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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보 제90호 | |
경주 부부총 금귀걸이 慶州 夫婦塚 金製耳飾 |
|
소재지 |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 137 국립중앙박물관 |
분류 | 유물 / 생활공예 / 금속용예 / 장신구 |
수량/시설 | 1쌍 |
지정연도 | 1962년 12월 20일 |
제작시기 | 신라시대(5세기) |
1. 개요
慶州 夫婦塚 金製耳飾. 금제태환이식(金製太環耳飾) 또는 부부총 태환금귀걸이라고도 불린다. 일제강점기인 1918년 경상북도 경주시 보문동 명활산에 위치한 신라시대의 무덤에서 발굴된 한 쌍의 귀고리로 재질은 금이다.이 금귀고리가 출토된 무덤은 일본인에 의해 발굴되었는데 합장묘임이 밝혀졌고, 이에 따라 부부총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1] 일제강점기에 행해진 부부총 발굴에서 금귀고리, 금목걸이 등의 보물과 칼, 토기 등이 함께 출토되었다. 이 출토 유물들 중 본 문서에 서술된 금귀고리는 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금속공예품 가운데 가장 화려하고 정교한 작품 중 하나로 알려져 있으며, 미술사학자 고유섭은 본 금귀고리에 대해 '전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금 귀고리'라고 극찬한 바가 있을 정도다.
경주 부부총 금귀걸이는 대한민국 국보 제90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2. 내용
한 쌍으로 이루어진 금귀고리인데 상당히 크고 대단히 화려한 형체를 자랑한다. 두 점 모두 길이는 약 8.5cm, 무게는 57~58g 정도이다. 개략적인 형태는, 몸체가 되는 크고 두꺼운 고리의 구멍에 중간고리를 매달아 놓고, 이 중간고리에 다시 하트 모양의 장식이 달린 밑고리를 연결해 놓았다. 밑고리와 중간고리의 연결 지점에는 수많은 장식들이 매달려 있다.
이 모든 고리에는 대단히 화려한 장식들이 달려 있는데, 몸체 고리는 금실과 금알갱이를 촘촘하게 붙여서 육각형과 꽃 모양을 만들어 내었고, 중간고리에도 금알갱이를 붙여서 장식해 놓았으며 아래고리의 맨 끝은 하트 모양으로 해놨는데 하트 모양 장식의 테두리 역시 금알갱이로 장식되어 있다. 그리고 이미 언급한대로 연결 지점에는 나뭇잎 모양의 장식들 수십개가 금실로 본체와 연결된 채로 매달려 있다.
이 금귀고리가 특히 놀라운 점은 귀고리를 전반적으로 장식해주는 금알갱이에 있다. 안경이나 현미경과 같은 세밀한 공예를 위한 도구가 전혀 없던 시절임에도 불구하고, 금을 매우 촘촘하게 세공하여 1mm 이하 크기의 아주 작은 금알갱이 수백개를 만들어내고 이를 가지고 귀고리에 장식을 조형해내는 공예기술은 감탄을 자아낸다. 학자들은 이와 같은 금속세공법을 누금세공법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서역에서 전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외국에서 전래된 기술을 놀라운 완성도로 발전시키고 정점에 오른 신라의 금속 공예의 수준을 알 수가 있다.
3. 외부 링크
4. 국보 제90호
경주 보문동의 부부총(夫婦塚)에서 출토된 신라시대 한쌍의 금귀걸이로, 길이 8.7cm이다. 태환이식이란 가운데를 빈 공간으로 하여 무게를 가볍게 한 귀걸이를 말한다.
귀걸이의 몸체가 되는 커다랗고 둥근 고리에 타원형의 중간고리가 연결되었으며, 그 아래에는 나뭇잎 모양의 화려한 장식들이 매달려 있다. 커다란 둥근 고리에는 거북등무늬와 같은 육각형으로 나누어 그 안에 4엽 혹은 3엽의 꽃을 표현하였는데, 꽃 하나하나에 금실과 금 알갱이를 붙이는 누금세공법(鏤金細工法)을 이용하여 섬세하게 장식하였다. 밑부분에는 나뭇잎 모양의 작은 장식들을 금실을 꼬아서 연결하고 장식 끝에 커다란 하트모양을 달았다.
신라 귀걸이 장식에는 대부분 이처럼 서역(西域)에서 전래된 누금세공법이 사용되었는데 그 중에서 태환을 비롯한 전체에 누금세공법을 사용한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화려하고 놀라운 세공 기술을 보여주고 있다.
귀걸이의 몸체가 되는 커다랗고 둥근 고리에 타원형의 중간고리가 연결되었으며, 그 아래에는 나뭇잎 모양의 화려한 장식들이 매달려 있다. 커다란 둥근 고리에는 거북등무늬와 같은 육각형으로 나누어 그 안에 4엽 혹은 3엽의 꽃을 표현하였는데, 꽃 하나하나에 금실과 금 알갱이를 붙이는 누금세공법(鏤金細工法)을 이용하여 섬세하게 장식하였다. 밑부분에는 나뭇잎 모양의 작은 장식들을 금실을 꼬아서 연결하고 장식 끝에 커다란 하트모양을 달았다.
신라 귀걸이 장식에는 대부분 이처럼 서역(西域)에서 전래된 누금세공법이 사용되었는데 그 중에서 태환을 비롯한 전체에 누금세공법을 사용한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화려하고 놀라운 세공 기술을 보여주고 있다.
[1]
하지만 2010년 경에 들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실시한 부부총의 재조사 결과, 부부의 무덤이 아니라 두 여성의 합장묘이었음이 드러났다. 참조:
부부가 아니었다..'신라의 명품 귀고리'는 두 여성의 합장분에서 나왔다 -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