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문서: 연천군
연천군의 유래 | ||||||||||
마련현 (麻漣縣)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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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천현 (漣川縣)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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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천군 (漣川郡) |
1. 삼국시대 ~ 남북국시대
본래 백제의 영토였으나 고구려의 남진정책이 진행되면서 고구려의 영토가 되었다. 고구려 때는 공목달현(功木達縣)으로 불렸으며, '공목달'은 ' 곰 산'의 고구려어를 음차 표기한 것으로 '웅섬산(熊閃山)'이라 훈차 표기하기도 했다. 한탄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이 지역을 요새로 삼았는데, 현무암 절벽이 있고 좌우로 긴 지형이라 요새가 들어설 좋은 조건이 되었다. 당포성, 은대리 성, 특히 호로고루 성이 그 중심이었는데 남한에서 잘 볼 수 없는 고구려 유적이 다량으로 발굴되는 등 역사적 가치가 크다.특히 호로고루는 강안평지성이라는 독특한 구조를 띄고 있기도 하다. 최근 성곽이 일부 복원되기도 하였다.
이후 이 지역은 진흥왕이 한강 유역으로 영토 확장을 하면서 신라가 주인이 되었으며 나당전쟁 시기에는 청산면 대전리에서 최대 격전이던 매소성 전투가 있었다. #
통일신라 전까지는 시세에 따라 바람 잘 날 없던 곳.
신라 경덕왕 때 공성현(功城縣)으로 개칭되었다. 공(功)은 '곰'을 음차한 것으로 '웅진'이 '공주'가 된 경위와 같다.
2. 고려
고려 초 장주(獐州)로 개칭되었다가, 1310년 충선왕 때 연주(漣州)로 개칭되었다. 충선왕의 휘(이름)가 '장(璋)'이라, 음이 같은 한자 지명들을 피휘하려 했기 때문.[1]3. 조선
태종 때 전국의 '주(州)'자 지명을 대거 '산(山)', '천(川)' 등으로 바꾸면서 연천(漣川)으로 바뀌어 오늘에 이른다. 이후 마전현과 병합되어 마련현(麻漣縣)이 되었다가 곧 재분할되어 다시 연천현이 되었다.1895년에 연천군으로 개편되었다. 이 당시 연천군의 영역은 현재의 연천읍, 군남면, 중면에 해당된다. 한편, 이때 재분할 되었던 마전현은 지금의 연천군 미산면 마전리를 중심으로 미산면과 왕징면, 백학면에 해당된다. 1909년 철원군 관인면을 편입하였다.
부산진 전투에서 싸우던 정발 장군이 여기 출신이며, 그의 무덤 또한 여기에 있다.
4. 일제강점기
1914년 조선총독부의 전국 행정구역 개편으로 마전군과 적성군의 전역, 삭녕군 일부[2], 양주군 영근면을 연천군에 병합하였다. 1941년 영근면을 전곡면으로 개칭하였다.5. 소련군정 / 미군정, 북한,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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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직후 38선이 설정되면서 적성면, 남면, 전곡면 및 백학면의 일부를 제외한 연천군의 전역이 소군정( 북한) 치하로 넘어갔다. 이에 미군정( 남한) 치하로 남은 위의 지역들은 파주군에 편입되었다. 이 중에서 적성면은 현재까지 파주시 관할로 남아 있으며, 남면은 1946년 양주군에 편입되었다. 한편 38선 이북의 연천군은 1946년 9월 소군정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강원도(북한) 관할의 군이 되었으며, 동년 12월 폐지된 영평군에서 청산면과 창수면을 편입하였다. 그리고 북한 정권 수립 이후에도 이어져 6.25 전쟁 이전까지 강원도 련천군이었다.[3]
그러다 전쟁 중 전선이 현재의 군사분계선 형태로 고착화되며 연천군 대부분이 남한으로 넘어가 남한의 수복지구가 되었고, 북한의 연천군은 군면리 대폐합으로 폐지되고 북한에 남은 지역은 장풍군과 철원군(북한)에 편입되어 사라진다. 이후 1954년 수복지구의 행정이 대한민국 정부로 정식으로 넘어오고 수복지구임시행정조치법에 따라 연천군은 대한민국 경기도 소속의 군이 된다. 그리고 전곡면과 백학면은 6.25 전쟁 휴전 이후 연천군으로 환원되었다.
1963년 철원군 신서면과 장단군 장남면을 편입하여 장남면은 백학면에 흡수하였다. 또한 적성면 눌목리와 간파리를 전곡면에 편입하였다. 1979년 연천면이 연천읍으로 승격하였다. 1983년 포천군에 관인면을 넘겨주고[4], 대신 청산면의 대부분을 편입하였다.[5] 1985년 전곡면이 전곡읍으로 승격하였다. 1987년 미산면 석장리를 백학면에 편입하였다. 1989년 옛 장단군 소속이었던 원당출장소를 장남면으로 승격하였다.
옛 삭녕군은 1914년에 반토막이 나서 서반부[6]는 연천군으로, 동반부[7]가 철원군으로 넘어갔고, 그나마 전 지역이 휴전선 이북에 있거나[8] 비무장지대 이하 GOP와 민통선 내에 있기 때문에 여기에 거주하는 민간인은 단 1명도 없는 다소 슬픈 곳이다. 남북통일 이후에도 DMZ 내의 미확인 지뢰 지대로 인한 그린벨트로 지정될 가능성이 높다. 그래도 여기를 본관으로 하는 성씨도 있다. 삭녕 최씨로 북한 땅인 마장면 대전리가 발상지라고 한다.
[1]
경상북도
경산시도 원래 '장산(章山)'이었다가, 이때 같이 이름이 바뀌었다.
[2]
삭녕군을 폐지해버린 뒤 둘로 쪼개서 하나는 연천군, 다른 하나는
철원군에 각각 붙여버렸다.
[3]
북한의
두음법칙 무시로 인하여 연천이 련천으로 불렸다. 6.25 이후 명목상 행정구역은 강원도에서 경기도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련천군으로 부른다.
[4]
연천군 시절에는
실질 월경지였다(...). 전곡이나 연천읍내로 가려면 포천 창수면과 청산면을 거쳐야 한다. 이런 문제 때문에 아예 포천으로 넘긴 듯하다.
[5]
현
포천시 신북면 삼정리, 갈월리, 금동리, 덕둔리도 청산면 관할이었으나, 이 때 신북면으로 편입해 포천군에 남았다. 현재의 연천군 청산면은 통폐합 이전 양주군 청송면, 포천 신북면에 들어간 곳들은 과거 양주군 산내면에 해당한다.
[6]
군내면·서면·남면·동면. 이 중 군내면과 동면을 합쳐서 삭녕면이 되었고, 서면과 남면을 합쳐서 서남면이 되었다.
[7]
내문면·마장면·인목면. 그 중 인목면은 신서면이 연천에 넘어올 때 경기도에 돌아왔다.
[8]
마장면이 그 예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