連続テレビ小説 NHK 연속 TV 소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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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이 땅! (よーいドン) |
오싱 (おしん) |
로망스 (ロマン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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おし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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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83년 4월 4일부터 1984년 3월 31일까지 방영된 NHK 연속 TV 소설. 평균 시청률 52.6%, 최고 시청률 62.9%로 일본 역대 1위 시청률을 기록했다.작가는 하시다 스가코(橋田 壽賀子, 1925.5.10-2021.4.4). 주인공인 오싱 역은 어린 시절은 코바야시 아야코, 청년기는 다나카 유코, 중노년기는 오토와 노부코가 맡았다.
이후 2013년 영화로도 만들어져 개봉되었다. 주인공의 이름이 오싱(여자)인데, 1907년부터 1983년까지 이 오싱의 일대기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한국에서 소설책과 아동용 만화책으로도 나온 바 있다.
Wavve, 왓챠, TVING에서 볼 수 있다.
1983년작이 맞나 싶을 정도로 화질이 좋으며, 아날로그 베타캠의 위력을 알려 준다.
2. 줄거리
이야기는 1983년, 부도 위기에 처한 수퍼마켓 체인점 창업주 80대 노년의 할머니 오싱(타노쿠라 신, 결혼 전 이름은 타니무라 신)이 가출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오싱은 자신이 태어난 곳인 야마가타현의 시골마을에 찾아가, 처음 식모살이하러 갔던 때인 1907년부터 회상하게 되는데, 전반적인 내용은 메이지 시대에 가난한 소작농의 딸로 태어난 한 여성 오싱이 다이쇼 시대와 쇼와 시대를 거치면서 성장하는 과정이다. 시대배경이 러일전쟁이 끝난 후부터 제1차 세계 대전과 제2차 세계 대전, 전후 일본의 고도성장까지 모두 커버하는 꽤 긴 사극이다.
방영 될 당시 1980년대 일본은 세계 가전제품, 자동차 시장을 휩쓸며 미국의 경제를 따라잡을 것이라는 예측이 논의될 정도의 시대였다. 이렇게 부유한 시대에 허전함을 느끼던 일본인들에게 가난한 소작농의 딸로 태어나 식모살이를 하던 여자아이가 일본이 성장하던 메이지 시대를 거쳐 성숙해지고 다이쇼와 쇼와 시대에 번영을 누리다 패전으로 몰락하고,[2] 다시 일본의 고도성장기를 거쳐 재기했다가 말년에는 오직 부자가 되는 것만을 목표로 삼고 살았던 것에 회의를 느끼는 과정을 그려냈던 '오싱'은 상당한 공감을 줬다.
원작자인 하시다 스가코에 의하면 오싱의 설정은 쇼와 시대에 온갖 고생살이를 해야만했던 어느 할머니의 투고를 받아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후 공지를 통해 쇼와 시대 할머니들의 투고를 받았는데 당시 어린 나이에 더부살이, 기녀로 팔려감, 고된 시집살이 등, 투고가 들어왔고 드라마의 뼈대가 다 여기서 나왔다고 한다. 이때 투고한 할머니들은 당시 여성으로서의 삶이 너무 힘들었고, 특히 기녀로 팔려갔던 일은 가족도 모른다고 하였다.
예외로 오싱이 슈퍼마켓 체인점으로 성공했던 설정은, 당시 최대 슈퍼마켓 체인이었던 다이에의 창업자이자 '일본 유통의 아버지'인 나카우치 이사오의 사례를 빌려온 것이라고 한다.[3] 참고로 다이에는 유동성 위기 때문에 2007년 일본 최대 유통기업인 이온그룹에 일부 지분을 매각하였고 2013년에는 완전 인수되어 자회사가 되었다.
3. 내용
다음은 한국 소설판을 기준으로 설명하는 오싱의 내용이다.[4]3.1. 1권 더부살이 편
오싱의 현재와 유년기를 중심으로 한다.1983년 일본 이세현에서 슈퍼마켓 체인점으로 성공한 오싱은 17번째 슈퍼마켓 개업식이 열리는 날 가족에게 알리지 않고 혼자 집을 떠나 가족들을 놀라게 만든다. 그때 양손자이며 중학생(드라마판에서는 대학생)인 게이[5]가 전에 할머니가 지나가듯 말했던 옛날 이야기를 단서로 야마가타의 한 온천을 찾아가 양할머니 오싱을 만나게 된다. 게이는 오싱과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지만 오싱은 돌아가는 대신 게이와 함께 여행을 다니며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평생에 걸친 이야기를 해준다. 이렇게 액자식 구조가 이 작품의 컨셉이며 5권까지 이런 식으로 진행된다.
1901년 야마가타현의 가난한 산골 마을에서 태어난 오싱.[6] 찢어지게 가난한 집이지만 형제들이 계속 쏟아져 나오면서[7] 먹고살기 위해 어린 나이에 어느 제재소 집안에 쌀 한 가마니 받고 더부살이로 팔려간다. 평소 엄마(후지)와 오싱을 폭력으로 다스리던 무자비한 아빠(사쿠조)는, 더부살이를 가기 위해 뗏목을 타고 떠나는 오싱을 따라 한없이 뛰어가다가 어느 강변에서 넘어지고 그만 그 자리에서 통곡을 한다.[8]
오싱은 제재소에서 애보기를 하며 아동 학대 수준으로 고생하다가 도둑으로 몰리자 도망을 가고,[9][10] 눈밭에 쓰러져 죽을 뻔했으나 쥰사쿠라는 탈영병과 쥰사쿠와 같이 사는 노인에게 구조된다. 노인은 쥰사쿠가 탈영병이란 사실이 알려질까봐 오싱을 보내려하지만, 쥰사쿠는 오싱도 자신처럼 힘든 상황에서 도망친 거라며 추운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면 마을로 데려 주겠다며 친오빠처럼 보살펴준다. 또한 오싱이 학교 갈 나이인데도 더부살이하느라 학교에 못 간 것을 알고[11]쥰사쿠는 틈틈히 히라가나와 산수를 오싱에게 가르쳐 주게 되는데... 오싱은 쥰사쿠에게 배우면서 쥰사쿠를 따르게되고, 알게 모르게 쥰사쿠의 탈영의 이유였던 반전성향과 비폭력주의에 호의를 가지게 된다.
이때 쥰사쿠 오빠가 오싱에게 알려준 반전시가 있는데,
아우여 그대를 위해 우네.
그대여 죽지말 지어다.
막내로 태어난 그대였기에...
로 시작하는 러일전쟁에 나간 동생을 걱정하는 내용[12]이다. 오싱에게는 이 시가 일종의 좌우명이 되어 평생 반전-비폭력주의자로 살아간다.그대여 죽지말 지어다.
막내로 태어난 그대였기에...
쥰사쿠와의 만남은 짧았지만 이것은 큰 의미가 있는 사건인데 2차대전을 살던 오싱이지만 기본적으로 반전-비폭력주의이다 보니 작품 전반에서 전쟁을 일으킨 일본 제국에 대해 은근한 비난을 보내고 있다. 참고로 이런 요소 덕분에 오싱 드라마판은 반일 감정이 강한 중국에서도 방영될 수 있었고 한국에서도 거부감 없이 인기를 누렸다.
봄이 되자 쥰사쿠는 약속한대로 오싱을 마을로 데려다주다가 경찰과 마주쳐 그녀가 보는 앞에서 총에 맞아 죽는다. 원래는 노인이 오싱을 데려다 줄 생각이었지만 그만 노인이 산길에 미끄려져 부상을 당했다.[13] 그렇게 경찰 손에 이끌려 집으로 돌아가자 어머니와 할머니는 죽은 줄 알았던 오싱이 살아돌아온 것에 기뻐하지만, 아버지는 품삯으로 받은 쌀을 도로 빼앗긴 것에 대한 분노와[14] 오싱이 탈영병과 함께 지냈다는 것을 집안 망신으로 생각하며 오싱을 구박한다. 그 사이 오싱 집안에는 새로운 동생이 태어났고, 먹고살기 위해 엄마는 온천의 기녀로 가버린다.[15] 소설 초반부에 게이가 오싱 할머니를 찾아낸 온천이 바로 이곳.
오싱은 노동능력이 없어 구박만 받는 할머니(나카)[16], 엄마 그리고 새로운 동생을 위해서라도 다시 더부살이를 떠난다. 이번에는 상업도시 사카타의 가가야라는 큰 쌀 도매상이다.[17] 오싱은 8살의 어린 나이지만 지난번 제재소 시절 온갖 일을 하며 고생한 경험에 근면함까지 발휘하여 새벽부터 밤까지 열심히 일하고 가가야의 실질적 주인인 구니와 그 며느리 미노에게 큰 사랑을 받는다. 이 과정에서 동갑내기인 손녀딸 가요[18]와는 처음에는 갈등을 겪다가 나중에는 평생에 걸친 우정을 맺게 된다.
3.2. 2권 첫사랑 편
오싱이 가가야에서 일하던 10대 시절과 첫 사랑, 친구와의 우정을 다룬다.가가야에서 일하던 열네 살의 오싱은 우연히 사회주의자 고우타와 만나게 되고 둘은 첫눈에 사랑에 빠지지만, 구니는 오싱을 하녀라기 보다는 손녀처럼 생각하며 정을 쏟았기 때문에 돈 많은 상인 집안의 차남에게 시집보내려 주선한다.[19] 어머니인 후지 역시 딸이 부잣집 며느리가 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매일 힘겨운 노동을 견디며, 오싱이 자신같은 인생을 살게 될까봐 고우타와 만나면 절대 안된다고 엄포까지 놓는다.
고우타에게 함께 도쿄로 떠나자는 고백을 받은 오싱은 갈등하고, 그 와중에 가가야를 물려받는 대신 학업을 이어가고 싶어했던 손녀딸 가요 역시 고우타에게 반해 오싱 대신 약속장소에 나가 함께 떠나버려 집안에선 대소동이 일어난다. 오싱도 처음에는 주인댁의 은혜와 어머니의 충고를 받아들여 시집가려했으나, 술에 취해 자기를 함부로 대하는 신랑감에게 환멸을 느끼고 파혼 후 고향으로 돌아가버린다.
고향에선 공장에서 일하다 폐결핵에 걸려 집으로 보내진 하루 언니가 아버지와 오빠에게 짐덩어리 취급을 받는다. 이어서 아버지는 집에서 밥만 축낸다며 오싱을 공장으로 보내버릴 계획하고 있었는데,[20] 말이 공장이지 사실상 기생으로 팔려가는 것이였다. 이런 분위기를 알아차린 하루 언니는 오싱에게 도쿄에 있는 미용실을 알려주며 도망가라는 말을 남긴뒤 숨을 거두고, 오싱은 가출해 하루 언니가 알려준 전통 미용실 '다카'에서 일하게 된다.
3.3. 3권 시집살이 편
오싱이 결혼 후 첫 아이 류를 출산하고 어려운 첫 고난을 맞이하는 이야기이다.처음에 오싱은 다카 미용실에서 선배 훈련생들에게 심한 텃세를 당하며 고생하지만, 타고난 성실함과 눈썰미로[21] 다카 선생에게 인정받는다. 다카 선생은 다른 훈련생들에게서 오싱을 보호하려고 일찌감치 독립시킬 생각을 하고 오싱에게 주로 카페 종업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출장 미용을 자주 나가게 했는데, 이 과정에서 카페의 종업원이 된 가요를 다시 만난다. 오싱은 가요에게 사요(가요의 하나뿐인 동생)의 죽음을 알리며 가가야 쌀집으로 돌아가도록 설득한다. 가요는 동생이 죽었다는 말에 할머니와 부모님을 위로만 하고 도쿄로 돌아올 생각으로 집으로 가지만, 몰래 집을 떠나려다가 자기를 발견한 할머니가 기절하는 일이 벌어지자 결국 어른들의 뜻대로 결혼하여 가가야를 잇기로 한다.
한편 오싱은 부유한 양복점 사장 다노쿠라 류조를 만나 결혼하고 장남인 류[22]를 출산하게 된다. 그리고 이들 부부는 아동복 사업으로 대성하여 새로운 공장까지 만들었는데 그때가 바로 1923년, 그 유명한 관동대지진이 일어나 모든 것이 무너져 하루아침에 알거지가 되었다. 아들인 류는 일을 도와주던 할아범이 자신을 희생하여 살아남았고 할아범은 류를 보호한 뒤 숨을 거둔다. 어쩔 수 없이 오싱 부부는 사가현의 시댁으로 가는데, 3남인 류조는 도쿄로 상경할때 이미 본인 몫의 재산을 받았기 때문에 본가에 아무 지분이 없어서 그저 얹혀사는 꼴이 된다.[23] 그래도 시아버지는 자상한 사람이라 류조와 오싱을 안타까워하지만,[24] 시어머니는 자기네 집안이 나름 뼈대있는 가문인데 가난한 소작농의 딸이 시집왔다며 오싱을 학대하며 모진 시집살이를 시킨다.
그 와중에 시누이와 같은 날에 둘째를 출산하게 되는데, 한 집에서 두 아이가 동시에 태어나면 한명은 죽는다는 미신을 믿은 시어머니의 의도적인 방치로 딸을 사산하고 만다.[25] 결국 오싱은 아들 류를 데리고 가출하여[26] 다카 미용실을 찾아가고, 다카 선생은 오싱을 배려해주지만 오싱은 시가에서 고생하며 손을 다쳐 더는 미용사일을 할 수가 없다. 이 사이에 어머니에게서 가가야의 큰마님 구니가 임종을 앞두게 되었단 소식을 듣고 가가야로 가서 구니의 임종을 지키게 된다.
3.4. 4권 유랑 편
오싱이 시댁의 학대 끝에 아들과 함께 달아나는 이야기이다.구니의 임종을 지키러 가가야 집안을 찾은 것을 계기로 가가야의 도움을 받아 밥집을 하게 되었는데, 첫사랑 고우타가 나타나 그녀가 술까지 파는 것을 보고 훗날 남편과 다시 합칠 때 문제가 생길 거라며 자신의 친척 집으로 보내준다. 한편 가가야의 후계자인 가요는 할머니와 부모님의 뜻에 따라 억지로 결혼했으나, 데릴사위로 들어온 남편과 서로 정을 못 붙여 하루가 멀다하고 오싱의 밥집으로 찾아와 일을 도와줬다. 오싱이 밥집을 접고 떠나라는 고우타의 충고를 받아들인데에는 가요의 부모에게 미안하고 눈치가 보이는 이유도 있었다.
미에현 이세로 간 오싱은 고우타의 친척인 생선 도매상 히사 아주머니의 도움으로 생선 장사를 하여 그럭저럭 먹고살게 된다.[27] 그리고 남편 류조가 고향에서 간척사업이 망한 김에 오싱을 보러 왔다가 합류하여[28] 함께 생선 장사를 하며 간신히 행복을 되찾는다.
3.5. 5권 통곡 편
오싱의 이야기에서 가장 슬픈 일이 연달아 일어난 이야기로 오싱의 중년기를 다룬다.평생 고생만 하신 어머니 후지가 사망하고,[29] 자신이 어린시절을 보낸 곳이자 도움을 받았던 카가야는 사고만 치다 종국엔 주식까지 손을 댄 데릴사위 때문에 패가망신한다. 평생의 친구 카요는 빚쟁이들을 피해 갓난아들 노조미와[30] 부모님을 데리고 도쿄로 도망치지만, 부모 역시 집안이 몰락한 충격으로 얼마 안 가 차례로 세상을 뜨고 가요 역시 하루아침에 매춘부로 전락해 병까지 얻는다. 돌도 안지난 아들 때문에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카요는 오싱을 만난 바로 다음날에 아들을 맡긴 후 지병으로 사망하고, 오싱은 차남 히토시와 동갑인 노조미를 양자로 받아들이기로 한다.
한편 과거에 오싱 부부와 인연이 있던 사람이 하쓰코라는 빈농의 딸을 홍등가로 보내는 일을 맡게되어 오싱네 집에 하룻밤 신세지게 된다. 오싱은 이른 새벽에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밥을 하는 하쓰코를 보고, 어린 시절 더부살이하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려 하쓰코를 수양딸로 받아들인다. 이후 하쓰코는 오싱의 배려로 고등학교까지 다니며 오싱의 자식들과 형제자매처럼 자랄수 있게 된다. 그런데 오싱의 장남 류가 대학생이 되며 하쓰코와 서로 사랑하게 되고, 오싱도 두 아이의 뜻대로 해주려하지만 그동안 하쓰코에게 친절했던 남편 류조가 뜻밖에도 반대하여 이어지지 못한다.[31]
오싱이 중년이 될 무렵은 2차 세계대전이었다. 남편 류조는 장교인 둘째 형의 도움을 받아 군납 사업으로 성공을 하여 큰돈을 벌게 되었지만,[32] 2차 세계대전은 일본 패망으로 끝나는 역사의 필연을 맞이하였다. 이에 큰 죄책감을 느낀 류조는 가족들에게 유서로 '청년들에게 일본군에 들어갈 것을 권했던 자신은 책임을 져야 한다'며 할복자살하고[33] 교토제대를 나와 가족의 기대를 한 몸에 받은 장남 류는 전사[34]하였다. 그야말로 통곡이었고 당장 먹고 살 길이 막막하여 오싱과 차남 히토시,[35] 양자 노조미는 농가로 가서 구걸을 하며 살아야 했다.[36]
그러다 이 과정에서 일종의 보따리장수로 생계를 이어갈 수 있었는데, 어느 날 전사한 류의 전우(가와무라)가 혼자 살아남은 죄책감에 가게라도 차리라고 목 좋은 곳에 땅을 사주어 여기서 식료품점을 차릴 수 있었다.[37] 이 무렵 노조미는 도예가를 만나 그에게 도예가의 가르침을 받으며 도예가의 길을 걷는다. 오싱은 노조미가 사업가가 되어 무너진 가가야를 일으켜세우기를 바라며 처음에는 반대했지만, 결국 노조미가 사업가 성향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돌아가신 가요 아가씨처럼 너도 예술적인 면이 있구나..."라고 쓸쓸한 얼굴로 말하며 노조미가 자신의 꿈을 찾아가게 한다.
이후 식료품점은 나날이 번창했는데, 차남 히토시가 부잣집 딸 미치코와 혼담이 오가게 된다. 사실 미치코네 집은 오싱의 식료품점 땅이 워낙 요지라 싹 밀어버리고 대형 슈퍼마켓을 만들 생각이었고, 실제로 투자를 제안했다. 하지만 오싱은 그렇게 되면 히토시가 며느리 미치코에게 잡혀 살게 된다고 생각하고, 땅을 담보 삼아 은행에서 대출하여 직접 슈퍼마켓을 차려 버렸다.
한편 히토시는 원래 자기 집 하녀로 일하던 착실한 유리와 사귀다가 잘 살고 싶다는 욕망에 유리를 배신하고 부잣집 딸인 미치코랑 결혼한 것이다.[38] 오싱은 이에 히토시에게 실망하지만 결과적으로 양자인 노조미와 유리가 결혼하여 다행으로 생각했다. 다만 유리는 시동생이 될 뻔했던 남자와 결혼했다는 죄책감, 더군다나 자신이 먼저 노조미에게 반했던지라 본인을 꽃뱀으로 보는 주변 시선, 히토시 부부와 마주치는 게 껄끄럽기 때문에 오싱과 하쓰코가 유리를 친절하게 대했음에도 살아 생전 한번도 가족 모임에 방문하지 못하다 교통사고로 일찍 사망하고 말았다.[39][40] 노조미와 유리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이 바로 본 이야기에서 오싱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중학생 (드라마에선 대학생) 손자 게이. 여기까지 얘기를 듣고서야 게이는 자신이 가가야 집안의 손자라는 것을 자각하게 되었다.[41]
그리고 오싱의 유일한 친딸[42] 데이는 슈퍼마켓 직원(다쓰노리. 히토시의 해군 후배)과 결혼하고, 오싱은 하쓰코와 같이 살며 일찍 엄마를 잃은 게이를 키운다. 이후 히토시 부부의 트러블이 히토시의 아들 타케시의 가출과 이를 통해 시간을 가진 끝에 어느정도 봉합되고, 히토시 부부는 오싱에게 같이 살 것을 제안한다. 그리고 오싱은 고민하다가 이내 이를 수락하고 하쓰코에게는 오싱과 히토시가 좋은 자리에 가게 자리를 구해 주어[43] 뜨개실 공예품 가게를 차려 독립하게 된다.
3.6. 6권 완결 편
할머니가 된 오싱이 양손자 게이에게 이야기를 마치고 첫사랑 고우타와 다시 만나는 모든 이야기의 완결.그리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다노쿠라 17호점 슈퍼마켓 개업식에서 사라진 오싱.
차남 히토시는 17호점 개업을 위해 대형수퍼 입점을 반대하던 그 지역 작은 가게들을 무시하고 새로운 대형슈퍼를 세웠는데, 이때 가장 강하게 반대하던 작은 가게 주인이 바로 첫사랑 고우타의 아들(사회주의 운동을 하던 고우타는 훗날 경철에 잡혀 감옥살이를 하고 전향한 후 나미키 가문에 데릴사위로 들어갔다.)이었다.
오싱은 자신에게나 가요에게나 첫사랑이었고 자신이 어려웠던 시절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고우타의 은혜를 생각해서 17호점 개업을 반대했으나, 아들 히토시는 자본주의 논리에 따라야지 그런 옛 인연에 얽매일 필요가 있냐며 어머니를 힐난한다. 결국 17호점의 개업이 코앞에 닥친 일로 열받은 고우타의 아들은 자신의 가게 부지를 다른 초대형 슈퍼마켓에 팔아 버렸고, 이 일로 다노쿠라 체인점 전체가 위험해질 상황이 된다.
이때 훌쩍 떠났던 오싱이 게이와 돌아오자, 히토시는 어머니 오싱에게 고우타를 찾아가 옛 인연에게 호소해서 최악의 사태를 막아달라고 부탁한다. 이에 다시 만나게 된 오싱과 고우타. 먼저 고우타는 아들이 워낙 완강하지만 어떻게든 설득해 가게 부지를 파는 것을 막겠다고 했지만, 오싱은 자신이 아들을 잘못 가르쳤다면서 그냥 자본주의 논리에 따라 가게 부지는 예정대로 팔라고 한다.[44]
결국 가게 부지가 팔려 초대형 슈퍼마켓이 생겼고 17호점은 경영난에 빠졌다. 문제는 1~16호점의 수익 전체로 17호점 건물 대출금의 이자로 내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17호점에서 자금이 안 돌게 되면 다른 전체 체인점에서 문제가 생기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 일로 히토시 부부는 이혼을 하네 마네 한다. 하지만 오싱이 남자라면 사업이 망했다고 자존심만 내세우며 아내를 떠나보낼 게 아니라 아내를 잡아야한다고 일갈하고, 이에 히토시는 그제서야 앞만 보고 무자비하게 달려온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깨달음을 얻고 생선 장사를 하던 어머니처럼 맨손으로 다시 시작하기로 결정하였고, 아내 미치코에게 진심을 털어놓고 화해한다.[45] 또한 그동안 속 썩이던 아들 다케시는 이제야 정신 차리고 아버지를 돕겠다고 하고, 딸들인 아카네와 미도리는 대학을 관두고 직장을 구해 부모를 모시겠노라 말한다. 또한 히토시의 아내 미치코는 평소 노조미와 하쓰코를 은근히 군식구 취급하며 멀리했으나, 자기들이 어려운 처지가 되었을 때 노조미와 하쓰코가 서로 집문서까지 내놓으며 도우려 애쓰는 것을 보고 두 사람의 진심을 깨닫게 된다. 즉 모든 걸 잃고나서야 오싱 집안이 화합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고우타는 아직도 오싱을 각별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초대형 슈퍼마켓이 확장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46] 마침 초대형 슈퍼마켓 임원 중에 과거 사회주의 운동을 같이 했던 친구가 있는 것을 알고 그 친구에게 직접 부탁하여 17호점을 건물값만 치르고 매매하게 도와주었다. 17호점의 매각으로 자금난이 풀린 다노쿠라 슈퍼마켓는 기사회생한다. 이제 다시 열심히 가게 운영을 하면 되고, 어려움 속에 저절로 가족 화합이 이루어졌다.
오싱은 고우타에게 또 한 번 고마움을 느꼈고, 바닷가에서 만나 아무 말 없이 회한에 젖는다. 이를 지나가던 한 부인이 보고는 "산책 중이신가요? 사이가 좋아 보이네요. 백년해로 하세요."라고 인사를 한다. 이에 오싱과 고우타는 쑥스러움에 서로를 보며 웃음으로서 오싱 할머니의 82년 이야기는 막을 내린다.
4. 반향
평균시청률 52.6%, 1983년 11월 12일 186화에서는 일본 TV 드라마 사상 최고 시청률인 62.9%를 기록했다. 2000년대 들어서도 깨지 못한 일본 드라마 역대 최고 시청률. 80년대에는 시청률 자체가 지금보다 높았다고는 하지만, 50~60%는 당시로서도 엄청난 수치였다. 당시 일본은 이미 인구가 약 1억2천인데다 공중파 갯수도 여러 개였기 때문에, NHK 연속 TV 소설이라 해도 30% 정도의 시청률을 기록했었다. 오싱 역시 30%대 시청률로 출발했는데, 몇화만에 50% 시청률을 넘기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오싱'과 '신드롬'의 합성어인 '오싱드롬'이란 말이 생길 정도였고, 이 내용은 타임지에도 실리게 되었다. 배경이 된 야마가타는 관광객이 크게 증가했고, 식당 메뉴로 드라마 속 무밥을 내놨을 정도였다고 한다. 오싱 방송 시간만 되면 주부들이 TV앞에 몰려드는 바람에 수도 사용량이 줄어들었다고 할 정도였다.
그 파급력은 정계에도 미쳐, 당시 총리였던 나카소네 야스히로는 오싱 국회론을 피력했고, 10년 전 총리였던 타나카 카쿠에이는 자신의 삶을 오싱과 비교하며 '인내'란 말을 강조하기도 했다. 정작 극본가인 하시다 스가코는 정계나 재계에서 오싱을 인용하는데 위화감을 느끼며 '인내'란 말을 자제해달라고 밝혔다. 이외 미국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1983년 방일했을 때, 국회에서 '일본에는 오싱의 정신이 있다'면서 일본인을 오싱에 비유해 칭찬한 적이 있다.
당시의 일본 덴노 히로히토는 오싱을 감상한 뒤에 "전쟁 당시에 일본인들이 저렇게 고통받았는 줄은 몰랐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는 작가 하시다 스가코의 목표가 적중한 것으로, 일부러 오싱의 나이를 히로히토의 나이와 같게 설정했다고 한다. 덴노가 당시 일본인이 어떻게 살았는지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에 집필했다고 한다.
인내하는 여성을 그린 이미지가 클지 모르겠지만, 막상 중요한 시기에는 여성이 개척해가는 이미지를 그리고 있다. 할머니의 죽음 앞에서 난 그렇게 살지 않을거라 분개한다든지, 결혼 상대가 억지로 정해지자 의지를 가지고 도망쳐버리는 일 등이 그 예다. #
해외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다. 전세계 63개국에 수출되었고, 중화권, 몽골, 베트남, 이란, 이집트 등지에서 높은 인기를 누렸다. 이란에서는 시청률 90%를 기록했고, 이집트에서는 오싱 방송시간에 정전이 발생해 방송을 보지 못했던 시청자들이 전력회사까지 찾아가 폭동을 일으키는 사태까지 일어났다. 벨기에에서는 수도원의 수녀가 오싱을 보기 위해 기도 시간을 변경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태국에서도 지상파에서 방영되어 8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했다.[47]
이란계 프랑스인 만화가 마르잔 사트라피의 페르세폴리스에서도 언급된다. 이 내용 때문인지 "검열로 오싱의 직업을 게이샤에서 미용사로 바꾼거고, 그래서 시어머니가 오싱을 싫어한거다"라는 얘기가 퍼져있다. # 이는 잘못된 정보다. 해당 만화의 정확한 내용은 이러하다. # 그쪽 문화 입장에선 시어머니가 왜 저렇게 오싱을 싫어하는지 이해가 안 갔다고 한다. 이후 "오싱의 직업은 게이샤인데 검열로 인해 미용사로 바꾼 것"이란 말을 들었고, 오싱이 여종업원들과 어울리는 장면이 많으니 그 말이 신빙성 있게 들렸었다는 내용이다. 당시 퍼져있던 루머에 대해 말했을 뿐이다.
중국에서는 1980년대에 드라마를 수입해 방영했으며[48], 험악한 세월 속에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살아가는 주인공의 모습이 문화혁명 시기를 막 벗어난 중국에서도 공감대를 얻어 엄청난 인기였다고 한다. 20년이 지난 2006년에도 다시 재방영했다.
우리나라에도 오싱의 명성이 알려졌었다. 당시 일본 대중문화가 개방되지 않았던 시절이라 드라마 방영은 되지 않았으나, 드라마의 시나리오집을 가지고 번역자 김균이 만든 소설이 크게 성공했다. 1년만에 65만부를 판매해 번역물 역대 1위 판매량을 기록했다고 하며, 1987년 '현대사회연구소'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에 대해 조사했는데 삼국지, 오싱, 흙의 순서였다고 한다. 일본 TV 전파가 잡히는 부산과 울산, 마산 지역에서는 오싱이 꽤 시청되기도 했다.[49][50] 또 1985년 아역배우 김민희가 오싱 역을 맡고 한국 버전으로 로컬라이징한 국내영화 오싱이 만들어졌다.[51] 그래서 일본판 드라마를 보지 않고 한국판으로 접한 사람도 꽤 있는 편. 국내 대중들도 1995년 무렵, 황혜영이 그녀의 드라마 데뷔작인 MBC 드라마 <호텔>에 조연으로 출연하게 되면서 인터뷰를 했는데, "오싱처럼 감동적인 연기를 하고 싶다"고 언급한 적이 있었다.
5. 여담
- 1983년 8월15일부터 6일간 드라마 방영을 중단하고 그 시대 여성들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작품이 방영되었다. 이는 오싱 역의 다나카 유코가 건강 문제로 쓰러지는 바람에 촬영일정을 맞출 수 없어 벌어진 일이라고 한다. 당시에는 이런 사정이 공개되지 않아 시청자들 항의가 많이 들어왔다고 한다.
- 2019년 카요 역의 배우 아즈마 테루미와 남편 류조 역의 배우 나미키 시로가 인터뷰를 한 오싱 특집 기사가 나왔다. # 이 기사에서 밝힌 내용은 다음과 같다.
- 나미키 시로의 말에 따르면, 당시 다나카 유코가 대사를 하다 갑자기 쓰러졌다고 한다. 자기가 부축하고 있다가 구급차를 실어 보냈고, 이후 다나카 유코가 입원을 하면서 촬영이 한달여간 중지됐다고 한다.
- 아즈마 테루미의 말에 따르면 하시다 스가코 작가님의 대본을 외우는데 매우 고생했다고 한다. 분량이 많은 것은 물론이고, 문장 구성이 탄탄해서 애드립이 끼어들 여지가 없어 조사 하나 틀릴 수 없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다나카 유코는 거의 모든 장면에 출연하니 고생이 말이 아니었을 것이라고 했다. 특히 어린 시절 편이 국민적 인기를 얻은 상황이어서, 그것을 이어받는 압박감이 컸을거라고 한다. 그럼에도 최고 시청률은 다나카 유코의 출연 분량에서 나왔다. 회차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각주 참고 바람.[52] 다나카 유코의 마지막 촬영날 자신이 꽃을 전달하는 역할을 했는데, 약한 모습을 보인 적 없던 그녀가 울었다고 한다.
- 나미키 시로도 대본 앞에서 고생했는데, 다나카 유코가 '나미키 군, 이 정도로 힘든 현장은 그닥 없어'라며 위로해줬다고 한다. 극단 '문학좌'의 동기인데, 자기는 야간부여서 접점은 잘 없었다고 한다. 다만 연기력에 대한 소문은 익히 들었었다고 한다. 한번은 다나카 유코가 연기를 시연하는 자리가 있었는데 레벨이 달랐다고 한다.
- 나미키 시로의 말에 따르면, 지금 생각해보면 젊은 시절의 객기지만 당시엔 본인조차 '문학좌' 배우의 프라이드랄까, 연극에서 NHK 아침드라마라는 전혀 다른 환경에 와서 통속적인 것에 맞닥뜨렸다는 쇼크가 있었다고 한다. 다나카 유코는 자기보다 몇배는 더 그런 갈등이 있었을거라 생각한다고 한다. 오싱이 국민적인 드라마가 되어버렸으니 말이다.
- 드라마가 국민적 인기를 얻었기 때문인지, 한번은 자민당 의원이 촬영 현장에 찾아왔었다고 한다. 이때 다나카 유코가 나미키 시로에게 '치아를 절대로 보이지 않도록 하자'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렇게 심지가 곧으니 이후에도 대여배우의 길을 착실히 걸은 것 같다고 한다.
- 기자는 다나카 유코의 연기에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색기가 있었다고 평했다. 단순히 근면하게 일하는 여성의 모습이었다면 그렇게 국민적 성공을 거둘 수 없었다고 봤다. 아즈마 테루미 역시 그녀의 연기에는 뭔가 오싹한 색기가 있었다고 한다.
- 작가 하시다 스가코의 말에 따르면, 당시 대본이 통과되는데 매우 힘들었다고 한다. TBS에서도 거절당했었다고 한다. 버블경제 진입 직전의 화려하던 시절에, 온갖 고난과 역경으로 점철된 옛날 얘기를 누가 보냐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실제로 당시 인기작들을 보면 젊은층의 연애물, 아이돌 출연 드라마, 서스팬스물 같은 작품들이었다. 다만 자기한테 성공 여부는 상관이 없었고, 당시 여성들의 삶과 전쟁의 책임 문제 등을 알려야 한다는 생각 뿐이었다고 한다.
- 오싱의 어린 시절을 연기했던 코바야시 아야코는 매우 긴 대사를 훌륭히 소화하며 어린 나이에 여배우 혼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추운 촬영 현장에서 감기에 걸렸는데, 이것이 심해져 촬영 스케줄에 민폐를 끼칠 것을 우려해 3개월간 머리를 감지 않았다고 한다. 애초에 빡빡한 스케줄 때문에 제대로 꾸밀 여유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냄새도 났는데, 아무튼 결과적으로 리얼한 재현을 해내게 되었다. 엄마 역인 이즈미 핀코는 추운 강에 몸을 담구는 등의 힘든 촬영으로, 3개월간 생리가 멈췄었다고 한다. 당시 30대 나이였는데, 드라마 중반 이후 60대 시절의 역할을 하기 위해 치아를 전부 뽑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에 작가 하시다 스가코가 말렸다고 한다.[53]
-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아무래도 고부갈등이 심하게 묘사되는데, 시어머니가 오싱을 며느리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시집살이를 넘어서서 학대하는 수준으로 나온다. 오싱의 시가는 과거에 사가현의 무사 집안이어서 나름 뼈대 있는 가문이라서(사족이 폐지된 드라마 속 시점에서는 지주 신분이 되었다.) 시어머니는 소작농 집안 출신인 오싱을 무시하고 못마땅해하며, 처음부터 결혼을 반대했던 것.[54] 이렇다 보니 사가현으로부터 '사가의 여성은 그렇지 않다' '우리 지역 이미지를 망치고 있다'라며 NHK에 항의가 쇄도했다고 한다. 오싱의 시어머니 역을 맡은 배우는 "길거리를 지나가기만 했을 뿐인데 사람들이 노려보았다"고 불평할 정도였다. 다만 작가 하시다 스가코한테 있어, 사가현 이외의 지역은 생각할 수 없었다고 한다. 전쟁을 실컷 부추긴 남자들이 전쟁 후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행동하는 것을 직접 경험한 하시다는, 무사도를 가지고 이를 비판하는 스토리를 구성했다. 무사도라고 하면 하가쿠레이니, 사가현의 유서있는 집안의 후손이어야만 했다고 한다.
- 2019년 12월 인터뷰에 따르면, 작가 하시다 스가코가 생각하기에 다나카 유코는 오싱 역할도 작가 본인도 싫어하지 않았었나 싶다고 웃으며 답했다. # 다나카 유코와 대화해본 적도 눈인사를 나눠본 적도 없이 드라마가 끝났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나 섬세한 연기를 훌륭히 해내어, 명배우라고 마음속으로부터 존경한다고 말했다. 애초에 하시다 스가코는 어떤 드라마든 출연자와 개인적인 친분을 가지지 않고, 배역에 참견하는 일도 없다고 한다. 괜히 편애할 수도 있고, 잘 좀 써달라는 말을 듣는 것도 싫었다고 한다. 예외는 남편이 '농촌 어촌 여배우'라고 귀여워했던 이즈미 핀코[55]뿐이라고 한다.
- 「MORE」1983년 8월호 등에 나온 내용에 따르면 이렇다. 드라마 속에서 오싱은 몇번이고 닥치는 시련을 참고 견디면서 헤쳐 나간다. 다만 그 성격은 다나카 유코와 많이 달랐던 것 같다. 그 때문에, 촬영 중 각본을 건네 받으면 우선 「어디 장난칠 곳은 없을까, 내가 즐길 수 있는 곳이 없을까」라고, 오싱의 성격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곳을 발견하는 것으로 기력을 북돋우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하시다 스가코의 각본은 대사가 매우 긴데다가 조사를 하나만 틀려도 의미가 바뀌어 버리기 때문에 외우는 것만으로도 힘들었다. 그런 만큼 연기도 좀처럼 자유롭지 않고, 게다가 국민적 인기를 얻은 어린 시절 편을 이어받았다는 부담감이 컸다. 결국 녹화 중에 쓰러져 그대로 입원, 촬영은 1개월 동안 중지되었다. 2015년 NHK 연속 TV 소설 마레에 출연했을 때는, 여러 애드립으로 촬영 현장을 화기애애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 1986년 다나카 유코가 라디오에 출연했을 때 영향을 받은 배우가 누구인지에 대한 질문이 나왔는데, 오싱에서의 '와타나베 에리'를 꼽았다. 오싱 오빠의 아내 역을 맡은 배우다. 둘이 동갑인데, 회식 때 노래방에서 부르는 노래가 대단해 맨 앞줄에서 목이 갈라지도록 환호했었다고 한다. 연출과 배우를 겸하며 다수의 연극을 창작 공연했으며, 2020년대까지도 활발히 활동하며 유명 연예인이 되었다.
- 일본에서 재방송이 꽤나 오랫동안 되지 않았다. 1984년 여름에 어린 시절 편만 재방송이 된 적은 있었다. 2003년 이후 풀렸는데, 이는 극단 '문학좌'에서 허가를 내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다나카 유코가 오싱 역의 인상으로 고정되는 것을, 문학좌가 꺼렸을 것이라고 추측된다.[56]
6. 미디어 믹스
6.1. 영화
6.1.1. 일본 영화
2013년에 영화로도 개봉했는데 오싱 역의 오디션 경쟁률이 무려 2500:1이었다. # 결국 오싱 역은 아역 하마다 코코네가, 오싱의 어머니 역은 우에토 아야가 맡았다. 오싱의 아버지는 SMAP의 이나가키 고로가 맡았으며 드라마판에서 어린 오싱 역을 맡았던 코바야시 아야코와 엄마 후지 역을 맡았던 이즈미 핀코도 출연했다. 여러 한계로 인해 1907년부터 1908년까지의 이야기만 다룬다. 오싱을 모르는 세대에게 어필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오싱의 어머니 역을 맡은 우에토 아야나 오싱 역을 맡은 하마다 코코네는 오싱의 방영 후인 1985년과 2004년생이다. 이나가키는 1973년생이지만. 일본이 군국주의에 빠졌던 부분에 대한 묘사를 다소 비판적으로 다루었다. 오싱에게 글을 알려준 사냥꾼 순사쿠가 러일전쟁에 참전한 뒤 PTSD로 인한 탈영병으로 나오고, 일본군 헌병들에게 살해당하는 장면이 나오고, 오싱이 전쟁을 비판적으로 말하는 부분도 있다.[57]드라마판의 오싱 어린 시절. 당시 아역이었던 코바야시 아야코가 오싱 역을 맡았다.
영화판의 오싱 어린 시절.
6.1.2. 한국 영화
한국에서 1985년에 같은 내용으로 영화가 개봉된 적이 있다.적절하게 일제강점기로 로컬라이징되었으며[58], 사냥꾼 순사쿠는 일본군을 쏜 독립군으로 변경. 가가야의 정미소 이야기도 비교적 한국적으로 바뀌는 등 나름 신경 쓴 흔적이 보인다. 당시 영화를 접한 사람들에게는 나름 눈물 쏙 빼는 명작 취급을 받는 듯.
주인공 이름은 충격적이게도 오싱(...) '신이'로 부른다. 오싱 역은 김민희, 가가야의 딸 '카요'의 이름은 '혜자'로 바뀌었다.
기생이 된 어머니를 보고 마음 아파하는 오싱의 모습을 보곤, 정미소에서 결국 집에 돌아가도록 허락받게 된다. 눈 앞에서 할머니의 임종을 지켜보게 되고, 그 관 앞에서 '나는 이 집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며, 돈 벌어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며 다짐한다. 그리고 오싱이 관객들에게 건네는 위로를 마지막으로 영화는 끝. 1부라고 나왔지만, 뒷 이야기들도 제작하려 했는지는 불명.
6.2. 한국 소설
오싱은 원작 소설이 없고 처음부터 시나리오 작가 하시다 스가코에 의해 드라마로 제작 되었다. 시나리오는 드라마 방영 이후 곧바로 출간됐는데, 이걸 번역자 김균이 풀어내어 한국에서 소설로 발매한 것이다.그리하여 1984년에 '청조사'를 통해 6권짜리 소설이 나오게 되었다. 이후 2000년, 2002년, 2008년, 2013년 등 여러번 재판이 나왔다.
시나리오집이 기반이다 보니 대화로 표현되는 분량이 많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소설로 성립할 수 없으니 번역자의 재량이 들어가 있다. 예를 들어 아래와 같은 문장은 시나리오집에 없는 부분이다. #
'밤새 뜬눈으로 설친 오싱에게 아침은 유난히도 빨리 찾아왔다. 방안에서 후지는 애처로운 얼굴로 오싱에게 조그만 보따리를 메어 주며 간간이 낮은 한숨을 내쉬곤 했다'
2011년에는 3권짜리로 재판 되었는데 같은 출판사이지만 역자가 최영혁으로 변경되었다. 아무래도 소설을 번역한게 아니라 드라마를 소설로 변경시킨 것이다 보니 역자의 재량에 따라 변경될 여지가 커서 6권짜리 소설과는 내용이 살짝 다르다.
아동 버전으로 '어린이를 위한 오싱'이라는 제목으로 4권 짜리가 2004년, 2012년 서윤석 그림으로 나왔다.
6.3. 한국 만화
만화책도 있는데 이신의 그림으로 2002년에 12권짜리로 발매 됐다.(속)오싱이라는 책도 있는데 이건 원작 시나리오 작가인 하시다 스가코의 다른 소설이다. 전 5권, 한밭, 홍영의 역.
'오싱의 딸'은 아무상관 없이 제목만 빌려온게 아닌가 싶은데, 하시다 스가코저, 전 4권, 청조사, 김규 역.
[1]
세 사람 모두 오싱이다. 1983년 82살인 현재의 오싱, 1907년 이야기의 시작에서 6살인 오싱, 1923년 청년기의 22살인 오싱.
[2]
정작 작가 본인은
경성에서 태어났으며 진학할 때에야 일본에 갔기 때문에, 오싱과는 전혀 관계없는 환경에서 자랐다.
[3]
여담으로 나카우치는 오싱과 달리 조부 때부터 고베에서 큰 약방을 경영해온 집에서 자란 도련님이었다.
[4]
드라마와 소설은 좀 다른데 시나리오를 기반으로 소설화 했다고는 하지만 심리묘사 등 해석하는 입장에서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고, 소설화 하는 과정에서 의도나 감정이 개입될 수도 있으며, 드라마판에서처럼 뉘앙스나 배역들의 연기로 표현될 부분이 소설에서는 문장으로 확정적인 표현이 되어야 하기에 원본 그대로의 디테일을 살리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전반적으로 스토리의 줄기는 같으나 디테일한 부분(한일간 정서의 차이로 인해 수정된 부분이나 주인공의 시련을 부각시키기 위해 더욱 모질게 수정된 부분이 소설판에는 꽤 있다)에서 차이가 많이 나기 때문에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두 가지 모두 감상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드라마는 현재 wavve와 tving에서 볼 수 있다(2024년 2월 기준. 156화까지). 편당 15분 내외로 짧고 사가현 시가살이 이전까지는 발암전개도 별로 없어서 몰입도가 높아 부담스럽지 않다.
[5]
게이의 아버지 노조미가 오싱의 양아들이다. 게이는 어려서 어머니를 잃어서 양할머니 오싱의 슬하에서 자랐기 때문에 오싱과는 친손자보다 더 친한 사이다.
[6]
판본에 따라 고향 마을에 관한 부분이 다르게 묘사된다. 워낙 작고 빈민촌 수준으로 못살던 마을이라 손주와의 여행 중에서 다시 찾아내는데 실패했다는 판본도 있고, 오싱이 게이에게 업혀서 눈밭을 헤치고 갔더니 이미 아무도 살지 않은지 오래된 상태로 발견하게 되는 판본도 있다. 어느쪽이든 간에 워낙 가난하고 깊은 산골이라 이제는 사람들 기억속에 사라진 버려진 곳이라는 점은 같다.
[7]
그 와중에 밭일을 하는 오빠들은 밥을 몇그릇씩 먹어댔다.
[8]
원판에서는 그리 폭력적이지는 않지만 다만 무뚝뚝하며 7살 밖에 안 된 어린 딸을 아무렇지 않게 더부살이 보내려고 하고 심지어 더부살이 값으로 보내온 쌀로 밥을 지어 먹이려고 하자 아까운 쌀을 펑펑 써댄다는 둥 잔소리를 하는 무정한 사람처럼 표현되다가 오싱이 뗏목을 타고 집을 떠날 때 남들 몰래 뗏목을 따라 뛰어가다가 넘어져 통곡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를 보고 오싱도 아버지도 자신을 미워해서 그러는게 아니라 가족을 책임지고 먹여살려야 하지만 극도로 가난한 소작농의 삶에서 정에 휘둘리면 안되었던 아버지의 입장을 이해한다.
[9]
하녀장의 돈이 없어졌는데, 오싱의 할머니가 준 돈(할머니가 준 유일한 물건이라 작은 주머니에 넣어 목걸이처럼 목에 걸고 다녔다)을 본인 돈으로 착각하며 도둑으로 몰린다. 후에 진실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하녀장은 반성은 커녕 쌀 한가마니를 주고 데려왔는데 양심이 있으면 돌아와야 한다고 중얼거렸고, 주인 부부도 엄동설한에 나간 아이를 찾는 시늉은 고사하고 오히려 계약기간을 못 지켰으니 품삯으로 준 쌀을 돌려받아야 한다며 사람을 시켜 오싱네에 가져다준 쌀을 도로 뺏어오게 한다.
[10]
이는 드라마판에서는 하녀장 외에 다른 인물들은 오싱에게 비교적 따뜻한 모습을 보이는 것으로 묘사된다. 주인 부부는 오싱이 더부살이를 하면서 소학교에 다니는 것을 흔쾌히 용인해 주었으며, 이후에도 도망친 오싱이 걱정되어 사람을 써 오싱을 찾으려는 노력을 보여준다.
[11]
사실 단순한 글과 산수만 가르쳤던 그 시대 마을 소학교 특성상 담임 교사의 배려로 아이를 업은체 오전 수업을 들을 수는 있었지만 남학생들의 괴롭힘과 눈칫밥에 못이겨 먼저 그만둔다.
[12]
천황의 명에 의한 성전인 러일전쟁을 거부하여 문단에 파란을 일으킨 일본 여성 시인 요사노 아키코(1878~1942)의
님이여 죽지 말지어다의 도입부이다.
[13]
경찰에게 마주치자마자 오싱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도망쳤으나
결국에는.. 참고로 노인과는 이미 산에서 인사를 하고 내려왔기 때문에 더이상 등장하지 않는 판본도 있지만 집에 돌아온 오싱에게 마지막 인사와 준사쿠의 유지를 잊지 말아달라는 내용도 있다.
[14]
더군다나 어머니는 죽었다고 생각한 딸을 위해 가뜩이나 없는 살림에 돈을 들여 위패까지 장만했었다.
[15]
어린 자식들에게는 차마 진실을 말할 수 없어 온천의 여관에 청소일을 하러 간다고 했으나, 사실은 아버지의 묵인하에 기녀 노릇을 하러 갔다.
[16]
오싱의 아버지와 손자인 오싱의 오빠는 오랜 가난에 찌든 나머지 심성이 피폐해져서, 자신들의 친어머니이자 친할머니인데다 늙어서 일도 못하면서 밥만 축내는 노인네 취급하며 냉대한다. 다만, 드라마 판에서는 가족들이 구박하는 장면은 두드러지지 않으며 오히려 본인이 밥 한 그릇 먹는것 조차 가족들에게 부담이 된다며 어려워한다. 이러한 모습은 비슷한 시대의 빈농들의 모습을 다룬
나라야마 부시코같은 작품들에서도 볼 수 있다. 또한 아래에도 나올 사가현의 시댁의 시아버지를 대하는 자식들의 모습에서도 나오지만 부모가 늙더라도 어려워하고 끔찍이 여기는 한국의 정서와는 달리 재산권을 갖고 있지 않거나 일을 못하거나 하게 되면 개인적으로 정이 없다면 말 그대로 뒷방 늙은이 취급하는 풍조가 있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17]
앞전의 제재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큰 부잣집이였다.
[18]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여동생이 태어나기 전엔 사실상 외동딸이였기 때문에 주인 부부가
금지옥엽으로 키워 자기 주장도 강하고 승부욕도 강하다.
[19]
돈 많은 상인이라지만 벼락부자라 예법도 잘 모르고 기품도 없다는 묘사가 나온다.
[20]
이 시대의 공장은 사실상 개미지옥으로, 월급은 적고 노동시간은 길었다. 게다가 아버지가 보릿고개 때마다 계속 하루 언니의 공장에서 직접 장리 빚을 얻어 쓰는 바람에 그녀는 일하면 일할수록 빚이 계속 늘어나 나올 수가 없었다.
[21]
선배 훈련생들 역시 오싱처럼 가난한 집안에 더부살이하는 신세인데 오싱이 다 해버리면 선배들이 자리를 잃고 집에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간과했던 것이다.
[22]
남편 류조가 지은 이름인데, 오싱은 용맹함밖에 없어 싫다고 한다. 어쩐지 군인이 될 것 같은 이름, 전쟁을 좋아할 것 같은 이름이라고 하면서, 이름은 일생을 정할 만큼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오싱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훗날 류의 죽음을 암시하는 듯. 만약 오싱의 뜻처럼 카즈오(和男)나 카즈히코(和彦)로 했으면 류의 운명은 달라졌을지도..
[23]
드라마판에서는 이 부분부터 본격적인 발암전개가 시작된다. 그래도 이전까지는 일부 악역(첫 더부살이집의 하녀장, 미용실의 선배미용사들 외)을 제외하고는 모두 오싱의 인품과 노력을 인정하여 아끼고 보살펴주는 인물들과 관계를 맺고 본인의 능력으로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전개로 진행이 되어왔다면 사가의 시댁에 들어가면서부터는 시어머니(이전까지의 악역들은 명함도 못 내밀 정도의 악마같은 괴롭힘을 보여준다.)를 주축으로 큰동서의 냉대, 시누이의 멸시 등으로 힘든 나날을 보내는데다가 이야기가 전개될 수록 상황도 나락으로 빠져들어가는 꿈도 희망도 없는 전개가 펼쳐진다.
[24]
시아버지는 처음에는 오싱을 첩으로 들이는게 어떻냐고 했지만, 도쿄에 와서 다노쿠라 상회를 크게 일으킨 오싱을 보고 며느리로 인정해 주었다. 하지만 농촌인 본가에서는 본인이 추진한 간척사업으로 집의 전답을 꽤나 잃은데다가 집안의 재산권은 부인에게, 집안의 일은 장남에게 물려준 상태라 별 힘도 없이 무시당하고 있는 처지였다
[25]
아이러니하게도 집안일로 하루종일 몸을 움직이던 오싱은 아무도 없는 별체에 방치되었지만 혼자서 잘만 출산했고, 임신기간 내내 퍼질러 앉아 먹고 놀던 시누이는 산파들이 상주하던 안체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심한 난산으로 죽다 살아난데다 나중엔 유선까지 막혀 고생한다.
[26]
원래 오싱의 시어머니는 나갈거면 류를 놔두고 혼자 가라고 했으나 류조의 첫째 형의 아내, 그러니까 오싱의 손윗동서가 오싱이 류를 데리고 갈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다.
[27]
오싱은 단순한 소매상이 아니라 주문을 하면 집까지 배달을 해주고, 심지어 생선을 사는 사람에겐 집에 가서 그걸로 요리까지 해주었다. 그러나 워낙 싸게 파는 바람에 이문이 거의 남지 않았고, 덤핑이라며 다른 생선 상인들에게 비난까지 받는다.
[28]
그동안 부유한 집에서 자라 헛바람도 들고 유능한 오싱에 대한 열등감도 있던 류조는 간척사업이 망하고도 정신을 못 차렸으나 오싱이 생선 장사를 하면서 고생하는 모습을 직접 보고는 그제서야 어느정도 정신을 차리게 된다.
[29]
공교롭게도 그 날 후지가 그리워하던 첫 눈이 내렸다. 이날 오싱은 어머니의 임종을 지켜준 하늘에게 고마워 한다.
[30]
남편이 밖으로 나돌며 기생에게서 사생아를 낳자, 자신이 아들을 못낳으면 그 사생아가 카가야를 차지하게 된다며 노력해서 어렵게 낳은 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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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딸처럼 대해줬어도 하녀출신 빈농의 딸을 큰며느리 자리까진 허락하지 못한다는 입장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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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꽤 커다란
저택에서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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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어느 일본 책에서 등장인물 중 하나가 '그 누가 책임지고 할복이라도 했느냐?'라고 따지는 구절이 있는데, 실제로는 패전 직후 수백 명이 할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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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에서 말라리아로 병사(가와무라는 류가 아사했다고 오싱에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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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 소년비행병 자살특공대 출신인데, 출격하기 전에 일본이 항복하여 살아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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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당시를 배경으로 한 책을 보면 도시 주민들은 누구나 시골로 가서 구걸을 했다고 나온다. 농가에서는 도시 주민들의 생활용품을 돈 대신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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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토지 양도 사본 등기가 도착한 그날 아침 신문으로 카와무라가 살해당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알고보니 카와무라는 고리대금업을 하고 있었고 다소 악랄하게 이자를 받아냈었는데 이 때문에 원한을 품은 채무자에게 살해당한 것. 일전에 오싱 일가를 찾아왔을 때 전쟁 이후 돈만 믿고 살아왔다고 언급하여 어느정도 암시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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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히토시가 유리의 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우연히 하쓰코가 보게 되고, 이를 오싱에게 알리는데 오싱은 처음에는 유리를 조금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듯 했으나 하쓰코의 설득과 성실한 유리의 모습을 보고 유리라면 괜찮을 것 같다며 승낙하려던 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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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그 날은 오싱과 하쓰코가 새 집으로 이사가는 노조미 부부를 찾아가 오랜만에 유리와 회포를 푼 날이었는데, 오싱과 하쓰코가 이를 곱씹으며 즐거운 마음으로 집에 돌아오자마자 히토시를 통해 교통사고가 났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리고 오싱과 하쓰코가 급히 병원을 찾아갔을 때에는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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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도 부잣집에서 자라 온실 속 화초였던 맏며느리 미치코 대신 유리를 편애하던 오싱은 유리의 장례식에 참석하려던 히토시 부부를 저지하면서 돌이킬 수 없는 사이가 되고, 나중에 본인 역시 자신의 시어머니와 똑같은 행동을 했다며 이를 후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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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도 자기 아버지가 원래 다른 집안 아들인데 2살 부모를 잃어 오싱이 거두어 키웠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오싱이나 노조미가 과거의 일을 거의 언급하지 않았던데다가, 어머니 유리가 일찍 사망한 후 양할머니 오싱과 양고모 하쓰코가 정성껏 키워서 평소 자신이 오싱네 집안 핏줄이 아니라는 점을 거의 의식하지 못하고 살았다. 만화에서는 오싱과 함께 가요의 무덤에 참배를 다녀오고 "제 친할머니가 바로 가요 할머니였군요. 그래도 제겐 할머니는 할머니 뿐이에요."라고 얘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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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녀는 오싱이 시집살이 하던 시절에 워낙 고생한 탓에 태어나자마자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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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나 장사와 관련해서는 어머니 오싱과 트러블을 빚던 히토시였지만 이 부분 만큼은 어릴적부터 자신과 노조미를 누나처럼 보살펴준 하쓰코에게 보답해야 한다며 하쓰코가 그동안 모아놓은 돈을 건넸을 때도 한사코 가지고 있으라고 하며 타노쿠라 일가의 돈만으로 좋은 자리를 구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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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싱은 일본이 패전한 후로 자식들과 먹고살기 위해 앞만 보고 사업에만 매진했는데, 이무렵에는 피도 눈물도 없이 철저히 자본주의 논리로만 살아가는 히토시를 보며 오직 성공만으로 향해 살았던 자신의 모습이 자식에게 나쁜 영향을 끼쳤음을 깨닫고 회한에 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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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토시는 미치코의 이혼 요구에 응해주는 게 나름대로 애정을 보이는 것이라 생각해서 이혼하려고 했으나, 사실은 가족들과 헤어지기 싫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고, 미치코에게 진심으로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으며 자신과 계속 함께 해달라고 한다. 히토시는 가장이 너무 나약한 소리를 했다며 멋쩍어했지만 미치코는 오히려 자신이 늘 듣고 싶었던 말이라며 다시 한번 시작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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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령 대형 슈퍼마켓이 입점해 타노쿠라 슈퍼가 망하더라도 이번에는 그 초대형 슈퍼마켓이 주변의 소형 상점들을 잡아먹게 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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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일본정부와 태국의 우호협력의 의미로 태국에 판권 없이 무상으로 제공 했고, 이 드라마 덕에 실제로 태국에서 일본 붐을 견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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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개방 초기의 중국은 자체적으로 드라마를 제작할 여건이 되지 않아 해외 드라마를 주로 수입해 방영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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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당시에는 로터리식 수상기와 전자식 수상기가 병행 사용되던 시절이기에 로터리식 수상기의 경우 NTSC-M VHF-Low 6ch에서
채널미세조정 다이얼만 돌리면 수신할 수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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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전자식의 경우 2, 3, 4, 5, 6CH에 NTSC-J 1, 2, 3, 4, 12CH를 추가로 매핑해서 수신이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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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판에선
일제강점기 시절 오싱이
쌀 한 가마에
일본인 집에 더부살이로 팔려가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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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요 아가씨가 도쿄의 안 좋은 곳에 있다는 소식을 들은 오싱이 카요를 찾아가고, 이후 그녀의 아들을 거두어 들이는 부분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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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문단부터 2019년 8월 13일에 방영된 NHK アナザーストーリーズ 運命の分岐点에서 나온 내용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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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시어머니와 시누이를 뺀 나머지 가족들은 그런 시어머니의 처사를 못마땅해했다. 시아버지는 오싱이 떠날 때 언제든 돌아오라며 따듯하게 배웅하고 자신의 아내가 여전히 정신을 못차리고 툴툴대자 오싱과 류조의 사이를 갈라놓은 원인은 당신이라며 다신 그 둘을 건드리지 말라고 엄포를 놓을 정도. 큰며느리인 츠네코도 시어머니가 하는 짓에 남몰래 치를 떨곤 오싱이 아들인 유와 같이 떠날 수 있게 도와줄 정도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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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싱의 어머니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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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나카 유코 뿐만 아니라 상당히 많은 출연 배우가 문학좌 소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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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드라마를 기반으로 한 소설에서도 슌사쿠는 탈영병 출신으로 산에 숨어 사는 사냥꾼으로 나오고, 오싱의 눈앞에서 헌병에게 발각되어 사살당하며, 슌사쿠와의 기억 때문에 오싱은 군국주의 시절에도 전쟁에 회의적이고 비판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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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과 시간대가 약간 유사하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