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도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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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 상로전 지도[1] |
1. 개요
통도사의 경내는 크게 세 권역으로 나눌 수 있는데, 상로전 권역은 그 중 가장 안쪽에 있는 권역이다. 본 문서는 통도사 상로전 권역에 있는 전각 및 문화재 목록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다.2. 전각 및 문화재 목록
2.1. 대웅전 및 금강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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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보 제290호 | |
양산 통도사 대웅전 및 금강계단 梁山 通度寺 大雄殿 및 金剛戒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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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315288><colcolor=#fff> 소재지 |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통도사로 108 (지산리, 통도사) |
분류 |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 불교 / 불전 |
수량/면적 | 일곽 |
제작시기 | 조선 인조 23년( 1646) |
지정연도 | 1997년 1월 1일 |
소유·관리 | 통도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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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대웅전 | 금강계단 |
이 사찰은 금강계단(戒壇)에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안치하였으므로 다른 절처럼 대웅전에 불상을 모시지 않는다. 불상은 부처의 모습을 재현하는 것인데 진신사리는 부처 그 자체이므로 불상을 둘 필요가 없기 때문. 대웅전 안에는 불단만 있다.
하지만 저 모습을 바로 앞에서 직접 보는건 생각보다 어렵다. 음력초하루(1일)~초삼일(3일), 음력보름(15일), 지장재일(음력18일), 관음재일(음력24일), 석가탄신일에만 오전11~오후2시까지 개방하기 때문이다. 대략 한달에 1주일 정도만 개방한다. 과거에는 시간만 제한하고 매일 개방했으나 참배객이 몰리면서 관리가 어려워졌던지 개방날짜도 대폭 줄였다.
2020년도에는 코로나19로 인해 개방하지 않았으며, 2021년에는 아예 사리탑 참배 가능 날짜와 시간을 쓴 안내판을 치워버리기도 해서 한때 영구 미개방하는것이 아니냐는 얘기도 나왔었다. 이후 2022년부터는 앞에서 언급한 것대로 정해진 날짜와 시간에 개방하며 안내판도 다시 세워 두었다.
다만 대웅전 뒷쪽, 구룡지 연못을 지나 삼성각 건물이 있는 높은 단에 올라가면 담장이 높지 않아 금강계단을 간접적으로는 언제든지 볼 수 있다.
통도사 대웅전은 불상 없이 금강계단으로 열려있는 특이한 형태로 되어있다. 대웅전은 그 특이한 성격을 반영하듯 동쪽에는 대웅전, 서쪽에는 대방광전(大方廣殿), 남쪽에는 금강계단, 북쪽에는 적멸보궁이라는 각기 다른 현판이 걸려있다. 이 중 금강계단 현판은 흥선대원군의 친필이라고 전한다. 금강계단의 진신사리는 원래는 창건 이래 진신사리 2과가 있었는데 임진왜란 때 유정대사가 1과를 현재 대구광역시 달성군에 있는 용연사 석조계단으로 분산했다고 전한다. 1997년 국보 제290호로 지정되었다.
2.1.1. 외부 링크
- 한국어 위키백과 : 양산 통도사 대웅전 및 금강계단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양산 통도사 대웅전 및 금강계단
- 한국사전연구사 한국불교미술대전 : 양산 통도사 대웅전 및 금강계단
- 두산백과 : 양산 통도사 대웅전 및 금강계단
2.1.2. 국보 제290호
통도사는 우리 나라 3대 사찰 중 하나로 손꼽히는 큰 절로, 신라 선덕여왕 15년(646)에 자장율사가 세웠다.
대웅전은 원래 석가모니를 모시는 법당을 가리키지만, 이곳 통도사의 대웅전에는 불상을 따로 모시지 않고 건물 뒷면에 금강계단(金剛戒壇)을 설치하여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다. 그 때문에 통도사라는 절 이름도 금강계단을 통하여 도를 얻는다는 의미와 진리를 깨달아 중생을 극락으로 이끈다는 의미에서 통도(通度)라고 하였다 한다. 지금 건물은 신라 선덕여왕 때 처음 지었고, 임진왜란 때 불에 탄 것을 조선 인조 23년(1645)에 다시 지은 것이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5칸이고, 지붕은 앞면을 향해 T자형을 이룬 특이한 구성을 갖추고 있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짠 공포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계 양식으로 꾸몄다. 건물 바깥쪽 기단 부분과 돌계단 층계석, 계단 양쪽(소맷돌)부분에서는 통일신라시대의 양식을 이어받은 뛰어난 연꽃조각을 볼 수 있다.
불가에서 금강계단은 승려가 되는 과정 중 가장 중요한 수계의식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부처가 항상 그곳에 있다는 상징성을 띠고 있으며, 지금 있는 금강계단은 고려·조선시대를 거쳐 여러 차례 수리한 것이다. 양식은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금강계단 형태를 띠고 있는데, 가운데에 종 모양의 석조물을 설치하여 사리를 보관하고 있다. 1층 기단 안쪽 면에는 천인상을 조각하고 바깥쪽 면은 불법을 지키는 수호신인 제석의 모습을 조각하였다.
지은 연대를 확실하게 알 수 있는 조선 중기의 대표적 건축인 대웅전과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담고 있는 금강계단은 각각 건축 구조와 건축사 연구, 계단(戒壇)이 가지고 있는 그 의미에서 중요한 문화재로 평가받고 있다.
대웅전은 원래 석가모니를 모시는 법당을 가리키지만, 이곳 통도사의 대웅전에는 불상을 따로 모시지 않고 건물 뒷면에 금강계단(金剛戒壇)을 설치하여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다. 그 때문에 통도사라는 절 이름도 금강계단을 통하여 도를 얻는다는 의미와 진리를 깨달아 중생을 극락으로 이끈다는 의미에서 통도(通度)라고 하였다 한다. 지금 건물은 신라 선덕여왕 때 처음 지었고, 임진왜란 때 불에 탄 것을 조선 인조 23년(1645)에 다시 지은 것이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5칸이고, 지붕은 앞면을 향해 T자형을 이룬 특이한 구성을 갖추고 있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짠 공포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계 양식으로 꾸몄다. 건물 바깥쪽 기단 부분과 돌계단 층계석, 계단 양쪽(소맷돌)부분에서는 통일신라시대의 양식을 이어받은 뛰어난 연꽃조각을 볼 수 있다.
불가에서 금강계단은 승려가 되는 과정 중 가장 중요한 수계의식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부처가 항상 그곳에 있다는 상징성을 띠고 있으며, 지금 있는 금강계단은 고려·조선시대를 거쳐 여러 차례 수리한 것이다. 양식은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금강계단 형태를 띠고 있는데, 가운데에 종 모양의 석조물을 설치하여 사리를 보관하고 있다. 1층 기단 안쪽 면에는 천인상을 조각하고 바깥쪽 면은 불법을 지키는 수호신인 제석의 모습을 조각하였다.
지은 연대를 확실하게 알 수 있는 조선 중기의 대표적 건축인 대웅전과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담고 있는 금강계단은 각각 건축 구조와 건축사 연구, 계단(戒壇)이 가지고 있는 그 의미에서 중요한 문화재로 평가받고 있다.
2.2. 구룡지
2.3. 설법전
1992년 세워진 건물로 정면 9칸 옆면 11칸의 건물이다.2.4. 응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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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응진전[2] |
1677년 지섬대사가 지었다고 전해지며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등록되어 있다. 현판은 구하스님이 썼으며 글귀가 새겨진 주련이 4개가 달려있다. 건물의 오른쪽부터 주련을 해석하면 이러하다.
有山有水承龍虎 유산유수승용호 산수간에 용호[3]를 타고
無是無非伴竹松 무시무비반죽송 시비장단 없으니 송죽[4]을 벗하네.
曾昔靈山蒙授記 중석령산몽수기 일찍이 영산회상[5]에 수기를 받은 분들이
而今會坐一堂中 이금회좌일당중 지금 한 집안에 모여 있네.
2.4.1.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9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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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양산 통도사 응진전 |
통도사는 합천 해인사, 승주 송광사와 더불어 우리나라 3대사찰 중의 하나로 경내는 크게 상로전, 중로전, 하로전의 3영역으로 나눌 수 있다. 상로전에 있는 응진전은 대웅전의 서남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조선 숙종 3년(1677)에 지섬대사가 지었다고 전한다.
앞면 3칸·옆면 3칸으로 지붕 옆모습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다. 지붕을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의 건물로 비교적 간결하다. 그러나 공포의 구조가 주심포 이외의 양식을 쓰고 있어 절충된 양식을 보이고 있다. 내부에는 석가여래좌상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미륵보살, 오른쪽에는 제화갈라보살을 같이 모시고 있다. 또한 16나한상도 같이 모시고 있는데 이것은 과거·현재·미래 모습의 석가와 16제자를 뜻한다.
통도사 응진전은 공포를 제외하면 주심포 양식의 특징을 잘 갖추고 있는 조선 후기의 건축물이다.
앞면 3칸·옆면 3칸으로 지붕 옆모습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다. 지붕을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의 건물로 비교적 간결하다. 그러나 공포의 구조가 주심포 이외의 양식을 쓰고 있어 절충된 양식을 보이고 있다. 내부에는 석가여래좌상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미륵보살, 오른쪽에는 제화갈라보살을 같이 모시고 있다. 또한 16나한상도 같이 모시고 있는데 이것은 과거·현재·미래 모습의 석가와 16제자를 뜻한다.
통도사 응진전은 공포를 제외하면 주심포 양식의 특징을 잘 갖추고 있는 조선 후기의 건축물이다.
2.4.2. 응진전 영산회상도
응진전에 있는 그림으로 석가모니가 법화경을 설법할 때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2.4.2.1.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548호
양산 통도사 응진전 영산회상도(梁山 通度寺 應眞殿 靈山會上圖)는 경상남도 양산시, 통도사 응진전에 있는 조선시대의 불화이다. 2014년 3월 20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548호로 지정되었다.
양산 통도사 응진전 영산회상도는 화기에 ‘靈山會造成奉安于 通度寺應眞殿’임을 명시하고 있어 응진전에 봉안된 불화임을 알 수 있다. 제작은 1775년에 화승 定聰, 有誠, 定坦 등 7인이 관여한 작품이다. 정총과 유성은 경상도 지역의 대표적 불화승으로 화면은 안정된 구성과 채색으로는 진한 주색, 녹색과 황색을 많이 사용하고 부분적으로 청색과 옷깃 부분에 먹을 사용하였는데, 바탕과 구름문에 사용된 황색이 만들어내는 밝은 화면이 특징적이다.
본 작품은 조성연대가 확실하며, 18세기 응진전의 영산회상도 가운데 16나한을 전면에 내세워 배치한 형태는 유일한 작품으로 문화재적 가치가 뛰어나다.
양산 통도사 응진전 영산회상도는 화기에 ‘靈山會造成奉安于 通度寺應眞殿’임을 명시하고 있어 응진전에 봉안된 불화임을 알 수 있다. 제작은 1775년에 화승 定聰, 有誠, 定坦 등 7인이 관여한 작품이다. 정총과 유성은 경상도 지역의 대표적 불화승으로 화면은 안정된 구성과 채색으로는 진한 주색, 녹색과 황색을 많이 사용하고 부분적으로 청색과 옷깃 부분에 먹을 사용하였는데, 바탕과 구름문에 사용된 황색이 만들어내는 밝은 화면이 특징적이다.
본 작품은 조성연대가 확실하며, 18세기 응진전의 영산회상도 가운데 16나한을 전면에 내세워 배치한 형태는 유일한 작품으로 문화재적 가치가 뛰어나다.
2.5. 명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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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양산 통도사 명부전 |
2.5.1.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95호
통도사는 합천 해인사, 승주 송광사와 더불어 우리나라 3대사찰 중의 하나이며 경내는 크게 상로전, 중로전, 하로전의 3영역으로 나눌 수 있다. 상로전에 있는 명부전은 대웅전의 동남쪽에 위치한다. 고려 공민왕 18년(1369)에 세워졌다고 전하며, 「명부전중수기」에 의하면 조선 고종 24년(1887)에 불에 탄 것을 고종 25년(1888)에 호성대사가 수리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앞면 5칸·옆면 2칸으로 지붕 옆모습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다. 지붕을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계 양식의 건물이다. 공포를 이루는 세부적인 구조물이 많이 생략되어 있는데 이것은 조선시대 말에 흔히 볼 수 있는 절충적 수법이다. 내부에는 지옥에서 중생을 구하는 보살인 지장보살상과 그 주위에 저승의 염라대왕 등 시왕(十王)상이 모셔져 있다.
통도사 명부전은 조선시대 말(19세기)의 명부전 건물양식의 한 예로서 가치가 있는 문화재이다.
앞면 5칸·옆면 2칸으로 지붕 옆모습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다. 지붕을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계 양식의 건물이다. 공포를 이루는 세부적인 구조물이 많이 생략되어 있는데 이것은 조선시대 말에 흔히 볼 수 있는 절충적 수법이다. 내부에는 지옥에서 중생을 구하는 보살인 지장보살상과 그 주위에 저승의 염라대왕 등 시왕(十王)상이 모셔져 있다.
통도사 명부전은 조선시대 말(19세기)의 명부전 건물양식의 한 예로서 가치가 있는 문화재이다.
2.5.2. 명부전 지장보살도․시왕도․사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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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양산 통도사 명부전 지장보살도․시왕도․사자도 |
2.5.2.1.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549호
양산 통도사 명부전 지장보살도·시왕도·사자도(梁山 通度寺 冥府殿 地藏菩薩圖·十王圖·使者圖)는 경상남도 양산시, 통도사에 있는 조선시대의 불화이다. 2014년 3월 20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549호로 지정되었다.
현재 국내에 전하는 조선시대 지장보살도는 16세기~20세기 전반에 이르는 작품들이다. 통도사 지장보살도는 1798년에 指演을 비롯하여 戒寬, 玉印 등의 화승이 동참하여 제작한 것으로, 조선후기 지장보살도 중에서 18세기 후반기에 속하는 작례에 해당한다. 수화승 지연은 1792년에는 통도사에서 있었던 불화제작과 단청을 전담하기도 하였으며, 이때 조성한〈괘불〉과〈삼장보살도〉에는 수화승이자 化主로도 참여하여 화기에는 ‘慈悲畵僧’으로 존칭하여 기록되어 있다.
본 작품은 1798년이라는 조성연대가 확실하며, 명부전에 봉안한 지장보살도시왕도사자도의 세트가 완형으로 남아 있는 드문 사례로서 필선과 상호, 문양 및 안정된 필치와 선명한 채색 등 화풍과 도상 또한 수작에 속하는 작품이다.
현재 국내에 전하는 조선시대 지장보살도는 16세기~20세기 전반에 이르는 작품들이다. 통도사 지장보살도는 1798년에 指演을 비롯하여 戒寬, 玉印 등의 화승이 동참하여 제작한 것으로, 조선후기 지장보살도 중에서 18세기 후반기에 속하는 작례에 해당한다. 수화승 지연은 1792년에는 통도사에서 있었던 불화제작과 단청을 전담하기도 하였으며, 이때 조성한〈괘불〉과〈삼장보살도〉에는 수화승이자 化主로도 참여하여 화기에는 ‘慈悲畵僧’으로 존칭하여 기록되어 있다.
본 작품은 1798년이라는 조성연대가 확실하며, 명부전에 봉안한 지장보살도시왕도사자도의 세트가 완형으로 남아 있는 드문 사례로서 필선과 상호, 문양 및 안정된 필치와 선명한 채색 등 화풍과 도상 또한 수작에 속하는 작품이다.
2.6. 삼성각
1935년 경봉 정석스님이 세운 건물이다.2.7. 산령각
1986년 불타 사라졌으며 이후 당시 주지였던 원명스님이 다시 세웠다.2.8. 보광선원
2014년 공사를 시작하여 2018년 완공되었다. 건물로는 본당인 보광선원과 자재건곤, 청풍당, 운월당, 세욕장이 있다.2.9. 탑광실
일로향각이라고도 불리며 1968년 청하스님에 의해 다시 세워졌다. 원래는 현재 설법전 자리에 있었으나 설법전을 지으며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2.10. 정변전
1980년대 세워진 건물이다.2.11. 템플스테이 수련관
[1]
색칠되어 있는 부분이 상로전이다.
[2]
왼쪽에 있는 첫 번째 벽화는 아난존자를 그린 벽화로 아난존자가 7일동안 뒤꿈치를 들고 정진한 모습을 그린 것이다.
[3]
용과 호랑이
[4]
소나무와 대나무
[5]
부처님이
법화경을 설법하던 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