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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대포진성 多大浦鎭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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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세포진성 知世浦鎭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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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1454F><colcolor=#fff> 송진포왜성 [ruby(松, ruby=ソン)][ruby(眞, ruby=ジン)][ruby(浦, ruby=ポ)][ruby(倭城, ruby=わじょう)] | Songjinpo Japanese Fortress |
|
이칭 |
소진포의홍지영(所津浦義弘之營) 농암산왜성(籠巖山倭城) 소진포진(所津浦陳) 증봉(甑峰) 시루성 |
형태 | 연곽식 산성 |
면적 | 미상 |
건설 | 1593년 (선조 26년) |
후쿠시마 마사노리 등 3인 | |
폐성 | 1595년 (선조 28년, 추정) |
위치 | 경상남도 거제시 장목면 장목리 산 6-3 |
[clearfix]
1. 개요
지난 6월 27일 좌도 수군절도사
이순신의 치보(馳報)에 '
부산 · 김해의 적선이
웅천으로 옮겨 모였는데 그 수가 7 ~ 8백 척은 족히 된다.'고 했던 것을 이미 치계하였습니다. 웅천 등지에 옮겨와서 정박해 있던 그 적선들이 금년 6월 23일 야음을 틈타 몰래 도해하여 거제 경계에서부터
영등포 · 송진포 · 하청가이(河淸加耳)까지 가득 정박하고 있는데 선박의 수는 자세히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염(閭閻)을 분탕(焚蕩)하는 것은 전년에 비해 더욱 심합니다.
『 조선왕조실록』 1593년 7월 20일 기사
『 조선왕조실록』 1593년 7월 20일 기사
각 진영의 왜장 성명을 알리기 위해 모두 그 나라의 향담(鄕談)에 따라 글자를 맞추어 적겠습니다. (...)
거제에는
아원로가미(阿元老可未)[1], 또
거제에
표간곤로가미(豹干昆老加未)[2], 영등포(永登浦)에는
사야모은로다유우(沙也毛隱老多有雨)[3], (...)
『 조선왕조실록』 1595년 2월 10일 기사
『 조선왕조실록』 1595년 2월 10일 기사
각 진영의 왜병 수목(數目)은, (...)
거제도 3영(營)
의홍(義弘) 1만,
사주태수(士州太守)[4] 8천, 일정(一正)[5] 6천, (...) 이것이 일본에서 원래 들어온 수목입니다. 그 뒤에 줄거나 늘어난 것이 일정하지 않으니,
행장의 한 영을 보면 그 밖의 것도 알 수 있습니다. 갖추어 아룁니다.
『 조선왕조실록』 1595년 6월 8일 기사
『 조선왕조실록』 1595년 6월 8일 기사
오늘 아침 장만록(張萬祿)이 들어왔기에 남호정(南好正) 등을 시켜 왜영(倭營)에서 보고 들은 정확한 소식을 알아보게 하였습니다. 호정이 장만록과 왜영의 지도를 내놓고 가리키며 물어보자, 만록이 말하기를 "(...) 거제의 3영 중
영등포 ·
장문포(場門浦) 두 진영은 이미 철거하여 모두 비었으나 불태우지는 않았으며, 소진포(所津浦)에 있는
의홍(義弘)의 진영은 현재 철거하지 않았으니, 이는 모두 눈으로 본 일이다. (...)" 하였습니다.
『 조선왕조실록』 1595년 7월 24일 기사
경상남도
거제시
장목면에 있는
일본식 산성.
임진왜란 당시 제5군의
후쿠시마 마사노리, 토다 카츠타카(戶田勝降),
쵸소카베 모토치카 등 3명의 왜장이 축성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에는
1595년에
후쿠시마 마사노리가
영등포왜성에, 거제의 나머지 두 진영에
하치스카 이에마사,
쵸소카베 모토치카,
시마즈 요시히로가 주둔하고 있다고 일관되게 기록하고 있어 재고가 필요하다.『 조선왕조실록』 1595년 7월 24일 기사
특히 송진포왜성은 시마즈 요시히로가 주둔했을 가능성이 큰 곳으로, 많은 정보를 알 수는 없으나 장문포왜성의 왜장과 교대하며 장문포의 입구를 지켰던 것으로 보인다. 장문포왜성이나 거제삼진(巨濟三陳)의 하나로 묶어서 기록에 등장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마저도 기록이 소략하여 알려진 것이 많이 없다. 1595년 강화 회담이 진행되면서 일본군이 잠시 철군했을 때 거제삼진 중 가장 마지막에 철수했고, 11월에는 이미 소각하여 폐성한 것으로 나온다. 정유재란 때는 바로 건너편의 장문포왜성을 재사용했기 때문에 송진포왜성에도 다시 군이 주둔했을 것으로 추론할 수는 있으나, 기록에 남지 않아 확실한 것은 알 수 없다.
2. 위치 및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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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진포왜성 위치관계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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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진포왜성 항공사진 (1967) |
장문포를 날개처럼 감싸는 양측의 산줄기에 각각 장문포왜성과 송진포왜성을 쌍성(雙城)으로 두어 서로 마주보면서 장문포 입구를 틀어막도록 설계했다. 둘 다 장문포를 방어하는 왜성이지만, 구별을 위해 북측 송진포의 입구도 겸하는 위치에 있는 쪽을 송진포왜성이라고 따로 지칭한다.[6] 영등포왜성과도 연계되어 있어 한쪽이 타격을 받으면 서로 지원군을 보냈다고 한다.
장목만과 송진포구의 경계에 돌출된 안산의 산줄기 끝 해발 약 60m 구릉지의 정상부에 위치한다. 크게 동성과 맞은편의 서성으로 이루어지는데 서측의 부곽군(副郭群)이 송진포왜성의 주곽부인 것으로 판단한다. 서측 구릉지의 주곽부에는 총 3곳 정도의 곽(郭)을 상정할 수 있다. 다만 천수 기단으로 상정할 만한 부분이 존재하지 않고, 기왓조각이 수습되는 것으로 보아 제1곽 내부에 고텐(御殿)을 설치했을 가능성이 있다. 동서 약 10m, 남북 약 15m의 규모이고 석축의 잔존 높이는 약 2m이다. 제1곽 남측에 부곽으로 치기도 애매한 수준의 좁은 공간을 사이에 두고 이중 출입구를 설치했는데, 안쪽이 평문(平入り虎口)이고 바깥쪽이 마스가타 고구치(桝形虎口)이다. 출입구 바깥에는 사다리꼴 모양으로 살짝 넓어지는 제2곽이 있고, 동서 양측으로 출입구가 나 있으며 모두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와 연결되어 각각 서북측 산록거관(山麓居館), 동측 외곽부로 통하는 통로를 겸했다. 제1곽 북측에는 마스가타 고구치를 열었고 남측보다는 살짝 넓은 제3곽을 두어 서측으로 이어지는 노보리이시가키로 통하게 했다.
주곽부의 서측 노보리이시가키 바깥에 1단의 석렬이 존재하고, 노보리이기가키로 이어지는 서북측에 상술한 대로 산록거관으로 추정하는 부곽군이 존재한다. 구릉의 경사면을 따라 내려가면서 계단형의 토축 부곽군이 이어지다가, T자 모양의 갈림길 출입구가 나온다. 이곳에서 갈림길을 돌아 동북측으로는 오비쿠루와(帯曲輪)가 연속적으로 이어지는데 일본군의 막사가 위치했던 곳으로 추정하며, 가장 동측 끝단에 1줄의 수직 해자(竪堀)를 팠다. T자형 출입구의 정면으로는 해안가로 통하는 계단과 작은 부곽을 하나 배치했고, 가장 끄트머리에는 하나의 부곽처럼 넓은 형태의 마스가타 고구치를 배치했으므로 이곳을 송진포왜성의 주출입구(大手口)로 여긴다. 주출입구 바깥 서북측 해안에는 바다로 길게 뻗어나간 암석 지형에 석재를 가공한 흔적이 있는 바위들이 곳곳에 확인되어서, 왜성을 쌓는 데 필요한 석재를 조달한 채석장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한다. 또한, 주출입구의 서남측에도 일부 부곽군이 잔존하며, 『거제시지』에 따르면 서북측 해안에 석축으로 된 선착장과 같은 시설이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확인하기 힘들다.[7]
주곽부 제2곽의 동측 출입구로 나가면 노보리이시가키의 반대편으로 통하는데 동측 외곽부와 연결되는 구릉지의 안부(鞍部)로 내려갈 수 있다. 이곳은 현재 궁도장[8]과 진입차로가 놓여 있어 왜성의 유구가 일부 훼손되었지만, 도로 양측의 지형으로 미루어 보아 도로 자리에 동서성을 잇는 흙다리(土橋)가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외곽부는 주곽부에 비해 비교적 단순한 평면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제1곽은 동서 약 25m, 남북 약 40m, 석축 높이 약 3m로, 대체로 남북으로 긴 장방형 구조이나 북측의 모서리가 안으로 들어가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동서측으로 마스가타 고구치를 열었는데 서측 바깥 궁도장 방면으로 이어지는 경사면에는 계단형의 토축 부곽군이 존재한다. 동측 출입구 바깥에는 남북으로 나란히 배치된 2곳의 부곽이 있으며, 남측으로 출입구를 냈고 그 바깥으로 역ㄴ자 모양의 부곽이 이어져 서측 출입구 방향으로 통한다. 이곳에서는 1973년에 기왓조각과 사기 조각 등 유물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구전에 의하면 장목만 건너편의 장문포왜성까지 약 500m 거리의 해협 사이에 다리를 놓고 건너다녔다는 전설이 있고, 약 100년 전만 하더라도 이 지역에 삼나무와 소나무가 울창했다고 전하지만 완전히 신뢰하기는 어렵다.
3. 현황
|
산록거관 T자형 출입구 앞 계단의 좌측(동북측) 석축 모서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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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록거관부의 노보리이시가키 축조 상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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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곽 북측 석축 모서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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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곽 북측 석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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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곽 서측 석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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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곽 동측 석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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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에서 바라본 제1곽 남측 출입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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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곽 노보리이시가키 서남측 모서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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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곽 동측 노보리이시가키 잔존 상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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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곽부 제1곽 서측 석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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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곽부 제1곽 서북측 모서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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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곽부 돌출부 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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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진포왜성 서북측 해안 암벽의 석재 가공 흔적 |
4. 교통
- 거제 버스 30
- 거제 버스 30-1
-
거제 버스 31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버스를 탄 뒤 산속농장 정류장에 하차하여 펜션들이 모여있는 마을을 지나 궁도장 쪽으로 올라가면 된다. 바로 앞까지 길이 나 있어 접근성은 매우 좋은 편이지만, 자차를 이용할 경우 주차장이 따로 없으므로 유의해야 한다. 궁도장을 기준으로 뒷산에 주곽부가, 앞산에 외곽부가 위치한다.
5. 여담
- 구영등성으로 알려진 인근의 영등포왜성이나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장문포왜성과는 달리, 이쪽은 문화재로 지정받지도, 인지도가 그리 높지도 않아 안내판도 없어서 길을 찾기가 어려울 수 있다. 또한 산록거관부는 완전히 숲과 나무덩굴에 뒤덮여 있기 때문에 여름에는 답사가 용이하지 않을 수 있다. 의외로 가파른 산지 위에 위치하므로 안전에 유의해야 한다.
6. 외부 링크
7. 관련 문서
- 거제도
- 왜성(건축)
- 일본의 성
- 일본의 성/구루와
- 일본의 성/이시가키
- 천수각
- 임진왜란
- 영등포왜성
- 장문포왜성
- 장문포 해전
- 칠천량 해전
- 후쿠시마 마사노리
- 쵸소카베 모토치카
- 하치스카 이에마사
- 시마즈 요시히로
[1]
아와노카미(阿波守)의 음차이다.
[2]
효고노카미(兵庫守)의 음차이다. 간(干)은 우(于)의 오기이다.
[3]
사에몬노다유(左衛門大夫)의 음차이다.
[4]
사주(士州)는 토주(土州)의 오기이다. 모토치카는 토사노쿠니(土佐国)의 영주였다.
[5]
제7군의 이코마 카즈마사(生駒一正)로 추정된다.
[6]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에서도 소진포(송진포)의 진영을 구별해서 칭하는 기사가 나온다.
[7]
주출입구가 서북측을 향하고 있으니 선착장도 출입구 근처에 있었다고 추론할 수는 있다.
[8]
이름은 '금무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