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1-01 19:23:05

산왕공고

파일:slamdunklogo.gif 주요 등장 학교
파일:shohoku.png
북산
파일:ryonan.png
능남
파일:shoyo.png
상양
파일:kainan.png
해남
파일:toyotama.png
풍전
파일:sannoh.png
산왕
삼포 · 노량(진무) · 무림 · 무원 · 녹성 · 기타 학교

山王 / SANNOH
파일:sannoh.png
산왕공고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tablebgcolor=#ffffff,#191919><tablecolor=#373a3c,#ddd><colbgcolor=#050a30><colcolor=#fff> 감독 도진우
3학년 4 이명헌C · 5 정성구VC · 6 최동오 · 7 신현철 · 8 김낙수
2학년 9 정우성
1학년 15 신현필 }}}}}}}}}
파일:산왕공고.png
SANNOH / 산왕

1. 개요2. 작중 행적3. 팀 구성4. 여담
4.1. 모티브
5. 연재 당시 라인업

[clearfix]

1. 개요

파일:산왕공고 더 퍼스트 슬램덩크.jpg
더 퍼스트 슬램덩크
왼쪽부터 정우성, 신현필, 이명헌, 최동오, 신현철.

만화 슬램덩크에 나오는 가상의 고등학교. 아키타현 소재.[1]

한자로 山王이며 일본어로는 '산노(さんのう)'라고 읽는다. 원작에서 강백호는 음독이 아닌 훈독으로 '야마오(ヤマオー)'라고 부른다.[2] 정식 번역본에서는 이게 반영되지 않았으나, 애장판 번역 때 ' 산양'이라 잘못 읽는 것으로 반영되었다.[3][4] 중국에서는 산왕 대신 비슷한 발음인 석 삼자를 써서 삼왕(三王)으로 잘못 읽는다. 응원 현수막의 문구는 일의전심(一意摶心).[5]

2. 작중 행적

파일:attachment/e64bddb9546665adc816a0f3b6d58f8b120045.jpg
전국대회 편 북산 최종 보스 팀으로 작중 시점상 3년 연속 전국대회 우승팀에 현 3학년인 이명헌, 신현철 등의 입학 이래 무패 우승을 달리고 있다. 작중 시점의 산왕은 역사적으로도 역대 최강의 산왕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평가받고 있었다.[6][7] 나이 많은 팬들이 수두룩하고, 채치수가 처음으로 구입한 농구 잡지의 표지모델이 산왕의 선수였으며[8] 농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그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 걸 보면[9] 엄청난 명문 팀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10] 졸업생들은 대부분 대학 올스타급으로 성장하는 모양이다.[11]

셋 중에서 그나마 이명헌이 싫어하는 작고 재빠른 타입이었던 송태섭이 선전한 정도. 변명을 하자면 상대가 너무 나빴다. 물론 나머지 두 명의 주전(최동오, 정성구)도 최강팀의 주전인 만큼 전국구의 실력을 지녔지만, 정우성, 신현철, 이명헌 등 일명 빅3는 고등학교 수준을 뛰어넘었다. 채치수를 스카우트하러 온 S체육대학의 센터 심강훈[12]은 채치수는 '대학에 들어가도 제 몫을 할 인재', 신현철은 '지금 당장 대학 농구에서 뛰어도 세 손가락 안에 들 수 있다'고 평했다. 쉽게 말해 고등학생 센터가 대학리그 MVP를 다툴 수도 있는 선수와 맞붙은 것이다. 그리고 서태웅을 박살낸 정우성은 이 신현철조차 제치고 1학년 때부터 에이스 자리를 꿰차고 있는 선수고, 이명헌은 그 둘만큼의 임팩트는 없지만 바로 그 산왕공고의 주장이자 그들과 비슷한 레벨로 거론되는 선수다. 한 마디로 레벨이 달랐다.

이 작품에서 묘사되지 않은 북산의 득점이 13점 정도 있지만 주요 등장인물들의 득점은 거의 묘사가 됐는데 이때 최다 득점원은 3점슛 9개를 던져 8개를 넣은 (88.9%) 25점의 정대만이었다. 그 다음 득점원은 14점(7/9) 10리바운드의 강백호였으며 서태웅(5/12, 41.7%)은 13점에 그쳤다. 물론 이건 서태웅이 못한게 아니라 정우성이 비정상적으로 잘하는 선수라 그렇지만, 엄밀히 말하면 서태웅이 공수양면에서 강백호 다음으로 활약했다는 건 맞지 않다는 것.

이런 최강의 산왕공고팀이 북산과의 경기 이전에 비디오로 북산의 자료를 보면서, 강백호 빼고 [13] 북산의 모든 선수들의 실력을 인정하고 높게 평가한다. 이 장면은 그동안 북산이란 팀을 쭉 지켜봐 온 독자들의 가슴을 벅차오르게 한다.

전년도 전국대회 4강에서 해남대부속고를 상대로 30점차 대승을 거뒀는데,[14] 사실 결과보다 더 무서운 것은 경기 내용. 당시 전광판을 자세히 보면 후반 4분 13초를 남겨놓고 10점차였는데, 이는 달리 말하면 4분 남짓한 시간동안 상대보다 20점을 더 많이 따냈다는 의미다. 평범한 농구경기라면 한 쪽이 4분 동안 20점을 넣기도 쉽지 않은데, 상대보다 20점을 많이 따냈다는 것은 정말 상대가 불쌍해질 정도로 완전히 박살을 냈다는 의미다. 그것도 전국대회 준결승에서. 괜히 북산의 선수들이 새하얗게 질린게 아니다. 다만 이런 경기스타일은 결코 합리적이지 않다. 4분 13초를 남기고 10점차면 굳이 무리해서 30점까지 점수차를 벌릴 이유가 전혀 없으며, 체력안배와 안정적인 경기운영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 농구 경기에서 점수차는 큰 의미가 없기 때문.[15] 본인들이 유리한 상황에서조차 방심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확실하게 짓밟아버리는 무자비한 경기 운영방식은 상대에게 위압감을 줄 수도 있겠지만 팀원들의 체력 및 컨디션 관리에 있어서는 그다지 현명한 선택은 아니다. 북산전에서도 큰 점수차로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지역방어로 바꿔 공격 템포를 늦춰서 체력을 안배하기는커녕 마지막까지 존 프레스&공격 일변도로 나가다가 북산에게 역전의 빌미를 내주기도 했다. 휴식없이 달려야 하는 토너먼트를 생각하면 경기운영에 의문이 드는 부분.

북산전에서 산왕의 선수들의 모습을 생각하면 수준차이가 나는 해남을 맡아 전반은 그럭저럭 하다가 후반에 사정없이 휘몰아쳤다고 추정을 할 수도 있다. 실제로 대학 올스타급의 산왕 OB도 쳐바른만큼, 일반 고딩들은 상대가 안 되는 게 당연하다. 이 정도면 북산이 승리를 한 것이 말 그대로 기적에 가깝다.[16] 어떻게 보면 산왕이 단순히 제 실력을 발휘하는 것만으로 저 정도 점수차를 낸다고 볼 수도 있다. 북산전을 생각해보면 산왕은 전반에 전혀 제 실력을 발휘하지 않았다. 에이스 정우성이 집중 못한다는 이유로 벤치에 앉히고, 신현철은 채치수를 얼마든 요리할 수 있음에도 전력으로 덤비지 않았다. 그럼에도 2점차였던 것이다. 즉, 산왕 입장에선 해남이든 북산이든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박살낼 수 있기에 전반에 페이스 조절을 하며 적당한 수준의 점수차만 유지한다고 볼 수도 있다.[17] 실제로 북산이 기적적으로 잘하고, 산왕의 몇몇 선수가 미친 듯이 부진하지 않았으면 게임 자체가 성립하지 않았다.

금년의 해남만큼이나 강하고, 신장을 생각해보면 오히려 더 강한 팀이었다고 하는데도[18] 이 정도였다. 2학년이었던 센터 신현철, 가드 이명헌에 1학년에 불과한 정우성은 포워드로서 전국대회 우승을 경험한 바 있다. G, F, C에 초고교급 선수들이 한 명씩 있는 셈이다. 그 외 정성구의 경우 리바운드 머신이고, 최동오도 어느 팀에 가더라도 에이스를 할 인물이라고 하니[19] 멤버 수준은 정말 최상급이다. 특히 정우성같은 경우 전국대회에서도 상대가 없어서 집중도 제대로 못 하는 상황이었다. 이런 정우성을 집중시킬 유일한 상대가 같은 팀의 이명헌, 신현철이라고 하니 진정 끝판왕에 어울린다.

하지만, 이런 최강 기믹에도 불구하고 주인공 팀 북산에게 패배하기 위해서 부진한 모습을 보여야 했다. 이명헌을 제외한 전반, 후반을 모든 멤버들이 강백호에게 당했고, 전반은 설렁설렁 해서 34:36, 2점 차로 뒤졌다고 해도 후반 9분 만에 60-36 24점 차를 만들었는데[20], 정대만 3점 슛을 기점으로 8점 차까지 추격을 당한다. 이 때 산왕의 필승 전략이 올 코트 프레스인데, 북산이 해남전이나 상양, 그리고 능남과의 연습시합 당시에도 사용했던 전략이다. 이에 정우성의 원맨쇼로 다시 19점 차까지 벌려놨지만, 서태웅의 반격에 다시 8점 차까지 추격당한다. 점수를 쌓을 때는 무시무시한 기세로 올리는데, 한 번 말리면 공격도 안 되고 수비도 안 되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한 번 기세가 오르면 겉잡을 수 없이 강해지는 북산의 특징 때문이라고 보는 게 맞다.[21] 특이사항이 있다면 강백호의 득점으로 시작해서 강백호의 득점으로 끝나는 경기이며, 그려지지 않은 부분을 제외한 전반전의 경우 강백호의 득점이 서태웅보다 많게 기록되어있다. 이것은, 능남전부터 서태웅이 체력 보존을 위해서 힘을 아끼는 전략을 쓰고 있어서 그렇기도 하다.

토너먼트 첫 경기인데다 상대가 무명 북산이라 신현필을 내보내며 여유를 부린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후반에 정성구를 투입하지 않고 신현필을 계속 세워둔 것도 이해가 안 되는 설정이다. 벤치로 돌아갔던 신현필이 코트로 다시 복귀했으니, 북산은 국지전으로 끌고 가는 전략이 굉장히 유리하다. 하지만 신현필이 코트로 복귀한 후에 이런 전개가 나오지는 않았던 것을 보면, 아무래도 이노우에 작가가 캐릭터를 새로 그리는 게 싫어서 그냥 신현필로 때운 듯하다. 그래서 산왕의 감독 도진우 항목에는 전술의 삽질에 대한 설명이 아주 자세하게 적혀 있다.[22]

아마도 '산왕=무결점의 최강팀'이라는 기정사실이 오히려 북산전의 패인으로 작용한 듯 하다. 북산이 경기 종료를 몇 분 안 남기고 있을 때, 관전 중이던 해남의 남진모 감독의 말대로 "지금부터는 시간만 끌면 승리가 보장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산왕의 도진우 감독은, "무패 기록을 가진 저 녀석들의 가장 자신 있는 스타일"로 존 프레스를 감행한다. 이는 완벽할지는 모르지만, 극한의 상황 속에 놓인 북산의 추격 의지를 더욱 부추기는 행위로 연결되었고 결국 역전패라는 빌미를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23][24]

다소 의아한 것은 작중 묘사로는 3점이 거의 없다. 물론 슬램덩크는 90년대 농구라서 3점 슛의 중요성이 강조되기 전의 작품이지만, 반대로 작품 내에서는 정대만, 신준섭, 남훈으로 제법 있는 걸 생각하면 최강팀 치고는 의아할 정도로 3점이 없다.[25]

3. 팀 구성

각각 1-3-5번 포지션에서 '초고교급'이라고 언급된 이명헌, 정우성, 신현철을 보유한 고교 최강의 팀으로, 정우성과 신현철은 각각 서태웅과 채치수를 압살하는 말도 안되는 공수 역량을 선보였다. 특히 정우성은 포지션을 떠나 명실공히 작중 원톱 플레이어이며, 신현철 역시 활약상이 그 정우성에게 꿇리지 않았을 정도로 고등부의 수준은 아득히 초월했다.

저 둘에게 다소 활약이 묻힌 이명헌의 경우 카나가와 현 끝판왕인 이정환과 우열 논의가 나오긴 하지만, 그마저도 '구체적으로 누가 조금 더 위인가'를 논하는 수준이지 이명헌을 이정환보다 명확히 낮은 티어라고 분류하는 의견은 찾기 힘들 정도. 즉, 이정환 급 선수가 겨우 3옵션에 그치는 팀인 셈이다.

빅3를 제하더라도 210cm 130kg라는 탈 아시안 피지컬의 신현필[26], 채치수 급 체격에 리바운드 능력은 작중에서 서너 손가락 안에 꼽히는 정성구[27], 어느 학교에 가도 에이스를 맡을 만한 실력자인 최동오, 수비력이 매우 뛰어난 김낙수 등 뎁스조차 매우 훌륭한 팀. 이들 4인에 상기한 빅3 중 한 명만 붙여놔도 작중의 다른 네임드 팀에 맞먹는다 해도 딱히 과장은 아니다. 재능의 합은 그야말로 독보적인 수준.

5번과 4번의 구분이 비교적 확실한 다른 팀들과 달리 정성구와 신현철이 서로 4~5번을 구분하지 않는 게 특징이다. 물론 말이 two센터이지 신현철의 운동능력 및 활동량이 어지간한 포워드에게 전혀 뒤지지 않고, 3점까지 던질 수 있을 정도로 슛레인지도 길기에 그냥 C정성구 PF신현철의 구성이라고 보면 크게 무리는 없다. 북산전에서 신현철이 센터인 채치수와 맞붙은 이유는 어디까지나 채치수가 공수 양면에서 강백호보다 더 뛰어난 선수이기 때문. 만약 파워포워드가 에이스이거나 센터-파포의 기량이 비슷한 팀이라면 신현철이 파포를 담당하고 정성구가 센터를 막을 것이다.[28]

여기에 거인 센터 신현필이 벤치에서 출격하기에 항시 더블포스트를 돌릴 수 있으며, 신현철이 3번까지 능히 소화할 수 있는 선수이니 아예 정우성을 슈팅 가드로 내리고 3빅을 돌리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그야말로 작중 최고의 빅맨진을 보유한 팀. 해남같이 높이가 낮거나 풍전처럼 골밑이 만만한 팀은 보드싸움에선 아예 견적이 안 나오는 수준이며, 장신숲으로 유명한 상양조차 이들을 상대로는 리바운드에서 밀린다고 봐야 한다. 리바운드로 이들에게 견줄 만한 팀은 채치수-강백호를 보유한 북산 및 작중 최강의 피지컬인 김판석을 보유한 명정고교 외에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4. 여담

= 누계 66점, 불명 13점[35], 총합 79점

산왕
정우성 26점
신현철 15점
이명헌 5점
최동오 5점
신현필 4점
정성구 2점

= 누계 57점, 불명 21점[36][37], 총합 78점

4.1. 모티브

모티브가 된 고등학교는 1990년대에 인터하이에서 6연패를 달성했던 농구 명문 아키타 현립 노시로 공업 고등학교(秋田県立能代工業高等学校)로[38] 2023년 기준 인터하이 출전 56회 중 22회 우승, 국민체육대회 49회 출전 중 16회 우승, 윈터컵 49회 출전 중 20회 우승 등의 전국대회 커리어를 보유하고 있다. 그만큼 프로 선수가 된 이들도 상당히 많고 NBA에는 타부세 유타가 진출했다. 전술 면에선 농구부 소개에서 알 수 있듯 산왕공고의 올 코트 존 프레스 말고도 풍전과 같은 런앤건 스타일 또한 추구했는데 압도적인 강력함에 런앤건 팀이라는 특성상 팬도 엄청나게 많아 농구 불모지였던 일본에서도 작중 산왕공고처럼 시합마다 항상 관중석이 만원인 인기팀이었다고 한다.
1993년 노시로컵 노시로공업 vs. 챠탄

노시로시에서도 인기에 힘입어 매년 5월 노시로공고를 포함한 전국 각지의 고등학교에서 참여하는 노시로컵을 개최해 인터하이, 전국체전, 윈터컵에 이은 제 4의 전국대회라고 홍보하고 있다. 이 대회에서 슬램덩크가 연재 중이었던 1993년에는 작중 등장 학교들의 또다른 모티브인 오키나와 현립 챠탄고교(沖縄県立北谷高等学校)[39]가 우승했으며, 2000년대 해외에 소재한 고등학교에서도 참가했던 시절 한국의 삼일상업고등학교(現 삼일고등학교)가 2002년 대회에서 준우승을 한 적이 있다. 경기 영상(vs. 노시로공업)[40]

또한 원작의 산왕공고와 마찬가지로 노시로공고의 소재지인 아키타의 현청이라든지 시청 등이 모여있는 동네의 이름이 산왕(山王)으로 발음도 '산노'로 동일하며, 출신 선수인 타부세 유타의 인터뷰에도 실린 OB 멤버들과의 연습 게임이나 훈련이 너무 힘들어 탈출을 시도했던 부원들이 있었다는 일화[41]와 유사한 에피소드가 작중에 등장했다. 그리고 노시로 OB들이 산왕공고 몇몇 캐릭터들의 모티브가 되었는데 신현필의 경우 도요타 앨버크(現 앨버크 도쿄)에서 선수로 활동했던 세키구치 사토시(関口聡史)가, 도진우 감독은 당시 감독이었던 가토 마츠히코(加藤光彦)가 모델이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에서는 산왕공고의 모델이 노시로공고라는 점이 더 직접적으로 드러나는데 산왕 응원단 목소리를 실제 노시로공고 선수 출신들이 담당했다. 이에 대해 사운드 감수 및 성우로 참여한 노시로공고 출신 모델 겸 배우 니이오카 쥰[42] 인터뷰 COURT SIDE[43]를 통해 전통을 자랑하는 일본 최강의 고교 농구부의 응원법을 녹음해 보내달라는 섭외가 들어와서 했다가 뒤늦게 더 퍼스트 슬램덩크임을 알고 감수를 맡으면서 현실성을 추구하기 위해 노시로 OB들의 목소리를 사용했다는 비하인드를 공개했다.
1995년 윈터컵 결승전 노시로공고 vs. 센다이고

한편, 일설에 따르면 1995년 윈터컵 결승전 노시로공고와 센다이고의 경기를 모티브로 산왕전을 그렸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실제로 월간 바스켓볼 1996년 3월호의 표지와 윈터컵 관전기 만화에서 알 수 있듯 이노우에 다케히코가 이 경기를 직접 관람하러 경기장에 방문했었다. 그래서인지 연재시기와 양팀의 유니폼 디자인도 그렇고 산왕의 전매특허라는 것치고는 이전까지 전혀 언급이 없었던 산왕의 올코트 프레스 플레이가 튀어나온게 시기상으로 이 시합의 직후다. 또한 이 시기에 노시로공고는 한해에 인터하이와 국민체육대회, 윈터컵이라는 3대 대회에서 모두 우승한 1975년 이미 일본 고교농구 역사상 첫 트레블을 기록했고, 그 다음해인 1976년과 1992년과 4년 뒤인 1996년부터 1998년까지 3년 연속으로 달성했다. 특히 1996년의 경우 노시로공고의 주장이 바로 일본인 최초 NBA 진출 선수인 타부세 유타였고 그가 3년간 공식전에서 패배한 적은 1학년 당시 단 한번 뿐인데 유일한 1패가 바로 저 영상에 등장하는 붉은 유니폼의 센다이고였다고 한다.

그러나 재단의 지원이 풍부한 사립이 압도적으로 유리한 일본 학생 스포츠 특성상 유망주들은 자발적 혹은 스카우트를 받아 지역 스포츠 명문 사립에 가는 경우가 많았으며 최근에는 외국인 유학생도 유치하는 학교들이 늘고 있다. 그래서 노시로는 한때 공립임에도 강했기 때문에 학생 수급이 가능했고, 현재도 아키타현 내에선 여전히 농구 강호로 대접 받으며 전국대회에 단골 출장하고 있지만 결국 사립에 비해 한계가 있는 지원과 다른 고교들의 정책에 밀려 실력 있는 학생 확보에 어려움을 겪어 과거 전국구 절대강자의 모습은 다소 퇴색했다.[44] 그 결과 2004년 윈터컵, 2007년 인터하이 우승을 마지막으로 전국대회 우승권에선 멀어진 지 약 20년의 세월이 지났고, 2024년에는 인터하이 아키타현 예선 8강에 그치면서 2016년에 이어 두 번째 예선 탈락이자 1969년 인터하이 첫 진출 이래 최악의 성적표를, 윈터컵은 지역 예선 4강에서 탈락했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 개봉 후 해당 고등학교가 있는 노시로시 성지순례가 이어지고 있는데 극장판을 개봉한 뒤 노시로 농구 박물관에 한국 대만의 관광객이 늘었으며 방문객도 개관 이래 처음으로 5000명을 돌파했다는 소식을 보도했다. 이에 맞춰 노시로 농구 박물관에서도 슬램덩크 관련 물품들을 전시해두고 메인 트윗에 산왕공고의 모델이 된 학교라는 문구를 체육관에 캐릭터들의 피규어를 둔 사진과 함께 소개하고 있다. 또한 북산과 산왕공고가 인터하이 2차전을 했던 8월 3일에는 산왕공고에 대한 응원 메시지를 받는 이벤트와 원작을 기반으로 실황 중계를 진행했다. 노시로시 뿐만 아니라 유리 고원철도 공식 SNS에서도 정우성이 자신에게 필요한 경험을 달라고 기도하는 장면의 배경으로 알려진 유리혼조시에 위치한 모리코 오오모노이미 신사까지의 지도를 만들어 배포했다.

그리고 영화 개봉 1년 뒤, 작가 이노우에 다케히코는 매년 그려온 졸업 축전 일러스트를 노시로과학기술고등학교의 졸업식에 맞춰 업로드했고, 노시로 농구 박물관에서도 이에 대해 반응글을 남겼다.

5. 연재 당시 라인업

번호 성명 학년 포지션(신장)[45]
4. 이명헌 3학년(주장) PG(180cm)
5. 정성구 3학년 C(198cm)
6. 최동오 3학년 SG(185cm)
7. 신현철 3학년 C(194cm)
8. 김낙수 3학년 SG(171cm)[46]
9. 정우성 2학년 G-F(186cm)
15. 신현필 1학년 C(210cm)

감독 도진우. 덤으로 한국판에선 지워졌으나 원작에는 이시하라라는 인솔교사가 있다.


[1] 인터하이가 열린 히로시마와의 거리는 무려 1230km로 비행기로도 3시간 반, 자동차로는 무려 15시간 걸리는 엄청나게 먼 거리다. 아키타 선에서 도카이도 선으로 환승하는 신칸센으로도 8시간 반이나 걸리는데다, 연재 당시엔 아키타 신칸센(1997년 개통)이 없었다. [2] 단순히 한자를 제대로 못읽는 게 아니라 다른 해석도 존재하는데, 강백호는 본인이 실력을 인정하는 경우가 아니면 죄다 별칭으로 부른다. 여우, 고릴라시리즈가 그 예시이며 본명을 정확히 부르는 경우는 윤대협뿐. 즉, 산왕의 실력을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란 해석도 존재한다. 결정적으로 217, 219화(신장재편판 16권)에서 강백호가 "타도 '산노'"라고 이름을 정확히 부르는 독백이 나온다. [3] 山王을 야마오로 읽는 건 가능한 일이긴 하다. 문제는, 원작에선 강백호가 고교 농구계에 대해서 문외한이다 보니 저걸 저렇게 읽는 걸로 받아들일 수 있는 건데, 번역본에서 저런 식으로 반영하다 보니 강백호는 8급 기초한자도 못 읽는 무식쟁이가 되고 말았다. 물론 강백호는 7과목이나 낙제할 정도로 공부와는 담을 쌓았는지라 이것도 그다지 어색하지는 않다. [4] 더 퍼스트 슬램덩크에서도 이 '산양' 번역이 그대로 쓰였다. [5] 흔히 쓰는 專(오로지 전)이 아닌 摶(오로지 전, 뭉칠 단)을 사용한다. [6] 한 명 한 명이 대학 올스타급이라는 산왕공고 졸업생 출신 대학 선수들과의 연습경기도 압도적으로 이겨버렸다. 물론 농구는 팀플레이 종목인 만큼 그 OB들이 다른 팀에 있다가 모였다면 합이 조금씩 어긋났을 것이니 1대1 실력에서 크게 밀리지 않는다면 합을 계속 맞춰온 현역들이 이기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연습경기라 OB들이 굳이 부상위험을 안고 열심히 뛸 이유도 없다. 그렇더라도 대학 올스타급을 상대로 고등학생들이 1대1로 밀리지 않았다는 것이니 사기팀인 것은 마찬가지. 특히 신현철과 정우성이 뛴 센터와 스몰포워드는 1대1에서도 확고한 우위를 점했을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상황상 작가가 합이 맞지 않는다는 문제를 일부러 어느정도 무시했을수도 있다, 예를 들어 스포츠기자인 박하진조차 산왕이 OB들에게 압승하는 모습에 쇼킹해하는 반응에서 그런 느낌이 드러난다. [7] 사실 실력이 월등한 선수들이 손발이 안 맞아서 어린 선수들에게 패했다면 92년 미국 농구대표팀이 대학선발팀에게 패했을 때처럼 답답하다는 반응이 나와야 정상이지만, 이때 산왕 OB들은 "휴우, 정말 강하군 너희들"이라며 이들의 실력에 당혹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농구란 스포츠는 개인기량이 미치는 영향이 굉장히 크기 때문에 실력이 더 좋은데 팀워크 때문에 패한 것이라면 저렇게 발리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산왕 OB들과 박하진의 반응, '상대가 되지 않았다!'는 나레이션 등을 보면 작가의 의도는 이들이 대학올스타급조차 압도하는 미친 실력의 소유자란 걸 묘사한 것으로 보인다. 대사나 나레이션이나 하나같이 산왕 선수들의 우월한 실력에 대한 묘사이지, 팀워크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 [8] 개정판 19권 200 페이지. 공교롭게도 이 잡지는 송태섭의 형인 송준섭도 구입하고 산왕에게 이기겠다는 결의를 적은 잡지이기도 하다. [9] 개정판 19권 181 페이지. [10] 어린 채치수가 처음 잡지에서 산왕을 본 이래 전국재패를 상상할 때 항상 그 상대는 산왕이었다고 했는데, 정대만이 "상상 속에선 이겼냐?"고 하자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상상 속에서라도 이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는 것. [11] 개정판 19권 161 페이지~162 페이지. [12] 작중 일본 농구 국가대표팀의 센터. [13] 비디오 담당자가 강백호가 맹활약한 모습은 거의 못 본 모양인지 쓸데없이 카메라를 보다가 바보처럼 공에 맞거나 레이업을 하려다 엉뚱하게 날려먹는 모습이 주로 찍혀있다. 정성구가 "네놈의 임무는 리바운드겠지"라고 하긴 했으나 이건 그의 체격을 보고 딴 걸 잘하는 게 없으니 궂은 일이라도 할 것이라고 유추한 걸로 보이고, 이것도 후반전에 한 일이니 전반전에 강백호가 리바운드만 노린 걸 보고 판단한 듯 하다. 상양의 장신들을 혼자 제압하고 리바운드를 다 쓸어낸 모습을 봤다면 저렇게 "... 일단 방심은 금지다. 일단은..."이란 태평한 반응을 보일 순 없을 것. [14] 개정판 19권 183페이지. [15] 리그전이라면 골득실을 벌어놓는게 유리할 수도 있지만, 작중 산왕과 해남의 경기는 토너먼트였기 때문에 점수차는 별 의미가 없었다. 다만 해남 또한 전국대회 준결승까지 올라온 팀이니만큼, 한 번 방심했다가는 언제 어떻게 따라잡힐지 알 수 없기에 역전의 가능성을 없애기 위해 일부러 더욱 공격적으로 나섰을 가능성도 있다. [16] 다만 이를 뒤집어 생각해 보면 이미 승패가 거의 결정난 상황에서도 무자비한 공격 일변도를 추구했다는 말이 된다. 후술하겠지만 이는 어떻게 보면 산왕이라는 팀의 크나큰 단점으로 꼽을 수도 있고 북산에게 역전패하는 빌미를 제공했다. [17] 실제로 명정의 감독은 산왕이 후반 들어 풀코트 프레스 수비를 보이며 득점을 벌리자 예상했다는 듯 동행한 김판석에게 산왕의 주특기라 설명하며 "이 경기, 앞으로 볼 수 있는 것도 5분. 그 이상은 상대가 불쌍해서 지켜볼 수 없어."라고 한다. 즉, 해남, 산왕전처럼 전반에는 슬슬 하다가 후반 들어 마구 몰아치면서 상대를 박살내는 게 주특기란 소리. 이걸 생각하면 해남은 후반 15분 동안 겨우겨우 버티다가 막판에 한계에 부딪히면서 무너져 개박살났다고 볼 수 있다(이정환과 이명헌이 매치업할때 둘의 표정을 교차해 보여주는데, 이정환은 눈을 크게 뜨고 당혹스러운 표정을, 이명헌은 전혀 동요되지 않은 침착한 표정이다. 이후 이정환이 날카로운 표정으로 돌파하지만, 이명헌에게 뺏기자 당황스러워한다). 그리고 북산이 20점차로 뒤지자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음에도 사람들은 경기가 결정됐다고 여기며 명정감독은 "끝났다"고 단언하고 자리를 뜬다. 즉, 이 상태에서 북산이 역전한 건 말 그대로 기적에 가깝다. [18] 개정판 19권 173페이지. 실제로 해남은 전력에 비해 골밑이 약한 편이다. 고민구가 도내 손꼽히는 센터이긴 하지만, 채치수나 성현준 수준의 존재감은 없고 골밑 파트너는 김동식. 그리고 2-3번 라인인 전호장-신준섭 중 골밑에서 크게 도움이 될 만한 선수는 없다. (한명은 점프력은 좋으나 단신이고 한명은 센터 출신이지만 너무 피지컬이 약하다.) 그래서 이정환이 지학고교의 별 마성지를 보러왔다가 지학고교를 막 털어내던 명정공업의 김판석을 보고 " 고민구 혼자선 어떻게 해 볼 상대가 아닌데... 보러오길 정말 잘했군."이라고 한 게 괜히 그런게 아닌 셈이다. [19] 개정판 21권 115페이지. [20] 개정판 21권. [21] 한번 말리면 공격도 수비도 안 되는 팀이었으면 이명헌과 신현철이 입학한 이래 한 번도 지지 않았을 리가 없다. 이건 북산의 주인공 보정이라 봐야 할 듯 하다. 지역예선에서 도 내 최강이자 전년도 4강 팀, 그 해 결국 결승까지 간 해남을 상대로 채치수가 부상으로 잠시 빠진 상황에서도 서태웅의 원맨쇼로 6분여 만에 15점 차를 따라잡아 동점으로 전반전을 끝내기도 했고 말이다. [22] 사실 경기양상을 자세히 살펴보면 기본적인 전력이 상대도 안 되는 북산을 이기게 하려고 거의 막장스럽게 주인공 보정을 줬는데, 그러다 보니 이런 결정들을 한 도진우는 농구의 기본도 모르는 천하의 멍청이가 되어 버렸다. 승부처에 경험도 실력도 모자란 1학년을 상대 팀 주전 센터에게 붙인 걸 포함해 엉터리 매치업으로 자기 팀의 장점을 다 깎아먹었고, 선수들조차 "북산이 선배들(산왕 OB로 대학올스타급이다!)보다 못하리란 보장은 없으니까"라며 전혀 방심하지 않는데 정작 본인은 절대 질 리가 없다고 방심하고 있었다(나레이션으로 '이 시합에서 진다는 건 생각치도 않는 도 감독'이라고 나온다). 게다가 최동오가 후반에 멘붕하는 모습을 보이면 재빨리 빼 줘야 되는데 후반 내내 기용함으로써 정대만에게 회복 불능의 피해를 입었다. 설정상 산왕의 벤치는 두텁기 때문에 선수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게다가 정대만을 전반에 잘 막은 김낙수가 바로 옆에 있었는데도! 사실 산왕전은 북산이 평상시보다 잘한 것도 있지만(특히 강백호) 산왕이 평상시보다 너무 못한 것도 크고 자세히 살펴보면 이들의 삽질 대부분에는 도진우가 관여되어 있었다. [23] 애초에 북산은 후반에 한동안 존 프레스에 당했지만 존 프레스가 많은 선수가 앞으로 나가 있으면 쉽게 뚫을 수 있다는 걸 파악한 상태다. 그걸 대놓고 또 쓴다면 그냥 뚫어달라는 소리밖에 안 된다. 사실 덩치도 훨씬 큰 정우성/이명헌이란 특급 수비수들이 둘러싸는데다가 같이 볼 운반을 도와줘야 하는 정대만이 탈진한 상태라 송태섭이 당황해 폭풍 턴오버를 했지만, 이들 입장에서도 막기 가장 까다로운 선수가 바로 작고 재빠른 송태섭이다. 실제로 송태섭이 정신을 차리고 뚫어버리려고 하자 순간 스피드로 더블팀이 오기 전에 프레스를 뚫을 수 있었다. [24] 거기에 남진모 감독 또한 "어차피 이길 수 있는 거를 무리수를 둔다."라고 평가한 게 아닌 "과연 철두철미하다. 북산의 숨통을 완전 끊어놓을 셈이다."라고 평한다. 즉, 존 프레스가 악수가 아니라 반대로 당시 상황에 비추어 굳이 쓸 필요까지 없을 정도로 최선의 수인데 썼다는 뉘앙스이다. [25] 다만 90년대에는 프로 수준에도 3점이 주특기가 아닌 팀들이 많이 있었다. 당장 90년대을 지배한 시카고 불스만 해도 2차 3연패 당시 주전 중 3점슛을 능숙히 쏘는 선수는 없고 전부 중거리, 돌파, 포스트업 위주의 라인업이었다. NBA만 해도 이 정도니 고등학교 무대에서 3점을 중시하는 최강팀이 없는 건 그리 이상한게 아니다. 산왕은 설정상 벤치도 강한 팀이고, 불스처럼 벤치에 3점슈터가 있었을 수 있겠지만, 주전 중 장거리슛이 특기인 선수가 없는 최강팀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정우성이나 이명헌, 최동오도 3점을 쏘는게 명시적으로 나오지 않을 뿐 중장거리 슈팅력 정도는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26] 지금도 일본은 프로리그의 자국 빅맨선수진이 한국에 비해서도 처참하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높이가 낮다. 그런데 프로나 대학무대도 아닌 고등부, 심지어 1990년대 골밑이라면 신현필의 높이와 체급은 그 자체만으로도 재앙에 가깝다. 그 강백호조차 신현필의 백다운 후 돌아서 점프도 안하고 골밑 슛이라는 단순한 루트를 처음에는 감당하지 못했을 정도이니 말 다 한 셈. [27] 정성구보다 리바운드 능력이 확실하게 뛰어난 선수는 신현철과 강백호 뿐이며, 그 강백호도 초반에는 정성구와의 리바싸움에서 압도당했다. 여기에 작중 최강의 피지컬인 김판석 정도가 정성구 이상의 리바운더라 추정되는 정도. [28] 간단하게 말하면 산왕은 센터가 둘이지만 공수 양면에서 더 포워드스러운 툴을 갖춘건 단연 신현철이고, 매치업의 경우 상대팀 4~5번 중 더 뛰어난 쪽을 신현철이 막는다고 보면 될 것이다. [29] 상양 81화~97화(총 17화), 해남 99화~131화(총 33화), 능남 150화~184화(총 35화), 풍전 201화~214화(총 13화), 산왕 223화~276화(총 54화). 즉, 주간 연재로 치면 1년 내내 산왕전만 연재한 셈이다. 실제로 국내에서도 소년챔프 연재 당시 1995년 여름에 시작해서 1996년 여름에 끝이 났다. [30] 이때가 정확히 언제인지는 안 나오지만 채치수가 농구부를 주도하던 걸로 봐서 2학년일 가능성이 높다. 즉, 이명헌-정우성-신현철 트리오가 팀의 주축으로 활약할 때. [31] 딴 건 몰라도 '1학년 에이스인 정우성'(전국 최강의 팀의 에이스가 1학년이라는 건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기사감이다)이나 자기 매치업인 신현철에 대해서는 알아야 정상이다. 당장 위에 언급한 회상장면에서도 산왕의 사진이 있는 잡지를 보여주고 있는데, 이 때 시점을 생각하면 이 잡지에서도 산왕 빅3에 대한 내용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농덕후인 채치수 특성상 잡지를 샅샅히 읽어보았을 게 당연하고. [32] 북산 역시 피나는 훈련을 하지만 개개인의 천부적 재능이 더 부각되는 팀이며 팀 구성원들이 하나같이 자존심이 넘치다 못해 거만하며 무례하고 거친 선수들이다. 주장 채치수는 그런 경향이 좀 덜하지만 예의가 바를 뿐 자존심 강하고 거친 건 매한가지다. 덤으로 감독은 대학농구에서 실력이 검증된 국가대표 출신의 원로다. 작중 설정만 보면 이쪽이 훨씬 최종보스에 어울린다는 평을 많이 받는다. [33] 각각 리바운드와 수비 [34] 두 팀의 구도는 확실히 다른데 산왕이 전통강호 주인공 팀의 클리셰에 가깝다면 해남은 한명의 천재가 가능성이 있는 미숙한 신입과 훈련으로 다듬어진 노력파 팀원을 하드캐리하는 주인공 팀의 클리셰에 가깝다. [35] 전반 21:18로 북산의 리드 상태에서 강백호가 신현필을 제치고 레이업을 성공해 북산이 23점이 되고, 중간과정이ㅡ생략되고 후반 시작 시점에서 36점이 돼 있는 부분이다. 강백호로 신현필을 공략하는 것이 당시의 주전략이었기 때문에 강백호의 득점비중이 높았을 가능성이 있다. [36] 전반 마지막으로 묘사된 점수인 18점에서 후반 시작 시점에 34점이 돼 있음으로써 16점이 생략되었고, 후반 존 프레스로 36:39로 앞서나가는 산왕에서 최동오가 골을 넣는 시점에서 36:46으로 10점 차가 됨으로써 중간의 5점이 생략되었다. 최동오를 띄워주는 부분이므로 최동오의 득점 비중이 높았을 수도 있다. 46점을 만드는 최동오의 득점은 정대만의 마크를 뿌리치고 비교적 외곽에서 넣은 것인데, 해당장면의 컷이 작은데다 코트의 선 부분이 가려져 있고 캐릭터들의 대사를 통해서도 3점이라 확정할 수 있는 부분이 없다. 만약 이것이 3점 슛이었다면 최동오의 확정 득점은 6점이 되고 불명은 20점이 된다. [37] 해당 컷. 발목 아랫부분이 화면 컷에 잘려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파일:24E86D80-BD0B-4101-BA3A-472D5608CFF4.jpg [38] 2021년 4월부터 노시로니시고교와 합병하여 교명이 '노시로과학기술고등학교'로 변경되었고, 유니폼 색상도 변경되었다. [39] 당시 감독이었던 아사토 유키오를 비롯한 코치진들이 인터뷰에서 91년 인터하이 때 작가 이노우에 다케히코가 만화 연재를 위해 자신들의 취재를 왔었다고 언급했는데, 작중에서도 북산의 유니폼이나 능남의 용맹과감 현수막 등 가나가와현 각 학교에 챠탄고교의 소재들이 등장한다. [40] 경기에선 정의한, 정승원, 박구영, 하승진이 각각 등번호 5번, 6번, 11번, 13번 스타팅 멤버로 출전했으며 백주익 유희선은 10번과 22번 선수로 교체 투입 되었다. 양희종 또한 7번으로 이 대회에 참가했으나 경기에는 출전하지 않았다. [41] 수업 중에 탈출하면 선생님들이 눈치채고, 학생들 사이에 섞여서 몰래 나가더라도 선수들이 키가 큰데다가 농구의 도시답게 주민들도 관심이 많아 바로 알아보고 학교로 연락을 했기 때문에 금방 매니저에게 추노당했다고 한다. 게다가 워낙 깡촌이라 당시 기차 막차도 일찍 끊겼기 때문에 한밤중에 몰래 탈주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고 한다. [42] 재학 당시 농구부에서 매니저를 했었으며 노시로공고 선수 명단에서 그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 홈페이지 캐스팅 명단에도 新岡 潤로 기재되어 있으며 자신의 트위터 인스타그램에도 참여했다고 포스팅했다. [43] 더 퍼스트 슬램덩크 제작에 참여한 인물들의 비하인드 인터뷰로 Spotify, 유튜브, Apple Music에서 음성 버전 또한 감상이 가능하다. [44] 슬램덩크에서도 이 부분이 드러나는데 능남 유명호 감독이 가나가와현 최고 농구 유망주로 꼽히는 정대만 스카웃을 노리고 있다는 의중을 드러내자, 옆에서 듣고 있던 북산 안한수 감독이 '공립인 북산에 정대만 같은 인재가 올 가능성은 없으니 좋을 대로 하라'는 식으로 대답한다. [45] 작중 확실히 기재된 것만 표기. [46] 많은 사람들이 그냥 가드로 알고 있는데 슬램덩크 20권 45쪽에서 안한수 감독이 슈팅 가드라고 언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