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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행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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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치
1.1. 집권 초기1.2. 부패와의 전쟁1.3. 시진핑 2기1.4. 장기집권 시도
1.4.1. 코로나19 창궐 시기1.4.2. 3연임의 성공 및 장기집권
1.5. 대 홍콩
2. 외교3. 경제4. 사회, 문화

1. 정치

파일:11-8.jpg
2018년 3월 17일 제 13기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헌법 선서를 하는 시진핑

1.1. 집권 초기

폭발적인 경제성장의 부작용이 커지는 것을 감안, 개혁 쪽으로 국가 노선을 움직이고 있다. 세계적으로 악명 높은 부정부패를 감시하고 처단하는데 힘을 쏟고, 역시 크게 문제시되는 빈부격차도 줄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성장과 복지에 모두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하며 2000년대 후반기부터 문제시되어오던 한 자녀 정책은 시진핑 시대를 기점으로 폐지되었다.

1%의 국영 기업이 40%의 비중을 차지하는 경제에 대해서도 메스를 댈 듯하다. 하지만 중국 내 기득권 세력과 개혁 세력의 복합적인 이익 관계를 조정해야 하는 입장이고 게다가 사회적 혼란을 원하지는 않을 것이므로 정치와 법 분야의 개혁은 안정적인 기조로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경제 면에서도 마찬가지로 민간 기업의 몫이 늘어나겠지만, 전면적으로 정부와 무관하게 시장에 권한이 집중될 것으로 보기 어렵다.

임기 초반부터 개방 개혁을 우선 강조하며 강한 의지를 보였으나 이에 대해 보수 세력[1]으로부터 견제를 받았던 것 같다. 그가 공산당 혁명 유적지를 찾기보다 개혁·개방 1번지인 선전을 방문해 덩샤오핑 동상에 헌화한 데 의구심을 표한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 이후로는 마오쩌둥 기념식에도 꾸준히 참석하고 있다.

현재 자신의 정책을 실행해 나가는 상황이며, 계획생육정책의 골자인 한 자녀 정책을, 부모 중 한쪽이 한 자녀일 경우 둘째까지 허용하는 방침이 그 중 하나이다. 노동 교화소 폐지도 정책으로 실행된다고 했는데, 정식으로 폐지되었는지 아직 확인되진 않았다. 대대적으로 출범한 전면 심화 개혁 영도 소조 조장도 직접 맡고 있는데, 구체적인 내용은 드러나지 않았지만 국내외 현안 전반에 걸쳐 추진 작업을 해나갈 것이라고 한다. 물론 중국 공산당 독재 체제에 대한 변화를 근본적으로 꾀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1.2. 부패와의 전쟁

상술하였듯 중국 공산당 내에서 초기의 시진핑은 장쩌민과 후진타오의 권력다툼 속에서 주석에 취임한지라 아직은 상하이방 세력에 밀리는 상황이었다. 비록 전임 주석 후진타오와 달리 군사위 주석까지도 겸하였지만, 상하이방의 세력은 막강하였다.

당시 상하이방 세력으로 정법위 서기 저우융캉[2], 군사위 부주석 쉬차이허우가 있었는데[3][4] 이들은 시진핑의 집권과 함께 물러났지만 여전히 그 세력은 세서 시진핑은 암살 위험에 시달렸다고 한다.

이에 시진핑은 그들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중국 인민해방군 공군 특수부대에게 경호를 부탁하였다. 그리고 2012년 11월부터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했는데, 그 과정에서 저우융캉 등의 부정부패를 발견해 모조리 그 싹을 제거해나갔다.

대표적으로 보시라이 실각 당시 저우융캉이 지니고 있던 중앙정치법률위 산하 무장경찰부대인 중국 인민무장경찰부대를 움직이려 했던 사건이 있었는데, 이 부대는 인민해방군이 아닌 공안부의 부대였다. 이를 시진핑이 진압하는 과정에서 이후 중국 인민무장경찰부대는 아예 중앙정치법률위 소속에서 중앙군사위 소속으로 옮겨져 중국 인민해방군의 일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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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과정에서 군도 개편되었다. 2016년, 중국 인민해방군의 군 구조를 대규모로 개편한 데 이어, 2016년 4월에는 ' 중앙군사위 연합 지휘 중심 총지휘'라는 새로운 직함을 달고 군사 훈련을 지휘하는 모습이 보도되었다.

1.3. 시진핑 2기

2017년 10월, 제19차 당대회(10.18~10.24)를 마치고 7명의 상무위원을 발표하며 시진핑 2기 집권을 시작했다. 당대회에서 ‘시진핑 사상’을 명시한 당헌을 채택했으며, 중앙위원회에는 시진핑 군단이 대거 진입했으며, 정치국 위원 25명 중 17명을 친시진핑 인사로 분류되는 사람들이 차지했다. 정치국상무위원의 숫자는 7명을 유지했으나, 친시진핑 인사들로 대거 물갈이 되었다.

시진핑 2기에는 신문출판광전총국이 중앙선전부 산하로 들어가게 되면서 중앙선전부가 해외 콘텐츠 검열·감독 업무를 직접 관장하게 되면서 출판물 수출입, 저작권 관리, 영화 제작·유통·방영, 방송 프로그램 및 영화 수출입, 국제행사 주관 등까지 모두 관장하게 되면서 권한이 한층 강화되었다.

1.4. 장기집권 시도

2018년 3월 11일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의 헌법을 개정하여 국가주석 임기 제한 규정을 폐지하고 시진핑 사상을 헌법에 추가하였다. 사실상 덩샤오핑 이래 아슬아슬하게 유지되어 온 집단지도체제를 종식하고 1인 독재 체제를 구축한 것으로 평가된다. 게다가 헌법 개정안을 사실상 공개투표로 통과시킨 것이 알려졌다. 관련기사 1인독재에 대한 비판과 우려를 의식한 것인지 개헌 직후의 연설에서 "이 개헌은 개인의 공명을 위한 것이 아니며, 인민들의 평판과 역사의 앙금이 가신 뒤 진정한 평가가 내려질 것"이라고 말하며 개헌을 옹호하는 모습을 보였다. #

사상적으로는 제2의 마오쩌둥보다는 제2의 이오시프 스탈린을 지향하는 듯하다. 분명 중국 지도자임에도 마오쩌둥이 아니라 카를 마르크스 블라디미르 레닌을 중점적으로 띄우고, 마오쩌둥이 아니라 마르크스와 레닌을 계승하려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공산당 당원들에게 마오쩌둥 사상이 아니라 마르크스와 레닌의 사상을 학습할 것을 권하고, 18년 5월엔 마르크스 탄신 200주년 기념식을 열어서 "10월 혁명은 오늘날의 중국을 통해 계승되고 있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사실상 중국판 주체사상이나 다를 바 없고 무엇보다도 경제개발이 진척되어 생산력이 충분히 성장한 중국의 현실에 더 이상 적용되기 어려운 마오주의와는 다소 거리를 두면서 소련식 스탈린주의 개발독재 쪽으로 가려고 하는 듯하다.[5][6]

1.4.1. 코로나19 창궐 시기

2020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사태에 대해 시진핑이 영도소조를 세웠다. 그런데 원래라면 모든 조직의 수장에 올라가서 심지어 타이틀 컬렉터라는 별명까지 가지고 있는 시진핑이 소조 조장을 맡는 게 아니라 리커창 중국 총리한테 수장을 맡겼다. 이번 사태가 시진핑한테 정치 위기로 다가온다는 것을 알고 리커창한테 책임을 떠넘긴 것이다. 그리고 중국 언론들도 시진핑에 대한 보도를 줄였다. 시진핑 집권 이후 1인 독재 정치를 하고 있는 시진핑의 이런 책임 회피 행태에 중국인들도 분노하고 있다. 기사

오죽하면 타임지에 "중국의 시험"이라는 문구를 대놓고 박았다.

파일:TIM200217v1_China.Cover_.jpg

그리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 국면에서 시진핑 중화인민공화국 주석이 어디론가 짱박히면서 전 세계 언론들의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기사 2020년 2월 10일에서야 마스크를 착용하고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는데 전염 당할까봐 무서워서 짱박혀있다가 마지못해 기어나온 모양새라서 중국 내 비판이 강하다.

미국과의 무역 분쟁이나 장기 집권 독재화 문제, 그리고 홍콩 민주화 운동 탄압과 경제적 악화는 서방과 부패한 관료들의 문제라는 식으로 책임을 회피할 수 있지만 이번 우한 신종 코로나 사태는 그러기 어려울 것으로 예측된다. 다들 마스크를 쓰는 바람에 인민들을 감시하는 것도 원천 봉쇄되었다. 어차피 바이러스로 죽을 것이라 인민들이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걸로 끝나지 않을 것 같다.

2020년 3월 2일, 중국에서 시진핑의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대처를 찬양하는 도서를 출간하려다가 아직 완전히 종식되지 않았다며 출간을 연기했다. 기사

중국에서는 2020년 2월 말부터 후베이성 이외 지역은 시진핑 중화인민공화국 주석의 지시로 기업들 조업 상황을 어느정도 재개시켰다. 그런데 여기서도 시진핑이 제시한 목표 경제성장률에 맞추기 위해서 중국 지방정부들이 대대적인 통계 조작에 나서고 있어서 빈축을 사고 있다. 기사

2020년 3월 10일부터 3월 16일까지는 유럽, 미국에서 코로나가 진정되지 않고 확산세를 멈추기 어려운 상황에서 공무원들에게 외식을 권하고[7] 학교 등 밀집지역 출입제한을 푸는 비정상적인 행보를 보였다. #

2020년 3월 17일 시진핑은 파키스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할 때 마스크를 벗고 나왔다. 마스크를 벗고 정상회담을 한 것은 중국 정부의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대처에 대한 선전 효과를 노린 것으로 분석된다. 기사

2020년 4월 코로나19가 종식은 커녕 세계적 팬데믹을 일으키면서, 시진핑의 입지도 상당히 불안해졌다.[8] 이미 국제사회에서 만악의 근원으로 찍혀버린데다가, 국가 외교라인 차원에서 음모론이나 들고 나오며 책임을 떠넘기면서 전 세계의 분노를 일으켰고, 때문에 해외 중국인에 대한 혐오범죄와 이를 넘어 아시안에 대한 광범위한 차별까지 일어났다.

게다가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중국 국민들의 분노가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폭발 직전의 상황이라 민심을 달래기도 쉽지 않고, 특히 무자비한 봉쇄로 트라우마가 일어난 후베이성의 주민들은 이미 등을 돌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전의 다른 위기와 달리 이번 사태는 죽느냐 사느냐가 직접적으로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중국 국민들에게 다가오는 위기감도 매우 크고, 사람이 옆에서 죽어나가는 게 유튜브 등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퍼져나가서 이전처럼 언론과 통계로 꼼수부리는 것도 먹히는 데 한계가 있다. 더구나 은폐, 불량 키트 등으로 진영 논리 할 것 없이 국제 사회에서 하나 같이 욕을 먹이고 있는 상황인데 아무리 음모론으로 수작질을 부린다고 해도 시진핑 체제에 의문이 들지 않을 수가 없는 상황이다. 그 러시아와 이란도 친미국가들 때리는거야 몰라도 나는 왜 때리는거냐라는 반응인지라.

1.4.2. 3연임의 성공 및 장기집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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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가 이례적으로 조례까지 만들며 권력 강화에 나섰다. #

2021년 11월에 제19기 중앙위원회 6차 전체회의(19기 6중 전회)는 회의 마지막날인 이날 당의 100년 분투의 중대 성취와 역사 경험에 관한 중공 중앙의 결의(역사 결의)를 의결했다. #

2022년 10월 16일 열리는 당대회를 통해 종신집권을 위해서 헌법까지 개헌할 정도로 밑밥을 깔아둔 시진핑이기에 이 당대회 전부터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 여러 정책을 내세웠다. 첫 단추로 아이들의 학업에 진심인 부모들의 지지율을 얻기 위해 문화와 게임에 탄압을 시작하였다. 문화 탄압에선 꽃미남 아이돌 스타들을 일명 냥파오라고 지칭하며 중국식 남자상에 어울리지 않는다며 출연 제한 등의 조치를 취했다. 게임 탄압으로는 중국 게임산업이 물 오르던 시기에 게임은 해롭다면서 청소년층은 토, 일 주말 딱 2시간만 게임할 수 있도록 중국판 셧다운제를 도입하였다.

2번째 정책으로는 다 함께 부유해지자라는 구호 아래 극단적인 자본 양극화를 줄이는 것을 대의명분을 내세워 문어발식 사업으로 큰 공룡이 된 텐센트, 알리바바, 바이두를 타겟으로 삼아 중국 재벌들 탄압에 나선 것이다. 이들에게는 게임중독 치료라는 목적으로 상당수의 돈을 뜯어갔고 부동산을 규제하기 시작하자 부동산 공룡기업인 헝다그룹이 파산해버렸다.

3번째로는 게임 탄압 이외에도 부모들의 지지를 받기 위해 평등한 교육경쟁을 명분으로 사교육을 철저히 탄압하는 것인데, 이는 사교육을 통제해 현 중국 당국의 의도대로 교육시키기 위함이다. 미래 세대들을 국가에서 정해준 교육과정과 자기 입맛대로 바꾼 내용들로 교육시킨다면 자신의 지지세력으로 삼기 편하다는 이점도 있기에 일석이조다.

이외에도 분청과 프로파간다를 통해 조선족들을 완전히 편입시키기 위한 작업과 돈 되는 한국 문화를 자국문화로 삼기 위해 차이나 머니로 우기는 등 동북공정을 철저히 시행하고 있다. 또 중국인들의 단결을 위해 혐한작업을 중국 당국이 주도적으로 하도록 방치했다. 그 결과 2022 동계 올림픽에서 반칙과 편파판정도 모자라 한국이 반칙국가로 묘사된 영화를 밀어주는 등 혐한 분위기가 조장됐다.

마지막으로는 중국이 바이러스 발생지임을 감추고 코로나 청정국이라는 간판을 통해 자신의 지도력을 최종적으로 입증시키기 위해 제로 코로나를 시행했는데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중국 당국의 막가파식 졸속행정과 보여주기식 이론에 가까운 봉쇄조치로 인해 상하이 봉쇄사태가 발생해 굶어 죽기 직전인 상황까지 몰린 상하이 거주 중국인들이 대놓고 저항하는 행태를 보여준 것도 모자라, 제로 코로나 정책이 쓸모 없었음을 증명하듯 베이징에도 코로나가 다시 확산하고 신장 위구르 지역도 코로나가 확산했다. 그래서 제로 코로나 정책이 효능을 입증하기는 커녕 일부 지역에서 지지율만 떨어지게 되었다. 그 결과 2022년 10월에 열릴 예정이었던 아시아게임을 2023년 10월로 연기를 선언하며 자존심에 상처를 입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미 중국 공산당은 친시진핑 인사들로 가득차있고 장기 집권을 통해 자기 정적을 전부 때려잡은 시진핑이기에 이 정도 상처는 별것 아니었다. 10월 16일에 열리는 당대회에서 시진핑의 종신집권이 확정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으며 마오쩌둥만이 받은 인민영수 호칭을 스스로 부여하면서 사실상 마오쩌둥과 같은 반열에 섰음을 선언했다. 이에 일부 중국인들이 시진핑의 3연임에 반대하는 낙서나 대자보를 붙이고 사라지는 등 반발을 했으나 천안문 사태처럼 대규모 시위가 아니여서 중국당국은 정보를 통제하면서 쉬쉬하며 덮어버렸다. 이런 움직임이 있는만큼 재집권 이후 더더욱 심한 감시체제를 할 수 있다.

10월 22일에는 폐막식을 열면서 리커창 총리 등이 3연속 연임을 하지 않고 집단지도체제를 고수하겠다며 정치계 뒤로 빠졌으나, 폐막식 이후 공개된 200명 명단에서 시진핑은 유지되었고 정치국 상무위원도 단 1명빼고는 전부 시진핑 인사로 배치하면서 사실상 시진핑 독재체제가 완성되었다. 시진핑은 이미 집권 2기 시절에도 권력을 휘둘렀는데 이제는 마오쩌둥처럼 말 한 마디에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 당대회를 돋보이게 하겠다고 대화제를 급급하게 덮고 경제 성장률도 이번 분기에 눈부신 반등을 이뤘다며 언플로만 넘어갔다. 이 와중에 후진타오 강제 퇴장 논란이 일어나 회의에 있던 의원들을 모두 당혹스럽게 만들었고 전세계적으로 전 주석을 강압적으로 끌어내렸다는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3연임에 성공하고 제로코로나를 통한 코로나 바이러스에 승리했다며 승리선언과는 달리 정작 광저우, 베이징을 비롯해 여러 지역에서 코로나 확산으로 인해 다시 건물 봉쇄 및 재택근무 강제, 음식 배달 및 포장, 식사금지, 48시간 내 음성 증명서가 없으면 교통제한 등을 이어간데다가 2022년 11월에 열린 카타르 월드컵에서 모든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지않고 응원하는 모습을 보고 시진핑이 코로나 승리선언과는 달리 아직도 마스크를 쓰는 괴리감[9] 때문에 결국 3년간 참아온 일부 중국 국민들이 공안의 등장과 제지에도 시진핑 퇴임을 외치며 거세게 항의하는 모습이 나오고 있다. 이 시위에서 베이징 대학생들도 튀어나와 하야 요구를 하자 위기감을 느꼈는지 공권력을 대거 투입함과 동시에 대대적으로 제로코로나 정책을 폐지수준으로 완화한 것과 동시에 3연임 첫 대외실적으로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전략적 포괄 우방국이라는 명칭의 동맹을 맺으면서 엄청난 양의 프로젝트를 수주해와서 대대적으로 선포하는 중이다.

2024년 3월 양회에서는 중국 국무원총리의 권한을 약화시키는 법안인 중국 국무원 조직법을 통과시켰으며, 중국 중앙은행도 중국공산당 통제하에 두도록 만들면서 ‘시 황제’ 1인체제를 과시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10] 양회 폐막 전날, 시진핑의 집무실이 있는 중난하이 남쪽 문으로 검은 차량 1대가 돌진하는 전대미문의 일이 벌어졌으나, 중국 매체에서는 해당 사건을 검열하면서 대만 자유시보 등 외신에서만 보도되고 있다. #

1.5. 홍콩

2019년 6월 들어서 홍콩 홍콩 범죄인 인도법 반대 시위가 격화하면서 시진핑은 정치적 위기를 맞았다. 시진핑이 자기 하수인인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을 시켜서 홍콩인을 중국에서 처벌하는 범죄인 송환법을 만들려고 했다가 홍콩 국내의 거센 반발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조리돌림을 당하고 있다. 혈맹인 북한, 우방인 러시아까지 2019년 베네수엘라 정치 위기 때와 달리 중국의 입장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침묵 상황'만 연출하고 있다. 이 때문에 2019 G20 오사카 정상회의를 앞두고 시진핑이 궁지에 몰렸다. 2019년 7월 1일 영국 가디언은 이번 홍콩 시위가, 중국공산당의 1인자가 된 후 권력욕을 드러내며 독재를 강화해 온 시진핑의 독재정치에 개인적으로 거센 도전을 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기사

결국 2019년 9월 4일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을 시켜 범죄인 인도법(송환법)을 완전히 철회(Withdraw)시켰다. 700만 홍콩 시민들의 88일간 끈질긴 시위에 결국 시진핑이 굴복한 것이다. 이번 홍콩 송환법 철회 명령은 중국 국내 정치투쟁에서 시진핑이 사상 처음으로 맞는 쓰라린 패배이다. 이 때문에 시진핑의 지도력에 큰 상처가 되었다.

2019년 9월 30일, 국경절 70주년을 앞두고 홍콩에 대해 연설을 했다. 홍콩의 반중국 시위가 17주째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홍콩과 함께 번영하고 발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AFP통신에 따르면 30일 시 주석은 중국 건국 70주년 국경절을 하루 앞두고 이날 열린 기념행사에서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 및 높은 수준의 자치권 원칙을 완전하고 충실히 이행하겠다." 밝혔다. 이어 "본토의 전폭적인 지지와, 본토를 사랑하는 홍콩과 마카오 주민들의 노력으로 (홍콩은) 본토와 함께 번영하고 발전할 것"이라고 전했다. 시 주석은 "본토의 완전한 통일은 피할 수 없는 흐름"이라며 "그 누구도, 어떠한 힘도 이를 막을 수는 없다." 말했다. AFP통신에 따르면 시 주석은 이 대목에서 대만을 언급하기도 했다. 중국 정부는 오는 10월 1일 70주년 국경절을 맞아 수도 베이징 텐안먼 광장에서 역대 최대 규모로 열병식을 진행했다. KBS 뉴스

위 연설은 기존의 일국양제에 대해 중국 공산당의 원래 입장을 뒤집는 발언이다. 본토와의 완전한 통일이라고 하여 2047년 6월 30일 이후 홍콩을 중국이 완전히 병탄할 것이라고 선포했다. 기존 중국 공산당의 입장은 하나의 중국에 기초하여, 일국양제를 보장하여 홍콩의 별도 체제를 존중하고 유지하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시진핑은 2019년 9월 30일 완전한 통일을 처음 언급하여 하나의 중국이 제도의 완전한 통일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것은 홍콩의 자치권 기간이 끝나는 2047년 7월 1일 중국은 홍콩을 완전히 병탄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2019년 10월 23일 중국이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을 경질할 것이라는 뉴스가 파이낸셜 타임즈를 통해 나왔다. 시위대에 밀려서 경질한다는 모양을 피하기 위해, 캐리 람은 2020년 3월경 경질할 것으로 예측되었다. 기사 홍콩 행정장관 대행으로 추정되는 2명에 대해서도 분석 기사가 나왔다.

10월 31일 끝난 중국 공산당 4중전회에서 홍콩만 콕 집어 정책 변환을 강조했다. 이에 홍콩에 국가보안법 같은 강경 조치를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된다. 기사 결국 11월 1일 오후에 중국 공산당 명의로 선춘야오(沈春耀) 전국인민대회(전인대) 상무위원회 법제공작위원회 주임이 발표했다. 선 주임은 홍콩 문제에 대해 "당연히 4중전회에서 토론한 중요한 내용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중앙이 헌법과 기본법에 따라 특별행정구에 전면적 통제권을 행사하는 제도를 완비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사 이렇게 대놓고 홍콩의 완전 통제를 선언한 것은 처음이다.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이 지속되면서 시진핑의 지도력은 의심을 받고 있다. 그리고 2019년 11월 24일 2019년 홍콩 구의회 선거에서 친중파가 참패함으로써 시진핑의 중국몽은 중국 국내에서부터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기사 거기다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미국-중국 무역 전쟁이라는 초강력 폭탄까지 받고있다.

2020년 5월 22일 중국 전인대에 정식으로 홍콩 국가보안법을 제출하였다. 2003년 홍콩 국가보안법 반대 시위로 홍콩 입법회를 통한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은 무산된 바 있다. 그리고 2014년 홍콩 우산 혁명,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으로 인해 홍콩 입법회를 통해 국가보안법을 제정할 가능성이 없으니 중국 전인대에서 직접 통과시킨 이후 홍콩에 전면적 통제권을 행사하는 방법으로 시행할 것으로 예측된다. 기사 중국은 홍콩이 자꾸 자신들의 통제를 벗어나려는 것 같다며, 민주파, 본토파 등의 입을 막아버릴 목적으로 국가보안법을 추진한다는 점을 숨기지 않았다. 기사 다시 말하지만 홍콩의 입법절차가 아닌 중국의 입법절차를 통해 홍콩 정치를 통제하겠다는 것으로, 일국양제 자체가 무너지는 상황이다.

홍콩의 마지막 총독인 크리스토퍼 패튼 전 홍콩총독은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한테 보내는 공개 서한 형식으로, 영국 정부가 중영공동선언에 따라 홍콩 정치에 적극 개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특히 이번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은 2047년 6월 30일까지 기한이 남아 있는 중영공동선언을 결정적으로 무너뜨리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기사

홍콩 국가보안법에는 민주화 시위대를 테러리스트로 간주하고, 이들의 활동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홍콩 기본법이나 중화인민공화국 헌법, 중국공산당 규약을 비판하는 인사는 반체제 인사로 간주하고 처벌할 수 있다. 또한, 이들의 참정권도 박탈할 수 있고, 통신 검열도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기사 이는 사실상 대한민국에서 유신헌법 시대 긴급조치 제9호와 동일한 내용이다.

홍콩 내에서는 중국 정부가 홍콩 입법회를 거치지 않고 국가보안법을 제정하려고 하자, 트위터, VPN, 텔레그램등 각종 중국 검열 우회수단 사용량이 폭증했다. 기사 홍콩증권거래소에서 홍콩기업들로 구성된 주가지수 항셍지수는 5.56%나 폭락했고, 홍콩증시에 상장한 중국 기업들 주식으로 구성하는 주가지수 홍콩H지수 역시 4.30%나 폭락하였다. 기사

외신들은 홍콩 국가보안법을 중국 전인대에서 기어이 통과시킨다면 "홍콩의 멸망", "일국양제 사망선고"가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거세게 비판했다. 기사

홍콩 국가보안법을 중국에서 통과시키면 홍콩 영화는 완전히 멸망할 것이고, 한국 영화 시장이 대안으로 급부상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반중 성향의 영화 감독이나 영화 제작진, 영화 배우들이 망명길에 올라야 하기 때문이다. 기사

중국 공산당 내에서도 홍콩문제를 비난하는 의견이 강하다. 도대체 왜 통제가 잘 되어가던 홍콩을 굳이 건드려 사생결단 상태를 내냐며 시진핑에 대한 비난을 하는 공산당 당원이 있는데, 그 중 한 명이 일국양제를 시행한 덩샤오핑의 아들 덩푸방으로 덩푸방은 시진핑이 아버지의 업적을 망치고 있다며 비난을 가했다. 경제학자들 역시 홍콩은 중국이 국제사회와 소통하는 데 중요한 창구인데다가, 중국 경제력의 절반을 책임지는 도시 중의 하나로 굳이 가만있는 홍콩을 건드려 미국, 영국 같은 서방 강대국들과 대결하는지 이해를 못 하겠다는 반응이 많고, 게다가 지금 중국의 경제도 어려운 마당인데다가 코로나19로 인해 전세계가 안 그래도 반중정서가 강한데 홍콩까지 건드려서 서방이 중국을 향한 경제제재를 때리는 원인을 제공했다며 비판을 가하고 있다.

2.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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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경제

시진핑의 첫 주석 재임기에는 후진타오의 뒤를 이어서 후진타오의 파벌 공청단이 지지를 했으나 장쩌민을 비롯한 상하이방 파벌이 있었기에 대놓고 이들을 적대하기에는 그랬으며 상하이방은 경제도시 상하이를 기반으로 한 경제개발 노하우가 뛰어났다는 점과 전임 주석 후진타오가 '중국 현지에서 생산시 무관세' 라는 정책 덕에 기술을 빼돌릴 기반을 착실히 만들어 둔 점, 그리고 중국 당국의 적극적인 산업스파이 활동 덕에 빠르게 기술발전이 이뤄지면서 엄청난 경제발전을 이루게 된다.

그러나 문제는 상하이방의 황태자가 대규모 비리로 낙마하자 시진핑은 이를 계기로 상하이방 인물들을 차례차례 숙청해나가기 시작하고 그 자리를 공청단 혹은 공청단에서 자기 파벌인 시자쥔으로 넘어온 이들을 꽂기 시작하면서 경제 노하우를 지니던 상하이방들 세력이 축소되기 시작한다. 그래도 중국기반은 아직 있어서 경제성장률은 고공성장하던 도중이었으며 그 덕에 시진핑은 2연임에 성공한다. 그러나 시진핑의 중국은 남중국해를 시작으로 미국과 너무 빨리 충돌하기 시작하면서 어그로를 끌어버렸고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중국의 책임론을 기반으로 해서 동북아시아 정세에 불안한 모습을 보이던 오바마 행정부가 임기를 전부 마치자마자 정권교체로 집권한 트럼프 행정부부터는 중국을 가장 위험시하기 시작, 군사기밀 유출 혐의를 명분으로 화웨이를 세계적 제재를 시작으로 중국을 향한 여러가지 규제를 먹이기 시작한다.

이때를 기점으로 중국 경제 성장률은 점차 하락하기 시작했는데 시진핑은 이에 그치지 않고 중국 국민의 불만을 잠재우고 국내기업을 밀어주기 위해 중국에 진출한 해외기업들을 상대로 최저 월급을 점차 높이기 시작하면서도 온갖 규제를 추가하기 시작하자 인건비가 싸다는 중국의 매력을 잃게되면서 해외기업들은 점차 베트남이나 인도로 눈을 돌리며 옮기기 시작하면서 실업률이 오르기 시작한다. 이때 중국의 경제력에 큰 영향력을 준 사건은 중국 우한에서 터진 바이러스이자 팬더믹을 일으킨 코로나19로 전세계가 경제에 타격을 입었듯이 중국도 경제에 타격을 입었다. 대표적인 사건으로는 제로코로나 정책으로 인한 상하이 봉쇄로 경제도시 상하이가 봉쇄되자 중국의 경제는 그야말로 엄청난 하락을 맛보았다.

시진핑의 3연임이 시작되면서 장기집권이 현실화되자 외국 기업들은 너도나도 주식을 팔아버리면서 IT빅테크 3대기업인 알리바바, 텐센트, 바이두 3개 회사 다 합해서 조단위 수준의 시총이 증발해버렸다. 게다가 시진핑의 경제정책은 현실성이 없는데 3연임 정부에서는 다 시진핑의 파벌인 시자쥔이 장악하면서 중국 경제는 더더욱 나락으로 갈 가능성이 높아졌다.

코로나는 제로코로나 정책을 외치는 것과 달리 무식하고 막가파식 통제를 해도 다시 유행하기 시작하자 자택근무 지시 및 교통제한을 먹이면서 아수라장이 되자 제로코로나 정책 폐기시 성장률 4.4%로 관측된다는 외신의 보도가 나왔다. 백지시위 이후 제로코로나 정책을 폐기로 가기 시작했고 사우디의 대규모 프로젝트를 수주해오면서 경제성장률이 높아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관측에 불과했다. 시진핑은 헝다그룹을 의도적으로 파산시키고 마윈을 비롯한 자본가들 길들이기를 한 후유증이 심각했으며 해외기업이 차린 제조업을 비롯한 공장은 산업스파이와 규제로 타국으로 이전 중이며 더 나아가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인해 러시아가 비우호국 국적 민항기는 영공 사용금지령을 내림으로써 과거 러시아를 통해 중국으로 가는 비행기들의 시간이 4시간이나 더 길어짐에 따라 수익성 감소로 서유럽 관광객들도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4. 사회, 문화

시진핑 1기 시절에는 정적도 있었기 때문에 대대적인 문화탄압을 하지 못 했다. 명분으로 탄압한 경우는 사드 배치를 통해 한국 문화가 중국 시장을 잡아먹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선포한 한한령뿐인데 이때는 어느정도 명분이 있었으며 어느정도 정적을 때려잡았기에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정적을 계속해서 때려잡으면서 순조롭게 2연임이 시작되고서는 차이나머니를 앞세우며 문화공정을 해나갔으며 미중갈등이 본격화 되자 애국주의를 내세우며 온갖 프로파간다 영화들이 나왔다. 중국의 영화산업은 내수시장 하나만으로도 엄청난 수익이 나오기 때문에 전랑 2와 같이 작품성이라고는 눈에 찾기 힘든 중뽕 가득한 영화도 엄청난 흥행을 거두었고, 중국 영화계는 질적으로 발전하기는 커녕 혐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영화까지 나오고 있다.

반면 중국 게임사업은 나날히 발전하면서 호요버스를 위시한 중국 게임들은 한국게임보다 게임성이 더 훌륭한 형태로 출시되었다. 마케팅도 적극적으로 해서 벽람항로로 일본 시장을 장악했고, 한국을 포함한 전세계에서도 원신이라는 게임으로 메가히트를 쳤다. 그러자 시진핑 정부는 자녀들이 게임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학부모들의 지지도를 얻기 위해 게임은 마약이다라는 구호아래 대대적인 규제를 가하기 시작했다.

더 나아가서는 아이돌 산업도 엑소 출신 크리스를 위시한 이들을 냥파오라고 지칭하면서 중국 남자상에 안 맞는다면서 연예계까지 탄압하기 시작했다.

결론적으로 보면 시진핑 집권 이후 중국은 자국문화를 되려 천대하고 한국처럼 돈 되는 타국의 문화를 자기 것이라고 대대적으로 우기는 것도 모자라, 애국주의 + 내수시장 집중이라는 환경 탓에 작품성은 물론 세계적으로 흥행하지 못하는 내수용 영화만 내놓는 현실로 인해 문화는 더더욱 퇴보하고 있다. 그나마 문화산업 중 게임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나 싶더니 도로 중국 당국이 게임을 탄압하면서 앞길이 험난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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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제적으로 따지면 중국은 보수 세력이 좌파다. [2] 당시 정법위 서기는 중국 공안을 지휘하였는데, 무장 공안 또한 그의 지휘에 있었다 [3] 이들은 보시라이 스캔들 사건 당시 보시라이의 부정부패가 드러나서 보시라이가 체포되려 하자 반발하였다 [4] 이들은 당 지도부의 전화인 '홍선전화'를 도청하기도 했다 [5] 웃긴 것은 마오주의도 스탈린주의가 원형이다. 마오쩌둥 역시 스탈린식 개발독재를 했지만 그렇게 해서 나온 결과가 . [6] 또한 시진핑은 문화대혁명으로 피해입은 사람들 중 하나여서 마오주의에 대해 안좋게 볼수도있다. [7] 공무원들에게 외식을 허락하면 해외업무를 보러 다른 나라로 출국하는 공무원 특성상 영미권 및 유럽에서 중국인이 재감염되어 다시 중국 혹은 다른 나라로 바이러스를 유입시키는 상황이기에 더더욱 위험하다. [8] 코로나 바이러스를 총력을 다해 막으며 대만의 국제적인 이미지를 상승시키고 있는 차이잉원과는 대조적이다. [9] 다만 시진핑을 따르고 국수주의에 물든 일부는 "월드컵 이후 코로나로 인해 중국을 제외한 전세계인들이 죽어서 중국 인구만 살아남을것"이라는 정신승리성 발언을 하는 분청도 있다. [10] 현재 중국 국무원총리는 자신의 친위세력인 습가군 파벌의 리창임에도 2인자의 위상과 역할을 축소시켜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