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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트베르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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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인구3. 역사4. 사회5. 교육6. 정치7. 경제8. 교통9. 문화
9.1. 스포츠
10. 창작물에서11. 기타
안트베르펀
(Antwerpen / Anvers)
국가
[[벨기에|
파일:벨기에 국기.svg
벨기에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
인구 2021년 1,872,841명(안트베르펜주)
1,057,797명(안트베르펜 행정구)
527,629명(안트베르펜시)
시장 바르트 더베버르(Bart De Wever)[[N-VA|
N-VA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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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안트베르펜주기 1280px.png 파일:안트베르펜 문장.svg
주기 주장
파일:안트베르펜 시기.svg
시기 시장

네덜란드어: Antwerpen(안트베르펀)[2]
프랑스어: Anvers(앙베르스)[3]
독일어: Antwerpen(안트베르펜)
영어: Antwerp(앤트워프)

1. 개요

벨기에 서부에 위치한 주, 구 및 도시. 안트베르펜 주 주도이기도 하다. 한국에서는 영어 명칭인 앤트워프로 잘 알려져 있다.[4] 네덜란드어 발음을 살려 안트베르펀이라는 표기도 사용되고, 안트베르펀식 방언으로는 안트와르프(Antwarp)라고도 부른다. 유래는 상당기간 브라반트 공국에 속했지만 그 이전에 존재했던 안트베르펜 후국. 한국에는 과거 영어식 발음인 '앤트워프'로 많이 알려져 있었지만 최근에는 현지 발음을 존중하여 안트베르펜으로 부르는 추세다.[5]

안트베르펜 주는 안트베르펜을 중심으로 메헬렌과 튀른하우트(Turnhout) 같은 중소 도시들이 퍼져나가 있는 형태며 대부분의 도시들이 스헬더(Schelde) 강과 연결된 소규모 강과 운하를 중심으로 세워져 있다. 플란데런에서 유일하게 국경과 주 경계가 동일한 언어권만을 접한 주다. 그래서 모든 공문서 작성과 공무가 네덜란드어로만 진행된다. 위에는 네덜란드가 있으며 남쪽에는 브뤼셀을 감싸는 플람스브라반트와 접해 있다.

명칭인 안트베르펜의 기원에 대한 설화가 있다. 고대 로마 시절, 드루온 안티고누스(Druon Antigonus)란 거인이 사람들의 손목을 잘라내는 악행을 저지르고 있었다. 그러자 로마의 장군인 실비우스 브라보(Silvius Brabo)가 안티고누스를 죽여서 물리치고 그의 손을 똑같이 잘라내서 스헬더 강에 던졌다고 한다. 이 '손목을 던지다'(Hantwerpen)란 단어가 묵음화 등을 거쳐 안트베르펜으로 바뀌었다는 이야기다. 이때 실비우스 브라보는 이 단어가 '항구에'란 뜻도 있으니 그대로 도시 이름을 유지하자고 했다고 한다. 안트베르펜 시청사 앞에는 실비우스 브라보가 손목을 던지는 모습을 묘사한 분수대가 있으며, 안트베르펜 내에서는 이 손목 모양의 초콜릿 등의 기념품을 판매한다.[6]

2. 인구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안트베르펜/인구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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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는 약 50만 명, 도시 외곽까지 포함한 도심권의 인구는 약 120만 명이어서 벨기에에서 브뤼셀 다음으로 인구가 많고 플란데런 지역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다. 스페인과 네덜란드의 전쟁이 잠시 끝난 1609년에는 인구가 5만 명, 스페인에서 계승 전쟁이 일어난 1700년에는 7만 명이었다.

3. 역사

과거에는 안트베르펜 후국이 지배하고 있었고 브라반트 공국의 지배로 이어졌다.

1501년 포르투갈 상인이 안트베르펜에 아시아와 아프리카산 향신료와 사치품을 가져오면서 안트베르펜은 신항로 무역의 중간기지 역할을 하게 되어 상업과 금융업이 크게 발전하게 되었다. 이후 16세기 중반에는 인구가 10만 명에 육박하면서 당시 지중해 무역의 최대 거점인 베네치아를 능가하게 되었다.

4. 사회

항구도시답게 안트베르펀 시 인구 중 56.3%가 이민자 배경을 가지고 있으며, 총 172개국 국적자들이 거주하고 있다. # # 다만 벨기에에서는 부모 중 한 명이라도 외국인이거나 귀화인이었다면 이민자 배경이 있는 것으로 취급하기 때문에[7] 전국 평균치가 이미 35%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해 불가능한 수치는 아니다. 3/4이 이민자 배경을 가진 브뤼셀은 물론이고, 더 작지만 똑같이 50%대를 기록하는 왈롱의 도시들[8]과 60%에 달하는 중소도시 겡크[9]같은 케이스도 있기 때문이다.

교외화와 화이트 플라이트가 심하게 진행된 벨기에 대도시들의 특성상 시내에는 빈곤층의 비중이 매우 높은 편이며, 대체로 시내 동부 지역과 스헬데 강 서부(좌안)에 주로 분포한다. 반대로 시내 남서부와 북부 항만을 재개발한 Eilandje 지구는 젊은 고소득층이 주로 거주하는 편이다.

5. 교육

패션 분야에서 높은 입지를 갖고 있다. 앤트워프 왕립 예술학교는 패션 디자인 쪽에서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3대 패션스쿨이며, 유명 디자이너들도 상당수 배출해냈다. 대표적으로 뎀나 바잘리아, 마틴 마르지엘라, 앤 드뮐 미스터, 드리스 반 노튼, 크리스 반 아쉐, 더크 비켐베어크 등이 있다. 세계 3대 패션 스쿨 중 하나인 만큼, 입학도 힘들지만 졸업은 더 힘들다. 60~70여명[10]이 입학해서 졸업하는건 10여명 수준이다. 황재근이 이곳 출신.

6. 정치

벨기에 대도시들 중 가장 보수적인 도시이다. 녹색당 텃밭인 브뤼셀[11], 겐트 중도좌파 텃밭인 뢰번과 달리 안트베르펀은 민족주의 정당인 N-VA의 텃밭이며, 앞서 언급된 도시들 중 VB의 득표율도 가장 높았다.

다만 70년대까지는 안트베르펀 내에서도 사회주의 및 사민주의 정당에 대한 지지가 더 높았으며, 지금도 젊은 층과 이민자들을 중심으로 이들 정당의 지지층이 상당수 유지되고 있다.

안트베르펜 주 내의 메헬런(Mechelen)이나 상당수의 다른 도시에서는 녹색당과 자유주의 정당들이 우세한 곳도 있다.

7. 경제

인접한 네덜란드 로테르담과 함께 유럽의 물류 및 중화학 공업의 중심지이다. 물동량 기준 로테르담에 이은 유럽 2위의 항구를 가지고 있으며, 항만의 물류상 이점을 살려 정유시설 5개를 보유한 세계 2위의 석유화학 클러스터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12] 로테르담이 라인강을 통한 독일 루르 공업 지대로부터의 내륙 수운에 집중한다면 안트베르펀은 전통적으로 철도(Ijzeren Rijn)와 고속도로(1960년대 이후)를 통해 루르 이남 지역( 쾰른, 라인-마인 등)의 물동량에 집중했다. 또한 벨기에는 네덜란드와 달리 석탄과 철광석을 기반으로 19세기부터 공업화가 빠르게 진행되어 국내 발생 물동량 또한 상당한 편이며[13], 왈롱의 리에주부터 프랑스의 랭스까지 이어지는 공업 지역에 더해 가까이는 옆동네 켐펀[14]과 브뤼셀 인근 지역에서 발생하는 물동량도 안트베르펀의 항구를 통해 이동한다.

역사적으로도 16세기까지 유럽에서 제일가는 상업 및 금융 중심지이자 항구 도시였다. 과거 영국의 양모 수출 루트가 안트베르펜이었으며,[15] 스페인령 식민지에서 나오는 향신료와 사탕수수같은 생산물들도 안트베르펀의 항구로 들어와 가공되었다. 플란데런 지역이 스페인의 영토이던 시절에는 세계적인 은광인 포토시 은광의 수익과 이 안트베르펜에서 나오는 수익이 비슷할 정도였다.

다이아몬드 관련 산업이 발달했다. 다이아몬드 거래소만 해도 4개가 있고, 아예 중앙역 바로 서남쪽에 '다이아몬드 구역'(Diamantwijk)이 따로 있을 정도다. 이 다이아몬드 구역은 세계에서 가장 큰 다이아몬드 유통의 중심지로서, 보석 가공 인력만 12,000여 명이 있으며 전 세계 다이아몬드의 80%가 이곳을 거쳐갈 정도다. 안트베르펀의 다이아몬드 산업은 전통적으로 유대인들이 주도권을 잡아 왔었지만, 요즘에는 인도인, 특히 구자라트의 팔란푸르라는 소도시 출신 인도인들이 본국과의 공급사슬을 무기로[16] 다이아몬드 거래를 꽉 잡고 있다. # 이러한 보석 유통의 밀집도로 인해 세기의 강도 사건이라 불리는 안트베르펀 다이아몬드 강도 사건이 여기서 발생했다. 이때 5인조 강도들이 탈취한 다이아몬드와 금 등 보석들의 가치는 1억 달러 이상이라고 한다. 그리고 범행을 주도한 리더는 잡혔지만 훔친 보석이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으로 보아, 나머지 범인은 잡히지 않은 듯하다.

그리고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백신을 생산하는 그 유명한 얀센이 바로 이 안트베르펜 주 동부 튀른하우트 인근에 근거지를 두고 있다. 얀센이라는 회사 이름은 이 회사의 창시자인 플란데런인 파울 얀센[17]의 성씨에서 유래한다. 1960년대 이후 얀센은 미국 제약사 존슨앤존슨에 인수되어 다국적 기업이 되었다. 본래는 할로페리돌, 리스페리돈 조현병 치료제로 유명했었으며, 코로나 사태 이후 일명 얀센 백신인 얀센-존슨앤존슨 코로나 백신은 한국에서도 접종되어 인지도가 높다.

8. 교통

벨기에 국철에서 운영하는 벨기에 북부 지방의 철도 노선이 모이는 곳으로, 아름답기로 유명한 안트베르펜 중앙역을 필두로 시내 남부의 베르험 역과 남역 등 여러 역이 위치해 있다.

시내 교통으로는 De Lijn에서 시내버스, 트램, 프리메트로[18]를 운영하며, 시에서 운영하는 자전거 대여 서비스가 있다.

9. 문화

안트베르펜의 성모 성당(Onze-Lieve-Vrouwekathedraal)[19]은 유난히 뾰족해보이는 첨탑이 특징인 성당이다. 루벤스의 작품 4점이 이 성당에 있으며, 플랜더스의 개가 안트베르펜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즉, 네로가 보고싶어했던 루벤스의 그림이 있는 성당이 이곳이다. 1556년 성상 파괴 사건(beeldenstorm) 때 신교도들에게 파괴당한 적이 있으며, 그 때문인지 성당에는 구체적인 인물 조각은 거의 없으며 대부분 패널화가 걸려있다. 성모 성당은 ' 벨기에와 프랑스의 종루'라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으며, 안트베르펜 시청 건축물 역시 같은 세계유산에 포함되어 있다.

왕립 미술 박물관에는 루벤스, 안토니 반 다이크, 티치아노 같은 안트베르펜에서 작품 활동을 하였던 르네상스 시기부터 바로크 시기까지의 거장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특히 루벤스의 경우는 그가 생전에 공방으로 사용하던 루벤스하우스가 그대로 남아있어 부유했던 화가의 대표 주자인 루벤스의 모습을 느낄 수 있다.

베네룩스 일대를 통틀어 현재까지 가장 아슈케나지 유대인들의 문화가 잘 보존된 도시이다. 지금도 다이아몬드 구역과 시내 곳곳에서는 키파를 쓰고 이디시어를 쓰며 생활하는 하레디들을 매우 흔히 볼 수 있다. 이들 대부분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동유럽 지역의 유대인 박해( 포그롬)를 피해 운 나쁘게 가까운 독일(...)로 도망쳤다가, 1930년대 나치 집권 이후 다시 벨기에로, 특히 상업이 발달한 안트베르펀으로 넘어온 사람들로, 옆 나라 네덜란드의 주류 세파르딤 유대인들(16세기 이주)과는 문화가 판이하게 다르고 현지 문화와의 동화 정도도 크게 달랐다.

9.1. 스포츠

대한민국 출신 축구선수들 여러 명이 거쳐갔던 ' 로열 앤트워프 FC(Royal Antwerp FC)'의 연고지다. 앤트워프는 이 도시의 영국식 이름으로[20] 이 때 한국인들에게 본격적으로 이 도시가 알려지기 시작했다. 또한 첼시 FC 소속의 로멜루 루카쿠의 출생지 이기도 하다.

1920년 올림픽이 개최된 곳이며, 테니스 ATP 250 대회( European Open)가 2016년부터 매년 10월 경에 개최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ATP의 경우 인도어(In-door) 대회이고 사용 코트는 하드코트이다. 프로축구 구단으로 인지도 높은 도시이지만 테니스 대회로도 꽤 유명하다.

2022년에는 카운터 스트라이크: 글로벌 오펜시브의 메이저 대회인 CS:GO Major Championships 이곳에서 개최된다.

10. 창작물에서

이 문서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문서가 설명하는 작품이나 인물 등에 대한 줄거리, 결말, 반전 요소 등을 직·간접적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11. 기타


[1] 연방 하원, N-VA 대표 겸직 [2] 현지 발음은 안트웨르펀 가까우나 이전에 국립국어원이 안트베르펜으로 채택한 상태에서 아직 개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현재 표기법은 안트베르펜이다. 현행 네덜란드어 표기법으로는 "안트베르펀"이 맞지만, 예외를 적용한 것으로 보인다. [3] [ɑ̃.vɛʁs\]. 벨기에 표준 발음은 앙베르스([ɑ̃.vɛʁs\])인데 프랑스에서는 앙베르([ɑ̃.vɛʁ\])라고 하는 경우가 있다. 라루스 사전에서는 앙베르스라고 표기하고 옆에 프랑스에서는 앙베르라고 적어놓았다. [4] 대체로 역사적으로 중요했거나 영국과 교류가 많았던 등의 이유로 도시에 별도의 영어 이름(exonym)이 붙는 경우가 많은데, 플란데런의 경우 중세부터 영국과 경제적 교류가 많았던 관계로 브뤼셀(Brussel-Bruxelles/Brussels)과 안트베르펀(Antwerpen/Antwerp) 뿐만 아니라 브뤼허(Brugge/Bruges, 영불 공통), 겐트(Gent/Ghent), 이프르(Ieper/Ypres, 영불 공통), 오스텐데(Oostende/Ostend)에도 영어 이름이 따로 붙어 있다. 이웃 네덜란드에는 헤이그만 별도 영어명이 붙어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5] 한국에서는 유럽은 다른 배경을 가진 문화권이니만큼 현지 발음을 존중해서 영어식으로 '모스코우', '롬', '워쏘' 등으로 부르지 않고 되도록 현지식으로 ' 모스크바', ' 로마', ' 바르샤바' 등으로 부르고 있지만, 이상하게 유독 안트베르펜만 '앤트워프'라고 표기해놓은 경우를 자주 볼 수 있었다. 엑소님이 붙은 이웃 네덜란드의 헤이그도 똑같다. [6] 이 손목 모양의 초콜릿에 대해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레오폴드 2세의 악행과 연관되어 '벨기에는 자국이 식민지한테 자행한 추악한 제국주의적 역사를 반성하기는커녕 자랑스럽게 음식화하는 미개한 사이코패스 인종차별주의 옹호 집단이다!'라고 호도하고 선동하는 글이 떠돈다. 벨기에가 인종차별 관련 이슈에서 좋은 모습을 보인 적이 적은 나라이지만 인터넷 커뮤니티 상의 근거 없는 글과 실제 지역의 전통 정도는 구별해야 할 것이다. [7] 이 통계 산정 방식으로 인해 네덜란드인들이 다수 거주하는 림뷔르흐 동부와 안트베르펀 북부 지자체들에서는 딱히 (흔히 생각하는) 이민자가 많은 지역이 아닌데도 비정상적으로 높은 수치가 나온다. 전자는 사실상 다리 건너 마스트리흐트의 교외 지역처럼 기능하고, 후자 또한 인접한 브레다, 틸뷔르흐, 에인트호번의 교외 지역처럼 기능함과 동시에 주택 가격을 감당하지 못하는 취약계층과 자산에 대한 세금 면탈을 노린 자영업자 및 자산가들이 네덜란드 전역에서 넘어와 거주한다. 이러한 연유로 네덜란드 접경 지역은 실업률이 비슷한 시골 지역 지자체들보다 살짝 높게 나온다. [8] 리에주, 샤를루아, 무스크롱, 라 루비에르 등 [9] 이쪽은 옛날 광산 노동자로 이민한 이탈리아계 주민들 위주. [10] 자고로 저 60~70명이 1차 서류평가 2차 실기 시험을 통과한 이들이다. 실제 지원자는 더 많다. [11] Team Fouad Ahidar의 선전에서 보여지듯 이민자 출신 유권자들의 비중과 선거 제도를 악용해 플란데런에 투표하는 프랑스어 화자들의 영향도 배제할 순 없지만, 대체적으로 브뤼셀에 거주하는 플란데런인들은 비교적 젊고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라 진보적이다. [12] 로테르담이 이웃 Drechtsteden(로테르담 동남쪽의 -drecht로 끝나는 네 도시들)과 항만 운영주체를 통합한 것과 같이 이쪽도 브뤼헤의 항구와 운영주체 통합이 예정되어 있다. 특이하게 두 항구 사이에 끼어 있는 겐트의 항구는 독립되어 있는데, 이쪽은 입지상 네덜란드 제일란트(플란데런 제일란트)의 테르뇌전을 통해서만 바다로 나갈 수 있는 관계로 2021년 통합 발표 이전부터 이미 제일란트의 항만공사와 통합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13] 비슷한 방식의 공업화는 네덜란드 동남부 끝자락의 림뷔르흐 주 남부에 한해 일부 찾아볼 수 있었지만, 이쪽은 위치가 위치인지라 전통적으로 Ijzeren Rijn 철도를 따라 안트베르펀 항구로 향하는 물동량이 상당했다. 이외 네덜란드 전국에서 전통적인 석탄/철광석 기반의 산업화는 벨기에에 비해 크게 미약했다. 일례로, 벨기에의 1인당 GDP는 암스테르담이 전 유럽의 유대인들과 위그노들을 받아들이며 상업 중심지로 성장한 1600년대부터 네덜란드에 역전되어 있던 상태였지만, 19세기 말 산업화 이후 벨기에가 네덜란드를 재역전하어 1차대전으로 벨기에가 쑥대밭이 되기 직전 연도인 1913년까지만 해도 네덜란드보다 1인당 GDP가 높았고, 2차 산업이 활발하던 1960년대까지도 네덜란드보다 높았다. 출처에 따라서는 전간기에도 네덜란드보다 앞섰다고 나오는 출처도 있다. [14] 이쪽은 물류 중심이다. [15] 원래는 브뤼헤가 이 역할을 했으나, 15세기 전후로 즈웨인 만의 퇴적으로 물길이 막히면서 안트베르펜에게 그 지위를 넘겨준다. 그래도 아름다운 과거 도시의 모습은 브뤼헤가 더 잘 간직하고 있다. [16] 본래는 가공부터 유통까지 전부 안트베르펀에서 이뤄졌지만, 이들은 임금이 저렴한 인도에서 가공하고 안트베르펀에서 거래하는 모델을 정립했다. [17] 얀센은 네덜란드어권에서 흔한 성씨이다. [18] 지하 구간으로 운행하는 트램 [19] 보통 안트베르펀 대성당이라고 한다. [20] 로열 앤트워프 창단을 주도한 이들이 영국인들이었다. [21] 쉽은 앤트워프와 함부르크에서만 건조가 가능한데 그 중에서도 공업가치가 더 높은 앤트워프 쪽이 더 빠르게 쉽을 뽑아낼 수 있다. 앤트워프 쪽이 대서양과 더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