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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스트라시아의 왕 Sigebert I | 시게베르 1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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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호 | 한국어 | 시게베르 1세 |
프랑스어 | Sigebert I | |
생몰 년도 | 535년 ~ 575년 | |
재위 기간 | 아우스트라시아의 왕 | |
561년 ~ 575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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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우스트라시아 프랑크 왕국의 왕. 왕비 브룬힐트와 함께 니벨룽의 노래 전설의 모티브가 되었다.2. 행적
535년 클로타르 1세와 인군트 사이의 아들로 출생했다. 동복 형제로 콘티에르, 카리베르 1세, 군트람, 킬데리크, 클로신드가 있었고, 이복형제로 킬페리크 1세, 크람이 있었다. 561년 11월 29일 아버지가 사망한 뒤, 형제들과 함께 아버지의 유해를 수아송에 안장하고자 했다. 이때 그러던 중 킬페리크 1세가 국고를 서둘러 확보한 뒤 병사들에게 금을 나눠줘서 자신에게 충성 맹세를 하도록 했다. 이후 파리에 무혈 입성한 뒤 프랑크 왕을 자처하려 했다. 이에 그는 군트람, 카리베르 1세와 함께 힘을 합쳐 파리로 진군했다. 결국 킬페리크 1세는 도저히 승산이 없다고 판단하고 그들과 협상한 끝에 수아송에서 왕국을 조용히 이끌기로 했다.이리하여 이복동생을 멀리 쫓아낸 뒤, 군트람 카리베르 1세와 함께 왕국을 분할했다. 이때 그는 랭스 일대에서 자리잡았다. 그러나 562년 아바르족이 튀링겐 일대를 침공하면서 랭스가 위험해지자, 수도를 메츠로 이전한 뒤 아바르족과 격렬하게 맞붙은 끝에 겨우 격퇴했다. 이때 킬페리크는 시게베르가 정신없는 틈을 타 조용히 지내겠다는 맹세를 파기하고 랭스를 공격해 자기 영지로 삼았다. 이에 시게베르는 군대를 이끌고 돌아와서 수아송을 공략하고, 뒤이은 킬페리크와의 전투에서 완승을 거두었다. 데우데베르는 1년 내내 폰티오에서 포로로 남아있다가 다시는 시게베르에게 어떠한 대항도 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한 뒤 아버지에게 돌아갔다. 그 후 킬페리크와 시게베르 형제는 화해했고, 킬페리크는 시게베르가 작센과 전쟁을 벌일 때 함께하기도 했다.
566년, 서고트 왕국의 국왕 아타나길드의 딸 브룬힐트와 결혼했다. 투르의 그레고리우스에 따르면, 그는 형제들의 아내들이 왕비의 지위에 합당하지 않으며 오직 왕의 딸만이 아우스트라시아의 왕비라는 칭호를 차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브룬힐트는 당초 아리우스파였지만 시게베르와 사제들의 권고에 따라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567년 파리 일대를 점유하던 카리베르 1세가 사망하자, 군트람, 킬페리크 1세와 함께 영지를 분할했다. 그런데 프로방스를 놓고 군트람과 분쟁이 벌어졌다. 그는 군트람의 재산인 아를 시를 기습 공략했고, 브르군트의 파트라케인 켈수스는 즉각 반격하여 아비뇽을 점령하고 시게베르의 부하를 격파하고 아를을 탈환했다. 이후 군트람은 아비뇽을 그에게 반환해 전쟁을 끝냈다.
568년, 킬페리크 1세와 결혼한지 1년된 서고트 왕국의 공주이자 브룬힐트의 여동생인 갈스빈트가 목졸려 살해당했고, 갈스빈트 살해를 사주한 것으로 의심되는 프레데군트가 킬페리크 1세의 아내가 되었다. 이에 브룬힐트가 분노하여 복수해달라고 간청하자, 그는 이를 받아들여 군대를 이끌고 킬페리크의 영지로 쳐들어갔다. 그러자 군트람이 두 형제에게 자제할 것을 촉구했고, 그들은 569년 전국에서 소집한 대표들이 집결한 궁정 회의에서 이 문제를 논의하기로 했다. 궁정 회의 결과, 킬페리크는 살인에 관여한 책임을 지고 브룬힐트에게 아키텐의 5개 도시(보르도, 리모주, 카오르, 베른, 비고르)를 넘겨야 했다.
얼마 후, 아바르족이 다시 튀링겐을 쳐들어왔다. 그는 즉시 요격에 나섰으나 패배하고 적에게 생포되었다. 하지만 아바르족은 카간에게 상당한 선물을 바치는 조건으로 석방시켰고, 양자는 영구 평화 협약을 체결했다. 몇년 후, 킬페리크 1세는 영토 손실을 만회하고자 시게베르로부터 투르와 푸아티에를 탈취했다. 여기에 573년 시게베르의 포로였다가 풀려났던 장남 테우데베르에게 아키텐 일부를 약탈하게 했다. 테우데베르는 아키텐을 철저히 약탈했는데, 특히 리모주를 공략할 때 성직자까지 모조리 죽였다고 한다.
이에 시게베르는 이참에 킬페리크를 처치하고 그의 영지를 자신의 영역으로 귀속시키기로 마음먹었다. 575년, 시게베르는 라인강 너머 게르만인들을 대거 고용해 강대한 군사력을 갖춘 뒤 수아송으로 쳐들어갔다. 이때 그는 군트람이 게르만족을 두려워하여 킬페리크 1세와 상호 원조 조약을 맺었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다. 이에 그는 군트람에게 군대가 통과하는 걸 가로막는다면 용서하지 않겠다고 위협했다. 군트람이 어쩔 수 없이 길을 열어주자, 킬페리크는 아부예로 도주했다. 그는 이 도시를 포위한 뒤 킬페리크로부터 평화 협약을 맺는 조건으로 테우데베르가 점령했던 모든 영토를 돌려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시게베르의 게르만 동맹이 파리 주변을 약탈하는 걸 막느라 애써야 했다.
그 후 킬페리크 1세는 평화 협정을 깨고 군트람과 동맹을 맺은 뒤 테우데베르에게 군대를 맡겨 랭스로 쳐들어가게 했다. 시게베르는 라인강 건너편에서 군대를 소환한 뒤 반격했다. 이리하여 벌어진 전투에서, '군트람 보손'이 돌연 편을 바꿔버리는 바람에 테우데베르가 참패를 면치 못하고 목숨을 잃었다. 킬페리크는 공포에 사로잡힌 채 투르로 도망친 뒤 그곳에서 농성했다. 그러나 투르 공방전이 갈수록 불리하게 돌아가자 절망에 빠진 나머지 성당에 들어가 기도를 드릴 뿐 별다른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
프레데군트가 보낸 자객에게 칼에 찔러 죽는 시게베르 1세
파리 일대의 프랑크 귀족들은 대세가 기울어졌다고 판단하고, 킬페리크를 떠나 그에게 귀순하고자 대표단을 보냈다. 그는 비트리 앙 아르투아에서 사절단을 맞아들이고 파리의 왕이 된 것을 축하하는 연회를 열었다. 그런데 도중에 프레데군트의 사주를 받은 암살자 2명에게 독이 묻은 단검에 찔려 암살당했다. 시게베르를 호위하던 병사들은 암살자들을 곧바로 처단했다. 지도자를 잃은 군대는 해산했고, 킬페리크는 잃어버렸던 영토와 재산을 쉽게 되찾았으며, 시게베르의 유해를 랑부레스-레즈-두아이에 안장했다.
그는 아내 브룬힐트와의 사이에서 킬데베르 2세를 낳았다. 브룬힐트는 남편이 암살당한 뒤 파리에서 킬페리크 1세의 군대에 붙들린 후 루앙으로 유배되었다. 그러다 576년 킬페리크 1세의 아들 메로베가 루앙으로 찾아온 후 브룬힐트와 결혼했다. 이후 브룬힐트는 메츠로 이동한 후 아들과 함께 군트람의 보호를 받았다. 아버지가 살해당했을 때 5살이었던 킬데베르 2세는 나중에 아버지의 유산을 군트람으로부터 돌려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