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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적 130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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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ido Político Nacional Perú Libre (PL) | |
한글명칭 | 자유 페루 국민정당 |
상징색 |
빨간색
|
서기장 | 블라디미르 세론 |
창당일 | 2016년 1월 15일 |
이념 |
사회주의 마르크스-레닌주의 마르크스주의 반제국주의 라틴아메리카 통합 좌익대중주의 반 후지모리주의 연방주의 사회보수주의 |
정치적 스펙트럼 | 좌익 ~ 극좌 |
당사 |
Huancayo, Junín Breña, 리마 |
공화국의회 |
32석 / 130석
|
주지사 |
1석 / 25석
|
주의회 |
9석 / 274석
|
웹사이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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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페루의 좌파~극좌, 사회주의 및 대중주의 정당. 선관위에 등록된 공식명칭은 '자유 페루 국민정당'으로, 약칭인 PPNPL을 쓰기도 하지만, 보통은 그냥 '자유 페루(Perú Libre)'라고만 부르는 경우가 많다.2. 역사
본래 정당은 아니고, 2007년 블라디미르 세론이 결성한 '자유 페루 정치지역운동'이 시초다. 2012년 '자유지상 페루'로 개명했지만, 이 때는 아직 정당은 아니었다.그 후 2016년 정당으로 개편하고 세론이 대선 출마를 시도했지만, 지지율이 턱 없이 낮았고, 행여나 등록이 취소되는 것을 막기 위해 선거에 불참한다.[1] 2019년 지금의 이름으로 개명했다.
2020년 총선에도 도전했지만, 3.4%의 득표율로 봉쇄조항 5%를 넘기지 못 해 원내 진입에 실패했다. 사실 여기에는 뒷배경이 있는데, 원내 진입이 어려워 보이자 비슷하게 좌익, 사회주의를 표방한 페루를 위하여 다함께 및 신페루당 등과의 선거 연대가 검토되었고, 실제로 의석 배분을 검토 중이었다. 하지만 당을 이끌 세론이 바로 한 해 전 징역 4년 5개월을 선고 받아 복역 중이었고, 언급한 2개의 연대 파트너는 세론의 이러한 범죄 경력을 문제 삼아, 도중에 논의를 중단하기에 이르른다. 물론 이 뿐만은 아니고 후술할 이념적 차이도 한 몫을 하기는 했지만, 연대 논의가 중단되면서 셋 다 따로 뛰었고, 결국 모두 다 허무하게 원내 진입에 실패했다.
2021년 대선을 앞두고 교사 파업을 이끈 페드로 카스티요를 영입해 대선 후보로 출마시켰고, 초반만 해도 일개의 군소후보에 그쳐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언급했다시피 이 당은 빼도 박도 못 하는 군소정당이었고, 그런 정당의 대선 후보가 당선된다는 것은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였다.
그런데... 당초 결선 진출이 유력해 보였던 기득권 중도우파 성향 정당들과 후보들이 난립하고 있었고, 이들의 잦은 실책으로 인한 유권자들의 분노가 겹쳐 지지율이 상승하더니, 1차 투표에서 18.92%의 득표율로 깜짝 1위를 기록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 했던 시나리오가 현실화되면서, 이들을 대놓고 무시한 이들로서는 한마디로 설마가 사람 잡은 꼴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2차 투표의 상대는 이미 재수했고, 무엇보다도 전직 대통령의 딸 게이코 후지모리라서, 경력이 사실상 전무한 카스티요가 후지모리라는 거대한 벽을 넘기에는 어려워 보인다. 실제로 출구조사에서도 후지모리에게 근소하게 뒤진 것도 있고.
그러나 최종 개표 결과, 근소하게 카스티요 후보가 후지모리 후보를 이겼다! 다만 게이코 후지모리가 승복을 거부하고 부정선거를 주장하고 있어 페루 선관위의 선거 결과 확정이 늦어지고 있다.
결국 결선투표 후 43일만에 페루 선거심판원에서 게이코 후지모리의 재검표 요청 등을 최종 기각하면서 공식적으로 페드로 카스티요 후보의 당선이 확정되었다. 게이코 후지모리 역시 결과에 승복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
여당이 되었지만 페루 의회에서 야당의 의석이 압도적이기 때문에 국정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사회주의 성향의 페루를 위한 모두와 함께 정부를 꾸렸으며, 자유주의 성향의 우리가 페루다-보라당의 신임 공급을 받게 되었다. 그래보았자 여전히 여소야대이지만 이는 훗날 비극을 몰고 왔다.
2022년 7월 2일 페드로 카스티요 대통령을 출당시켰다. 형식상으로는 자진탈당이지만 "자진탈당하지 않으면 강제 제명하겠다"고 해서 카스티요를 축출한 것.
2022년 페루 친위 쿠데타 시도 때는 페드로 카스티요 대통령에 대항했으며 쿠데타 시도에 대해 강력하게 반발했다.
3. 특징
사회주의, 마르크스-레닌주의를 표방하는 전형적인 극좌 정당 답게, 당의 실권을 쥐는 이는 대표가 아닌 서기장(Secretary-General)이다.[2] 이 당을 창당하고 현재 이 당을많이 주목을 받지 못 해서 그렇지, 이 당도 엄연히 남미의 좌익 정당 중 하나이다. 국유화를 지지하고 신자유주의를 반대하며, 우익 내지 극우로 분류되는 후지모리즘을 강하게 반대한다. 외교적으로도 반미 성향이 강하며,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등 남미 극좌 정권들에 호의적이다. 실제로 니콜라스 마두로를 베네수엘라의 대통령으로 인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차베스주의가 페루에 유입되는 것에는 역으로 비판적인 입장을 드러냈으며, 페루 내의 베네수엘라 난민들의 범죄를 문제 삼기도 했다.
다만 사회적으로는 보수주의 성향을 띄며, 실제로 스페인어 위키백과 문서에도 사회보수주의를 언급하고 있다. 카스티요 본인도 진보/보수를 구분하는 이슈 중 하나인 성소수자 이슈에 대해서는 입장을 애매하게 드러내기도 했다. 한편 경제적으로는 더 진보적인 편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사회적으로도 진보인 다른 좌익 정당들과도 사이가 썩 좋지 않으며, 앞서 언급된 2020년 총선 연대가 불발된 여러 이유 중 하나도 여기에 있다. 카스티요와 케이코 후지모리만이 결선에 남았다. 두 후보 모두 사회보수주의 성향이라 성소수자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자유 페루에 투표하거나, 아니면 뽑을 놈이 없다고 한탄한다고...
다만 집권 이후 카스티요 대통령이 강경좌익을 내세우는 정당치고는 경제정책이 꽤 중도화가 되었다는 평이 많다.[3] 실제로 카스티요는 차베스주의자들을 배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후 위와 같은 중도화를 이유로 카스티요를 출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