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3 및 M5스튜어트는 구조가 워낙 단순하기도 하고 가격도 저렴해
제2차 세계 대전 기간과 냉전시기 공산주의 확산을 경계한 미국과, 잉여차량을 수도 없이 공여받았던 영국, 프랑스 등의 국가들에서도 벌크 가격으로 팔아치우거나, 혹은 거의 무상이나 다름 없는 가격으로 뿌리면서 수도 셀 수 없이 많은 수량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은 나라들로 수출되었다.
쿠바 공화국의 대독 선전포고 이후 1942년~1943년 사이 미국은
무기대여법으로 24대의 M3 스튜어트를 지원했다.
쿠바 공화국에 지원된 M3 스튜어트들은 아바나의 콜롬비아 연대에 편제되었으며, 1950년대
쿠바 혁명 당시 M3 스튜어트는 정부군의 주력이었으며, 피델 카스트로 정권이 들어서고 살아남은 18대의 M3 스튜어트는 역시 마찬가지로 혁명에서 살아남은
M4A3E8들과 같이 훈련용으로 사용되다 소련제와 체코슬로바키아제
T-34-85를 들여오며 퇴역하였다.
주로
영국군과 미군이 방기하거나 패주하면서 노획한 일부 차량을 사용하였는데, NEI 전역 당시 5대의 M3 경전차가
필리핀에서 일본군에 노획되었으며, 얼마 안가 12대가 필리핀 전선에서 추가로 노획된 후 수리되어 제65전차연대에 배속되었으며 제65전차연대가 필리핀에서 철수하자 이 전차들은 다른 부대로 넘겨졌는데, 이 중 4대가 민다나오 섬의 제100보병사단에 배속되었다.
추가로
코레히도르 상륙작전 당시에는 M3 스튜어트 1대와
치하 2대가 상륙군 선봉을 맡기도 했으며, M3 스튜어트를 본 미군 보병들은 흔비백산하게되어 코레히도르 요새는 며칠만에 함락된다. 또한 상륙과정에서
치하가 높은 언덕에 못올라가자 M3 스튜어트가 대신 견인해주는 활약도 한다.
일본 제국 육군 제14전차연대는 M3 스튜어트로만 이루어진 소대도 있었으며 제14전차연대 소속의 어느 M3 스튜어트는
임팔 작전 당시 영국군의
M3 리를 격파하는 전과를 올리기도 했다.
이후 1944년
사이판 전투와 1945년 루손 섬 전투 당시 일본군이 유기하고 간 M3 스튜어트를 미군이 발견하기도 했다.
[1]
일련번호 8614. 독일 Baumholder에서 구조된 차량으로 추정된다.
[2]
1959년 촬영된 사진이며, 사진의 차량은 무장이 탈거되어 임시로 장갑차로 사용했다고 한다.
[3]
일련번호 U.S.A. W-3011743.
[4]
라틴문자권에서는 M3 лёгкий을 M3L 또는 M3 light로 표기한다.
[5]
일련번호 6960. ACF에서 생산된 차량이다.
[6]
일련번호 8770 혹은 8776
[7]
1962년
중인전쟁 당시 중국군이 인도군으로부터 노획한 차량이다.
[8]
뒤에 있는 전투기는
MiG-21이다.
[9]
M3A3라고 오기되어 있다.
[10]
우측의 차량은
셔먼 V 크랩이다.
[11]
일련번호 10380. American Car & Foundry에서 생산된 차량이며, 남아프리카 연방군 내에 등록된 차량번호는 U46942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