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KBS에서 방영한, 대한민국 육군 보병 소대를 주인공으로 하는 전쟁 드라마 연작시리즈. 1975년, 1983년, 2010년에 세차례 방영했다.2. 목록
2.1. 1975년작
1975년작 오프닝 영상.
주제가의 작곡은 김기웅, 노래는 별셋[1]이 맡았다. 75년작 타이틀은 '战友'라고 했으며 박한영이 만들었다.
KBS-TV에서 한국 전쟁 25주년 기념으로 제작/방영되었던 드라마로, 1975년 6월 28일부터 1978년 4월 8일까지 방영됐다.[2] 사실 베트남 패망에 발맞춰 긴급 제작된 작품인데 그런 것치고는 높은 인기를 누렸다. 물론 중국인들이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한다든가 지금 기준으로는 허접한 세트장의 압박 등 묘사가 허접한 부분이 있지만 고증 무시하고 맘껏 보기에는 이만한 드라마가 없었다.
한국전쟁 당시 벌어지는 여러 이야기를 한회 결말로 그린 작품인데, 반공을 주제로 했지만 의외로 다양한 영역의 이야기를 끌고 나가서 당시로서도 쏠쏠한 재미를 주었었다. 보통 주인공 소대원이 고정 출연진이었고 일종의 크루 시스템으로서 여러 인물들이 한 에피소드에서는 동료 소대장으로, 다른 에피소드에서는 괴뢰군(북한군)으로 출연하는 등의 배우 찾는 재미가 돋보였다. 장기 방영작이라 그런지 곽학송(1927~1992), 이희우, 이철향, 황길용(본명 황하룡, 1933~2001), 최경식, 윤혁민, 김정환 등 작가진은 물론 장형일, 김홍종, 김충길, 이유황, 이동희, 이종하, 강욱 등 PD들이 대거 참여하기도 했다. 1977년 기준 기술감독은 전주호, 야외촬영은 박노한, 음악/효과는 최형래, 특수효과는 이문걸 & 박광남 등이 각각 맡았다.
드라마의 구성을 보면 미국의 2차 대전을 무대로 한 1960년대 드라마 전투를 거의 베낀 것이다. 제목부터가 비슷했으며, 소대장과 일개 분대 정도의 고정 인원이 계속 다른 장소와 다른 내용으로 작전에 참가하는 이야기를 그린 형식이 똑같다.
그러나 방송위원회 기관지 <방송> 1990년 4월호 110~111쪽 기사에 따르면 제작 과정은 참으로 열악했다고 한다. 당시에는 버스에 카메라, 소품, 출연진 등을 낑겨서 태워야 했으며 일부 출연진들은 트럭에 태우기도 했다. 촬영 당시에는 스턴트맨이란 개념이 전무해서 출연 배우들은 폭파장면 같은 위험한 촬영까지 도맡아야 했는데, 이 과정에서 부상자가 속출했으며[3] 치료비는 방송사가 대줬지만 부상이 너무 심해서 하차하면 일거리가 끊기기 일쑤였다. 또한 황길용 작가의 아들의 증언에 따르면 일부 제작진들이 제작비를 횡령해서 배우-제작진 간에 다툼이 생기기도 했다. 다행히 국방부가 현역 군인들을 엑스트라로 투입시키는 등 전폭적으로 지원을 하긴 해도 당시 KBS 탤런트들 입장에선 출연 기피작 1순위였다.
주역인 소대장 김 소위[4] 역할로 출연한 나시찬은 1940년 대전 신탄진 출생으로, 충남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중퇴 후 서울로 상경해 합기도 4단을 따서 사범으로 일한 바 있고, 용산 삼각지 등지에 도장을 차리기도 했다. 1969년 가수 지망생인 동갑내기 친구의 권유로 KBS 탤런트 시험을 쳐 8기[5]로 뽑힌 후 초기에는 연기를 배운 적이 없어서인지 실력이 미흡했으나, 국립극단 단장 장민호에게 사정한 끝에 그 극단 식구들과 연기를 배워가며 남다른 노력과 선 굵은 마스크, 활동적인 연기 스타일로 점차 발전해나갔다.
나시찬은 엄하고도 인정이 많은 '김 소위' 연기로 전 국민들에게 사랑을 받았는데, 특히 어린이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방영 와중인 1976년에 소엽성 폐렴으로 입원하면서 1년여 간은 선임하사 역을 맡던 윤덕용이 리더를 맡기도 했다. 그 외에 < 특별수사본부 외팔이 김종원>, <꽃신> 등지의 여러 영화와 드라마에서 맹활약했지만, 1978년 12월 일일연속극 <귀향> 촬영 도중 결핵성 뇌막염으로 쓰러져[6] 투병하다 1981년에 사망하면서 세간에 안타까움을 주기도 했다. 안 하사 역은 김민, 선임하사 역은 강민호가 각각 맡았다.( 1977년 주간여성 자료, 1972년 신여성 자료)
그 외 배역들은 김시원을 비롯해 주현, 허영, 김상훈, 박해상, 이원종, 오중훈, 안대용, 윤덕용, 조재훈[7], 천정우, 서상익, 맹호림, 송석호, 유병한, 김해권, 임병기, 김경하, 조명남, 김경화, 박정웅, 장학수, 이현두, 이강수, 임영식, 이한승, 이한수, 김태환, 장미자, 박성재,[8] 이종만, 김동수, 한주영, 이명원 등 자사 전속 탤런트들이 사실상 총출연했다.
고정 출연진 중 장 하사 역을 맡던 장항선[9]과 주로 인민군에게 성고문당하는 처자로 나온 이효춘이 현재 활동하고 있다. 물론 단역 정도로 나온 반효정 같은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10]
아래는 남아있는 방송 당시 자료 중 한 장면. 대배우 장민호[11]의 연기가 일품이다(인민재판을 거부하다가 북한군의 총에 맞는 역). 참고로 이 영상은 1978년 1월 7일에 방송된 '싸리골의 신화' 편 중 일부이다. 선우휘의 소설이 원작이며, 1967년에 영화로 제작된 적이 있다. 재미있게도 70년대판 전우의 주요 출연자이며 1983년판에 주인공으로 활약했던 배우 강민호는 이만희 감독이 연출한 싸리꼴의 신화에 나오기도 했다.
총 맞아 죽는 노부인 역에 당시 노역 연기의 대가 박주아가 보이고, 소대장 뒤에 같이 묶인 마을 청년은 나중에 김정일 역으로 유명해진 김병기로 보인다.
당대 드라마 특성상 비디오테이프를 재활용했기에 자료가 많지 않아 KBS 미디어에선 1977년 5월 14일자 '5인의 사형수'와 6월 11일자 '영원한 포로(상편)', 9월 24일자 '신병 고일병' 등 3편만 구매가 가능하며, 2020년에 KBS '같이 삽시다' 유튜브 채널에 해당 에피소드들을 업로드했으나 2021년 1월 들어 1편 빼고 비공개 상태였고, 4월 말 들어 전부 풀렸으나 5월에 또 비공개됐다.
2.2. 1983년작
1회 영상.
1975년작의 리메이크로 KBS 2TV에서 1983년 9월 1일부터 1984년 10월 25일까지 매주 목요일 저녁 7시 30분이나 8시마다 방영되었다. 연출은 김재순, 한정희, 정영철, 문영진, 염현섭 PD[12] 등 5명이 돌려가며 맡았고, 전작과는 달리 올 로케이션 제작인 데다 매 회당 1,500여만원이 들었으며 전 장면을 필름카메라로 촬영했다. 총 56부작. 전작의 오프닝을 맡던 별셋이 엔딩을 맡기도 했다. 타이틀의 한자도 '戰友'로 바뀌었다.
원래 1983년 8월 5일부터 MBC에서 한국판 게리슨 유격대로 불리는 《 3840 유격대》가 매주 금요일마다 방송되고 있었고, 그 인기에 자극받은 KBS가 요일만 달리해서 같은 시간대인 8시에 편성하였다. 그래서 당시 시청자들은 목요일에 전우를 보고 금요일에 3840유격대를 볼 수 있었다.
사실상 주간 단막 시츄에이션이라는 형식에서는 2010년보다 이 작품이 1975년작의 더 원작에 가깝다. 1975년작에서 크루로서 소대장, 유격대장, 북한군(...) 등의 여러 역할로 나왔던 강민호를 새로운 주축으로 해서 6.25 전쟁 당시 국군 수색대의 이야기를 그렸다. 소대원 역으로 1975년판 멤버였던 김시원과 김윤형, 조재훈, 이문환, 박해상, 장칠군을 주축으로 하여 신규 멤버로 김천만을 투입했고,[13] 이일웅, 박건식, 문오장, 이대로, 장학수, 하미혜, 안정훈, 황민, 김종구(1945~2003) 등은 북한군 역을 맡았다.
그 외에 신동훈[14]과 이대로[15], 이정웅, 오영수[16], 김상락, 이강수, 이영수, 김기복, 최명수, 공경구, 조상구[17], 장순국, 김보미, 최건호, 한현배, 박병호, 이치우, 노주현, 김인호, 박영목, 박상규, 손영춘 등의 배우들이 크루 형태로 출연했다.
크루라고 해서 SNL 코리아가 떠오르는데 사실 이럴 수밖에 없는 것이 거의 매주 야외촬영으로 진행되는 살인적인 스케줄을 충분히 소화할 연기자들이 그때도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었다. 이런 장르가 90년대 이후 사라진 원인이기도 하긴 하나, 그래서 나오는 배우들은 주연급보다는 인기나 인지도가 떨어지만 그렇다고 신인은 아닌 중견급 연기자들이었다. 물론 단역은 공채 탤런트 신인과 연극 무대 출신으로 얼굴이 잘 안 알려진 배우들이 많이 맡았으며, 엑스트라는 1회당 100여명씩 투입됐다. 촬영은 경기도 연천군 전곡리, 충북 제천군 한수면, 경남 진해, 경북 포항, 강원도 화천군 및 평창군 횡계리, 용평면 등지에서 평일마다 현지 로케이션 방식으로 했고, 토요일에 녹음 작업을 했다.
2010년판과는 달리 1975년판에 가깝게 구성되어, 전체적인 이야기가 이어지는 것은 아니고 한국전쟁의 여러 상황에서 벌어지는 스토리들을 담고 있다. 당연히 사자에상 시공.[18] 1975년작보다 좋은 점은 나름 지원이 빵빵하고 역동적인 촬영으로 인해 볼거리가 많다는 점으로서 심지어 대한민국 해군에서 기어링급 구축함(!)을 지원했고 기어링급 구축함의 호쾌한 함포 실탄 사격장면과 함교에서의 전투 지휘장면이 그대로 방영되기도 하였다. 물론 해전을 한 것은 아니고 주인공 소대가 침투 작전을 벌일 때 지원 사격의 의미로 나왔다. 이 에피소드엔 백일섭(!)이 함장을 맡아 등장했다. 이 정도 지원은 원본이 되는 미국 드라마 컴뱃! 에서도 볼수가 없다. 거기서도 그런 건 주로 기록 영화 자료 화면으로 대체했다.
80년대 반공드라마라 상대적으로 검열에서 자유로웠기 때문에 최종보스 보정에 주인공 보정[19]이 들어가서 지금봐도 지나칠 정도의 장면이 많았던 것이 특징이다. 알몸 고문, 양민학살, 검열삭제[20]에 심지어 지금 기준도 말이 안되고 헐리웃 막장 영화에서도 절대 안나오는 아동 살해 장면이 생생히 묘사될 정도였다.[21] 그러다보니 여자 인물과 북한군이 얽히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일 정도이며, 또한 직접 보여주지는 않더라도 공산당 관련 여자들은 하나같이 혁명을 위해서 몸바치고, 공산당에 끌려간 여자들은 낮에는 간호사이고 밤에는 육노예를 한다는 대사도 나올 정도였다(...).[22][23]
볼거리(...)를 제외하고도 사극계의 거두인 임충, 한대희, 이철향, 이유일, 류청오, 김항명, 박성조 등의 여러 작가들의 탄탄한 극본과 박웅, 강태기, 권성덕 등의 연기파 연극배우들이 활약했고, 21회 '종소리'에서는 혼혈가수 박일준이 하와이 출신의 한국계 미국인 미합중국 공군 전투기 조종사로 나오기도 했다.
볼거리가 많은 데다 1975년판보다 제작 여건이 조금 나아졌는데, 예컨대 폭파장면을 찍을 때 경유 대신 시멘트를 쓴다던가 하는 식이다. 다만 시멘트가 폭발하면서 생긴 파편 탓에 배우들이 부상을 당하는 부작용이 생겼고, 1983년 10월 IPU 및 ASTU 총회 등 공산권을 망라하는 굵직굵직한 회의 때문에 1달을 쉬는 등[24] 1975년작처럼 무자비한 반공 드라마를 만들기가 무척 어려웠다. 결국 유야무야하다가 1년 조금 넘어서 종영했다.[25] 사실 흑역사라고 하기에는 시청률이나 볼거리는 많았고 2010년판보다 잔재미는 많았던 작품.
늘 그렇지만 육군 수색대는 소속이 무슨 부대인지 스키 침투, 총알받이, 스파이 행각 등 별별 일을 다 맡는다. 그럼에도 진급을 하지 않는게 미스터리다. 1987년 6.29 선언 뒤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연예평론가 등으로부터 반공 드라마란 이유로 일방적으로 평가절하를 당하나, 고증은 2010년판보다 낫다.
드라마 종영 후 단막극 형태로 독일 유학파 세균 전문가 박사의 가족을 구출하는 스토리가 방영된 후 1985년 2월 2일 TV 문학관 노두[26]에서 이 인물들의 후일담을 방영하였고, 1990년 11월 10일 < 유머 1번지> 코너 ' 동작그만'에서 후일담으로 이때의 소대장 강민호가 사단장이 되어 나타나는 장면이 방영되기도 했다. 강민호 특별출연 편
2016년 티비젠에 일부 회차가 공개되었으나 사이트 폐쇄로 인해 내려갔고, 2020년에 염현섭 PD가 유튜브 채널 '염현섭 극장'을 개설해 그가 맡은 에피소드 5편을 업로드했으나, 9월 16일 저작권 문제로 채널까지 닫혔다. 이후 2020년 12월 31일 기준으로 KBS '같이삽시다' 채널엔 '불타는 다리(1983년 9월 1일 방영분)', '암흑의 벽(1984년 1월 5일 방영분)', '바다의 불사신(1984년 3월 29일 방영분)', '늑대사냥(1984년 9월 13일 방영분)', '사선25시(1984년 7월 26일 방영분)'등 총 5편이 각각 업로드돼 있으나, 이마저도 2021년 1월 들어서 3편 빼고 비공개됐다.
그러나 2월 12일에는 '잃은 것과 찾은 것(1983년 11월 24일 방영분)'을 시초로 동월 25일 '가장 긴 밤(1983년 11월 10일 방영분)', 3월 31일 '시한폭탄(1984년 6월 28일 방영분)'[27], 4월 22일 '군번없는 병사들(1984년 2월 16일 방영분)'이 신규 업로드됐다가 5월에는 업로드된 것들이 전부 비공개됐다. 11월 9일부터 KBS Drama Classic 채널을 통해 유료로 전편 서비스 중이다.
2.3. 2010년작
자세한 내용은 전우(2010년 드라마) 문서 참고하십시오.2010년에 방영된 KBS 주말 드라마. 최수종, 이태란, 이덕화 등이 출연했다.
3. KBS Drama Classic 연속 무료 스트리밍
2022년 9월 14일 아침 9시경부터 1983년판을 스트리밍하기 시작했는데, 2010년판과 동시에 진행된다. 갓 시작할 당시에는 500명대를 유지하기도 했으나, 너무 오래전에 방영된 드라마라 시청자 수가 저조한 편이며, 스트리밍 내내 평균 200~300명대 수준을 맴돌다 16일에 종결되었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지난 5월에 스트리밍한 풍운때와 비슷하다. 스트리밍에 많이 출연한 배우들에 대해서는 드립이 간간히 등장하곤 있으나, 그 외에는 전혀 드립이 등장하지 않는 편.- 배역 / 배우의 별명
[1]
이때는 별넷이었다(...). 이후 한 명이 탈퇴해서 별셋. 이 분들은 이후의 정여진씨나 김국환씨처럼 만화 주제가로도 유명했는데 1986년 즈음을 끝으로 해체되었고 이후 한 분은 이런 저런 사정으로 구속 기소되었다.
[2]
신문 편성표 기준. KBS 측에서는 1977년까지 방영됐다고 한다.
[3]
작중 북한군 역을 많이 맡던 박정웅은 폭파 장면을 찍다가 등에 곰보자국이 생겼다.
[4]
1975년작 특집극 <어느 한국인>에 나온 동명의 주인공에서 영향을 받았는데, 이 역할도 나시찬이 맡았다.
[5]
배우
민욱, 코미디언 최용순(1946~2000) 및 한주열(1947~2012)하곤 동기였다.
[6]
그가 맡던 현필 역은 송재호에게 넘어갔다.
[7]
배우 조향기의 부친.
[8]
1975년 11월 18일에 촬영을 마치고 예비군 훈련차 서울로 돌아가고자 버스 탑승 도중 앞바퀴에 치여
사망했다. 그의 마지막 출연 회차는 6일 후에
방영됐다.
[9]
그가 이 드라마의 촬영에 열성적으로 임한 이유는 아버지를 6.25 전쟁으로 잃었기 때문이다.
[10]
당시 각 방송국 연기자들은 전속제, 즉 방송사의 직원 신분이라 어느 역이든 하라면 해야 했고, 타 방송사에는 출연하지 않았다. 영화 출연도 회사 허락을 받아야 했다.
[11]
이분은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노년의 원빈을 맡았다. 우리나라 1세대
성우 중 한 명이기도 하다.
[12]
TBC 출신으로, 《형사 25시》와 《사랑의 굴레》 등을 낳은 명 연출자다.
[13]
다만 장칠군, 송종원, 윤승원 등 일부는 개인 사정으로 중도 하차했다.
[14]
국군 통신장교. 학살당한 시체(...), 고문당하는 반공유격대장.
[15]
북한군 장교. 마을 노인. 낙오했다가 북한 여군에게 살해되는 국군 병사(...).
[16]
종군작가 역.
오징어 게임에 나오는
오일남 배역인 그 사람 맞다.
[17]
1회에서 출연. 당시에는 본명인 '최재현' 명의로 출연했다.
[18]
굳이 이야기를 하면 UN군의 작전상 후퇴 대사가 나오는 점에서는 1950년~51년 정도일 가능성은 있다.
[19]
무한탄창 그리스건과 일발필중 끝내기 바주카로 대변되는 이야기.
[20]
심지어 윤간 장면도 세밀하게 묘사된다. 이때 윤간하는 멤버 중 하나가 당시로서는 무명 연극배우
최주봉(!)이었다.
[21]
'공산당이 밉다'는 어린이를 바닷물에 물고문해서 죽이는 장면이다.
[22]
제37회 '하늘과 땅 사이'에 언급.
[23]
반공이 국시이고 모든 것이 우선하던 당시에는 공산당은 양민을 학살하고, 노인과 어린이를 서슴없이 죽이며, 여자라면 적군 아군 안 가리고 마구 강간하는 인간 말종으로 그렸고 그 경우엔 폭력이든 성적 표현이든 검열 통과였다. 어린이용 만화 영화에도 아동 살해 장면이 들어갈 정도.
[24]
같은 방송사의 <지금 평양에선>과 라이벌 MBC의 <3840유격대>도 똑같은 처지였다.
[25]
<TV가이드> 1984년 제169호 20~21쪽 컬러화보에서 11월 초 '딸의 기원' 편을 방영할 거라고 나왔으나, 후술할 유튜브 'TV탤런트' 회차에선 이마저도 만들지 못하고 외전 같은 걸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26]
최금동 작가가 지은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27]
유현종 작가의 1964년작 소설 <데드라인>이 원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