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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홍콩은 중국의 특별행정구로서 중국 인민해방군 남부전구 주홍콩부대가 주둔하고 있다.전통적으로 홍콩은 중국의 완전한 영토로서 그 당시의 중국 군대로부터 지켜져왔으나 아편전쟁 이후 홍콩이 영국에 점령되어 영국령 홍콩 시절에는 주홍콩영국군이 홍콩에 주둔했었다. 2차 대전 중에는 일본군이 주둔한 적도 있었다.
중국 인민해방군이 징병제였던 시절 중국 대륙에 등록된 후커우를 소지하고 있는 중국 대륙인들은 병역의무를 수행해야만 했다. 그러나 홍콩 시민권을 갖고 있는 홍콩 시민권자는 병역의무가 없다. #[1] 이는 영국령 홍콩도 똑같아서 영국군이 징병제를 실시하던 시절에도 징병 대상은 백인으로 한정되었고 중국계 홍콩인은 자원입대가 가능했다.
2. 주홍콩영국군(1841년~1941년, 1945년~1997년)
영어: British Forces Overseas Hong Kong
중국어: 駐港英軍
아편전쟁으로 인해 영국이 홍콩을 식민지로 점령하면서 영국군이 홍콩에 주둔하게 되었다. 통수권자는 당시의 영국군 통수권자인 영국 국왕과 총리였다.[2]
1941년 일본군의 침략으로 홍콩 전투에서 패배하면서 1945년까지 일본군에게 홍콩을 빼앗긴 적이 있으나 일본 제국의 패망으로 홍콩을 되찾아 반환 때까지 계속 주둔하였다.[3]
1967년에는 홍콩의 친중파들이 일으킨 폭동을 진압하여 51명의 사망자와 802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67폭동 참고.
냉전 시기 홍콩은 공산권을 방어하는 최전선이었고, 혼란스러운 중국을 피해 홍콩으로 피난을 오는 주민들이 많았기에 주홍콩영국군의 규모는 현재의 중국 인민해방군 주홍콩부대에 비해 컸다.
1984년 영중공동선언 이전 주홍콩영국군은 대략 사령관 소장, 육군 4개 연대[4], 해군 1개 전단[5], 공군 1개 비행단[6] 이렇게 4만 명이었다.
중영공동선언 이후 반환이 다가오면서 규모를 차차 축소해 반환 당일인 1997년 6월 30일에는 주홍콩영국군을 13,000명까지 줄인다.
1997년 7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으로 홍콩이 넘어가고 13,000여명의 영국군은 1997년 12월 23일까지 순차적으로 완전히 홍콩에서 철수했다.
그렇게 오랫동안 영국군이 주둔하다가 1997년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되면서 중국 인민해방군 주홍콩부대가 주둔해 오늘날에 이른다.
주홍콩영국군은 대부분 영국인이었지만 홍콩인의 입대도 있었는데, 영국군 직속의 홍콩군사복무단(The Hong Kong Military Service Corps)과 홍콩 총독부 소속의 왕립홍콩군단(의용군)(Royal Hong Kong Regiment (The Volunteers))으로 구분된다. 이는 중국 인민해방군 주홍콩부대가 홍콩인의 입대를 불허하는 것과 구분된다.
다만 그들은 홍콩 반환이후 영국 정부에게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하였고 대다수가 영국 시민권 획득을 거부 당했다.
3. 일본군(1941년~1945년)
홍콩 전투에서 일본군이 승리하면서 홍콩을 점령한 바 있었다.4. 중국 인민해방군 주홍콩부대(1997년~현재)
중국 인민해방군 주홍콩부대 참고.
[1]
단 지금은
중국 인민해방군이
모병제를 시행하고 있다.
[2]
영국의 식민지 총독은 크게 네 가지 직급으로 나눌 수 있다. 가장 낮은 직급이 바로 Commissioner/Administrator. 식민지라고 부르기도 애매할 수준의 매우 작은 속령에만 파견된다. 국왕의 칙허장도 받지 않으며 총리 선에서 임명장을 받는 수준으로 해결된다. 그 다음 직급이 Governor. 크기는 좀 작아도 중요성이 높은 곳에 Commissioner 대신 파견되며, 해당 식민지의 행정부 수반이다. 인사권은 총리가 행사하며
국왕은 승인만 한다.
홍콩 총독도 이 직급에 들어간다. 두 번째 직급이 Governor-General로 관할 식민지가 상당히 넓어 본국에서 일일이 관리할 수 없는 수준이어야 파견된다. 왜냐하면 이 레벨부터 명목상이지만 식민지 주둔군의 군 통수권을 보유하고 있다. 현재도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명목상의 영연방 자치령들에 남아 있다. 가장 높은 직급은 Viceroy (
부왕 副王).
대영제국을 통틀어서 단 1명만이 존재했으며,
영국령 인도에 국왕 대리인 자격으로 파견되었다. 사실 권한은 Governor-General과 거의 비슷했으며 단지 인도가 워낙 영국에게 중요한 식민지였고 규모도 상당하다 보니 아예 국왕의 대리인 타이틀을 붙여서 보낸 것이다. 국왕의 대리인인 만큼 식민지군 통수권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남작 이상의 작위를 받은 자만이 임명되었다.
1947년
루이 마운트배튼이 부임한 것을 마지막으로 인도가 독립하면서 더 이상 Viceroy는 임명되지 않고 있다.
[3]
반면
포르투갈령 마카오는 1976년
포르투갈군이 철수하여 1999년 중국 반환 때까지 군대가 없었다.
[4]
홍콩 곳곳의 병영에 주둔했다.
[5]
HMS Tamar(사령부.
타마르 공원,
타마르역 등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스톤커터 아일랜드(해안 요새 겸 병영. 섬 전체가
영국군 관할이었다.).
[6]
홍콩 카이탁 국제공항에 주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