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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cho II de Castilla | ||
별칭 |
Sancho the Strong / el Fuerte (강건왕 산초) |
|
가문 | 히메네스 왕조 | |
생몰년도 | 1036년 ~ 1072년 8월 7일 | |
출생지 | 레온 왕국 | |
사망지 | 레온 왕국 사모라 | |
재위 기간 |
카스티야 왕국 국왕 | 1065년 - 1072년 |
갈리시아 왕국 국왕 | 1071년 - 1072년 | |
레온 왕국 국왕 | 1072년 | |
아버지 | 페르난도 1세 | |
어머니 | 레온의 산차 | |
형제 | 사모라의 우라카, 토로의 엘비라, 알폰소 6세, 가르시아 2세 |
[clearfix]
1. 개요
카스티야 왕국 초대 국왕,[1] 레온 왕국 히메네스 왕조 3대 국왕, 갈리시아 왕국 국왕.2. 생애
1036년경 레온 왕국- 카스티야- 갈리시아 왕국의 군주 페르난도 1세와 레온 국왕 알폰수 5세의 딸 산차의 장남으로 출생했다. 형제로 사모라의 우라카, 토로의 엘비라, 알폰소 6세, 가르시아 2세가 있었다. 1060년에서 1065년 사이에서 카스티야 왕국의 동쪽 국경선을 무슬림으로부터 지키는 임무를 부여받았다.1063년 야라곤 국왕 라미로 1세가 산카 계곡의 최북단 무슬림 전초 기지인 그라우스를 공격하자, 그라우스 아랍 수비대는 그에게 구원을 요청했다. 아라곤 왕국이 지나치게 강해질 것을 우려한 산초는 부하 엘 시드에게 300명의 기사들과 함께 그라우스로 향하게 했다.[2] 1063년 5월 8일에 벌어진 전투에서, 라미로 1세는 엘 시드가 내지른 창에 찔려 그라우스 성문 앞에서 전사했다.
1065년 아버지의 발렌시아 원정에 참여해 몇 달간 이어진 발렌시아 공방전에서 활약했지만, 발렌시아 수비대의 결사항전으로 공략에 실패했다. 그러다 아버지 페르난도 1세가 중병에 걸리자 회군했고, 1065년 12월 27일 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봤다. 페르난도 1세는 생전에 상속인 사이에 왕실 소유물을 분배하는 것을 금지한 서고트 및 레온 법 대신 왕국을 분배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나바라 법 원칙을 따르라는 유언장을 작성했다. 이에 따라 장남 산초 2세는 카스티야를 물려받았고, 차남 알폰소 6세는 레온 왕국을 물려받았으며, 3남 가르시아 2세는 갈리시아를 물려받았다.
산초 2세는 엘 시드를 카스티야 군사령관으로 선임한 뒤 팜플로나 왕국을 공략하기로 마음먹고, 1067년 팜플로나 왕국과의 국경지대에 군대를 배치했다. 이에 위협을 느낀 팜플로나 국왕 안초 4세는 아라곤 국왕 산초 라미레스에게 구원을 호소했다. 산초 라미레스 역시 산초 2세의 확장 정책에 위협을 느끼던 터라 팜플로나 왕국을 돕기로 했다. 이리하여 발발한 "세 명의 산초 전쟁"은 엘 시드가 이끄는 카스티야군이 대승을 거두었고, 안초 4세는 부레바, 알타 리오하, 알라바 일대를 카스티야에 넘겨줘야 했다. 이 땅은 지난날 페르난도 1세가 갈리시아의 베르무두 3세와 전쟁을 벌일 때 아라곤 왕국의 지원을 얻기 위해 안초 4세의 아버지 가르체아 3세 사노이츠에게 넘겼는데, 이제 그가 그 땅을 도로 가져간 것이다.
산초 2세는 아버지의 땅을 온전히 물려받아야 했는데 형제들에게도 땅이 주어지는 바람에 카스티야에서만 왕노릇하게 되었다는 불만을 품고 있었다. 그러던 1068년 5월 1일 알폰소 6세가 바다호스 타이파국을 공격하느라 레온 왕국을 비워두자 그는 이 때를 틈타 레온 왕국으로 쳐들어갔다. 이 소식을 접한 알폰소 6세는 바다호스 타이파 알 무자파르와 평화 협약을 체결한 뒤 레온 왕국으로 돌아왔다.
1068년 7월 19일 피수에르가 강 인근의 린타다 전투에서 양군이 맞붙었다. 일부 기록에 따르면, 산초 2세와 알폰소 6세는 이 전투의 승자가 상대방의 왕국을 차지하기로 합의했다. 전투 결과 산초 2세가 승리했지만 알폰소 6세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이 사실인지는 분명하지 않으며, 알폰소 6세가 1069년 5월 26일 아키텐 공작 기욤 8세의 딸 아그네스와 결혼했을 때 산초 2세가 결혼식에 참석한 것을 볼 때 곧 화해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1071년, 산초 2세와 알폰소 6세는 막내 동생 가르시아 2세가 다스리던 갈리시아를 분할 통치하기로 합의하고 힘을 합쳐 갈리시아로 쳐들어갔다. 갈리시아 2세는 두 형의 공세에 패배하고 포르투갈 중심부로 도주했다가 산타렝에서 산초 2세에게 체포되어 부르고스에 투옥되었다. 그 후 갈리시아는 산초 2세와 알폰소 6세에 의해 양분되었다. 포르투갈 백작령은 알폰소 6세의 레온 왕국으로 편입되었고, 갈리시아는 산초 2세의 카스티야 왕국에 편입되었다. 또한 양자는 3년간 평화 협약을 맺기로 했다.
그러나 산초 2세는 약속을 어기고 엘 시드와 함께 레온 왕국으로 쳐들어갔다. 알폰소 6세는 예상치 못한 기습 공격에 미처 대항하지 못하고 사로잡혔고, 산초 2세는 레온에 입성한 뒤 1072년 1월 12일 레온 국왕에 즉위했다. 그 후 여동생인 사모라의 우라카의 중재에 따라 알폰소 6세를 사하군 수도원에 유폐시켰지만, 알폰소 6세는 페드로 안수레스 등 몇몇 귀족들과 함께 탈출한 뒤 톨레도의 타이파 알 마문의 궁정에 망명했다.
그리하여 카스티야, 레온, 갈리시아 왕국의 유일한 군주가 되었지만, 레온의 귀족들은 여전히 산초 2세에게 저항했다. 산초 2세는 이를 무력으로 진압하는 한편, 아버지 페르난도 1세로부터 평생 결혼하지 않는 대가로 사모라를 영지로 부여받은 누나 우라카 역시 자신에게 반기를 들 거라고 의심했다. 그는 우라카에게 사모라를 떠나 다른 곳으로 이전하라고 명령했으나 거절당하자 반역자와 밀통했다는 혐의를 씌우고 군대를 동원하여 사모라를 포위 공격했다.
그러던 1072년 8월 7일, 그는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전승에 따르면, 벨리도 돌포스(Vellido Dolfos)라는 귀족이 사모라에서 카스티야군 진영에 들어간 뒤 산초 2세에게 도시로 몰래 들어갈 수 있는 문으로 안내해주겠다고 했다. 산초 2세는 이를 믿고 그를 따라가다가 돌연 손에 쥐고 있던 황금 창을 빼앗기고 창에 복부를 찔러 사망했다. 돌포스는 엘 시드의 추격을 피해 곧바로 사모라로 돌아와서 우라카를 향해 "도냐 우라카, 약속을 이행할 때입니다!"라고 외쳤다고 한다.
그러나 중세 히스파니아 역사의 주요 사료로 취급되는 <로데리크의 역사(Historia Roderici)>에는 산초 2세의 사인이 암살이었다는 언급을 전혀 하지 않았기에, 많은 학자들은 산초 2세가 암살당했다는 이야기의 신빙성을 의심하며, 그가 공방전을 치르던 중 전사했거나 병에 걸려 죽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 산초 2세의 유해는 산 살바도르 데 오냐 수도원에 안장되었다고 전해진다. 산초 2세가 사망한 후 동생 알폰소 6세가 돌아와서 카스티야, 레온, 갈리시아의 단독 군주로 등극했다.
산초 2세는 생전에 기원이 알려지지 않은 알베르타(Alberta)라는 여인을 아내로 삼았다. 알베르타라는 이름은 11세기 스페인에서는 생소한 이름이므로 이방인일 가능성이 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자식이 없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12세기 나헤라 연대기(Crónica najerense)에 따르면, 산초 2세의 약혼자는 팜플로나 국왕 가르체아 3세 사노이츠의 딸이며, 그녀의 이복 형제인 안초 4세가 그녀를 강간한 뒤 사라고사와 아라곤 국왕 라미로 1세의 보호를 받기 위해 달아나자, 격분한 산초 2세가 두 왕국과 전쟁을 벌였다고 한다. 그러나 현대 학계는 이 기록의 신빙성은 없다고 간주한다.
3. 대중매체
-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2에서 엘 시드 캠페인 첫번째에서 등장한다. 엘 시드가 기사 및 보병과 싸워서 이긴걸 흐뭇해 하며 바비에카를 하사한다. 동생인 알폰소 왕과는 달리 엘 시드를 아끼는, 매우 사람 좋은 높으신 분으로 나온다.
- 크루세이더 킹즈 3 1066 북마크에서 형제들과 함께 고유 북마크를 받았다. 카스티야를 통치하고 있으며, 동생 알폰소의 암살을 조심하며 특기인 전투로 동생들을 썰어버리면 어렵지 않게 다시 세 나라를 통일할 수 있다. 특히 친구이자 궁정 신하인 엘 시드(로드리고 데 비바르)는 탑급 지휘관 겸 기사이기에 더욱 쉽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