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더 강력한 화력을 추구하기 위해 실제 전함에 탑재된 것으로는 역사상 가장 큰 대구경인 함포(460mm = 18.1인치)를 탑재하고 기준배수량만 6만 톤이 넘는 거대전함인 야마토급 전함은 그 존재 자체로 거함거포주의의 극한을 추구했으며, 공고급 순양전함과 후소급 전함을 비롯해 다양한 군함들을 건조하며 축적한 건함 기술과 당시 일본이 동원할 수 있는 최고의 기술력을 집대성해서 만든 물건인지라 적어도 카탈로그상으로는 타국의 슈퍼 드레드노트급 전함들을 능가하는 엄청난 스펙을 자랑한다.아이러니하게도 설계 사상만을 놓고 보면 매우 평범한 전함이다. 더 높은 화력을 추구하기 위해 더욱 거대한 주포와 해당 주포를 탑재할 주포탑을 탑재하고, 이렇게 무겁고 거대해진 주포탑을 싣기 위해 더 큰 배를 만들고, 그렇게 커져 버린 몸집을 보호하기 위해 장갑도 두꺼워지는 식이다. 군축조약으로 인한 배수량 제한이나 국가 재정상의 문제로 함체를 확대하지도 못하고 주포의 구경과 크기를 늘리지 못하는 상태에서 화력이라도 늘리려고 주포의 포신을 장포신화하거나 포탄의 중량을 늘리거나 고속으로 발사할 수 있도록 개량하는 등의 조치를 취한 동시기의 다른 전함과 비교하자면 정말로 전함의 정석에 충실하다고 할 수 있다. 야마토는 분명 세계 제일의 스펙을 지닌 전함이었지만 이는 기본적인 전함이라는 것의 정점, 피크에 달한 것이다.
2. 구조
기존 전함들을 운용하면서 생겼던 문제점들을 뒤늦게나마 야마토급 전함 설계에 적용했기 때문에 개선점이 많이 보인다.2.1. 최대급이면서 배수량을 최대한 억제
아이러니하지만 가장 큰 전함이면서도 18.1인치급 주포를 탑재한 전함치고는 작게 설계되었다. 설계 당시에는 모든 성능을 충족시키려면 적어도 야마토의 실제 배수량보다 15,000 ~ 20,000t의 배수량이 추가로 필요한 것으로 예측되었다. 만일 이걸 다 충족시킬 경우 당시로서는 터무니없는 크기인 90,000t급 거대전함이 탄생할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그러나 최대한 최적화 및 신규 기술 도입으로 배수량을 최대한 억제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과도한 건조 비용과 자재를 절감하고, 건조시간도 최대한 단축할 수 있도록 했다. 그래서 일본 내에서는 최대급 전함이면서 동시에 최소화를 지향한 전함이라는 평가까지 있다.
2.2. 3연장 주포탑 채택
기존 일본 전함은 3연장 주포탑 제조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후소급 전함처럼 주포를 12문 탑재하려면 2연장 주포탑을 6기나 탑재해야 했다. 야마토가 등장하기 전 일본군 최대이자 최강의 드레드노트급 전함인 나가토급조차도 주포를 8문 탑재하기 위해 주포탑을 4기나 탑재해야 했다. 심지어 미완성되었지만 유틀란트 해전 후에 착공되거나 계획된 카가급, 키이급, 아마기급까지 중앙부 주포탑을 유지하는등 전훈을 반영하지 못한 설계를 한 것을 보면 3연장 주포탑 제조기술이 없어서 그렇게 했을 가능성이 높다.워싱턴 해군 군축조약과 런던 해군 군축조약 때문에 주력함의 배수량 쿼터 및 1척당 기준배수량 3만5천롱톤이 지정되면서 일반적인 열강의 전함 주포숫자가 8문에서 9문이 되었지만 이는 배수량 초과 문제로 인해 눈물을 머금고 희생을 한 것이며 실제 전투력 면에서는 함수에 계단식으로 주포탑 2기, 함미에 계단식으로 주포탑 2기를 설치하는 방식이 유리한데다가 협차사격시 전함의 주포숫자가 8문부터 12문까지 늘어날수록 협차 달성시 주포탄 명중 가능성이 의미있을 정도로 계속 늘어나므로 군축조약이나 비용폭증등의 제약조건이 없다면 주포 12문을 확보하려고 각국이 노력했다. 몬태나급 전함이나 알자스급 전함을 보면 한눈에 알 수 있으며 킹 조지 5세급 전함의 14인치 주포 12문 장착시도나 노스캐롤라이나급 전함의 14인치 주포 설계안에서도 잘 나타난다. 애초에 표준형 전함의 대부분이 주포 12문을 장착하였다. 위에 나오는 야마토급 전함의 시조인 A-140 전함의 시안도 J3안에서 410mm 주포 3연장 4기 총 12문을 탑재하는 안이 나왔을 정도다.
사실 막 후소급 전함과 공고급 순양전함을 건조하던 영일동맹 기간에 영국은 12인치 3연장 주포탑 제조기술도 넘겨준다고 했지만, 일본제국은 단점이 많으니 필요 없다며 거절하는 실책이 있었다. 물론 저 당시 빅커스 사의 12인치 포가 실제로 별로 좋은 소리를 못 들었으며 3연장 주포탑 제조기술이 장점만큼 단점도 가지고 있었다. 예를 들면 초기 3연장 주포탑을 장착한 전함들은 일제 사격할 때 생기는 충격파로 인해 포탄들이 너무 넓게 퍼져서 착탄 하는 문제가 일어나 해결하기 위한 개량이 있었다. 그와 반대로 2연장이기는 하지만 공고급에 채택된 14인치 포가 좋은 평가를 받았기에 거절한 측면도 있다.
그러나 이런 선택으로 인해 일본의 전함들은 모조리 2연장 주포탑으로 통일되었으며 3연장 및 그 이상의 다연장 주포탑에 대한 연구는 말 그대로 도면에서의 구상 수준으로 끝나버렸다. 3연장 주포탑을 가진 전함이 1척이라도 있다면 유지보수 및 실험, 연구를 통해서 3연장 주포탑의 개량 및 보급을 할 수 있었겠지만 2연장 주포탑만 있으면 시도 자체가 불가능하다. 결국 태평양 전쟁 이후 일본 제국은 영국과의 친분을 완전히 끊고 나치 독일과 동맹을 맺으며 추축국에 가담했으니 당연히 연합국, 즉 적국인 영국에게 아무리 많은 돈을 쥐여준다고 해도 귀중한 주포탑 다연장화 제조기술을 줄 턱이 없고 일본제국이 스스로 만들어내야 했다.
물론 건조되었던 시기에 같이 건조된 미국의 콜로라도급 전함도 16인치 2연장 주포탑 4기를 탑재했지만 미국은 이미 표준형 전함들을 통해 3연장 주포탑 기술을 계속 유지보수 및 발전중이었고 콜로라도급 전함은 군축조약에 맞추기 위해 긴급하게 16인치 주포탑을 도입해서 2연장 주포탑일 뿐이었다. 그리고 신전함의 시작인 노스캐롤라이나급 전함부터 16인치 3연장 주포탑을 별 문제없이 도입성공했다. 영국은 애초부터 기술개발을 통해 더 신기술로 무장된 영국의 넬슨급 전함을 만들어서 군축조약상의 16인치 주포를 가진 전함들 중 유일하게 3연장 포탑을 보유한다.
하지만 야마토를 건조하면서 일본 제국도 마침내 3연장 주포탑 제조기술을 확보하게 됨으로써 주포를 9문이나 탑재하지만 주포탑은 3기만 배치해도 괜찮았다. 이로 인해 중량 절감과 방어력 상승, 여유 공간 확보가 가능해졌다. 전함 배수량의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는 게 바로 그 특유의 대구경 주포와 중장갑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다. 이리하여 결과로 다른 함선으로 치자면 최대 주포탑 3기 분량인 배수량이 전부 함체의 여유 배수량으로 흡수되었기에 장갑이나 다른 시설을 여유롭게 강화할 수 있었다.
2.3. 연돌 집중화 및 위치선정 최적화
기존 일본 전함은 연돌이 2 ~ 3개라서 매연이 함교와 광학장비의 시야를 가리는 부작용을 일으켰고 공간도 많이 차지했다. 그래서 매연역류방지장치를 연통 출구에 장착했지만 별로 성능이 좋지 않았으며 결국에는 전함을 개장할 때마다 연돌을 1개로 정리하는 추가작업이 필요했다.야마토급 전함은 이런 불편을 감안하여 처음 설계시부터 아예 연돌을 1개로 집중화하고, 함교에서 상당히 떨어진 후방에 경사형으로 설치함으로써 매연이 일으키는 시야 감소를 최대한 억제했다.
2.4. 360도 선회식 부포탑 도입
기존 일본 전함은 제1차 세계 대전의 유물인 포곽식 부포를 보유했다. 그런데 이런 방식은 측면장갑에 구멍을 뚫으므로 방어력의 허점이 생긴다. 게다가 포신 각도 조절에 엄청난 한계가 있다. 그러므로 대공사격이나 장거리 사격이 불가능하다. 게다가 포곽 특성상 후방부를 모든 부포가 공유하므로 부포 포곽 중 한 곳만 포탄이 관통해도 유폭이 전체로 퍼질 수 있었다. 일단 이런 사태가 벌어지면 해당 측면의 모든 부포가 파손되거나 손상을 입어서 전투력이 격감하는 문제가 발생했다.야마토급 전함은 이런 점을 염두에 두었으므로 독자로 선회 및 부양이 가능한 부포탑에 부포를 탑재해서 숫자도 줄이면서 효율성 방어가 가능하게 되었다.
2.5. 대공 무장 강화
기존 일본 전함은 주포탑 과다 적재로 인해 대공 무장을 탑재할 공간이 크게 부족해서 적군의 항공 세력에 매우 취약했다. 하지만 야마토는 주포탑을 3기로 정리하고 적절한 위치에 탑재했다. 동시에 배수량도 대공화기 장착에 돌릴 여유를 가질 수 있으므로 나중에 가면 200여 문에 가까운 대공 무장을 탑재해서 일본군 전함 중 가장 대공 방어 능력이 높았다. 하지만 효율성있는 대공사격 관제 체계가 없었고 레이더 성능도 부족했기에 미국 함선들에 비해서는 효율이 현저히 떨어졌다.2.6. 잘 다듬어진 함체
기존 일본 전함은 구식 구조라서 속도 향상을 위해 나중에 함체 구조 자체를 변경하는 일이 잦았다. 그러나 야마토는 구상선수를[1] 처음부터 과감하게 적용시켜 최고 속력 도달에 필요한 마력을 12000마력이나 절감시켰다. 함체 구조도 포격성능에 영향을 주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저항이 적고 깔끔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공고급 순양전함을 제외하고는 가장 빠른 속도인 27노트가 가능했다.장갑을 배치하는 구조도 새롭게 변화하여 열강들의 당대 1급 전함들처럼 갑판장갑을 단일화하고 두께를 늘리면서 위치를 올리고 현측장갑은 경사장갑을 도입함으로서 구식 터틀백 구조식 방어를 벗어나서 효율적으로 현측방어와 갑판방어를 달성하였으며 집중방호구획도 제대로 방어하도록 중요구획을 밀집시켜서 실질적인 방어력도 증가시켰다.
또한 어뢰 공격을 막는 벌지도 최대한 많이 붙이면서도 표면을 깔끔하게 처리하여 다른 개장 함선처럼 벌지를 더덕더덕 붙여서 속도가 크게 감소되는 일을 막았다. 또한 특유의 경사를 이루는 함수는 바벳의 용적을 줄여 배수량을 줄이고, 낮아진 주포탑과 동시에 낮아진 함교는 무게중심을 낮추어 주었으며, 함교의 시야도 넓어졌다. 평갑판과 계단식 구조의 장점만을 채용한 셈이다.
2.7. 각종 시설 첨단화, 고급화
기존 일본 전함은 공간과 여유 배수량 부족으로 인해 각종 시설이 충분하지 못했다. 일례로 나가토급은 변기조차 부족해서 구석진 곳에다 볼일을 보는 수병들도 있었다고 한다. 설상가상으로 시설의 성능도 열악한 경우가 많았다. 이 때문에 승조원이 거주 및 전투하는 데 상당한 악영향을 주는 데다가 전함의 전투 능력 자체도 약화되는 결과를 가져왔다.야마토급 전함은 내부 편의시설을 획기적으로 확충하고 레이더 등 첨단 시설도 설치하여 전투력 향상과 장병 복지를 동시에 추구했다.
3. 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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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즈키급 구축함 1척(2,701톤)보다 더 무거운 주포탑 1기(2,760톤)의 무게[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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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포인 18.1인치 주포탑과 여타 실존/비실존 병기들과의 크기 비교[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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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만 해도 2m에 달하는 거대한 포탄. 맨 왼쪽과 가운데의 탄두가 날카로운 포탄이 각각 91식 철갑탄과 그 개량형인 1식 철갑탄이고 오른쪽의 탄두가 뭉툭한 포탄이 전함용 대공 포탄인 3식 통상탄. 맨 오른쪽의 깡통을 쌓아둔 것처럼 보이는 물건은 장약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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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포탑 작동 모습 |
압도적인 규모에 걸맞게 탑재한 무장도 일본 제국은 물론 열강의 주력 전함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수준이었다.
우선 주포는 일반적으로는 18인치라고 알려져 있으나 정확히는 18.1인치이다. 1인치가 2.54㎝이니 야마토의 주포는 정확히 460㎜이므로 18.1인치가 맞다. 이는 제2차 런던 해군 군축조약의 주포 구경 제한인 14인치(356㎜) 는 물론이고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의 주포 구경 제한인 16인치(406㎜)조차 넘어선 것으로, '함선에 장착된 것으로는' 역사상 가장 거대한 함포로서 기네스북에 올라있다. 그러나 바로 아래 구경과 그리 큰 격차라고는 못하는 것이 2위가 겨우 0.1인치 작은 18인치 포이기 때문이다. BL 18인치 Mk 1이라는 영국의 함포인데, 퓨리어스라는 순양전함에 장착되었다. 심지어 탄두 중량은 더 무거웠다. 퓨리어스는 진수식 이전에 개장되어 세계 최초의 항공모함이 되었고 HMS 제너럴 울프와 HMS 로드 클라이브라는 모니터함이 이 포를 물려받았다. 다만 해당 함포는 단장 주포탑이고 야마토급은 3연장 주포탑이므로 전체적으로는 차이가 크다.
함선으로만 한정하는 이유는 지상 병기 중에서 유명한 구스타프 열차포(800㎜)[4]를 비롯하여 칼 자주박격포(600㎜), 리틀 데이비드(914㎜, 36인치), 차르 대포(890㎜)같이 흉악한 구경을 가진 괴물급 거포나 중포들이 즐비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대부분 중량에 연연할 필요가 그다지 없는 대구경 열차포나 구식 화포거나 공성포였기 때문이었기에 운송과 발포가 어떻게든 가능했다면 구경이 크고 화포의 크기가 거대하고 무거운 것은 큰 상관이 없었다. 열차포에 주로 쓰이는 구경이 보통 장갑순양함급 주포의 구경인 240㎜ 급이었고 전함급인 300㎜나 400㎜ 급도 소수 제작되어 쓰였다.
일본 해군은 야마토급 전함 건조에 매우 공을 들였기 때문에 미국 등 해군 열강이 기존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과 런던 해군 군축조약의 제한을 넘는 전함 건조 동기를 유발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94식 40㎝ 포'라는 명칭을 붙여서 16인치급 주포로 위장하였다. 이런 위장은 이전의 사례가 존재하는데 나가토급 주포는 16인치(406mm)보다 근소하게 큰 41cm인데, 워싱턴 조약 이후로는 서류상 그냥 40cm으로 표기했다. 포신에 각인된 四十一糎를 四十糎로 고쳐야 했다.
덕분에 미군은 이 460mm 주포를 레이테 만 해전 이후에나 완전하게 깨닫게 되었다. 그 이전에 포로를 통해서 18인치 주포를 장착한 전함이 있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무사시와 야마토를 근접 목격한 후에 18인치라는 것을 확실시 했다고 한다. 출처(영어) 심지어 탑승했던 일본군 수병들도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야마토의 포를 400mm로 알고 있었다.
이렇게 구경의 차이를 알기 힘든 이유는 원래 40cm와 46cm는 15% 정도의 차이이므로 멀리서는 구경 자체를 확인하기 힘들고 겉에서 보이는 것은 포신의 굵기 정도이다. 가까이서 보더라도 비교 대상이 없기 때문에 자를 대고 재 보지 않는 이상은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냥 똑같이 무지막지하게 큰 대포로 보일 뿐. 하지만 저 정도 차이는 위력에서 굉장히 큰 차이를 만들어낸다. 단순계산도 완전히 같은 구조인 포의 구경이 저 정도로 커진다면 탄두 부피 = 중량은 1.15의 세제곱이 되어, 50% 이상 커지며 탄속도 같다고 가정할 경우 운동 에너지도 같은 비율로 증가한다. 실제 탄환은 동일 비율로 커지지 않지만 내부의 작약량은 그보다 더 큰 비율로 커진다. 장갑을 관통하고 포탄이 내부로 들어가서 정상적으로 발화할 때 군함 내부에 주는 타격이 매우 커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18.1인치 주포라는 당시 해군 조약이고 표준 규격이고 뭐고 다 씹어먹는 괴물같은 물건이 당연히 기성품으로 있을 리가 없기 때문에, 일본 제국이 자체로, 그것도 비밀리에 개발해야 했으므로 우여곡절도 많았다. 그래서 주포 제작에 새로운 방법이 도입되었다.
그것은 바로 자기긴축법(自己緊縮式, Autofrettage)이라는 방식이었다. 이 방식은 포신 내경을 구경보다 약간 작은 상태로 가공해 포신 내부에 고압의 압축수를 채워 가압을 시키면서 내경을 팽창시킨다. 이렇게 하면 포신에는 내경을 수축시키려는 응력이 발생하여 잔류된다. 이 잔류 응력은 포탄이 발사될 때, 폭압에 의해 팽창하려는 응력과 반대 방향의 응력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포신에 걸리는 응력이 상쇄된다. 이로 인해 같은 재질도 포신 두께를 얇게 할 수 있어 제작비용 및 중량을 감소시킬 수 있었다.
다만 이는 신기술은 아니었다. 자긴법은 19세기 중반에 미국에서 개발되었고, 군사적으로도 이미 19세기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에서 도입하여 포신 생산에 사용했던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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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 영국 뉴캐슬 암스트롱 위트워스사 공장 강선식(鋼線式, gun wire) 공정을 통해 12인치 함포를 제작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5] |
초기에는 영국으로부터 습득한 소감식(焼嵌式, shrinkage fit) 포신 제조법을 사용하였다. 이것은 포신을 내통과 외통으로 2층 구조로 하여 외통을 가열해 열팽창시킨 상태로 내통을 집어넣어 급냉시키고 외통을 수축시켜 단단히 조인 상태로 고정된다. 이것은 중소형 포신의 제조에 주로 적용되었다. 그러나 대구경 함포의 경우는 강선식(鋼線式, gun wire) 포신 제조법이 사용되었다. 이것은 소감식과 같은 방식이나 내통의 표면에 건와이어(gun wire)로 불리는 강선을 고장력을 걸친 상태로 감아서 외통을 씌우는 타입으로 주로 대구경 포신의 제작에 이용되었다.
그래서 야마토급 주포 제작은 여러 가지 기술이 결합된다. 일단 94식 45구경 460mm 포신은 안쪽부터, 1A 내통, 2A 강통, 3A 강통, 4A 건와이어, 5A 강통인 5개 레이어 구조였다. 각각의 강통은, 소감법을 이용해 압축 응력을 갖게 하여 기본으로는 소감식이지만 강선식(鋼線式)과 자긴식(自緊式)이 동시에 적용되기도 하였다. 참조로 건와이어는 두께 1.5875㎜, 폭 6.350㎜를 사용하였다. 한마디로 종합하자면 가장 강력한 함포를 만들기 위해 당시 일본 제국에서 사용할 수 있는 기술력이란 기술력은 총동원된 것이다.
전함용 3연장 주포탑을 결국 완성했지만, 타국 전함들도 겪었던 3연장 주포 명중률이 크게 떨어지는 문제를 떠안았다. 실제로 야마토는 일본군의 다른 전함보다 명중률이 떨어졌다고 한다. 이런 현상은 다연장 주포를 장착한 전함들에게 꽤 자주 일어나는 일이다. 이런 문제는 대부분 조준 장비의 개선이나 주포 및 구조물 개선으로 해결한다.
이후 초기의 1km에 달하는 산포계는 전쟁 중 개선으로 인해 전후 US Naval Technical Mission to Japan report O-45(N) Japanese 18” Gun Mounts 기록에 따르면 최대 사거리는 대강 40km 정도로 연습 사격에서 일제사격에서 500(457m) ~ 600야드(548m) 정도인 산포계였다는 내용을 기록한 것으로 보아, 다른 주포들처럼 어느 정도 개량에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해당 기록은 야마토 침몰 당시 포술사관이었던 쿠로다 대좌의 인터뷰를 참조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우가키 마토메의 전중일기인 전초록은 이 3연장포가 당초에는 엉망이었으나 연습 사격시 35km에서 300미터(원근) 수준의 살포계를 얻었다고 한다. 인터넷에 떠도는 밈과는 달리 그렇게까지 나쁜 수준인 살포계는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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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분 37초부터)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에 보관되었던 사마르 해전의 야마토급 전함의 명중 기록이 나온다. |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의 기록을 보면, 명중률 또한 인터넷 밈과는 달리 매우 좋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레이테만 해전의 사마르 해전의 기록만 보면 104발 중 겨우 3발, 즉 5%도 안 되는 명중률이라 나오는데 이게 일종의 통계의 왜곡이었던 것. 실제로 사진으로 남은 기록을 보면 단 1, 2번만에 협차, 유효타를 내는 등 매우 높은 명중률이었지만 다른 요소로[6] 낮아 보였다는 것이 드러났다. 단, 레이더가 부실해서 시야 관측에만 의존하던 일본 전함의 약점이 보다 뚜렷하게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건조중은 물론 종전될 때까지 실제 스펙을 기밀처리하는 것에 총력을 기울였고, 성공하였다. 그래서 미국은 일본 신형 전함의 주포 구경이 18.1인치인 줄은 몰랐고, 맞서 건조한 노스캐롤라이나급 전함은 제2차 런던 해군 군축조약을 준수하여 "16인치 주포를 탑재할 수도 있는 14인치 포격전함"으로 설계되었다. 따라서 함대결전사상에 따라 일본군이 생각한 함대결전에서 야마토급 전함이 출격할 경우에는 미국 전함 중 어떤 전함도 1대 1 승부를 야마토급 전함에게 걸어서 미국이 승리하는 것이 불가능하리라고 예상되었다.
여담으로 연합함대 사령장관인 야마모토 이소로쿠가 시찰을 나왔을 때에도 상세한 정보 제공을 거절했으며 레이테 만 해전 등에서 야마토를 지휘하에 뒀던 구리다 다케오 중장도 전후 야마토의 주포가 460mm인 걸 모르고 있었다고 진술했다.[7], 야마토가 속했던 2함대의 포술참모 미야모토 다카오 대좌도 비슷한 진술을 했다.
부포도 일본제국 입장에서는 기적의 성능이라고 볼 수 있는 3년식 155mm 60구경장 함포로 3연장 부포탑 형태로 탑재된다. 해당 포탑과 함포는 모가미급 중순양함에 탑재되어 아주 잘 쓰인 물건이며, 나중에 모가미급 순양함이 3년식 20cm 50구경장 함포를 사용하는 8인치(20.3cm) 주포탑을 탑재해서 완전한 중순양함으로 바뀔 때 8인치 주포탑이 연사력, 사정거리, 명중률 면에서 모두 불리하므로 교체에 반대한다는 의견이 있었을 정도로 성능이 우월한 제품이었다. 게다가 앞서 말했듯이 360도 선회포탑인데다가, 함체 중심선상에 배치되므로 기존의 다른 전함처럼 적이 한쪽 측면으로 붙으면 다른 쪽 부포가 무용지물이 되는 사태를 막고, 적은 부포 수량으로 충분한 방어가 가능했다. 여기에 더해서 모가미급 중순양함에 쓰였던 물건을 그대로 가지고 온 것이 아니라 개량을 추가로 해서 장착했고, 나중에 대공포 증설시 철거되지만 함체의 양 측면에 동일한 부포탑이 1기씩 총 2기가 추가 탑재되었으므로 건조 당시의 부포 화력은 어떤 일본군 전함보다 우세했다.
대공포도 89식 12.7cm 40 구경장 함포와 96식 25mm 고각기총 등의 탑재 수량이 초기부터 많았다. 다른 일본 전함들은 대구경 대공포로 공고급부터 나가토급까지 예외 없이 89식 대공포 8문이 전부였던 반면, 야마토급은 건조 당시 12문의 89식 대공포를 갖추었고 나중에 증설을 통해 89식 대공포를 24문까지 늘려 동시대의 미국 전함을 살짝 능가하는 수량의 대구경 대공포를 갖추었다. 그리고 대공화력 증강에 힘써서 필리핀 해 해전 이후 날로 증강되는 미군 항공 전력에 대응하기 위해 증설을 거듭한 결과 나중에는 대공기관포를 포함해서 총 200여 문에 가까운 수량을 탑재했다. 그리고 일본군은 전함에 가장 좋은 대공포를 탑재했었으므로 대공 능력 면에서는 함재기를 자신의 엄호에 사용 가능한 항공모함을 제외하고는 일본군의 어떤 함선보다도 뛰어났다.
4. 장갑
야마토급 전함의 장갑 | |
구분 | 상세(단위는 ㎜, 장갑판의 종류) |
현측 주장갑 | 200 - 410 VH |
횡(横)측 방어격벽 | 중갑판 함수부지역 340 MNC, 하갑판 지역 300 MNC, 중갑판 함미부지역 340 VH, 하갑판지역 350 VH |
갑판장갑 | 중갑판 200 - 230 MNC, 최상갑판 35 - 50 CNC |
어뢰방어격벽 | 50 - 200 NVNC-CNC |
주포 탄약고 | 갑판평탄부위 200- 230 MNC, 갑판경사부위 230 MNC, 수직부위 100 - 270 VH, 바닥 50 - 80 CNC |
장갑함교 | 측면 380 - 500 VH, 상면 200 MNC, 바닥 75 CNC, 통로 300 MNC |
주포탑 | 전면 660 VH, 측면 250 VH, 후면 190 NVNC, 상면 270 VH, 바벳 380 - 560 MNC |
부포탑 | 포방패 25 HT, 바벳 25 DS + 50 CNC |
조타 기계실 | 상면 200 MNC, 측면 350 - 360 VC |
연통 | 380 MNC |
야마토급 전함의 또 하나의 장점은 장갑, 그것도 엄청난 떡장갑이다. 기준 배수량만 아이오와급 전함을 능가하는 무지막지한 배수량답게 주포 포탑의 전면장갑 두께부터가 무려 660㎜(약 26인치!) 측면장갑은 410㎜, 즉 16.1인치. 그것도 경사장갑이었다. 갑판은 상부 200㎜, 하부 226.5㎜로 8인치급인 미친듯한 떡장갑을 자랑했다.
그리고 포탑의 전면장갑이나 현측의 측면장갑 등 중요부위는 워낙 두꺼운 관계로 기존의 VH강을 사용했으나 갑판장갑등 200㎜ 이하의 두께를 가진 부위는 가급적 NVNC(New Vickers Non-Cemented)강이라는 특수강을 적용했다. 같은 시기 다른 전함들이 가장 두꺼운 곳도 13인치대 였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결코 얇은 게 아니다. 실제로 주포탑 천장에 250kg급 폭탄이 떨어져도 관통이 안 되었고 전혀 손상이 없었다.
그리고 이전까지 사용해온 VC강철의 제조 과정은 무쇠 → 용해 → 압연 → 침탄 → 표면 담금질이며, VH강철은 상기의 침탄 작업을 생략한 표면 경화층만의 장갑판인 데 반해, NVNC강철은 침탄 이후의 작업을 생략한 균질압연장갑이면서도 특수강이었으므로 생산공정 단축으로 인한 생산성 증대와 시간 절약을 얻어내면서 동시에 방어력을 증대하는데 성공하였다.
어뢰 대응 면에서도 벌지를 처음 건조시부터 장착해서 나중에 벌지를 추가한 전함처럼 덕지덕지 붙은 벌지가 함선의 속도를 느리게 만드는 현상을 안 겪었으며, 그 양과 질도 스펙상으로는 높은 편이었다. 일본의 제철 기술이 연합국에게 한참 뒤떨어져 있었다는걸 감안해도 카탈로그상으로는 그야말로 최강이었다.
3번함 시나노를 항공모함으로 개장하면서 포탑 전면 장갑판이 잉여로 남았는데, 2차대전 종전후 U.S. NAVAL PROVING GROUND(미해군실험장)에서 이 포탑으로 1947년 11월 관통실험을 벌였는데 그 실험결과는 아래와 같다.
* 철강의 재질(PLATE MATERIAL)
Japanese Vickers Hardened (VH) face-hardened, non-cemented armor (used only on YAMATO-Class battleships)
일본 NVNC (New Vickers Non-Cemented) 표면경화 강판 (야마토급에 적용됨)
Japanese Vickers Hardened (VH) face-hardened, non-cemented armor (used only on YAMATO-Class battleships)
일본 NVNC (New Vickers Non-Cemented) 표면경화 강판 (야마토급에 적용됨)
* 철강의 품질(STEEL QUALITY)
Steel had many tiny pieces of dirt and so forth, being about the same as pre-WWI British Vickers Cemented (VC) KC-type armor steel in quality (VC was used for the first time in the Japanese battleship IJN KONGO, built in Britain, and manufactured in Japan under license thereafter), from which the unique Japanese armors New Vickers Non-Cemented (NVNC), the homogeneous, ductile form of VH used in a number of Japanese post-WWI warships, and VH itself was derived (this steel was not up to U.S., British, or German post-1930 steel quality).
검사에 적용된 철강은 많은 미세 찌꺼기(dirt)들을 함유하고 있고, 그러므로 제1차 세계 대전 이전 영국에서 생산하였던 "British Vickers Cemented (VC) KC-type"의 방어 장갑용 강철(armor steel)과 품질면에서 동일한 것으로 사료된다. (VC 철강은 전함인 공고(金剛)에 처음으로 사용되었고, 당시 영국에서 건조되었으며 이후 일본에서 기술 제휴로 생산하게 된 제품이다.) 이것은 당시 일본에서 "New Vickers Non-Cemented (NVNC)"라는 제품으로, 균일(homogeneous)의 연성재질(ductile)의 VH강으로 WWI 이후에 건조된 일본의 함선에 채용되었으며, VH강의 물성치는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이 NVNC라는 철강재는 미국, 영국 또는 독일에서 사용하던 1930년대 이후의 강재보다는 열등하다.)
Carbon content was raised above VC steel level to increase ease of hardening, some copper added to allow some nickel (in short supply in Japan) to be removed (but not much), slight amount of molybdenum added to increase hardenability still more, and the cemented (carburized) thin surface layer used in VC (and in most other, foreign face-hardened armors) was eliminated with no loss of resistance from VC quality (a good design point). Surface of plate face was very smooth, unlike rough, pebbly surface of cemented plates, such as U.S. Navy Class "A" armor.
상기의 VC강의 재질의 경도강화(hardening)를 쉽게 하기 위하여 탄소(carbon)함유량이 증가되었고, 일정량의 구리(copper)를 첨가하여 다소 니켈(nickel, 당시 일본에서는 공급 부족) 성분이 부족한 것을 대체하였으며, 경도강화성(hardenability)을 올리기 위하여 소량의 몰리브데넘이 첨가되었다. 그리고 VC강에 사용된 침탄(浸炭) 처리된(cementation- carburized)얇은 표면층[8] 은 VC강에서 (그리고 다른 이종표면강화(foreign face-hardened) 강판에서도) 품질의 저하 없이 제거되었다 (디자인 면에서 아주 우수한 점이다.). 그리하여 미국의 A-클래스 강판과는 달리 표면이 아주 매끈하게 유지되었다.
Steel had many tiny pieces of dirt and so forth, being about the same as pre-WWI British Vickers Cemented (VC) KC-type armor steel in quality (VC was used for the first time in the Japanese battleship IJN KONGO, built in Britain, and manufactured in Japan under license thereafter), from which the unique Japanese armors New Vickers Non-Cemented (NVNC), the homogeneous, ductile form of VH used in a number of Japanese post-WWI warships, and VH itself was derived (this steel was not up to U.S., British, or German post-1930 steel quality).
검사에 적용된 철강은 많은 미세 찌꺼기(dirt)들을 함유하고 있고, 그러므로 제1차 세계 대전 이전 영국에서 생산하였던 "British Vickers Cemented (VC) KC-type"의 방어 장갑용 강철(armor steel)과 품질면에서 동일한 것으로 사료된다. (VC 철강은 전함인 공고(金剛)에 처음으로 사용되었고, 당시 영국에서 건조되었으며 이후 일본에서 기술 제휴로 생산하게 된 제품이다.) 이것은 당시 일본에서 "New Vickers Non-Cemented (NVNC)"라는 제품으로, 균일(homogeneous)의 연성재질(ductile)의 VH강으로 WWI 이후에 건조된 일본의 함선에 채용되었으며, VH강의 물성치는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이 NVNC라는 철강재는 미국, 영국 또는 독일에서 사용하던 1930년대 이후의 강재보다는 열등하다.)
Carbon content was raised above VC steel level to increase ease of hardening, some copper added to allow some nickel (in short supply in Japan) to be removed (but not much), slight amount of molybdenum added to increase hardenability still more, and the cemented (carburized) thin surface layer used in VC (and in most other, foreign face-hardened armors) was eliminated with no loss of resistance from VC quality (a good design point). Surface of plate face was very smooth, unlike rough, pebbly surface of cemented plates, such as U.S. Navy Class "A" armor.
상기의 VC강의 재질의 경도강화(hardening)를 쉽게 하기 위하여 탄소(carbon)함유량이 증가되었고, 일정량의 구리(copper)를 첨가하여 다소 니켈(nickel, 당시 일본에서는 공급 부족) 성분이 부족한 것을 대체하였으며, 경도강화성(hardenability)을 올리기 위하여 소량의 몰리브데넘이 첨가되었다. 그리고 VC강에 사용된 침탄(浸炭) 처리된(cementation- carburized)얇은 표면층[8] 은 VC강에서 (그리고 다른 이종표면강화(foreign face-hardened) 강판에서도) 품질의 저하 없이 제거되었다 (디자인 면에서 아주 우수한 점이다.). 그리하여 미국의 A-클래스 강판과는 달리 표면이 아주 매끈하게 유지되었다.
* 결론(CONCLUSIONS)
The U.S. Navy Ballistic Limit (complete penetration minimum velocity with this projectile at normal) estimated at 1839 feet/second (560.5m/sec), plus or minus 3%, which gives it about a relative plate quality of 0.839 compared to U.S. Class "A" armor (estimated, as no such super-thick plate was ever made in the U.S.). This was about the same as the best WWI-era British KC-type armor, which was what the Japanese were trying for--they had not attempted to make improved face-hardened armor, as the U.S. Navy did during the 1930's, for actual ship installation.
"U.S. Navy Ballistic Limit 社"는 시험용 포탄(projectile)이 최소 탄속(彈速)에서 피사체를 완전관통(complete penetration) 하였다는 것으로 평가하였다. 560.5m/sec (±3%) 탄속(彈速)에서 미국의 표준 A-클래스 강판을 100% 기준으로 상대 품질 정도를 83.9%로 사료된다. (추정치, 미국에서는 일본처럼 그렇게 두꺼운 강판을 생산한 적이 없었다.) 이것은 1차 세계 대전 이전 생산되었던 최고 성능의 영국 KC-type의 강판과 동일한 수준이고, 일본이 영국과 기술 제휴로 보유하고자 하였던 것이며, 일본은 미국이 1930년대 실제 건함(建艦)용으로 개발하였던 이전보다 개선된 표면강화 강판을 만들려고는 하지 않았고 KC-type의 강판의 수준에서 만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The plate was excessively brittle internally, with too much "upper bainite" crystal structure due to too-slow cooling. This was due to using the same pre-WWI British Vickers KC-type armor-hardening techniques on plates over 17" (55.8㎝) thick, for which they were never intended. This problem was solved during WWII, but no more VH was ever made except for some thin experimental plates. Brittleness did not seem to reduce resistance to penetration, though cracking might cause problems due to hits that ricocheted off.
시험에 사용된 강판은 내부적으로 과도한 취성(brittle, 잘 깨어지는 성질)을 갖고 있고, 저속냉각에 기인한 "upper bainite" 결정조직을 갖고 있다. 이것은 1차대전 이전에 영국의 "Vickers KC-type armor" 강판의 17" (55.8㎝) 이상의 중후판의 경화 기술과 동일한 것을 사용한 것으로 사료된다. 그런데 영국에서는 이러한 중후판에 적용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이러한 내부 취성의 문제는 2차대전 동안에 해결 방안이 개발되었는데, 그러나 실험용 강판을 제외하고는 더 이상 VH강은 생산되지 않았다. 취성(Brittleness)으로 인해 피탄 시의 저항력이 감소되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포탄을 튕겨내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균열(cracking)이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있다.
Note that one of these experimental plates 7.21" (18.3㎝) VH plate NPG #3133 was patterned on Krupp KC n/A (probably from data traded with Germany during WWII) and was tested by the U.S. Navy at the NPG using 335-pound 8" Mark 21 Mod 3 and Mod 5 (the latter with the super-hard AP cap, which turned out to be required to penetrate that plate intact) during this same test series. It was found to be THE BEST PLATE OF ITS THICKNESS RANGE (6-8" (15.2-20.3㎝)) EVER TESTED BY THE U.S. NAVY, even though its steel was of the same rather poor quality as the other VH plates tested!!! This caused the U.S. test conductors to state that obviously they did not understand what it took to make a high-quality Class "A" plate, since the 7.21" VH plate should not have been so good from everything they thought they knew about face-hardened armor!!! Obviously the Japanese could make armor as good as anyone if the specifications had required it!
기록한 실험용 강판 중 18.3㎝ 두께의 "VH plate NPG #3133"은 독일의 Krupp社에서 KC n/A강으로 특허를 내었던 것이다. (아마도 일본과 독일이 2차 세계 대전 중 기술자료를 공유한 듯 하다.) 그리고 이 강판은 미해군에 의해서 NPG에서 335-pound 8" Mark 21 Mod-3와 Mod-5 함포로 실험이 실시되었는데(Mod-5 함포의 경우는 이 신형 VH 강판의 관통하기 위해 특수강화 관통용 철갑탄(AP)이 사용되어야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 결과는 지금까지 미 해군이 실험해본 모든 15.2~20.3㎝ 두께의 강판 중 가장 우수한 성능을 발휘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상기한 품질이 떨어지는 VH강으로 제작된 강판임에도 불구하고 이로 인해 실험자들이 실험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게 되었다. "우리들이 고품질의 A-클래스 강판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요소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음이 확실하다. 이 7.21"(183㎜) VH 강판은 우리의 표면경화 강판 관련 지식에 의하면 이정도의 성능을 발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명백히 일본은 만약 사양서(specification)에서 요구를 한다면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장갑을 만들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At about 40,000 yards, the U.S. Navy 16"/50 firing a 16" Mark 8 Mod 6 AP projectile (the later Mod 7 and Mod 8 designs were post-WWII, so I usually do not count them and they were no better ballistically, to my knowledge) will hit at about 45° downward angle and 1607 feet/second (489.8 m/sec). Just as with a point blank hit at 2500 feet/second (762 m/sec) and 45° obliquity, this hit too will barely hole the plate as the projectile is hitting at 0° (normal) obliquity, though not completely penetrate it. Any slight barrel wear will lower the muzzle and striking velocities and no holing will occur at THESE OR ANY OTHER ranges, as mentioned. However, this is so far above any real fighting range (even with radar it is hard to see the target due to the earth's curvature interfering, especially in any kind of imperfect seeing conditions) that I do not even consider it in my computations, while putting the gun barrel up to almost touching the enemy turret is also a pipe dream in real life! Thus, no holing or complete penetrations, ever, though possibly some cracking of the plate and possible jamming of the turret if the crack-off plate piece is dislodged badly enough.
약 4만야드의 거리에서 미 해군의 16"/50 주포가 Mark 8 Mod 6 AP탄을 발사할 경우 (Mod 7과 Mod8은 대전 이후이며 탄도적인 측면에서 차이가 없음) 1607피트/초의 속도로 45도로 떨어진다. 이 경우 0도의 입사각을 가지므로 영거리에서 2500피트/초와 45도 입사각과 마찬가지로 강판에 구멍을 낼 수 있지만 완전히 관통할 수는 없다. 약간이라도 주포에 마모현상이 있을 경우 속도를 낮추게 되므로 어떤 거리에서라도 구멍을 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한 4만 야드는 실제 교전거리를 아득히 상회하므로 비현실적이며 영거리 사격 역시 마찬가지다. 따라서 실전에서 구멍이 나거나 완전 관통될 가능성은 없으며 강판에 균열이 가거나, 그 균열로 인해 포탑이 고정될 가능성은 있다.
Therefore, these plates are the only warship armor plates that could not be completely penetrated by ANY gun ever put on a warship when installed leaning back at 45°, as they were in the actual turrets!!! Even to completely hole the plate all the way through at that inclination requires a brand new 16"/50 Mark 7 or German 38cm SK C/34 gun at point-blank range firing the latest versions of their respective AP projectiles; it might be cracked at a lower striking velocity, but no hole put entirely through it! AND THEY SAID GUNS HAD COMPLETELY OVERMATCHED ALL ARMOR--*NOT SO*!!!
결론적으로 이 강판은 실제 탑재된 대로 45도 경사로 설치될 경우, 실존 전함에 탑재되었던 그 어떤 주포로도 관통이 불가능하다. 45도 입사각으로 이 강판에 구멍을 내기 위해서는 최신 주포인 미국의 16"/50 Mark 7이나 독일의 German 38cm SK C/34를 영거리에서 최신형 철갑탄을 장착하고 쏠 필요가 있다. 더 낮은 속도로도 균열은 갈 수 있지만 구멍이 날 일은 없다! 주포가 장갑을 완전히 능가했다고들 말하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The U.S. Navy Ballistic Limit (complete penetration minimum velocity with this projectile at normal) estimated at 1839 feet/second (560.5m/sec), plus or minus 3%, which gives it about a relative plate quality of 0.839 compared to U.S. Class "A" armor (estimated, as no such super-thick plate was ever made in the U.S.). This was about the same as the best WWI-era British KC-type armor, which was what the Japanese were trying for--they had not attempted to make improved face-hardened armor, as the U.S. Navy did during the 1930's, for actual ship installation.
"U.S. Navy Ballistic Limit 社"는 시험용 포탄(projectile)이 최소 탄속(彈速)에서 피사체를 완전관통(complete penetration) 하였다는 것으로 평가하였다. 560.5m/sec (±3%) 탄속(彈速)에서 미국의 표준 A-클래스 강판을 100% 기준으로 상대 품질 정도를 83.9%로 사료된다. (추정치, 미국에서는 일본처럼 그렇게 두꺼운 강판을 생산한 적이 없었다.) 이것은 1차 세계 대전 이전 생산되었던 최고 성능의 영국 KC-type의 강판과 동일한 수준이고, 일본이 영국과 기술 제휴로 보유하고자 하였던 것이며, 일본은 미국이 1930년대 실제 건함(建艦)용으로 개발하였던 이전보다 개선된 표면강화 강판을 만들려고는 하지 않았고 KC-type의 강판의 수준에서 만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The plate was excessively brittle internally, with too much "upper bainite" crystal structure due to too-slow cooling. This was due to using the same pre-WWI British Vickers KC-type armor-hardening techniques on plates over 17" (55.8㎝) thick, for which they were never intended. This problem was solved during WWII, but no more VH was ever made except for some thin experimental plates. Brittleness did not seem to reduce resistance to penetration, though cracking might cause problems due to hits that ricocheted off.
시험에 사용된 강판은 내부적으로 과도한 취성(brittle, 잘 깨어지는 성질)을 갖고 있고, 저속냉각에 기인한 "upper bainite" 결정조직을 갖고 있다. 이것은 1차대전 이전에 영국의 "Vickers KC-type armor" 강판의 17" (55.8㎝) 이상의 중후판의 경화 기술과 동일한 것을 사용한 것으로 사료된다. 그런데 영국에서는 이러한 중후판에 적용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이러한 내부 취성의 문제는 2차대전 동안에 해결 방안이 개발되었는데, 그러나 실험용 강판을 제외하고는 더 이상 VH강은 생산되지 않았다. 취성(Brittleness)으로 인해 피탄 시의 저항력이 감소되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포탄을 튕겨내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균열(cracking)이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있다.
Note that one of these experimental plates 7.21" (18.3㎝) VH plate NPG #3133 was patterned on Krupp KC n/A (probably from data traded with Germany during WWII) and was tested by the U.S. Navy at the NPG using 335-pound 8" Mark 21 Mod 3 and Mod 5 (the latter with the super-hard AP cap, which turned out to be required to penetrate that plate intact) during this same test series. It was found to be THE BEST PLATE OF ITS THICKNESS RANGE (6-8" (15.2-20.3㎝)) EVER TESTED BY THE U.S. NAVY, even though its steel was of the same rather poor quality as the other VH plates tested!!! This caused the U.S. test conductors to state that obviously they did not understand what it took to make a high-quality Class "A" plate, since the 7.21" VH plate should not have been so good from everything they thought they knew about face-hardened armor!!! Obviously the Japanese could make armor as good as anyone if the specifications had required it!
기록한 실험용 강판 중 18.3㎝ 두께의 "VH plate NPG #3133"은 독일의 Krupp社에서 KC n/A강으로 특허를 내었던 것이다. (아마도 일본과 독일이 2차 세계 대전 중 기술자료를 공유한 듯 하다.) 그리고 이 강판은 미해군에 의해서 NPG에서 335-pound 8" Mark 21 Mod-3와 Mod-5 함포로 실험이 실시되었는데(Mod-5 함포의 경우는 이 신형 VH 강판의 관통하기 위해 특수강화 관통용 철갑탄(AP)이 사용되어야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 결과는 지금까지 미 해군이 실험해본 모든 15.2~20.3㎝ 두께의 강판 중 가장 우수한 성능을 발휘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상기한 품질이 떨어지는 VH강으로 제작된 강판임에도 불구하고 이로 인해 실험자들이 실험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게 되었다. "우리들이 고품질의 A-클래스 강판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요소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음이 확실하다. 이 7.21"(183㎜) VH 강판은 우리의 표면경화 강판 관련 지식에 의하면 이정도의 성능을 발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명백히 일본은 만약 사양서(specification)에서 요구를 한다면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장갑을 만들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At about 40,000 yards, the U.S. Navy 16"/50 firing a 16" Mark 8 Mod 6 AP projectile (the later Mod 7 and Mod 8 designs were post-WWII, so I usually do not count them and they were no better ballistically, to my knowledge) will hit at about 45° downward angle and 1607 feet/second (489.8 m/sec). Just as with a point blank hit at 2500 feet/second (762 m/sec) and 45° obliquity, this hit too will barely hole the plate as the projectile is hitting at 0° (normal) obliquity, though not completely penetrate it. Any slight barrel wear will lower the muzzle and striking velocities and no holing will occur at THESE OR ANY OTHER ranges, as mentioned. However, this is so far above any real fighting range (even with radar it is hard to see the target due to the earth's curvature interfering, especially in any kind of imperfect seeing conditions) that I do not even consider it in my computations, while putting the gun barrel up to almost touching the enemy turret is also a pipe dream in real life! Thus, no holing or complete penetrations, ever, though possibly some cracking of the plate and possible jamming of the turret if the crack-off plate piece is dislodged badly enough.
약 4만야드의 거리에서 미 해군의 16"/50 주포가 Mark 8 Mod 6 AP탄을 발사할 경우 (Mod 7과 Mod8은 대전 이후이며 탄도적인 측면에서 차이가 없음) 1607피트/초의 속도로 45도로 떨어진다. 이 경우 0도의 입사각을 가지므로 영거리에서 2500피트/초와 45도 입사각과 마찬가지로 강판에 구멍을 낼 수 있지만 완전히 관통할 수는 없다. 약간이라도 주포에 마모현상이 있을 경우 속도를 낮추게 되므로 어떤 거리에서라도 구멍을 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한 4만 야드는 실제 교전거리를 아득히 상회하므로 비현실적이며 영거리 사격 역시 마찬가지다. 따라서 실전에서 구멍이 나거나 완전 관통될 가능성은 없으며 강판에 균열이 가거나, 그 균열로 인해 포탑이 고정될 가능성은 있다.
Therefore, these plates are the only warship armor plates that could not be completely penetrated by ANY gun ever put on a warship when installed leaning back at 45°, as they were in the actual turrets!!! Even to completely hole the plate all the way through at that inclination requires a brand new 16"/50 Mark 7 or German 38cm SK C/34 gun at point-blank range firing the latest versions of their respective AP projectiles; it might be cracked at a lower striking velocity, but no hole put entirely through it! AND THEY SAID GUNS HAD COMPLETELY OVERMATCHED ALL ARMOR--*NOT SO*!!!
결론적으로 이 강판은 실제 탑재된 대로 45도 경사로 설치될 경우, 실존 전함에 탑재되었던 그 어떤 주포로도 관통이 불가능하다. 45도 입사각으로 이 강판에 구멍을 내기 위해서는 최신 주포인 미국의 16"/50 Mark 7이나 독일의 German 38cm SK C/34를 영거리에서 최신형 철갑탄을 장착하고 쏠 필요가 있다. 더 낮은 속도로도 균열은 갈 수 있지만 구멍이 날 일은 없다! 주포가 장갑을 완전히 능가했다고들 말하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 요약
야마토급 전함의 강판은 1차대전 이전의 구식 강판에 속하는 구조를 가졌으며 일본이 스스로의 노력과 독일에서의 기술 도입을 통해 개량했지만 밀도, 재료가 변형에 저항하는 정도, 늘어 날 때 가로 세로의 변형율, 가한 하중에 의한 변형 측정수치의 결과와 여전히 많은 미세 찌꺼기(dirt)들을 함유 했다는 점에서 영국에게서 받은 장갑용 강판인 NVNC 기술의 틀을 벗어나지 않았다. 분명 해당 장갑판 제조 기술은 미영독 등에선 이미 한참 전에 더 상위 기술을 개발하였기 때문에 구식 기술이고 성능은 대략 83.9% 정도로 열등하다. 하지만 일본은 스스로의 노력과 독일의 기술 도입을 통해 개발한 생산 공정과 재료변경을 통해 구식 구조의 한계를 뚫고 경도를 강화하였다. 일본에게 부족한 니켈은 그 부족분을 구리로 대체하였으며 소량의 몰리브덴을 첨가하여 강도를 더 높였다. 이종 강재 간 접합 표면층은 제거하여 기술적으론 더 앞선 미국의 A-클래스 강판보다도 표면이 더 매끄러워졌다. 만일 이 강판으로 45도 경사로 적용하여 완전히 무장했을 경우 모든 실존 전함들의 주포를 동원해도 뚫을 수 없으며, 이 경사형 강판을 뚫기 위해서는 당대 미국과 독일의 최신의 주포와 철갑탄을 장착하고 장전한뒤 영거리 사격을 해야 할 정도로 강력한 방어력을 갖춘 것이다!!!
야마토급 전함의 강판은 1차대전 이전의 구식 강판에 속하는 구조를 가졌으며 일본이 스스로의 노력과 독일에서의 기술 도입을 통해 개량했지만 밀도, 재료가 변형에 저항하는 정도, 늘어 날 때 가로 세로의 변형율, 가한 하중에 의한 변형 측정수치의 결과와 여전히 많은 미세 찌꺼기(dirt)들을 함유 했다는 점에서 영국에게서 받은 장갑용 강판인 NVNC 기술의 틀을 벗어나지 않았다. 분명 해당 장갑판 제조 기술은 미영독 등에선 이미 한참 전에 더 상위 기술을 개발하였기 때문에 구식 기술이고 성능은 대략 83.9% 정도로 열등하다. 하지만 일본은 스스로의 노력과 독일의 기술 도입을 통해 개발한 생산 공정과 재료변경을 통해 구식 구조의 한계를 뚫고 경도를 강화하였다. 일본에게 부족한 니켈은 그 부족분을 구리로 대체하였으며 소량의 몰리브덴을 첨가하여 강도를 더 높였다. 이종 강재 간 접합 표면층은 제거하여 기술적으론 더 앞선 미국의 A-클래스 강판보다도 표면이 더 매끄러워졌다. 만일 이 강판으로 45도 경사로 적용하여 완전히 무장했을 경우 모든 실존 전함들의 주포를 동원해도 뚫을 수 없으며, 이 경사형 강판을 뚫기 위해서는 당대 미국과 독일의 최신의 주포와 철갑탄을 장착하고 장전한뒤 영거리 사격을 해야 할 정도로 강력한 방어력을 갖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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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인치 45구경장 Mark 6으로 쏜 철갑탄에 관통된 시나노 주포탑의 660mm 전면장갑 |
16인치 45구경장 Mark 6은 노스캐롤라이나급 전함과 사우스다코타급 전함의 주포로 위 보고서를 보면 알겠지만 0°도로 놓고 사격했다고 나온다. 주 장갑판은 경사각을 준 상태로 함선에 장착되었으며 실제 경사인 45도를 고려하면 단순 수직환산으로도 900mm대는 간단히 넘는다. 실전상황에서는 관통이 안된다는 이야기다.
혹시 SHS탄같은 초중량탄의 특성을 살려 장거리 고각 사격을 하면 경사장갑의 효과를 줄일 수 있으니 근거리 사격보다 더 유리하지 않을까 생각 할 수 있겠지만 포탄은 어쨌든 가장 에너지가 가장 많을 때는 포신에서 바로 나왔을 때이다. SHS의 장거리 사격시 갑판 타격 능력은 출중하지만 포탑 정면과 같은 주장갑판을 뚫기에는 좀 부족하다.
다만 실험을 위해 16인치 Mark 6 주포의 포구초속을 굉장히 낮춘 상황이었다.(새 주포의 701m/s 대 560m/s). 물론 nathan okun의 사견처럼 16인치 Mark 7 주포( 아이오와급 전함의 주포)라면 영거리에서는 뚫릴 가능성이 높다. 물론 전함과의 전투에서 영거리 사격 자체가 비현실적이므로 야마토급의 포탑 전면장갑은 관통불가라고 보면 된다.
물론 포탑 전면과 비교도 안 되게 넓고 피탄 확률이 가장 높은 선측 주 장갑대는 410mm에 불과하므로 관통가능성이 있긴 하지만 16인치 포탄을 상대로는 대응방어에 따른 안전구획인 20km ~ 30km은 충분히 달성한다. 따라서 실전에서는 목숨걸고 근접해서 포격하거나 초원거리에서 포탄의 비를 뿌리지 않는 한 16인치급으로는 답이 없다.
그러나 문제는 주포탑이 아닌 부포탑 장갑. 왜 부포탑 장갑이 문제가 되는지는 문제점 문서에서 다룬다.
5. 속도
야마토급 전함은 통상출력에서 최대 속도는 27노트까지 가능하고, 과부하를 걸면 29노트까지 가능했다. 이는 2차대전 당시의 최신예 고속전함에는 못 미치지만, 일본은 이미 30노트를 내는 공고급 순양전함이 4척이나 있으며, 나머지 전함들의 속도는 개장해서 25노트로 맞췄기 때문에 그 이상 늘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그 외에도 방어력 향상과 손상 시 전체 출력이 모두 나가버리는 사태를 막기 위해 보일러와 기관을 분산해서 보일러 - 기관 - 보일러 - 기관 식 교차배치를 했다. 이것은 그 당시 최신예 전함들이 하나같이 채용했으므로 시대의 흐름에도 부합했다.
또한 파나마 운하를 통과할 수 있는 크기로 폭이 제한되는 미국 전함과 달리 일본 제국은 드넓은 태평양에 자신의 군함들을 가로막을 육상 지형이 몇 개 안되는 작은 섬 외에는 없었고 특히 미국과의 직선 항로 방면에는 하와이에 도달할 때까지는 사실상 망망대해라서 야마토급 전함은 미국 전함들이 받는 제약을 받지 않고 설계되어 폭을 넓게 만들어서 능파성도 우수했다.
6. 장비
일본의 가장 강력한 전함답게 각종 전투용 장비도 일본의 관련 기술 중에서도 가장 최신이었으며 사격통제장치도 뛰어난 편이었다. 광학측거가 15m 측거의로 불리는 것이었는데 렌즈간 거리가 15.5m에 달하는 물건이었다. 이런 종류인 마이크로미터는 렌즈 간의 거리가 멀수록 성능이 좋아지는데, 일반 일본 전함도 고작 5m급 물건을 사용했다는 것을 보면 전대미문의 고급 물건을 탑재한 것이다. 당연하게도 기성품은 있을 리가 없어서 일본광학(日本光學)[9]에서 특별히 연구해서 제작한 물건으로, 당시 일본의 광학 기술이 집대성된 물건이다.여기에 그치지 않고 나중의 개량은 레이더까지 탑재했다.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보면, 적의 레이더 전파를 탐지해서 경고를 알려주는 전파탐신기(電波探信機)는 1호 3형(1号 3型)이 2기가 장착되었고, 대공레이더로는 2호 1형(2号 1型) 레이더가 2기, 수상용 레이더로는 2호 2형(2号 2型)이 2기가 장착되었다. 그리고 탐지거리는 항공기면 편대로 비행시 100㎞, 단기로 비행시는 50㎞이었으며, 수상목표물의 경우 전함은 마스트 높은 곳에 레이더를 장착하므로 동급으로도 35㎞까지 탐지가 가능했다.
수상기의 경우에는 영식수상관측기인 F1M과 영식수상정찰기인 E13A를 혼합해서 7기를 배치가능하였으며 후방의 제3 주포탑에서 함미에 걸친 부분의 최상갑판 아래에 상갑판과 중갑판의 2층을 점유하는 거대한 격납고가 설치되었으며 함미에는 구레식 2호 5형 (呉式二号五型) 캐터펄트가 설치되었고 수상기 착수시에 들어올려서 격납고로 수용하기 위한 크레인도 1기 설치되었다. 주포의 후폭품으로부터 수상기를 보호하려는 목적이지만 격납고가 크고 넓으며 크레인도 충분한 견인능력을 가지고 있으므로 나중에는 격납고를 물자 수송이나 적재 공간으로 활용하기도 하고 대공화기 증설로 인한 추가 승조원의 거주공간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7. 대미지 컨트롤
대미지 컨트롤면에서도 침수에 대해서는 급속 주배수 구획과 통상 주배수 구획을 많이 만들어놓고 해당 구획들을 전부, 중부, 후부의 주배수 관제실에서 관리하며 최종적으로는 함 중앙부 하갑판에 위치한 주배수 지휘소가 통제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주배수 지휘소에서는 주배수 계기판을 보면서 유압으로 제어되는 밸브를 원격조작해서 신속하게 주수를 실시할 수 있다. 주배수 시스템은 잠수함의 부력탱크의 주배수 시스템을 대형화한 것이 채용되었으며 취수공은 함저에 6개소 설치되었다. 배수에는 압축공기가 사용되었다. 이런 시스템을 통해서 일본군의 수뢰전대가 사용하는 대형 산소어뢰의 명중시에도 1발 명중시 5분 이내에 군함이 기울어진 것을 복구하고 2발이 명중해도 30분 이내에 군함이 기울어진 것을 복구하는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주배수구획의 주수가능량은 3,832톤으로, 횡경사복원능력은 18.3도였다. 그리고 연료인 중유의 이동에 의해서도 군함이 기울어지는 것을 복구 할 수 있었다. 이런 기능을 통해서 양쪽 모두 한쪽 측면으로 20도에 가깝게 군함이 기울어져도 30분 이내에 복원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여기에 더하여 비상 수단으로서 기계실이나 보일러실에도 주수가 가능하므로 큰 댓가가 따르긴 하지만 25도까지 군함이 기울어져도 다시 복원하는 것이 가능했다.
기본적인 예비부력도 57,450t으로 기준배수량 64,000t과 비교해서 90%를 확보했다. 나가토급 전함이 개장후에 예비부력을 29,250t을 확보해서 배수량 대비 67.6%를 확보한 것에 비하면 크게 발전한 것으로 마츠모토 키타로 (松本喜太郎)가 야마토급 전함을 침몰시키기 어려울 것이라고 장담할 수준이었다. 그래서 일본에서 어뢰 1발 명중으로 1,200t의 예비부력이 상실된다고 계산했을 때 모든 예비부력을 상실하려면 후소급 전함은 18발, 나가토급 전함도 24발이 명중하면 끝인데 반해 야마토급 전함은 어뢰 48발이 명중해야 한다고 계산했다.
명중탄이 발생하거나 화재가 발생할 경우에는 방화벽이나 소화수 및 거품 소화제를 분사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긴급 상황시에는 강제적으로 주수를 해서 탄약고의 폭발을 막아내는 시스템을 마련했다.
8. 함내 복지
공/방 전투력 뿐만 아니라, 그 덩치에 걸맞게 승조원들 특히 수병들의 생활 시설 등도 그때까지의 일본은 물론 타국 해군의 열악했던 수준을 벗어나 '해상 호텔'이라 불릴 정도인 호화로움을 자랑했다.당시 함상 생활은 전원 침상이 구비되어 있던 미국 해군 등을 제외하면 장교나 CPO급 되는 상급 부사관이 아닌 하급 부사관과 수병들은 아무데나 해먹을 걸고 자는 것이 기본이었다. 해먹의 숫자가 얼마나 많으면 파편방어용을 겸할 목적으로 아카기나 카가, 시마카제 등 일본 군함의 함교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물체들이 전부 해먹이니 말 다할 수준이다. 선진 해군이던 영국 해군도 해먹을 다수 사용해서 경순양함 벨파스트 박물관에도 수병들이 해먹을 사용한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되려 독일 등 타국 해군들이 접이식이나마 수병 침대를 갖추기 시작했다는 걸 생각하면 의외인 부분이다.
야마토급 전함은 일본 해군으로서는 유일하게 승선하는 모든 수병들이 사용할 수 있는 침대가 구비되어 있었다. 여기에 더해서 개인 사물 보관함도 해당 개인 전용으로 사용이 가능했다. 그리고 1인당 거주면적이 나가토급 전함의 2.6㎡ 에서 3.2㎡ 로 크게 확대되었다. 그런데 나름대로 고증을 빠삭하게 조사한 남자들의 야마토 같은 21세기 영화에서는 침몰을 앞둔 최후반임에도 수병들이 해먹을 걸고 자고 전투훈련과 배치시 함교에 열심히 건다. 이렇게 된 이유는 함내 화재 대책으로 불에 탈만한 것을 제거하는 정책이 정해져서 무사시부터 이미 비치된 가구를 제거하기 시작해서 1944년쯤에 이르면 거주공간에 가구가 모두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또한 야마토와 무사시의 장교식당 주방에는 요리사가 징용되어 함내의 요리를 책임졌다. 게다가 그냥 요리사도 아니고 전쟁 전에 세계 주요 항로를 오가던 일본 해운사들의 호화 여객선 주방에서 일하던 사람들이라 전문가 중의 전문가다. 거기다 함장 전용 취사 담당 및 준사관 이상 취사실에는 전기 냉장고가 있었고, 하사관과 수병용 부식들을 위해서 식료품 보관용 대형 냉장고가 있었다고 한다. 용량도 커서 야마토의 식료품 냉장고의 동력은 80,000kcal, 50마력의 터보식 냉동기 4대의 일부였던 데다 식료용 냉장고의 터보식 냉동기는 히타치 제품이었다고 말하는 증언도 있었다고 한다. 자매함 무사시는 야마토에 없는 자동 주먹밥 제조기가 설치되어 한번에 10개씩 생산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 외에 이산화 탄소 소화설비를 활용한 라무네 제조기가 군함중에서 가장 큰 용량으로 존재했으며 아이스크림 제조시설도 존재했다고 한다.
이 덕분에 일본 제국 육군보다 평균적으로 식사가 좋았다는 일본 제국 해군에서도 야마토와 무사시의 식사는 훨씬 좋았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1942년에 트럭섬에 해군과 연락차 방문한 대본영 파견참모 츠지 마사노부 중좌가 야마모토 이소로쿠 연합함대 사령장관과의 면담 후 야마토에서 도미 소금구이와 도미회 그리고 차가운 맥주를 대접받아 매우 감격했다는 등 당시 야마토를 방문한 육군 장교들이 야마토함의 식사에 놀랐다는 일화가 많았다고 한다. 패망에 가까워진 해에도 야마토함의 수병이 " 카레라이스가 맛있었다. 하지만 지금 내가 이렇게 좋은 것을 먹어도 되는지 의문이 들었다." 라고 회고했으니... 카레라이스 항목을 보면 알 수 있지만 당시 일본 수병이 먹은 식사는 매운 카레라이스와 바나나, 사과가 들어간 마카로니 사라다였다. 특별한 음식이 아니라고 생각이 들겠지만 전쟁 말기, 즉 1944년 ~ 1945년에는 일본의 물자 부족이 정말 극한으로 치달았다. 그래서 그러한 상황을 아는 수병이 해당 메뉴를 특식같이 생각하는데 그게 야마토함에선 일반식같이 잘 보급되니 감탄한 것이다. 다만 저거 먹고 배가 침몰할 때 전사했다는게 문제긴 하지만...
1945년 오키나와 전투에 참여하러 가다가 미 해군 항공기들에게 격침당하기 전에, 정확히는 점심식사 이전에 전투태세에 들어가면서 전투배식으로 나온 오니기리 2개를 먹은 승조원도 있고 못 먹은 승조원도 있다고 한다. 거기다 침몰한 날의 저녁식사 메뉴로 팥 찰밥 통조림과 쇠고기 통조림이, 야식은 단팥죽이라는 제법 푸짐한 메뉴가 예정되어 있었다고 한다. 야마토의 식사에 관한 이야기.
당시 일본 제국은 식량 상황이 심각하게 악화되어 기시 노부스케(당시 군수차관) 같은 고위 정치인이 버터 바른 군고구마를 자주 먹지 못하는 별미로 손꼽을 정도였다. 일반 국민은 물론, 일본군도 대부분이 굶주리는 상태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진짜 대단한 일이다. 이 당시를 다룬 쿠로야나기 테츠코의 자전성 소설 '창가의 토토' 중에 나오는 에피소드를 보면, 시중에 기호품이 거의 나돌지 않아 캐러멜 자판기가 빈 깡통이 되어버렸다든가, 궁핍한 상황에서 음악을 했던 저자의 아버지로 하여금 전선으로 위문공연을 가면 가족에게 많은 식량이 배급나올 거라는 제안이 온다든가, 전선으로 나가는 학교 용무원 아저씨를 송별하며 '대단한 음식' 인 구운 오징어로 연회를 한다든가 하는 부분이 나온다. 심지어 일본 본토 지역에 속하는 오키나와에서는 배고프다고 엔진오일에 음식을 튀겨 먹는 모빌 덴푸라라는 덴푸라를 먹다가 배탈이 나 죽어가고 있었다.
사실, 이건 당시 일본 제국의 정책 방향 중 하나였기도 했다. 당시 일본 제국은 미군의 기뢰밭과 폭격기밭을 무사히 뚫고 돌아온 보급선에서 가져온 물자를 군인들에게 최우선으로 보급하고 있었다. 그런 호화식단의 결정체가 바로 아이스크림과 라무네. 보급품 뿐만 아니라 함 내 소화전(= 탄산가스 발생 장치)을 이용한 싸제(...) 라무네도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야마토급에 비하면 양이 적기 때문에 야마토 쪽에서 만든 싸제 라무네가 인기를 끌어서 야마토급이 대표적인 싸제 라무네의 상징이 되었다고 한다. 이건 미군도 마찬가지였는데 경순양함 이상급 함정에 탄 경우 소화전에서 발생되는 이산화탄소로 아이스크림과 탄산음료를 즐길 수 있었다.
이처럼 좋은 대우를 받았던, 야마토급 전함 승조원들은 좋은 대우를 받았던 것에 대해 기밀 엄수를 강요받았다. 야마토급 전함 승조원들보다 더 좋은 대우를 받았던 일본군은 수상함보다 시설이 열악하기에 그만큼 대우는 더욱 후하게 해줬던 잠수 항모 센토쿠급 승조원들[10]이나 군 병원 부상자들[11] 정도였으니 사실상 제국 내에서 최고의 대우를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앞서 말한 여객선 출신 요리사 말고도 민간인 출신 군속들(이발사 3인, 재봉사 1명, 세탁공 1명)이 승선해 있었다고 한다. 출처 당시 영국 해군도 함내 PX 운영을 해군과 계약을 맺은 민간인들을 일종의 계약직 군무원으로 고용해 해결했으니 특별한 일은 아니지만 일본 해군 기준으로 저렇게 많은 전문 민간인이 승선한 거 자체가 대단한 것이다.
또한 야마토는 연합함대의 기함 역을 수행하다 보니 각종 고관들이 방문할 때가 많았고, 이를 위한 만찬도 빈번했다. 이를 위해 야마토의 급양관은 호텔급 정식에 대한 교육을 받아야 했고, 만찬 때는 함의 군악대가 식사에 어울리는 음악을 연주해 줬다고 한다. 이는 야마토 이전에 기함이던 나가토도 마찬가지였다.[12] 이러한 장면은 영화 도라 도라 도라에서도 연출되었다.
[1]
선수 수면 아래에 불룩하게 튀어나와 있는 구조물을 말한다. 파도를 부수어 물의 저항을 줄이고 속도와 연비를 향상시켜 준다.
[2]
1,350t인
구스타프 열차포의 2배가 넘는 수준이다!
[3]
건탱크의 전고가 약 15m인 것을 생각하면 실로 엄청난 크기에다 구경까지 넓은 것 이다.
[4]
이쪽은 야마토와 비슷하게 실전에 투입된 화포로 범위를 한정하면 가장 큰 구경을 지닌 화포다.
[5]
모든 공정과 시험 발사까지 전부 담겨 있다.
[6]
연막으로 인해 상대가 잘 안 보임, 적함을 적당히 두들기면 하위 함급들이 알아서 끝마무리 지을 거란 생각, 10분만에 미국 함대를 보호해준 스콜, 너무 작은 상대 함선 등
[7]
전함 야마토 건조비록戦艦大和建造秘録
[8]
간단히 말해 각 강재 간 접합면이 되는 표면층을 이야기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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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지금도
니콘이라는 이름으로 카메라 제조 등 광학기기 분야에서 활동하면서 상당히 우수한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10]
센토쿠급의 승무원들은 고대에서부터 현재까지의 일본 역사 전체를 통틀어 가장 좋은 대접을 받은 군인들이다.
이 병기의 목적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럴 만도 하다.
[11]
인명경시 풍조를 가진 일본군의 특성을 생각하면 이해가 안 가겠지만, 일단 부상당해 본토 및 주요 거점의 어느 정도 규모 있는 병원에 입원한 장병들은 전방의 장병들보다 더 후한 대우를 받았다.
[12]
나가토는
야마모토 이소로쿠가 직접 탑승해 연합함대를 지휘한 기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