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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23 15:12:47

점감요격작전

<colcolor=#FFF><colbgcolor=#2743d2> 해군 전략
해군의 목표 제해권
해군력의 운용 현존 함대 | 통상 파괴 | 함대결전 | 기지 타격
상세 사례 진입차단·지역거부 | 점감 요격 | 해상 봉쇄


1. 개요2. 배경3. 과정4. 장점
4.1. 적의 전력감소4.2. 지속적인 공격4.3. 주 전장의 이동
5. 단점
5.1. 해상에선 어디로든 갈 수 있다5.2. 미국이 방어태세를 취할 경우
5.2.1. 완전방어시5.2.2. 전력 집중후 공격
5.3. 미국이 다른 루트를 택할 경우
5.3.1. 북태평양 루트5.3.2. 중부태평양 북측 루트5.3.3. 남태평양 루트
5.4. 점감요격작전을 발동하는 경우
5.4.1. 미군이 계속 진격할까5.4.2. 미국이 진격 전에 길닦기를 한다5.4.3. 무리한 전력감소 목표5.4.4. 전력 배치 및 운용의 문제점5.4.5. 무기의 문제점5.4.6. 준비의 문제점
5.5. 일본군 해군만의 작전5.6. 전력차와 생산량 차를 고려하지 않은 작전5.7. 전장의 차이
6. 결과7. 영향과 평가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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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인 개념도.)

漸減邀撃作戦.

제1차 세계 대전 종전 후, 태평양 전쟁이 터질 때까지 일본군 해군 미합중국 해군을 대상으로 방어적인 함대결전사상에 기반을 두고 만든 작전이다. 단어 순서를 바꿔서 요격점감(邀撃漸減)이라고도 부른다.

쉽게 요약하자면 중부태평양 남측 루트로 진격하는 미 해군의 주력함대를 맞이해서 순차적인 요격작전을 진행하여 전력을 깎은 다음(점감. 漸減), 약해진 적 함대와 함대결전을 벌여서(요격. 邀撃), 승리한다는 전략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적부대의 체력을 지속적으로 깎은 다음 함대결전으로 박살낸다는 소리다, 사실상 넓게보면 함대결전의 준비라고 볼 수 있다.

오늘날 중국이 아태 지역에서 미국의 제해권에 도전하기 위해 구상, 발전시키고 있는 A2·AD(반(反)접근/지역거부) 전략의 이론적인 모태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일본이 미국을 이길 방법'을 생각하고 생각한 끝에 몰두한 결과, 현실성 없는 탁상공론이 되어버린 전술이다. 사실 당시 일본 장교들도 시대의 변화에 맞추어 이 작전을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할 필요성을 느꼈으나 경직된 일본군 체제 안에서는 그마저도 녹록지 않았다.

2. 배경

러일전쟁에서 쓰시마 해전의 승리로 인해 전쟁을 승리로 끝낸 일본 제국은 차후의 전쟁에서도 이런 방식으로 해전을 이길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이러한 믿음은 일본이 생각하기에 충실한 함대전력을 갖출 수 없다는 것으로 강화되었다. 처음에는 국내 경제력의 한계로, 나중에는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 런던 해군 군축조약으로 해군전력이 제한을 받았기 때문에 조약에 따른 일본 해군의 전력은 미국의 60% 정도였으므로 정면승부는 곤란하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1920년대부터 점감요격작전의 기초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는데, 이 때의 함대결전 장소는 오키나와나 일본 본토 부근이었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전투중 항공모함의 함재기나 전함의 주포탄이 주변 지역에 심각한 피해를 줄 수도 있다는 의견이 개진되었으므로 점점 함대결전의 장소를 일본 본토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옮기기 시작했고, 1940년에는 오가사와라 제도 북마리아나 제도를 최종 전장으로 설정하였다.

3. 과정

점감요격작전은 크게 아래의 5단계로 구성된다. 그리고 각 단계에 투입된 전력은 전투 후에도 아직 전투가 가능하다면 야간전에서의 함재기처럼 전장 여건상 투입이 불가능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가급적이면 다른 공격에도 참여한다. 이 사항에서 예외가 되는 것은 전함으로 구성된 주력함대뿐이다.
  1. 잠수함으로 구성된 잠수함대와 갑표적을 투입해 뇌격을 실시한다. 이들은 첫 공격 이후 과정에도 협동하여 적 함대를 최대한 공격한다. 일본 해군은 적어도 이들이 출격한 미 함대 전력의 10%이상을 제거하기를 원했다.
  2. 일본 위임통치령에 소재하는 해군항공기지 항공대와 항공모함 함재기로 항공공격을 실시한다. 이 때 주 목표는 적 항모부대이며, 적의 항공력을 깎아내 항공 엄호를 제거한다. 일본군 해군은 적어도 이들의 공격이 출격한 미 함대 전력 10% 이상을 제거하기를 원했다.
  3. 야간에 공고급 순양전함 중순양함, 경순양함, 구축함으로 구성된 수뢰전대를 투입해서 야간전을 벌인다. 공고급 순양전함과 중순양함은 적 호위함대를 제압해 통로를 열고, 경순양함과 구축함이 이 통로로 침입해 적 주력함에 뇌격을 날린다.
  4. 오가사와라 제도 북마리아나 제도 근방에서 이를 뚫고 온 미 해군 주력함대를 상대로 전함전대가 함대결전을 벌인다.
  5. 함대결전 후 퇴각하는 미국의 잔존 함대를 추격하여 전과를 확대한다.

이상의 과정을 거치면 미 해군은 태평양측의 가용전력을 사실상 상실하고, 적어도 미국의 함대 재건 전까지는 일본의 연합함대가 태평양 서쪽을 지배할 것이며, 휴전 협상의 가능성도 있을 것이라고 일본군 수뇌부는 판단했다.

4. 장점

엄청나게 비판받는 작전이었지만 장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점감요격작전이 비판받는 것은 현실성이 없기 때문이지, 이론적인 장점이 없었다면 애초에 수십년이나 연구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4.1. 적의 전력감소

아군보다 아득히 우월한 적 병력을 상대로 보조전력과 항공력을 포함한 다양한 수단을 동원하여 최대한 적의 전력을 감소시킨다는 생각 자체는 지극히 합리적이다. 애초부터 열세한 전력을 가지고 있다면 적 사정에 맞춰주는 꼴이 되는 무모한 회전(會戰)을 지양하고 소모를 강요하는 작전이 효율적이기에 발상 자체는 좋다.

4.2. 지속적인 공격

점감요격작전에서 설명한 공격계획은 밤낮의 구분 없이 지속적으로 적을 공격한다는 구상이다. 주야 구분 없는 지속적인 공격 자체는 매우 좋은 생각이다.

전투가 끝나면 휴식과 정비와 보급을 가지며 전투력을 회복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상대방이 오랜 시간 지속적인 소모를 강요한다면 아무리 공격의 규모가 크지 않아도 점점 전투력이 낮아진다. 따라서 갈수록 공격의 효율이 더 올라간다. 당장 사보섬 해전 당시에도 미 해군 장병들이 이틀 동안이나 전군경계령을 내려 스트레스와 피로가 극심한 탓에 경계 해제 직후 너나할 것 없이 곯아떨어졌으며, 일본 해군이 야밤에 이들 근처를 대놓고 지나다녀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

4.3. 주 전장의 이동

대규모 전투가 발생하게 되면 전투도중이나 전투 후 소탕전에서 주변 지역이 황폐화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결전장이 일본 본토에서 가까울수록 피해가 커지기에 본토에서 적절한 거리가 있는 곳을 주 전장으로 삼는 것이 좋다.

이런 점에서 일본이 최종적으로 선정한 주전장 지역인 오가사와라 제도나 북마리아나 제도 지역은 중요 지역인 일본 본토로부터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데다가, 피해를 입더라도 그렇게 큰 손해를 보는 곳은 아니었으므로 적절한 선택이었다.

5. 단점

점감요격작전의 본질은 아군지역에 진입한 대규모 적군을 상대로 한 접근거부 소모전 강요에 있다. 그러나, 이 합리적인 두 전략이 효력을 잃은 것에는 두 가지의 이유가 있다.

5.1. 해상에선 어디로든 갈 수 있다

우선 점감요격작전은 미국과 일본간에 전쟁이 터지는 즉시 미 해군은 전력을 모아서 진격하고, 일본 해군은 그걸 맞받아친다는 방어적인 이론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러나 만일 미국이 처음부터 방어적으로 나오거나, 아군의 전력배치가 늦어진다면 이 전략의 기본 가정은 크게 흔들리게 된다. 그 이유는 이 작전에서 미국은 병력 우위를 기반으로 공격자의 위치에 서므로 공격할 장소과 시기를 미국이 원하는 대로 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해상은 육지에 비해 움직일 수 있는 물리적 공간이 넓으므로 색적 및 추적의 의존도가 더욱 크다.

즉 일본의 작전계획은 지나치게 방어적이므로 미국의 작전 장소와 시기를 특정할 수 없다면 효과가 불분명하다. 군사작전은 상대가 할 수 있는 움직임을 상정하고 계획하는 것이 기본적이니 이러한 단점이 생기는 건 당연했다.

이러한 전략적 오류의 핵심은 일본의 전력과 작전이론의 열세에서 기인한다고 봐야한다.

5.2. 미국이 방어태세를 취할 경우

실제로는 필리핀, , 웨이크섬 등지에 있는 미군을 구원해야 했고, 당시의 미 해군은 스스로의 전력이 일본보다 높다고 생각했으므로 미국이 이런 전략을 채택할 가능성은 적었다. 하지만 괌은 아예 전쟁이 터지면 잃어버릴 곳으로 선정하고 1938년에 나온 헵번 보고서의 내용을 수용하나 괌의 방어태세 점검을 게을리하고, 필리핀은 바탄반도에서 6개월 이상 버틴다고 결정난 상황에 웨이크섬도 방어태세 점검이 늦었기에 위 세 지역을 손실할 수 있다는 판단을 미국이 이미 내린데다, 설령 해당 지역들을 모조리 상실해도 미국이 함대결전으로 승부를 본다면 조기 종결의 가능성이 있기에 일본의 입장에서는 이런 경우도 대비할 필요가 있었다.

5.2.1. 완전방어시

미국이 해군 전력을 하와이에 있는 진주만에 모으기는 하지만 일본 해군의 연합함대가 하와이 근방까지 진격하면 이걸 요격해서 박살낸다는 전략을 취하거나, 미국의 국력이 전시생산으로 완전히 돌입해서 무기와 장비가 쏟아질 때까지 공세를 늦출 경우를 말한다. 일본은 이미 1937년부터 중일전쟁을 치르고 있었고 자원 소모가 심해 절대적으로 불리했다. 반면 미국은 진주만 공습 이전까지는 유럽 서부전선에 크게 개입하지 않았고 공업생산량에선 세계 1위였기에 전력을 충분히 키울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미군은 이를 뒤엎고 전초부터 전력이 유의미하게 증강될 때까지의 시간을 벌기 위해 방어적인 성격으로 적극적인 공세를 펼쳤다. 하지만 이런 공세는 보통 외곽지역의 전선들을 타격하고 후퇴하는 히트 앤드 런이나 변죽을 울리는 식의 작전이기 때문에 일본 본토쪽으로 깊숙하게 들어가지 않는데다가 원래 점감요격작전은 일본의 작전지역으로 깊숙하게 공세해오는 미 함대를 최대한 끌어와서 확실하게 괴멸하는 것이었기에 위에 언급한 방어적인 성격의 적극적인 공세에서는 발동이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미국이 방어 태세로만 나오면 점감요격작전은 무효가 된다. 따라서 일본이 할 수 있는 대응도 보통 아래의 몇 가지로 제한된다.

5.2.2. 전력 집중후 공격

미국도 일본에 대비해서 나름대로 전쟁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진주만 공습 당시의 상황을 생각해본다면 그 준비가 일본에 비해 크게 미흡했던 것은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 함대가 일본을 향해 진격하려면 그 전에 전력을 집중하고 무기와 장비를 수리, 보급, 확충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한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나 어느 정도 선까지 전력이 충족되는 것을 보고 출격할 지는 모두 미국 마음대로다.

이럴 경우 일본은 다가올 미국의 공격에 대비해서 전력의 대부분을 특정 지역에 집중한 채로 유지해야 하는데, 언제 미국이 준비를 마치고 공격할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당연하게도 남방작전 따위는 실행이 불가능하거나, 몇 척 안되는 보조함과 몇십 기 안되는 항공기라는 엉성한 지원아래서 진행해야 하며, 실패할 확률이 무지막지하게 높아진다. 그렇다고 남방작전에 전력을 집중했다가 미국이 공격해온다면 앞서 설명했듯이 진퇴양난으로 망한다.

5.3. 미국이 다른 루트를 택할 경우

여기서는 일본의 의향대로 미국이 가급적 빨리 공세에 돌입해서 미 함대가 전진을 시작했다는 것을 전제조건으로 삼는다.

일단 미국이 공격한다고 생각하더라도 일본이 바라는대로 진격로를 중부태평양 남측 루트로 정해준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미국은 앞서 말했듯이 공격자의 입장이기 때문에 진격로도 제멋대로 정할 수 있다.

미국이 선택가능한 진격로는 북태평양 루트, 중부태평양 북측 루트, 중부태평양 남측 루트, 남태평양 루트로 정리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중 한가지 루트를 선택하더라도 나머지 루트에 대한 견제용 공격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몰락 작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본토의 막강한 생산력을 이용해 조공의 규모가 주공의 규모가 되는 미친 상황을 만들어 낼 수 있던 세력 또한 미군이었다. 단지 그러기에 시간이 조금 부족했을 뿐이다.

5.3.1. 북태평양 루트

하와이 알류샨 열도 쿠릴 열도 홋카이도로 이어지는 루트다. 좀 더 간단하게 이해하려면 일본 해군이 진주만 공습을 하기 위해 사용한 항로를 거꾸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보면 된다. 이 루트를 탈 경우 일본군은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떠안게 된다. 그나마 북태평양 루트는 일본 본토긴 하지만 중요성이 떨어지는 홋카이도 정도만 주로 피해를 입기 때문에 미국의 주전력이 상대하기에는 가치가 떨어지는 지역이고 겨울에는 매우 추운 곳이라 미군이 이 쪽을 택할 가능성은 많이 떨어진다. 하지만 미군이 일본군의 전력분산을 목표로 해서 견제공격을 가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분산되는 전력이 많아질수록 일본 해군의 패배가능성은 더 높아진다. 왜냐면 일본군의 전략이 어떻든 간에 미군은 '보조전력'이 일본군 주력 정도는 되게 편성할 능력이 되었기 때문이다.

5.3.2. 중부태평양 북측 루트

하와이 도쿄 직진 루트다. 일본군도 상당한 위험성이 있다고 느낀 루트이며, 실제 역사상으로도 둘리틀 특공대의 기습으로 현실화되었고, 이 루트를 차단할 목적 + 미국 항공모함 함대의 궤멸을 위해 미드웨이 해전이 일어났다. 이 경우 일본군 해군이 떠안는 문제점은 매우 크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적당한 중간거점 없이 항공모함의 함재기만 믿고 상당한 방어력과 항공력을 비롯한 주요 전력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적의 수도를 직접 공격하는 부담감이 있다. 그래서 아군 전력이 압도적으로 우세하다는 판단이 없다면 굳이 이 루트를 처음부터 택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이 일본에게 그나마 유리한 점이다. 다만 이런 상황에서도 견제공격이나 조공이 이쪽 루트를 택할 가능성은 둘리툴 특공대를 보더라도 거의 확정적이기 때문에 일본군 해군의 골머리가 더 아파진다.

5.3.3. 남태평양 루트

하와이 오스트레일리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루트다. 좀 더 쉽게 이해하려면 일본 위임통치령을 우회해서 호주로 간 다음에 동남아시아 방면으로 진격하는 것이다. 얼핏 보기에는 쓸데없이 먼 길 돌아가는 것 같지만 이 역시 일본 해군에게 여러가지 골치아픈 문제를 떠안겨줄 수 있다.
그나마 연합군은 다국적으로 함대가 구성되므로 의사소통이나 통일된 움직임이 어렵기 때문에 겉으로 드러난 전력보다는 약점을 보이게 되며, 싱가포르라는 거대한 보급 및 수리거점이 있긴 하지만 본거지에서 멀리 떨어진 연합군 해군이 전력을 장기간 유지하기 곤란하다는 점을 일본이 위안삼을 수는 있다. 그러나 이것도 재빨리 남방작전에서 승리해서 석유 등을 얻어놨어야지 그나마 일본군에게 유리해진다는 점에서 그냥 위안거리일 뿐이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좀 멀리 돌아가고, 하와이와 미국 본토 서해안의 방어가 일시적으로 약화되긴 하지만 일본군에게 함락당할 위험성이 큰 지역 중 가장 많은 미군이 있는 필리핀을 구원하기도 용이하며 일본군의 아킬레스건 중 하나인 석유를 일본군 손에 들어가지 못하게 방해하는 일이 충분히 가능한데다 영국과 네덜란드, 호주, 뉴질랜드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기까지 하므로 이 루트는 의외로 좋은 점이 많다.

여기에 더해서 미국의 주력 함대가 다른 루트로 가더라도 이 쪽에 대한 구원을 무시할 수 없기에 약간의 전력을 보내서 일본군의 남방작전을 방해하거나, 최악의 경우에는 연합군의 후퇴를 엄호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조공이나 견제작전이 들어가는 것은 확정적이다.

5.4. 점감요격작전을 발동하는 경우

여기서는 일본의 의향대로 미국이 가급적 빨리 공세에 돌입해서 미 함대가 전진을 시작한 것도 모자라서 일본이 원하는 대로 하와이 → 일본 위임통치령 → 오가사와라 제도나 북마리아나 제도라는 중부태평양 남측 루트를 선택했다고 가정한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일본에게 유리한 가정을 전개하더라도 점감요격작전이 일본 뜻대로 돌아갈 가능성은 적다.

5.4.1. 미군이 계속 진격할까

점감요격작전은 미 함대가 지속적인 손해를 입으면서도 끝까지 의지를 잃지 않고 전진해서 일본 연합함대의 주력과 정면충돌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미군을 아무런 생각이 없는 몹으로 본 어이없는 생각이다.

5.4.2. 미국이 진격 전에 길닦기를 한다

"미군이 계속 진격할까" 단락에서는 전제조건으로 미군이 가급적 빨리 함대결전을 하기 위해 주변 따위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조건이 암묵적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실제로 미군이 이런 길을 택할 가능성은 적다.

그 이유는 미군도 함대결전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서 적 제공권 아래에서 싸우려 하지 않고 적을 유리한 위치에서 끌어내려고 시도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본격적인 진격 전에 우선 진격로에 깔린 적부터 어느 정도 정리할 가능성도 많다.

이럴 경우 첫 교전을 담당하는 제1 스테이지의 잠수함과 갑표적, 항공전을 담당하는 제2 스테이지의 해군육상항공대와 항공모함의 함재기가 소모전에 말려들어가서 지속적인 손해를 보기 때문에 정작 미군의 주력함대가 돌진을 시작할 때는 점감요격작전을 수행할 수 없을 정도로 전력이 약화될 가능성이 많다. 그렇다고 보조함대등에 대응을 안 할수도 없는데, 대응하지 않고 피하거나 내버려두면 해상에는 미군용 안전통행로가 열려버리며 순식간에 일본 위임통치령중 방어병력이 적거나 없는 곳을 점령한 후 진지와 비행장을 건설해서 든든한 거점을 확립해버리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서 미국이 양동작전으로 다른 루트까지 건드리기 시작하면 일본은 점감요격작전을 하려다가 소모전에 깊숙하게 더 말려들게 된다.

5.4.3. 무리한 전력감소 목표

점감요격작전이 성공하려면 각 스테이지별로 적의 전력을 반드시 어느 정도 깎아야 한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적의 전력을 별로 줄여놓지 못한다면 점감요격은 성공했는데 함대결전에서 패배하는 어이없는 결말로 이어진다.

하지만 이를 위해 일본군이 설정한 스테이지별 목표가 실행부대 입장에서는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잠수함대와 갑표적에게 부여된 목표는 미 해군 함대 전력의 10%다. 속도가 느리고 공격방식도 사실상 어뢰로 뇌격하는 것만 쓸 수 있는 잠수함대와 갑표적에게 부여된 짐이 너무 큰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좀 나지만 역시 미 해군 함대 전력의 10%를 깎아야 하며, 항공모함 함대에게 대타격을 줘서 항공기로 엄호하는 것을 제거하는 해군기지 육상항공대와 항공모함 함재기도 마찬가지의 입장이다.

설상가상으로 해당 목표를 달성하거나 심지어는 선전하여 초과 달성을 하더라도 오히려 미국 함대가 예상보다 빨리 후퇴하므로 초기부터 작전이 파토나는 부작용까지 있다는 것이다. 잠수함과 갑표적의 공격으로 함대 전력의 10%가 날아갈 정도면 미군 입장에서는 이미 작전은 망한 셈이므로 그냥 후퇴가 정답인 셈인데, 하다못해 윗선에서 압박을 넣어서 억지로 진격을 지속하더라도 항공전에서 추가로 함대 전력의 10%가 날아가고 제공권 상실은 물론이거니와 항공모함 함대가 큰 손상을 입어서 함대 위에 엄호기를 올릴 처지도 못 되는 상황까지 몰릴 경우라면 그냥 누구나 도주하는 길을 택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진격을 외치는 것은 일본군 중 정신력을 강조하면서 의지드립이나 하는 꼴통들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제대로 된 타격을 주지 못하면 적의 전력이 별로 줄어들지 않으니 역시 망하므로 진퇴양난에 놓이게 되며, 다음 스테이지에 부담을 주고 실패확률을 높인다. 예를 들어서 잠수함전과 항공전에서 어느 정도 미국 함대의 전력을 깎지 못하면 야간전을 담당하는 수뢰전대는 진짜로 전멸을 각오해야 하는 상황에 몰리게 되며, 새벽이 되어 수뢰전대가 전투를 끝내고 탈출하더라도 남아있는 미국 항공모함 부대 함재기의 추격에 혼쭐이 나는 것을 피하지 못한다.

종합하자면 너무 때려도 안되고, 그렇다고 덜 때려도 안되고, 위에서 세운 목표대로 때리면 적이 도주하고,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위에서 갈굼이 내려온다. 한마디로 총체적 난국이다.

5.4.4. 전력 배치 및 운용의 문제점

점감요격작전이 제대로 진행되려면 미 함대의 진격루트를 제대로 파악하고 미리 함대들을 배치한 다음에 현장 정보를 빠르게 습득해서 적절한 명령을 통해 공격이 효율적으로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보통 적에게 각개격파나 당하거나 잘 해봐야 전략적으로는 별 소용이 없는 개인적인 무공쌓기로 끝난다. 이를 위해서는 관측 및 탐지장비, 통신장비가 필요하며 아군의 정보를 적에게 누설하지 않기 위한 암호체계도 필요하다. 그러나 일본군은 이 중 어떤 것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일단 관측 및 탐지장비는 견시를 통한 육안관측이나 정찰기, 망원경등의 광학장비를 사용했다. 이들 장비는 맑고 시계가 넓은 낮시간때는 유용했지만, 야간이나 악천후를 만나면 무용지물이 되거나, 근거리에서만 사용이 가능해진다는 부작용이 있다. 이를 해결해줄 레이더는 일본군은 태평양 전쟁 중반에서야 도입하기 시작했으며 그나마 성능도 미군의 그것보다 크게 딸렸다.[2]

통신장비는 더 심각한데, 기초적인 무전기 자체의 수량도 적고 성능이 영 좋지 않았다. 특히 제로센같은 항공기에 장착하는 무전기는 그냥 고철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였다. 덕분에 정찰기가 목표를 발견하더라도 즉시 보고하기 힘들어져서 효율이 급감했다. 그나마 쓸만한 건 함선에 장착된 무전기 정도가 전부였다.

마지막으로 암호체계도 문제가 많았다. 이미 개전 전부터 미국이 일본 암호를 해독하는 상황이었으며 이에 맞춰 암호변경을 몇 번 해봐도 금방 미국에게 뚫려버렸다. 이러니 애써서 무전을 암호화해서 보내봤자 미국에게 감청당하면서 정보를 적에게 전달해주는 역효과만 가져왔다.

이런 이유로 인해 일본군은 실전에서는 일단 미국 함대의 진로를 파악하는 것부터가 어려웠고 미리 부대를 배치한 후에 변경하는 작업도 매우 어렵거나 불가능했으며, 전투시에도 지휘가 어렵고 혼란이 발생하기 쉽다는 약점을 가지게 되었다. 아무리 잘 해봐야 일본군이 원하는 성과를 달성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5.4.5. 무기의 문제점

점감요격작전에서 상정한 상황을 제대로 만들려면 각 부대가 보유한 무기가 그에 맞게 정상적으로 동작해야 한다. 하지만 장기간 준비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군 해군의 장비에는 종종 결함이 있었다.

갑표적의 경우에는 잔잔한 내해에서도 통나무 카누처럼 흔들리는데다가, 어뢰를 발사하면 1발당 1톤 가까운 부력이 발생하면서 수면 위로 갑표적이 튀어나올 정도[3]라서 이미 원양에서 점감요격작전을 하기에는 부적합하다는 판정이 나온지 오래였다. 결국 실전에서는 다른 잠수정이 하는 것처럼 적 항구에 은밀하게 잠입해서 뇌격을 하고 사라지는 습격작전용으로 사용되었으며, 실제로 점감요격작전에 사용했으면 별로 성과도 없이 인명손실만 생길 가능성이 높았다.

일본군의 잠수함은 잠항가능심도가 너무 얕고, 긴급잠수속도가 느린 경우가 많아서 대잠장비를 가진 함선에게 쉽게 밥이 되는 문제점이 있었다. 따라서 계획과는 달리 점감요격작전의 제1 스테이지에서 성과를 올리는 대신 피해도 막대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계획과는 달리 이후 스테이지에서 사용하는 것도 기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일본군 해군의 항공기들은 항속거리 증대를 위해서 연료탱크가 날개까지 증설되었으며, 제로센 같은 경우에는 전투기로서의 성능을 부족한 출력으로 달성해야 했기에 내구성까지 크게 줄였다. 따라서 이들 항공기는 사소한 피탄에 불덩어리가 되거나 추락하기 쉽기 때문에 공격시 조종사가 엄청난 능력이 있는 엘리트급이 아니라면 인명손실 및 기체손실이 상당해지는데, 따라서 제2 스테이지 자체는 제대로 수행하겠지만, 높은 손실률로 인해 이후의 공격을 제대로 지원하기 곤란해진다.

이런 이유로 인해 성능이 부족한 장비를 들고 전투에 임해야 하는 인원들의 부담감이 커지게 되며 성과도 낮아지게 된다.

5.4.6. 준비의 문제점

점감요격작전은 기본적으로 적 함대가 아군 영역쪽으로 깊숙히 들어온다는 가정을 하며 이를 축차적으로 깎아낸 후 함대결전을 한다는 방식으로 돌아간다.

여기서 암묵적으로 감수하는 것이 있다. 최전방 기지는 초토화될 것이며 중간에 투입될 병력은 손해를 많이 입을 것이라는 점이다. 덤으로 전투가 아군 영역 안에서 벌어지므로 항속거리를 많이 잡을 필요도 없다.

이에 따라 일본 본토에서 떨어진 일본군 기지들은 당장 전투에 필요한 준비만 갖춘다. 비행장이나 해안포, 벙커같은 것은 필수적으로 최대한 많이 보유하지만 수리시설, 보급시설같은 것은 별로 건설하지 않는다. 어차피 미국 함대에게 소모품처럼 박살날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서 일본 해군의 함정들도 몇몇 경우를 빼고는 태평양 한가운데에서 쓰기에는 항속거리를 좀 줄이는 경향이 있었다. 어차피 일본 근처에서 전투할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렇게 너무 특화를 한 나머지 진주만 공습이나 남방작전같은 진격전시 각종 어려움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항속거리가 짧으니까 연료 드럼통을 추가로 갑판에 적재해서 적의 공격을 딱 한 발만 맞아도 불타기 딱 좋게 만든더던지, 최전방 기지에 도착했으나 수리시설이나 보급시설이 없거나 빈약해서 안그래도 모자란 유조선이나 공작함이 붙박이로 머물러서 함대를 지원한다던지, 뭔가 본격적인 수리가 필요하거나 부품이 모자라면 일본 본토까지 멀리 항해길을 떠나고 다시 최전방으로 돌아오는 시간낭비 겸 연료낭비를 한더던지 하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심지어 이건 점감요격작전을 방금 성공시켰을 경우에도 적용된다. 방금 함대결전해서 아군 피해도 막대한데 도주하는 적 잔여함대를 확실하게 마무리짓기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설령 기적적으로 함대결전에서 일본의 피해가 없다시피 하더라도 항속거리가 짧아서 추격을 조금하다가 멈추게 된다던지, 간신히 최전방 기지에 도착했더니 보급이고 수리고 불가능해서 거기서 그냥 머무르게 된다던지, 도주하는 적 함대를 가로막을 아군 전력을 쉽게 배치하지도 증원하지도 못해서 쉽게 저지선이 뚫려서 적을 놓쳐버린다던지 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이런 결과가 발생할 수록 점감요격작전의 효과는 크게 떨어지게 된다.

5.5. 일본군 해군만의 작전

점감요격작전을 살펴보면 일본군 해군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육상비행장용 장거리 대형 쌍발폭격기인 G4M같은 물건이 존재한다. 이런 물건이 존재하는 이유는 장거리에서 적 함대에 대한 폭격이나 뇌격을 가하기 위함인데 부족한 기술력과 공업력의 문제로 폭격기 무적론의 한계를 증명하는 결과만 된 것.

미 해군 또한 지상기지에서 운용하는 대형 항공기를 운용했었고 냉전기 소련 해군, 공군도 대함임무에 투입하기 위해서 중폭격기를 운용한 사례는 있지만 전략폭격이나 대규모 폭격은 충분한 전투기 전력으로 제공권을 확보한 상황에서만 제대로 실행될 수 있다. 일본의 경우는 항공기술력/공업력의 부족으로 미국의 폭격기를 요격할 국지전투기 전력 자체가 빈약했던 것이고 영국과 동급의 강대국이었던 독일의 전투기를 상대로 연합국의 폭격기도 적지 않은 피해를 냈다.

일본 해군이 이런 폭격기를 직접 개발한 이유는 2가지를 들 수 있다. 우선 일본군의 육해군 대립에서 보듯이 일본군 육군과 일본군 해군의 관계가 매우 좋지 않았다. 따라서 해군 입장에서는 일본군 육군에게 머리를 조아리면서 점감요격작전에 참가하기를 요청하기도 싫고 한다고 하더라도 육군이 협조하지 않으면 안된다. 두번째로 일본군 육군은 중폭격기에 대한 생각이 일본군 해군과는 약간 달라서 항속거리가 일본군 해군이 생각하는 것만큼 많이 나오지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상당히 비합리적인 상황임은 부정할 수 없다.

미군이 태평양 전쟁에서 실제로 실행한 작전에서는 당연히 미 육군과 미 해군의 항공전력이 골고루 사용되었으며,[4] 미 해병대의 항공전력도 같이 사용되었고, 심지어 긴급한 경우에는 핸더슨 비행장처럼 각 군에서 온 항공전력이 통합운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전력중에는 B-17 중(重)폭격기처럼 함선 공격에는 영 아닌 물건도 많았지만,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기술을 연마한 끝에 육군 항공대도 비스마르크해 해전에서 폭탄 물수제비 튀기기로 불리는 반도폭격으로 훌륭하게 적 선박을 공격가능했던 것이다.

이런 점을 생각해 보면 일본군 육군의 항공전력이 성에 차지 않더라도 일본군 해군이 참가를 부탁하고, 실제 전투에 들어갈 인원들을 적극적으로 훈련시키고 정보를 공유하게 해서 쓸만한 전력으로 만드는 것이 정상이다. 그렇게 될 경우 굳이 자원을 소모하고 인원을 투입하면서까지 G4M같은 비행기를 필요 이상 대량생산할 필요가 없이 육군 항공대가 공격하지 못하는 거리의 목표만 공격할 수준으로 생산량을 줄이거나 아예 육군에서 운용하는 항공기를 자기들이 원하는 항속거리를 뽑을 수 있도록 개량한 모델을 만드는것으로 해결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일본군 육군항공대가 정식으로 참가함에 따라서 미 해군과 제공권 싸움을 벌일 일본 해군항공대의 부담도 크게 줄어든다. 사실 2차대전 중반기 이후 일육군이 폭격기무적론의 한계를 체험하고 전투기 위주로 전력을 재정비하고 있던 마당이니 해군 또한 그렇게 하면 더 합리적이다.

결국 자원도 부족하고 모아놓은 전력도 모자란 상황에서 육군과 해군까지 따로 놀았으니 비효율성이 당연히 높아질 수 밖에 없고, 안그래도 엄청나게 낮은 수준인 미국에 승리할 가능성을 아예 바닥을 치게 만들어놓은 것이다. "전쟁은 해군 혼자 하는게 아니다"는 간단한 사실을 무시한 결과다.

5.6. 전력차와 생산량 차를 고려하지 않은 작전

말이 점감요격작전이지, 결국 기본은 다방면에서 상대를 계속해서 공격해 잔출혈을 조금씩 조금씩 쌓아 그것을 큰 피해로 만들고, 그렇게 피해가 누적된 상대의 본진을 밀어버린다는 작전이다. 어떻게 보면 게릴라 전법과 상통하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그것도 상대를 잘 봐가면서 해야 효과가 있다. 전투를 하게 되면 적만 일방적으로 팰 수는 없고 당연히 아군의 손실도 생긴다. 비록 아군이 압도적으로 이긴다 가정해도 탄약, 연료, 생필품 등의 자원, 그리고 병사들의 사기와 같은 정신적 자원 또한 계속해서 소모된다. 이렇게 되면 방어전이라는 차이만 있지 공세종말점이 온 거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게릴라 전법에서 '현지인과의 동화 및 현지인의 게릴라 합류'를 중시하는 것이다. 제대로만 된다면 정부군은 꾸준히 손해가 생기는 반면 게릴라 세력은 오히려 병사가 늘어나고 게릴라에 동조하는 현지 주민들이 정부에 소극적, 반항적 태도를 보이게 되면서 정부군의 세력이 급감하기 때문이다.[5]

하지만 점감요격작전은 기본적으로 남방작전등과 맞물려 '침략자 일본군에게 극도로 적대적인' 지역에서 행해지게 되므로 당연히 현지인의 동조 따위는 바랄 수가 없기에 이를 무마하기 위한 비전투적 소모까지 떠안게 된다. 반면 미군은 '해방군'이 되므로 현지인의 협력을 받거나 적어도 적대적인 인식을 받지는 않게 된다. 즉 득보다 실이 훨씬 컸다.

설상가상으로 위의 요소가 없다고 쳐도 장기전으로 갈수록 일본군이 더 큰 손실을 입을 것은 당연히 예측가능하다. 이미 일본의 인구 자체가 식민지 전체를 포함해도 미국의 인구보다 적었으며, 공업생산량 또한 처참한 수준이었다. 인구는 미국의 절반수준, GDP는 미국의 1/5~1/7 수준이었으며, 제철량만 보더라도 미국의 1/10에 불과하였다. 자원수급의 용이성은 말할 것도 없다. 당장 일본은 석유가 없어서 미국을 공격했다. 일본의 기본적인 국력 자체는 프랑스와 비슷한 수준은 되었지만[6] 세계 최고의 부국이자 산업대국인 미국을 상대하기엔 너무나 턱없이 부족했다.

일본에겐 애석하게도 미군은 한참 전에 이러한 소모전의 논리와 "없는 자"의 점감요격작전의 한계를 꿰뚫고 있었다. 남북 전쟁 당시만 봐도 로버트 E. 리의 남군이 화려한 전술과 전력교환비, 기동전략으로 율리시스 S. 그랜트의 북군을 농락했지만 북군은 압도적인 생산량에 기반해 남군이 쉬거나 보충하지 못하도록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고 그 와중에 윌리엄 테쿰세 셔먼이 후방 초토화작전을 벌이면서 남군은 결국 패했다. 기본적으로 일본군의 점감요격작전도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그리고 애초에 미국은 소모전으로 독립을 이루어내고 강적들을 물리치며 초강대국으로 성장한 나라이다. 상대를 너무 잘못 골랐다.[7]

점감요격작전이 혹여 효과를 발휘해도 미군이 압도적인 물량을 통해 함대결전을 할 주력을 구성하고 강력한 보조전력을 구성해 단호한 공세를 벌여 점감요격작전에 사용되기 위해 분산된 일본군에게 지속적인 손실을 강요한다면 일본은 함대결전을 위해 계속 점감요격작전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이미 점감요격작전에 사용될 병력이 제 구실을 못하기 때문이다. 일본은 자신들의 상대가 미국이라는 것부터 우선적으로 감안해야 했던 셈이다.

그나마 독일처럼 프랑스를 삽시간에 병합하고 할 수 있었다면 상황은 더 나았겠지만 애당초 독일과 프랑스는 육지로 연결되어 있었다. 일본해군이 바다로만 이어진 미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은 없었거나 매우 적었을 것이며 실제로도 태평양 전쟁에서 섬이 아닌 미국 본토에 일본군이 상륙한 전적 자체가 없다.[8] 상대 본토 타격도 못하고 상대의 생산력을 줄일 시도는 더더욱 꿈도 못 꾸는 상황이었으니 백번 양보해서 점감요격작전이 성공해 봐야 일본군은 조만간 패망의 길로 빠져들 운명이었다.

점감요격작전을 리그 오브 레전드로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1. 적이 한타 뛰러 달려온다.
  2. 암살자 챔프로 원딜이나 서포터 등 물몸을 암살한다.
  3. 적을 잘라먹은 상황에서 5:4, 5:3 한타를 열어서 이긴다.
  4. 승리한다.
일단 이론상으로 방어전이라면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애당초 1명이 짤려서 전력이 불리하다면 적이 정상인이라면 한타를 포기하고 물러난다. 즉 2가 성공한 시점에서 3은 성립될 가능성이 적다. 혹은 성립하더라도 요격당하는걸 감안하고 더 많은 물량으로 한타를 뛰러올 것이다.

물론 적의 한타를 분쇄한 것만으로도 시간을 끌 수 있지만, 문제는 상대가 미국이다. 시간이 지나면 쇼미더머니의 미군은 물량을 쫙쫙 뽑아내니 1초가 흐를 때마다 일본의 승률은 쭉쭉 낮아진다. 즉 일본이 미국과 승리하려면 최소한 하와이를 점령하고 우주방어를 펼치든, 태평양의 광활한 바다에서 미군과 대등할 정도의 숫자로 잠수함이나 육상항공기 등으로 우주방어를 펼치며 무한 잘라먹기를 해야 한다. 당연히 중일전쟁 양면전쟁 상황에선 싸우면 안 되고, 되도 않는 함대결전사상 따위는 때려치워야 했다.

게다가 이런 전략도 미국이 먼저 선제공격을 하고 일본이 방어하는 상황에만 적용된다. 더럽고 아니꼬워도 숙여주면서 때리는 놈이 지칠 때까지 버티면 미국의 납세자들이 선거로 미국 정부를 응징하므로 전쟁이 일본의 의향을 조금이라도 반영하는 식으로 간신히 끝날 가능성이라도 눈꼽만큼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진주만 공습으로 제대로 된 선전포고 없이 기습선빵을 때려서 미국 시민여론에 찬전주의를 퍼뜨린 순간... 너는 이미 죽어 있다.

5.7. 전장의 차이

물론 점감요격작전에도 장점은 있으므로 어느 정도 판도가 받쳐준다면 완전히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일본이 점감요격작전과 함대결전에 집착하게 된 계기인 쓰시마 해전이다. 쓰시마 해전에서 러시아 해군은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는 것이 목표였고 그곳으로 향하는 루트는 복잡한 해안선 때문에 단 세 개밖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모항에서 지구 반 바퀴를 돌아오는 바람에 태평양에는 거점이 블라디보스토크밖에 없었던 러시아 해군에게 보급선이라는 것이 생겨버렸다.

따라서 이 점감요격작전이 만약 복잡한 해안선 때문에 항로가 매우 제한되어 있고, 적의 보급 거점이 전무하여 운반선을 통해 주기적으로 연료를 보급해야 한다는 가정 하에서는 들어맞을 수도 있다. 제한된 항로 때문에 마치 지상전에서처럼 함대가 선을 위주로 움직이게 되고 이걸 중간에 잘라먹을 수 있다면 적은 궤멸적인 타격을 입을 것이다. 게다가 러시아 해군은 태평양에 보급거점이 전무해서 굳이 함대결전을 시도하지 않고 점감요격작전을 통해 적의 석탄공급만 끊어도 함대는 바다 위에서 고철덩이가 되어버린다. 이 문제점 및 장기간 항해에 따른 함선 정비, 장병 휴식 등 수많은 보급적 요소를 고려해서 러시아의 발트 함대가 최단루트인 대한해협을 택했고 여기서 함대결전을 벌여 승리한 결과가 바로 러일전쟁이다. 자세한 사항은 쓰시마 해전 참조.

문제는 태평양 전쟁은 이와는 정 반대의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해안선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압도적인 크기의 태평양 한복판에서 제법 많은 보급거점을 가지고 싸우는 미군에게 이 전략이 통할 이유가 없었다. 러일전쟁에서 이런 전략이 통한 이유는 러시아 해군이 블라디보스토크까지 가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항로가 대한해협, 쓰가루 해협, 소오야 해협밖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지상에서의 게릴라전처럼 이 셋중에 하나를 선택해 잘라먹기만 하면 되었다. 그리고 연료가 다 떨어지기 전에 블라디보스토크로 도착하거나, 아니면 적과의 결전을 벌여야 했던 러시아군 특수성 때문에 적에게 어느 정도 해전을 강제할 이유도 충분했다. 이 때는 러시아군이 먼저 공격하지 않으면 연료와 탄약을 수급하기 어려워 자멸하는 상황이었으니 러시아군이 움직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태평양 한복판에는 해협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지형이란 게 존재하지 않고 광할한 바다만 펼쳐져 있으니 택할 수 있는 항로가 무수히 많아진 것이다. 지상전으로 치자면 태평양은 지평선이 탁 트인 광할한 평원과 같아서 애초에 점감요격작전 같은 게릴라전은 고려 대상이 될 수 없었다. 그리고 미군이 러시아군과는 달리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었다는 점도 요인 중 하나다. 태평양 전쟁에서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유리한 쪽은 오히려 보급선이 튼튼하고 생산력이 막강한 미국이었다. 긴 보급선 때문에 시간을 끌면 고생할 게 뻔한 러시아군과는 완전히 다른 상황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6. 결과

이렇듯 기본적인 전제부터가 잘못된 작전이어서, 쇼와 2년(1927) 사실상 점감요격작전의 주요 발안자 중 하나였던 스에츠구 노부마사(末次 信正, 해군 소장, 당시 군령부 작전부장)는 해군대학교 강의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일본 해군의 전통적 대미 결전 구상에는 하나의 전제가 있다. 그것은 '어딘가 한 군데로 결정되어 한정된 지역에서 이쪽이 예상하고 있는 대로 적이 진공해 온다'라는 점이다. 실전의 경우, 이쪽의 주문대로 적 함대가 와 준다고 생각해도 좋을까. 혹시 그렇지 않은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을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자, 결전이 된다. 그 때의 상황을 생각해 보자. 넓은 태평양에서 적을 찾기 위해서는, 함대를 분산시켜야만 한다. 이 때 적은 거의 집중된 형태로 돌격해 오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한다면 이 적을 공격해서 격침파해 계속 숫자를 줄여나가기 위해서는 아군은 산개선으로 흩어져 있는 상태에서 전속력으로 집결해야만 한다. 그런데 적은 최초부터 집결해 있다. 그 적에게 붙잡히면 숫자에 밀려 아군이 역으로 각개격파당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 그렇다고 하면, 최초부터 아군을 집결시켜 두면, 이번에는 적을 찾을 수가 없다. 따라서 점감도 어려워진다. 집결한 아군 함대가 능숙하게 적을 찾아냈다고 해도, 결국 열세인 해군이다. 집결한 열세 해군이 집결한 우세 해군과 마주쳤을 때 얼마나 승산이 있을 것인가...

이미 일본군 자체 내부에서 벌어진 도상연습에서부터 저 문제점들이 속속 드러났다. 실제로 도상연습에서 점감 요격 격파 연구로 유명한 나카무라 료조 중장이 미군을 맡아 연구한대로 움직이자마자 일본 연합함대가 일본 근해까지 밀려서 전멸하는 결과가 나왔다. 이 때문에 장교들이 항의하자 그는 구 일본군 2대 명언 중 하나인 미군이 우리 뜻대로 움직인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문제다! 란 명언을 남겼다고 한다. 이후 나카무라 중장은 2.26 사건 이후 파벌싸움에 얽혀서 퇴역했다.[9]

그 후에도 점감요격작전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사람은 많았다. 태평양 전쟁이 일어날 시점이 도래하자 연합함대사령장관인 야마모토 이소로쿠는 미국 태평양함대를 놔두고는 도저히 남방작전이 불가능하다며 개전 직후 항공모함 함재기를 통한 기습적인 공습을 가하는 진주만 공습을 계획하고 자기 목을 걸고 실천에 옮겼다. 그 결과 남방작전도 일본 뜻대로 거의 진행되었고, 연합함대는 별로 손해도 안 입고 서태평양지역과 동인도양지역의 제해권을 일시적으로 잡을 수 있었다. 이는 점감요격작전에서 예상한 것보다 손해는 적고 더 큰 이익을 남겼기에 가능한 결과였다.

이리하여 점감요격작전은 실행에 옮겨지지도 못하고 폐기되었다.

7. 영향과 평가

점감요격작전은 실행되지 않았어도 일본군 해군 전체에 함대결전사상과 함께 그 잔재가 남아있었다.

함대결전사상에서도 언급된 이야기지만, 그나마 공세적인 함대결전사상이었으면 나았을 판에 점감요격작전이라는 방어적인 함대결전사상을 채택하는 바람에 일본군 해군의 장비는 함대결전사상과 점감요격작전에 특화된 매우 기형적인 형태로 발전했다. 덕분에 태평양 전쟁이 소모전으로 들어가면서 일본군은 패배의 길로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개전 초반에 일본군이 승승장구할 때도 악영향을 주었다. 애초에 방어적인 점감요격작전에 특화한 장비를 공세작전에 쓰려고 하니까 미흡한 점이 한두군데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를테면 진주만 공습에서 일본군 항공모함중 항속력이 모자란 함선이 격납고와 비행갑판에 연료를 넣은 드럼통을 탑재하고 출격하는 위험한 행위를 한다든지 하는 절대로 웃지 못할 일이 일어났다.

마지막으로 일본이 수세에 몰리면서 점감요격작전을 쓰는 상황과 비슷한 현상이 일어났는데, 거기서 보인 모습을 보면 만에 하나 점감요격작전이 진짜 실행되었다면 일본이 더 빠르게 망할 수도 있었다는 결론도 나올 수 있다. 예를 들자면 개구리 뜀뛰기 전략으로 일본군의 중요 거점중 일부만 점령하고 나머지는 항공력 등으로 무력화하면서 미군이 급속전진한다던가, 주공과 조공으로 미군이 나누어져 진격해와도 조공이 너무 강력해서 일본군 입장에서는 주공으로 보였기에 향후 방어계획에 지장을 준다던가 하는 상황들이 발생했다. 예시로는 오히려 미군에게 유인당해서 축차적으로 전력을 소모한 꼴이 된 과달카날 전투나 맥아더의 진공에 놀라 주공을 오판하였다가 미 해군이 본격적으로 중부 태평양 루트로 진격해오자 허둥댔던 필리핀 해 해전, 사이판 전투 직전까지의 상황 등을 들 수 있다.

결론적으로 점감요격작전은 함대결전사상과 함께 일본군의 실책이 되고 말았으며, 어디까지나 방어형 전략이었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남방작전과는 양립이 불가능했다. 게다가 전장에 나가기 싫은 지휘부의 보신주의[10]와 맞물려 전함전력과 항모기동부대의 연계까지 방해하는 결과가 되었다. 침략전쟁을 위해 함대를 대양에 전개시킨 상황에서는 전함전력이 본토의 항공엄호를 받는 것이 불가능함에도 연합함대 사령부는 전함전력을 주력함으로서 틀어쥐고 있었고 항모가 전함을 탱킹하는 식으로 항모기동부대 전력이 축차소모된 뒤 정작 전함의 차례에는 항공엄호를 제공하지 못해 투입이 불가능한 상황을 자초함으로서 세계 3위라는 해군력을 말아먹는 데 일조한 꼴이 되고 말았다.


[1] 소련은 묵인했을 확률이 매우 높다. 관동군의 실체가 어쨌든, 혹은 일본이 이미 중일전쟁을 하고 있었든간에 이미 일본과 소련이 불가침 조약을 맺었든간에 일본은 독일과 같은 추축국 동맹이었기 때문에, 소련은 뒤통수에 폭탄을 매달고 독소전쟁을 수행하는 느낌이었을 것이기 때문. 이런 가운데 일본군을 견제하는 것도 아니고 죽여버릴 각오로 들어오는 미군이 싫었을 리는 없다. 다만 속에 구렁이가 10마리쯤은 들어앉았을 이오시프 스탈린이 외교적 이익을 위해 미국에다가 '형식적으로' 항의했을 가능성은 높다. [2] 일본 공학자들이 야기-우다 안테나라는 뛰어난 물건을 이미 전쟁 훨씬 전에 개발했지만, 일본군 상층부는 이것을 무시했다. 오히려 영국과 미국이 야기-우다 안테나를 개량한 고성능의 레이다를 사용했다. [3] 원래 이런 현상은 비단 잠수정만이 아닌 핵잠수함같은 거대한 잠수함들도 겪는 문제다. 다만 이런 큰 잠수함들은 그 부력을 억누르기 위해 추가적으로 바닷물을 더 채워서 해결하지만 갑표적 같은 작은 잠수정은 그것이 어렵다는 것. [4] 체스터 니미츠는 자신을 해당 전역의 육/해/공을 모두 담당하는 통합 사령관이라고 생각했고 실제로 그렇게 행동했다. 육/해/공의 유기적인 작전이 가능했던 이유 중 큰 부분을 차지한다. 실제로 사이판 전투에서 해병대 홀랜드 스미스 중장과 육군 랄프 스미스 소장이 대립했을 때 니미츠 제독은 홀랜드 스미스 장군의 주장대로 랄프 스미스 장군을 해임하는 것은 허용했지만 타군과 불화를 일으킨 홀랜드 스미스 장군의 책임도 크다고 보고 그의 작전지휘권을 박탈했다. 오키나와 전투에서도 사이먼 버크너 중장이 니미츠 제독의 진격 속도를 올리라는 지시를 육군작전이라면서 받아들이기 거부하자 '5일 내 전선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에게 전선을 움직이게 하겠다'라고 버크너 중장을 해임할 뜻을 밝혔다. 오키나와에서 버크너 중장의 전술은 대부분 옮았지만 상관이며 원수인 자신에게 해군은 육군에게 간섭하지 말라는 식의 태도 자체를 문제로 여긴 것이다. [5] 마오쩌둥은 "인민은 바다요, 유격대는 물고기다"라고 비유하면서 침략자들을 인민의 바다에 빠뜨려야 한다고 설파했다. [6] 이것도 프랑스가 1차대전의 영향으로 본토가 쑥대밭이 되었기 때문에 이 만큼 떨어진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7] 그리고 아이러니 하게도 몇십년 후 미국은... [8] 알류샨 열도에 교란작전을 위해 상륙하기는 했다. 그러나 본토라고 하기에는 미안할 정도였으며 그 조차도 자진 철수했다. [9] 나머지 명언은 만주사변의 주역이자 전쟁 초기에 큰 전공을 세웠던 이시와라 간지가 육군대학 시절 "기관총의 가장 현명한 운용요령은 무엇일까?"라는 문제에 "기관총을 항공기에 장비시켜 술주정꾼이 걸으면서 소변을 보듯 전방위 화망을 형성해 적 행군 종대에 퍼붓는다."라고 구술한 것이다. [10] 御田俊一『帝国海軍はなぜ敗れた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