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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28 12:43:51

창덕궁 이문원 측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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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보 國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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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1~5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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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울 숭례문
  1. 서울 원각사지 십층석탑
  2. 서울 북한산 신라 진흥왕 순수비
  3. 여주 고달사지 승탑
  4. 보은 법주사 쌍사자 석등
  5.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
  6. 천안 봉선홍경사 갈기비
  7. 보령 성주사지 낭혜화상탑비
  8.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
  9. 남원 실상사 백장암 삼층석탑
  10. 익산 미륵사지 석탑
  11. 구례 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
  12. 강진 무위사 극락보전
  13. 영천 거조사 영산전
  14. 안동 봉정사 극락전
  15. 안동 법흥사지 칠층전탑
  16.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앞 석등
  17.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18. 영주 부석사 조사당
  19. 경주 불국사 다보탑
  20. 경주 불국사 삼층석탑
  21. 경주 불국사 연화교 및 칠보교
  22. 경주 불국사 청운교 및 백운교
  23. 경주 석굴암 석굴
  24. 경주 태종무열왕릉비
1.#26 경주 불국사 금동비로자나불좌상
  1. 경주 불국사 금동아미타여래좌상
  2. 경주 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상
  3. 성덕대왕신종
  4.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
  5. 경주 첨성대
  6.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
  7. 창녕 진흥왕 척경비
  8. 창녕 술정리 동 삼층석탑
  9. 구례 화엄사 사사자 삼층석탑
  10. 상원사 동종
  11. 경주 황복사지 삼층석탑
  12. 경주 고선사지 삼층석탑
  13. 경주 나원리 오층석탑
  14. 경주 정혜사지 십삼층석탑
  15. 청주 용두사지 철당간
  16. 순천 송광사 목조삼존불감
  17. 혜심고신제서
  18. 장흥 보림사 남 · 북 삼층석탑 및 석등
  19. 영주 부석사 소조여래좌상
  20. 부석사 조사당 벽화
  21. 하동 쌍계사 진감선사탑비
  22. 평창 월정사 팔각 구층석탑 / 평창 월정사 석조보살좌상
  23. 예산 수덕사 대웅전
  24. 영암 도갑사 해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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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51~100호]
{{{#!wiki style="margin:-10px 0"
<table bordercolor=#fff,#1f2023>
1.#76 이순신 난중일기 및 서간첩 임진장초
  1. 의성 탑리리 오층석탑
  2.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1962-1)
  3. 경주 구황동 금제여래좌상
  4. 경주 구황동 금제여래입상
  5. 경주 감산사 석조미륵보살입상
  6. 경주 감산사 석조아미타여래입상
  7.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1962-2)
  8.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
  9. 금동신묘명삼존불입상
  10. 개성 경천사지 십층석탑
  11. 금관총 금관 및 금제 관식
  12. 금관총 금제 허리띠
  13. 평양 석암리 금제 띠고리
  14. 경주 부부총 금귀걸이
  15. 도기 기마인물형 명기
  16. 청동 은입사 포류수금문 정병
  17. 백자 철화포도원숭이문 항아리
  18. 청자 참외모양 병
  19. 청자 투각칠보문뚜껑 향로
  20. 청자 구룡형 주전자
  21. 청자 음각연화당초문 매병
  22. 청자 상감모란문 항아리
  23. 김천 갈항사지 동 · 서 삼층석탑
  24. 개성 남계원지 칠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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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101~150호]
{{{#!wiki style="margin:-10px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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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1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
  1. 충주 정토사지 홍법국사탑
  2. 광양 중흥산성 쌍사자 석등
  3. 전 원주 흥법사지 염거화상탑
  4. 산청 범학리 삼층석탑
  5.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
  6. 백자 철화포도문 항아리
  7. 계유명삼존천불비상
  8. 군위 아미타여래삼존 석굴
  9. 이제현 초상
  10. 안향 초상
  11. 경주 감은사지 동 · 서 삼층석탑
  12. 청자 철화양류문 통형 병
  13. 청자 상감모란국화문 참외모양 병
  14. 청자 상감당초문 완
  15. 청자 상감모란문 표주박모양 주전자
  16. 장흥 보림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
  17.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1964)
  18. 금동연가7년명여래입상
  19. 용주사 동종
  20. 안동 하회탈 및 병산탈
  21. 양양 진전사지 삼층석탑
  22.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사리장엄구
  23. 강릉 한송사지 석조보살좌상
  24. 녹유골호(부석제외함)
1.#126 불국사 삼층석탑 사리장엄구
  1. 서울 삼양동 금동관음보살입상
  2. 금동관음보살입상
  3. 금동보살입상(1968)
  4. 구미 죽장리 오층석탑
  5. 고려말 화령부 호적 관련 고문서
  6. 징비록
  7. 청자 동화연화문 표주박모양 주전자
  8. 금동보살삼존상
  9. 신윤복필 풍속도 화첩
  10. 금동 용두보당
  11. 대구 비산동 청동기 일괄-검 및 칼집 부속 / 투겁창 및 꺾창
  12. 전 고령 금관 및 장신구 일괄
  13. 김홍도필 군선도 병풍
  14. 나전 화문 동경
  15. 정문경
  16. 동국정운
  17. 화순 대곡리 청동기 일괄
  18. 영암 월출산 마애여래좌상
  19. 귀면 청동로
  20. 전 논산 청동방울 일괄
  21. 울주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
  22. 십칠사찬고금통요 권16 / 십칠사찬고금통요 권17
  23. 동래선생교정북사상절 권4, 5 / 동래선생교정북사상절 권6
  24. 송조표전총류 권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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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151~200호]
{{{#!wiki style="margin:-10px 0"
<table bordercolor=#fff,#1f2023>
1.#176 백자 청화‘홍치2년’명 송죽문 항아리
  1. 분청사기 인화국화문 태항아리
  2. 분청사기 음각어문 편병
  3. 분청사기 박지연화어문 편병
  4. 김정희필 세한도
  5. 장양수 홍패
  6. 구미 선산읍 금동여래입상
  7. 구미 선산읍 금동보살입상(1976-1)
  8. 구미 선산읍 금동보살입상(1976-2)
  9. 상지은니묘법연화경
  10. 양평 신화리 금동여래입상
  11. 영양 산해리 오층모전석탑
  12. 천마총 금관
  13. 천마총 관모
  14. 천마총 금제 허리띠
  15. 황남대총 북분 금관
  16. 황남대총 북분 금제 허리띠
  17. 경주 98호 남분 유리병 및 잔
  18. 황남대총 남분 금목걸이
  19. 토우장식 장경호
  20. 신라백지묵서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1~10, 44~50
  21.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
  22. 단양 신라 적성비
  23. 경주 단석산 신선사 마애불상군
  24. 금동보살입상(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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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201~250호]
{{{#!wiki style="margin:-10px 0"
<table bordercolor=#fff,#1f2023>
1.#201 봉화 북지리 마애여래좌상
  1. 대방광불화엄경 진본 권37
  2.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6
  3.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36
  4. 충주 고구려비
  5. 합천 해인사 고려목판
  6. 경주 천마총 장니 천마도
  7. 도리사 세존사리탑 금동 사리기
  8. 보협인석탑
  9. 감지은니불공견삭신변진언경 권13
  10. 백지묵서 묘법연화경
  11.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언해)
  12. 금동탑
  13. 흥왕사명 청동 은입사 향완
  14. 감지은니대방광불화엄경 정원본 권 31
  15. 정선필 인왕제색도
  16. 정선필 금강전도
  17. 아미타삼존도
  18. 백자 청화매죽문 항아리
  19. 청자 상감용봉모란문 합 및 탁
  20. 평창 상원사 목조문수동자좌상
  21. 백자 청화매죽문 유개항아리
  22. 경복궁 근정전
  23. 경복궁 경회루
  24. 창덕궁 인정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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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251~300호]
{{{#!wiki style="margin:-10px 0"
<table bordercolor=#fff,#1f2023>
1.#251 초조본 대승아비달마잡집론 권14
  1. 청자 음각'효문'명 연화문 매병
  2. 청자 양각연화당초상감모란문 은테 발
  3. 청자 음각연화문 유개매병
  4. 전 덕산 청동방울 일괄
  5.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1
  6.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29
  7. 백자 청화죽문 각병
  8. 분청사기 상감운룡문 항아리
  9. 분청사기 박지철채모란문 자라병
  10. 백자 유개항아리
  11. 백자 달항아리(1991)
  12. 백자 청화산수화조문 항아리
  13. 포항 냉수리 신라비
  14.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13
  15.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2, 75
  16. 초조본 아비달마식신족론 권12
  17. 초조본 아비담비파사론 권11, 17
  18. 초조본 불설최상근본대락금강불공삼매대교왕경 권6
  19. 청자 모자원숭이모양 연적
  20. 초조본 현양성교론 권12
  21. 초조본 유가사지론 권32
  22. 초조본 유가사지론 권15
  23. 귀함별황자총통(1596년조)
  24. 도기 기마인물형 뿔잔
1.#276 초조본 유가사지론 권53
  1.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36
  2. 태종11년이형원종공신록권부함
  3.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74
  4. 성거산 천흥사명 동종
  5. 백자 병형 주전자
  6. 영주 흑석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및 복장유물
  7. 통감속편
  8. 초조본대반야바라밀다경 권162, 170, 463
  9.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10. 백자 ‘천’ ‘지’ ‘현’ ‘황’명 발
  11. 백제 금동대향로
  12. 부여 능산리사지 석조사리감
  13.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14. 양산 통도사 대웅전 및 금강계단
  15. 용감수경 권3~4
  16. 평창 상원사 중창권선문
  17. 부여 규암리 금동관음보살입상
  18. 백자 청화철채동채초충문 병
  19. 나주 신촌리 금동관
  20. 칠장사 오불회 괘불탱
  21. 안심사 영산회 괘불탱
  22. 갑사 삼신불 괘불탱
  23. 신원사 노사나불 괘불탱
  24. 장곡사 미륵불 괘불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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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301~33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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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정부상징.svg 대한민국 국보 제331호
창덕궁 이문원 측우대
大邱 慶尙監營 測雨臺
소재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효자로 12, 국립고궁박물관 (세종로,국립고궁박물관)
분류 유물 / 과학기술 / 천문지리기구 / 천문
수량/면적 1점
지정연도 2020년 2월 27일
제작시기 조선 정조

파일:국보331호창덕궁이문원측우대01.jpg

1. 개요2. 상세정보3. 외부 링크4. 국보 제331호

1. 개요

昌德宮 摛文院 測雨臺. 창덕궁 이문원 측우대는 조선시대의 강우량 관측기구 세트의 일부로, 1782년( 정조 6년)에 제작되어 창덕궁 이문원(摛文院) 앞마당에 설치하였다. 본 측우대의 네 측면에는 측우기의 내력을 설명한 명문 [측우기명測雨器銘][1] 총 365자가 새겨져 상세한 내역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귀중한 역사적 자료이다.

창덕궁 이문원 측우대는 대리석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대리석 측우대'라고도 불린다.

측우대는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측우기가 아니라 측우기를 올려놓는 받침대를 지칭한다. 유감스럽게도 창덕궁 이문원 측우대와 함께 세트로 있던 측우기는 현재 소실되어 전하지 않는다. 하지만 본 측우대의 보존상태가 상당히 양호하거니와, 측우대에 새겨진 명문만으로도 조선시대에 강우량 측정 제도가 있었음을 충분히 증명할 수 있어 가치가 높다.

창덕궁 이문원 측우대는 이미 1985년에 창덕궁 측우대라는 명칭으로 보물 제844호로 지정되었으나, 그로부터 35년이 지난 2020년 2월 27일에 그 과학사적 중요성을 인정받아 공주 충청감영 측우기, 대구 경상감영 측우대 등과 함께 국보로 승격 지정되었다. 창덕궁 이문원 측우대는 국보 제331호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 중이다.

2. 상세정보

조선시대 강우량을 측정하는 측우기를 올려 놓았던 대석(臺石)이다.

원래는 측우기와 측우대는 창덕궁 내 이문원(摛文院, 규장각의 부속건물) 앞에 설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창덕궁 이문원 측우대라고 부른다. 현재 측우기는 남아있지 않다.

측우대의 4면에는 측우기를 세우게 된 연원과 당시의 내력이 기록되어 있다. 이를 통해 이 측우대 위에 놓였던 측우기는 1770년(영조 46)에 세종대의 제도를 따라 만들었으며, 1782년(정조 6) 여름에 기우제를 지낸 후 비가 내렸고,정조의 명으로 측우기를 설치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왕실유물에 많이 쓰인 대리석으로 만들었다.

이 측우대는 세종 조에 시작한 조선 측우기 제도가 영조 대에 이르기까지 그대로 계승되고 있다는 사실을 실증(實證)해주는 유물이다.
국립고궁박물관: 창덕궁 이문원 측우대 소개문[2]
창덕궁 이문원 측우대의 높이는 30.3㎝, 넓이는 45.3×45.5㎝이고, 윗면에는 지름 16.2㎝, 깊이 4.3㎝의 구멍이 뚫려 있어 여기에 측우기를 꽂아 올려 놓게 되어 있다. 또한 본 측우대는 조선 정조 6년인 1782년에 만들어져서 창덕궁 이문원[3] 앞마당에 설치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본 측우대의 앞뒤좌우 네 면에 새겨진 명문을 통해서 확인된다. 또한 이문원 앞에 설치된 이후로 1910년경까지 원래 있던 자리에 계속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흥미롭게도 19세기 초엽에 그려진 동궐도에 묘사된 물체들 가운데 본 측우대도 찾아볼 수 있다. 링크 참조: 네이버 블로그 측우기(기상청 기상역사팀) - 동궐도 속 측우기ㆍ측우대와 기상ㆍ천문 관측기기들

다만, 1910년경에 들어서는 이미 대리석 표면이 비바람에 깎여진 바람에 새겨진 글자에 손상이 가서 그 내용을 온전하게 읽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한경지략 漢京識略≫에 측우기명의 전문이 실려 있다는 것이 과학사학자 전상운(全相運)의 연구에 의해 발견돼서 다행히도 명문의 내용을 알 수 있게 되었다. ≪한경지략≫은 1820년대에 저술된 책으로, 저때만 해도 측우대 표면이 완전한 상태로 보존되어 있었음을 뜻한다. 따라서, 측우기명의 완전 해독은 ≪한경지략≫의 기록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다만 기록 중 측우기가 1442년(세종 24)에 발명된 것 같이 적혀 있는 것은 결정판에 따른 결과이고 1441년에 발명된 것은 확실하다.

1920년경에 이 측우대는 당시 경성박물관 앞 계단으로 옮겨 놓았다가 6·25전쟁 시기를 지나서는 창경궁 명정전 뒤로 옮겨 전시하였다. 다행인 점은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거치면서도 본 측우대 자체에는 큰 손상이 없이 상태가 양호하게 전해진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대단히 아쉬운 점은 측우대 위에 올려져 있던 측우기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도 계속 남아 있었지만 6·25전쟁의 난리통은 못 이기고 결국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다.[4] 이후 본 측우대는 1960년대 말에 세종대왕기념관으로 옮겼다가 또 1970년대 후반에 여주의 영릉진열관으로 옮겨지는 등 이리저리 떠돌아 다니다가 지금은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5]

창덕궁 이문원 측우대는, 아쉽게도 측우기 실물은 함께 전해지지는 않지만,[6] 명문이 잘 남아있어 제작연대를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고 동궐도에 그려진 모습을 통해서도 그 실체가 확인되며, 전래 및 입수 경위도 분명하여 그 가치가 높다. 이 뿐만 아니라 본 측우대는 대구 경상감영 측우대와 함께 조선시대에 세계 최초로 국가 단위로 행해진 체계적이며 표준화된 강우량 측정 제도가 있었다는 것을 실제 유물로써도 증명하는 귀중한 문화재이기도 하다. 따라서 창덕궁 이문원 측우대는 한반도 과학사 연구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자료라 할 수 있다.

창덕궁 이문원 측우대는 익히 그 가치를 인정받아 1985년 8월 9일에 보물 제844호로 지정되었으나, 학술적인 여러 측면에서의 중요성을 고려하여 2020년 2월 27일 국보 제331호로 승격 지정되었다.

3. 외부 링크

4. 국보 제331호

국보 제331호 ‘창덕궁 이문원 측우대(昌德宮 摛文院 測雨臺)’는 1782년(정조 6) 정조의 명에 의해 창덕궁 규장각의 부속 건물인 이문원(摛文院)앞에 설치되었던 것으로, 이는 측우대 좌우 네 면에 새겨진 ‘측우기명(測雨器銘)’과 19세기 궁궐그림인 <동궐도(東闕圖)>를 통해 확인된다. <동궐도>에는 이문원 앞뜰에 받침돌 없이 놓인 것으로 그려진 측우대 한 기가 그려진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창덕궁 이문원 측우대’이다.

석재는 조선시대 왕실유물에 많이 쓰인 대리석(당시는 대리암으로 불림)으로, 잘 다듬어 유려하게 새긴 글씨 또한 중앙의 장인이 제작했음을 보여준다. 이문원 측우대는 1910년경까지 원래 자리에 있다가 이후 경성박물관으로 옮겨졌고 창경궁 명정전, 덕수궁 궁중유물전시관을 거쳐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측우대의 겉면에 새겨진 ‘측우기명’은 내각일력(內閣日曆) 1782년 9월 14일 기사와 <한경지략(漢京識略)>에도 수록되어 있어 전체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명문은 창덕궁 이문원에 측우기를 세우게 된 연원과 그 중요성에 대한 내용으로, 다음의 중요한 몇 가지 사실을 알려준다. 첫째, 측우기는 세종 24년에 구리로 주조하였으며 높이 1자 5치(1척 5촌), 직경 7치라는 사실, 둘째, 1770년(영조 46)에 세종 대의 제도를 따라 측우기를 만들고, 창덕궁, 경희궁, 팔도(八道), 강화부, 개성부에 설치하였다는 사실, 셋째, 1782년(정조 6) 여름에 기우제(祈雨祭)를 지낸 후 비가 내렸고 정조의 명으로 규장각 이문원 뜰에 측우기를 설치하였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명문을 통해 ‘창덕궁 이문원 측우대’는 기우제를 통한 특별한 소망의 대상으로 제작되었을 뿐 아니라 세종 조에 시작한 조선 측우기 제도가 영조 대에 이르기까지 그대로 계승되고 있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실증(實證)해주는 유물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국보 제331호 ‘창덕궁 이문원 측우대’는 1442년(세종 24) 조선에서 농업에 활용하고자 세계 최초로 측우기와 측우대를 제작한 이후 조선 후기에도 전통이 면면이 이어져왔음을 보여주는 유물로서,‘공주 충청감영 측우기’,‘대구 경상감영 측우대’와 함께 국보로 지정해 우리나라 전통과학의 우수성과 그 위상을 국내외에 널리 알릴 가치가 충분하다.


[1] 상단 사진의 맨 우측 줄부터 새겨져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2] 출처 : 국립고궁박물관 - 창덕궁 이문원 측우대 소개문 [3] 이문원(摛文院)은 각종 왕실 문헌을 보관한 전각으로, 규장각의 부속 시설로 창덕궁에 자리하고 있었다. 출처: 두산백과 - 이문원 [4] 출처: 두산백과 - 창덕궁 이문원 측우대 [5]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측우대 [6] 본 측우대와 함께 측우기도 남아서 완전한 풀세트로 지금까지 전해졌다면 그 가치는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물며 지방 관청에서 쓰던 측우기(공주 충청감영 측우기)도 현재 실물 단 하나만이 유일하게 남은 것으로서 국보로 지정된 마당에, 궁중에서 썼던 측우기와 측우대 풀세트가 온전히 전해졌다면 그 가치는 두말할 나위 없이 대단히 높았을 것이기에 너무나도 아쉬운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