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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cho Ordóñez | ||
가문 | 아스투리아스 왕조 | |
생몰년도 | 미상 ~ 929년 | |
출생지 | 아스투리아스 왕국 | |
사망지 | 갈리시아 왕국 | |
재위 기간 |
갈리시아 왕국 국왕 | 926년 - 929년 |
아버지 | 오르도뉴 2세 | |
어머니 | 엘비라 메넨데스 | |
형제 | 알폰수 4세, 라미루 2세, 가르시아 오르도녜스, 히메나 오르도녜스 | |
배우자 | 고토 무뇨스 | |
자녀 | 오르도뉴 4세, 프루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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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갈리시아 왕국 국왕.2. 생애
아스투리아스 왕국의 왕자이자 레온 왕국 2대 국왕이었던 오르도뉴 2세와 갈리시아 귀족 헤르메네길도 구티에레스 백작의 딸인 엘비라 메넨데스의 장남이다. 형제로 알폰수 2세, 라미루 2세, 가르시아 오르도녜스, 히메나 오르도녜스가 있었다. 924년 아버지가 사망한 뒤 삼촌 프루엘라 2세가 군대를 이끌고 와서 레온 왕국의 왕위를 가로채자, 형제들과 함께 갈리시아로 피신했다. 그는 이 시기에 갈리시아의 세력가인 무니오 구티에레스 백작의 딸 고토 무뇨스와 결혼했고, 알폰수 4세는 팜플로나 왕국 국왕 안초 1세의 딸 오네카 사노이츠와 결혼했으며, 라미루 2세는 포르투갈 귀족 구티에레스 오소레스의 딸이자 헤르메네길도 구티에레스의 외손자인 아도신다 구티에레스와 결혼했다.925년 8월 프루엘라 2세가 나병에 시달리다가 사망한 뒤 아들 알폰수 프루엘라스가 왕위에 오르자, 그는 두 형제와 함께 반란을 일으켰다. 그들의 반란은 팜플로나 왕국과 갈리시아, 포르투갈 귀족들의 전폭적인 후원을 받았고, 알폰수 프루엘라스는 이를 감당하지 못하고 926년 초 권좌에서 밀려나 아스투리아스 산악지대로 도피했다. 산추와 알폰수는 각각 갈리시아 왕국과 레온 왕국의 국왕으로 즉위했으며, 라미루는 코임브라를 비롯한 포르투갈 지역을 다스렸다.
얼마 후, 산추 오르도녜스는 레온 왕국까지 자신의 소유로 삼기 위해 알폰수 4세와 전쟁을 벌였다. 알폰수 4세는 이 전쟁에서 패배해 아스투리아스로 달아났다. 이후 알폰수 프루엘라스와 화해하고 그의 도움에 힘입어 산추 오르도녜스를 물리치고 레온 국왕에 복귀했다. 알폰수가 갈리시아를 여러 차례 방문해 산추의 영접을 받았다는 기록이 전해지는 것으로 볼 때, 두 형제는 곧 화해했던 것으로 보인다.
929년 여름, 산추 오르도녜스는 고토 무뇨스 왕비와의 사이에서 자식을 남기지 못한 채 사망했다. 갈리시아는 곧바로 알폰수 4세가 다스리던 레온 왕국에 편입되었으며, 그의 유해는 카스트렐로 데 미뇨 수도원에 안장되었다. 고토 왕비는 947년 라미루 2세가 미뇨 수도원에 기부했을 때 이 수도원에 소속된 수녀원장이었다고 전해지며, 사망 시기는 전해지지 않지만 사후에 남편이 묻힌 무덤에 합장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