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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315288> 좌측에서 바라본 영천 거조사 영산전 |
대한민국 국보 제14호 | |
영천 거조사 영산전 永川 居祖寺 靈山殿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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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거조길 400-67, 은해사 거조암 (신원리) |
분류 |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 불교 / 불전 |
수량/면적 | 1동 |
지정년도 | 1962년 12월 20일 |
제작시기 | 고려 시대 말기/ 조선 시대 초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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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315288> 1980년대 대한뉴스에 방영된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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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신원리 팔공산 자락에 자리한 거조사의 영산전. 거조사 영산전은 대한민국에 현존하는 몇 안되는 고려 시대의 목조건축물 중 하나로써, 한반도 목조건축물 연구에 있어서 중요한 문화재다.대한민국에 현존하는 고려시대에 건립된 것이 확실한 목조건축물은 총 6동으로 예산 수덕사 대웅전,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영주 부석사 조사당, 안동 봉정사 극락전, 강릉 임영관 삼문과 거조사의 영산전 뿐이다.[1] 거조사 영산전은 고려말인 1375년( 우왕 원년)에 세워졌기 때문에 다른 것들보다 시기가 아주 앞선다고 볼 수는 없으나, 그럼에도 현전하는 고려시대의 건축물이라는 것 자체 만으로도 그 역사적, 문화적 가치는 아주 높다고 할 수 있다.
영천 거조사 영산전은 1962년 국보 제14호로 지정되었다.
2. 상세
영천 거조사 영산전 정면(2015년 촬영) |
영천 거조사 영산전 원경(2015년 촬영) |
거조사 영산전 내 석조 나한상(2015년 촬영) |
영천 거조사 영산전은 고려말 건축사 연구에 있어 대단히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건립 연대가 명확하며 오래된 바, 그 중요성을 일찍이 인정하여 1962년 국보 제14호로 지정되었다.
3. 외부 링크
- 한국어 위키백과: 영천 은해사 거조암 영산전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영천 은해사 거조암 영산전
- 미술백과: 은해사 거조암 영산전
- 답사여행의 길잡이 8 - 팔공산 자락: 은해사 거조암 영산전
4. 국보 제14호
은해사는 통일신라 헌덕왕 1년(809) 혜철국사가 지은 절로 처음에는 해안사라 하였다고 하며 여러 차례 있었던 화재로 많은 건물을 다시 지었는데, 지금 있는 건물들의 대부분은 근래에 세운 것들이다.
거조사는 은해사 보다 먼저 지었지만, 근래에 와서 은해사에 속하는 암자가 되어 거조암이라 부르게 되었다. 돌계단을 오르는 비교적 높은 기단 위에 소박하고 간결하게 지은 영산전은 거조암의 중심 건물이다. 고려 우왕 원년(1375)에 처음 지었으며, 석가모니불상과 526분의 석조나한상을 모시고 있다.
앞면 7칸·옆면 3칸 크기의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보았을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를 기둥 위부분에만 설치한 주심포 양식이다. 특히 영산전은 고려말·조선초 주심포 양식의 형태를 충실하게 보여주고 있어 매우 중요한 문화재로 평가받고 있다.
거조사는 은해사 보다 먼저 지었지만, 근래에 와서 은해사에 속하는 암자가 되어 거조암이라 부르게 되었다. 돌계단을 오르는 비교적 높은 기단 위에 소박하고 간결하게 지은 영산전은 거조암의 중심 건물이다. 고려 우왕 원년(1375)에 처음 지었으며, 석가모니불상과 526분의 석조나한상을 모시고 있다.
앞면 7칸·옆면 3칸 크기의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보았을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를 기둥 위부분에만 설치한 주심포 양식이다. 특히 영산전은 고려말·조선초 주심포 양식의 형태를 충실하게 보여주고 있어 매우 중요한 문화재로 평가받고 있다.
[1]
보물로 지정된 '안성 객사 정청'이나 '청양군 장곡사 상대웅전' 등이 더 있기는 하나, 이것들은 고려시대의 원형 그대로 전해진 것인지는 명확지 않다.
[2]
출처:
법보신문 - ‘은해사 거조암’ 대신 ‘거조사’라 불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