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없어진 자동차 브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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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sel 에드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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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43956C> 정식 명칭 | Edsel |
한국어 명칭 | 에드셀 |
설립일 | 1956년 |
해산일 | 1959년 |
본사 소재지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미시간 주 |
업종 | 자동차 제조업 |
소유 | 포드 모터 컴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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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57년부터 1959년까지 포드 모터 컴퍼니에서 포드와 머큐리의 중간급 브랜드로 운영했던 브랜드이다. 이름의 유래는 창립자 헨리 포드의 아들 에드셀 포드. 하지만 이름이 무색하게 자동차계의 타이타닉으로 불릴 만큼 엄청난 실패를 거두고 말았다.2. 배경
에드셀의 역사 (유튜브 다큐멘터리) |
신규 브랜드의 이름은 소비자들로부터 무려 6천개 가량의 후보명을 받아들여 검증을 거치고 거쳐 코르세어(Corsair), 사이테이션(Citation), 페이서(Pacer), 레인저(Ranger) 4개의 이름이 최종 후보로 선정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브랜드를 준비하던 중인 1955년에 포드 회장이 휴가차 자리를 비운 사이에 열린 당시 최고경영집행위원회에서 이사회 의장은 최종 후보명 중에서 마음에 드는 것이 없다는 이유로 탈락한 후보명 중 "에드셀"로 정했다. 당시 홍보회장이 프레첼(Pretzel)이나 족제비(Weasel)가 연상된다는 이유로 신차 이름으로는 부적합하다고 반대했음에도 회사에서는 에드셀이라는 이름을 끝까지 밀어붙였다. 이 당시 포드 회장은 창업자 헨리 포드의 손자이자 에드셀의 장남이었던 헨리 포드 2세. 헨리 포드는 아들이라고는 에드셀 포드밖에 없었는데, 이 아들이 2차대전 기간 중 과로와 브루셀라증으로 인한 위암으로 1943년에 아버지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자, 그의 맏손자이자 에드셀 포드의 장남인 헨리 포드 2세한테 경영권이 넘어가게 되었다. 헨리 포드는 아들이 죽은 지 4년 뒤인 1947년에 세상을 떠났다. 에드셀의 아들들, 즉 헨리 포드 2세를 비롯한 3형제는 아버지는 자기 이름이 100만 개의 휠캡에 새겨져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는 완곡한 표현으로 처음부터 "에드셀"이라는 제품명을 반대했다. 결국 광고 마케팅 업체에 의뢰한 6천 개의 후보명이 모두 탈락하자 나머지 가족들의 동의를 구한다는 헨리 포드 2세의 조건 하에 위원회의 결정에 따르게 되었다.
디자인의 경우, 포드의 디자인 팀에서는 당대 미국차들과 차별화될수 있는 디자인을 구상하고 있었다. 이러한 디자인 연구의 결과물들 중 하나로 나온 것이 기존의 일자형 크롬 범퍼의 중앙을 뚫고 지나가는 세로 형상의 "임팩트 링" 그릴로, 에드셀에게 강해 보이는 인상을 주려는 의도였다. 처음에는 그릴보다 약간 큰 정도로 임팩트 링을 추가하려고 했으나 그릴 통풍구의 단면적이 좁아지면서 생길 엔진 냉각 문제를 염려하는 엔지니어링 팀과 타협하는 과정에서 임팩트 링이 커졌고, 최종 결과물은 비평가들과 소비자들의 반발이 심했다.
3. 출시 및 판매
1958년형 에드셀 페이서 |
포드 모터 컴퍼니에서는 에드셀을 완전히 신개념의 자동차이자 "You"라는 키워드를 강조하여 사용자 중심의 차로 홍보하는가 하면, 홍보 방법에 있어서도 신차의 모습을 공개하지 않고 부분적인 모습을 서서히 공개하다가 전체적인 모습을 나중에 공개함으로서 고객들의 기대와 반응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는 방식을 TV 광고에 사용할 만큼 마케팅에 큰 공을 들였다. 여기에 에드셀의 런칭 일자를 "E Day"로 선언하는가하면 같은해 10월 13일에는 에드셀을 홍보하고자 빙 크로스비, 프랭크 시나트라, 루이 암스트롱 등의 유명인사들을 출연시킨 CBS와의 합작 방송인 “ The Edsel Show“를 방영하는 등의 대규모 홍보를 단행했다.
1959년형 에드셀 레인저. 초대 에드셀 대비 디자인이 차분해졌다. |
1960년형 에드셀 레인저. 에드셀 고유의 특징들이 완전히 사라졌다. |
이로 인해 포드 측에서는 엄청난 손해를 보았고 적잖은 대리점들이 문을 닫았지만 1960년대에 접어들며 포드 썬더버드와 포드 팰컨, 포드 머스탱 등의 성공으로 이러한 손해를 매꿀 수 있었다.
설립 50주년을 기념해서 이 브랜드의 디자인을 기반으로 한 포드 크라운 빅토리아 기반의 차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당연히 포드에서 공식으로 시판된 모델은 아니며, 에드셀 차량의 팬이자 튜닝 기술자인 롭 세러미(Rob Cerame)가 크라운 빅토리아를 튜닝하여 스페셜 모델로 1대만 제작한 것이다. 참고로 이 마개조판 모델을 제작한 롭 세러미는 아버지가 에드셀 딜러점 점주였을 정도로 에드셀 브랜드와 인연이 깊은 인물이다. #
3.1. 생산된 차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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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급 | 차량명 | |
대형차 | 사이테이션 · 코세어 · 페이서 · 레인저 | ||
스테이션 왜건 | 버뮤다 · 빌리저 · 라운드업 | ||
컨셉트카 | 코멧 | ||
한정판 | 크라운 빅토리아(50주년 에디션) | ||
{{{#!wiki style="margin:-16px -11px" | 포드의 차량 | ||
머큐리의 차량 | |||
머쿠어의 차량 | |||
링컨의 차량 | |||
컨티넨탈의 차량 | }}} | }}}}}}}}} |
- 레인저: 포드 기반의 최저가 라인업으로, 2도어 쿠페와 하드탑 쿠페, 4도어 세단과 하드탑 세단으로 구성되었다.
- 페이서: 포드 기반. 1958년형으로만 생산되었으며, 4도어 세단, 하드탑 세단, 하드탑 쿠페, 컨버터블로 구성되었다.
- 코세어: 머큐리 기반으로, 1958~1959년형 사이에 2도어와 4도어 하드탑만 제공되었다.
- 사이테이션: 머큐리 기반이며, 1958년형 동안 컨버터블과 2도어 하드탑, 4도어 하드탑이 제공되었다. 에드셀 중 가장 고가 사양이다.
- 라운드업: 포드 기반의 2도어 왜건이며, 1958년형 라인업에서 기본형으로 제공되었다.
- 빌리저: 4도어 왜건 중 기본 사양. 포드 기반 플랫폼에, 1960년형까지 생산되었다.
- 버뮤다: 1958년형까지만 생산된 고급형 왜건으로, 포드 기반의 4도어 왜건이다.
4. 여담
- 고전게임인 매니악 맨션을 플레이하는 도중, 차고에서 빨간색 58년식 에드셀을 발견할 수 있다. 잘 알려진 명칭은 "이상한 에드셀(Weird Edsel)"로, 발견되었을 때부터 개조되어 있는 상태라서 우주선으로도 사용할 수 있다.
- 카트라이더의 카트 바디 중, 로디 클래식이 1958년식 에드셀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 총알탄 사나이 2편에서 주인공인 프랭크 드레빈 경감(레슬리 닐슨)이 1편때 사귀게 된 제인(프리실라 프레슬리)가 다른 남자와 사귀고 있는 것을 알게 된 후 실의에 빠져 앉아 있는 바의 벽에 에드셀의 사진이 다른 상징들과 함께 걸려 있다.
- 이후 아메리칸 모터스 코퍼레이션의 CEO가 된 조셉 캐피는 에드셀 디비전의 회계사로 자동차 업계에 입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