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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1-01 22:54:15

임랑포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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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f> 임랑포왜성
[ruby(林, ruby=イム)][ruby(浪, ruby=ナン)][ruby(浦, ruby=ポ)][ruby(倭城, ruby=わじょう)] | Imnangpo Japanese Fortress
파일:4707.jpg
<colbgcolor=#000> 형태 왜성
면적 미상
건설 1593년 (선조 26년, 추정)
모리 카츠노부 등 5인
폐성 1598년 (선조 31년, 추정)
위치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임랑리 산 48
1. 개요2. 위치 및 구조3. 과거 모습 및 현황4. 교통5. 여담6. 외부 링크7.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 서생포(西生浦) · 임랑포(林浪浦)에 있는 적병들이 번번이 수로(水路)로 울산(蔚山)과 태화(太和) 사이를 침범하여 우리 군사가 그곳으로 달려가게 한 뒤에 적들은 몰래 육로(陸路)를 이용하여 경주(慶州)로 나오곤 하니 술수가 대단합니다. (...)"
조선왕조실록』 1594년(선조 27) 4월 14일자 기사 中
"(...) 또 그들이 중국 조정을 속이면서 청정(淸正)이 이미 자기 나라로 돌아갔다고 하였으나 그후 그는 서생포(西生浦)를 점거하고 있었다는 것과, 또 그 부하들은 임랑포(林郞浦)를 나누어 차지하고서 지난달에는 경주(慶州)에서 20리 떨어진 곳까지 깊이 침입하여 크게 약탈하는 것을 방수(防守)에 임한 각 장관들이 역전하여 무찌르자 비로소 퇴각하였다는 사실 등을 말했더니 (...)"
조선왕조실록』1594년(선조 27) 4월 29일자 기사 中
4월 13일 배신 경상도 좌병마 절도사(慶尙道左兵馬節度使) 고언백(高彦伯)의 치계에는 ‘해 경주 부윤(該慶州府尹) 박의장(朴毅長)이 「3월 19일 신시(申時)에 임랑포(林郞浦)에 주둔하고 있는 왜적 약 1천여 명이 언양현(彦陽縣)으로부터 약탈을 시작하여 본부(本府) 남쪽 20리 되는 지점까지 진입하여 왔으므로 신이 여러 장수들과 함께 독전하여 달려나가 적을 격퇴하였다. 패퇴한 적들이 잡아간 남녀 도합 3백 70명과 마우(馬牛) 도합 32필을 되돌려 보내왔다. 」고 비보하였다.’ 하였습니다.
조선왕조실록』1594년(선조 27) 10월 10일자 기사 中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에 있는 일본식 산성. 임진왜란 당시 모리 카츠노부, 시마즈 도요히사, 이토 스케타카(伊東祐兵), 다카하시 모토타네(高橋元種), 아키즈키 다네나가(秋月種長) 등 왜장 5명이 축성했다고 전해진다. 정확히 언제 처음 축성되었는지는 불명확하나, 그 위치와 용도로 미루어 보아 서생포왜성 축성과 비슷한 시기인 1593년으로 추정하는 것이 보통이다.

임랑포는 본래 임을랑포(林乙浪浦)로, 좌광천의 하구에 위치하며 기장 이을포(伊乙浦)에서 서생 간절곶까지 길게 뻗어 이어지는 해안선 한가운데의 만에 위치한다. 동래와 울산을 연결해주는 길목에 위치한 곳이라 세종실록지리지에서부터 이미 봉수대가 설치된 것이 확인된다. 임진왜란 당시 동측 최전방이자 가토 기요마사의 주력군이 주둔하던 서생포왜성을 보조하기 위해 후방의 기장왜성과의 사이에 위치한 임랑포에 소형 왜성을 두어 연결성(連結城)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임랑포왜성은 주로 서생포왜성에 종속되어 있었으며 울산, 경주, 언양 등지로 진격하는 거점 노릇을 했다. 1595년 잠시 일본군이 최전방을 물릴 때 임랑포왜성에 주둔하던 군사들도 안골포로 철수하면서 폐성되었다가 정유재란 당시 부활한 것으로 보인다.

2. 위치 및 구조

파일:search.pstatic12.jpg
파일:1253576987645231.jpg
임랑포왜성 모형 (기장문화원 소장)
파일:144361031112_20151001.jpg
파일:스크린샷 2025-01-01 224700.png
임랑포왜성 위치도 출처 임랑포왜성 위성사진 (1967)
동쪽 45리 해변에 임랑포성과 왜성[1]이 있는데 두 성은 일본인이 쌓은 것이다.
『문헌비고(文獻備考)』中
임랑해수욕장이 형성되어 있는 좌광천 하구의 공격사면 위에 임랑포봉수대(林浪浦熢燧臺)가 있는데, 봉수대 맞은편으로 내려다보이는 효암마을[2]과 해발고도 약 70m 가량의 배후 산지에 왜성이 위치했다. 이 산지는 지금은 의과학산업단지 건설로 끊어졌지만, 북쪽 약 2.1km가량 떨어져 있는 방모산과 연결되는 산줄기였다.

산지에 위치한 본성은 ㄴ자 모양의 정상 구역을 따라 축성되었다. 북측과 동측으로 연결된 산줄기에 능선절단형 해자(堀切り)를 두어 성으로의 접근을 막았고, 나머지 방향은 가파른 골짜기와 산비탈에 의지하고 있다. 북쪽의 해자 가운데에는 흙다리(土橋)를 놓아 출입할 수 있게 했으며 남서쪽으로도 출입구를 내어 산 아래와 연계되도록 했다. 석축은 보존 상태가 그리 좋지 않으나 왜성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우각부가 잔존하고, 높이 약 5m가량의 천수대가 양호하게 남아 있다. 유적의 분포 범위는 동서 약 150m, 남북 약 120m이다.

평지 구역의 산록거관(山麓居館)은 일제강점기에 이미 동해남부선 철도가 부설되며 본성과 단절되었으며, 2001년 효암마을 조성과 관련해 부산박물관이 이 구역에 대한 발굴 조사를 실시했다. 이때 3개의 곡륜(曲輪) 내 소규모의 일정한 공간이 확인되었으며, 굴립주(掘立柱) 건물지 3동과 수혈 유구(竪穴遺構) 4기, 구상 유구(溝狀遺構) 고랑 상의 구조물 2기, 용도 미상의 주혈군(柱穴群) 기둥을 꽂았던 여러 개의 구멍 3개소 등이 확인되었다. 현재는 효암마을 건설로 인해 지형 자체가 통째로 삭평되었으므로 잔존하는 유구를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다만 마을의 남쪽 끝에 있는 효암공원 귀퉁이에 일부 왜성의 석축을 이전 보존하여 그 흔적만을 관찰할 수 있을 뿐이다.

유적의 잔존 위치 주소는 아래와 같다.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임랑리 산 48, 386-1 일원

3. 과거 모습 및 현황

파일:pan005203.jpg
부산 기장 임랑성 천수대 (조선총독부박물관 유리건판)
파일:20220129_113001.jpg
북측 흙다리
파일:20220129_115618.jpg
파일:20220129_115918.jpg
파일:20220129_120650.jpg
석축 잔존 현황
파일:20220129_124213.jpg
파일:20220129_124657.jpg
천수대(天守台)
파일:20220129_124831.jpg
가시나무가 빽빽하게 자라난 부곡륜
파일:20220129_125253.jpg
왜성에서의 조망 상태
파일:20220129_130036.jpg
동측 능선절단형 해자 현황

4. 교통

임랑삼거리 정류장에서 하차해야 한다. 임랑포왜성으로 통하는 남서쪽 출입구는 현재 비닐하우스와 농경지가 들어선 사유지가 되어 있기 때문에, 산을 빙 돌아 북측 산줄기를 타고 내려오면서 접근해야 한다. 과거 동해남부선이 지나갔던 선로 아래로 뚫린 굴다리를 지나 부족골길을 따라 약 680m를 걸어 올라가면 임랑육교 바로 아래(임랑리 32-5번지)에 입산로가 있다. 이 길을 따라 남쪽으로 꺾어 산등성이를 약 280m 정도 타면 흙다리와 석축 유구로 진입할 수 있다.

임랑해수욕장과 가깝지만 먼 길을 돌아가야 하기에 접근성과 연계성이 그리 좋다고 볼 수는 없다.

5. 여담

6. 외부 링크

7. 관련 문서


[1] 성이 2곳인 것처럼 서술한 것은 본성과 산록거관을 따로 본 것으로 추정된다. [2] 현재의 신고리 원자력발전소가 들어서 있는 효암리(孝巖里) 소재 어촌마을이었으나 발전소를 신설하면서 주민들을 현 위치로 이주시켰다. 이에 따라 마을 이름은 여전히 '효암 마을'로 유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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