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위키문헌에서 공개 중인 삼국지후전 (1609) 10권, 140회 전편 원문. #삼국지연의의 속편 소설 중 하나로 명나라 시절 유양야사가 쓴 1609년 소설을 18세기 일본의 문인인 나카무라 고젠(中村昂然)이 번안했다. 원작은 명나라 때 유양야사라는 필명을 쓴 저자 불명으로 쓰여진 삼국지후전이고 나카무라 고젠은 일본어로 번역을 하면서 내용을 수정한 정도로 취급받으며, 그나마도 전반부를 통속속삼국지(通俗続三国志)로 냈을 뿐이다. 후반부의 번역자는 바바 노부타케(馬場信武)로 통속속후삼국지(通俗続後三国志)라는 제목으로 나왔다.[1] 여기서 기원을 더 깊이 따지면 삼국지연의 이전의 삼국지평화로 결말을 유연의 아들 유총이 진나라를 밀어버리는 것으로 해서 해피 엔딩 행세를 했다.
한국에도 1968년 판본 포함 후삼국지, 대삼국지 후반부, 속삼국지, 만화책 등 여러 차례 번역 및 각색해 출판한 사례가 있다. 이 때문에 한국에서는 후삼국지라는 명칭으로 알려져 있는 작품이다. 이 중 대삼국지의 경우는 2부 10권 구성으로 1-5는 그냥 삼국지연의, 6-10권은 삼국지후전이였다. 68년 판의 번역이 최초인 듯한데, 이 판의 번역자는 이원섭으로 번역자의 말로는 자신이 일본에 갔다가 고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한 책이라고 한다.[2] 저자의 이름으로 나카무라 고젠이란 이름이 있으나 자신도 사실여부는 모르며, 상황설명 정도 수준의 내용이라 번역하면서 살을 많이 붙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은근히 현대적이고 에로틱한 묘사도 한다.
종이책으로는 절판되었다. 그러므로 이를 구하기 어렵지만 전자책으로 발매되었으니 관심있는 사람은 전자책 사이트를 검색해 보자. 다만 시대가 좀 변해서 그런지 전자책의 경우 좋게 말하면 호걸스럽고 좀 안좋게 말하면 찐 아재스러운 고어체의 말투들이 많이 수정되었으며 술먹고 주사부리는 일부 에피소드들도 조금 순하게 바뀌어 나오기는 했다. 다만 이 소설 자체의 분위기를 생각해 볼 때 이전 버전이 낫다는 의견도 있는 편.
대전타임스란 지역신문에서도 속삼국지란 제목으로 2016년 9월까지 연재되었는데 아무리 봐도 저 후삼국지와 전체적인 내용과 인물 설정, 사건 등은 같지만 일부 내용이 빠져있고 대부분의 내용에 살만 좀 다르게 붙인 정도다. 기타 블로그 등에 1984년판 후삼국지를 올려놓은 것들도 여럿 보이긴 한다.
다만 국내에는 완역본이 없는데 그 이유는 오나라가 멸망하는 부분, 통일 직후 진나라 조정에 대한 부분 등 서장에 해당하는 내용 일부가 국내에 출판된 판본에는 실려있지 않다.
2. 특징
2.1. 이후 역사에 삼국지 끼워 맞추기
삼국지의 이야기를 그 뒤의 오호십육국시대까지 이어가며 서진 이후로 벌어진 사건들을 모조리 삼국시대에 연관시켜 견강부회하는 작품이 압권이다.그 근거는 유연의 한나라( 전조)가 서진을 무너뜨려서인데, 지은이는 이걸 '절치부심한 부흥을 꾀하던 유비의 후손[3]이 진나라를 무너뜨린 것임!'이라고 해석하며 그와 협력한 모든 사람들이 오호대장군의 후예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했다. 오호장군 뿐이 아니라 유연 휘하의 장수들 대부분이 요화, 왕평, 유봉, 위연
정작 역사에서 유연은 한족이 아닌 흉노족인데, 후한대에 남흉노를 귀순시키면서 황족의 성인 유씨 성을 하사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조한이 한나라의 후계를 자칭했다곤 하지만 흉노가 한나라 황실의 적통을 이었다고 볼 수 없고,[4] 유연이 유비의 후손이라는 설정은 그냥 유씨라서 후삼국지에서 넣은 설정이다.[5] 이걸 보면 차라리 유유의 북벌이 성공하고 동진의 선양을 받아 후한, 촉한의 뒤를 잇는 한나라를 재건했다는 if 소설이 더 역사적 개연성이 있어보일 지경[6]
오호십육국시대에 마지막 흉노 왕조인 호하를 세운 혁련발발도 혁련으로 성을 고치기 전의 원래 이름은 유발발이다. 위에 언급한 유연은 남흉노 선우였던 난제어부라의 손자다. 그리고 혁련발발은 어부라의 동생이자 다음 선우가 된 호주천의 후손이다. 조운의 후손이라 말한 석륵은 갈족(흉노의 일파로 투르크 계열 이민족)이다.
왜 공통점도 없는 석륵이 조운의 후손이라는 주장이 나오냐 하면, 그가 유비의 후손님이시라는 유연의 한나라를 지워버리고 세운 나라가 조나라(趙), 즉 후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존인물 석륵의 자가 마침 세룡(世龍)이라 같은 용(龍)자를 쓰는 조자룡에 끼워맞춘 것도 있다. 그래서 조륵이 본명이고 석륵은 바꾼 이름이라고 한다.
그냥 역사 소재에 허구도 가미한 소설일 뿐이니, 역사와 헷갈리지 말자. 실제 역사를 아는 삼국지 팬의 입장에선 삼국지평화 최종회의 확장판 격으로 보일 수 있다. 사실 후서유기, 수호후전 같은 후일담 종류의 소설인데 저들이야 역사적 사실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가공의 소재가 많지만 연의소설들은 기본이 어쨌든 역사에 기반하니 속편을 내도 이후의 역사에 끼워맞춰야 한다. 삼국지평화와 삼국지연의는 둘 다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양념을 더해 결말을 내되 삼국지평화는 유연이 한나라를 다시 세워 진나라를 상대로 이겨 복수에 성공했다며, 삼국지연의는 진나라의 사마염을 통해 천하통일이 이뤄졌다며 끝을 냈다. 사실 연의의 원본격인 삼국지평화부터가 이런 결말인데, 나관중은 연의를 쓰면서 이 부분을 삭제했지만 유양야사가 이걸 복원해 140화 분량의 장편소설로 각색했다.
그래도
2.2. 주된 플롯
초반에는 한의 유신이라는 유연 패거리, 장빈 패거리, 관근 왕미 패거리 등이 성도에서 탈출하여 유랑하는 과정에서 훗날 한의 중심 인재들인 공장, 도표, 서광, 정하, 진원달, 근준 등을 만나게 되는 과정들이 나오는데, 이 장면들에서 나오는 서로에 대한 듣다보면 민망해지기까지 하는 칭찬들이 주는 묘한 느낌이 있다.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며 한 군대의 공격 → 제갈선우랑 장빈이 '모처를 지키는 누구는 위나라 누구의 후손이며 조낸 용맹한 장수라 힘들다...하고 바람을 넣음 → 전투형 인간들이 나서서 그놈이 뭐 하던 놈이든 내가 털어버리겠다고 강하게 나섬 → 진나라 측에선 한 군대는 강하니 성을 잘 지키자고 참모가 건의 → 태수 쌩까고 공격, 일기토에선 비등비등하게 싸우다 어찌어찌해서 깨짐 → 참모 말대로 그냥 지킴 → 대치 며칠 하다가 장빈이나 강발이나 제갈선우가 "계략이 있습니다" 하고 허접한 유인책 수준의 계략을 냄 → 진 군대 계략에 빠져서 성 넘어감... 의 구조가 거의 매 전투마다 계속된다. 특히 초반부에는 더더욱 심하다. 후반부에 가서 진과 한이 바뀐 상태에서조차 저런 꼴도 난다.
유독 전투 전에 일기토부터 하고 보는데 일기토 전에 장수들끼리 벌이는 트래쉬 토크가
전투가 벌어지고 일기토를 할 때 한의 장수들, 즉 촉나라 장수들의 후손들은 다들 한 군데 뭉쳐 있는데 진의 장수들, 즉 위나라 장수들의 후예들은 제각기 개별행동을 하다가 전부 각개격파된다. 보고 있노라면 축차투입이라는게 이래서 무서운 거구나 하고 혀를 내두르게 될 정도. 그 중에서도 방덕의 손자라는 두 장수는 한의 여러 장수들에게 이지메를 당하듯이 돌려가며 모욕을 당하다가 가장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는데... 그 이유는 다들 알지?
그리고 진나라 장수들이 아무리 썩었어도 너무 약하게 나온다. 실제로 영가의 난 때 한군의 장수들도 많이 죽었다. 주인공 보정이라서 그런지 진나라가 일방적으로 얻어맞는 동네북 같아서 독자들이 오히려 진나라를 동정하는 쪽으로 기우는 감이 든다. 그리고 서진이 멸망하고 유총이 폭군으로 타락하는 시점에서 한이 진에게 선방했던 전세가 진이 한에게 선방하는 흐름으로 역전되었다. 아무래도 한실부흥이라는 명분으로 일치단결하여 싸웠지만 유총이 타락하고 횡음무도한 짓을 저질러 이러한 한실부흥이라는 명분이 퇴색되어 한나라 장수들이 한실부흥이라고 옛날의 명분을 외치면 진나라에서 니네 황제가 횡음무도한 인간말종 폭군인데 무슨 한실 부흥이냐? 라고 비웃음으로 답해온다. 이 시기부터 조적이나 왕돈 등의 진나라 인물들이 굉장히 긍정적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사실 팔왕의 난 전개에서부터 사마예 같은 종친왕은 꽤 긍정적으로 묘사되고 팔왕 최후의 승리자 사마월부터가 부정적인 면모가 상당히 희석되고 몰락하는 서진을 지키는 최후의 투사처럼 묘사되기 때문에 이 쯤부터는 과연 이게 사마씨의 진나라 까는 소설인가 싶은 부분도 꽤 있는게 사실이다.
어쨌든 역사에 충실하게만 이야기를 전개할 경우 영가의 난 이후에 흉노족 등의 북방유목민족이 한 각종 뻘짓과 학살 등을 설명할 수 없으므로 목적을 다 이루었으니 급격하게 절제력을 상실하였다든지 오랜세월 변방에 있다보니 자손들이 야만화해서 말을 듣지 않는다든지 하는 구절을 집어넣는다. 그래서 후삼국지를 읽다보면 초반엔 잘 나가다가 갑자기 돌변해서 막장테크를 신나게 밟아 경악하는 경우가 많다. 2권 구성의 컬러 만화판에선 내분을 겪다 내전을 겪은 뒤 정리된 것으로 묘사됐다.
3. 실제 역사와의 차이
사실 실제 역사와 일치하는 걸 적어야 더 의미있을 정도로 역자는 머릿말에서 이 소설이 어디까지 사실이냐고 묻는 독자들의 예상질문에 대놓고 소설에서 역사 그대로를 다룬 것이 어디에 있는지 반문하고 싶다라 되려 일갈한다. 육기가 실제로 육손의 손자라서 되려 신기할 정도로, 최소한 인물에서는 사실보다 뻥이 더 많다.- 유연을 포함한 유씨들은 촉나라의 황족과는 상관없는 흉노족 인물로 유거에서 유연으로 개명했다고 나오지만 유선의 일곱째 아들인 유거는 촉한 멸망 후에 낙양으로 갔다.
- 기실 영가의 난이 대단할 것도 없었던 게 유연의 본거지인 좌국성이 소설에서는 엄청난 변방에 있는 곳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병주로 낙양에서 썩 먼 곳도 아니었다. 소설에서는 변방 오지에서 욱일승천의 기세로 낙양 주변을 다 먹고 나간 것 같이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닥 대단치도 않았던 것이다.
- 소설에서 유연이 파견한 한군은 낙양을 함락시킨다( 영가의 난, 311). 그런데 역사에서 영가의 난 당시 유연은 이미 사망(310)하여 한바탕 내분을 벌인 뒤 유총[10]이 즉위한 상태였으며, 유거를 비롯한 유선의 아들들은 낙양에 있다가 이때 대부분 살해당했다. 유연은 자기 스스로 군대를 보내어 자신을 죽인 셈이다.[11]
- 촉한이 멸망할 때 촉한의 신하인 유표(劉豹)가 흉노에서 왕으로 있으니 의지하자는 것이 언급되지만 촉한의 유표(劉豹)와 흉노왕 유표(劉豹)는 동명이인일 뿐이다.
- 북부왕으로 나오는 학원탁은 실제 역사에서 이름이 학도원으로, 흉노족이며 유연을 도와준 것이 아니라 단독으로 반란을 일으켰다. 다만 제만년의 반란에 숟가락 얹기 식으로 부화뇌동한 면은 있었다.[12]
- 마초의 조카손자로 나오는 동부의 군주 마난, 서부의 군주 노수 등은 사실 북지에 있는 산인 마난, 안정의 경계 지역에 있는 강인 노수를 따온 것이다. 저 노수 쪽에 살던 이민족이 바로 노수호.
- 제만년은 유연의 부하가 아니라 저족의 통수를 지내다가 저족, 강족 등과 함께 봉기했다. 맹관과의 싸움에서 전사한 것이 아니라 사로잡혔다.
- 진나라의 각 친왕들과 자사들이 이끈 120만 대군이 집결해서 한과 전면전을 벌인 일은 소설의 재미를 위해 넣은 허구다. 실제 역사에서는 팔왕의 난으로 서로 싸우고 죽인 직후였고 유연은 진나라가 약해진 시점에 공격했다.
- 석륵은 조운의 후손도 아니고 석숭의 집안에서 자란 것도 아니며, 갈족 수령의 아들로 사마등의 노예가 되었다가 일하던 목장의 우두머리[13]인 급상과 함께 도적이 된 것이다. 그리고 급상과의 관계도 당연히 석륵이 도련님, 급상이 마당쇠 식이었던 것도 아니며, 같이 도적질을 하다가 성도왕 사마영의 용병으로 쓰임받으면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식이었다. 나름 사마영에 대한 충성심은 있었는지, 사마영이 죽은 다음에 급상은 사마영의 관을 지고 다니면서 남은 무리를 이끌고 싸우다가 죽었고, 석륵은 유연 밑으로 들어간다.
- 제갈량의 후손이라고 나오는 가상인물 제갈선우는 태사령인 선우수지에 따온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제갈선우의 소설 속 지위도 태사령이며 자도 수지이다.
- 장빈은 장비의 후손이 아니라 조군 사람으로 석륵이 태행산의 동쪽 지역을 순행할 때 스스로 석륵을 찾아가 석륵 휘하에 속했다.
- 서진의 안서장군 하후준은 하후돈의 손자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하후연의 손자로 하후위의 아들이다.
- 하후준의 동생 하후녹이 등장해 전사한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하후장이고 서쪽이 아닌 회남 지역에서 지방관을 역임했다.
- 유연의 부하인 공장은 공융의 후손이 아니다.
- 유영은 기홍과 싸우다가 왕준[14]이 유영을 죽이기 위해 군사들에게 화살을 쏠 것을 지시한 것으로 유영, 기홍이 그 화살을 맞아 전사한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기홍이 한의 기주자사인 유영을 광종에서 패퇴시켜 유영이 전사했다. 그리고 기홍은 유영이 전사하고 2년 뒤 석륵이 왕준을 토벌할 때 석륵의 군대와 싸우다가 전사하였다.[15]
- 소설의 첫 부흥전투인 제만년의 반란은 실제 역사에서 296년이고, 촉한이 망한 것은 263년이다. 위에 언급된 장빈이나 제갈선우는 촉한이 망한 후 위, 서진의 탄압을 피해 숨어 살다가 제만년이 서전에서 승리하자 그제서야 소식을 듣고 합류하는데, 결국 33년 동안 숨어지낸 등장인물들은 처음 등장보다 최소한 33년의 나이를 더 먹어서 줄거리 전개에 차질이 생긴다. 결국 작가도 무리인 줄은 알지만 노인이어야 하는 등장인물은 장년처럼 묘사하고(거의 대부분), 장년이어야 하는 등장인물은 소년처럼 표현한다.[16]
- 위의 나이와 연대 고증에 대해 한마디 더 하자면 장빈은 장포의 서자로 나오는데, 정사 기준 장포의 사망은 장비보다 전이며 연의기준으로도 229년 사망했다. 거기다 장빈은 정실 출생의 동생인 장경과 장실이 있으니 촉한 멸망시에도 이미 젊은 축에 끼기는 힘든 나이이다. 뭐 저정도는 괜찮은데 제갈량보다 빨리 죽었다던 관흥이 멀쩡히 살아서 자식들에게 나라를 찾아달라 호소하지 않나 유령은 유봉의 손자도 아니고 무려 아들로 나오는데, 이래선 촉한 멸망 때 이미 40대 중반의 나이다. 어차피 픽션이라 어쩔 수 없지만, 연대기적으로 보면 설정구멍이 너무 크다.
- 한의 후예들이 신나게 진나라를 털어야 하는데 지들끼리 싸워서 망한 걸로 하면 뭔가 어색했는지 팔왕의 난(290~307)을 적당히 미뤄서 서술한다. 그래서 제만년의 반란 이전인 291년에 이미 가남풍에게 죽은 양준이 유연에게 작위를 주고 화친할 것을 건의하는 황당한 대사가 나온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맹관이 양준 터는데 앞장섰던 것도 제만년 죽인 공을 인정 못받아 그랬다는 것과는 한참 다른 이유이다. 제만년 진압은 한참 뒤의 일이다. 근데 또 웃긴게 네임드였던 장수인 맹관을 양준이 개무시했고, 그 때문에 맹관이 양준에 이를 갈고 있었던 건 사서에 나와 있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게 된 동맹이 가남풍과 사바사바 해서 맹관의 힘을 빌려서 양준을 몰아낸 것도 사서에 나와 있는 이야기다.
- 정작 한족이었던 근준은 월지국에서 도망온 이민족의 핏줄로 나온다. 근준이 실제로 흉노족에 적의를 가져 유씨들을 도륙하고 진 황제들의 시신을 동진에 돌려보낸 정황이 있으니 이것도 좀 적반하장격이다.
- 주처의 군대가 제만년의 군대에 유인책으로 당해 1만이 전멸했다고 나왔지만, 실제론 5천의 군대로 이끌고 제만년의 군대 7만에서 1만명을 참살하고 전사한다.
- 유요가 낙양을 함락시키고 종회와 등애의 묘를 도굴했다는 건 당연히 뻥이다. 종회는 역적으로 주살되었으니 무덤을 만들어 줄 일이 없고 등애도 억울하게 모함으로 죽어 당시에 이미 묘가 없었을 가능성이 높다. 애초에 둘 다 촉땅에서 죽었는데 낙양에 무덤이 있을 리 없다. 그리고 당대에 그런 짓을 했다간 민심이 아주 못마땅하게 여긴다. 실제로 진나라가 멸망 후 항우가 진시황의 여산릉을 원한을 사서 도굴하였더니 진나라 백성들의 원성을 사고 만다.
- 호연유와 호연호가 나와 낙양 공방전에서 나온다. 그랬는데 실제로는 그 전에 호연유는 유화와 작당하여 유총을 죽이려다가 오히러 유총의 반격으로 3족이 몰살해 죽었다. 영가의 난 이후에 죽었다면 시기가 맞지 않다. 호연호 또한 장안공략전에서 활약한다는데 실제로는 낙양 공방전에서 전투 도중 복궁순에게 목이 잘려 죽었다.
- 석륵이 장빈의 계책으로 왕미를 유인하여 죽였지만 편지를 들이대고 순식간에 석호가 칼날로 참살하진 않았다. 왕미가 술에 취한 사이에 목을 졸라 살해했다.
- 석호가 석륵의 아들로 나오는데, 실제의 석호는 석구멱의 아들로 석륵과는 부자관계가 아니다. 다만 석륵의 아버지인 석주갈주의 양자로 들어왔다.
- 사마동의 실제 이름은 사마융이다
- 유곤과 나오는 단필탄은 단필제이다.
- 석륵이 단필제의 유주성을 치고 황위에 올랐다고 하였는데 실제로 전조를 멸망시키고 330년에 천왕에 이어 황위에 올랐다. 이전까지는 왕이였다. 그리고 유요에게 구석과 조왕 작위를 받았다 하는데 실제로는 조공 작위였고 유요와의 갈등으로 갈라지자 왕위로 참칭한 것이다.
- 장빈이 조억을 멸망시키고 나서 90세로 죽었다 하였는데 실제로는 그 전에 석륵이 후조를 세우고 3년 뒤 322년에 사망하였다.
- 이웅이 양난적에게 패배하여 그 충격으로 병마를 얻어 죽었다는 것은 시기가 너무 빠르다. 양난적에게 패배한 시기는 324년이고 이때 조카인 이반을 황태자로 세운건 사실이다. 이웅은 실제로 석륵이 죽고난 후 334년에 죽었다.
- 호연안, 호연유, 호연호가 위연의 아들이라 하는데 실제론 위연이 반란을 일으키다 실패해 죽고 양의가 위연의 삼족을 몰살시켰다.
4. 여담
- 고우영이 만화로 옮긴 적이 있으나, 완결을 지었는지는 불분명하다. 고우영 후삼국지라는 제목으로 10권까지 나왔으나 중고거래 사이트에서도 부분적으로 매물이 고가로 올라올 만큼 무척이나 희귀한 작품이다.
- 큰 책 2권 구성의 컬러 만화로도 제작됐으며 폭력이나 죽음 묘사를 순화하는 삼국지 아동만화들과 달리 유혈 연출은 기본에 목이 잘리거나 화살이 머리를 관통하는 수위 높은 묘사도 나왔다.
- 족보 상 의혹이 없는 유씨를 주인공으로 하려면 100여년 뒤를 배경으로 해서 진짜 한나라의 종친이자 유비의 35촌 친척인 송무제 유유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5세기 경에 악당 사마씨 및 경쟁자들을 쓸어버리고 유씨의 나라를 다시 세우는 것을 소설로 쓰는 게 실제 역사에는 더 부합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시기는 대중들에게는 안기를 얻기 어렵고 다시 세운 나라는 그 서진이 개념차 보일 정도로 막장이었던데다 그리 오래 가지 못하는지라(...)[17] 삼국지후전의 후반부 주인공 석륵이 조자룡의 후손으로 나오는 판이니 차라리 6백수십년 뒤에 조자룡의 먼 후손이 중국대륙의 대부분을 통일하는 소설이 역사에도 맞고 정통성도 있는지라 더 타당할 듯.
5. 같이보기
[1]
해당 사실을 다루고 있는
삼국지 후전 일본어 위키백과 링크. 원본 삼국지 후전 판본들이 어디서 발견되었는지까지 기록하고 있다.
[2]
역자 이원섭은 시인이자 불교연구가로 어느 정도의 저명성이 있는 사람이다. 1924년 생으로 2007년에 사망했다고 한다.
[3]
유연을 유비의 후손이라고 칭한 것도 많이 어색한데, 유연은 촉한이 멸망한 후 먼 훗날의 인물이 아니라 촉한이 건재할 때 태어난 인물이였다.
[4]
그리고 확실히 유연이 한나라와의 연계성을 위해 처음에는 국호를 한이라고 했는데 아들 대에 조나라로 바뀐다.
[5]
당장 남흉노란 세력도
한무제의 정벌로 나왔다. 흉노가 쇠퇴하자 질지선우의 서흉노와
호한야선우의 동흉노로 분열되었다.
호한야선우가 이끄는 동흉노는 한나라에 귀순해 질지선우의 서흉노와 싸웠고, 결국 서흉노는 무너졌다. 그러나 흉노의 수장 선우 자리를 두고 내란이 일어나 기원후 48년에 동흉노는 다시 북흉노와 남흉노로 분열해, 남흉노는 한나라에 귀순하고 북흉노는 서쪽으로 가서
훈족이 되었다고 예상되므로 몰려서 귀순한 것이다.
[6]
유유는 적어도 한때는 정말로 장안까지 점령할 정도로 북벌이 나름 성공적이었고 유연과는 달리 한고제 유방의 동생 유교의 자손이라 너무 멀어 의미도 없지만 한나라 재건을 외쳐도 딱히 태클은 안 걸린다. 실제로 유유가 장안에서 후퇴를 할 때 장안의 유력자들이 전한 시대 황릉들이 있는 장안을 두고 어딜 가냐며 울며불며 말리기도 했으니...
[7]
성한은 아무래도 혈통적으로는 촉한과 아무 관련이 없어도 그래도 촉한 출신인 범장생을 재상으로 기용하고 여러 면에서 촉한을 잊지 않고 배려하는 등의 모습을 보여 이정도 신경을 써주었을지도 모른다.
[8]
팔왕의 난과 한과 진의 싸움 및 영가의 난이라는 주된 플롯 사이에 이특과 유민들의 이야기, 두도나 진민의 형주쪽에서의 반란, 모용외의 목환진 소희련 털기, 석륵과 단말배의 은원관계, 서량의 장씨 가문 사이에 일어난 일들과 여기 붙었다 저기 붙었다 하는 행보들, 왕돈의 반란 등의 당시 시대에 변방에서 일어났던 사건의 내용들을 요소요소에 잘 끼워놨다. 그리고 생각보다 저런 내용들은 정사에 매우 충실한 편이나 시간적 선후관계가 약간 다르기는 하다.
[9]
아무래도 삼국지 인물들의 후손들이 나선다는 설정이다 보니 "너네 할애비놈은 조조를 도와 한을 멸망시키는 역적놈 짓거리를 하더니만 니놈은 또 다른 역적놈한테 붙어먹었구나"는 드립이 후손끼리 싸울 때면 안 빠지고 나온다. 진나라 쪽 장수들은 이에 맞서서 주로 이 더러운 오랑캐놈 운운하는 이야기로 답해주곤 한다.
[10]
실제 역사에서는
유화가 차기 계승자였으며 소설에서 마치 차기 계승자인 것처럼 나오는
유총은 계승자가 아니었다.
유화가 즉위하자마자 동생들을 숙청하였는데
유총은 이를 피하고 역으로
유화를 보내버린다.
[11]
작가도 이 부분을 의식해서였는지 작중에서 유연을 낙양 함락 직후 죽여버린다. 평생 소원을 달성하여 허무해져 술과 여자를 밝히게 됐다나 뭐라나. 원래 안 그러던 양반이 그냥 어설프게 즐기는 거다 보니 엄청 크게 뭘 한건 아니라 국력이 크게 축나지는 않았지만 나이드신 양반이 주색에 빠지다보니 몸이 버텨나지 않았다고 했더랬다.
[12]
그런데 진서
유원해재기에 보면 유연이 학도원이나
제만년의 반란 때문에 자기 휘하를 관리 못했다거나 결탁이 의심되는 이유로 진의 벼슬에서 면직된게 아닌가 싶은 상황은 있다.
[13]
사서에는 목수(牧帥)라고 되어있는데 이게 주인같은 것인지 아니면 목장 관리인같은 것인지는 불명.
[14]
서진의 장수로 진나라를 통일할 당시의 장수
왕준이 아니라 1세대 뒤의 인물이다.
[15]
후삼국지 후반부의 주인공이 석륵이라는 걸 감안해 보면, 기홍의 죽음은 사서대로 각색하는 편이 더 나았을 것이다. 석륵을 치러 가다가 갑자기 안개가 끼면서 그 와중에 석륵에게 기습당해 전사했다고 하는데 이 쪽대로 하는 게 뭔가 더 소설적으로 나았을지도...
[16]
유요,
석륵 등이 그렇다. 근데 생년이 불분명한 유요는 그렇다치고 석륵은 촉한이 망한 274년에 태어났다. 근데 여기선 급상이 업고다니며 이야기하고 다닐 수준의 나이로 나온다. 거기다 조왕 사마륜 축출 때 성도왕을 도운 걸로 나오는데 이 때 당당하게 14세라고 나이도 밝힌다. 사마륜이 301년에 쫓겨났으니 절대 안 맞을 나이다. 이러다 보니 성도왕이 석륵보고 '이 귀요미 꼬맹이는 누구임??' 하는 일이 생기는데, 실제로 석륵은 성도왕보다 다섯살이 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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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는 해도, 이 시기의 왕조들에 비하면 유송은 그리 단기왕조도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