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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위 추존 황제
|
|||
<colbgcolor=#DC143C><colcolor=#ece5b6> 대 제7대 국왕
탁발예괴 | 拓跋翳槐 |
|||
출생 | 연대 미상 | ||
서진
운중군
성락 (現 내몽골 자치구 후허하오터시 허란거얼현) |
|||
사망 | 338년 | ||
후조
운중군
성락 (現 내몽골 자치구 후허하오터시 허란거얼현) |
|||
능묘 | 미상 | ||
재위기간 | 대 제7대 국왕 (1차) | ||
329년 ~ 335년 | |||
대 제7대 국왕 (2차) | |||
337년 ~ 338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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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DC143C><colcolor=#ece5b6> 성씨 | 탁발(拓跋) | |
휘 | 예괴(翳槐) | ||
부모 |
부황
평문황제 모후 평문황후 |
||
형제자매 | 4남 4녀 중 장남 | ||
배우자 | 불명 | ||
자녀 | 4남 이상 | ||
시호 | 열황제(烈皇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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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오호십육국시대 대나라의 제7대 국왕.시해당한 평문제 탁발울률의 장남으로 제6대 국왕인 양제 탁발흘나와 왕권을 두고 다투었다. 탁발예괴는 한 차례 쫓겨났으나, 후조라는 강대국을 등에 업고 탁발흘나를 끌어내리면서 다시 왕위를 되찾을 수 있었다.
2. 생애
제2대 대왕인 탁발보근이 승하하고, 그 뒤를 이은 아들마저 생후 1년이 되기도 전에 사망하자, 탁발울률이 여러 대인(大人)들의 추대를 받아 대왕으로 즉위하였다. 탁발울률은 철불부의 유호(劉虎)를 격파하고 동쪽과 서쪽으로 정벌하여 오손(烏孫)과 물길(勿吉) 옛 땅들을 경략해나갔으나, 탁발보근의 어머니 기씨에 의해 피살당하고 말았다. 기씨는 탁발울률과 그를 따르는 대인들 수십 명을 살해하였는데, 당시 탁발예괴는 하란부의 대인이자 외숙부인 하란애두(賀蘭藹頭)의 비호 덕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함화 2년(327년), 탁발하녹의 뒤를 이어 대왕에 오른 탁발흘나는 하란부로 사람을 보내 탁발예괴의 신병을 요구했지만, 하란애두가 이를 거절하자 우문부와 연합해 하란부를 쳤다. 그러나 탁발흘나는 이기지 못 했고, 결국 함화 4년(329년)에 대나라의 여러 대인들이 반란을 일으켜 하란부와 함께 탁발예괴를 대왕으로 옹립하였다. 기반을 잃은 탁발흘나는 하는 수 없이 우문부로 피신하였다. 대왕에 오른 탁발예괴는 강대국인 후조에 동생 탁발십익건을 인질로 보내 화친을 청했다.
함강 원년(335년), 탁발예괴가 은인이나 마찬가지인 하란애두를 불손하다는 이유로 죽이려 하니, 각 부의 대인들이 반발하여 모두 반란을 일으키고 우문부로 도망쳤던 탁발흘나를 다시 맞아들였다.
함강 2년(336년), 탁발예괴가 후조의 업(鄴)으로 도망치니, 천왕 석호가 그를 영접하고 극진히 대접해주었다.
건무 3년(337년), 탁발예괴가 후조의 장수 이목(李穆)과 함께 대나라 수도인 대녕(大寧)을 들어가자, 과거 탁발예괴를 따르던 부락들이 대부분 귀부하였다. 탁발흘나는 모용부의 전연으로 도주하고 이후로 영영 돌아오지 못 했으며, 대나라 백성들은 다시 탁발예괴를 대왕으로 받들었다. 이후 탁발예괴는 성락(盛樂)에 동남쪽으로 10리 가량의 성을 쌓고, 도읍을 성락으로 천도하였다.
건무 4년(338년), 탁발예괴가 병이 들어 쓰러졌다. 그는 여러 대인들을 불러모아 동생 탁발십익건을 왕으로 받들 것을 유언으로 남기고 병사하였다. 훗날 도무제 탁발규가 칭제하면서 탁발예괴를 '열황제(烈皇帝)'로 추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