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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29 17:46:31

올리가르히

명칭 올리가르히 ()
Олигархи ()
Олігархи ()
Oligarch ()
등장 시기 소련 붕괴

1. 개요2. 상세3. 오해4. 관련 인물
4.1. 러시아4.2. 우크라이나4.3. 그 외
5. 관련 문서

1. 개요

파일:Iskazhennoye_peremen.jpg
변화를... 우리는 변화를 기다린다[1][2]

원래는 과두제를 뜻하는 그리스어 올리가르키아(ολιγαρχία)에서 유래한 러시아어 남성명사 올리가르흐(олигарх)의 복수형이지만 현대 러시아 시사용어로는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 및 과거 동구권의 경제를 장악한 특권계층, 대체로 소련 공산당 관료 출신이나 그들의 지원을 받은 사람들로부터 거대 재벌로 성장한 사람들을 가리킨다. 올리가르히는 현대 러시아의 근본적인 기득권 계층 중 하나다.

집권 초기 블라디미르 푸틴은 올리가르히 세력을 대거 숙청함으로써 국가 경제의 정상화와 민심을 동시에 얻을 수 있었다. 물론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교, KGB 출신 푸틴의 측근인 실로비키들이 득세하긴 했지만 실로비키들은 올리가르히처럼 대놓고 나대지는 않았고 특히 나라 전체의 운영도 신경쓴 편이라서 옐친 시절의 올리가르히들처럼 대놓고 국부를 빨아먹지는 않고 차라리 막나가는 이들을 제지하면서 적당히 뒷돈을 챙기는 스타일이다. 그리하여 올리가르히들이 득세할 때보다는 나라가 어느 정도 운영이 잘 되기 시작했는데[3] 이것이 푸틴이 장기집권하는 토대가 되었다. #

올리가르히의 대두는 러시아만의 문제는 물론 아니었으며 구소련 국가였던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 등에서도 나타났는데 경제 규모가 더 작은 나라들인 구 소련권 국가들에서는 체감상 더 심한 경우가 있었다. 심지어 구소련권에서 선진국 취급받는 발트 3국도 예외는 아니라서 리투아니아와 라트비아에서도 골머리를 앓은 바가 있었다.[4] 구 소련권에서 올리가르히 문제가 없는 곳은 정치적으로 후진국 취급받는 벨라루스와 투르크메니스탄인데 독재자 천상천하 유아독존인 동네라 그렇다.

어느 나라나 독재국가거나 자본주의 초기에는 정치권력과 유착한 억만장자, 기업집단 등이 탄생하기 마련이지만 현재 미국 강도 귀족들은 사실상 해체되거나 그냥 부잣집 정도로 추락(?)하였다. 하지만 올리가르히는 대놓고 중앙권력 전복을 시도하는 등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어떠한 불법행위를 자행하더라도 해당 국가의 입법&사법&행정 전반이 비호해 주면서 준 면죄부급의 경제적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일례로 한 미국의 억만장자가 올리가르히가 미국에 소유한 저택을 구입하고 싶다며 부동산 중개인에게 접촉하게 해 달라고 하자 그 중개인은 "제가 총에 맞는 것을 보고 싶나요?"라고 말하며 대단히 꺼렸다고 한다. 이들의 악명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는 일화다.[5]

2. 상세

올리가르히가 동유럽권에서 이토록 강력한 경제적 기득권을 가지게 된 것은 이들이 단순한 자본가가 아니라 자본주의와 정면 대립하는 동시에 막대한 권력을 가진 (구)관료계층이었다는 것에 근간을 두고 있다. 탈냉전 시기의 산물인 이들은 시대가 변해 신냉전에 들어선 지금도 각국의 경제에 무시하지 못할 영향을 끼치고 있다.

한국이나 일본의 재벌과 비슷한 이미지라고 할 수 있는데, 재벌의 경우 실제적으로 한일 경제발전에 긍정적인 영향도 주었음은 부정할 수는 없지만 올리가르히들은 소련의 유산을 받아먹은 뒤 국민들의 고혈을 빠는 데 혈안이 되어 있는 그야말로 경제의 암덩어리들이었다.

2.1. 탈냉전 시기

노멘클라투라로 비롯되는 소련을 비롯한 공산권 국가의 주요 관료층들은 프롤레타리아 독재= 민주집중제하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과 그에 따른 재력을 허용받은 자들이었다. 문제는 이들의 권력과 재력은 어디까지나 공산주의 시스템 하에서 인민들을 관리하고 부르주아들을 척결하는 것에만 한정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많은 부와 권력을 누렸지만 언제든지 정치적 결정하에 당에 의해 척결될 수 있는 신세였고 사유재산을 아주 잘 해봐야 제한적으로만 인정하는 공산주의에서 그들이 누릴 수 있는 선택권은 바로 철의 장막 너머의 '자본가'들보다 항상 제약되어 있었다.

즉, 자본주의에 대해 일정 수준 이상의 통찰력에 막대한 권력까지 가진 귀족들이 단지 자신들 머리 위의 그 이데올로기에 발목이 묶여 있던 상황이었다. 소련 붕괴를 통해 제2세계의 균열이 시작되자 노멘클라투라들은 그동안 공산주의와 냉전과 같은 온갓 제약 때문에 접근할 수 없던 '자본가적인' 선택지가 열렸다. 이 시점부터 노멘클라투라들과 같은 공산관료들은 더 이상 쓸모 없는 공산주의로서의 이미지를 버리고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과도기적 상황과 자신들의 기존 내부지식과 연줄을 적극 활용하는 ' 천민자본주의적 자본가'=올리가르히로 불리게 되었다.

탈냉전 시기의 (구)소련과 그 동맹국들은 정치와 경제를 막론하고 올리가르히들의 뷔폐나 다를 바 없었다. 본래 소련식 공산주의 시스템의 관료계층이던 올리가르히는 소련 붕괴 과정에서 에너지 자원/지하자원 국영 기업들이 민영화되면서 이를 싼 값에 구입해 해당 기업이 담당하던 영역을 독점해 엄청난 부를 손에 넣었다.[6] 그나마 구소련권의 경제가 다시 정상화되어 사람들이 주식을 살 여유가 생겼을 때는 이미 주요 기업들이 소수 계층에게 넘어간 지 오래였다.

올리가르히의 일부는 정계 및 레드 마피아와 결탁해 공생 및 불법적인 영역에도 손을 댔다. 1990년대에 이들의 부정부패와 사치향락은 그야말로 악명이 높았는데 러시아인들의 대다수가 물가폭등과 루블화 가치하락으로 고통받을 때 이들은 호화스러운 해외여행이나 고급 호화별장 따위를 지어서 사치스러운 생활을 즐기면서 나라에서 벌어들인 자금을 대거 외국으로 빼돌렸다. 보리스 옐친 대통령이 추진한 민영화 정책의 수혜자인 올리가르히는 옐친에게 전폭적으로 지원을 해 주었는데 민영 TV 방송에서 공산당 후보를 낙마시키기 위해 소련을 암울하게 그린 뉴스나 다큐를 집중적으로 방영했다.[7] 덕택에 1996년 대통령 선거에서 옐친이 대패하리라 예측하였으나 실제 선거에선 예상을 깨고 옐친이 53%로 재선에 성공했을 정도였다.

이로 인해 당시의 기업은 국내에 사업장을 짓고 고용할 여력도 의지도 줄어들었고 정부도 민생을 돌볼 여력이 줄어든 만큼 빈부격차는 더 극심해졌다. 특히 고작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불안하고 위태롭긴 해도 공산주의 시스템 아래에서 나름 제2세계 열강으로서 살아가던 소련 민중들 입장에선 올리가르히의 천민자본주의적인 패악질은 거의 세계멸망에 준하는 쇼크나 다름 없었다. 당시 러시아인들 입장에서 올리가르히 아래의 세상이란 지금까지 대적자로 여겨 온 서방에게 간이고 쓸개도 다 파는 부패한 지도층 아래 이전까지 상상하기 힘들던 무질서와 궁핍함으로 신음하던 삶이었다. * 동유럽(특히 러시아) 각지의 극단적인 마초이즘 & 네오나치 등도 '서구적 개혁'이라는 명분하에 올리가르히에게 온갖 고혈을 빨아먹히고 방치된 당대 사회상에서 비롯된 경향이 크다.

2.2. 신냉전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올리가르히의 천하는 스스로 내분 끝에 막을 내리고 말았다. 지속된 부패와 부정부패로 자국이 모라토리엄에 처했음에도 각국의 올리가르히들은 자신의 이익을 차지하기 위핸 내분을 서슴치 않았고 그 결과 상대방을 이기기 위해 경제와 무관한 제3의 정치세력을 부상시켰다. 당연하게도 이렇게 부상한 이들은 민중들의 지지에 힘입어 올리가르히를 압박하고 있다.

러시아에서 당대 올리가르히의 선두주자였던 베레좁스키는 뉴페이스였던 블라디미르 푸틴에게도 상당한 금전적 지원을 하기에 이른다. 결국 올리가르히의 지원 하에 푸틴은 총리가 되었고 제2차 체첸 전쟁에서의 승전으로 옐친에게 대통령직을 물려받았다. 그러나 당시 러시아의 정치체제는 수십년동안 이어진 소련의 민주집중제의 영향으로 대통령의 권한과 권위도 극도로 높았는데... 푸틴은 출신부터 경제에 의지하지 않는 별도의 정치적 기반을 가지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올리가르히의 행태가 악명 높아서 그들에겐 말뿐인 개방 이외엔 별 다른 명분도 없었고 이들이 돈을 이용해 다른 인물을 띄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사회 전반에 있었다. 그 결과 상당수의 올리가르히들을 푸틴에게 부패 척결 명목으로 숙청당하기 시작했다. 올리가르히 세력은 기껏 푸틴을 지원하고도 뒤통수를 거하게 맞고 몰락한 셈이었다.

숙청 이후에도 살아남은 올리가르히 세력들은 푸틴의 눈치를 보면서 충성하지만 과거만큼의 권력까진 접근하지 못했다. 그들을 대신해 권력의 정점에 선 존재들은 푸틴 대통령 본인을 포함하여 KGB 출신이 대부분인 실로비키다. 그나마 덜 해먹고 정권에 최소한의 성의를 보인 올리가르히들은 살아남아 때마침 다가온 러시아의 경제호황과 함께 더 많은 부를 손아귀에 쥐었는데 대표적인 인물로는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있다. 사실 아브라모비치는 베레좁스키의 동업자로 본디 고아 출신이지만 베레좁스키 후빨 줄을 잘 타서 석유 재벌이 되었지만 푸틴이 집권하자 푸틴에게 붙어서 베레좁스키의 발등을 찍었다. 양아버지 이상이라고 할 만한 사람을 배신할 정도였으니 돈 앞엔 장사 없나 보다.

2022년 3월 이후 카자흐스탄 정부가 올리가르히에게 사실상 전쟁을 선포한 것과 마찬가지인 통보를 했는데 정부는 통신, 철도 및 도로 인프라, 미디어 자산 분야를 국가나 시민 소유로 되돌리라고 발표했다. 물론 자기 노력으로 부를 이루거나 정당한 방법으로 자산을 산 사람에게 뭐라고 하는 것은 아니고 언제까지나 부당한 방법으로 헐값에 자산을 인수한 자들에게 불법적인 방법으로 취득한 자산의 반환을 요구한 것이다. 그래도 여기는 좀 나은데 러시아 본토에서는 푸틴을 규탄하고 전쟁을 반대했다는 이유로 대놓고 재산을 강탈당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올리가르히의 영향력이 감소하고 있다. # 특히 2022년부터 지속적으로 재벌들이 석연찮은 죽음을 당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올리가르히의 대부분은 외국으로 도망쳤으나 자국에 남거나 도망쳤다가 돌아와 서방에 도움을 요청해 자금과 군수물자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하는 소수로 양분되었다. 특히 후자는 러시아의 초토화 전술과 전쟁범죄로 인해 자기 소유의 사업체에 엄청난 피해를 입어 이빨을 갈며 적극적으로 협조 중인데 대표적인 사례로 아흐메도우와 전임 대통령 페트로 포로셴코가 있다. 돈의 원한은 무서운 것이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는 올리가르히들이 2월 초에 도망치자 우크라이나에 돌아올 것을 명령했지만 처벌하겠다고 닦달하지 않고 돌아오면 용서하겠다는 관용적인 태도를 보여서인지 개전 전후에 몇몇이 돌아왔다고 한다. 이들은 돈바스 전쟁 때 양다리를 걸쳐 사면을 노려야 하는 상황이기도 했고 러시아의 올리가르히가 여러 이유로 몰락하면서 전후에 반사이익을 볼 수 있으리라는 계산도 있을 것이다.

3. 오해

러시아의 올리가르히들이 푸틴을 무조건적으로 지지하고 옹호한다는 인식이 만연한데 사실은 전혀 그렇지는 않다.[8]
익명의 러시아 올리가르히(신흥재벌)는 지난 3월 중순 미국 벤처 투자자와 통화하면서 "푸틴 대통령이 혈액암에 걸려 매우 아프고, 우크라이나 침공 직전 관련 수술을 받았다"고 말했다고 미국 잡지 뉴 라인즈가 최근 통화 녹음을 입수해 보도했다.이 올리가르히는 경제 상황에 불만을 드러내면서 푸틴 대통령이 미쳤다고 말했다. 더 타임스 등 영국 언론들도 14일(현지시간) 이 보도를 대거 인용했다. #
두긴은 “자유주의자는 푸틴에 반대하고, 애국주의자는 그를 지지한다. 푸틴이 애국주의적 정책을 계속 펼치더라도, 그가 주저하는 동안 자유주의, 애국주의 양편의 지지를 모든 잃고 있는 것이다. 이는 위험한 게임이다. 하지만 푸틴이 해법을 갖고 있지 않겠냐”라고 말했다. 두긴의 관점에선 자유주의자는 주로 1990년대에 부를 축적한 기업인(올리가르히)들이다. 러시아에 대한 추가 경제제재 시 잃을 게 많은 이들이다. #

푸틴에게 동조하는 올리가르히들도 존재하지만 많은 올리가르히들은 푸틴에 대해 불만이 매우 많으며 푸틴이 파멸하기를 원하기도 한다. 이유는 아주 간단한데 대다수가 이기주의자라 나라나 국민들이 어찌되든 상관 않지만 자기 이권이 침해당하는 건 못 참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러시아와 서방이 대립하든 말든 크게 개의치 않으나 국제적 경제제재로 자신 및 운영 기업의 재산이 서방에 의해 압류당하거나 제재로 국내외의 사업을 진행하는 게 어려워지자 푸틴에게 불만과 반감을 가진 것이다. 괜히 알렉산드르 두긴이 이들을 욕한 게 아니다.

사실 한국에서는 올리가르히를 상당히 지엽적인 러시아의 정부와 유착한 러시아의 신흥 재벌의 의미로 국한해서 사용하는 등 올리가르히에 대해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올리가르히는 러시아에만 있는 존재가 아니고 우크라이나, 조지아, 몰도바, 헝가리 등 동유럽 전반에 존재한다.

올리가르히들이 부패한 존재들이지만 엉뚱하게도 외국 자본으로부터 어느 정도[9]는 국가경제를 지키는 역할도 하는데, 이는 물론 애국심 같은 이상을 위해서가 아니라 올리가르히들 자신들이 차지하는 경제적 이득 때문이다. 이들은 사업에서 새로운 외부 경쟁자를 원하지 않아 외국에서 들어온 투자자, 자본이 자신들이 장악하고자 하는 사업에 진출하는 것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막는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 자원이 많은 구소련 출신 국가들의 에너지, 천연자원 산업이 외국 자본에 의해 잠식되지 않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서방에서 모든 올리가르히를 제재하는 것은 아닌데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서 어느 정도 독립된 성향이 있거나 서방과 대립하는 정부에 우호적인 올리가르히들과 대립하는 올리가르히들을 남겨두는 정치질을 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기트 알렉페로프인데 국영 기업 로즈네프트의 회장 이고르 세친에 맞설 대항마로 인식해 서방에서 제재를 하지 않고 내버려 뒀다. (사례 출처:포브스)

4. 관련 인물

4.1. 러시아

4.2. 우크라이나

4.3. 그 외

5. 관련 문서


[1] 가사의 내용은 "변화를 우리 가슴은 원한다, 변화를 우리의 눈은 원한다, 변화를 우리는 기다린다"이다. [2] 빅토르 초이의 대표곡 '변화(Перемен)'의 가사를 인용한 것으로 말만 변화를 원하지 실상은 변화를 막는 걸림돌인 올리가르히를 풍자한 만평이다. 체제와 러시아 국민이 변화하길 외치는 노래를 소련 붕괴 후 러시아의 환경을 파탄으로 이끈 반역자 올리가르히들이 부르는 점이 역설적이다. [3] 올리가르히의 전횡을 방치했던 보리스 옐친 시절에는 러시아의 민생은 엉망진창이었지만 블라디미르 푸틴 집권 후 실로비키들이 전면에 나서면서 올리가르히의 전횡을 제지하면서 민생이 상당히 좋아졌다. 출처: 푸틴의 복귀와 러시아의 미래 # [4] 당장 드라슈스 케디스 사건도 케디스의 딸을 아내가 친척들과 공모하여 소아성애 취향(...)의 올리가르히들에게 구강성교를 시켰다가 일어난 참극이다. [5] 그 부동산 중개인도 괄괄한 성격의 승부사로 악명이 높았고 미국측 고객도 억만장자였는데도 불구하고 저런 반응을 보인 것이다. [6] 참고로 당시 민영화된 주식은 일반인들에게도 배분되었지만 1992년 초인플레이션 상황에서 일반인들이 가진 예금은 휴지조각이 되었고 월급도 푼돈이라 하루 벌어 하루 살기 바빴다. 이 때문에 대다수 가정에서는 형편이 되지 않아서 배분된 주식들을 헐값에 내놓는 경우가 많았고 심하면 청바지나 보드카와 맞바꿀 정도로 가치를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7] 대한민국의 국영방송사들도 1987년 대선에서 비슷한 방법으로 노태우를 밀었다. [8] 이들은 사실 푸틴보다는 옐친 정부의 지지세력에 가깝고 푸틴은 오히려 옐친 시절 지나치게 비대해진 올리가르히를 경계하여 자신의 KGB 시절 인맥이나 군부 출신, 자신의 고향인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을 기용하였다. 물론 올리가르히라도 자신에게 충성하는 사람이면 옐친 시절 이상의 특혜를 제공했다. [9] 어디까지나 어느 정도이지 결국 올리가르히들의 통제받지 않는 권력과 불법으로 축적한 막대한 경제 자산은 국가에 심각한 해악과 부작용을 초래한다. EU(유럽연합)에서 후보국, 정식 회원국 가입에서 요구하는 핵심 조건 중 하나가 탈올리가르히, 올리가르히의 권력 축소다. [10] 워너 뮤직 그룹의 실질적인 오너이다. [11] TNK-BP 사의 지분을 보유했으나 2013년경에 로스네프트에 매각했다. [12] 자신들이 키운 러시아 2위의 알루미늄 제련회사 수알을 올레그의 루살과 합병했다. [13] 단, 외국인은 출국은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