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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9 21:23:34

외스타슈 4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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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CE0F25><colcolor=#fff> 불로뉴 백작
외스타슈 4세 드 불로뉴
Eustache IV de Boulogne
파일:외스타슈 4세.jpg
이름 외스타슈 4세 드 불로뉴(Eustache IV de Boulogne)
출생 1129년
프랑스 왕국 불로뉴
사망 1153년 8월 17일 (향년 23 ~ 24세)
잉글랜드 왕국 베리 세인트 에드먼즈
지위 불로뉴 백작
1146년 12월 25일 ~ 1153년 8월 17일
배우자 프랑스의 콩스탕스 (1140년 결혼)
형제 마리, 볼드윈, 기욤, 마틸드
아버지 스티븐 왕
어머니 불로뉴의 마틸다

1. 개요2. 생애

[clearfix]

1. 개요

잉글랜드 왕국의 왕자, 불로뉴 백작. 스티븐 왕의 왕위 계승자였지만 일찍 죽었다.

2. 생애

1129년경 스티븐 왕 불로뉴의 마틸다의 아들로 출생했다. 형제로 마리[1], 볼드윈[2], 기욤[3], 마틸드[4]가 있었다.

1135년 12월 잉글랜드 국왕 헨리 1세가 사망한 뒤 부친이 잉글랜드 왕위를 차지하면서 왕위 계승자가 되었다. 1137년, 그는 프랑스 국왕 루이 7세에게 노르망디 공작으로서의 경의를 아버지 대신 했다. 1146년 말 또는 1147년 초 기사 작위를 받았으며, 1146년 12월 25일에 불로뉴 백작에 선임되었다. 1140년 2월 루이 6세의 딸이자 루이 7세의 남매인 콩스탕스와 약혼했고, 얼마 안가서 결혼했다. 하지만 아직 나이가 어렸기에, 무정부시대에서 그의 역할은 그저 아버지의 원정에 동행하는 정도로 국한되었다.

1149년, 마틸다 여왕과 아들 헨리 플랜태저넷이 왕위를 차지하기 위한싸움을 재개하기 위해 잉글랜드로 향했다. 그는 이들을 저지하기 위한 아버지의 원정에 동행했다. 1151년, 외스타슈는 프랑스 국왕 루이 7세와 함께 노르망디 공국을 장악한 앙주 백작 조프루아 5세를 물리치기 위해 노르망디로 진격햇지만, 헨리 플랜태저넷의 군대에 의해 패배했다. 1152년 4월 6일 왕실 의회에서, 스티븐 왕은 외스타슈를 상속인으로 정식 인정하고 귀족과 성직자들에게 외스타슈 앞에서 충성을 서약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귀족과 고위 성직자 상당수는 이를 꺼렸고, 캔터베리 대주교 테오발드는 교황 에우제니오 3세가 스티븐이 불법적으로 잉글랜드 왕좌를 찬탈한 걸 비난하고 외스타슈의 대관식을 금지하겠다고 선언했다며 스티븐 왕의 뜻을 따르길 대놓고 거부했다. 스티븐 왕은 이에 분노해 테오발드를 추방했다.

앵글로색슨 연대기에 따르면, 외스타슈는 항상 선한 일보다 악한 일을 많이 하고, 땅을 황폐화하고 무거운 세금을 부과했으며, 잔인하고 오만한 성격이어서 잉글랜드 귀족들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군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교회와 수도원 재산을 종종 강탈해 성직자들의 반감을 샀다. 반면, 뉴버러의 윌리엄 등 일부 연대기 작가들은 외스타슈가 용감하고 군사적으로 재능이 있었다고 호평했다.

1153년, 헨리 플랜태저넷이 이끄는 군대가 잉글랜드에 상륙하여 맘스버리를 포위했다. 스티븐 왕과 외스타슈의 군대는 도시를 돕기 위해 이동했지만, 비가 오는 날씨와 규율 붕괴로 인해 퇴각했다. 헨리는 맘스버리를 점령한 뒤 잉글랜드 서부를 행진하면서 글로스터, 코벤트리, 워릭의 지지를 확보한 뒤 잉글랜드 중부로 이동해 레스터, 튜트버리, 베드퍼드를 확보했다. 그 후 헨리는 월링포드 공방전을 치르던 스티븐 왕의 본대에 접근했다. 1153년 7월, 헨리가 월링포드 인근 공성용 성 하나를 포위했다는 소식을 접한 스티븐 왕은 군대를 이끌고 가서 헨리를 쳐부수려고 진군했다. 그 후 양측은 템즈 강을 사이에 두고 대치했다. 이제 전쟁이 곧 벌어지려 했을 때, 오랫동안 이어지는 내전이 지긋지긋해진 귀족들이 협상하자고 간청했고, 성직자들도 휴전을 중재하겠다고 제안했다. 스티븐 왕과 헨리 모두 자신들을 위해 싸우길 바라지 않는 귀족들의 태도에 화가 났지만, 그들의 호응 없이는 전쟁을 이어갈 수 없기에 어쩔 수 없이 협상하기로 했다. 양자는 일단 휴전을 맺고 공방전을 중단하기로 했다.

외스타슈는 휴전이 체결된 것에 분노해 전쟁을 지속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아버지를 떠나 케임브리지로 이동한 뒤 새로운 원정을 벌이기 위해 자금을 끌어모으려 했다. 그러던 1153년 8월 중순, 그는 버리 세인트 에드먼즈 인근의 교회 영지를 약탈하던 중 급사했다. 세간에서는 그가 독살당했다는 소문이 떠돌았지만 진위는 불분명하다. 후계자로 정해뒀던 아들의 급사로 깊은 슬픔과 충격에 빠진 스티븐 왕은 평화 협상에 적극적으로 응하기로 마음먹었고, 1153년 11월에 스티븐은 왕으로 남되 헨리 플랜태저넷이 후계자로 지명되는 월링포드 협약이 체결되면서 무정부시대가 막을 내렸다. 연대기 작가 헌팅던의 헨리는 외스타슈와 제2대 노샘프턴과 헌팅던 백작 사이먼 2세 드 상리스 마틸다와 헨리 모자를 용납하지 않았으며, 두 사람이 잇따라 사망한 덕분에 내전이 끝났을 있었다고 밝혔다.

외스타슈는 생전에 프랑스 국왕 루이 6세의 딸 콩스탕스와 결혼했지만 자녀를 낳지 못했다. 그가 사망한 후, 콩스탕스는 툴루즈 백작 레몽 5세와 재혼했으며, 그가 생전에 소유한 영지는 동생 기욤에게 넘어갔다.


[1] 1131 ~ 1182, 어렸을 때 부모에 의해 수녀원에 보내졌고, 롬시 수녀원장이 되었다. 그러다가 1159년 동생 기욤이 사망하면서 불로뉴 영지와 작위를 물려받자, 플란데런 백작 티에리의 아들인 마티유가 그녀를 수녀원에서 납치한 뒤 결혼해 불로뉴 백작을 맡았다. 이에 교황청은 두 사람을 파문했고, 마티유는 1168년까지 버티다가 거듭되는 압박에 버티지 못하고 헤어졌다. 그 후 마리는 몽트뢰유 수녀원에서 여생을 보냈고, 마티유는 계속해서 불로뉴 백작을 역임했다. [2] 1136/1137, 요절 [3] 1135 ~ 1159, 불로뉴 백작, 서리, 페벤시 영주 [4] 1134 ~ 1140, 1136년 에브뢰 자작, 우스터 백작, 멜룬 백작을 역임한 갈레랑 4세 드 묄룬과 약혼했지만 1140년 6세에 요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