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국 프로야구 리그 최우수 투수 수여상 | ||
MLB | NPB | KBO |
사이 영 상 | 사와무라 상 | 최동원 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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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沢村栄治賞사와무라 에이지 상(賞), 통칭 사와무라 상(沢村賞). 전설이자 비운의 투수였던 사와무라 에이지를 기리는 의미에서 이러한 이름이 붙었다.
일본프로야구에서 매년 그 해의 최고 투수에게 수여하는 상이며 그 대상은 선발 투수로 한정된다.
1947년 熱球라는 야구 잡지에서 처음 제정해서 1956년 제정된 메이저 리그의 사이 영 상보다도 먼저 생긴 상이다. 그러나 1988년까지는 센트럴 리그의 투수만 대상으로 했다. 1989년( 헤이세이 원년)부터 수상의 범위를 퍼시픽 리그까지 확대. 아직도 리그별 시상은 하지 않고 양대리그를 통틀어서 최고의 투수를 뽑는다.[1] 1988년까지는 반쪽짜리 최고투수상이었던 셈. 다만 양대리그 모두 시상범위에 들어간 첫 해인 1989년엔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사이토 마사키가 수상했고, 이듬해인 1990년 킨테츠 버팔로즈의 노모 히데오가 사와무라 상을 수상하며 퍼시픽리그 최초의 수상자가 나왔다.
1.1. 투표 기준
1982년 이전까지는 기자투표로 수상자가 선정되었다가, 1981년 에가와 스구루가 투수 5관왕 + 센트럴 리그 MVP를 차지하고도 기자들의 안티 여론에 밀려 수상을 하지 못하면서 논란이 되었다.[2] 이에 1982년부터 아래의 7가지 자격 기준이 제정되며 전직 프로야구 투수들로 이루어진 ' 사와무라상 선정위원회'에 의해 수상자가 뽑히게 되었다. 그 기준은 다음과 같다.- 등판 - 25경기 이상
- 승리 - 15승 이상
- 완투 - 10경기 이상
- 승률 - 6할 이상
- 투구 횟수 - 200이닝 이상
- 평균자책점 - 2.50 이하
- 탈삼진 - 150개 이상
- QS+ - 등판 대비 비율 (2018년 신설)
하지만 꼭 저 항목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서, 위의 항목을 한 두개 만족하지 않더라도 수상자로 뽑히기도 한다. 물론 모든 항목을 충족한다면 수상 확률도 높아진다. 시대가 흐르면서 위의 모든 항목을 만족하기가 쉽지 않아지고 있지만[3], 전 항목을 만족하는 '괴물투수'는 여전히 가끔씩 나오고 있고 82년 사와무라상의 기준이 생긴 이후 7가지 항목을 모두 채운 투수는 총 11명이다. 1982년 키타벳푸 마나부와 에가와 스구루, 1987년 쿠와타 마스미, 1989년 사이토 마사키, 1991년 사사오카 신지, 1993년 이마나카 신지, 2007~2008, 2011년의 다르빗슈 유, 2009년 와쿠이 히데아키, 2011년 타나카 마사히로, 2013년 카네코 치히로, 2018년 스가노 토모유키. 보다시피 2번 이상 채운 선수도 없는데 다르빗슈 유는 혼자 3번이나 채우는 괴물 같은 모습을 보였으나 정작 수상 자체는 2007년 1번에 그쳤다.
1.2. 수상에서의 예외
그런데 사와무라상은 더 많은 항목을 만족한 선수가 있음에도, 그렇지 못한 선수가 뽑히기도 한다.예를 몇 가지 들어보자면,
- 1988년 - 4개 항목을 채운 오노 유타카( 히로시마)가 5개 항목을 채운 마키하라 히로미( 요미우리)를 누르고 수상했다. 1988년 오노의 평균자책점은 1.70으로 양대리그 1위.
- 1990년 - 사이토 마사키( 요미우리)는 노모 히데오( 킨테츠)와 함께 6개 항목을 채웠음에도 불구하고 "탈삼진 수가 많을수록 사와무라상인 것 같다"는 이유로 노모 히데오가 수상했다. 사이토는 평균 자책점, 승률이 양대 리그 1위임에도 불구하고 노모의 287탈삼진에 밀린 것이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이 해 노모가 신인으로서 일으킨 돌풍이 너무도 대단했기 때문이다. 사이토 마사키는 직전 해 사와무라상 수상자이기도 했지만 너무 모범생스럽고 앞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조용한 성격이라 2년 연속 20승을 올리면서[4] 리그를 평정한 요미우리의 에이스였음에도 불구하고 임팩트가 큰 편이 아니었다. 오히려 인기나 임팩트 면에서는 동료인 쿠와타 마스미, 마키하라 히로미보다 더 떨어질 정도.
- 1992년 - 4개 항목을 채운 이시이 타케히로( 세이부)가 6개 항목을 채운 노모 히데오( 킨테츠)를 누르고 수상했다. 이시이는 일단 1점대 평균자책점(1.94)과 승률왕(.833) 타이틀이 있긴 했지만, 평균자책점 타이틀을 딴 것도 아닌데다가[5] 불펜알바 때문에 148.1이닝밖에 소화하지 못한 반면 노모는 이 해에도 어김없이 무지막지한 탈삼진을 뽑아내며 탈삼진 양대 리그 1위를 차지했으나, 이시이의 소속팀 세이부의 우승버프에 밀려서 수상에 실패했다.
- 1994년 - 5개 항목을 채운 야마모토 마사( 주니치)가 6개 항목을 채운 이라부 히데키( 치바 롯데)를 누르고 수상했다. 이라부는 양대 리그 탈삼진 1위(239개)를 기록했지만, 야마모토는 탈삼진 6위(148개), 평균자책점 14위(3.49)에 그쳤다.[6] 이 수상은 일단 야마모토가 센트럴리그 다승왕(19승)과 완투 1위(14완투)를 기록한 것에 더해[7], 이 해 시즌 내내 하위권이던 이라부의 소속팀 치바 롯데와 달리 야마모토의 소속팀 주니치가 이 시즌 최종전까지 우승 경쟁을 벌였고, 야마모토도 에이스 투수로써 팀을 상위권으로 이끈 것이 영향을 준 듯 하다. 당시 선정 위원 중 한 명이 야마모토와 선수, 감독으로 함께 주니치에서 뛰었던 호시노 센이치였다.
- 1996년 - 5개 항목을 채운 사이토 마사키( 요미우리)가 6개 항목을 채운 니시구치 후미야( 세이부)를 누르고 수상했다. 사이토의 경우 센트럴리그 최다승, 평균자책점 타이틀과 승률 1위 기록이 있었지만 니시구치의 경우 퍼시픽리그 완투 1위 기록을 제외하고는 무관에 그친 것이 컸다.
- 2003년 - 5개 항목을 채운 이가와 케이( 한신), 4개 항목을 채운 사이토 카즈미( 다이에)가 6개 항목을 채운 우에하라 코지( 요미우리)를 누르고 공동으로 수상했다. 이가와의 한신과 사이토의 다이에는 양대리그 우승팀이었다. 그리고 사이토는 퍼시픽 리그에서 18년만에 나온 20승 투수였고 두 명 다 선발 20승 투수였다. 또한 이 수상은 사상 최초의 양대 리그 공동수상[8]이기도 하다.
- 2008년 - 6개 항목을 채운 이와쿠마 히사시( 라쿠텐)가 7개 전 항목을 채운 다르빗슈 유( 닛폰햄)를 누르고 수상했다. 이와쿠마는 1985년의 사토 요시노리 이래 23년만에 나온 21승 투수였고, 리그 2위인 닛폰햄 소속이었던 다르빗슈와 달리 리그 5위에 그쳤던 라쿠텐에서 21승이나 따내며 팀 승수(65승)의 거의 1/3을 책임졌다.
- 2013년 - 6개 항목을 채운 다나카 마사히로( 라쿠텐)가 7개 전 항목을 채운 카네코 치히로( 오릭스)를 누르고 수상했다. 다만 다나카는 NPB 역사에서 전무후무할 24승 0패 투수로, 시즌 내내 연승 행진으로 주목을 받으면서 만장일치로 여유롭게 수상했다. 이 해 라쿠텐의 창단 첫 일본시리즈 우승에 크게 기여한 것도 이점으로 작용했다. 평균자책점 역시 1.27로 압도적인 리그 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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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
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크리스 존슨이 외국인으로서는
진 바키 이후 52년만에
사와무라상을 수상했다. 다만
존슨은 다승은 팀 동료인
노무라 유스케[9], 이닝과 탈삼진, 방어율은
스가노 도모유키(
요미우리)[10]에게 밀려 리그 타이틀이 하나도 없음에도 수상한 케이스가 되었다.
스가노는 비율로서는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두었지만, 물타선과 불펜의 방화로 인해 9승밖에 챙기지 못한 반면
존슨은 리그 우승팀
카프의 에이스로 15승을 거두었다는 것이 주효했다.
더 특이한 사실은, 수상 자격에 걸맞은 선수가 없을 경우 시상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6번(1971년, 1980년, 1984년, 2000년, 2019년, 2024년)이나 수상자가 없었는데, 리그 사무국이 주관하는 공식 연간 선수상에서 자격미달로 시상을 하지 않는 경우는 전 세계를 통틀어도 유례가 없다.[11][12]
2019년에는 야마구치 슌(요미우리)과 아리하라 코헤이(닛폰햄)가 최종 후보에 올랐으나 수상에 실패했다. 두 투수 모두 완투 숫자과 최소 투구이닝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 심사위원장인 호리우치 츠네오는 "우선, 사와무라상은 원래 사와무라 에이지를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상이다. (사와무라와 같은) 선발 완투형 No.1 투수에게 수여하는 것이지 결코 그 시즌의 베스트 투수에게 수여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완투 숫자 충족)이 불가능한 시대가 계속된다면 기준을 재검토해야겠지만, 그 때가 지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상 이름에 사와무라 에이지의 이름이 있는 이상, 더 이상은 (수상자의) 레벨을 낮추고 싶지 않았다"고 '수상자 없음'의 이유를 밝혔다. 신문기사(일어) 노무라 카츠야는 ''에이스는 개인주의자일 수 있지만 이기주의자가 돼서는 안 된다"며 선발투수의 이닝이 갈 수록 줄어드는 세태를 부정적으로 바라봤다. 선발투수라면 등판한 경기를 다 책임진다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는 주간 베이스볼에서 쓴 칼럼에서 "어깨는 소모품이라고 하는데, 보통 100개 남짓인 투구 수 제한은 과학적 근거가 모호하다. 그걸 지켜서 투수의 수명이 늘었나. 반대로, 매일 같이 던지던 옛 투수들이 덜 다친 건 무슨 이유인가"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신문기사
참고로, 그 다음년도 수상자인 오노 유다이는 비록 야마구치와 아리하라보다도 부족한 148⅔이닝[13]을 투구해 최소 투구이닝 요건을 충족하지는 못했으나 무려 10완투를 기록함으로써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사 사와무라 상 수상에 성공하였다.
1.3. 기록들
- 최다 수상자는 총 3회를 수상한 가네다 마사이치, 스기시타 시게루, 무라야마 미노루, 사이토 마사키, 야마모토 요시노부 등 4명이다. 그 중에서도 가네다 마사이치는 1956~1958년, 야마모토 요시노부는 2021~2023 3년 연속 수상했다.
- 2회 수상자로는 벳쇼 다케히코, 호리우치 츠네오, 고바야시 시게루, 키타벳푸 마나부, 우에하라 고지, 사이토 가즈미, 마에다 켄타, 다나카 마사히로, 스가노 토모유키까지 9명이 있다.
- 2년 연속 수상자로는 스기시타 시게루 (1951~1952년), 무라야마 미노루(1965~1966년), 사이토 마사키(1995~1996년), 스가노 토모유키(2017~2018년). 여기에 3년 연속 수상한 가네다 마사이치와 야마모토 요시노부를 포함해서 총 6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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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남아 있는 구단 중에서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한 구단은
치바 롯데 마린즈가 유일하다. 그나마
이라부 히데키가 한 번 후보로 올라본 것 빼고는 후보로조차 거론된 선수가 거의 없었다.
홈런타자도, 에이스도 없는...다만 롯데의 경우는 1988년까지 센트럴 리그만 수상 범위였던 것 때문에 손해를 봤던 케이스다.[14]사실 롯데도 과거엔 고야마 마사아키, 나리타 후미오, 무라타 쵸지 등 리그 최고의 투수들이 많이 존재하던 강팀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이들이 뛰던 시기가 센트럴 리그만 사와무라상을 수상하던 때였고, 퍼시픽 리그도 수상범위에 들어간 시기부턴 이미 이런 투수들이 노쇠화로 다 은퇴해버린 데다가 팀이 약체화되어버려서(...) 사와무라상을 수상할 만한 투수가 없었던 것.[15] 만약 그 이전부터 시상을 했더라면 사와무라상 수상자가 없는 구단이란 타이틀은 진작 버렸을지도 모른다. - 참고로 역대 수상자 중 외국인은 한신 타이거즈 소속이던 진 바키(1964년 수상)가 유일했지만 2016년 히로시마의 크리스 존슨이 수상하면서 2명으로 늘었고 모두 센트럴 리그에서 나왔다.
2. 역대 수상자 명단
- 굵은 글씨는 정규 시즌 리그 1위.
연도 | 투수 | 팀 | 등판 | 완투 | 승리 | 승률 | 투구 이닝 | 탈삼진 | 평균자책점 |
1947년 | 벳쇼 아키라[16] | 난카이 호크스[17] | 55 | 47 | 30 | .612 | 448 ⅓ | 191 | 1.86 |
1948년 | 나카오 히로시 | 요미우리 자이언츠 | 47 | 25 | 27 | .692 | 343 | 187 | 1.84 |
1949년 | 후지모토 히데오 | 39 | 29 | 24 | .774 | 288 | 137 | 1.94 | |
1950년 | 사나다 쥬죠 | 쇼치쿠 로빈스 | 61 | 28 | 39 | .765 | 395 ⅔ | 191 | 3.05 |
1951년 | 스기시타 시게루 | 나고야 드래곤즈 | 58 | 15 | 28 | .683 | 290 ⅓ | 147 | 2.35 |
1952년 | 61 | 25 | 32 | .696 | 355 ⅔ | 160 | 2.33 | ||
1953년 | 오토모 타쿠미 | 요미우리 자이언츠 | 43 | 22 | 27 | .818 | 281 ⅓ | 173 | 1.85 |
1954년 | 스기시타 시게루 | 주니치 드래곤즈 | 63 | 27 | 32 | .727 | 395 ⅓ | 273 | 1.39 |
1955년 | 벳쇼 타케히코 | 요미우리 자이언츠 | 50 | 17 | 23 | .742 | 312 | 152 | 1.33 |
1956년 | 카네다 마사이치 | 코쿠테츠 스왈로즈 | 68 | 24 | 25 | .556 | 367 ⅓ | 316 | 1.74 |
1957년 | 61 | 25 | 28 | .636 | 353 | 306 | 1.63 | ||
1958년 | 56 | 22 | 31 | .689 | 332 ⅓ | 311 | 1.30 | ||
1959년 | 무라야마 미노루 | 오사카 타이거스 | 54 | 19 | 18 | .643 | 295 ⅓ | 294 | 1.19 |
1960년 | 호리모토 리츠오 | 요미우리 자이언츠 | 69 | 26 | 29 | .617 | 364 ⅔ | 210 | 2.00 |
1961년 | 곤도 히로시 | 주니치 드래곤즈 | 69 | 32 | 35 | .648 | 429 ⅓ | 310 | 1.70 |
1962년 | 코야마 마사아키 | 한신 타이거스 | 47 | 26 | 27 | .711 | 352 ⅔ | 270 | 1.66 |
1963년 | 이토 요시아키 | 요미우리 자이언츠 | 39 | 18 | 19 | .704 | 236 ⅓ | 166 | 1.90 |
1964년 | 진 바키 | 한신 타이거스 | 46 | 24 | 29 | .763 | 353 ⅓ | 200 | 1.89 |
1965년 | 무라야마 미노루 | 39 | 26 | 25 | .658 | 307 ⅔ | 205 | 1.96 | |
1966년 | 38 | 24 | 24 | .727 | 290 ⅓ | 207 | 1.55 | ||
호리우치 츠네오 | 요미우리 자이언츠 | 33 | 14 | 16 | .889 | 181 | 117 | 1.39 | |
1967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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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 에나츠 유타카 | 한신 타이거스 | 49 | 26 | 25 | .676 | 329 | 401 | 2.13 |
1969년 | 타카하시 카즈미 | 요미우리 자이언츠 | 45 | 19 | 22 | .815 | 256 | 221 | 2.21 |
1970년 | 히라마츠 마사지 | 타이요 훼일즈 | 51 | 23 | 25 | .568 | 332 ⅔ | 182 | 1.95 |
1971년 | 수상자 없음 | ||||||||
1972년 | 호리우치 츠네오 | 요미우리 자이언츠 | 48 | 26 | 26 | .743 | 312 | 203 | 2.91 |
1973년 | 타카하시 카즈미 | 45 | 24 | 23 | .639 | 306 ⅓ | 238 | 2.21 | |
1974년 | 호시노 센이치 | 주니치 드래곤즈 | 49 | 7 | 15 | .625 | 188 | 137 | 2.87 |
1975년 | 소토코바 요시로 | 히로시마 도요 카프 | 41 | 17 | 20 | .606 | 287 | 193 | 2.95 |
1976년 | 이케가야 코지로 | 51 | 18 | 20 | .571 | 290 ⅓ | 207 | 3.26 | |
1977년 | 코바야시 시게루 | 요미우리 자이언츠 | 42 | 11 | 18 | .692 | 216 ⅓ | 155 | 2.92 |
1978년 | 마츠오카 히로무 | 야쿠르트 스왈로즈 | 43 | 11 | 16 | .593 | 199 ⅓ | 119 | 3.75 |
1979년 | 코바야시 시게루 | 한신 타이거스 | 37 | 17 | 22 | .710 | 273 ⅔ | 200 | 2.89 |
1980년 | 수상자 없음 | ||||||||
1981년 | 니시모토 타카시 | 요미우리 자이언츠 | 34 | 14 | 18 | .600 | 257 ⅔ | 126 | 2.58 |
1982년 | 키타벳푸 마나부 | 히로시마 도요 카프 | 36 | 19 | 20 | .714 | 267 ⅓ | 184 | 2.43 |
1983년 | 엔도 카즈히코 | 요코하마 타이요 훼일즈 | 36 | 16 | 18 | .667 | 238 ⅓ | 186 | 2.87 |
1984년 | 수상자 없음 | ||||||||
1985년 | 코마츠 타츠오 | 주니치 드래곤즈 | 33 | 14 | 17 | .680 | 210 ⅓ | 172 | 2.65 |
1986년 | 키타벳푸 마나부 | 히로시마 도요 카프 | 30 | 17 | 18 | .818 | 230 | 123 | 2.43 |
1987년 | 쿠와타 마스미 | 요미우리 자이언츠 | 28 | 14 | 15 | .714 | 207 ⅔ | 151 | 2.17 |
1988년 | 오노 유타카 | 히로시마 도요 카프 | 24 | 14 | 13 | .650 | 185 | 183 | 1.70 |
1989년 | 사이토 마사키[19] | 요미우리 자이언츠 | 30 | 21 | 20 | .741 | 245 | 182 | 1.62 |
1990년 | 노모 히데오[20] | 킨테츠 버팔로즈 | 29 | 21 | 18 | .692 | 235 | 287 | 2.91 |
1991년 | 사사오카 신지 | 히로시마 도요 카프 | 33 | 13 | 17 | .654 | 240 | 213 | 2.44 |
1992년 | 이시이 타케히로 | 세이부 라이온즈 | 27 | 8 | 15 | .833 | 148 ⅓ | 123 | 1.94 |
1993년 | 이마나카 신지 | 주니치 드래곤즈 | 31 | 14 | 17 | .708 | 249 | 247 | 2.20 |
1994년 | 야마모토 마사 | 29 | 14 | 19 | .704 | 214 | 148 | 3.49 | |
1995년 | 사이토 마사키 | 요미우리 자이언츠 | 28 | 16 | 18 | .643 | 213 | 187 | 2.70 |
1996년 | 25 | 8 | 16 | .800 | 187 | 158 | 2.36 | ||
1997년 | 니시구치 후미야 | 세이부 라이온즈 | 32 | 10 | 15 | .750 | 207 ⅔ | 192 | 3.12 |
1998년 | 카와사키 켄지로 | 야쿠르트 스왈로즈 | 29 | 9 | 17 | .630 | 204 ⅓ | 94 | 3.04 |
1999년 | 우에하라 코지 | 요미우리 자이언츠 | 25 | 12 | 20 | .833 | 197 ⅔ | 179 | 2.09 |
2000년 | 수상자 없음 | ||||||||
2001년 | 마츠자카 다이스케 | 세이부 라이온즈 | 33 | 12 | 15 | .500 | 240 ⅓ | 214 | 3.60 |
2002년 | 우에하라 코지 | 요미우리 자이언츠 | 26 | 8 | 17 | .773 | 204 | 182 | 2.60 |
2003년 | 이가와 케이 | 한신 타이거스 | 29 | 8 | 20 | .800 | 206 | 179 | 2.80 |
사이토 카즈미 |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 26 | 5 | 20 | .870 | 194 | 160 | 2.83 | |
2004년 | 카와카미 켄신 | 주니치 드래곤즈 | 27 | 5 | 17 | .708 | 192 ⅓ | 176 | 3.32 |
2005년 | 스기우치 토시야 |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 26 | 8 | 18 | .818 | 196 ⅔ | 218 | 2.11 |
2006년 | 사이토 가즈미 | 26 | 8 | 18 | .783 | 201 | 205 | 1.75 | |
2007년 | 다르빗슈 유 |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 26 | 12 | 15 | .750 | 207 ⅔ | 210 | 1.82 |
2008년 | 이와쿠마 히사시 |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 28 | 5 | 21 | .840 | 201 ⅔ | 159 | 1.87 |
2009년 | 와쿠이 히데아키 |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 | 27 | 11 | 16 | .727 | 211 ⅔ | 199 | 2.30 |
2010년 | 마에다 겐타 | 히로시마 도요 카프 | 28 | 6 | 15 | .652 | 215 ⅔ | 174 | 2.21 |
2011년 | 다나카 마사히로 |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 27 | 14 | 19 | .792 | 226 ⅓ | 241 | 1.27 |
2012년 | 셋츠 타다시 |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 27 | 3 | 17 | .773 | 193 ⅓ | 153 | 1.91 |
2013년 | 다나카 마사히로 |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 28 | 8 | 24 | 1.000 | 212 | 183 | 1.27 |
2014년 | 카네코 치히로 | 오릭스 버팔로즈 | 26 | 4 | 16 | 0.762 | 191 | 199 | 1.98 |
2015년 | 마에다 겐타 | 히로시마 도요 카프 | 29 | 5 | 15 | .625 | 206 ⅓ | 175 | 2.09 |
2016년 | 크리스 존슨[21] | 26 | 3 | 15 | .682 | 180 | 141 | 2.15 | |
2017년 | 스가노 도모유키[22] | 요미우리 자이언츠 | 25 | 6 | 17 | .773 | 187 ⅓ | 171 | 1.59 |
2018년 | 28 | 10 | 15 | .652 | 202 | 200 | 2.14 | ||
2019년 | 수상자 없음 | ||||||||
2020년 | 오노 유다이 | 주니치 드래곤즈 | 20 | 10 | 11 | .550 | 148 ⅔ | 148 | 1.82 |
2021년 | 야마모토 요시노부[23] | 오릭스 버팔로즈 | 26 | 6 | 18 | .783 | 193 ⅔ | 206 | 1.39 |
2022년 | 26 | 4 | 15 | .750 | 193 | 205 | 1.68 | ||
2023년 | 23 | 2 | 16 | .727 | 164 | 167 | 1.21 | ||
2024년 | 수상자 없음 |
3. 논란
-
심사위원이 선정하는 만큼 논란이 없지 않다. 특히나
다르빗슈 유가 사와무라 상에 대해서 지적을 꾸준히 하고 있는데 2017년 사와무라 상 수상 당시 "(수상자인
스가노 도모유키와 함께)
기쿠치 유세이도 사와무라 상을 받을 만한 조건이 되는데 왜 안 준거죠? 심사위원들이 뽑는 방식 보다는 기자단 투표로 하는게 낫겠는데요?"(「菊池雄星選手沢村賞でいいんじゃないですか? 選考基準の曖昧さもそうだし、なにより選考委員に決めさせるのではなく記者の投票制にすればいいのでは?」)라고 본인
트위터(현
X)에서 언급하기도 했다.
특히 해당 트윗에는 2008년 당시 이와쿠마 히사시에게 사와무라 상을 내주었는데 이때 하네다 공항의 화장실에서 심사위원 중 한명이었던 야구원로에게 "넌 젊잖아. 내년 이후에도 받을수 있으니까 뺏다.(君は若い分、来年以降もとれるしから外したよ)"라는 말을 해 몹시 실망했고 그 이후로 사와무라 상에 대한 미련을 버렸다고 직접 언급하기도 했다. 위의 내용은 해당 기사에서 확인이 가능하다.
이후에도 다르빗슈 유는 꾸준히 사와무라 상은 시대가 바뀐 것을 인정 하라.며 개선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찬/반 논쟁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4. 관련 문서
[1]
메이저리그는 1966년까지 리그전체에서 한 명을 뽑았다가 1967년부터
사이 영 상을 리그별로 뽑는다.
[2]
그 해에는
1981년 일본시리즈 MVP를 수상했으나 선발등판, 소화 이닝을 제외하곤 무관에 그쳤던 에가와의 팀 동료
니시모토 타카시가 수상했다.
에가와는 1980년에도 다승왕-탈삼진왕을 차지했지만
사와무라상을 타지 못했고(심지어 이 해는 사와무라상 수상자가 없는 해다! 기자들이 작정하고 투표지에 "해당자 없음"이라고 적어서 냈고, 그게 과반이 된 것.), 1982년에는 7개 기준을 모두 충족했지만 역시 7개 기준을 모두 충족한
히로시마의
키타벳푸 마나부에 밀리면서 결국 은퇴할 때까지
사와무라상과 인연이 없었다. 안티 여론이 컸던 이유는 드래프트 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요미우리에 편법을 쓰다시피 입단하여 논란을 일으킨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는데, 이에 관해선
본인 문서 참조.
[3]
특히 완투 10경기 이상. 선발-중계 분업화가 확대되어가는 현대야구의 추세로 완투형 투수를 보기가 힘들게 되었다. 이 조건이 붙은 이유는
일본에서는 한 경기를 끝까지 책임지는 완투 능력을 이상적인 에이스의 조건으로 보기 때문. 다만
일본은
메이저리그보다는 로스터 운용이 자유로운 편이므로 선발이 좀 더 쉬는 대신 좀더 많은 이닝을 소화하는 6선발+ 로테이션을 구축하기도 한다.
[4]
일본프로야구에서
사이토 마사키 이후로 현재까지 2년 연속 20승을 거둔 투수는 나오지 않고 있다. 사이토는
사와무라상을 3번이나 수상하며 역대 최고 수상 기록을 세웠고 최다탈삼진 1회, 다승왕 5회, 평균자책점 1위 3회 등의 화려한 실적을 기록하며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중반
센트럴리그를 지배했던 대투수다. 그러나 성적과는 별개로 사이토는 명문팀
요미우리의 에이스로 이렇게 대단한 성적을 올렸음에도 이 정도로 눈에 띄지 않고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지 못한 투수이기도 하다. 단적인 예시로 올스타전 출전이 고작 6번에 불과하며 이마저도 팬 투표로 선발된 것은 단 1번에 불과했다.
요미우리의 불가사의 중 하나.
[5]
이 해 평균자책점 1위는 노모의 팀동료 아카호리 모토유키(1.80)가 수상했다. 다만 이시이에겐 다소 억울할 수도 있는 게 원래 전문 구원투수였고 이 해부터
마무리 투수에 자리잡은 아카호리가 리그 최다인 50시합 등판을 달성하는 등 무지막지하게 등판하면서 시즌 막판에 평균자책점 타이틀까지 노릴 수 있는 상황이 되자 킨테츠 구단에서 아카호리를 선발로 2차례 등판시키는 등 대놓고 밀어주는 바람(92년 10월 시점에서 아카호리가 평균자책점 1위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15이닝 + 3실점 이하라는 조건이 달려 있었는데, 시즌 종반부다 보니 구원등판으로는 15이닝을 채울 수 없어서 선발 등판을 한 것. 아카호리는 두 번의 선발 등판에서 각각 완봉승, 6이닝 3실점을 기록하여 평균자책점 1위 타이틀을 가져온다.)에 시즌 종료 시점에서 아카호리가 규정이닝에 도달하여 이시이를 제치고 평균자책점 1위에 오르면서 수상에 실패했다.
[6]
이 해 센트럴리그 최다 탈삼진 1위는 리그 MVP를 수상한
요미우리의
쿠와타 마스미가 185개로 수상했다. 쿠와타도 최다탈삼진을 비롯해 28등판 27선발 10완투 1완봉 207.1이닝 14승 11패 ERA 2.52의 출중한 성적을 기록했지만 은근 많았던 패수와 야마모토 등의 임팩트에 밀려 사와무라상 수상에 실패했다.
[7]
이라부도 퍼시픽리그 다승왕(15승)과 완투 1위(15완투)를 기록.
[8]
공동수상 자체는 1966년에도 있었으나 이 당시엔
센트럴 리그만 수상범위에 들어갔기에
퍼시픽리그 투수는 수상에서 제외되었다. 참고로 1966년의 공동수상자는 각각
무라야마 미노루(
한신)와
호리우치 츠네오(
요미우리).
[9]
존슨 15승 v
노무라 16승.
[10]
존슨 180.1이닝(3완투) 141탈삼진 2.12 v
스가노 183.1이닝(5완투) 189탈삼진 방어율 2.01.
[11]
매년 선정하는 상의 경우 경쟁수준이 낮을 경우 종종 수준낮은 수상자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대표적인 사례가
KBO 리그 2003년 신인왕
이동학이다.
이동학은 2003년 투수로 27경기 8승 3패 평균자책점 5.35라는 초라한 성적을 기록했지만 당시 경쟁자가 없어서 신인왕에 올랐었다. 사와무라 상의 경우에는 심사위원회에서 그런 성적으로는 상 받을 자격 없다!라고 선정을 거부할 수 있다.
[12]
더욱이
일본프로야구에서는 같은 이유로 신인왕이나 골든글러브를 시상하지 않는 사례도 있다. 일본프로야구에서는 기자투표로 시상하는 상의 경우 기자가 후보자의 이름을 적어서 내는 식으로 투표하고, 수상할 만한 사람이 없다고 생각되면 "해당자 없음"이라고 적어서 낼 수도 있는데, "해당자 없음"이 과반이 되면 그 상을 시상하지 않는다.
[13]
다만, 코로나로 인해 120경기밖에 치르지 않았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또한, 오노는 2020년 투구 소화 이닝이 리그 1위였다.
[14]
1989년 이후 수상자가 없는 구단은 롯데 말고도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가 있다.
[15]
2010년대에는 그나마 가능성이 보이는 선수가
이시카와 아유무,
후타키 코타 정도인데 둘 다 2019년에 폭망. 유망주 중에서는
타네이치 아츠키나
사사키 로키에게 기대를 걸어볼 수 있을 것이다.
[16]
하술할 벳쇼 타케히코의 개명 전 이름.
[17]
이 해는
일본프로야구가 양대리그로 분리되기 전이다. 따라서 지금은
퍼시픽 리그 소속인
난카이의 벳쇼가 수상이 가능했다. 즉, 리그가 분리되기 전인 1949년까지는 진정한 최고 투수를 뽑는 상이었던 셈.
[18]
검은 안개 사건에 연루되어
영구제명되었다.
[19]
양대리그 통합 첫 수상자.
[20]
퍼시픽 리그 첫 수상자.
[21]
52년만의 외국인 선수 수상.
[22]
역대 5번째이자 22년만의 연속 수상.
[23]
카네다 마사이치 이후 역대 2번째이자 65년만의 3년 연속 수상.