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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전재용 全在庸 | Jeon Jae-yo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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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64년 10월 22일[1] ([age(1964-10-22)]세) |
서울특별시 용산구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본관 | 완산 전씨 24세손[2] |
부모 | 아버지 전두환, 어머니 이순자 |
형제 |
형
전재국 누나 전효선 남동생 전재만 |
배우자 | 박상아(3번째 아내) |
자녀 |
장남 전우성(1993년생) 차남 전우원(1996년생)[3] 장녀 전혜현(2006년생) 차녀 전가현(2008년생)[4] |
가족 |
형수 정도경 제수 이윤혜 조카아들 전우석, 전우진 조카딸 전수현, 전서연, 전정연, 전지현, 전아현 |
친척 |
할아버지
전상우, 할머니 김점문 큰아버지 전기환, 큰어머니 최수자 작은아버지 전석환, 전경환 작은어머니 손춘지 사촌형 전승규[5], 전종규 사촌형수 강석인, 배우경 사촌누나 전용희 사촌동생 전창규, 전유정, 전유신 사촌제수 이인애 사촌매형 오세철 고모 전홍렬, 전명렬, 전선학, 전학렬, 전점학 고종사촌형 이재홍, 조일천 외할아버지 이규동, 외할머니 이봉년 외삼촌 이창석, 외숙모 홍정녀 외사촌동생 이원근 이모 이신자, 이정순 이모부 홍순두, 김상구 이종사촌 홍태식, 김세훈, 김세홍 이종사촌제수 권수현 오촌조카딸 전지혜 큰할아버지 전상기 작은할아버지 전상희 오촌당숙부 전순환, 전재환, 전창환, 전우환 육촌 전석규, 전승규[6], 전응규 오촌고모 전봉연 고종육촌형 진재화 칠촌당숙부 전대환 # 작은외할아버지 이규승, 이규광 |
학력 |
한성고등학교 (졸업) 연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정치외교학 / 중퇴) 조지타운 대학교 (행정학 / 학사) 게이오기주쿠대학 (경영학 / 석사) 게이오기주쿠대학 (경영회계학 / 석사) 백석대학교 (목회학 / 석사 재학) |
종교 | 개신교 ( 예장백석)[7] |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제11·12대 대통령이었던 전두환의 차남.BLSC라는 부동산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2021년 기준으로 목사가 되기 위해 백석대학교에서 신학대학원 과정을 밟고 있다. #[8]
2. 생애
아버지 전두환의 직업이 군인이다 보니 어린 시절에는 아버지의 복무지에 따라 집이 자주 옮겨졌다. 전두환이 대위일 때 태어난 형 전재국은 강서구에서 태어났고 소령일 때 태어난 누나 전효선은 서울 중구, 중령일 때 태어난 본인은 용산구, 대령일 때 태어난 동생 전재만은 전두환의 현 사저로 알려진 서대문구 연희동에서 태어났다. 그나마 전두환이 5.16 이후 박정희의 눈에 띄어 출세가도를 달렸던지라 서울과 수도권 일대에 발령받았던지라 자녀들은 세부적인 출생지는 전부 다르더라도 다 서울 출생이다. 때문에 고향 합천에서 계속 살던 조부모 전상우와 김점문은 자주 찾아뵙지 못했다.[9]국민학교 때 아버지 전두환이 준장으로 장성급 장교가 되자 자연스레 학교에서 받는 대접 또한 달라졌다. 장성인 전두환의 아들로서 초중고에서 온갖 특혜를 받았다.[10]
이러한 권력의 정점은 고1 때 아버지 전두환이 대통령이 되면서 그 정점을 찍었다.
전재용도 형 전재국처럼 석사장교로 복무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사실과는 다르고 전재용은 학사장교 출신으로 1987년 임관해서 1990년 중위로 제대했다. 막내인 전재만만 6개월 방위병 출신일 뿐 나머지 형제들은 위관급 장교 출신이다.[11]
전재용은 아버지의 퇴임 이후 1991년 대우그룹 공개채용에 합격하여 대우그룹 섬유수출부에서 일하다 1992년 공무원 최성대의 딸 최정애와 결혼하여 1993년 전우성, 1996년 전우원을 낳았으나 입사한 지 얼마 안 되어 대우그룹에서 퇴사하고 게이오기주쿠대학으로 도피성 유학을 떠났다.[12] 이 때문에 아들 전우성, 전우원은 할머니 이순자가 직접 돌봤다. 이 무렵 전두환과 이순자의 나머지 자식들은 전부 각자의 가정이 있었고 이 무렵 전두환의 구속으로 마침 적적함을 느끼던 차여서 이순자가 직접 돌본 것이다. 유학을 마친 후엔 비엘에셋(現 BLSC)이라는 부동산 회사를 설립해 경영 중이다.
3. 논란
3.1. 부정축재 논란
형 전재국과 함께 전두환 일가의 부정축재에 대해 논란이 있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준아트빌 3채[13], 중구 서소문동 건물 5채, 경기도 오산시 양산동 토지 등 막대한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으나 평생 남의 밑에서 월급 한 번 받아본 일 없는 전재용이 어떻게 이 많은 부동산을 매입할 수 있었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14]2004년 조세포탈 사건 수사·재판 과정에서[15] 73억 5,500만 원어치의 전두환 비자금 채권을 소유·관리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전재용은 채권을 관리하면서 노숙자 명의를 도용하는 등 치밀하게 움직였던 게 확인되었다.
2007년 조세를 포탈한 혐의로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 벌금 28억 원을 선고받았다. 조세포탈 확정 판결 직전에 자기 소유 부동산을 대거 매각하여 막대한 차익을 거두었다. 1993년 금융실명제 직후 식품회사 ‘삼원유통’을 내세워서 매입했던 부동산들이었다.
2015년에는 미국에 은닉한 재산 122만 달러가 몰수되기도 하였다. 채널A에 따르면 122만 달러 몰수에 순순히 따른 것은 부인 박상아의 미국 영주권 문제 때문이라고. 관련 기사. 122만 달러 몰수에 동의하는 조건으로 미 법무부는 2년 후 박상아의 영주권 재신청을 거부하지 않기로 합의했다고 한다.
그런데 JTBC 뉴스룸에 따르면 돈 없다며 황제 노역을 선택했는데 2012년에 조직폭력배에게 20억 원을 뜯긴 사실이 드러났다. #
2015년 외삼촌 이 씨와 함께 27억 원 이상을 탈세한 혐의로 기소되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과 벌금 40억 원을 선고받았는데 1년 동안 벌금 1억 4천만 원밖에 안 내고 버티다가 2016년 7월에 안 낸 벌금만큼 노역을 하는 형집행에 처해져서 2019년 2월까지 복역하였다.
형집행 후 처음에는 서울구치소에 있다가 1달 정도 만에 원주교도소로 가게 되었다.[16] 단, 하루 노역에 400만 원이라는 파격대우라서 3년도 안 되는 시간만에 벌금 38억 6천만 원을 탕감받고 나올 수 있다. 봉투접기와 청소를 한다고 알려졌다.[17] 이대로 계속 갔다가 2019년 2월 출소하였다. 그러나 그의 외삼촌 이창석 씨( 이순자의 남동생)는 감옥에 있는 동안에도 벌금이 과다하다며 항소를 했는데, 2016년 12월 1심에서 패소했다.
물론 어떤 벌금에 대한 노역장유치도 형법상 3년을 넘을 수 없으므로[18] 법원이 파격대우를 해 준 것은 아니다. 전재용에 대한 재판은 대주그룹 허재호 회장 황제노역 사건 이후 형법이 개정된 후의 사건으로서 개정형법 제70조 제2항에 의하면 선고하는 벌금이 1억 원 이상 5억 원 미만인 경우에는 300일 이상, 5억 원 이상 50억 원 미만인 경우에는 500일 이상, 50억 원 이상인 경우에는 1,000일 이상의 노역장 유치기간을 정하도록 되어 있다. 전재용을 봐 주려고 했다면 법령상 하한인 500일을 선고했겠지만, 그 2배인 1,000일로 선고되었으니 우대를 받았다고 볼 수는 없는 것. 위 문단의 파격대우라는 서술은 벌금형의 환형유치로 실질적인 3년 이상의 징역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법령상의 제한 때문에 평균적인 노역장 유치에 비하여 하루 노역으로 공제되는 벌금액이 매우 커졌다는 뜻일 뿐이다.
3.2. 중혼 논란
두 번의 이혼 후[19] 연기자 박상아와 결혼했는데, 결혼 과정에서의 스캔들과 중혼 논란이 있었다.당시 전재용으로부터 이혼상담을 요청받았던 강용석에 따르면 2003년인가 전재용은 강용석에게 탤런트 박상아랑 좋아서 결혼하고 싶은데 아내가 이혼을 안 해준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20] 그러자 강용석은 "우리나라에서 결혼을 했는지 안 했는지 미국에서는 알 길이 없다"면서 "라스베이가스에 가든 어디를 가든 미국에서 결혼을 해라. 그리고 거기서 살아라."라고 조언했으며 전재용은 정말로 그 조언에 따라 미국에서 박상아랑 결혼을 했다고 한다. 그 당시 전재용은 전처와 이혼을 안 한 상태였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중혼(이중결혼)을 한 셈이 된다.
사실 전재용은 박상아와 이미 오래전에 만나서 거의 4년 이상 같이 살고 있던 상태였다고 한다. 그런데 갑자기 박상아와 결혼한 것은 참여정부 시절인 2003년 당시 비자금 문제가 불거지면서 검찰의 조사를 받다가 그 비자금이 박상아와 박상아 어머니 계좌로 흘러간 것과 관련해 말이 나오자[21] 박상아와의 관계를 공식화하기 위한 목적이었다고 한다.[22]
그 후 전재용과 박상아는 자녀들을 외국인 학교에 부당입학시키는 등의 문제로 언론에 종종 보도되었는데, 형 전재국에 비하면 전재용은 언론에 노출되는 빈도는 적은 편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아버지처럼 탈모가 있으며 현재는 아예 머리를 밀어 버린 상태이다. 외모를 보면 알겠지만 다른 형제에 비해 아버지인 전두환과 많이 닮았다.
2021년 3월 5일에는 극동방송 '만나고 싶은 사람 듣고 싶은 이야기'에 박상아와 함께 출연했다. #
3.3. 차남 전우원의 일가 비리 폭로
자세한 내용은 전두환 손자 폭로 사건 문서 참고하십시오.- 전재용의 차남 전우원이 '할아버지 전두환은 학살자'라는 식의 발언을 서슴지 않으며 전두환 일가의 횡령 비리와 범죄들을 밝히겠다며 폭로한 사건이다.
4. 여담
- 결혼을 세 번 했다. 첫 번째 결혼은 박태준 회장의 딸 박경아의 결혼이었다. 하지만 슬하에 자녀는 없이 3년 여 만에 이혼했다[23]. 두 번째 결혼은 최정애 씨와의 결혼이었다. 슬하에 장남 전우성과 차남 전우원이 태어났다. 이후 다시 이혼하고 3번째로 배우 박상아와 결혼했다.
- 차남 전우원의 주장과 전재용 소유 기업들의 재무 상황 등을 보면 사업에 소질이 없다는 평가가 있다. 그리고 3번의 결혼하면서 아버지 전두환의 신임을 잃은 상태였다고 한다. 엄격한 장자 및 서열중심의 가정인 전두환 가문에서 동생 전재만과 누나 전효선보다 받은게 없거나 받아도 사업 실패로 대부분 자금을 소진하였다. 권세 있는 가문[24]과 혼약을 맺지도 못한 것도 한 몫을 한 듯. 하지만 여전히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으며, 돈이 아예 없는 것은 절대 아니다.
- 집안의 유전[25]으로 인한 탈모가 워낙 심해서 현재는 완전히 삭발했다. 군 장성의 아들~대통령 영식 시절에는 두발규제에서 자유로워 머리를 풍성하게 막 기르고 다녔지만 1990년대 초반 들어서부터 탈모가 진행되었고 1992년 최정애와 결혼식 영상에서 보면 알 수 있듯 이때까지만 해도 이마가 훤히 드러나 보일 뿐 대머리 수준까지는 아니었는데 1990년대 후반 들어 탈모가 급격하게 진행되어 머리를 짧게 자른 것도 모자라 2000년대엔 아예 삭발해야 했다. 2010년대 들어선 아예 민머리에 가까울 정도로 옆머리도 완전히 밀었다.
- 아들 전우원의 말에 의하면 대머리 때문에 잠깐 가발을 착용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머리에 땀이 차는 등의 불편함 때문에 착용을 중단했다고 한다. 그래서 전우원에게 머리는 있을 때 관리하는 게 좋다고 조언하기도 했다.[26]
[1]
족보에는 1964년 9월 22일생으로 기록됨.
#
[2]
"○규" 자 항렬이지만 본인과 형제들은 "재○" 자 돌림자를 썼다.
[3]
전두환 손자 폭로 사건의 폭로자이다.
[4]
아들 둘은 2번째 부인 최정애와의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딸 둘은 현 3번째 부인
박상아와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5]
전기환 장남
[6]
전창환 차남
[7]
아내 박상아와 함께
판교 우리들교회에 출석중이며
전도사로 사역하고 있다.
[8]
이에 아버지인 전두환 전 대통령은 아들이 목사가 된다면 본인 역시 교회에 출석하겠다는 뜻을 밝혔으나, 전두환이 2021년 11월 23일 사망해 없던 일이 되었다. 전두환은 본디 무종교였으나
백담사에서 은둔생활을 하던 1988년 즈음에 불교로 개종하였다.
[9]
전두환 역시 시골 농민
전상우와 김점문의 아들이긴 하지만 군인
이규동과 이봉년의 데릴사위에 더 가까웠다. 이순자의 하나뿐인 남동생이자 처남인 이창석이 늦둥이이다 보니 장인인 이규동 집에서 아들 노릇을 할 수밖에 없었다.
[10]
당장 전두환 이전인 유신 시절만 해도
말죽거리 잔혹사에서도 쓰리스타의 아들인 박성춘(1961년생)은 학교에서 담배를 펴도 학교 측에서 그냥 넘어갔고 학교 소지품검사에서 예외를 받았다.
[11]
전재국이 복무했던 석사장교 제도는 만들어진 의도가 너무 뻔했던지라 노태우의 아들 노재헌이 졸업한 이후 폐지됐지만 전재용이 복무했던 학사장교는 지금도 남아있다.
[12]
전재용 측은 직장생활을 하면서 스스로의 삶에 의문을 제기해서 깨달음을 얻을 겸 유학을 간 것이라고 했지만 최정애 측은 전재용이 자신에게 싫증이 나 자신을 버리고 도피성 유학을 떠난 것이라고 주장했다.
[13]
이 빌라의 집들은 보통 330m²대로 월세만 1천만 원을 호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통 외국인들이 임대해 살고 있는데 보증금 없이 1년치나 2년치를 선불로 내고 임대하는 시스템이라고 한다.
[14]
외할아버지인 이규동에게서 상속받은 것이라고도 한다.
[15]
그 당시 낡은 자동차였던
기아 콩코드 승용차를 타고 등장한 것이 화제가 되었다.
관련 기사
[16]
언론에서 교도소 관계자(직원) 일부에게 취재한 내용으로는 같은 노역형 대상자들과 한 방에 살면서 그런대로 잘 지냈다고 한다. 일도 열심히 하는 편이라고 하는데, 감옥이라는 특수한 환경상 실제로 벌어지는 일을 애매하거나 부정확하게 얘기한다고 해서 외부에서 알 수는 없다.
[17]
물론 노역으로 없앤 걸 제외한 남은 벌금을 내면 언제라도 나갈 수 있다.
[18]
형법 제69조(벌금과 과료) ②벌금을 납입하지 아니한 자는 1일 이상 3년 이하, 과료를 납입하지 아니한 자는 1일 이상 30일 미만의 기간 노역장에 유치하여 작업에 복무하게 한다.
[19]
첫 번째 부인은 포스코 회장인
박태준의 넷째딸 박경아인데, 1987년 결혼하여 1990년 자녀 없이 이혼했다.(그래도 박경아 역시 재혼해서 아들 둘을 낳았다) 1992년에 최정애와 결혼하여 전우성,
전우원 아들 둘을 두고 2007년까지 혼인상태를 유지하다가 이혼했다.
[20]
이와 관련해서 강용석은 채널조선 "강적들"에 출연하여 "전재용이 박상아와 바람이 났다"고 표현하면서 "자기가 담당 변호사였기 때문에 과정을 다 안다"고까지 얘기했다.
[21]
당시 전재용은 미국
애틀랜타에 박상아 명의로 주택을 구입하기도 했다.
[22]
강용석의 이러한 폭탄 발언에 다른 출연자들은 '괜찮겠냐?'며 걱정을 했지만 강용석은 "세월이 10년이 지났고, 수임료를 받지 않아 내 마음대로 얘기할 수 있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뿐만 아니라 "전재용이 고소를 하더라도 그동안 고소만 했던 내가 고소를 당하기도 한다면 화제가 될 것"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관련기사
[23]
그래도 박경아 역시 김병주 MBK파트너스 대표랑 재혼해서 아들 2명을 낳았다.
[24]
전효선은 서울대를 졸업한 엘리트 윤상현과 결혼했고, 전재만은 준대기업 회장 딸과 결혼했다.
[25]
아버지 전두환, 할아버지 전상우 뿐만 아니라 외할아버지 이규동도 탈모이니 어머니 쪽의 유전자도 닮아서 아버지보다도 탈모 증상이 심하다.
[26]
허나 전우원 역시 정수리에 탈모가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