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0-25 00:15:15

용쟁호투

파일:이소룡 서명.svg
이소룡
주연 5부작
{{{#!wiki style="margin: 0 -10px -5px; word-break: keep-all"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당산대형|
파일:The Big Boss Logo.png
당산대형 (1971)]]
[[정무문|
파일:Fist of Fury Logo.png
정무문 (1972)]]
[[맹룡과강|
파일:The Way of the Dragon Logo.png
맹룡과강 (1972)]]
{{{#!wiki style="margin: -15.5px -10.5px" [[용쟁호투|
파일:Enter the Dragon Logo.png
용쟁호투 (1973)]]
[[사망유희|
파일:The Game of Death Logo.png
사망유희 (1978)]]
}}}
}}}}}}}}} ||
용쟁호투의 주요 수상 이력
[ 펼치기 · 접기 ]
----
미국 의회도서관 영구 보존 영화
2004년 등재

파일: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1001.jpg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1001|'''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colbgcolor=#BDBDBD,#010101><colcolor=#000,#ddd> 용쟁호투 (1973)
龍爭虎鬪|Enter the dragon
파일:enter_the_dragon_poster_005.jpg
장르 액션, 범죄, 스릴러
감독 로버트 클라우스
각본 마이클 앨린
제작 이소룡
프레드 와인트롭
폴 헬러
출연 이소룡
존 색슨
아나 카프리
밥 월
석견
짐 켈리
촬영 길버트 허브스
음악 랄로 쉬프린
제작사 파일:미국 국기.svg 워너 브라더스
파일:영국령 홍콩 기.svg 협화전영공사
배급사 파일:미국 국기.svg 워너 브라더스
파일:영국령 홍콩 기.svg 골든하베스트
촬영 기간 1973년 1월 25일 ~ 4월 2일
개봉일 파일:영국령 홍콩 기.svg 1973년 7월 26일
파일:미국 국기.svg 1973년 8월 19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73년 12월 18일
상영 시간 102분
제작비 $850,000
상영 등급 파일:영등위_15세이상_2021.svg 15세 이상 관람가

1. 개요2. 예고편3. 내용 및 의미4. 등장인물5. 여담

[clearfix]

1. 개요

이소룡 주연, 로버트 클라우스 연출의 1973년 액션 영화이다. 85만 달러의 제작비로, 전 세계에서 9,000만 달러의 수익을 거둬들였다고 한다.[1]

영문명은 《Enter the Dragon》[2], 일본 개봉명은 《불타라 드래곤》(燃えよドラゴン).

1970년대 미국 대통령 리처드 닉슨의 방중(訪中)을 비롯한 여러가지 국제 정세의 변화로 미국에서는 동양 문화에 대한 관심이 한껏 높아졌고, 이에 정창화의 《철인》(죽음의 다섯 손가락)을 수입해 미국 박스오피스 1위를 달성하는 등 크게 재미를 본 워너 브라더스가 아예 직접 무술 영화를 만들기로 하고, 브루스 리의 소속사인 홍콩의 골든 하베스트와 접촉, 합작하여 만들어졌다.

2. 예고편




3. 내용 및 의미

소림사 출신으로 갖은 범죄를 저질러 이미 파문당한 마약상 한을 체포하기 위해 이소룡이 섬에서 개최되는 무술 토너먼트에 참가한다는 스토리. 내용면에서 007 시리즈의 영향이 꽤 짙게 느껴진다. 그런데 역으로 용쟁호투는 이듬해 개봉한 007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에 큰 영향을 줬다. #

이소룡이 악역으로 등장해 난리를 치다 죽는 《 말로우》 및 할리우드 데뷔작 《 그린 호넷》과 함께 본인의 실제 영어 육성을 들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작품이다.

서구권에서 이소룡을 전설의 레전드로 만든 작품이다. 동아시아권에서는 특히 《 정무문》이 더 유명하지만, 동서양을 막론한다면 《 맹룡과강》 정도. 일단 서구에서 이소룡이라고 하면 용쟁호투와 《 사망유희》를 떠올린다.

이 영화로 인해 비단 서구권뿐만 아니라, 동양권에서도 이소룡과 '무술( 쿵후)'의 바람이 불었다고 해도 과언(過言)이 아니다.

좋게 말하면[3], 단순한 무술 영화를 넘어 스토리 자체는 당시 유행하던 007 시리즈 스타일의 첩보물을 직접적으로 표방했다. 단 여성과 관계를 맺는 역은 이소룡 말고 다른 조연(존 색슨)에게로 넘어갔다.[4] 하지만 사람들은 이소룡만 기억하지, 존 색슨은 오프닝 크레딧에 보면 이소룡과 존 색슨의 이름이 함께 나오지만 결국 극의 중심은 이소룡이 되었다. 색슨은 평생 이 영화의 이미지에서 나오지 못했고 이후 이탈리아나 여러 호러 영화에서나 주연이나 조연을 맡았다.[5]

막판의 패싸움 장면[6], 그리고 최종보스 한과 거울의 방에서 싸우는 장면[7]이 유명하다. 이 거울의 방 씬에서 복근을 클로로 긁혀 피로 王자가 세겨지는 모습이 하이라이트다.

당시 여러 인종에게 어필했는데, 우선 주연 3명부터가 황인(이소룡), 백인(존 색슨), 흑인(짐 켈리)으로[8] 나뉘어 각각 활약한 게 크게 작용했다고 한다.

주제가 및 명장면 모음

4. 등장인물

이 문서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문서가 설명하는 작품이나 인물 등에 대한 줄거리, 결말, 반전 요소 등을 직·간접적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5. 여담



[1] 당시 환율대비하면 엄청난 수익이다. [2] 영화사에서 처음에 정한 제목은 《철혈》(Blood and Steel)이었지만, 이소룡의 강력한 주장에 따라 현재의 제목으로 바뀌었다. [3] 당시 영화사가 흥행을 기대한 것도, 의욕적으로 투자한 작품도 아니었기에 저예산(85만 달러)으로 대충 제작한 영화. 그래서 당시 유행하던 내용들을 대충 짜맞추고, 동양 무술을 삽입해 약간의 차별화를 시도해보자는 속셈이었다. 노골적으로 표현하자면, 먹히면 좋은 것이고 안 먹혀도 저예산이니 괜찮다는 식으로 만들었다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4] 이런 종류의 연기를 이소룡이 난감해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물론 《 당산대형》에는 러브신이 나오긴 했다. 그런데 이소룡은 술에 떡이 되어 잠들었다는 설정이고, 이소룡을 덮친 여성은 매춘부 역할이며, 개봉 시장도 아시아권이었다. 그리고 《 정무문》에서는 묘가수와의 단순 키스신이었으니 그렇다 쳐도, 동양인 남성에게 백인 여성이 꼬인다는 설정은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할 당시의 백인 관객들에게 거부감을 준다는 점도 작용했다고 한다. 원래 각본에서는 짐 켈리가 끝까지 살아남고 존 색슨이 죽을 예정이었다지만, 색슨의 에이전트가 압력을 가해 역할을 바꿔 넣었다고 한다. [5] 십 수 년 뒤, 길 가다가 노상강도를 만났는데, 존 색슨을 알아본 강도가 돈을 뺏을 생각은 안 하고, 영화 찍을 때 이야기만 열심히 캐물었다고 한다. [6] 이때 이소룡은 무술 감독도 맡아, 오른쪽 끝을 잘 보면 지휘하는 이소룡을 볼 수 있다. [7] 이 장면은 오손 웰즈의 대표작 《상하이에서 온 여인》(The Lady from Shanghai)의 마지막 장면을 오마주했다고 한다. [8] 정확하게는 이소룡, 짐 켈리 모두 백인 혼혈이다. 이소룡의 경우 혈통의 4분의 1이 독일계 혈통이다. [9] 악당이 되어 소림사의 이름에 먹칠을 해버린 한을 처단해 명예를 회복해야 한다는 이유. [10] 흔한 오해와 달리 미국이 아닌 영국 정보부다. [11] 이때 슬픔과 분노가 뒤섞인 눈물을 흘린다. [12] 실은 윌리엄스에게 자신한테 돈을 걸어놓고 일부러 초반에 밀리는 척 하며 내기 판돈을 올린다. [13] 리는 오하라에게 목례를 했으나 오하라는 들고 있던 송판을 리의 얼굴 앞에서 깨버리며 도발했다. [14] 리를 상대로 유효타를 한 번도 성공시키지 못하고 정신없이 얻어터졌다. [15] 설탕으로 만든 병을 구할 수가 없어 진짜 유리병을 썼는데 이로 인해 이소룡이 다쳤다고 한다. 이후 로버트 월은 이소룡의 팬들로부터 고의로 이소룡을 다치게 했다는 오해를 받아 신변의 위협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16] 재생시간 1시간 3분 19초 쯤에 리가 사열대로 되돌아가 한에게 목례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때까지만 해도 오하라를 당장 죽일 생각은 없던 것으로 추측된다. [17] 윌리엄스가 한의 공격에 박살난 벽에 이 여자들이 있는데 얼굴에 괴상한 문신을 하고 있으며 약에 취해 정신이 나간 건지 윌리엄스가 맞는 내내 박장대소를 하는 장면이 굉장히 무섭다. [18] 하지만 대결의 행방을 결정지은 것은 한이 의수로 부순 새장의 새가 윌리엄스의 시야를 가린 사이 치명타를 허용한 것으로, 그 전까지는 서로 대등한 합을 주고받았기에 새가 없었더라면 결과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19] 리를 위협하기 위해 던진 이 거울 미궁의 방 문에 박혀버렸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리에게 옆차기를 맞고 밀려나는 과정에서 자신이 던져 꽂혀있던 창두에 그대로 심장이 관통 당해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만다. [20] 외출이 금지된 늦은 밤에 잠깐 바람 쐬러 바깥에 나갔는데, 하필이면 그걸 경호원 한 명이 목격해버렸다. [21] 한이 "간밤에 밖으로 나간 건 너 하나뿐이었다"고 말하자 "한 명이 더 있다"고 말했으나, "그게 누구냐"고 재차 한이 추궁하자 말해주는 대신 "이 섬에 있기가 싫어졌다"며 대꾸하고 나가려 했다. 이에 덤벼든 한의 부하들은 가볍게 제압했으나... [22] 한이 새장을 부수고 새가 윌리엄스의 시야를 가리지만 않았다면 윌리엄스가 더욱 선전했을지도 모른다. [23] 실제 이소룡의 제자다. [24] 작중 묘사를 보면 실력상 오하라를 제외한 나머지 일당들은 가볍게 바르는 수준이 확실한데, 체격 차이로 인해 그녀가 휘두르는 주먹 및 발차기의 공격력이 약해 결정타로 이어지진 못했다. [25] 경호원 넷을 맨손으로 죽여버리는데 허리를 반으로 접거나 목뼈를 뽑아 죽이는 괴력을 과시한다. [26] MI5 MI6 중 자세히 어느 기관인지는 불명. 직속 부하의 계급이 대령인 걸로 보아서는 계급이 최소 준장 이상인 것으로 추정된다. [27] L1A1 SLR로 무장하고 항공모함에서 헬기로 탑승하는 것으로 보아 주홍콩영국군으로 추정된다. [28] 이 장면에 나오는 지도 북쪽 선을 잘 보면 깨알같은 글씨로 홍콩을 나타내는 글씨가 나온다. [29] 이 장면에서 이소룡의 상대역을 하기 위해 홍금보와 성룡, 원표, 원화 등 여러 출연진이 경쟁한 걸로 알려졌지만 사실 당산대형 촬영 때 이소룡은 홍금보가 함께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홍금보는 당시 스케줄이 바빠 함께하지 못했는데, 이소룡은 이에 대해 굉장히 서운해 했다고 한다. 나중에 다시 만난 홍금보에게 이소룡이 불쾌감을 드러내자 그를 존경한 홍금보는 자초지종을 설명하며 그에게 사과했고, 결국 용쟁호투의 오프닝 장면에 출연한 것이다. 훗날 홍금보는 틈만 나면 "나 《용쟁호투》에서 이소룡과 1:1 겨루기를 찍은 적도 있다"며 자랑했다고 한다. [30] 연회씬에서 음식은 같은 것이므로 3일동안 찍었다고 한다. [31] 그의 부인이 대신 감독에게 양해를 구하느라 매우 고생했다고 한다. 이때 이미 병이 깊어진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있는데, 이 시기 이소룡이 심한 두통을 호소하거나, 어떨 때는 잠시 기절하는 일도 있었다는 증언도 있다. [32] 여담으로 이소룡은 성룡에게 실수로 곤봉을 너무 강하게 가격했고, 컷 사인이 떨어지자마자 곧바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이때 나중에 찍을 영화의 조연 자리를 주겠다고 약속했으나 이 영화 촬영이 끝난 후 얼마 되지 않아 이소룡이 세상을 떠난 바람에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되었다. 훗날 성룡은 이소룡의 이런 인간적인 면에 감동해 자신의 인생 최고의 은인이라 회고했다. 다만 홍콩 등지의 영화계 사람들의 이소룡에 대한 대외(對外)용 발언과 사적인 속내와는 다른 경우가 없지 않은데, 홍콩 신문과 잡지 등에서 이를 심층 취재하여 한때 논란이 된 적도 있다. [33] 참고로 성룡은 이미 1년 전에 정무문에서도 여성 배우와 대련하는 엑스트라로 출연했고, 영화 후반에 얼굴은 철저하게 가려진 상태에서 이소룡의 발차기에 맞고 날아간 관장 스즈키 히로시의 대역 스턴트도 맡았다. [34] 여기서 이소룡의 부인, 린다 리와 로버트 월의 증언 내용이 엇갈린다는 점 등에서 신빙성을 잃는다. 여러 정황으로 보아, 깡패들을 섭외했다는 말도 신뢰하기 어렵다. 자세한 것은 이소룡 항목 참고. [35] 이 병은 영화에서 유리 등을 깰 때 사용되는, 설탕 등의 화학약품으로 만든 병이 아니라, 진짜 유리병이었다. 당시 홍콩에서는 할리우드와는 달리, 설탕으로 유리를 만드는 기술이 없었다. 자세히 보면, 특수효과를 위해 만든 유리와는 깨지는 모양 자체가 다르다. [36] 이소룡을 모티브로 한 DOA 시리즈의 캐릭터 잔 리의 점프 다운 공격(상대 다운 시 점프하며 P+K) 또한 이 장면을 재현한다. 기술명도 이 영화의 영어 제목 'Enter the Dragon'. 또한 철권 시리즈 마샬 로우, 포레스트 로우의 9AK 역시 점프하며 상대를 밟아버리는 기술로, 이 장면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37]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권상우가 "대한민국 학교 다 좆까라 그래!"라며 지은 표정도 이 표정 연기의 오마주다. 그리고 만화 및 애니메이션 시리즈인 괴짜가족에서 나오는 이소룡을 패러디한 등장인물인 하루마키 류도 이 표정 연기와 유사한 표정을 취한 바 있다. [38] 조금 과장된 면은 있지만, 당시 중국 여성들이 강간에 대해 대처하는 전통적인 방식들 중 하나였다고 한다. 일본의 중국 침략 당시에도, 일본군에게 강간당한 여성들 중 자결을 택한 여성들이 많았다. 다만 강간당하다 죽는 장면이 원안(原案)이라면, 구미(歐美) 백인 남성들의 아시아 여성들에 대한 판타지(만만한 성적 노리개 등의 이미지)를 고려했을 가능성이 커진다. [39] 쫓아오는 오하라의 부하들과 싸우다 상의가 찢어져 가슴이 노출되는 장면도 제안받았지만 본인이 거절했다. [40] 이소룡이 세상을 뜨기 2달 전이다. [41] 특히 1970년대 블랙 익스플로이테이션과 맞물려 인종주의 액션물에서 대활약했다. [42] 본 보고서의 영어 제목은 히틀러의 비밀 전쟁지휘부 ' 늑대굴'(Wolf's Lair)도 차용했다. [43] 대표적으로 SBS에서는 맹룡과강, 당산대형, 사망유희를 1998년 설날 특선 '이소룡 걸작선' 3부작으로서 더빙 방영했다. 당시 이소룡 성우는 박기량. [44] 일반적인 격투 게임의 초필살기를 일컫는 명칭이다. [45] 재키 찬도 인조 팔을 사용하지만 겨우 숟가락과 칫솔뿐이다. [46] 한국에서는 인지도가 낮은 배우이지만 1996년작 여인사십으로 금상장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인디아나 존스: 마궁의 사원 도입부에 존스 박사를 죽이려고 하는 삼합회 보스 '라오 체'로 출연했다. [47] 그의 아버지 교의생(喬義生)이 1기 국민당 원로로 민국시기 재정부에서 일했다. 집안이 꽤 잘 살았기 때문에 엘리트 교육을 받은 듯 하다. 그리고 일본에 건너가 서적 외판원으로 일하기도 했다. 그래서 각종 영어와 중국 각지의 방언은 물론 일본어에도 능통했다고 한다. [48] 무술 대회에서 원인치 펀치 시범을 보인다거나, 중국 무술가에게 도전을 받았다던가, 길거리 싸움을 치렀다든가 등. [49] 이 영화에 출연하지는 않았지만 이들과 비슷한 연배의 홍콩 영화 배우인 서소강도 70이 넘은 나이에 현역 활동을 이어오다가 2024년에 식도암으로 별세하였다. [50] 당산대형은 2015년, 정무문과 맹룡과강은 2013년, 사망유희는 2016년에 재개봉이 이뤄졌다. [51] 제작자의 의도는 총없는 현대 쿵푸 이야기를 원했기 때문에 총기사용 아이디어를 반려시킨 것이고, 마이크 알린이 컨셉에 맞게 한의 섬을 제작했다고 한다. [52] 이소룡과 존색슨의 내기 싸움 [53] 최초로 거울방을 사용한 영화는 오손 웰즈 상하이에서 온 여인이다. 그리고 이 영화 이후에 사용한 영화는 탱고와 캐쉬(1989)하고 섀도우(1994)이다. [54] 실제로 이전에 출연한 정무문에서 이소룡이 악역 러시아인 무술가에게 암바를 당했는데 그대로 다리를 물어서 탈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