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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DC143C><colcolor=#ece5b6> 북위 추존 황제
탁발역미 | 拓跋力微 |
|||
출생 | 174년 | ||
후한
운중군
성락 (現 내몽골 자치구 후허하오터시 허란거얼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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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277년 (향년 103세) | ||
서진
운중군
성락 (現 내몽골 자치구 후허하오터시 허란거얼현) |
|||
능묘 | 미상 | ||
재위기간 | 탁발부 수령 | ||
220년 ~ 277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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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DC143C><colcolor=#ece5b6> 성씨 | 탁발(拓跋) | |
휘 | 역미(力微) | ||
부황 | 성무제 | ||
형제자매 | 차남 | ||
배우자 | 신원황후 두씨 | ||
자녀 | 4남 | ||
묘호 | 시조(始祖) | ||
시호 | 신원황제(神元皇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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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선비족 탁발부의 수령으로 탁발힐분의 차남이었다. 탁발부의 정치 활동이 알려지기 시작한 건 손자 탁발의이, 탁발의려 형제 때 부터이다.2. 생애
신화에 따르면 탁발힐분과 천녀와의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하며, 220년에 탁발힐분이 죽자 대인이 되었다가 서부 대인의 공격을 받아 패배한 후, 몰록회부의 대인이었던 두빈에게 도망가 몸을 숨겼다. 몰록회부의 보호를 받아 장천에서 부족들을 끌어모았으며, 233년에 두빈이 서부를 공격했다가 실패해 말을 잃고 돌아오자 준마를 준 일로 인해 그의 사위가 되었다. 248년에 은인인 두빈이 죽자 아내 두씨를 살해하고, 두빈의 두 아들을 유인해 제거한 뒤 몰록회부를 장악했다.이 일로 이복형인 독발필고가 하서로 떠났고, 탁발역미는 258년에 성락으로 근거지를 옮겨 제천행사를 통해 자신이 권력자임을 선포했다. 261년에는 조위에 아들인 탁발역휘를 인질로 보냈다.
276년에 탁발사막한을 서진에 파견했다가 277년에 탁발사막한이 탁발부로 돌아가자 위관이 계략을 이용해 선비족의 대인들로 하여금 한화된 탁발사막한을 죽게 만들었으며, 참언으로 탁발사막한을 죽인 것에 탁발역미가 한을 품고 선비족 대인들의 장자를 모두 체포해 죽이려 한다는 소문이 퍼져 각 대인들이 도주하자 탁발역미는 이를 걱정하다가 사망했다. 향년 103세[1]
훗날 북위가 건국되자 신원제로 추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