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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0 00:12:14

증국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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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고(淸史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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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386a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25%"
{{{#!folding [ 본기(本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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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386a
1권 「태조기(太祖紀)」 2·3권 「태종기(太宗紀)」 4·5권 「세조기(世祖紀)」
애신각라 노이합적 애신각라 황태극 애신각라 복림
6·7·8권 「성조기(聖祖紀)」 9권 세종기(世宗紀)」 10·11·12·13·14·15권 「고종기(高宗紀)」
애신각라 현엽 애신각라 윤진 애신각라 홍력
16권 「인종기(仁宗紀)」 17·18·19권 선종기(宣宗紀)」 20권 「문종기(文宗紀)」
애신각라 옹염 애신각라 민녕 애신각라 혁저
21·22권 「목종기(穆宗紀)」 23·24권 덕종기(德宗紀)」 20권 「선통제기(宣統帝紀)」
애신각라 재순 애신각라 재첨 애신각라 부의
214권 「후비전(后妃傳)」
효정경황후 · 정강귀비 · 각순귀비 · 효각민황후 · 액이덕특씨
※ 26권 ~ 160권은 志에 해당. 161권 ~ 213권은 表에 해당. 청사고 문서 참고
}}}}}}}}}}}}
[ 열전(列傳) ]
||<-6><tablebgcolor=#fecd21><tablewidth=100%> 215·216·217·218·219·220·221권 「제왕전(諸王傳)」 ||
애신각라 예돈 · 애신각라 액이곤 · 애신각라 재감 · 애신각라 탑찰편고 · 애신각라 막이합제 · 애신각라 서이합제 · 애신각라 아이합제 · 애신각라 파아랍 · 애신각라 저영 · 애신각라 대선 · 애신각라 아배 · 애신각라 탕고대 · 애신각라 망이고태 · 애신각라 탑배 · 애신각라 아파태 · 애신각라 파포태 · 애신각라 덕격류 · 애신각라 파포해 · 애신각라 아제격 · 애신각라 뇌모포 · 애신각라 다이곤 · 애신각라 다탁 · 애신각라 비양과 · 애신각라 호격 · 애신각라 엽포서 · 애신각라 석새 · 애신각라 고새 · 애신각라 상서 · 애신각라 도새 · 애신각라 박목박과이 · 애신각라 복전 · 영친왕 · 애신각라 상녕 · 애신각라 융희 · 애신각라 윤제 · 애신각라 윤잉 · 애신각라 윤지 · 애신각라 윤기 · 애신각라 윤우 · 애신각라 윤사 · 애신각라 윤당 · 애신각라 윤아 · 애신각라 윤도 · 애신각라 윤상 · 애신각라 윤제 · 애신각라 윤파 · 애신각라 윤례 · 애신각라 윤의 · 애신각라 윤희 · 애신각라 윤호 · 애신각라 윤기 · 애신각라 윤비 · 애신각라 홍주 · 애신각라 홍휘 · 애신각라 영황 · 애신각라 영련 · 애신각라 영장 · 애신각라 영기(永琪) · 애신각라 영종 · 애신각라 영선 · 애신각라 영성 · 애신각라 영기(永璂) · 애신각라 영성 · 애신각라 영린 · 애신각라 면개 · 애신각라 면흔 · 애신각라 면유 · 애신각라 혁위 · 애신각라 혁강 · 애신각라 혁계 · 애신각라 혁흔 · 애신각라 혁환 · 애신각라 혁합 · 애신각라 혁혜 · 민군왕
222권 「아합출등전(阿哈出等傳)」
아합출 , 석가노 맹가불화 이만주 완자독 맹가첩목아 범찰 동산 탈라 탈원보 불화투, · 왕고 , 왕올당,
223권 「만등전(萬等傳)」
, 호이간 맹가포록 대산 오이고대, · 청길노 · 양길노 , 납림포록 금태석 포한 포양고 포이항고, 포점태 · 배음달리
224권 「장황언등전(張煌言等傳)」 225권 「액역도등전(額亦都等傳)」
장황언 , 나륜 장명진 왕익, · 정성공 , 정금 정극장 정극상 정극거, · 이정국 액역도 · 비영동 , 삭해 왜흑, · 하화례 , 다적례 화석례 도류, · 안비양고 · 호이한
238권 「장혁덕등전(蔣赫德等傳)」
장혁덕 · 액색혁 · 차극 · 파합나 · 송권 · 부이점 · 여궁 · 성극공 · 김지준 · 왕영길 · 당숭아
247권 「팽이술등전(彭而述等傳)」
팽이술 · 육진분 · 요연저 · 필진희 · 방국동 · 우붕거 · 왕천감 · 조정표
250권 「이위등전(李霨等傳)」
이위 · 손정전 · 두입덕 · 풍부 · 왕희 · 오정치 · 황기 · 송덕선 · 이상아 · 아란태 · 서원문
251권 「도해등전(圖海等傳)」 252권 「감문혼등전(甘文焜等傳)」
마가도해 · 이지방 감문혼 · 범승모 · 마웅진 · 부홍열
253권 「막락등전(莫洛等傳)」
막락 · 진복 · 왕지정 · 비아달 · 이흥원 · 진계태 · 진단적 · 마비 · 엽앙류
255권 「장용등전(張勇等傳)」
장용 · 조양동 · 왕진보 · 손사극
256권 「채육영등전(蔡毓榮等傳)」
채육영 · 합점 · 항애 · 화선 · 동위국 · 동국정 · 주유덕 · 장덕지 · 윤벽 · 왕계문
257권 「조국조등전(趙國祚等傳)」
조국조 · 허정 · 주구 · 서치도 · 호세영 · 당희순 · 이린 · 조응규 · 조뢰 · 이방술 · 진세개 · 허점수
261권 「양첩등전(楊捷等傳)」
양첩 · 석조성 · 만정색 · 오영 · 감리 · 황오 · 방태 · 목혁림 · 단응거
262권 「위예개전(魏裔介等傳)」 263권 「왕홍조전(王弘祚等傳)」
위예개 · 웅사리 · 이광지 왕홍조 · 요문연 · 위상추 · 주지필 · 조신교
264권 「학유눌등전(郝維訥等傳)」 265권 「탕빈등전(湯斌等傳)」
학유눌 · 임극부 · 유홍유 · 유건 · 주배 · 장정추 탕빈 · 손지욱 · 육롱기 · 장백행
266권 「엽방애전(葉方藹等傳)」 267권 「장옥서등전(張玉書等傳)」
엽방애 · 심전 · 여두눌 · 서원공 · 허삼례 · 왕사정 · 한담 · 탕우증 장옥서 · 이천복 · 오전 · 장영 · 진정경 · 온달 · 소영조 · 숭축 · 왕서령
268권 「미사한등전(米思翰等傳)」 269권 「색액도등전(索額圖等傳)」
미사한 · 고팔대 · 마이한 · 전육선 · 두진 · 살목하 색액도 · 명주 , 여국주 불륜,
270권 「학욕등전(郝浴等傳)」 271권 「서건학등전(徐乾學等傳)」 272권 「탕약망등전(湯若望等傳)」
학욕 · 양소온 · 곽수 서건학 , 옹숙원, · 왕홍서 · 고사기 탕약망 · 양광선 · 남회인
273권 「이솔태등전(李率泰等傳)」
이솔태 · 조정신 · 낭정좌 · 동봉채 · 마륵길 · 시유한
304권 「장조등전(張照等傳)」
장조 · 감여래 · 진덕화 · 왕안국 · 유오룡 · 양여곡 · 장태개 · 양석불 · 팽계풍 · 손희렴 · 몽린
305권 「전진군등전(錢陳群等傳)」
전진군 · 심덕잠 · 김덕영 · 전재 · 제소남 · 진조윤 · 동방달 · 전유성 · 추일계 · 사용 · 왕창
306권 「조사일등전(曹一士等傳)」 307권 「위위곽전(魏韋郭傳)」
조사일 · 이신수 · 호정 · 중영단 · 시조생 · 저인지 윤계선 · 유우의 · 진대수 · 장윤수 · 진굉모
308권 「나소도등전(那蘇圖等傳)」
나소도 · 왕초증 · 서사림 · 윤회일 · 왕서 · 방현 · 풍광유 · 양석불 · 반사구 · 호보전 · 왕창
318권 「아계전(阿桂傳)」 319권 「우민중등전(于敏中等傳)」
장가아계 우민중 · 뉴호록 화신 · 소릉아
322권 「두광내등전(竇光鼐等傳)」 323권 「황정계등전(黃廷桂等傳)」
두광내 · 이수방 · 범의빈 · 조석보 · 사진정 · 전풍 · 윤장도 황정계 · 악미달 · 양정장 · 장유공 · 이시요 · 오미태 · 관보
324권 「방관승등전(方觀承等傳)」
방관승 · 부찰부명안 · 주원리 · 이한 · 이세걸 · 원수동 · 정대진 · 유아 · 육요 · 관간정 · 장조규 · 호계당
325권 「이청시등전(李淸時等傳)」 326권 「개태등전(開泰等傳)」
이청시 · 요입덕 · 이굉 · 하위 · 오사작 · 살재 · 난제석 · 한횡 개태 · 아이태 · 계림 · 원푸
340권 「왕걸등전(王傑等傳)」 341권 「경규등전(慶桂等傳)」
왕걸 · 동고 · 주규 경규 · 유관지 · 대구형 · 대균원 · 탁진 · 장후 · 노음부
342권 「보녕등전(保寧等傳)」 343권 「서린등전(書麟等傳)」
보녕 · 송균 · 배탄 · 박계특 서린 · 각라길경 · 각라장린 · 비순 · 장백령 · 백린
344권 「늑보등전(勒保等傳)」 345권 「영보등전(永保等傳)」
늑보 · 액륵등보 , 호시현, · 덕릉태 영보 · 혜령 · 의면 · 영선 · 복녕 · 경안 · 태승은
386권 「문경등전(文慶等傳)」 387권 「숙순등전(肅順等傳)」 388권 「계량등전(桂良等傳)」
문경 · 문상 · 보윤 숙순 · 목음 · 초우영 계량 · 서린 · 관문 · 문욱
389권 「백준등전(柏俊等傳)」 390권 「가정등전(賈楨等傳)」 391권 「왜인등전(倭仁等傳)」
백준 · 인괴 · 서상 · 전경 가정 · 주조배 · 주봉표 · 단무겸 왜인 · 이당계 · 오정동
392권 「새상아등전(賽尙阿等傳)」 393권 「이성원등전(李星沅等傳)」 394권 「서광진등전(徐廣縉等傳)」
새상아 · 눌이경액 이성원 · 주천작 · 노숭광 서광진 · 엽명침 · 황종한
395권 「상대순등전(常大淳等傳)」
상대순 , 쌍복 왕금수 왕수동, · 장문경 · 도은배 , 다산, · 길이항아 · 나준전 · 서유임 · 왕유령
396권 「오문용전(吳文鎔等傳)」 397권 「육건영등전(陸建瀛等傳)」
오문용 · 반탁 · 등이항 육건영 · 양정문 · 청린 · 숭륜 · 하계청
399권 「여현기등전(呂賢基等傳)」
여현기 · 추명학 · 대희 · 장비 · 황종 · 도정걸 · 풍배원 · 손명은 · 심병원 · 장석경
400권 「하계진등전(何桂珍等傳)」 401권 「상영등전(向榮等傳)」
하계진 · 서풍옥 · 온소원 · 김광저 · 이맹군 · 조경현 상영 · 화춘 · 장국량
402권 「오란태등전(烏蘭泰等傳)」
오란태 · 등소량 · 주천수 · 요문선 · 문서 · 팽사거 · 장옥량 · 노점오 · 유계삼 · 서쌍래 · 구등룡 · 왕국재 · 호곤원 · 대문영
403권 「승보등전(勝保等傳)」 404권 「승격림심등전(僧格林沁等傳)」
승보 · 탁명아 · 진금수 · 덕흥아 승격림심 · 서통액 · 항령 · 소극금 · 하건오 · 전순 · 사영춘 · 악선
405권 「증국번전(曾國籓傳)」 406권 「낙병장등전(駱秉章等傳)」 407권 「강충원등전(江忠源等傳)」
증국번 낙병장 · 호림익 강충원 · 나택남
408권 「이속빈등전(李續賓等傳)」 409권 「탑제포등전(塔齊布等傳)」
이속빈 · 정예의 · 증국화 · 이속의 · 왕진 · 유등홍 · 장익풍 탑제포 · 필금과 · 다융아 · 포초, 송국영 누운경 담등달, · 당인겸 · 유송산
410권 「팽옥린등전(彭玉麟等傳)」 411권 「이홍장전(李鴻章傳)」
팽옥린 · 양악빈 · 왕명산 · 손창개 · 양명해 · 사준여 이홍장
412권 「좌종당전(左宗棠傳)」 413권 「증국전등전(曾國荃等傳)」
좌종당 증국전 · 심보정 · 유곤일
414권 「이신전등전(李臣典等傳)」
이신전 · 소부사 · 이원길 · 유연첩 · 팽육귤 · 장시일 · 오유수 · 주남계 · 나봉원 · 이상화 · 소경연 · 오종국
415권 「황익승등전(黃翼升等傳)」
황익승 · 정의방 · 왕길 · 오가방 · 이성모 · 이조빈 · 강복산 · 유배원
416권 「정학계등전(程學啟等傳)」
정학계 · 하안태 · 정국괴 · 유명전 · 장수산 · 주성파 · 주성전 · 반정신 · 오장경
418권 「원갑삼등전(袁甲三等傳)」 419권 「낙병장등전(左宗棠傳)」 420권 「한초등전(韓超等傳)」
원갑삼 · 모창희 유장우 · 유악소 · 잠육영 한초 · 전흥서 · 증벽광 · 석보전
421권 「심조림등전(沈兆霖等傳)」
심조림 · 조육영 · 허내보 · 조광 · 주준 · 이함 · 장상하 · 나돈연 · 정돈근 · 방종로
422권 「왕무음등전(王茂廕等傳)」
왕무음 · 송진 · 원희조 · 문서 · 육록 · 서계여 · 왕발규 · 염조윤 · 뇌이함 · 도양 · 오존의 · 은조용
423권 「종직진등전(宗稷辰等傳)」 424권 「오진역등전(吳振棫等傳)」
종직진 · 윤경운 · 왕증 · 목집향아 · 유백천 오진역 · 장량기 · 모홍빈 · 장개숭
425권 「이혜등전(李僡等傳)」 426권 「왕경운등전(王慶雲等傳)」
이혜 · 오당 · 영한 · 유용 · 교송년 · 전정명 · 오원병 왕경운 · 담정양 · 마신이 · 이종희 · 서종간 · 왕개태 · 곽백음
451권 「이조의등전(李朝儀等傳)」
이조의 · 단기 · 정수창 · 증기봉 · 저유립 · 서철산 · 계중행 · 유함방 · 진횡거 · 유지개 · 이용청 · 이금용 · 김복증 , 웅기영 사복가, · 동조용
452권 「홍여규등전(洪汝奎等傳)」
홍여규 · 양종렴 · 사박 · 사극관 · 심보정 · 주기앙 , 주기조, · 종원한 · 서경장 · 서진 · 괴광전 · 진휼성 · 반민표 · 엄작림 · 당석진 · 누춘번
457권 「장동재등전(蔣東才等傳)」
장동재 · 이남화 · 동리고 · 동전승 · 우사한 · 조덕경 · 마복진 · 정문병 · 방요 · 등안방
458권 「서연욱등전(徐延旭等傳)」
서연욱 · 당형 · 하경 · 장조동
459권 「풍자재등전(馮子材等傳)」
풍자재 · 왕효기 · 진가 · 장종한 · 소원춘 · 마성치 · 왕덕방 · 장춘발 · 소득룡 · 마유기 · 오영안 · 손개화 · 소득승 · 장고원 · 구양이견
460권 「좌보귀등전(左寶貴等傳)」 461권 「송경등전(宋慶等傳)」
좌보귀 · 원영산 · 등세창 · 유보첨 · 대종건 송경 · 여본원 · 서방도 · 마옥곤 · 의극당아 · 장순
462권 「정여창등전(丁汝昌等傳)」 463권 「당경숭등전(唐景崧等傳)」
정여창 · 위여귀 · 엽지초 당경숭 · 유영복
464권 「이단분등전(李端棻等傳)」
이단분 · 서치정 · 진보함 · 황준헌 · 증화 · 양심수 · 양예 · 유광제 · 담사동 · 임욱 · 강광인
465권 「서동등전(徐桐等傳)」 466권 「서용의등전(徐用儀等傳)」
서동 · 강의 · 조서교 · 고아랍계수 · 하영년 · 희탑랍유록 · 육현 서용의 · 허경징 · 원창 · 토묵특입산 · 최가연원
471권 「성선회등전(盛宣懷等傳)」 472권 「육윤상등전(陸潤庠等傳)」
성선회 · 서징 육윤상 · 세속 · 이극탄 · 양정분 · 서방 · 노내선 · 심증식
473권 「장훈등전(張勳等傳)」 474권 「오삼계등전(吳三桂等傳)」 475권 「홍수전전(洪秀全傳)」
장훈 · 강유위 오삼계 · 경정충 · 상지신 · 손연령 홍수전
476·477·478·479권 「순리전(循吏傳)」
백등명 , 탕가상 임진단 우종요, · 송필달 · 육재신 · 장목 , 장훈(張塤), · 진여함 · 목수 , 진시림, · 요문섭 , 황정린, · 낙종린 , 최종태 조진조, · 조길사 · 장근 · 강고 , 장극억 가박, · 소사요 , 위입정 고음작 근양, · 최화 · 주중횡 · 유계 · 도원순 · 요기형 · 동국롱 · 육사 · 공감 · 진덕영 · 예복전 · 장림 · 염요희 · 남정원 · 엽신 · 시초정 · 진경문 · 주인룡 · 동화 · 이위 · 사중훈 · 이대본 · 우운진 · 장견도 · 소대업 · 주극개 , 정기 강기연 언여사 주제화, · 왕휘조 , 여돈화 주휴도, · 유대신 · 오환채 · 기대규 · 소희증 · 장길안 , 이육창, · 공경한 · 개방필 · 사소등 · 이갱예 · 이병수 · 적상경 · 장돈인 · 정돈윤 · 이문경 · 유체중 , 유후, · 장기 , 석가소, · 유형 , 서동, · 요간지 · 오균 · 왕조겸 · 조근 · 계초만 · 장작남 · 운무기 · 서대영 · 우수매 · 하왈유 · 오응연 · 유병림 , 진숭지 하자령 소세본, · 이병도 , 유주 주근인 추종준 왕무훈, · 괴덕모 · 임달천 · 방대제 · 진호 · 양영서 · 임계 · 왕인복 · 주광제 · 냉정형 · 손보전 · 가소경 · 도관준 · 진문불 · 이소 · 장해 · 왕인감
480·481·482·483권 「유림전(儒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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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4·485·486권 「문원전(文苑傳)」
487·488·499·490·491·492·493·494·495·496권 「충의전(忠義傳)」
497·498·499권 「효의전(孝義傳)」
주용순 · 오번창 오겸목 · 주정 · 적요 · 이경염 · 왕호 · 황농 · 조형 · 황가장 · 정명윤 · 유종수 · 하복한 · 허계각
500·501권 「유일전(遺逸傳)」
502·503·504·505권 「예술전(藝術傳)」
506 · 507권 「주인전(疇人傳)」
설봉조 · 공사연 · 왕석천 · 방중통 · 매문정 · 명안도 · 유상규 · 왕문계 · 주홍 · 박계 · 허여란 · 이황 · 왕래 · 진걸 · 시왈순 · 이예 · 낙등봉 · 항명달 · 정취충 · 사가화 · 오가선 · 나사림 · 고관광 · 좌잠 · 증기홍 · 하란상 · 추백기 · 이선란 · 화형방
508·509·510·511권 「열녀전(列女傳)」
518·519·520·521·522·523·524·525권 「번부전(藩部傳)」
526·527·528·529권 「속국전(屬國傳)」
조선 · 유구 · 월남 · 면전 · 섬라 · 남장 · 소록 · 구르카 · 호한 · 보노특 · 합살극 · 안집연 · 마이갈랑 · 나목간 · 탑십간 · 바다흐샨 · 박라이 · 아부한 · 감거시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fecd21><tablebgcolor=#fecd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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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colbgcolor=white,#2d2f34>증국번(曾國藩)[1]
본명 증자성(曾子城, Céngzǐchéng, 쩡즈청)
자 / 호 백함(伯函) / 척생(滌生)
출생 1811년 11월 26일
청나라 호남성 장사부 상향현
(現 중국 후난성 샹탄시 샹샹시)
사망 1872년 3월 12일 (향년 60세)
청나라 강소성 남경
시호 문정(文正)
군사 경력 군복무: 청나라
복무기간: 1853년 ~ 1872년
소속: 상군
참전: 태평천국의 난, 염군의 난, 톈진 교안
역임 지위 양강총독 1860년 ~ 1868년, 1870년 ~ 1872년
직례총독 1868년 ~ 1870년

1. 개요2. 생애3.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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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청나라 말기의 정치가이자 군인, 학자이다. 호남성( 후난성) 출신이다.

태평천국의 난을 진압한 의병대장이며, 같은 호남성 출신 의병대장인 좌종당, 그리고 자신의 제자인 이홍장등과 함께 양무운동을 추진했다.

' 중국'번이 아니라 '증'국번이다.

2. 생애

1811년 11월 26일 호남성 장사부 상향현(湘鄕縣)[2]의 부농 집안에서 아버지 죽정공(竹亭公) 증육제(曾毓濟, 1790 ~ 1857)와 어머니 증강씨(曾江氏, 1785 ~ 1852) 사이에서 5남 4녀 중 장남, 둘째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 머리가 너무 안 좋았다고 한다. 한 일화로, 밤을 새서 한 문장을 외우고 있었는데 도둑이 공부하던 증국번 때문에 숨어 있었다가 밤을 새도 한 문장을 외우지 못하는 증국번이 답답해서 뺨을 때리고 그런 머리로 공부하지 말라고 소리치고 나왔다. 그러나 증국번은 열심히 공부해 여러 단계를 통과하는 과거시험을 모두 통과하고 진사[3]에 임용되었다. 조선의 과거도 어렵다고 정평이 나 있었지만, 청나라는 그보다 인구가 20배가 넘게 많기 때문에 대단한 학식이 없으면 이렇게 과거에 급제하기가 어려웠다.

이후 과거급제자의 경력코스이자 일종의 관립 학술기관인 한림원[4]에서 일하면서 자신의 학문을 좀 더 갈고 닦았다. 이때 성리학에 대한 여러편의 논문을 남겼는데, 이 글들은 학문적으로 상당히 가치가 있는 것들이다. 그리하여 후의 캉유웨이와 함께 공양학의 시조로 평가받고 있다. 이렇게 증국번은 학자로서도 무시 못할 업적을 남겼다.

이후 예부 우시랑에 제수되었으나, 1849년 모친이 별세하자 3년상을 지내려 고향에 돌아갔다.

2.1. 태평천국의 난

3년상을 지내는 도중, 1850년에 봉기한 태평천국이 세력을 뻗어 강남을 휩쓸게 되자, 그의 능력을 눈여겨 보았던 함풍제의 어명을 받고 곧 고향에서 의병을 모집하게 되었다. 이때 제자인 이홍장뿐만 아니라 호남성에서 초야에 묻혀있던 좌종당을 발탁하여 지휘관으로 삼았다.

그가 모집한 의병은 상군(湘軍)이라고 하는데, 상(湘)은 호남성을 가리키는 말이므로, 호남군이라는 이야기도 된다. 그리하여 영어권 자료에서는 Hunan army라고도 표기 된다. 어쨌든 그는 한족에게 군권을 주는 것을 꺼리는 만주족 고위 관리의 견제를 받으면서도, 태평군을 상대로 맞서싸운 공로로 양강총독 겸 강남 지역 군 통솔권을 가진 흠차대신에 임명되어 태평천국 토벌을 이끌게 된다. 이들의 일부는 이후 상계군벌로 이어졌다.

또한 그는 제자인 이홍장에게 안휘성으로 가서 회군(淮軍)을 조직하도록 했다. 회(淮) 또한 안휘성을 지칭하는 한자이다. 어쨌든 상군과 회군은 거의 쓸모 없어진 청나라의 관군인 팔기군 녹영군 대신 태평천국의 토벌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고, 태평천국의 본거지인 남경을 함락하였다. 이후 대륙에서 일어난 반(反) (淸) 운동인 염군(捻軍)의 토벌에도 큰 공을 세웠다.

증국번은 태평천국을 진압하여 구(舊) 질서를 회복시키려고 했지만, 단순한 수구파는 아니었고, 세금을 덜고 탐관오리를 척결하여 민생의 어려움을 개선하려는 등, 정치의 쇄신을 적극 주장했다. 즉, 증국번은 타락한 수구가 아닌 온건 보수인 셈이다. 이 때문에 이후 천하를 두고 건곤일척의 대결을 벌였던 장제스 마오쩌둥조차도 모두 증국번을 존경했다고 한다. 특히 마오쩌둥에게는 동향 선배이자 롤모델이었다.

2.2. 말년

태평천국이 진압된 후, 구(舊) 질서 하에서 서양의 기술을 도입하여 체제를 강화하려는 양무운동을 적극 추진하였다. 그리하여 동치제 중후반에는 청나라는 어느 정도 안정기에 접어들고, 이를 "동치중흥"이라고 한다.[15] 한편 증국번의 상군(湘軍)과 회군(淮軍)은 이홍장이 건설한 북양군(北洋軍)의 주축이 되며, 북양군의 지휘관들은 신해혁명 후에 민국 초반을 주름잡는 군벌이 된다. 북양군의 해군인 북양함대는 나중에 동아시아 최대의 함대가 된다. 물론 청나라가 신해혁명으로 인해 중화민국에 망하게 된 뒤 북양함대뿐 아니라 북양군 자체도 쇠락해졌지만 말이다.

증국번은 몰락한 팔기군을 대신하여 청나라에서 가장 강력한 무장집단이었던 상군(湘軍)과 회군(淮軍)을 실질적으로 지휘할 수 있었고, 이렇게 군권을 쥐고 있었기 때문에 주변 한족 부하들에게 황제위에 오르라는 부추김을 많이 받았다. 실제로 당시 청 조정의 실권은 이미 증국번을 위시한 한족 세력에 넘어가 있었다. 증국번이 태평전쟁 진압을 지휘하면서 발탁한 각 성의 순무 총독[16]으로 있었던 터라 이들의 반란 가담은 최소한 양쯔강 이남 지방에 한해서 한족 왕조가 세워질 가능성이 충분했다. 허나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청조의 충신으로 남았다. 비유하자면 본인이 가진 군사력으로 청조를 좌지우지할 수 있었지만, 위나라를 건국한 조비 대신 제갈공명의 길을 걸어서 끝까지 청조의 충직한 신하로 남았다.

사실 아무리 부하 총독들이 가담한다 한들 거의 다 군벌화가 완료된 상태이기에 언제든지 배신하고 청에 붙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또한 거사의 기반이 될 강남 지역은 오랜 전란으로 황폐해졌고 향용의 학살 행위 때문에 민심은 바닥을 찍어 이런 상태에서 거병을 한다면 삼번의 난 시즌 2를 찍을 판이었다. 더욱이 베이징에서 제2차 아편전쟁을 치르던 서양 세력들이 남쪽에선 청을 도와 태평천국과 싸우는 것을 본 증국번으로써는 도저히 성공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또한 본인이 유교경전을 뼈속까지 공부해야 급제할 수 있는 과거를 통과해 올라온 정통 성리학자였고, 청조에 반기를 드는 것이 본인의 신념에 어긋나기 때문일 수도 있고 처음부터 제갈량처럼 야심이 없었을 수도 있다.

1872년 양강총독 재직중 홍수전의 이전 거처인 남경에서 사망하였다. 1870년에 양강총독으로 갓 부임한 마신이가 장문상의 칼에 찔려 죽는 사건이 생기고 마신이가 죽은 뒤의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증국번이 양강총독으로 재부임하여 사건을 마무리한다. 살인자인 장문상은 능지형을 받고 죽게 되었으나 민심은 어수선했다. 양강총독 마신이 살해 사건은 자마(刺馬) 사건이라 부르며 청나라 말기의 미스테리한 사건으로 남게 되었고 여러 편의 영화[17]로도 만들어진다. 직예총독의 자리에서 양강총독으로 자리를 옮기며 급히 마신이 사건을 수습한 증국번은 1872년에 사망하고 만다.

3. 여담

태평천국의 공격으로부터 청나라를 구해낸 명장이고 대국을 보는 안목이나 전략적 능력에서 당대 중국 제일의 군략가인데도 불구하고 그가 직접 전투를 지휘하면 반드시 진다는 희한한 징크스를 가진 인물이다. 전투를 지휘할 때의 상대가 태평천국을 대표하는 명장 석달개 이수성이었다보니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 징크스는 본인도 대단히 신경쓰였는지 태평천국의 난 최후의 전투라고 할 수 있는 남경 공략전에는 자신이 지휘를 맡지 않고 셋째 남동생 증국전(曾國荃)이 총지휘를 맡게 된다.

증국번과 그의 동생 증국전, 그리고 호남인으로 주축이 된 상군(湘軍)은 반란 진압 후에 가담여부를 불문하고 현지 주민을 처형하는 청나라의 전통에 근거하여, 태평천국의 난 진압 후 포로[18]들을 모두 처형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 수는 20~30만에 달한다고 추정되고 있으며[19], 그리하여 현재도 남경의 호남성 출신에 대한 인식은 100년후 비슷한 규모의 학살을 저지른 일본만큼이나 나쁘다. 다만 호남성은 호남성대로 400년전 남경을 근거지로 삼은 주원장군이 진주하면서 진우량군을 소탕한다는 명분으로 수만명이 학살당한 원한이 있기 때문에( 홍무도상), 그랬다는 설도 있다.

증자의 70세손(69대손)이다.

차남 증기택(曾紀澤[병음], 1839 ~ 1890)은 아버지의 후광으로 청나라의 고위 외교관으로 일했다. 영국, 프랑스, 러시아, 일본의 공사를 역임하였고, 야쿱 벡의 난의 와중에서 러시아와의 일리 조약을 개정하여 잃었던 영토를 조금 찾아오기도 했다. 증기택은 불평등 조약의 개선에 힘썼지만 이 당시의 청나라는 이미 서양 열강의 반식민지로 전락한 상태였기 때문에 그다지 효과는 없었다.

매운 음식을 좋아했다고 하는데, 전속 요리사가 은퇴하면서 후임 요리사에게 "매운 고춧가루만 뿌리면 어떤 음식이든 좋아하시니 고춧가루만 준비하면 된다."고 당부했다는 기록이 있다.[21][22]


[1] 간체자로는 曾国藩(Zēng Guófān) [2] 중화인민공화국 후난성 샹탄시 샹샹시(湘鄕市). [3] 조선의 진사와는 사회적 지위가 다르다. 조선에서 진사는 향시에 합격한 대과응시자격이 있는 사람을 의미하지만 명나라, 청나라 시대의 진사는 중국 전체에서 수십명 안에 드는 수재 중에 수재였다. 즉, 조선과 비교하자면 조선의 진사와 달리 한 단계 시험(회시)을 더 통과해서 임금 앞에서 최종 순위를 가리는 전시에 올라있는 급이라고 봐야한다. 또한 중국의 진사는 일개 성을 대표하는 급의 수재였으며 벼슬에 임용되지 않더라도 진사라는 신분 자체로 지방 행정에 관여할 수 있었다. [4] 조선으로 치면 집현전이나 규장각 정도의 위치이다. [5] 헝양시 [6] 황강시 황저우구 두청진 [7] 현 황저우구 [8] 다만 호북순무(湖北巡撫) 숭륜의 책임이 컸다. 오문용을 견제한 나머지, 군수물자도 지원 안 해주고 핍박해 강제로 나가게 했다. [9] 어저우시 [10] 웨양시 샹인현 [11] 우한시 한양구 [12] 창사시 왕청구 징강진 [13] 샹탄시 [14] 중국어: 陶佳 塔齊布, Táojiā Tǎqíbù, 도가 탑제포 [15] 물론 양무운동의 성과는 청불전쟁 청일전쟁 이후 쇠락했고, 청나라는 더 막장화되지만... [16] 주로 남중국 지역 [17] 자마, 명장(영화) [18] 태평천국군도 포함되었지만 실제로는 상당수가 양민들 [19] 태평천국의 수도 천경의 인구가 100만이었는데, 전란 이후 인구 조사에서 50만으로 줄어든 것에 근거. [병음] Céngjìzé, 쩡지저 [21] 출처: 공자의 식탁, 장징 저, 박해순 역, 뿌리와이파리 [22] 호남성 사람들의 특징이다. 동향인인 마오쩌둥도 매끼니 식탁에 고추를 놓을 정도로 매운 음식을 좋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