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의 주요 수상 이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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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 ( 살인에 관한 짧은 필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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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류 버킨 (시멘트 가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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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 Krzysztof Kieślowsk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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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colbgcolor=#ffffff,#191919>크시슈토프 키에실로프스키 Krzysztof Kieślowski |
국적 | 폴란드 |
출생 |
1941년
6월 27일 폴란드 총독부 바르샤바 |
사망 |
1996년
3월 13일 (54세) 폴란드 바르샤바 |
학력 | 우치 국립 영화 학교 |
직업 | 감독 |
활동 | 1966년~ 1994년 |
종교 | 가톨릭[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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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폴란드 출신의 영화감독.폴란드 영화를 거론할 때 절대 빠지지 않는 거장 감독 중 하나로, 안드레이 타르콥스키와 함께 20세기 후반 동유럽 예술영화계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1970년대부터 활동을 시작했지만, 1990년대에 들어 전 세계적으로 불어닥친 블록버스터와 상업영화 기류 가운데 20세기 마지막 영화예술가로 본격적으로 주목을 받으며 세기말의 예술영화계를 풍미했다.[2]
2. 생애
1968년 우츠 국립영화학교를 졸업하고 〈우치시로부터 From the City of Ludz〉(1969)이란 기록영화로 데뷔한 후 영화감독 키에슬로프스키는 68년 3월의 학생봉기, 70년 12월의 자유화 운동, 76년의 노동자 시위사태, 80년 레흐 바웬사가 이끄는 연대노조 운동, 그리고 81년 야루젤루스키 정권의 계엄령 선포에 이르기까지 격동의 시대를 살았다. 폴란드사회가 그렇게 혼란을 겪는 동안 폴란드영화는 부흥기를 맞았다. 70년대 중반 아그네츠카 홀란드, 안토니 크라우즈, 리자드 부가예스키, 마르셀 로진스키 등의 감독이 이른바 ‘도덕적 불안의 영화’로 정의되는 폴란드영화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다. 50년대 말에서 60년대 초, 안제이 바이다 감독 등이 이끌었던 ‘폴란드 유파’가 폴란드영화의 현대적인 어법을 발굴해냈다면, ‘도덕적 불안의 영화’ 세대는 긍정적인 전망이 보이지 않는 폴란드 현실을 불안하게 짚어냈다. 키에슬로프스키는 물론 ‘도덕적 불안의 영화’ 경향을 띤 감독 중 한사람이었다. 이 시기에 만든 가장 뛰어난 작품은 〈노동자들 ’71〉로 71년 슈체친에서 일어난 노동자 파업사태를 찍은 것이다.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의 첫 극영화는 〈어느 당원의 이력서 Personel〉(1975). 50분짜리 중편이며 원래 텔레비전 방영용으로 만든 작품인데, 독일 만하임영화제 대상을 받았다. 지하 폴란드 공산당원이 징계문제로 당 조사위원회에 호출되어 심문받는 과정을 기록영화 형식으로 담았고 50분 동안 심문관과 피심문자의 얼굴 클로즈업만으로 계속 이어가면서도 긴장감을 늦추지 않는 놀라운 작품이다. 키에슬로프스키의 본격적인 장편 극영화 데뷔작 〈상처 Blizna〉(1976)는 모스크바영화제 대상을 받았다. 이 작품으로 키에슬로프스키는 ‘도덕적 불안의 영화’ 세대의 리더로 국내외에서 확실한 주목을 받았다. 현실을 혼란한 마음으로 통찰하던 이 폴란드 감독은 곧 유럽영화계의 자본과 줄이 닿았고 그 계기가 된 것은 바르샤바 텔레비전에서 방영된 〈 데칼로그(십계)〉 연작이다. 1988년 TV 시리즈물로 만든 데칼로그가 대성공 하면서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된다.
순위 | 제목 | 감독 |
1 | 살인에 관한 짧은 필름 |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 |
2 | 프라하의 봄 | 필립 카우프만 |
3 | 죽은 자들 | 존 휴스턴 |
4 | 긴급 상황 | 레몽 드파르동 |
5 | 버드 | 클린트 이스트우드 |
6 | 안개 속의 풍경 | 테오 앙겔로풀로스 |
7 | 소리와 분노 | 장 클로드 브리소 |
8 |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 | 마틴 스콜세지 |
9 | 순수한 사람들 | 앙드레 테시네 |
10 | 여자 이야기 | 클로드 샤브롤 |
데칼로그 시리즈중 가장 유명한 〈 살인에 관한 짧은 필름〉, 〈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은 극장판으로도 나와서, 1995년 한국에서도 정식 개봉되었다. 특히, 〈살인에 관한 짧은 필름〉은 1988년 칸 영화제 국제비평가상을 수상했고, 카예 뒤 시네마 선정 올해의 영화 1위에 선정되었다.
그의 주요 작품들은 거의 프랑스에서 촬영되었는데, 프랑스가 그의 작품에 가장 많은 후견인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자누쉬 촬영감독의 섬세한 영상미가 유명한 1991년 베로니카의 이중생활[3]로 첫번째 주연작으로, 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다. 이 영화의 성공으로 이렌 자코브[4]가 일약 프랑스의 스타가 된다. 특히 이 영화는 국내에서도 팬이 많아서 2004년, 2016년 두번이나 재개봉하였다.
1993년 세 가지 색 연작중 세 가지 색: 블루가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 여우 주연상( 줄리엣 비노쉬)을 포함 3개 부문을 수상한다. 93년 서울에서는 코아 아트홀에서 여성 관객의 인기에 힘입어, 장기상영되어, 서울에서만 10만명 넘는 흥행을 기록했다. 국내에서도 마니아가 많아서 2009년, 2016년, 2020년 여러번 재개봉하였다
1994년 삼색 시리즈 세 가지 색: 화이트는 베를린 영화제 감독상인 은곰상을 수상한다. 이 영화의 성공으로 여주인공, 줄리 델피[5]는 국내 CF도 찍었다.
1994년 삼색 시리즈의 마지막인 세 가지 색: 레드는 칸에서 영화제 언론매체에서 가장 좋은 평가를 받아, 올리브 나무 사이로의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와 함께 황금 종려상에 유력했으나, 수상에는 불발했고, 심지어 무관에 그쳐서, 당시 상당한 논란이 되었다. 한국 영화지 로드쇼에서도, 1994년 7월호 특집 기사로 이해할수 없다고 했다. 심지어, 황금종려상 시상 도중에 황금종려상은 세 가지 색: 레드라고 관객이 항의하는 소란도 있었다.
삼색 시리즈는 극장에서도 오로지 작품성만으로 흥행하여, 90년대 까페를 가면 영화 포스터가 여기저기 상당히 많이 인테리어되었다. 꾸준한 인기로 인해, 1994년, 2016년, 2020년에 삼색시리즈는 여러번 재개봉하였다.
도덕과 윤리, 선택, 운명 같은 철학적인 테마에 관심이 많았으며 이를 지적이면서도 은유적으로 그려낸 깊이있는 연출이 트레이드마크. 의외로 블랙 코미디에도 재능이 있어서 세 가지 색: 화이트는 맛깔나게 부조리 코미디를 선보이기도 했다.촬영은 크쥐스토프 자누쉬와 주로 했으며, 음악은 "즈비그뉴 프라이즈너"와 자주 협연했다. 그런 이유로 키에슬로프스키의 영화 사운드 트랙이 상당히 훌륭하다. 삼색 시리즈 이후 차기 3부작을 준비하던중, 건강 악화로 1996년 사망한다( 심정지로 세상을 떠났다.).
가장 권위를 인정받는 사이트 앤 사운드 선정 역대 최고의 영화에 무려 세편이 선정되어 있다. 한 작품이 선정되기도 힘든데, 베로니카의 이중생활, 세 가지 색: 블루, 세 가지 색: 레드이 선정되었다.
감독이 배우 발굴에 일가견이 있다. 세 가지 색: 블루 의 쥘리에트 비노슈, 세 가지 색: 화이트의 줄리 델피, 베로니카의 이중생활, 세 가지 색: 레드의 이렌 자코브는 그의 작품 이후 세계적인 배우로 거듭날 수 있었다.
1990년대 초기 한국 예술영화 시장에서 많은 인기를 끌었던 거장 감독으로 지금도 두터운 팬층을 자랑한다. 스탠리 큐브릭, 박찬욱 외 다수 감독들과 비평가들이 팬이라고 밝혔을 정도로 권위 있는 감독이다. 키에슬로프스키 본인은 영국의 거장 켄 로치 감독을 존경한다고 말했다.
정은임의 FM 영화음악에 출연한 정성일 평론가 키에슬로프스키 이야기 (28분 34초 지점부터 시작) #
3. 필모그래피
1. 첫사랑 (Pierwsza milosc, 1974)2. 상처 (Blizna, 1976)
3. 퍼스넬 (TV) (Personel, 1976)
4. 카메라광 (Amator, 1979)
5. 폭풍 전의 고요 (TV) (Spokój, 1980)
6. 블라인드 챈스 (Przypadek, 1981)
7. 어느 짧은 근무일 (Short Working Day, 1981)
8. 노 엔드 (Bez konca, 1984)
9. 데칼로그 (TV) (Dekalog, 1988)
10.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Krótki film o milosci, 1988)
11. 살인에 관한 짧은 필름 (Krótki film o zabijaniu, 1988) 칸 영화제 국제비평가상
12. 베로니카의 이중생활 (La Double vie de Veronique, 1991) 칸 영화제 여주주연상/ 국제비평가상
13. 세 가지 색: 블루 (Trois Couleurs: Bleu, 1993) 베니스 영화제 최우수 작품상/ 여우 주연상
14. 세 가지 색: 화이트 (Trzy kolory: Bialy, 1994) (이상 각본, 감독) 베를린 영화제 감독상
15. 세 가지 색: 레드 (Trois couleurs: Rouge, 1994) 칸 본선 초청작
16. 헤븐 (Heaven, 2002) (각본)
17. 랑페르 ((L'enfer, 2005) (각본)
[1]
성당 생활에 충실한 신자는 아니었지만, 개인적 신앙은 무척 깊었다고 한다.
[2]
20세기 말엽을 대표하는 다른 거장으로는
압바스 키아로스타미가 있다.
[3]
원제는 베로니카의 두가지 삶, 잘못된 제목의 예
[4]
거장
루이 말 감독의 〈굿바이 칠드런〉에서 조연이었던, 그녀를 감독이 눈여겨 보고, 캐스팅 했다고 한다.
[5]
비포 선라이즈, 비포 선셋, 비포 미드나잇으로 알려진, 프랑스 명배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