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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6-22 20:51:21

화이트 플라이트



1. 개요

화이트 플라이트(White flight) 또는 화이트 액소더스(White exodus)는 인종적으로 다양해지는 지역에서 벗어나려는 백인들의 대이주를 뜻한다.

이런 사례는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 아프리카 일부 지역에서도 일어났거나 일어나고 있지만 가장 잘 알려진 사례이며 해당 용어를 퍼뜨린 건 1950년대 1960년대 미국 백인들의 대이주이기 때문에 이 문서도 미국의 사례를 상세히 다룬다.

2. 상세

1980년대까지 흑인 대이동을 통해 수백만 명의 흑인들이 남부를 빠져나와 동부, 북부, 서부의 대도시로 이주하였다. 흑인들이 도시에 많아지자 백인 중산층들이 시내를 버리고 교외로 대거 이주하면서 도심 지역을 관리하는 지자체의 재정이 급속도로 악화되기 시작했고 흑인들만 남은 시내 지역은 급속도로 슬럼화, 게토화되기 시작했다. 흑인 저소득층들의 갱 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기도, 흑인 게토 사회가 파탄나기 시작한 시기도 바로 1980년대다.

레이건 행정부 시기에 미국 경제가 오일 쇼크를 극복하고 호황세에 올랐지만 화이트 플라이트(White flight) 이후 백인 거주지구와 흑인 거주지구의 양극화가 심화되어 흑인 저소득층의 삶은 계속 나빠져만 갔고 21세기에도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아시아계 미국인 인구가 늘어나는 경우에도 일어나는데 흑인이나 히스패닉처럼 범죄 때문은 아니지만 학교가 지나치게 경쟁적으로 바뀌는 것이 주 원인이다. 주거 지역에 관한 것은 아니지만 마찬가지 이유로 아시아인의 비율이 지나치게 높은 대학을 기피하는 백인들도 존재하는데 아시아인들은 무조건 교육열이 높고 그들과 경쟁하기 어렵다는 선입견이 있어서다.

3. 해외 사례

3.1. 아프리카

아프리카에서 백인들이 다수를 점한 적은 없기 때문에 사례가 많지는 않지만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반까지 많은 유럽인들이 식민지가 있는 아프리카 대륙으로 이주하였으며 이들은 1950년대 1960년대 탈식민화를 맞이하면서 방황했다. 탈식민화가 평화롭게 일어났든 유혈항쟁으로 일어났던 많은 유럽인들은 이전에 가지던 특권을 잃어 본국으로 이주하였으며 특히 알제리 전쟁에서 약 백만명이 넘는 사망자를 내면서 독립한 알제리 피에 누아르들과 포르투갈 식민지 전쟁을 거쳐 독립하며 사회주의 정권들이 수립된 앙골라, 모잠비크와 같은 경우에는 대다수의 유럽계들은 본국으로 송환되었다. 이와 같은 경우는 전술한 미국 백인들의 사례와 후술할 사례들과는 다르게 진정한 "이동(Flight)"/"탈출(Exodus)" - 대탈출이라고 할 수 있겠다. 포르투갈계 모잠비크인들을 예로 들자면 모잠비크 독립 직전 20만명에 달했던 포르투갈계 모잠비크인들은 전후 모잠비크 정부의 공산주의 경제 정책으로 빠져나가 현재는 8만 2천명만 남아 있다.

3.1.1. 남아프리카 공화국

아프리카에서 백인들의 이주가 가장 오래되었으며 가장 수가 많았던 곳이 남아프리카 공화국인 만큼 백인들의 대이주가 가장 많이 일어난 나라이기도 하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1994년 이전에는 악명 높은 인종차별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를 통해 흑인들이 살 수 있는 구역을 10곳의 홈랜드로 제한하고 이외 지역으로의 출입을 막았으며 심지어 홈랜드 10곳 중 4곳을 반투스탄이라는 괴뢰국으로 강제로 독립시키는 방식으로 흑인들의 국적을 박탈했다.

그래서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넬슨 만델라 프레데리크 빌럼 데 클레르크에 의해 아파르트헤이트가 폐지되고 인종평등 정책이 시행되자 많은 흑인들이 일자리를 찾아서 도시들로 몰리면서 전술한 미국 백인들의 사례와 비슷하게 부유한 아프리카너들의 일부는 교외로 빠져나갔다. 중산층 백인들과 시골의 백인 등은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에서의 사례와 비슷하게 인종차별에 대한 보복으로 살해[1]당하거나 불안해지는 치안 사정, 그리고 어퍼머티브 액션으로 인해 불이익을 받으면서 유럽 북미로 이주하였다.

다만 백인의 수가 극적으로 감소한 다른 대부분의 아프리카 국가와는 달리 남아공의 백인 인구는 1996년 이후 증가했다가 감소했다가 하면서 현상유지는 하고 있다.[2]

3.1.2. 짐바브웨

짐바브웨의 전신 로디지아도 전술한 남아프리카 공화국처럼 아파르트헤이트와 비슷한 인종차별 정책을 펼쳤으며 로디지아 분쟁 이후 로버트 무가베가 집권하면서 토지개혁으로 백인들의 농장을 몰수하자 많은 백인들이 아프리카 남부로 이주하거나 본국 영국으로 귀환했다. 1979년 로디지아 백인 정권 붕괴 당시 백인 인구는 242,000명이었으나 2012년에는 28,732명으로 감소했다.

3.2. 유럽

유럽에서는 미국과 비슷하게 현재진행형으로 일어나고 있다. 다만 미국에서는 이주해 오는 흑인들을 피해서 이민을 갔다면 유럽에서는 이주해 오는 난민들이나 인도 튀르키예 같은 외국 이민자들을 피해서 간다는 게 차이점이다. 물론 21세기에 대놓고 외국 이민자들이 싫어서 이민간다고 할 사람들은 적지만 실제로는 이민자들이 몰리는 지역에서 백인들의 이주가 뚜렷하게 증가하는 관계가 확인되었다.

스웨덴에서는 1970년대부터 비- 스웨덴인들이 몰리는 지역들로부터의 이주가 뚜렷하게 확인되었으며 특히 노고존과 같은 이민자 다수 지역들의 치안 우려로 인해 스웨덴인들의 이주가 확인되었다. 외레브로 대학교에서 행한 스웨덴 부모들의 설문조사에서는 대다수의 부모들이 말로는 문화다양성 다문화주의에 대해 호의를 표했으나 실상으로는 학교나 주거 등을 고려할 때 몸으로는 스웨덴인이 대다수일 것을 중요하게 고려한다는 모순되는 결과가 나왔다. 이와 같은 모습이 노르웨이, 덴마크와 같은 다른 북유럽 국가들에서도 나타나면서 2010년 노르웨이의 공영방송 NRK 오슬로인종적으로 분리된 도시가 되었다고 평하기도 하였다.

영국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관측되고 있다.
[1] 흑인들이 백인을 살해하는 경우도 많았고,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흑인을 살해하는 경우도 많았다. [2] # 역이민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 다만 흑인을 위시한 타 인종의 인구 증가율이 어마무시한지라 인구 비중에 있어서는 지속적 하락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