌림하거나 공감받으려는 사람들이라는 의미가 되었다.

프로불참러에서 변형된 것으로 보는 사람도 있지만, 프로불편러라는 말이 프로불참러보다 먼저 사용되었다. 오히려 프로불참러가 프로불편러에서 파생되어 나온 신조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전문적인 것을 뜻하는 Pro(fessional)[6] + 불편(不便) + ~하는 사람을 뜻하는 접미사 -er/-or[7]의 합성으로 만들어진 조어다.[8][9] Pro와 -er가 모두 붙었다는 점에서 프로게이머에서 유래되었다는 시각도 있다.

비슷한 행태를 보이는 이들을 영미권에서는 cry bully, SJW (Social Justice Warrior)라고 부른다. 한국에서 사용하는 프로불편러라는 뜻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The Professionally Offended”라는 말도 많이 쓰인다.

3. 원인

프로불편러는 삭막한 사회와 툭하면 극혐으로 몰아붙이는 문화를 함축적으로 비판하는 낱말이다. 극혐 대상보다 뭐든지 쉽게 극혐하는 태도가 더 싫다는 사람들도 많다. 요약하자면 세상 모든 것들을 자신과 똑같은 수준으로 낮추고 싶어하는 사람들, 자기의 개인적인 불편함을 이유로 여론몰이 + 분탕질을 시전하는 사람들이며 또한, 기본적인 상식조차 자신의 고정관념 하에 판단하기 때문에 극단주의적인 행동을 취하게 된다.

개인의 권리 의식과 지식 수준이 높아지면서 과거에는 문제인지 몰랐던 것이 문제였다는 것을 알게 되고, 대중이 자유롭게 의견을 풀어놓을 수 있는 인터넷의 발달로 토론과 비판 활동이 활발해졌다. 이는 사회 전체적으로 볼 때 그 동안 부적절하게 이어져 내려오던 것을 바로잡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현상이지만, 프로불편러들의 수도 같이 늘어나는 부작용이 일어났다.

프로불편러가 늘어가는 이유는, 불편함의 원인이 되는 근본적인 문제를 파악해서 직접 고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다수에게 '대상'을 성토해서 힘들이지 않고 여론의 힘으로 강요하는 것(= 다수의 폭력)이 훨씬 더 쉽고 빠른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10][11] 이를 공론화의 잘못된 사용법과 관련지어 평하는 사람들도 있다.[12]

2015년 여성시대 대란 이후로 프로불편러는 트페미를 위시한, 적다고는 할 수 없는 여덕들의 상징 중 하나로 여겨지고 있지만 의외로 그전까지는 남덕들 중에 프로불편러가 많았다.[13] 특히 2010년대 초까지 리그베다 위키에서 놀아봤거나 남성향 블로거들과 교류해본 분들이라면 바로 무릎을 탁 칠지도 모르겠다. 더욱이 그때만해도 국까 담론이 헤게모니로 자리잡고 있어서[14] 조금이라도 선진국을 비판하거나 한국을 옹호할 경우 바로 국뽕 낙인이 찍히기 쉬웠던 시절이라 당시 국내 기준으로 생소한 개념이던 정치적 올바름 떡밥으로 지적 허세를 부리던 너드나 네덕들이 판치기 딱 좋은 환경이었다('한국은 아직 이런 것도 미비하지! 어휴 이런 몽매한 족속들'... 혹은 '대중문화 발전에 저해되는 운운'...[15] 이런 식으로). 그러나 15년 이후론 여덕 쪽에서 페미니즘의 광풍이 몰아닥치고 이들이 사방팔방 사고를 치고 세력을 펼치며 프로불편러를 조롱하는 문화가 자리잡게 되자 대부분 언제그랬냐는 듯 지금은 입 싹 씻고 등 돌린지 오래다.

SNS는 특성상 다양한 사람들을 상대해야 하는 특징이 있어, 세상의 별의 별 사람을 다 만날 수 있다. SNS 및 인터넷이 없던 시절 사람들은 자신과 물리적으로 가까운 관계 정도만 마주하였지만, 시대의 발전과 함께 인터넷이 통하는 모든 범위 내의 사람들과 SNS로 대화할 수 있게 되면서 발언에 민감한 사람이 있을 확률이 높아졌기에 수많은 사람을 만나면 그중 사소한 것에 불편함을 표하는 사람을 만날 가능성도 당연히 높아졌다.[16] 유명인일 수록 더욱. 평범한 일반인이 SNS에 비속어와 난잡한 게시물을 올려도 사소한 관심이나 욕설만 돌아오는 데 반해, 주목도가 높은 연예인은 말 한 마디에 조금만 의문이 생기게 흘려도 대중의 집중 포화를 받을 수 있다. 오히려 프로 불편러의 등장은 불가피 하였던 것중 SNS의 대중성 증가로 쉽게 모두가 모두를 만날 수 있게 되면서 한 프로불편러가 또 다른 프로불편러를 낳는 현상도 보여져 온다.

한편 세월호 사고도 프로불편러가 등장하는데 한 몫을 했다는 의견도 있다. # #

4. 용어의 오남용

이렇듯 '프로불편러'라는 용어가 워낙 유행하다 보니, 조금만 곱씹어 보면 충분히 합리적인 논지의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까지 매도하는 용도로 오남용되는 경우가 매우 많아졌다.

남들과 다른 생각을 하는 것 자체를 문제삼아서는 안 된다. 비록 나와는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의 주장이라도, 정말로 보편적인 상식에 어긋나고 반사회적/반인륜적인 시각이 아니라면 존중하고 경청하는 것이 올바른 토론 태도이다. 이견을 가진 타인과 대화할 때는 자비의 원칙을 잊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한 자세이자 예절이다.

근본적으로 '문제 제기'라는 행위는, 최종적으로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려할 수 있는 사회 각계각층 구성원들의 다양한 의견을 듣기 위해 하는 것이다. 단순히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이득을 위한 여론몰이나 아무런 대안도 제시할 수 없는 원초적인 감정 표출의 창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또한 정당한 문제 제기에 따른 다양한 의견 제시를 자신의 뜻과 맞지 않는다는 등의 이유만으로 대중들의 감정적 여론몰이 혹은 물타기로 매도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 역시 중요하다. 한 마디로, 내 의견에 반대했다고 무조건 프로불편러로 몰아가면 안 된다. 때문에 현실에서는 역설적이게도 상대를 프로불편러라고 매도하는 당사자가 프로불편러인 경우가 대부분이다.[17]

분명히 문제가 있는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자의적인 잣대를 함부로 들이대어 일부의 극단적인 반응일 뿐이라고 단정짓는 행위는, 건강하고 폭넓은 사고를 행하는 데 있어 방해가 될 뿐이므로 강력하게 자제해야 할 태도이다.

이렇게 정당한 비판을 하는 사람들을 프로불편러와 구별하기 위해 생겨난 신조어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화이트불편러이다.

5. 구별

5.1. 정상적인 비판자와의 비교

정상적인 비판자는 일반적인 다수가 인정할 수 있는 투명한 기준 아래에 일회적이거나 사소한 실수, 유머를 구분해서 상습적이거나 중대한 것 위주로 지적하며, 당사자를 존중하는 태도에서 변화를 촉구한다. 강도 높은 비판은 당사자가 불량한 태도로 변화를 거부할 때 한하며[18], 당사자가 개선의 모습을 보인다면 정상적인 비판자는 기꺼이 받아들이고 서로가 기분 좋게 윈윈하는 결과를 만들어낸다.

이성적인 비판자는 자신의 관점이나 지식이 틀렸다는 정보를 확실하게 얻으면 과감히 자신이 틀렸음을 인정하고 의견을 바꾼다.[19] 자신이 틀린 정보를 근거로 다른 사람에게 장황설을 펼쳤다는 사실을 순순히 인정하는 것은 굉장히 부끄러운 일이며, 프로불편러들로부터 내로남불 스탠스라며 물어뜯기는 것을 감내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과학은 이 자가 검증과 자가 수정을 기반으로 탄탄한 지식의 탑을 쌓는다. 그리고 이상적인 비판자는 자신의 의견에 다시 딴지를 거는 사람을 대할 때 아군과 적의 개념으로 대하지 않는다. 가설을 펼친 자신과 가설을 더 탄탄하게 입증해줄 상대로 대한다. 평론이 작가를 키우고 라이벌이 선수를 키우는 법이다. "네가 날 완성시켜."라는 대사로 표현할 수 있겠다.

그러나 프로불편러, SJW는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을 '정의를 무너뜨리는 적 세력'으로 규정하며 당사자를 매도하는 것을 당연시 한다. 이렇게 한 번 무너뜨려야 할 적으로 인식한 이상 매너는 없다. 온갖 가혹한 정치질을 이용해 상대를 인격적으로 무너뜨리기에 집중 공격한다.

정상적인 비판자는 당사자에게 최대한 해가 가지 않을 방향으로 의견을 말하지만, 프로불편러는 "올바르지 않다.", "지양되어야 한다."라는 미명 아래에 언급자제, 기록말살, 사적제재, 조리돌림, 뒷담화를 동원하여 신체/언어/사회적 폭력을 행한다. 프로불편러가 비난 당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폭력성이다. 적으로 규정한 이상 죽여야 할 상대로 취급한다. 논의보단 살의가 크다. 죽음보단 믿음이 크다. 프로불편러에서 폭력성을 빼면 대중의 눈은 덜 사나워질 것이다.

성장 과정이 불우했다고 하여 다른 사람들이 효심을 표현하는 것 자체를 문제 삼을 수 없다는건 모두가 안다. 하지만 이러한 목소리를 공공연하게 내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이것은 올바른 사회현상이다. 하지만 문제는, 고아였던 사람과 부모의 학대에 시달렸던 사람을 구분해서 언급하지 못하는게 있다. 따라서 라디오나 TV 프로그램에 사연을 보낼 때 부모의 학대 때문에 어버이날을 축하할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답니다.라며 위로를 청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아픔을 극복하려 한다면 정상적인 비판이지만, 단순히 자신의 어릴적 생활이 어려웠단 이유만으로 어버이날에 선물을 준비하는 선량한 다수의 사람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주지 말라고 폭언을 했다면 이는 프로불편러로 보아도 무방하다. 그런데 어버이날 공휴일 지정을 반대한 청와대 청원이 정말로 올라왔는데 그 이유가 상대적 박탈감 자극이었다고 한다. 기사

5.1.1. 말장난, 사소한 것 물어뜯기

"힘들어 죽겠어."라는 말에 "과로사한 고인에 대한 모욕", " 암걸릴 거 같다"라는 말은 "암 환자 및 그 친지에 대한 모욕"이며, 드라마에서 술을 마시면 "청소년도 볼 수 있는 프로그램에서 음주 권장", 무의식적으로 중지로 안경을 올리면 "평소에도 저런 행실을 보이는 문제 있는 사람", 세금 내기 어렵다고 하면 "공인으로서 옳지 못하다" 등 끝도 없이 트집을 잡고 확대해석하면서 이것을 "올바른 문화를 만들기 위한 선도"라고 포장하는 것이다.(이는 사실상 현재 확산되고 있는 '정치적 올바름'의 일원으로 연결된다.)

맥락이라는 언어 표현의 가장 중요한 요소를 무시한다. 강박적이며 기계적인 기준으로 언어 표현을 감별하며 필터에 걸린 표현과 당사자에게 몰려가 단체로 물어뜯는다. 그러나 딴지를 건 문제를 개선하지는 못한다. 분란과 언어 통제만 유발하며 타인의 사상을 불편러들이 용인할 수 있는 사상으로 바꿀 뿐이다. 타인이 용인된 타인으로 바뀌었을 때 그제서야 간섭을 멈춘다.

프로불편러의 목적은 현상 개선과 다소 동떨어져 있다. 딴지를 걸면 세상이 더 나아진다는 신념을 기반으로 행동한다. 그 내면의 목적은 영웅적인 자아 형성이다. 간단히 말해 누군가를 비하하고 물어뜯으며 딴지걸기를 시전하는 나 = 잘난 나라고 여기고는 스스로를 잔 다르크로 만드는 것이다. 그 모습은 안쓰럽게 보일 수 있으나 이해할 여지가 없지는 않다.

또한 의도는 좋다. 자유, 평화, 평등... 우리는 누구나 영웅이 되고 싶지 않은가. 그러나 현실은 시궁창인 법. 저속하게 말해 프로불편러의 현실은 자기위안, 자위다. '평범한 사람들은 그다지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 거지만 나같은 깨어있는 시민은 이런 현상의 부당함을 알고 있다. 사회는 미개하고 무지몽매하다. 내가 참여해서 바꿔야 한다.' 같은 영웅 놀이다. 대중은 생각보다 무식하지 않다. 부조리, 사소한 불편함 정도는 다 알고 있다. 하지만 큰 문제는 아니며 바꾸는 일이 바꾸지 않는 것보다 더 괴로우니 침묵할 뿐. 과거에는 무작정 욕설을 퍼부으면 됐던 악성 댓글이 네티즌의 의식 성장으로 배제당하자 이번에는 정의와 여론을 뒤집어쓰고 비난을 행하는 형태로 변질된 것.[20]

따라서 정당성을 뒤집어쓰기 용이한 극단주의와 결합하기 쉬우며, 별 생각을 하지 않고 겉보기만 보면 그럴 듯한 영웅으로 보이기 때문에 이러한 행태를 정말 좋은 것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자기도 영웅놀이가 하고 싶어서 '나도 저런 걸 찾아 봐야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악순환이 된다.

인터넷과 SNS가 발달함에 따라 인터넷으로 선동식 자료를 접한 사람들이 그것을 SNS에 퍼뜨리고, 친구들 등 주변인들은 그 자료에 선동되어 일파만파 정치적 선동에 휘말리는 사태가 보수, 진보 양측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들은 프로불편러라는 지적을 받으면 진영논리를 내세워 비난하고 프로불편러들을 더 의기양양하게 만드는 추종자로 변질되어 악순환을 일으키고 있다.

이러한 사소한 것을 물어뜯는 행위는 결과적으로 프로불편러를 늘어나게 만든다. 최근 프로불편러들이 등판하기 전에 먼저 그들이 불편해할 요소를 찾아내고 프로불편러를 비꼬는 댓글이 늘어난 것이 그 예이다. 즉 프로불편러들이 특정 요소에 대해 지속적으로 불편함을 토로함으로써 실제로 그 요소가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민감한 요소가 된 것이다. 그러나 이는 프로불편러들에게 좋은 현상이 아니며 오히려 마이너스로 작용한다.

예시로, 프로불편러 A가 본래 문제될 부분이 없는 특정 요소에 대해 지속적으로 민감하게 반응했다고 하자. 이에 반감을 가진 B는 이후에 A가 문제삼았던 특정 요소를 접하면 민감하게 받아들여 "A가 이 요소에 태클을 걸 것 같다", 혹은 "이유없이 A에게 욕 먹을 것 같아서 불안하다"는 반응을 보인다. B에 속한 사람 중 반감이 심한 사람은 해당 요소가 등장하는 것만으로 A를 비꼬는 말을 할 수도 있다.

여기서 특정 요소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는 것은 A나 B나 같다. 즉 A는 특정 요소에 대해 별 생각이 없던 B를 실제로 프로불편러로 만들었으며, 결과적으로 프로불편러가 늘어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는 결코 A에게 좋은 현상이 아닌데, 특정 요소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A나 B나 같지만 A는 해당 요소의 시정을 원하는 반면 B는 해당 요소의 존속을 원하기 때문이다.

프로불편러가 강경하게 나올수록 이에 대한 반감도 강경해진다. 게임계에서 감독이 불편러 눈치 보는 것 같다고 하는 유저들이 늘어난 이유도, 예능 프로그램들이 불편러 때문에 재미없어졌다고 하는 시청자들이 나오는 이유도 이것이다.

프로불편러에게 지속적으로 시달린 나머지 자신이 원하지 않음에도 특정 요소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어 스트레스를 받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 이는 프로불편러들이 의도한 것으로, '이 요소는 불편하다'는 것을 끊임없이 환기시킴으로써 상대방이 자신과 같은 사고를 하게끔 만들어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려는 목적을 갖고 있다.

일단 이 상태에 접어들면 특정 요소로부터 불편함을 갖지 않던 이전 상태로 회복되기가 어렵다. 불편해하지 않으려고 애쓸수록 역효과로 인해 더 선명하게 떠오르게 되며, 이로 인해 해당 요소에 악감정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피하게 되기도 한다.

5.2. SJW와 비교

'프로불편러' 용어는 차별적인 언어 사용을 방지하는 PC운동을 남발하는 PC 경찰( SJW)에 대한 조롱으로 많이 쓰이며, 둘 사이에는 무관용, 트집, 그리고 상대방의 사소한 행동조차도 일방적으로 교정하려는 시도, 그 밖에 공격적 반응극단적인 방법론 등이 함께 수반된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렇지만 프로불편러와 SJW 사이에도 차이점이 존재한다. 프로불편러의 기준은 표면적인 공공선 같은 걸 따르는 게 아니라 '내 불편한 감정'을 더 신경 쓴다는 점에서, 그리고 혼자서 물어뜯는 것이 아니라 조리돌림하는 과정이 필수적으로 들어가지만 PC 경찰은 '차별'이라는 기준으로 혼자서도 맹렬히 공격한다는 점에서 약간 차이가 있다. 앞서 말했듯 개인의 욕심이 모두를 위한 것인양 위장할 수 있기 때문에 이야기 나눈 주제 만으로는 둘을 거의 구분할 수 없다.

6. 특징

6.1. 매우 낮은 자존감

이들의 대표적인 특징이자 이들이 강하게 부정하는 특징으로 이들은 특정 분야에 매우 뛰어난 사람들을 보면 극도로 열등감을 느끼며 그 사람들에게 참견을 함으로써 간접적으로 자기 과시하려는 성향이 강하다.[21] 본인의 참견이 대놓고 무시당했을 경우 스스로 큰 모멸감과 수치심을 느끼는데 정작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도 본인의 결점을 고치려 하지 않는다.

6.2. 혐오 확산 목적

프로불편러는 자신의 불편한 감정에 공감, 동의를 요구하는 것을 중요한 맥락으로 삼는다. 즉, 당사자에게 조용히 이의제기를 전해서 현상을 개선하려는 목적보다는 확성기부터 켜서 당사자가 보지도 못할 전혀 상관없는 장소에서 개인을 향한 혐오를 확산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특히 '고객의 소리'나 메일 하나 보내지 않고 사람 많은 커뮤니티부터 달려가는 행태는 혐오의식을 군중심리로 확대하여 자신의 의견을 다수결로 관철하려는 의도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프로불편러의 주장은 논증보다는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대중적 파급효과를 더욱 우선시 하게 된다.

6.3. 정당화

프로불편러는 어떠한 행동에 문제를 느낀뒤 행위자를 비판하는 순서가 아니라 공격대상을 직관적인 감정 수준에서 이미 결정해놓고, 그 뒤 자신이 왜 불편했는지에 대한 것을 감정에 호소하면서 이유를 갖다붙이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내놓는 이유도 ''아니, 도대체 이게 뭔데 불편하다는거야?"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내용이지만, 그들은 어떠한 이유를 대서라도 "불편"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으로 받아들이도록 강요를 한다.

비난을 정당화시키는 주된 논거는 본인 의견의 감정적 색채를 감추기 좋은 정치적 올바름으로, 이 경우는 당위와 사실을 혼동함으로써 생기는 오류가 근본적인 원인이다. 동의하지 않는 이에게는 ' 윤리적 감수성이 떨어진다.', '감정이 메말랐다.', ' 구시대적 사고방식을 지녔다.' 와 같은 비난의 화살을 날리거나 개인적 가치관에 대한 사상검증을 실시하기도 한다.

상대적 박탈감이나 '저 사람 주변인이 싫어할 거 아니야' 등의 추측을 정당화 근거로 삼기도 한다. 예를 들어, 상대적 박탈감은 유명인의 호화로운 집이 공개됐을 때 "못 먹고 사는 사람이 많은데 염치없게 돈 많다고 자랑을 해?"로[22], 주변인 추측은 "저 사람 나대는 성격인 거 주변 사람들한테 피해주는 거 아나 몰라?"일 때 이용된다.

"이 의견이 내게 불리하지만 양심적으로 봤을 때 올바르기 때문에 동의한다."[23],' '내 생각이 우리 집단의 대표적인 생각이다"(= 이미 다수가 인정한 의견인데 넌 인정 안 할 거야?)라는 느낌을 주기 위해서 "나는 xx지만"을 서두에 붙이는 경우도 있다.

개인 혹은 소수의 불만을 사회 진보 목적으로 포장하기도 한다. 언론사들에서 불편러에 대한 불만 자체를 봉쇄하는 논지로 많이 사용하는데, 역사적인 위대한 저항운동이나 인권의 진보에 있어서 기존 사회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의 목소리가 필요불가결했으니 프로불편러는 선구자들이라는 식의 논리다. 그러나 개혁가와 반사회자는 엄연히 다르듯, 모든 불만이 공공의 정의를 위한 것이 아닌데도 나쁜 사례들을 지칭하는 불편러까지 좋은 예시가 포함되는 것처럼 왜곡하려는 행동이다.

6.4. 책임 회피의 용이함

프로불편러들이 특히나 불편이라는 단어를 선택하는 이유는 '불편'이라는 용어가 발언의 책임에서 벗어나서 "내가 대놓고 비난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니고 살짝 언짢다."라는 가벼운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불편함은 본질적으로 감정 문제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유리할 때는 이성적(으로 보이는) 근거를 내세워서 여론을 호도하고, 불리할 때는 애당초 개인적 사고 영역 차원의 일임을 강조하면서 감정 문제로 후퇴하기에 매우 편리하다. 그러므로 인간의 무의식, 인정, 이해관계에 호소하는 비형식적 오류가 주된 논지로 사용되기 쉽다.

프로불편러는 "불편을 느끼는 내가 아닌 (알아서 몸을 사리지 않고) 나를 불편하게 만든 비난 대상이 잘못된 것이다."라고 하면서 논의 지점을 이성만이 아닌 눈치, 감수성 등 다양한 요소가 뒤섞여 있는 감정 문제의 영역으로 자연스럽게 끌고 가기도 쉽다. 논쟁이 확대되거나 불리해질 경우에는 "아님 됐고, 어쨌거나 나는 불편하다고."라고 아몰랑스러운 태도를 보여주거나, "지금 내가 불편하다는데, 뭘 그런 사소한 걸 붙잡고 말꼬투리를 잡냐?"라고 오히려 상대방을 프로불편러로 몰아가기도 한다.

여기에 '나만 그래?'라는 식으로 동지를 찾는 의문형 발제가 흔한 이유 역시 일단 동조자를 찾고 없으면 질문에서 끝내되, 동조자가 많이 나타나면 자연스럽게 자신은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확대시키기 위함이다.

특히 트위터는 프로불편러의 온상이다. 그 이유는 초면인 사람에게도 멘션달기를 통해 언제든지, 얼마든지 자신에게 거슬린다며 무례하게 공격하는 것이 편하기 때문이고, 또 자신에게 불리하다 싶으면 바로 상대방에게 차단을 걸어 도망치기 편한 시스템이다 보니 그런 것. 심지어 차단을 걸어놓고선 부계정을 따로 파서 끈질기게 사찰하고 쫒아오는 경우도 많아 한번 만나게 되면 본인만 시간낭비에 짜증만 난다. 이런 문제는 많은 트위터리안들이 트위터 활동에 지겨움을 느끼게 만든다.

6.5. 잘못된 악의적 추측

이를테면 어떤 단어가 실시간 인기검색어가 되었을 때 화제가 된 이유를 악의적으로 오측하는 것이 해당된다. 야스쿠니 신사가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을 때, "요즘 중고등학생들은 야스쿠니 신사가 뭐 하는 데인 줄 몰라서 이걸 검색하고 앉았냐!"며 분노한 사람이 있었다. 이 경우는 사람들이 야스쿠니 신사에 최근에 무슨 일이 새로 생긴 것인지 뉴스를 알기 위해서 사람들이 검색한 것이지만, 프로불편러들은 이처럼 사건의 원인을 부족한 근거하에 악의적으로 잘못 추측한다. 이게 심해지면 자신들이 중요시하는 문제가 실시간 검색어에 올라와도 '이렇게 많이 검색한 것은 사회적으로 지식이 부족해서다!'라고 분노하기도 한다.

과거 문근영이 패션 잡지에서 여성 작가[24] 콘셉트로 화보 촬영을 하며 흡연 장면을 연기했을 때 문근영 담배가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다. 이때 허지웅은 이 검색어만 보고 "사람들이 문근영을 비난할 의도로 검색한 것이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문근영이 어떤 배경에서 담배와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서 검색했을 뿐, 악의적 의도가 담겼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개개인의 검색행위 자체에 일상적으로 집단적 조작행위가 깔려 있다고 믿는 것은 평소 자신의 주변 행동에 의한 귀납적 판단이라고 볼 수도 있다.

6.6. 결론의 왜곡

사회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자행되던 차별이나 비합리적인 요소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일이 많아지면서 동시에 자신이 생각하든 '나쁜 행위'의 범위에 포함시키기 위해 무리하게 사건의 판단결과를 왜곡하는 경우도 생겨난다.

예를 들어, 동영상 편집 앱 중 하나인 '콰이'에 대한 불만 중 일부가 이에 해당한다. 해당 앱은 동영상에 효과를 넣거나 소리를 합성해서 재미있게 하려는 앱인데, 예시로 등장한 광고 속 사용자들의 동영상이 짜증난다는 불만이 많았다. 일면식도 없는 다른 사용자들이 만든 아기 목소리나 귀여운척 하기 동영상을 보기 싫다는 것인데, 여기서 나아가 프로불편러의 영역에 도달하여 여성이 아기 목소리를 합성한 부분이 소아성애이며 불편하다는 비난까지 등장했다.

상식적으로 해당 앱을 사용하는 기능에 성별제한이 있을 리 없고, 실제로 남성 사용자보다 여성 사용자가 극단적으로 많은 꾸미기앱에 예시영상으로 여성 사용자가 많은 건 비중상이나 마케팅적으로 당연하다. 더군다나 그러한 목소리를 만드는 것은 영상에 비친 여성 본인이고, 그런 아기 목소리를 통해 성적 어필을 하기보다는 웃기고 코믹한 영상을 만드는 것이 주목적이다. 결국 소아성애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소아성애=절대적으로 비난받아야 할 대상' 이라는 보편적 인식을 이용해서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대상을 그 단계까지 강제적으로 연결시키려는 행위가 된다.

그러나 남녀 공히 해당 광고를 싫어하는 상황에서 같이 비난하는 사람이 미묘하게 논점이 빗나간 말을 한다고 일일이 수정하려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이 보통이고, 광고를 깐다는 큰 동료집단 안에서 누군가가 비합리적인 논리를 통해 '아기목소리 합성=소아=소아성애=제작자는 소아성애 의도' 를 강제로 연결시킨다고 해서 그 논리적 연결고리를 하나하나 분석해서 처음과 끝이 꼭 연결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걸 지적하려는 노력은 보통 하지 않는다.

이렇게 한번 '소아성애'라는 단어를 부각시키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그 이전 단계의 논리적 증명여부와 무관하게 소아성애라는 단어가 언급된 의견만 확대 재생산하면 간단하게 '논란'을 만들 수 있다. '논란'은 증명여부와는 무관하기 때문에 어쨌든 특정 단어를 가져다 '논란'의 단계로만 이끌어 내면 단락적이고 깊이가 얕은 인터넷 여론의 특성상 사회적 이미지를 변화시키는 것은 용이하다.

결론적으로 신문기사나 SNS에 등장하는 기사들에서 사용되는 자극적인 단어들과 연결시키면 사회적 파급력이 크기 때문에, 논리적 연관성이 취약함에도 불구하고 현상에 대한 판단을 왜곡하여 원하는 특정 '불편한 용어'로 결론짓는 경우가 이에 해당하게 된다.

6.7. 이중잣대

프로불편러가 비판받는 가장 큰 이유에 해당한다.

예를 들어, 여성 관련 고정관념이 들어가 있거나 성 상품화가 되어 나오는 프로그램에는 비난과 욕을 하면서도, 남성 관련 고정관념에는 반응하지 않거나 지지하는 등의 성차별적인 반응을 보인다. 반대로 등장인물의 대부분이 남성인 드라마, 애니메이션 등에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다가도 등장인물의 주축이 여성이면 페미 영화로 낙인을 찍고 무차별적으로 비난하는 행태도 성차별적 이중잣대로 볼 수 있다. 인종 문제에 민감한 서양에서는 화이트 워싱, 블랙 워싱 등을 예시로 들 수 있겠다.

자신이 제기할 이의가 프로불편러의 소행인지 판단할 때는 자기 자신은 다른 분야에서 동일한 수준의 잣대를 지키고 있는지를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대다수의 불편러들이 불편해하는 것은 개인적인 것이나 기성화된 사회적 주제(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고아, 인종 등)에 한정될 뿐, 그 주제에조차 포함되지 않는 다수의 약자들에 대한 부분에는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심지어는 잠재적 가해자 내지 갈라치기라며 도리어 그들을 비하하는 불편러들이 많다.

고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여성이나 남성에게 불쾌감을 주는 작품에 대한 논란은 많았지만, 어버이날 마케팅 같은 것을 두고 고아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준다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불거진 적이 없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이들에는 대해서 "사소한 것 가지고..."라고 넘어가면서 자신의 의견만 중요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6.8. '팔려가는 당나귀'

' 팔려가는 당나귀' 이야기를 변형한 짤방.

위의 이중잣대와는 조금 다른 형태. 속칭 ' 가불기', ' 이래도 지랄 저래도 지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자신에게 마음에 들지 않으면 서로 반대의 개념이나 주장, 해석들에 대해 동시에 비난과 욕을 가한다. 가령 특정 인종, 성별을 우대하는 주장에 대해 ' 역차별', '진정한 평등이 아니다'라고 비판하면서, 동시에 인종이나 성별을 따지지 않고 동등하게 대우하는 주장에 대해선 '차별당하는 현실을 외면한 처사'라고 비판하는 형태.

프로불편러들 중 가장 까다로운 유형으로 남의 말을 들을 생각 자체가 없으며 무조건 반대지상주의를 깔고 들어가는지라 설득도 토론도 먹히지 않는 막가파들이다. 순환 논법이 동원되기도 한다.

6.9. 극단적인 자기중심적 사고

사람은 누구나 이기적이거나 이타적이기도 한다. 정상인이라면 누구나 이기심과 이타심의 균형을 스스로 유지하면서 살아가겠지만, 이 프로불편러들은 다르다.

열등감이나 질투심, 우월의식 또는 비뚤어진 마인드에서 비롯된 극단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고, 이 사고방식대로 남들이 움직여주길 바라는 것이다. 남들이 자기 방식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온갖 발악을 하면서 남들을 깎아내리는 부적절한 행동을 하는 것이고, 결국 이런 악순환이 지금도 인터넷상에서 지속되는 것이다. 일부 헬리콥터 부모도 이 사례.

쓸데없는 민원·신고와 마음의 편지를 쓰는 걸 변태적으로 즐기는 성향이 있다.

6.10. 무책임함

만약 공론화 단계에서 어긋나서 판이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불리하게 돌아갈 경우, 프로불편러는 십중팔구 곧바로 침묵하거나 계정 폭파하고 잠적한다. 그러나 곧장 침묵한다고 해서 이미 벌어진 일이 없어지지는 않으므로, 이 행위는 그저 면피에 불과하다. 그리고 잠적이나 계정폭파를 하더라도 그동안의 댓글 싸움이 여실히 남아있어 2차 조리돌림을 당한다.

7. 창작물에 미치는 해악

7.1. 자질구레한 해석

근데 그 훈이의 얼굴이 딱 클로즈업이 빡 되면서! "내가 선배님이니까." 하는 그 장면.
아~ 그 장면 보고 제가 사실 그... 모니터를 약간 하나 부숴버릴 뻔했거든요?
이거는 훈발놈이 썸네일이어야겠다. (보기 싫은 건) 꼴 뵈기 싫다고 말을 해야지.
치트키TV[25]
창작자의 입장에서는 그다지 대면하고 싶지 않은 인간상이다. 토론은 다양한 의견을 이끌어내어 작품을 다양한 각도로 비춘다는 순기능이 있지만, 프로불편러들은 그런 긍정적인 토론을 하지 않고 훈발놈 밈 마냥 작품의 전체적인 맥락을 읽기보단 지엽적인 부분만 물고 늘어지면서 확대해석을 하여 본래는 다양하게 해석될 여지가 있었을 작품의 해석 방향을 되려 한쪽으로만 몰아가고, 심지어는 창작자가 의도하지 않았거나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제작 의도를 왜곡 및 곡해하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작가가 자신이 그런 의도가 없었다고 항변하더라도, 프로불편러들에게 비판받을 여지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조차 비판의 근거로 삼아 배려가 부족하다거나 무지하다는 식으로 작가를 매도하며 비판의 영역을 넓혀간다.

물론 작품을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독자의 자유이며 존중받아야 하지만, 프로불편러들의 경우 자신들의 해석을 정석으로 주장하며 주변에 퍼뜨림으로써 논란을 키우고 다른 독자들의 작품 감상에까지 영향을 끼치려 하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특히 프로불편러적인 시각을 가진 평론가가 이런 식으로 평론을 썼을 때 다른 독자들에게 끼치는 영향은 무시 못할 수준. 공들여 만든 작품이 몇몇 프로불편러들에 의해 편향된 해석만을 갖게 되는 것을 긍정적으로 여길 창작자는 없다.

심지어 이들은 나무위키에서도 대거 있다. 상당수의 대규모 커뮤니티를 가 보면 나무위키의 ‘XX/평가’ 항목은 거르라는 말이 대다수를 차지하는데, 기본적인 이유가 이 때문. 창작자의 의도는 커녕 대중적인 해석도 아닌 걸, 자기 마음대로 해석해 놓고 그걸 평가 항목에 써 놓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중문화가 대중들의 의식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한다면 이러한 문제 제기도 어느 정도 의의가 있을 수 있지만, 비판을 하기 전에 상황을 좀 더 다각적으로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7.2. 표현의 자유 억압

프로불편러들이 창작자를 물어뜯으며 자기검열을 하게 만듬으로써 간접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게 된다. 다만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나무위키 표현의 자유 문서에서도 언급되듯 창작자에게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 만큼 소비자에게도 그 표현을 거절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하의 기준에 따른 거부감을 표현한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는 프로불편러의 정의에 부합한다 볼 수 없다. 어디까지나 해당 주제에 대한 자기만의 기준으로 상대방을 공격하는 극단성을 보이는 경우만을 가리키는 것임에 유의해야 한다.

7.3. 연좌제

앞서 예를 든 사례처럼 작품을 편파적인 시각으로 곡해하여 창작자에게 낙인을 찍으면, 그 한 사람만 낙인 찍히는 것으로만 그치지 않고 그 사람과 친분이 있는 다른 창작자까지도 똑같은 놈으로 몰린다.

예를 들어 A라는 창작자가 정치적 올바름을 실현한 모범 사례에 해당하는 작품을 만들었다 할지라도, A와 향후 협업을 할 창작자 B가 여혐 논란이 있는 사람이라면, B와 협업하는 것이 여혐을 인정하는 것이다라는 논리로 A를 보이콧하라고 요구한다는 것이다.

7.4. 엉터리 고증 강요

역사상 실제사건이나 실제인물을 표현한 창작물에 엉터리 고증을 강요하는 경우도 있다. 미국에서는 2차세계대전 당시 큰 공을 세운 부대일화를 그린 창작물에 "유색인종 부대원이 없다"며 감독과 스탭들을 인종차별주의자로 몰아붙였는데, 실제 당시 부대는 흑백분리정책에 따라 인종별로 부대를 분리하는 경우가 많았고, 당시 활약을 한 부대구성원 전원은 백인이었다.

또한 한국영화 "남한산성"에 대해서는 활약하는 여성이 나오지 않는다고 여성차별 영화로 낙인을 찍는 등 정확한 고증을 바탕으로 한 창작물임에도 억울하게 비판한다.

또한 엄연히 백인이었던 역사인물을 흑인으로 바꾸는 역사왜곡까지 벌어졌다.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를 흑인으로 탈바꿈하여 방송한 것.

당연하지만 이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비판받았고 심지어 이집트 정부가 제작진에게 역사왜곡하지 말라고 항의서한을 보내는 등 심각한 논란에 시달리고 있다. 최근에는 핵폭탄을 만든 오펜하이머와 연구진 일화를 그린 창작물에 흑인 과학자를 집어넣을 것을 강요하고 있다.

7.5. 결과물의 완성도 및 판매량 저하

모든 문학(문예)은 선전이지만, 모든 선전이 문학(문예)인 것은 아니다.[27]
- 루쉰
오직 자신없는 자들만이 결과물이 아닌 의도를 평가받고자 합니다.
그래서 결과물을 비판하면 마치 그 의도에 반대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죠.
그냥 못만든 거예요![28]
- 부기영화 139화 라스트 제다이

그렇다고 프로불편러들의 말을 다 들어주자니, 정작 결과물의 완성도는 심각하게 저하되고 이는 판매량의 저하로 다가온다. 그도 그럴게, 프로불편러들이 불편해 하는 요소들의 대부분은 캐릭터를 더 빛나게 해주는 것이 대부분이다. PC계열 불편러들이 불편하지 않게 어울리지도 않는 곳에다 뜬금없이 성소수자 요소나 흑인 쿼터제를 넣는다거나, 페미니스트 계열 불편러들이 불편하지 않게 캐릭터를 디자인하면 별로 예쁘지도 않은 캐릭터가 튀어나온다. 일반 유저들이 매력을 느껴 지갑을 열기엔 턱없이 부족한 완성도인 것. 그럼 이렇게 본인 입맛대로 디자인 해줬는데 당연히 프로불편러들은 구매해줄까? 전혀. 프로불편러는 고객이 아니라 업무를 방해하는 장애물일 뿐이다.

난 이런 쓰레기에 돈 쓰기 싫어
좆같이 생겼네 안삼

위의 풍자만화에도 보이듯이, 정작 그렇게 만들어놓으면 자기네들도 안예쁘고 안멋지다는 이유로 무시해버린다. 이를 잘보여주는 게 오버워치의 핑크 메르시 논쟁인데, 핑크 메르시한테는 '성상품화', '서른 넘어서 양갈래 머리가 웬말이냐' 이라고 까던 프로불편러들도 정작 본인들 말대로 성상품화에서 벗어나게 디자인 된 트레이서 스킨이 출시되자 이번엔 디자인이 별로라고 거부한다. 프로불편러들의 말을 다 들어주다가 두 마리 토끼 다 놓친 전형적인 사례다.

위 인용물들이 말한 대로, 이러한 완성도에 대한 비판이 마치 창작물의 의도 자체를 비판하는 것처럼 호도하고 비판을 봉쇄하는 오류를 저지른다. 가령 아무 생각없이 작품에 기계적으로 흑인 캐릭터를 쑤셔박아서 고증이나 개연성 면에서 심각한 오류가 발생했는데도, 이를 비판하면 그래서 지금 흑인을 비하하느냐고 적반하장으로 나오는게 그 예. 오죽하면 PC계 불편러에 지친 소비자들이 'PC를 넣든 말든 상관하지 않을 테니 완성도나 신경써달라'고 하소연할 지경이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정치적 올바름 계통 프로불편러들의 작태에 대한 대중의 반발심리가 팽배해지면서 정반대의 관점으로 프로불편러 짓을 하는 사람들 또한 다수 등장하여 문제가 되고 있다. 이들은 실제 작품의 서사나 고증, 완성도에 문제가 없음에도 성소수자나 유색인종이 등장한다는 그 자체만을 문제삼아 공격 대상으로 삼거나, 디자인이 단순히 자신의 취향에 맞지 않는 것일 뿐임에도 'PC가 묻었다'며 비난의 날을 세우고는 한다. 특히 이러한 반PC주의 프로불편러들중에서는 심하면 대안 우파 네오나치에 동조하는 경우까지도 심심찮게 튀어나오는 탓에 PC고 반PC고 똑같은 극단주의자라며 학을 때는 여론도 커뮤니티 등지에서 흔히 볼 수 있게 되었다.

8. 인터넷에서

8.1. 용어의 확산

이 신조어가 대중적으로 확산되면서, 자주 '불편함'을 호소할 일이 있는 단체나 집단의 구성원들끼리는 거의 자조적인 의미로 이 용어를 즐기기 시작한 듯하다. 서로가 서로에게 "어이구 이 프로불편러 같으니라고." 하는 식으로 농담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디시인사이드에서는 대구 지하철 참사의 희생자들을 모욕하는 '통구이'라는 단어와 WOW에 등장하는 불타는 군단의 이름을 합쳐 일베저장소 '불타는 군단'이라 불러온지 오래인데, 프로불편러들에게는 "불편한 군단"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프로불편러들이 주로 출몰하는 대형 포털 사이트 연예 뉴스란에서 프로불편러들의 존재와 그들을 칭하는 불편한 군단이라는 말을 볼 수 있다.

'ㅇㅇ 혐오'(에 대한 대항), 'ㅇㅇ 감수성'(의 소유), '공감' 등의 표현과 흔히 함께 사용된다.

8.1.1. 어원

2015년 여성시대 대란 이후에는 의미가 확장되어 "불편하다."라는 말을 일종의 처럼 사용하게 되면서 페미나치들을 비꼬는 표현으로도 사용하게 되었다.

하지만, 본래의 의미대로 과도한 지적질을 일삼는 부류와 이에 보태서 일부 극단적 여성우월주의자, 남성혐오주의자 등을 비꼬는 표현이기 때문에 프로불편러라는 단어 자체를 여성 전체를 비하하는 여혐 표현으로 오해하는 경우도 생기고 있다.

프로불편러라는 용어가 생기기 전부터 프로불편러처럼 행동하는 부류는 우리 사회에서 아주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 문화계에서도 검열의 권력을 쥐고 있던 사람들이 그저 자신의 느낌에 불편함을 느낀다는 이유만으로 멋대로 검열하고 탄압했던 역사가 있다.

프로불편러가 여혐 용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자주 쓰는 수법 중의 하나는 "특정 행동에 대한 비난"을 이 비난받는 대상이 속하는 '성별에 대한 비난'으로 해석해서 '성별 구성원 전체에 대한 비난'과 동등한 것으로 왜곡하는 것이다.[29] 같은 방식으로 프로불편러를 '사소한 것을 물어뜯는 행위를 비판하는 용어'가 아니라 '여성의 기질적인 예민성을 비난하는 용어'로 왜곡한다.

8.1.2. 뻔뻔함의 독려

프로불편러를 지적하고 비판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비합리적인 논리의 확장이나 적용되지 말아야 할 영역에까지의 무분별한 프레임 남용을 보통 꼬집고는 하는데, '당당함'을 미덕으로 삼는 그들은 대화와 숙고를 통해 서로간의 입장을 조절하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적으로 자신의 이전 발언을 사수하려고 한다. 여기에서 새로운 논리가 생기는데, 자신이 불편하다고 이전 언급한 내용에 대해서 '이러저러하니 이러한 영역은 그렇지 않다' 라고 반론이 들어오는 것 자체가 자신이 말한 불편함의 감수성 부족의 소치, 혹은 '그러한 것까지 불편함을 느낄 수 있어야 진정하게 깨우친 것이다' 라고 주장하는 우물에 독타기 논쟁 방식이다. 애초에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고 모두가 같은 행동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장례식장의 유가족들이 똑같은 행동을 하지 않으면 그들이 슬퍼하지 않는다고 생각이 드는가??? 똑같은 생각을 강요하는 것만으로도 민주주의를 해치는 위험한 일인데 기계처럼 똑같은 집단 행동까지 강요당한다면 빼도 박도 못하는 파시즘이다. 수백만의 관중들이 흥분한 목소리로 하일 히틀러를 외치는 모습을 보면 소름이 돋고 헛웃음이 나와야 하지 존경이나 부러움이 나와서는 안된다.

8.2. '논란'의 범람

공적으로 노출된 모든 사람들과 사건, 행사 등이 불편함의 대상이 되면서 수많은 사람과 이벤트, 창작물, 창작물 속의 사건이나 인물들에게까지 속칭 '논란'이 붙게 되었다. 정상적으로라면 어떠한 행동이 옳은가 나쁜가, 내가 좋아하는가 싫어하는가는 사회적 규모의 일을 제외하고는 토론과 '의견이 갈린다'의 영역이지만, 모든 것이 정의와 불의로 규정되어야 한다는 프로불편러들의 행동에 의해 이 모든 것들은 '논쟁'조차 아닌 '논란'이 되어 버렸다. 연예인들에게 '논란'이나 '이슈' 한둘이 없는 사람을 찾기 힘들고, 이것들은 사진에 자막까지 입혀져 유튜브 이슈채널의 수익창출 동영상이나 페북 클릭미끼에 사용되는 등 확대 재생산되는 실정이다.

8.3. 나무위키에서의 프로불편러

아래와 같은 행동은 위키 기여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쓸데없는 분란만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행동은 다양한 생각을 포용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벌어진다. 물론 사회적으로 명백히 문제가 있거나 용인될 수 없는 생각이라면 그 생각에 대해 옹호하는 입장으로 써지면 안 되겠지만 문제는 프로불편러들이 '다른 생각'조차 '틀린 생각'으로 멋대로 규정해버린다 하는 것이다. 특히 사회 문제 관련 문서들에서 이러한 문제가 심각하다.

9. 대한민국 외 국가의 프로불편러

서양권에서도 늘어나고 있는 추세인데 일례로 2016년 한 식료품가게에서 껍질 깐 오렌지를 플라스틱 용기에 넣어 판매하자 "I was truly offended by this pic!!" 등 심기가 불편하다는 트윗이 많아져 논란이 일자 해당 가게는 사과하고 상품판매를 중단하였다. 그러자 류머티즘 환자 및 손가락이 아파 오렌지 껍질을 까기 힘들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나타나 "나도 오렌지를 혼자서 먹고 싶고 깐 오렌지는 나를 배려한 상품이였는데, 당신들은 나 같은 사람들 입장은 고려하지 않는다"며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하였다. 물론 해당 상황은 환경보호적인 측면에서 그 방향성에 차이가 있지만, 인터넷 트윗 등을 통하여 "나만 불편해?" 식의 공론화로 포장한 개인적인 의견을 내는 경향이 늘어나고 있다. 나만 불편하냐는 말은 문자 그대로 보면 사적인 주장을 다른 사람들에게 묻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을 끌어들이기 위한 의도가 깔려 있는 것이다.

Nostalgia Critic벽지를 바꿨단 이유로 까는 프로 불편러들에게 시달린적이 있다고 한다.

일본에도 不謹慎厨라는 비슷한 개념이 있다. 주로 사건사고에 한한 개념이지만, 일반적인 사회통념 상 전혀 문제될 것이 없는 표현 또는 아무 의미 없는 단순 현상을 과대해석한다는 점에서는 이들도 프로불편러와 통하는 바가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사건이나 사고가 일어났을 때 전혀 관계없는 대상에도 도덕이나 피해자 감정을 해친다고 비난하며 자숙을 구하는 식.[32] 실제사례 중 하나를 들자면 8월 6일이 생일인 캐릭터의 팬들이 생일축하 메시지를 SNS에서 공유하자 '원폭떨어진 날인데 피폭자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며 해당 캐릭터가 등장하는 작품의 제작회사에 항의한 사람이 있었다. 이들이 '근신해야 할' 날이라고 주장하는 대상은 고베나 미야기의 대지진처럼 일본 국내에서 일어난 재해는 물론이고 9·11테러 같은 외국의 사건사고, 심지어 몇십년전에 죽은 유명인의 기일(주로 덴노를 끌어댄다)도 포함된다.

이들을 요약한 4컷만화 사람이 바위에 깔려 죽어가고 있는데(근본적인 원인) 프로불편러들은 바위를 치울 생각은 안 하고 옆에서 춤추는 놈('불편해 보이는 현상')을 패고 있다. 그러다가 깔린 사람이 죽으니까 죽었다며 묵념. 2~3번째 컷을 생략하면 '평소에는 관심도 없다가 (마지막 컷처럼)죽으면(또는 사건/사고가 발생하면) 애도(또는 관심을 가지는)(척) 하는' 모습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한편, 무라카미 하루키의 장편 소설 해변의 카프카를 보면, 이러한 현상을 예언한 듯한 내용이 있다. 참고로 이 소설은 2002년에 출간되었는데, 진보, 보수를 떠나서 틀에 박힌 교조주의적이고 극단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을 도서관 관리인 오시마 씨의 입을 통해서 강하게 비판한다.[스포일러]

AC 재팬 2017년 광고에도 이러한 프로불편러들을 비판하는 듯한 내용이 나온다. 불만쇄도! 모모타로 소재 자체는 네티켓을 중시하자는 광고지만 그 내용은 불편해 보이는 대상이 나오면 딴죽을 거는 네티즌들을 다루고 있다.
NA)옛날옛날, 어딘가에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행복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NA)어느 날, 할머니가 빨래를 하고 있으려니 둥실둥실 커다란 복숭아가... 그 복숭아를 집어드니...
도둑질이지?ㅋ[34][35]
애들이 따라하면 어쩌려고?
경찰에 안 갖다줘?
NA)비난의 목소리가 쇄도했습니다.
→복숭아 기분을 생각해 본 적 있냐?
신고! 신고!
←남편은 산에서 나무를 한다던데
←깔거리 떴다 (˚∀˚)
이 사람, SNS 하려나?
←하지만 확실히 맛있어 보이는 복숭아이긴 해
ㄴ복숭아 농가를 위해서라도 항의다!
것보다 강에서 빨래하지 말라구
복숭아 불쌍함 (`ㆍωㆍ)
징역 몇 년?
배경 보면 주소 알 수 있을지도
가족도 용서하지 마!
ㄴ위생상 어떠려나?
사죄회견 아~직?
←불상사 떴다 (˚∀˚)
빨리 사과하세요
→사과해도 용서하지 않겠지만
이거 복숭아 뒷광고[36] 아님?
→ㅋㅋㅋ
→좀더 불타라!
다른 사람한테도 나쁜 짓 하지 않으려나?
잡균 덩어리겠지
전화로 항의하자
도둑질 쩌네ㅋ
개념없어 보이는데
NA)악의있는 말이 사람의 마음을 상처입힙니다.
할아버지)할멈~ 괜찮수?
NA)언성을 높이기 전에 조금만 생각해 보시지 않겠습니까?
할머니)조금만 더 기다리려무나

2020년 AC재팬 광고학생상 심사위원 특별상 표현의 자유란 뭘까?[37]도 비슷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베댓 역시 '모든 프로불편러에게 바치는 광고(全ての不謹慎厨に捧げるCM)'.

전술한 '공론을 빌어 개인적 감정을 만족시키는' 논법을 가리키는 말로 ' 다자이 메소드'가 있는데, 인간실격의 한 대화[38]에서 나온 표현으로 자신의 주장을 마치 공론 내지는 세상의 시선인 양 포장하는 논법이다.

10. 사례


10.1. 성별 문제

10.2. 만화 문제

10.3. 게임 문제

10.4. 군인 문제

10.5. 문화적 문제

10.6. 민족주의 문제

10.7. 생활 속 문제

10.8. 님비현상

11. 대처법

가장 확실한 방법은 무시하는 것이다. ' 병먹금'이란 말이 괜히 있는게 아니다. 프로불편러는 자신만의 정의관에 도취하고 경도되어 타인의 인정과 관심을 갈구한다고 하는 점에서 관심병이나 정치병과도 상당 부분 맞닿아 있다. 이들에게서 관심과 반응이 끊기는 순간, 불편러들의 행위는 금방 원동력을 잃고 흐지부지된다.

단, 질시나 멸시가 아닌 확실한 무시가 필요하다. 이들을 비방하거나 경멸하는 태도를 내비칠수록, 프로불편러들은 자신을 부당하게 비난받는 선지자로 확대해석하여 정의관을 더욱 강화하는 악순환에 깊숙이 빠진다. 그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고, 철저한 무대응과 무신경으로 일관하는 것만이 상책이다.

문제는 이것이 개인 단위가 아닌 '집단 단위'로 확대될 경우다. 특히 아주 사소하고 조그마한 이야깃거리조차 크게 키워서 문젯거리로 만들려 하는 사람들에게 걸리면 무시만으로는 답도 없다. 대표적으로 기레기가 그렇다. 프로불편러들의 주장이 일단 기사로 만들어지면, 그 기사는 갑론을박의 중심지가 되어 조회수가 뻥튀기처럼 부풀어오른다. 그리고 조회수는 곧 광고료로 직결된다. 메이저 포털 사이트에 메인 뉴스로 뜬다면 잭팟. 기레기들의 시선에 포착되는 순간, 이 토픽은 개인이 무시한다고 될 수준이 아니다.

만약 이렇게 비화된 프로불편러들의 행패에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물리적/금전적/정신적인 피해를 봤을 경우, 그때는 법률 적극 활용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조금 더 철저한 무관심이 필요하다. 본의아니게 의견이 표출되거나 행적이 보일 행위 자체를 차단하는 것이다. 온라인이라면 계정 탈퇴, 오프라인이라면 조직 탈퇴 등, 논란이 벌어질 법할 곳을 피해가는 것이 가장 무난한 선택이다.

12. 관련 문서





[1] 대통령 관련된 유머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2] 복자처리된 ○○인의 원본은 다름아닌 한국인이다. 즉 일본에서는 별의 별 이유로 불편해하면서 자기들도 혐오성 발언을 하는, 인터넷의 모순적인 면 또한 볼 수 있다. [3] 이글루스가 서비스를 종료하면서 현재는 원본 열람이 안되는 상황이다. [4] 원본은 'the man. the wife, the donkey, and the critics'으로 불리는 팔려가는 당나귀 우화를 삽화화한 것으로 보인다. 인터넷에서는 각국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기출변형성 밈도 약간이나마 보이는 편. [5] 실제로 프로불편러들이 주장하는 불편함은 처음에는 개인적인 불만이었으나 첫 프로불편러의 주장에 공감한 사람들이 불만을 표하면서 공론화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후술하는 '다자이 메소드'와도 맥이 닿는다. [6] 일본의 ‘프로시민’이라는 단어에서 비롯되었을 수 있다. [7] 신조어 접미사 ~러 [8] 또 다른 말로는 불편한 군단이 있으며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 등장하는 불타는 군단 야갤러가 비틀어 표현한 단어다. [9] 사실 잘못된 쓰임이다. 조어 자체는 문제가 없으나, 읽는 과정에서 불편함이 발생한다. 편의상 로마자로 표시하면 pro-bulpyuner정도가 되겠으나, 이것을 읽으면 '프로불편러'가 아닌 '프로불펴너'가 된다. 비슷한 사례로 ‘open+er=opener’이고 통상 ‘오프너’ 라고 읽는다. ‘오픈러’가 아니다. [10] 게다가 이런 행동방식으로 인해 목표를 빠르게 달성하는 사례가 나왔기에 더더욱 이들이 극성을 부리는 것일 수도 있다. 상대 쪽에서 이런 다수의 '불편함' 을 표방한 비난에도 꿈쩍하지 않는 사례만 있다면 효과 없는 방법을 계속 피곤하게 시행할 리도 없을 테니. [11] 또한 싸우는 쪽과의 우열관계 증명도 부가적인 이유가 아닌가 하는 추측도 있다. 불편함을 표방하며 다수를 끌어들여 여론몰이 + 조리돌림을 한 끝에 타깃이 된 상대를 치우면 내 쪽이 더 우세하다 하는 식으로 관계상에서 자신의 우열을 증명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프로불편러들은 보통 타깃이 된 대상이 자신이 잘못했다며 꼬리를 내리고 그 판에서 물러날 때까지 계속 몰려드는 경우가 많다. [12] 정말로 문제시해야 할 것을 공론화시켜 문제해결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그저 프로불편러 자신의 불편감을 쉽고 빠르게 해소하거나 여러 사람에게 공감받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되도 않는 공론화를 시전시켜 결국 분탕질을 내는 꼴이 된다고 보는 것이다. [13] 대중문화가 본진인 순수 오타쿠들 보다는, 다른 분야에 본진을 두면서 오타쿠 문화를 곁다리로 다루는 부류들이 주로 그랬다. 이 분야의 원탑이 다름아닌 철싸대 버싸대( 정치적 올바름이 들어갈 만한 주제는 아니다만 주로 이런 류의 덕후들이 뉴비를 지독하게 훈계하고 어떻게 그런 것도 모르냐는 둥 설교를 토하는 걸로 악명놓았다.). 현재들어선 그나마 ××퍼거 하는 식으로 이들에게 학이 떼인 이들이 단체로 이들을 조롱하는 분위기가 생기긴 했으나 이전까지는 그야말로 물밑에서만 노는 이들을 공론화할 수단이 없다시피 했다. [14] 이 당시 세계로 막 뻗어나가던 k-pop을 비롯한 문화나 인싸문화(비록 당시에는 인싸란 말이 없었지만)를 조롱하는데 가장 앞서나간 이들이 바로 오타쿠, 특히 네이버에 상주하던 남덕들이었다. 2000년대 초중반까지 오타쿠는 별로 가시화되지 않아 주목받지 않았고, 오히려 당시까지는 미성숙한 팬덤 문화를 보였던 빠순이에 대한 반감이 더 컸다(예를 들어 문희준에 대한 비하와 희화화는 빠순이에 대한 비하도 겸하는 경우가 많았다). [15] 전술했듯이 당시에는 오타쿠보다는 한창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던(예컨대 카시오페아의 서재호에 대한 고인드립 등) 빠순이에 대한 반감이 더 크던 시기였다. 그러면서도 문희준이라면 눈을 뒤집고 싫어하는 남자들이 쥬얼리나 효리라면 눈을 뒤집고 좋아하는 모습들이 적잖이 보이곤 했다. 이들의 '대중문화 발전 운운'이 허울좋은 핑계에 불과했음을 보여주는 사례. 다음은 당시의 반(反) 빠순이 정서를 알 수 있는 사례 중 하나이다. "안티 특징 - 대부분 군대 갔다온 20대 중반 남성 (고로 정신 다 차린 인간된 사람들 대부분), 팬클럽 특징 - 거의가 10대 여고생(친구따라 강남갈 나이..) " - 네이버 지식iN '무뇌충' 검색에서 발견한 안티문희준의 글 [16] 예를 들어 자기 SNS에 친구가 500명이 있고 그 중 프로불편러일 확률이 0.1%라 할 때 적어도 한 명 이상 프로불편러를 만날 확률은 약 39.4%로 치솟는다. [17] 막상 프로불편러 짓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다른 대상에 대해 사소한 것까지 물어뜯고 비난하고 불편해하고 몰아내려는 행위를 하는 점에 있어서는 아주 너그럽다. 하지만 사소한 지적의 대상이 자신이 되기만 해도 강력하게 반발한다. [18] ex. 전광훈을 비롯한 사랑제일교회 교인들, 김씨 3대 왕조로 대표되는 북한 [19] 아인슈타인 정적 우주론을 전제로 제시한 우주 상수 개념을 우주가 팽창한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가차없이 버렸다. [20] 그러나 의도마저 좋지 않고 그저 '비난' 그 자체가 목적이며 '불편함'과 '좋은 가치에 부합할 것'을 요구하는 건 이를 가리기 위한 핑계로써 쓰는 프로불편러들도 있다. 즉 자기 혼자 이거 싫다고 했다가 반박을 먹거나 받아들여지지 않을 걸 우려해서 다른 사람들이 자기에게 동조하기 쉽게 '불편감'을 설파하며 자기의 혐오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선동하는 것. 그 싫다는것도 프로불편러식으로 나름 거창하게 붙여놓은 이유를 떼버리면 크게 별 거 없는 경우(= 공감받거나 동조받을만한 건덕지가 없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이들은 그 의도마저 좋지 않으며 목적도 훨씬 더 부정적이지만 행동양상은 결국 같기에 의도는 좋은 프로불편러와 사실상 구분이 안 된다. [21] 그리고 그 사람들에게 참견해서 그 사람들의 태도를 바꾸는데 조금이라도 성공하거나 아예 해당 판에서 그 사람들을 몰아내거나 입지를 조금이라도 악화시키는데 집착하는 것도 다름아닌 이들의 낮은 자존감과 연계된다. 나보다 뛰어난 사람을 뛰어넘기 위해 그 사람과 같은 분야에서, 혹은 다른 분야에서 능력을 기르고 더 좋은 입지를 갖추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하지만 '불편감' 을 위시한 조금의 악의적인 선동이라도 부려서 그들의 입지를 깎는데 성공하면 자연스럽게 자신의 행위가 자신보다 더 잘난 사람들에게까지 큰 영향을 미쳤다 = 자신은 그런 존재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이다! 하는 식으로 자존감 향상을 노릴 수 있기 때문이다. [22] 한 연예인의 "돈이 행복의 제1의 요건이 아니라고 생각해요."라는 인터뷰를 "돈 욕심있는 사람들을 모자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라고 악의적으로 해석해서 해당 연예인에게 사과문을 작성하게 한 일도 있었다. [23] "나는 알바생이지만, 우리나라 최저 시급 너무 높다는 생각 안 들어? 경제 관념도 없는 어린 놈들이 돈 펑펑 쓰고 다니면 어떡해? 좀 불편하지 않아?" [24] 작가들 중에는 흡연자들이 많기 때문에 다른 직종에 비해 여성 흡연자가 많다. 문근영의 화보 촬영에 담배가 등장한 것은 그런 점을 반영한 것이다. [25] 이 발언은 후에 반 장난이라고 말했지만, 해당 해명이 성의가 없는 수준이라 비판받고 있다. 여담으로 해당 발언을 한 영상은 삭제되었다. [26]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이라던지...물론 지적질을 피하려고 오웰이 우화적인 내용으로 쓴 건 아니지만 그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인용됐다. [27] 선전이라는 이름으로 작품성을 경시한 이른바 프롤레타리아(프로) 문학을 비판하며. 즉 모든 문학(예술)은 저마다 메시지를 갖고 있지만 메시지성을 갖고 있다고 해서 모두 예술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28] 사실 부기영화는 영화를 리뷰함에 있어서 영화의 연출마다 어떤 의도와 메시지가 담겼는지를 굉장히 중요시하는 편이다. 따라서 이는 창작물에 메시지를 넣고자 함 그 자체를 비판한다기 보다는, 위 루쉰의 말과 마찬가지로 전하려는 메시지에 매몰되어 결과물의 완성도를 등한시하는 태도를 비판하는 것이라 보아야 옳다. 그러나 이 문구를 전자의 의미로 해석한 사람들에게 창작물에 메시지가 들어갔다는 그 자체가 문제인 양 흔히 오용되고는 한다. [29] (패드립을 친 사람이 여성이라면) "이 사람이 비난받는건 (패드립을 써서가 아니라) 여성이라서다. 그러므로 저 비난은 여성 전체에 대한 공격이다."라고 하는 것. [30] 주로 이런 경향은 정치 관련 문서에서 두드러졌다. 나무위키 주 이용층의 주류에 반하는 정치 관련 항목에 끝없이 논란을 기술하는 행동이 심했는데, 현재는 운영진의 수칙 제정 등 방지책을 마련하여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31] 나무위키에는 수정전쟁을 막기 위해 의견 충돌이 일어난 신규서술을 토론 합의 없이 계속 되돌리는 것을 막기 위한 규정이 존재한다. [32] 한국식으로 예를 들면, 세월호 X주기 전후에 별다른 의도 없이 '오늘 저녁에 어묵 먹는다!'라는 글을 올린 사람을 성토하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 어묵'이란 표현 자체를 세월호에 빗대 쓰는 경우 사실상 세월호 희생자에 대한 고인드립으로 쓰는 경우이지만, 별다른 의도 없이 저녁 식단에 대한 글을 올린 사람을 성토하는 건 지나친 확대해석이다. [스포일러] 오시마 씨는 제3의 성으로 태어난 인물로, 애초에 남성과 여성이란 이분법으로 규정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제3의 성을 인정하지 않는 강성 페미니즘은 물론 모든 극단주의를 혐오한다. 실제로 해외의 일부 강성 페미니즘은 트랜스젠더에 대해 적대적이고, 이런 사고방식은 우리나라 트페미 계정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34] 역할명이 표시되지 않은 부분은 댓글. 화살표는 댓글이 흘러가는 방향이다. [35] 물론 진지하게 생각하자면, 강(하천) 위에 떠다니는 물건은 표류물이기 때문에(수상에서의 수색ㆍ구조 등에 관한 법률 제2조 제12호) 경찰에 신고할 필요가 있다. 문제는 이게 그걸 진지하게 따질 필요가 없는 동화라는 점이다. [36] 원문은 스텔스 마케팅을 뜻하는 일본의 조어 ステマ. [37] 전일본사진품평회(주제: 자유)/담배 피우는 사진(담배는 몸에 해롭다)/미니스커트 사진(치마가 너무 짧다)/치킨 먹는 사진(못 먹는 사람이 있다)/가족사진(가족이 없는 사람 기분도 생각해라)/웃는 사진(태평하게 웃지 마)/. 결국 최우수작품은 아무 것도 없는 공백이 되었다는 내용이다. [38] "더이상은 세상이 용납하지 않을 테니까." 세상이란게 도대체 뭘까요. 그 세상이란 것의 실체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호리키가 그렇게 말하자 불현듯 "세상이라는 게 사실은 자네 아니야?"라는 말이 혀끝까지 나왔지만 호리키를 화나게 하는 게 싫어서 도로 삼켰습니다. [39] 관객 크리. 크리는 '크리티컬'의 줄임말. [40] 제삿상에서는 반대로 국을 왼쪽에 놓기 때문이다. 다만 이는 신위를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제삿상을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국이 오른쪽이 된다. [41] 물론 소방서와 경찰서는 사람 생명/안전에 가깝게 연결되어 있다 보니 저러면 집에 사람 쓰러져 봐야/불 나봐야 정신 차리지라는 비아냥만 들어올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