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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14 12:35:46

테우데리크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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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스 프랑크인의 왕
Theuderic I | 테우데리크 1세
파일:테우데리크 1세.jpg
제호 한국어 테우데리크 1세
프랑스어 Theuderic I
출생 485년
사망 533년 / 534년 (향년 47~49세)
재위 기간 랭스 프랑크인의 왕
511년 ~ 533년 / 534년

1. 개요2. 행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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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랭스 프랑크 왕국의 왕. 클로비스 1세의 아들로, 아버지 사후 이복형제들과 함께 왕국을 분할하여 랭스를 다스렸다.

2. 행적

485년경 클로비스 1세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여인 사이에서 출생했다. 어머니의 출신 성분은 명확하지 않으나, 여러 학자들은 라인란트 프랑크족의 공주였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클로비스 1세는 아내를 이미 두고 있었으나 부르군트족의 공주 클로틸데와 결혼했는데, 이는 게르만족의 고유 관습인 일부다처제를 따른 것이었다.

511년 클로비스 1세가 사망한 후, 이복 형제 클로도미르, 킬데베르 1세, 클로타르 1세와 함께 왕국을 4개로 분할했다. 수아송은 클로타르 1세에게, 파리는 킬데베르 1세에게, 오를레앙은 클로도미르에게 분배되었고, 그는 랭스를 맡아 프랑크 왕국의 동부 일대를 다스렸다. 그는 로마 제국 갈리아 속주의 중심지였던 트리어가 황폐해진 것에 안타까움을 느끼고 이를 개선하고자 토목 공사를 단행해 여러 교회와 수도원 및 공공 시설을 짓고 로마인들을 이주시켰다. 여기에 지역 귀족 자제들을 인질로서 트리어로 데려와서 트리어 궁정의 관료 및 서기를 맡게 했다.

515년, 데인족이 테우데리크 1세의 영역에 쳐들어와서 주민들을 포로로 잡고 배에 태운 후 본국으로 돌아가려 했다. 이때 데인족의 왕 헤이겔라크는 마지막으로 승선하려 했다가, 테우데리크가 급파한 강력한 기병대의 급습을 받았다. 데인족은 크게 패해 뿔뿔이 흩어졌고 헤이겔라크는 전사했으며, 그들이 가지고 가려던 노획물을 전부 회수했다. 전설에 따르면, 헤이겔라크의 뼈는 라인 강 어귀의 섬에서 종종 목격되었다고 한다.

523년, 클로도미르, 킬데베르, 클로타르 1세가 어머니 클로틸데의 부추김에 따라 부르군트를 공격했다. 테우데리크 1세는 부르군트 왕 지기스문트의 딸 수아베코테(Suavegothe)와 결혼했기에 여기에 관여하지 않았지만 부르군트를 돕지도 않았다. 지기스문트는 프랑크족에게 패배한 뒤 사로잡힌 후 왕위에서 물러난 뒤 오를레앙으로 끌려갔다. 프랑크군이 작전을 완수하고 돌아간 뒤, 지기스문트의 형제 고도마르 3세는 테오도리크 대왕의 지원에 힘입어 부르군트 왕국을 탈환한 뒤 클로도미르가 남겨뒀던 프랑크 수비대를 학살했다.

이에 분노한 클로도미르는 524년 5월 1일 지기스문트와 그의 아내 및 아들을 살해한 뒤 이들의 유해를 우물에 던지게 했다. 그 후 테우데리크 1세를 설득하여 부르군트 왕국에 대한 2번째 원정에 함께 착수하게 했다. 그러나 524년 6월 25일 베체롱체 전투에서 거짓으로 후퇴하는 적을 추격했다가 매복에 걸려 전사했고, 그의 수급은 베어진 뒤 창 끝에 꽂혔다. 이후 테우데리크 1세는 클로타르 1세와 킬데리크 1세가 클로도미르의 자식들을 살해하고 클로도미르의 옛 영역을 분할할 때 자기 몫을 달라고 요구해 트루아, 센, 오세르, 리모주를 접수했다.

한편, 테우데리크 1세는 튀링겐족의 왕 헤르만프리드에게 자신의 조카였던 아말라베르가를 시집보냈다. 529년, 헤르만프리드는 공동으로 나라를 다스리고 있었던 형제 베르타차르와 내전을 벌였다. 테우데리크 1세는 헤르만프리드를 지원하여 내전에서 승리하도록 했다. 그러나 헤르만프리드는 권력을 잡은 뒤 땅을 넘겨주겠다던 약속을 무시했다. 이에 테우데리크 1세는 클로타르 1세와 손을 잡고 튀링겐을 공격하기로 했다. 531년 또는 532년, 테우데리크 1세와 그의 아들 테우데베르 1세, 그리고 클로타르 1세는 튀링겐을 공격했다.

이들은 운스트루트 강 전투에서 튀링겐군을 격파하고 스키팅기 왕궁을 공략했다. 헤르만프리드는 가까스로 도망쳤지만, 조카 라데군트 등 여러 왕실 인사는 붙잡혔다. 이후 테우데리크 1세는 헤르만프리드에게 신변의 안전을 보장할 테니 투항하라고 요구하며 선물을 보냈다. 헤르만프리드는 이에 응해 줄피히(Zülpich) 성에서 그와 만나 이야기를 나눴으나, 도중에 누군가가 그를 성벽에서 밀어 떨어뜨려 죽였다. 그리하여 튀링겐 왕국은 멸망했고, 테우데리크 1세는 클로타르 1세와 함께 튀링겐 왕국의 옛 영토를 분할했다.

532년, 클로타르 1세와 킬데베르 1세가 부르군트 왕국과 전쟁을 벌이면서 그에게도 합류하라고 요청했다. 그는 이를 거절했지만, 그를 따르는 프랑크인들이 "형제와 함께 부르군트에 가기를 거부한다면 우리는 당신을 떠나 그들을 따라가겠다"라고 밝혔다. 그는 이들이 약탈할 기회를 노리고 있는 것을 눈치채고, 마침 오베르뉴 주민들이 자신에게 복종하길 거부하고 있는 것을 기억하고 이렇게 제안했다.
"클레르몽으로 와라. 내가 너희에게 원하는 만큼 금과 은을 찾을 수 있는 곳으로 데려가겠다. 가축과 노예, 의복 역시 원하는 만큼 얻게 해주마."

병사들이 동의를 표하자, 그는 형제들이 부르군트에서 싸우는 동안 오베르뉴에 대항하는 원정을 감행했다. 그들은 오베르뉴에 도착한 뒤 교회나 성지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약탈과 파괴를 자행했다. 그 후 오베르뉴의 수도 클레르몽을 포위해 맹공을 퍼부었다. 클레르몽 주민들은 사력을 다해 저항했으나 끝내 함락당했고, 수많은 주민은 학살당했다. 투르의 그레고리우스에 따르면, 테우데리크 1세는 클레르몽 주민들이 끈질기게 저항한 것에 분노해 성벽을 완전히 허물라는 명령을 내렸다가 명령을 내린 다음날 밤 몽유병에 걸려 정처없이 달려가다가 간수들에게 제지당한 뒤 두려움을 느끼고 명령을 취소했다고 한다. 그는 오베르뉴를 철저하게 약탈하고 막대한 전리품과 포로를 챙긴 뒤 본국으로 귀환했다. 그러면서 친척 시기발트를 클레르몽에 남겨서 점령지를 다스리게 했다.

533년, 시기발트가 클레르몽에서 여러 사람들로부터 재산을 빼앗았고 부하들이 절도, 살인, 강도 등 여러 범죄를 저지르는 걸 방관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그는 시기발트를 불러들여 단칼에 죽여버렸다. 이후 아들 테우데베르에게 비밀리에 편지를 보내 시기발트의 아들 시기발트를 죽이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테우데베르는 아버지의 명령을 따르고 싶지 않았기에 편지를 시기발트에게 보여주고 이탈리아로 도망쳐서 조용히 살게 했다.

한편, 본래 프랑크족 통일 이전 라인란트 프랑크족의 왕이었다가 클로비스 1세에 의해 숙청된 지고베르트 1세의 손자인 문데리크라는 인물이 지지자들을 규합해 테우데리크 1세의 영토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그는 진압군을 피해 비트리 요새에 피신한 뒤 끈질기게 저항했다. 7일간 요새를 공격했으나 함락시키지 못하자, 테우데리크는 아르기실이라는 부하를 문데리크에게 보내 자발적으로 항복하면 용서하겠다고 약속했다. 아르기실은 신성한 제단에 손을 얹고 문데리크가 요새를 떠나면 무사할 거라고 맹세했다. 이에 마음을 놓은 문데리크는 백성과 함께 성문 밖으로 나왔지만 아르기실이 이끄는 병사들에게 급습당했다. 문데리크는 아르기실을 포함한 여러 적군을 죽였으나 중과부적으로 몰살당했고, 문데리크의 재산은 테우데리크 1세에게 귀속되었다.

테우데리크 1세는 533년 말 또는 534년 초에 중병으로 사망했고, 아들 테우데베르 1세가 뒤를 이어 랭스의 왕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